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복음 준비
27. 요셉에게 엘리사벳의 임신을 알림
내 앞에는 마리아가 있는 나자렛의 작은 집이 나타난다. 하느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났을 때와 같이 아주 어린 마리아이다. 마리아를 보기만 해도 이 집의 동정녀의 향기로 내 마음은 가득 찬다. 천사가 그의 금빛 날개를 물결모양으로 흔들었던 방에 아직 남아 있는 천사의 향기, 마리아를 어머니가 되게 하려고 그의 위에 모아졌었고, 지금은 그에게서 발산하는 숭고한 향기이다.
전에 하늘에서 그렇게도 환한 빛이 내려왔던 방이 그늘이 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저녁 때이다.
마리아는 그의 작은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팔을 십자로 가슴에 포개어 얹고, 얼굴을 아래로 많이 숙인 채 기도를 드리고 있다. 마리아는 지금도 천사가 알리러 왔을 때에 입었던 것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꽃병에 꽃핀 나뭇가지도 그렇고, 가구들도 같은 순서로 놓여 있다. 다만 토리대와 가락이 한 구석에 놓여 있는데, 토리대에는 삼실 뭉치가 감겨 있고, 가락에는 반짝거리는 실이 감겨 있다.
마리아는 기도하기를 멈추고 새빨갛게 된 얼굴로 일어난다. 입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으나 그의 파란 눈에는 눈물이 반짝인다. 그는 기름 등잔을 가져다가 부싯돌로 불을 켠다. 마리아는 작은 방 안에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도록 주의한다. 옮겨졌던 침대의 담요를 제 자리에 다시 정돈해 놓는다. 꽃핀 나뭇가지가 담긴 꽃병에 물을 더 넣고 밤의 찬 공기를 쐬라고 꽃병을 밖으로 가져간다. 그리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온다. 마리아는 선반 달린 가구에서 수놓던 것을 집어 들고 불이 켜진 등잔도 든다. 그리고 문을 닫고 나간다. 집을 끼고 있는 작은 정원에서 몇 걸음을 걷고 나서, 예수님과 마리아가 작별하시는 것을 내가 본 일이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그때 있던 어떤 물건이 없기는 하지만 그 방을 나는 알아본다.
마리아는 등잔을 가지고 또 다른 작은 옆방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탁자 귀퉁이에 놓여 있는 그의 일거리와 더불어 홀로 거기 남아 있다. 왔다갔다 하는 마리아의 가벼운 발소리가 들리고, 무슨 물건을 씻는 것처럼 물을 휘젓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 다음 땔나무를 때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소리를 듣고서 그것이 나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마리아가 불을 피운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다음 마리아가 돌아온다. 정원으로 나갔다가 사과 몇 개와 야채를 가지고 돌아온다. 사과는 탁자 위에 있는 끌로 쪼아서 금속 쟁반에 놓는데, 그 쟁반은 끌로 조각한 구리로 된 것 같다. 마리아는 부엌으로 다시 간다 (그 방은 역시 부엌이었다). 이제는 아궁이의 불이 열린 문으로 밝게 투사되고 그림자들을 벽 위에서 춤추게 한다.
얼마 지난 후에 마리아는 작은 갈색 빵 한 개와 뜨거운 우유 한 잔을 가지고 돌아온다. 마리아는 앉아서 빵 조각들을 우유에 담근다. 그것들을 천천히 먹는다. 그런 다음 우유잔을 반쯤 남기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야채를 가지고 돌아와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빵과 같이 먹는다. 마리아는 우유로 목을 축이고 나서 사과를 집어 먹는다. 어린 여자아이와 같은 식사이다. 마리아는 먹으면서 마음 속 생각에 깊이 잠기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눈을 벽 쪽으로 돌려 거기에다 어떤 비밀을 전해 주는 것 같다. 가끔 심각한 얼굴이 되고 거의 침울하게 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미소가 다시 온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리아는 일어나서 문을 연다. 요셉이 들어온다. 두 사람은 인사를 한다. 그런 다음 요셉은 탁자 저쪽에 마리아를 향하여 등없는 걸상에 앉는다.
요셉은 한창 나이의 미남자이다. 기껏해야 서른 다섯쯤 되었을 것이다. 짙은 밤색 머리와 같은 빛깔의 수염이 검정에 가까운 밤색의 부드러운 두 눈을 가진 균형잡힌 얼굴을 둘러싸고 있다. 이마는 넓고 반들반들 하고 코는 약간 매부리코인데 작으며, 올리브빛이 아닌 갈색인 뺨은 포동포동하고 광대뼈는 볼그레하다. 키는 대단히 크지 않지만, 튼튼하고 체격이 좋다.
요셉은 앉기 전에 겉옷을 벗었는데 (나는 그런 겉옷을 보기는 처음이다), 둥근 모양이고 목은 갈고리나 또는 그런 종류의 물건으로 잠그게 되어 있고, 두건이 달렸다. 겉옷은 엷은 밤색이고 바래지 않은 양털로 짠 물이 스미지 않는 옷감으로 지은 것이다. 그 겉옷은 비바람을 막아주기에 적합한 산골사람들의 겉옷과 비슷하다. 앉기 전에 요셉은 달걀 두 알과 포도 한 송이를 마리아에게 준다. 포도는 너무 익기는 했지만 잘 보존된 것이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한다.
