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 성녀/성녀 글라라 st.Clara

피해야 할 죄, 질투에 대하여. - 성 프란치스코 영적권고 8

Skyblue fiat 2014. 1. 26. 21:00

 

피해야 할 죄, 질투에 대하여.

 

 

 

사도 바오로가 말합니다.

 성령에 힘입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1고린12.3).

좋은 일을 하는 자 없도다. 하나도 없도다.(로마3.21)

 

누구든지 주님이 형제 안에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보고

형제를 질투하면 모든 선을 말씀해 주시고 이루어 주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을 질투하는 것이기에(참조 : 마테20.15)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원죄와 여기서 비롯된 개개인의 죄로 인해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친교가 깨어지고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내맡겨져 파멸의 구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은총을 입기 전에 사람은 주님 마음에 드시는 것을 바칠 수 없습니다.

스스로는 무엇 하나 올바르고 가치 있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구원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하느님 면전에

가치로울 수 있는 것과 올바르고 타당한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심 깊은 고백도 구원을 바라는 인간 스스로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모든 진리 안에 인도(요한16.13)하시는 성령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강조했습니다. 성령에 힘입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제 1 권고에서 하느님은 가까이 갈 수 없고, 도달 할 수 없는 분임을 상기시켰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이 진리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난한지를 알려 줍니다.

동시에 우리 구원의 온갖 위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가난과 비참함을

당신의 은총으로 올려 주시고 우리가 선하고 의롭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개인이나 이웃의 온갖 선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모든 선은 하느님의 소유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 진리가 우리 삶에 뿌리내리려면 보다 깊은 믿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인의 유언에서 살펴보면 “내가 했고, 내가 깨달았고, 내가 썼다”라는 표현이 아니라

“주님께서 해 주셨고, 주께서 친히~~ ”라고 모든 선을 이루시는 주님께서

자신의 삶 가운데서 좋은 일을 하시고, 주님이 자신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이루셨음을 증언하였습니다.

 

성인은 착한 언행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유임을 확신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웃의 훌륭한 말이나 착한 일 역시 주님이 하셨음을 잘 알았습니다.

성인은 자기 안에서 말씀하시고 이루신 좋은 일들을 자기 것으로 고집하지 않고

주님의 소유이므로 주님께 되돌려 드렸습니다.

 

주님은 선한 일을 이루시고 말씀하시기 위해 인간을 도구로 쓰시며,

선한 일이 이루어지는 그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질투심을 위장하여 나타냅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때 남이 칭찬받으면 내 기분은 어떤지,

이에 동의하는지 혹은 트집을 잡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옥의 티”를 왜 그렇게도 잘 꼬집어 내는지요?

우리는 왜 어떤 사람을 칭찬 할 때 '그 사람에게 이 결점만 없다면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인데(성 안토니오 강론집 198)'라는 주석을 붙입니까?

 

왜 우리는 좋은 일에서 좋은 것은 뒤로 제치고 좋지 못한 일을 끄집어냅니까?

이런 처신은 선한 일에 주님께서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형제 안에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에 대해서 진심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에서 하느님을 뵙도록 언제나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를 선물로 주신 하느님과 그들 안에서 그 분이 이루시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은 각각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는 하느님께 제 나름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대로 저런 사람은 저런 대로 말입니다.(1고린7.7)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뜻하신 대로 몸에다가 그 지체들을 하나하나 따로 두신 것입니다.(1고린12.18)

 

교회의 몸에 딸린 각 지체는 각각 맡은 분량대로 활동합니다.

그리하여 몸은 성장을 거듭하여 사랑으로 자체를 건설하게 됩니다.(에페4.16)

 

성인은 하느님만이 자선을 베푸시는 큰 독지가라고 즐겨 말했습니다.(참조 2첼라노77)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직분과 능력과 힘을 당신 은총에 따라 나누어 주십니다.

하느님은 만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뜻에 따라 당신이 이루실 일의 도구들을 골라잡으십니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남이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이가 가지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불평하고 서로 비교한다면 저속한 인간이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찾아 내지 못하면

숙될 수 없습니다.

 

진실로 가난한 이는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영적으로 건강하며, 자기 자신에게 “예”라고 대답 할 수 있으며,

하느님께서 만드신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의 존재는 하느님 손에 즐겨 내맡겨진 도구입니다.

도구인 그는 일을 시키는 손에 반항하지 않습니다.

그는 겸손되이 하느님의 계획과 의향을 따릅니다.

 

 

그림으로 보는 프란치스코 성인 일대기

http://ww2.sjkoreancatholic.org/book/export/html/413  (재속 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