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울 물이야기

하느님 뜻의 끝없는 바다에 녹아든 한 방울의 물 이야기Ⅱ-(3)

Skyblue fiat 2017. 2. 10. 18:03

루이사 피카레타의 저술에 의거하여

그림과 함께 알기 쉽게 풀어 쓴

하느님의 뜻 영성 입문서

(청소년용 후편)

 

 

하느님 뜻의 끝없는 바다에 녹아든

한 방울의 물 이야기Ⅱ-(3)

 

지은이 : 세븐드롭스

옮긴이 : 박 요한 실비아

 

 

예수님께서 그대의 숨 안에서 숨 쉬실 때에 그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거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함께 그 행위를 합니다. 앞에서 주신 예수님의 조언으로 돌아가 봅시다.

 

(모든 활동에 앞서) 이렇게 말하며 그대의 하루를 보내라고 하셨지요? “예수님께서 (     )에 가시고자 하신다. 나는 그분과 함께 있다…….” 등등. 이를 계속하는 것이 그대의 이해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대는 예수님 안에 사라지는 한편, 예수님은 하루 종일 그대의 손을 써서 활동하시고 그대의 걸음 안에서 걸으시고 그대의 숨 안에서 숨 쉬시리니, 그대는 그것을 느끼고 지켜보며 인식하는 일에 진보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의 행위’를 하라고 할 때의 그 행위는 정녕 이 인식을 온종일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이는 그대가 다시 그대의 뜻 속으로 들어가 떠다니면서, 예수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잊고, 그대 자신의 활동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대의 행위를 하는 것’은 그대 안에서 그대와 함께 활동하시는 예수님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그러나 “내 눈 안에, 내 귀 안에, 내 입 안에, 내 모든 것 안에 예수님께서 흘러드시는 것을 느꼈다.”고 한 루이사처럼 예수님을 느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대가 무슨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어떤 초자연적 체험이라는 위로를 받지 못한 채 하느님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면, (그런 위로를 받으면서 할 때보다) 공로가 더 크기 마련입니다. ―그대가 (보지 않고도 다만) 믿음으로 ‘그대의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너울 뒤 천상 영역에서 그대의 행위들로 무엇을 하실지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분께서는 루이사에게 그녀의 행위들로 무엇을 할 것인지 알려고 하지 말고  ‘그 모든 행위들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당신에게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대는 성인들이 천국에서 누리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창조 사업의 열매를 누리신다는 점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그대 안에서 낙원의 한 동산을 즐기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비록 이 동산이 그대의 인간적인 뜻에 의한 행위들로 말미암아 수시로 폐쇄되긴 하지만, 그대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대가 창조된 목적과 그 질서와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신비로운 경계선이 그대 안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순례는 예수님의 기도의 연속입니다. .

 

아담의 죄로부터 시작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수행되지 않은 행위들과 죄가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심장 박동과 같이 그 자체로는 무죄한 것도 더 이상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으니, 그것이 인간의 뜻으로 고동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연쇄 반응이 수없이 많은 영혼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지 못하게 하였고, 더욱 나쁘게도 그들의 죄로 하느님을 모욕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 것입니다.

 

사람 외에 다른 무죄한 피조물도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제가 없이는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을 드릴 수 없었기에, 사람이 사제로 활동하면서 그 모든 피조물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보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하게 그 사랑을 그분께 다시 바쳐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아버지께서 모든 피조물에게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받으시고, 정의에 어긋나는 죄에 대한 보속도 받으시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애는 그 정의를 완성하기 위하여 새로이 연결되기 시작한 사슬이었고, 이 안에 계신 그분의 생명은 바로 이 사슬의 연속입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보속과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다 받으실 때, 그때에는 구원 사업과 성화 사업도 완성될 것입니다. 즉, 아담의 죄에서 비롯된 연쇄 반응이 역전될 것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순례해야 할 것이 정말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이지요? 하느님께서 새들 안에 넣어 두신 사랑을 인정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아버지께 다시 봉헌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 선물의 능력으로 그대의 기도 안에서 기도하시기에, 그러한 봉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의 수만큼 불어나서 그들 모두가 새들 안의 사랑을 아버지께 돌려 드리며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대의 집 뒤뜰에 있는 것들에 대한 순례 이야기로도 책 한 권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무죄한 창조물을 순례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여기에 그보다 더 하기 어려운 순례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그대 집 뒤뜰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느님의 잠재적인 낙원들을 ― 복원될 필요성이 있는 낙원들을 상징합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아직 하느님의 뜻 안에 완전히 들어가 있지는 않아서 아버지께 마땅히 바쳐야 했으나 바치지 못한 보속과 영광이 있다는 것, 그러니 정의의 요구에 따라 그것을 그분께 바칠 필요가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어디에서 시작하느냐에 있습니다. 아마도 각 사람은 인간적인 뜻의 수십 억 가지 행위와 수천 가지 죄를 상징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루이사 안에서 하신 모든 일과 그대를 정화시키려고 하시는 중인 모든 활동을 이 두 사람 안에서도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후라야 그들 영혼의 낙원 안에서 ― 그들의 걸음 안에서 걷기를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현재 각 사람 안의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뇌에 잠겨 계십니다.

