9권-11, 예수님의 장난감
1909년 7월 17일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을까?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 않은가? 그분께서 오시지 않으니 나는 무용지물처럼 머물러 있었다. 그분없이는 아무 가치도 없고 아무것도 겪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이 지상에 아직도 잡아두시는 까닭이 무엇일까?”
2. 그때 그분께서 한 순간 번쩍이다 사라지는 섬광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나는 재미있게 놀려고 너를 잡아두고 있다. 하지만 장난감이 언제나 주인의 손에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달이고 몇 달이고 손도 대지 않을 때도 많으니까. 그러나 주인이 원할 때에는 그것이 주인을 즐겁게 해 주기를 그치지 않는다. 너는 내가 하나의 장난감도 지상에 가지고 있기를 바라지 않는 거냐? 나로 하여금 내 마음대로 지상에서 너하고 놀게 해 다오. 그 보답으로, 천상에서는 네가 나하고 놀게 해 주마.”
9권-12, 신적 덕성인 평화
1909년 7월 29일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던 중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왜 주님께서는 눈곱만큼의 소란도 내 안에 들어오지 않기를, 그래서 내가 모든 일 속에서 평화롭게 있기를 그리도 바라시는 걸까? (영혼에 평화가 없다면), 얼마나 위대한 일이고 영웅적인 덕행이며 혹독한 고통이건 그 무엇도 그분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분은 마치 영혼의 냄새를 맡으시는 듯, 그런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평화가 감지되지 않으면 그 영혼에게 언짢음과 역겨움을 느끼시는 것이다."
2. 그 순간 그분께서 당신 말씀을 들려주셨는데, 품위와 위엄이 넘치는 음성으로 나의 '왜'에 이렇게 대답해 주신 것이다.
3. “왜냐하면, 평화는 신적인 덕성인 반면 다른 모든 덕성은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무슨 덕이건 평화의 화관으로 장식되어 있지 않으면 선덕이 아니라 악덕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내가 평화를 이리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평화야말로 영혼이 나를 위해서 고통을 겪으며 일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표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화는 내가 내 자녀들에게 주는 유산이기도 하다. 이는 영원한 평화를 유산으로 받는 것이다. 내 자녀들이 천국에서 나와 함께 누릴 유산인 것이다.”
9권-13, “내게 아주 비싸게 치인 귀한 것”
1909년 8월 2일
1. 지난달 27일에 기록한 것을 생각하고 있노라니 절로 이런 독백이 쏟아져 나왔다.
“주님의 손안에 있는 내가 상당히 괜찮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낱 장난감에 불과하다니! 그러니 나는 얼마나 하찮은 인간인가! 장난감은 찰흙이나 흙, 종이나 물렁물렁한 고무줄 따위로 만들어지니까 땅에 떨어지거나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망가지기 십상이고, 그러면 놀이에 쓰일 수 없어지므로 내버려진다. 오, 저의 선이시여, 어느 날인가는 당신께서 저를 그렇게 버리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너무 괴롭습니다!”
2. 그러자 선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렸다.
“딸아, 괴로워하지 말아라. 사람이 망가진 장난감을 내버리는 것은 그것이 하찮은 재료로 만들어졌을 때다. 그러나 금이나 다이아몬드나 다른 어떤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떨어진 데를 손보아 고치게 한다. 그러면 그것은 언제나 소유의 행운을 누리고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역할을 한다.
3. 너도 나에게는 그런 존재다. 곧 다이아몬드와 순금으로 만들어진 장난감이다. 그것은 네가 내면에 나의 모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내가 내 피의 대가로 너를 샀으므로 네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으로 단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즉 너는 내가 내버릴 수 있는 하찮은 물건이 아니고, 오히려 내게 아주 비싸게 치인 귀한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가라앉혀라. 내가 너를 내버릴 위험은 조금도 없으니까 -
9권-14, 영혼 안의 모든 것을 헤아리고 저울에 달며 치수를 재시는 예수님. 이는 영혼이 아무것도 잃지 않고 그 모든 것에 대하여 보상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909년 10월 1일
1. 스스로의 가련한 상태 때문에 무척 괴로워하다 보니 그런 나 자신이 싫을 뿐더러 하느님께도 밉살스럽게 보일 것 같았다. 뭐랄까, 주님께서 중도에서 나를 버리고 떠나셨는데, 그분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느낌이랄까. 내 생각에 그분께서는 세상이 징벌을 면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더 이상 나를 쓰지 않으시려고 내게서 십자가며 가시관 고통을 거두셨고, 내가 그분의 수난과 내적 소통에 동참하는 행위를 전적으로 정지시키신 듯 하다. 나는 오직 한 가지만 알고 있는데 그것은 그분께서 내가 평화 속에 있도록 빈틈없이 경계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2. 맙소사. 얼마나 극심한 고통인지! “만일 당신께서 이 모든 상실 - 십자가 고통과 당신과 또 모든 것의 상실에서 제 주의를 딴 데로 돌리지 않으신다면, 저는 너무 슬퍼서 죽을 것입니다. 아아 정말이지 당신의 거룩하신 뜻이 없었다면, 저는 그 크나큰 고뇌의 바다 속에 풍덩 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 언제나 저를 당신의 거룩하신 뜻 안에 보존해 주십시오. 제게는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3. 그러니 여느 때와 같은 상태로 있으면서도 나는 소리내어 울면서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선하신 예수님께서는 나를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으신다. 내가 침상에서만 지낸 햇수도 그 희생도..... 그 아무것도..... 나를 생각해 주셨다면 떠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울고 또 울었다.
