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草綠, Viriditas) - 푸르름을 만드는 힘(Greening Power)/ 비전 3
힐데가르트가 우리에게 선사한 아름다운 개념 중의 하나는 그 어떤 신학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용어이다. 그녀는 초록(草綠, Viriditas) 즉 푸르름을 만드는 힘(Greening Power)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다음은 힐데가르트가 푸르름을 만드는 힘에 대해 찬양한 몇 개의 글이다.
그녀는 나무와 풀의 절묘한 푸르름과 땅의 풍요로운 푸르름에 대해 말한다.
모든 창조물과 인류는 결실을 맺는 생명력과 푸르름을 자아내는 상큼함으로 뒤덮여 있다고 한다.
분명히 창조력과 푸르름을 만드는 힘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힐데가르트는 “푸르름을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것에 도움을 베풀기를 원한다. 천상의 것을 열망하는 이들은 이슬을 머금고 풍요로운 결실을 거둘 것이다.”라고 한다. 에크하르트처럼 힐데가르트도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남아 있도록”(요한 15,16) 해야 한다는 요한 복음의 약속으로 기쁨에 젖어 있다. 그녀는 그리스도가 시들고 메마른 이들과 제도에 풍요로운 푸르름을 가져다주리라고 믿고 있다. 그녀는 신의 말씀(Dabhar)은 푸른 잎이 무성한 푸르름이며 모든 창조력이라고 한다. 후에 에크하르트가 하느님의 이미지를 ‘땅 속을 흐르는 거대한 강’이라 표현한 것처럼 힐데가르트는 하느님을 가장 ‘깨끗한 샘물’1이라 부른다. 그녀에게 있어 성령은 푸르름을 자아내는 힘이며 모든 것을 자라게 하고 널리 퍼뜨리며 찬미의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분이다. 실제로 그녀에게 구원과 치유는 물기어림과 푸르름을 자아내는 힘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녀는 오페라 「덕을 찬미하는 노래(Ordo Virtutum)」에서 “한 처음에 모든 창조물은 녹색의 생명력이 넘쳐 나와 꽃 속에서 번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녹색은 사그러 들었다.”라고 한다. 그러기에 예수는 푸르름의 육화라 불리우는 것이다. “이제 마음에 새겨라, 하느님이 처음에 지어내신 온전함은 시들도록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2라고 그녀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러면 초록(草綠, Viriditas)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류의 영혼과 육체의 생명력은 하느님의 신선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모든 창조물에 스며드는 것은 봄의 기운이며 생명을 싹틔우는 힘이고 풍성한 결실이다. 이처럼 왕성한 생명력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내재하고 있다. 지구는 땀구멍을 통해 생명의 싹을 틔우는 힘을 발산한다고 한다. 아오스딩 성인의 말처럼 영혼과 육체는 치열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다. 힐데가르트는 오히려 “영혼은 육체가 지닌 신선함이다. 육체는 이 신선함을 통해 성장하고 번성한다. 이는 마치 지구가 물기어림을 통해 풍성해지는 것과 같다.”3고 생각한다.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영원히 푸르른 동정녀이며 모든 가지 중에 가장 푸르르고 (viridissima virga)그 누구보다도 풍성한 결실을 맺었기에 우리는 마리아를 찬미한다. 마리아는 봄날의 푸르름을 만드는 기운으로 가득 찬 가지이다. 그러기에 여신(女神)의 전통이 종교 안에 깊이 스며있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바치는 노래에서 힐데가르트는 “빛을 발하는 한없이 푸르고 푸른 새싹이여... 다시 한번 세상의 시듦과 메마름에 그대의 풍성한 푸르름을 내리소서.”라고 노래한다.4
힐데가르트는 어디에서 이 놀라운 이미지에 대한 영감을 얻었을까? 이 이미지의 출처는 세 곳으로 그 하나는 성서이다. 예언자 호세아(Hosea)는 “나 야훼는 영원히 푸르른 사이프러스와 같아 너희의 모든 풍성한 결실은 나에게서 나온다.”(호세아 14,9)고 말했다. 힐데가르트는 푸르름을 히브리인들이 풍성한 결실 또는 창조력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축복과 연관짓는다. 에크하르트는 “이 생명의 탄생으로 축복이 여러분에게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탄생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위해 예정되었던 모든 축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라고 말한다. 힐데가르트의 푸르름을 만드는 힘의 대부분은 우리를 포도나무 가지와 살아있는 가지로 상상한 그녀의 명상에서 나온다.( 요한 15장 참고)
푸르름을 만드는 힘의 두 번째 출처는 그녀가 살았던 지방이다. 라인 지방의 계곡은 초목의 푸르름으로 가득하며 비옥한 토양과 풍성한 과일과 포도원이 즐비한 축복받은 땅이다. 힐데가르트는 모젤강 부근에서 많은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녀가 살았던 빙엔 지방의 길게 뻗은 언덕에는 오늘날까지 포도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베네딕도회 동료 수녀들은 강 비탈에서 지금도 포도주용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에서 라인 지방 계곡의 특색을 이루는 푸르름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사진 A는 힐데가르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지방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나헤 계곡이다. 푸르름으로 둘러싸인 이 강은 빙엔을 지나는 라인강으로 흘러든다. 라인강변의 맞은 편에는 풍성한 포도밭이 빙엔 지방의 푸르름을 자아내는 힘을 과시한다. 사진 B는 성 디시보드 산의 오솔길을 찍은 것이다. 이 산에 최초로 지어진 수도원에 힐데가르트는 8살이 되던 때부터 52살까지 머물렀다. 그녀가 「Scivias」를 저술한 곳이 바로 이 수도원이다. 이 책에는 35개의 비전이 담겨 있다. 힐데가르트가 시집 「성 디시보드를 기리며」에서 어찌 푸르름을 만드는 힘을 찬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오, 하느님의 손에 담긴 생명을 선사하는 푸르름이여,
그분은 이 푸르름으로 과수원을 꾸몄다오.