여기에 아주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 선물로 말미암아 그대의 순례들이 예수님의 순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 그대의 목소리 안에서 말씀하시기에 그 말씀에는 창조력이 있습니다. 그분은 저 두 영혼 안에서도 죄로 황폐한 땅을 뒤엎고 낙원을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시니, 험담이나 교만이나 어둠은 거기에서 가져가시고 사랑과 겸손과 빛 따위 하느님의 다른 모든 속성들은 그 안에 집어넣어 주실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그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그대는 그분께서 기도하실 때에 그분과 하나가 됩니다.

 

게다가 이 기도는 하느님의 기도이기에, 저 두 영혼을 위한 기도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에게 미칠 만큼 그 수가 불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각 영혼은 자유 의지가 있어서 천사들이 가져오는 은총이나 빛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또는 남을 헐뜯으며 교만한 태도로 사랑과 겸손의 은총을 배척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충실한 응답으로 한층 더 깊이 하느님의 낙원으로 변모되어 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대 안에 하느님의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할 필요가 있는 일을 하나하나 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모든 영혼들 안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알게 될 것입니다. 각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분쇄기를 통과하며 잘게 으깨지는 것입니다. 모든 영혼에게서 세속적인 것과 마귀와 육적인 것을 몰아내기 위하여 순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히 사소한 죄도 용납해선 안 됩니다. 덕행들마저 그것이 사람의 뜻으로 닦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충분히 합당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한 속성들과 거룩한 생명을, 바로 당신의 신성을 나누어 가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아버지의 요구는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각 영혼 안에서 당신 나라의 (좋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기를 원하십니다. 순례는 하느님의 권능을 입고 있기 때문에 각 영혼에게 빛을 가져옵니다. 하느님의 어좌를, 그분 천사들의 합창대를, 천국의 모든 것을, 예수님의 생명과 수난의 행위들을, 복되신 어머니의 신적인 행위들을, 성인들의 업적들을, 동물들의 사랑을,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온 모든 영혼의 행위들을, 그리고 그분의 모든 피조물을 각 영혼에게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이들의 순례(기도)에 응하는 착한 영혼들 안에 여기 지상에서 시작된 일은 연옥의 세 단계 속에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 안에서 당신 창조 사업의 보람을, 즉, 당신의 성인들 안에서 느끼시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성인들이 지상에 있을 때에는 그들의 영혼 안에서, 마침내 그 영혼들이 천국에 있을 때에는 그들 안에서 느끼시는 것을.

 