4. 그때 나는 그분께서 내 안에서 나오시는 것을 느끼면서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으면서도 계속 울어댔다. 그러자 마치 내 내면의 문이 열리는 듯 하더니 예수님이 보였다. 그래도 나는 골이 나서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고 그저 계속 울기만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가라앉혀라. 가라앉히고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내 마음도 슬퍼진다. 너에 대한 사랑으로 실신할 지경이 된다. 내가 너에 대한 사랑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겪기를 원하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5. 그런 다음 그분은 마치 내 마음 안에 있는 어좌에 앉으신 듯 위험 있는 자세로 손에 펜을 드시고 글을 쓰시는 자세를 취하셨다. 그리고 내게로 고개를 돌리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6. “내가 너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지 보아라. 침상에서만 지낸 햇수와 그 희생뿐만이 아니라 나에 대한 생각들까지도 헤아리고 있다. 나는 네가 애정을 느끼는 것들과 갈망하는 것들 및 모든 것을... 모든 것을 기록한다. 심지어 네가 행하거나 겪고자 해도 내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적어 둔다. 네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모든 것에 대하여 보상을 받게 하려고 나는 그 모든 것을 헤아리며 저울에 달고 치수를 재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록하면서 나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해 두기도 한다.”
7. 그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방금 전에 내 안에 있었던 나 자신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보였다. 내 머리가 있는 자리에 예수님의 머리가 있고, 나의 팔다리와 손발이 전부 그분의 몸으로 쓰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 “내가 너를 어떻게 간직하고 있는지 보아라. 바로 내 몸의 지체들처럼 (간직하고 있지 않는냐?)”하신 뒤 모습을 감추셨다.
8. 조금 뒤, 내가 때로는 울음을 터뜨리며 계속 괴로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9. “딸아, 용기를 내어라.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다. 떠났다기보다는 오히려 숨어 있다. 내가 전과 같이 모습을 드러내면 너는 어디서든지 나를 속박하려고 들 것이고, 그러면 내가 세상에 아무런 징벌도 내릴 수 없는 까닭이다. 또한 나는 중도에서 너를 버리지도 않았다. 네 삶의 이 최근 여러 해가 어떻게 연장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느냐? 이는 네 고해사제의 간원으로 주어진 시간들이다. 기억나지 않느냐? 한 번도 아니고 네다섯 번이나 네가 나와 싸우던 일이? 그때 나는 너를 (천국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너는 순명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버티곤 했다. 내가 너를 데려가기 위해서 그렇게 준비를 시키면서 한편으로는 다시 너를 떠나야 했겠느냐? 이제 네가 영글게한 결과들을 보아라. 이는 지난 몇 해 동안의 정지 상태와 인내의 결실들이다.
10. 사랑과 순명은 그 나름의 가시들을 가지고 있다. 이 가시들은 상처를 넓히고 심장이 피를 흘리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홍옥 빛깔의 극히 아름답고 향기로운 장미꽃이 피어나게 한다.
11. 나는 네 고해사제에게서 선의의 열매와 사랑과 두려움을 보았고, 그 두려움은 세상에 징벌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내가 어떻게든 해서 그의 원의를 들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게 기도하며 중재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너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 용기를 내어라. 이 세상 귀양살이는 결국 그다지 오래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 약속하거니와, 그날이 오면 내가 그 누구의 중재에도 넘어가지 않겠다."
12. 그러니 내가 얼마나 쓰라린 괴로움에 잠겼는지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위안을 받았지만, 그렇다, 뼛속까지 쓰라린 것이다. 이것이 기억날 때마다 어김없이 울음이 터질 지경이어서 고해사제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쏟았는지 마치 신부님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격이었고, 실제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던 것이다. “신부님이 바로 제 고통의 원인이 되셨어요.”