“포도는 누가 가나에서 가져온 것이오. 달걀은 내가 마차를 고쳐 주었다고 백부장이 준 것이오. 바퀴가 하나 망가졌었는데, 일꾼이 앓고 있거든요. 달걀이 아주 싱싱하오. 백부장이 닭장에서 꺼내 온 것이오, 마셔요. 몸에 좋을거요.”
“요셉, 내일에요. 이제 막 식사를 한걸요.”
“그러면 포도는 먹을 수 있지요. 맛있소, 꿀처럼 달아요,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해서 가져왔소. 내일 것은 바구니로 하나 가져오겠소. 오늘 저녁은 백부장의 집에서 곧장 왔기 때문에 그걸 가져올 수가 없었소.”
마리아는 곧 일어나서 부엌으로 간다. 마리아는 또 우유와 올리브와 치즈를 가지고 돌아온다.
“다른 것은 없어요 달걀을 한 개 드세요.”하고 말한다.
요셉은 안먹겠다고 한다. 달걀은 마리아의 것이다. 요셉은 빵과 치즈를 맛있게 먹고 아직 미지근한 우유를 마신다. 그런 다음 사과 한 개를 받아 먹는다. 이것으로 식사가 끝났다.
마리아는 식탁에 식기를 치운 다음 수놓던 것을 집어든다.
요셉은 마리아를 도와주고 마리아가 부엌에서 방으로 돌아온 다음에 부엌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가 모든 것을 다시 정돈하고 저녁이 쌀쌀하기 때문에 불을 쑤셔 일으키는 동안 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요셉이 돌아오자 마리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요셉은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한다. 그는 그의 조카 이야기를 한다. 마리아의 일과 꽃에 대하여 관심을 보인다. 백부장이 그에게 약속한 매우 아름다운 꽃들을 가져오겠다고 약속한다.
“그것은 우리네에게는 없는 꽃들이오. 백부장이 로마에서 가져온 것이오. 그 꽃 모종을 주겠다고 약속했소. 지금은 계절이 알맞으니 그것을 당신에게 심어 주겠소. 그 꽃들은 빛깔이 아름답고 냄새가 대단히 기분좋아요. 지난 여름에 그 꽃들을 보았소. 여름에 피는 꽃이거든요. 그 꽃들이 당신 집에 온통 향기를 가득 채워놓을거요. 나는 그 꽃나무들을 심고 접붙일 수 있을거요. 계절이 알맞아요. 지금이 좋은 시기요.”
마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침묵이 흐른다.
요셉은 수놓는 헝겊 위로 숙인 마리아의 금발을 바라본다. 천사와 같은 사랑이 깃든 눈길이다. 분명히, 어떤 천사가 남편의 사랑으로 아내를 바라본다면, 이렇게 바라볼 것이다.
마리아는 어떤 결정을 취하는 것처럼 수놓던 것을 가슴에 얹고 말한다.
“요셉, 저요 당신께 말할게 있어요. 저는 평소에 별달리 할 말이 없어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은둔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오늘은 소식이 한 가지 있어요. 즈가리야의 아내인 우리 친척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요셉은 눈을 크게 뜨고 말한다. “그 나이에?”
“그 나이에요.” 하고 마리아는 미소지으면서 대답한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친척에게 이 기쁨을 주고자 하셨어요.”
“그걸 어떻게 아오? 그 소식이 확실하오?”
“심부름꾼이 왔어요. 속일 줄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엘리사벳의 집에 가서 도와주고, 또 내가 엘리사벳과 같이 기뻐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이 허락하시면....”
“마리아, 당신은 내 아내이고 나는 당신의 종이오. 당신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 하는 것이오. 언제 떠나고 싶소?”
“할 수 있는 대로 일찍이요. 그렇지만 저는 거기서 여러 달을 머무르겠어요.”
“그러면 나는 당신 돌아오기를 손꼽아가며 기다릴거요. 안심하고 떠나요. 내가 당신 집과 정원을 방치해두지 않겠소. 당신의 꽃들을 당신이 돌본 것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될거요. 다만...좀 기다려요. 나는 과월절 전에 내 일에 필요한 몇 가지 물건을 사러 예루살렘에 가야 하오. 당신이 며칠 기다리면 거기까지 당신과 같이 가겠소. 빨리 돌아와야 하니까 더 멀리는 못가오. 하지만 거기까지는 우리가 같이 갈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이 혼자서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더 안심이 되오. 돌아올 때에 당신이 통지를 해주면 마중을 나가겠소.”
“요셉, 당신은 정말 착하셔요. 주님께서 그 갚음으로 당신께 축복해 주시고 당신에게서 고통을 멀리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순결한 두 부부는 서로 천사들처럼 미소를 보낸다. 얼마 동안 침묵이 흐른다. 그런 다음 요셉이 일어나서 겉옷을 다시 입고 두건을 머리 위로 올린다. 요셉은 같이 일어난 마리아에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마리아는 그가 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이 아픈 듯이 한숨을 쉰다. 그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분명히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마리아는 문을 닫고 일거리를 접고 부엌으로 간다. 불을 끈다. 혹은 덮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한지 살펴본다. 등잔을 들고 나오면서 문을 닫는다.
마리아는 밤의 찬 바람에 펄럭이는 불꽃을 손으로 보호한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 또 기도를 드린다.
– 환상은 이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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