은총에 응답하는 영혼들 가운데에는 지상에 있는 동안에도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루이사는 일찍이 그날 태어난 모든 영혼들이 하느님의 뜻 선물을 받게 되기를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순례기도 덕분에 그날 태어난 모든 아기들에게 ― 지역에 따라 시차가 있겠지만 그들의 생애 동안 ―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주어진 것입니다. 아주 확실한 것은, 그들 중 상당수가 그 기도에 응하여 숨은 군대의 일부가 되었으며, 하느님의 계획 완수를 위하여 조용하게 (하느님 뜻의) 행위와 순례를 해 왔다는 점입니다. 은총에 응하지 않고 지옥을 택한 까닭에 멸망한 영혼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하느님은 그들에게서 받아 마땅한 영광을 (그러나 받지 못하신 영광을) 신비로운 방식으로 받으십니다. 모든 행위는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것인즉, 멸망한 영혼들도 그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실행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룬 것입니다. 그렇게 보류되어 있었던 행위들을 예수님과 복되신 어머니와 루이사가 순례를 통하여 소유하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아버지께 바치신 것입니다. 그러한 순례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이들이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 사업과 (예수님의) 수난과 기타 등등에 대한 순례를 계속 반복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모든 시대 모든 영혼들의 수만큼 불어난다면 단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부모님에게 딱 한 번 “사랑합니다.” 하고 말씀드린 후 다시는 그 말을 되풀이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부모님과 같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순례는 창조된 세계를 넘어 창조되지 않은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아십니까? 사람이 만약 죄 속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천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행성들을 지탱하는 일을 돕고,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등과 같은 여러 일을 하면서 모두가 하느님 자신의 신적인 활동에 참여해 왔으리라는 것을? 그것은 하느님께서 도움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당신과 함께하면서 당신 신성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영혼은 하느님의 활동에도 참여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영원히 성자를 낳으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느님의 계획 한복판에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와 성자 사이의 사랑의 분출에도 참여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성령께서 발하셨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루이사에게 하느님 뜻의 나라의 자녀들도 위계(位階)가 서로 다른 구단(九段)의 천사 합창단과 같은 합창단을 이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뜻 안의 천상 영혼들 중 천사들의 최고 계급인 치품천사(Seraphim)처럼 가장 높은 계급을 이루는 영혼들은 지상에서도 하느님의 활동 안을 순례했던 이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과 함께 태양이 빛나게 했고, 천사들에게 은총을 나누어 주도록 지시했으며, 성령과 함께 치유 봉사를 하러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병을 낫게 하고, 성령 안에서 그들을 쳐서 예언을 하게 했습니다. 또 하느님의 마음을 비통하게 하는 일들에도, 그러니까 징벌을 내리거나 선택적으로 지옥에 가는 영혼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늘 하느님을 동반한 이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어려운 일들 속에서 당신을 동반한 이들에게 특별히 고마워하십니다. 그 어려움은 그분께서 영혼들 하나하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어려움이니까요

 

루이사의 『천상의 책』 속의 여러 권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과 『하느님 뜻의 나라의 동정 마리아』및 그녀의 편지들 속에는 예수님의 숨은 생활을 상세히 설명하는 구절들이 있거니와, 그분께서는 숨을 쉬실 때마다 그 하나하나가 다 ‘나라’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완전한 영광을 받으시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우리의 삶으로 계속하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그 숨은 생활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성체가 될 수 있고, 이 성체 안에서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승리의 행위’는 복되신 어머니도 더 이상 하실 수 없습니다. 자유 의지를 써서 사람의 행위와 하느님의 행위 중 하나를 택하는 이 행위는,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이들에게만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목숨을 던져, 여기 이 지상에서도 또 다른 예수님으로 변화되게 하는 것 ― 이보다 더 큰 사랑을 그대가 예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하느님 뜻의 자녀들 개개의 영혼 안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심에 따라, ‘나라’가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 위에 쏟아져 내릴 것입니다.

 

루이사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한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두 개의 높은 층계를 내게 보여 주셨다. 한쪽 층계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견고한 황금으로 되어 있는 다른 쪽 층계에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그 층계를 올라가고 있었는데, 또 다른 예수님들처럼 보였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예수님인 것이었다. 사람들이 더 많은 쪽 층계는 나무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을 식별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미천하고 별로 진보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황금 층계에는 나의 생명을 자기네 생명으로 삼은 이들이 올라가고 있다. 그러니 그들은 내 발이요 손이며 심장이고 내 모든 것이다. 네가 본 대로 그들은 또 다른 나인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나를 위해 있고, 나는 그들의 생명이다. 그들의 활동은 신적인 활동이므로 모두 황금이며 헤아릴 수 없도록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그들이 도달한 높이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달리 없다. 그들은 내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오직 천국에서만 그들에 대하여 완전히 알게 될 것이다. 나무 층계를 오르는 더 많은 사람들은 덕행의 길을 걷고 있으나 나의 생명과 일치하지 않고 내 뜻과의 지속적인 연결도 없이 걷는 이들이다

 

그들의 활동은 고작 나무일 따름이다. 나와의 일치만이 황금과도 같은 활동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활동은 극히 작은 가치밖에 없다. 그들은 키가 모자라고 거의가 다 허약하다. 선행을 할 때에도 여러 가지 인간적인 목적을 섞어서들 하는데, 그런 목적들은 성장을 가로막는다. 게다가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내 안에 숨어 있지 않고 그들 안에 숨어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덮어 가릴 수 없다. 그들은 그러므로 하늘의 놀라움이 될 수도 없다. 이미 땅에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즉 딸아, 나는 네가 네 생명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생명 안에 있기를 바란다. 네가 알고 만나는 이들에게 내 생명의 층계에 굳건하고 항구하게 머물러 있으라고 하여라.’”