9권-15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따라 하려면 자기에 대한 생각은 그만두어야 한다
1909년 10월 4일
1. 복되신 예수님을 잃은 괴로움 속에 계속 머물러 있는 상태이지만 늘 하던 방식으로 <수난의 시간들>을 가지고 묵상하는 내적 일에 열중해 있었다.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시간’은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대목인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온 세상이 내 앞에 있었다. 나의 상상력이 총가동되어 모든 세대의 모든 죄가 다 보였고, 이 죄들이 인자하신 예수님을 짓눌러 거의 으스러뜨릴 지경이었으니, 그 모든 죄의 무게에 비하면 십자가는 그저 밀짚 한 오라기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2. 나는 예수님께 다가가려고 애쓰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보십시오. 저의 생명, 저의 선이시여,
제가 그들 모두를 대신하여 여기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물결이 얼마나 세차게 끓어대고 있습니까!
제가 여기 있으면서 모든 이를 대신하여 거듭 당신을 찬미하겠습니다.
사랑의 물결은 얼마 되지 않건만
쓰디쓴 고통과 증오와 조롱과 망은(忘恩)의 물결은 너무나도 많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이를 대신하여 당신께 위로와 사랑을 드리고,
모든 이를 대신하여 감사와 흠숭과 경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저의 보속은 냉랭하고 메마르고 한정된 것입니다.
모욕을 받고 계신 당신은 무한한 분이시기에 저는 저의 보속과 사랑도 무한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한정 없이 무한하고 끝없는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저는 당신과 - 당신의 신성과 일치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성령과도 일치하여,
성삼위께서 서로 하시듯이 당신들 자신의 축복으로 당신들을 축복하고,
당신들의 사랑으로 당신들을 사랑하고, 당신들의 부드러움으로 당신들을 위로하고,
당신들 상호간의 흠숭과 경배를 드리옵니다."
3. 하지만 그 당찮은 말을 다 적을 수 있는 이는 없으리라. 다 적으려고 들었다가는 결코 끝내지 못할 터이다. (아무튼)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노라면 예수님과 함께 나 역시 그분 업적의 무한성을 아우르는 느낌이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대신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보속하며, 그 모두를 위하여 간청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언급하는 것이 어려운 일로 여겨지는 것이다.
4.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남들의 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만 너 자신은 어떠냐? 너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너를 위한 보속을 바쳐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나의 나쁜 점들, 매우 비참한 점들, 나의 죄로 인한 예수님의 부재 따위를 애써 생각하였고, 그러는 바람에 이 일상적인 내적 일에서 마음이 흩어지는 상태로 나의 심한 불행을 한탄하고 있었다.
5. 이때 언제나 사랑하올 내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움직이시면서 내가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너 자신을 조정하고 싶다는 거냐? 너의 내적인 일은 너의 일이 아니고 나의 일이다. 너는 나를 따라서 할 뿐이다. 내가 몸소 여타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 자신에 대한 생각은 그만두어야 한다. 오직 내가 원하는 바를 하면 너의 나쁜 점들과 좋은 점들은 내가 다 보살피겠다. 너와 나 둘 중 누가 너에게 더 유익하게 해 주겠느냐?” 그러면서 그분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셨다.
6. 그러므로 나는 그분을 따라 묵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 뒤 해골산으로 오르는 또 다른 지점에 이르자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더 예수님의 여러 지향들을 꿰뚫어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너 자신의 성화에 대한 생각을 그쳐야 할뿐더러 구원되리라는 생각도 접어야 한다. 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남들을 위하여 이를 행하는 것이 너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7.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 “저의 예수님, 당신의 피와 고통과 십자가는 저를 위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러나 너무나 못된 인간인지라 저의 죄로 그 모든 것을 짓밟아 뭉개버렸기 때문에 어쩌면 저를 위해 쓸 것 이 이제는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쪼록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시지 않으시려면 당신의 ‘뜻’을 제게 남겨 주십시오. 그러면 만족하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제게는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 없이 홀로 남아 있었으니, 오로지 당신만이 당신을 잃은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제게는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 없이는 사람들을 봐도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의 육신이라는 감옥 속에 쇠사슬에 묶인 노예처럼 갇혀 있음을 느낄 따름입니다. 그러니 제발 당신의 ‘거룩하신 뜻’만은 저에게서 앗아가지 마십시오!” 하고 주절거렸다.
8. 그런 생각을 하느라고 나의 내적인 일에서 또 정신이 흩어지고 말았고,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음성을 들려주셨는데, 아까보다 더 크고 엄위 넘치는 음성이었다.
“그만두지 못할까! 네 안에서 하고 있는 나의 일을 망칠 작정이냐!”
9. 어찌 된 건지 모르겠지만 - 아마도 그분께서 내 생각을 침묵시키셨나 보다 - (이후부터는) 그분을 따라 하려고 애쓰면서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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