하늘로 치솟는 기둥처럼,
그대 높고 높은 창공을 향해 눈부시게 일어날지니.
그대는 하느님의 영광스런 작품이라.
그리고 그대, 오 드높은 산이여,
하느님이 그대를 시험할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니.
유배를 떠난 것처럼 머나먼 곳에 우뚝 솟아있을지라도
그대는 그 어떤 무기에도 쓰러지지 않으리라.
그대는 하느님의 영광스런 작품이라.
최근에 뮨헨 대학의 과학자들이 힐데가르트가 머물던 독방을 조사하던 중 그 지역에서 전 유럽의 모든 전자기력을 합친 것만큼이나 높은 수치의 전자기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틀림없이 힐데가르트는 이 조그만 방에서 수많은 밤을 지새워야 했을 것이다.
사진 C에는 빙엔 지방에서 바라볼 때 라인강 맞은 편의 아이빙엔 지방에 위치한 현재의 베네딕도수도원이 나타나 있다. 힐데가르트는 루페르츠부르크로 수도원을 옮긴 후에 이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힐데가르트가 세운 건물이 17세기에 스웨덴의 침략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에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19세기에 새로 지은 것이다. 언제나 힐데가르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푸르름을 자아내는 힘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이다. 사진 D에는 현재 수도원 건물의 뒷모습이 보이며, 힐데가르트가 풀 한 포기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을 정도로 사랑했던 라인 계곡의 드넓은 전경이 보인다. 힐데가르트가 즐겨 사용했던 “푸르름을 자아내는 힘”을 알지 못한다면 라인 지방의 신비가라는 그녀의 명칭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힐데가르트가 어린 시절 라인 지방에서 겪었던 체험이 그녀의 푸르름을 만드는 힘의 세 번째 근원이 된다. 힐데가르트는 푸르름을 자아내는 힘이나 물기어림을 메마름의 죄와 비교한다(비전 12를 보라). 메마른 사람과 건조한 문화는 창조의 능력을 상실한다. 그러기에 힐데가르트에게 있어 메마름은 중대한 죄가 된다. 이 죄는 창조에 대한 우리의 소명을 거스른다. “인류만이 공동창조자로 불림받았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신성의 깃발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인류를 창조한 후에 인류로 하여금 지상의 것을 경작하고 천상의 것을 창조하게 하였다.”7 메마름으로 인한 비극과 푸르름을 만드는 힘을 외면함에서 비롯되는 비극은 아무 것도 창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창조의 소명을 향한 그녀의 투신은 자신의 메마름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메마름은 자신의 비전을 사람들과 나누고 글로 쓰는 것을 거부함에서 비롯된 영적 육체적 질병이다. 그녀는 부활과 깨달음을 통해 푸르름의 에너지를 발산시킴으로써 42살 되던 해부터 죽는 순간까지 창조 활동을 지속하였다. 음악과 시, 편지와 설교, 치유와 그림, 조직과 창설 등을 통해 그녀의 창조 활동은 83살까지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일해야 하며, 꽃으로 만발한 과수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풍성한 결실을 맺는 과수원이다.”8 우리가 해야할 일은 녹색 혁명이며 푸르름을 만드는 일이며 창조적인 작업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처럼 물기에 젖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받는 세례는 단지 물로 씻는 예식이 아니라 물기에 잠기는 성사(聖事)이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물기어림과 푸르름에 잠기는 것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찾아 오셨던 것처럼 하나의 투신이다.
히브리 성서의 지혜 문학을 회상하면서 힐데가르트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
나는 모든 것에 푸르름을 선사하는 미풍이라,
꽃망울이 틈실한 열매 맺으라 도와준다.
나는 이슬에서 태어난 빗방울이라,
풀들에 푸르른 웃음을 선사하리니
생명의 기쁨으로 가득차리라.9
이에서 보듯이 힐데가르트에 의하면 웃음은 두발 달린 존재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온 우주가 웃음을 터뜨린다. 메마르지 않고 물기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 오 고귀한 녹빛 생명이여 (O NOBILISSIMA VERIDITAS)
O nobilissima viriditas, quae radicas in sole,
et quae in candida serenitate luces
in rota,
quam nulla terrena excellentia
comprehendit,
tu circumdata es
amplexibus divinorum mzsteriorum,
Tu rubes ut aurora
et ardes ut solis flamma.
오 가장 고결한 녹빛 생명. 그대.
태양에 뿌리를 두었지.
그 후광 속에서,
신의 은밀한 포옹 속에서,
세상의 어느 것도 감히 가 닿을 수 없어
고요한 아침처럼 환하게 밝아오다
태양의 불꽃처럼 타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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