 

하느님의 뜻에 마음이 끌리면서도 멀리 떨어져 표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진해서 하느님 뜻의 활동을 할 생각이 없고, 어떤 이들은 그들 나름의 종교 활동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후자는 바리사이와 아주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새로운 계약에 대해 가르치실 때에 율법으로 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새로운 계약은 곧 율법의 완성이었는데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 선물은 새로운 계약의 완성입니다. 그것은 성사들과 여러 신심들, 그리고 지난 2천 년 동안의 교회 모든 활동의 완성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미사에 참례할 필요도, 묵주기도를 바칠 필요도 없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미사 참례든 묵주기도든 하느님의 뜻 선물 안에서 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각 영혼이 저마다 그렇게 한 것처럼 그 수가 불어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따라서 남에게 받기보다 주기를 한층 더 원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황금 층계를 올라가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뜻 선물을 신뢰합시다. 이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신심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숨어서 사는 것보다 더 중차대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루이사에게 “그런 영혼들 안에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선교사의 발이 되고, 전도자의 혀가 되고, 약한 자의 힘이 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삶이라는 선물은 전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흡사 공을 던짐과 동시에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삶의 절정에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징벌을 내리시는 일을 ‘도우면서’ 동시에 하늘과 땅사이에 서서 징벌의 완화를 위해 기도하며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지상의 모든 영혼 안에서 그들 죄의 얼룩을 빼기 위해 기도하는가 하면, 하느님의 지상 옥좌로서 영혼들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는 샘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 예수님과 함께 서서 아버지께서 피조물이 끼치는 모욕을 우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받으시게 함으로써 인류를 덜 엄하게 대하시게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에 있으면서 수난 중이신 예수님께 위로를 드릴 것입니다. 비록 그 사건은 2천 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예수님은 지금도 ‘수난 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또 다른 그리스도로서 새로이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그분의 인성으로 고난을 받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무죄한 모든 조물의 사제로서 활동을 계속하고, 모든 세기의 모든 사람의 행위들을 신성하게 하는 활동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우리는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는 아버지를 ‘도우면서’ 창조된 만물을 유지하시고 늘 새롭게 하시게 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끊임없이 삼위일체(의 신비)에 점점 더 깊이 끌리면서 바로 하느님 역사(役事)의 전 과정 한복판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본질인 하느님의 뜻 안으로 사라짐에 따라 모든 것을 얻어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랑과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어디든지 있을 수 있고, 모든 시대에 걸쳐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는 그대 주위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지상 천국’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스러워할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대는 큰 평화를 느끼고 있지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천국은 평화 이상의 것입니다. 적어도 천국에는 더 이상 눈물이나 고통이 없습니다……. 세상도 이따금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지상 천국’으로 간주하기에는 틀림없이 너무 부족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지나간다고 해서, 겨울에도 꽃봉오리들이 그 사람 주변에서 갑자기 툭툭 터지듯 피어나겠습니까? 아닙니다. 천국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장소라기보다, 하느님을 직접 뵙는 지극히 복된 직관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대의 손을 보십시오. 이것이 세상의 무질서 한복판에서 하느님을 직관하는 한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지막한 소리로 그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손을 움직일 때에 나를 지켜보아라. 세상의 창조자인 내가 여기에 있으면서 너의 손을 움직이고 있다. 네가 내 거룩한 뜻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주시하여라. 네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 악행, 혼란, 슬픔 등에는 눈길을 주지 마라. 네가 땅 쪽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 때마다 네 손을 보고, 네 창조주에 대한 그 지극히 복된 직관에 집중하여라. 내가 여기에 있다. 다시 지상에서, 네 발걸음 안에서 걷고 있다. 나와 함께 이 천상에 머물러 있어라. 그러면 우리는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 우리 함께 ‘나라’가 오게 하자. 성인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네가 네 손을 볼 수 없는 캄캄한 한밤에도, 세상이 너에게 닫혀 있을 때에도, 네 숨 안에서 숨 쉬는 나의 부드러운 숨결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약속한다. 세상과 세상의 문제들이 너와 나의 일치의 빛 안에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하느님을 보든지 세상을 보든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

만약 하느님을 보기로 선택한다면, 천국보다 못한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느냐?

이것이 너의 지복 직관이고, 이 직관이 바로 너의 ‘지상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