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9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19 월 (녹)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또는 (홍) 성 야누아리오 주교 순교자
입당송 시편 96(95),1.6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고, 권능과 영화가 그분 성소에 있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자애로이 이끄시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저희가 옳은 일에 힘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잠언의 저자는, 선행을 거절하지 말고 악을 지어내지 말라며, 주님께서는 의인에게 복을 내리신다고 가르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며,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가르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신다.>
▥ 잠언의 말씀입니다. 3,27-34
내 아들아, 27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28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게, 내일 줄 테니.” 하지 마라.
29 이웃이 네 곁에서 안심하고 사는데, 그에게 해가 되는 악을 지어내지 마라.
30 너에게 악을 끼치지 않았으면, 어떤 사람하고도 공연히 다투지 마라.
31 포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길은 어떤 것이든 선택하지 마라.
32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시고, 올곧은 이들을 가까이하신다.
33 주님께서는 악인의 집에 저주를 내리시고, 의인이 사는 곳에는 복을 내리신다.
34 그분께서는 빈정대는 자들에게 빈정대시지만, 가련한 이들에게는 호의를 베푸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5(14),2-3ㄱ.3ㄴㄷ-4ㄱㄴ.5(◎ 1ㄴ 참조)
◎ 주님, 의로운 이는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지내리이다.
○ 흠 없이 걸어가고, 의로운 일을 하며, 마음속 진실을 말하는 이, 함부로 혀를 놀리지 않는 이라네. ◎
○ 친구를 해치지 않으며,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이라네.
그는 악인을 업신여기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존중한다네. ◎
○ 이자를 받으려 돈놀이 않으며, 죄 없는 이를 해치는 뇌물 받지 않는다네.
이 모든 것 행하는 그 사람, 영원토록 흔들림 없으리라. ◎
복음 환호송 마태 5,16 참조
◎ 알렐루야.
○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이 제물이 저희를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6 참조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의 살과 피로 저희를 기르시니,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으로 저희가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등불을 켜는 이유는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그릇으로 덮어 두지 않고 등경 위에 얹어 둡니다. 될 수 있는 한 빛이 더 멀리 비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등불과 같습니다. 우리가 선행을 실천하면 빛이 사람들을 비추게 되고,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십니다(요한 1,9 참조). 예수님을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등불을 자신과 이웃에게 비추게 됩니다(요한 8,12 참조).
어부는 먼 바다에서 그물질을 끝내고 항구로 돌아오다가 등대의 빛을 보면 평화로워진다고 합니다. 어부에게 빛은 편안한 안식입니다.
우리에게도 빛은 희망의 상징입니다. 새해에 많은 사람들은 해맞이를 하러 갑니다. 순례자들은 시나이 산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을 보고 모세 성인이 보았던 하느님의 빛을 연상합니다.
신앙의 빛은 우리의 영혼을 따뜻하게 비추고 기쁨을 발산시킵니다. 그 빛은 은총을 몰고 오고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 그 빛은 사라지고 불안과 괴로움이 따릅니다. 우리는 어두움이 신앙의 빛을 끄지 않도록, 그 빛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은 우리 신앙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보호해 줍니다. 이 세상의 풍파와 고뇌 가운데에서도 은총의 빛을 계속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 빛을 따라가고 어두움을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2016년 9월 19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8,16-18) -임언기 안드레아 신부님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8)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루카8,4~15)와 등불의 비유의 결론으로서
예수님께서는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원리를 빗대어 말씀하시며,
복음을 듣고 실천하는 믿음의 자세를 촉구하신다.
또한 이 말씀은 탈란트의 비유의 결론 부분에도(마태25,29),
미나의 비유의 결론에도(루카19,26), 그리고 본절과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의 등불의 비유에도 등장한다(마르4,25).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가진 자'와 '가진 것이 없는 자'를 비교하신다.
여기서 반복하여 나오는 '호스 안'(hos an)은 '~하는 자는 누구든지'
(whosoever)라는 의미로서 '가진 자'와 '가진 것이 없는 자'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진 자'란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것을 환영하고 잘 활용하여 실천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마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루카8,15)
계속적으로 삶의 더 많은 기쁨과 은총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에 '가진 것이 없는 자'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리고 그 말씀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경시하고
하찮게 여기며 실천하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가진 것이 없는 자'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함정은
자신들에게 분명히 없는데, '가진 줄'로 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마태오 복음 25장 29절과 마르코 복음 4장 25절, 그리고 루카 복음 19장 26절에는
빼앗기게 되는 대상이 모두 '가진 것', 즉 '호 에케이'(ho echei)로 되어 있다.
즉 루카 복음 8장 18절의 '~줄로 여기는'에 해당하는 '도케이'(dokei)가 없다.
'도케이'(dokei)는 '사실은 그렇지 않는데 그러하다고 독단적으로
생각하거나 잘못 믿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루카 복음 8장 18절의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사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없으므로 빼앗길 것도 없다.
그런데 루카 복음사가는 8장 18절에서 그것조차도 빼앗길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사실은 없는데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결국 그 마음이
완고해지고 사악해져서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 길에서
더 멀어질 것이라는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는 전에 이미 하느님께로부터 은총과 말씀을 깨닫는 통찰력,
그리고 풍성한 은사들을 받았지만, 그후 말씀에 부주의하고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사는 중에
그러한 것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자신 안에 그러한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줄 알고, 계속해서 하느님께서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
결국에는 하느님의 구원의 은혜에서조차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본주의의 부조리요 모순인 경제적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지고서, 복음에 대한 자세가 결국 내적(內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원인이 될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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