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주해/교부들의 가르침

교부들의 가르침 (15) 철학자며 순교자 유스티누스 / 이연학 신부

Skyblue fiat 2024. 1. 13. 02:48

교부들의 가르침 (15) 철학자며 순교자 유스티누스 / 이연학 신부

‘그리스도교야 말로 참된 철학’드러내
유스티누스는 다작의 저술가였지만 우리에게 전해오는 작품은

「트리폰과의 대화」와 두 권의 「호교론」뿐이다

 

 

고대 교부들 중에는 드라마틱한 생애와 오늘의 현실에도 여전히 쩌렁쩌렁한 울림을 주는 사상으로 말미암아 유난히 시선을 끄는 분들이 있다. 유스티누스는 그 대표적인 한 분이다. 100~110년경 팔레스타인의 사마리아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seeker)으로 살았다. 참된 구도자들의 여정이 거개 그러하듯, 그의 「진리 찾기」 여정도 참으로 눈물겨웠다. 후에 테르툴리아누스(155~212)가 그에게 붙여준 「철학자요 순교자」란 호칭이 그의 생애의 굵은 선을 가장 잘 요약해 주는 것 같다. 그는 무엇보다도 가장 참된 의미에서 「철학자」였다. 다시 말해 유스티누스야말로 「지혜를 사랑하는」(philo-sophia)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도 철학자였지만,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철학자였다. 아니, 그에게는 그리스도교야말로 「참된 철학」(vera philosophia)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철학한다는 것과 신앙한다는 것은 조금도 다른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의 한 몸 안에서 「철학자」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증언하는 「순교자」의 삶이 동시에 꽃피어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트리폰과의 대화」는 그가 그리스도교 안에서 충만한 진리를 만나게 되기까지 걸었던 여정을 엿보게 해 준다. 그는 추구하는 사람의 여정이 흔히 그러하듯 당대의 여러 학파를 기웃거렸다. 스토아 학파와 소요(逍遙) 학파, 피타고라스 학파와 플라톤 학파를 두루 거치며 배우던 유스티누스는 어느날 해변을 걷다가 도인풍(道人風)의 신비로운 노인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충만하고 참된 지혜이신 그리스도와 상봉하게 된다. 노인은 유스티누스가 마지막으로 심취해 있던 플라톤 철학이 결코 자기 마음의 갈망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면서 성서의 예언자들을 길잡이로 삼으라고 권고한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누구를 높이 보거나 두려워함도 없이, 그리고 영광을 얻으려는 욕구에서도 자유로이, 진리를 보고 선포할 수 있는」인물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노인과의 만남에 대하여 후에 유스티누스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 후 나는 그 노인장을 다시 뵙지 못했지만, 내 영혼 안에 어느듯 불꽃이 이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언자들과 그리스도의 친구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그 어른의 말씀을 속으로 곰곰히 되씹으면서, 이 철학이야말로 참되고 유익하며 유일한 철학이라고 깨달았다. 이리하여 (비로소) 나는 철학자가 되었고, 또 이런 이유로 (비로소) 나는 철학자가 된 것이다. 모든 이가 나 비슷한 체험을 해서, 구세주의 말씀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트리폰과의 대화」 8). 이처럼, 진리를 향한 눈물겨운 사랑과 추구가 그를 그리스도교로 인도해 주었던 것이다. 원리나 이치로서의 진리를 넘어서, 드디어 「어떤 분(위격)」이신 살아있는 진리, 즉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하신 분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대략 이런 경위로 그는 130년 경 에페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전한다.

이후 그리스도교를 열렬히 전파하고 옹호하는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스스로를 「참된 철학」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철학자」로 생각한 나머지 당대의 철학자들이나 순회 교사들이 착용하던 망토(pallium)를 걸치고 다녔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교사요 집필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유스티누스는 165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치하의 로마 집정관 유니우스 루스티쿠스에게 고발되어 6명의 동료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로써 그는, 한참 후배뻘 되는 또 다른 그리스도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1813~55)가 진리를 두고 갈파한 바 있는 무시무시한 깊이의 경구(警句)를 몸으로 실천한 셈이다. 「진리란, 진리를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되는 데 있다」


 ▲ 진리를 향한 눈물겨운 사랑과 추구가 유스티누스를 그리스도교로 인도해 주었다.

사진은 유스티누스의 저서 「트리폰과의 대화」필사본(1336년).

 


그는 다작(多作)의 저술가였지만 우리에게 전해오는 작품은 「트리폰과의 대화」와 두 권의 「호교론」 뿐이다. 방대한 규모의 이 저술들에서 수많은 주제를 다루었지만, 여기서는 우리 시대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그의 신학 사상, 이른바 「로고스 그리스도론」에 대해 지극히 짧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흔히 「구원 경륜」(oekonomia salutis)이라 일컫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고 충만히 실현되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하느님이 주신 이성(logos)을 타고 났다는 점에서 이 영원한 말씀(Logos)에 참여하는 한 「부분」이다. 말씀은 창조 때에도 일하신 분이므로, 사람은 이미 창조로 말미암아 자기 안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semina Verbi)을 지닌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교 철학자들이 가르친 모든 진리도, 비록 아직 어둡고 불완전하긴 하지만, 이미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속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결국에는 영원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제 2 호교론」 10 13,4 및 「제 1 호교론」 23,1). 유스티누스의 이런 확신의 근저에는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는 성서 말씀이 있다. 비 그리스도교 철학에 대한 이런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통찰은 문화 일반, 특히 복음이 뿌리내리고 있는 특정한 토착 문화와 여러 세계 종교의 경전에까지 얼마든지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리하고도 신중한 신학적 분별 아래,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시대와 이 땅에서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성숙해야 할 깊이있는 토착화 작업 및 참신한 「문화의 신학」을 위해 든든한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 시대에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종교간 만남과 대화의 성숙을 위해서도 의미심장한 착안점으로 남을 것이다.

이연학 신부(고성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가톨릭신문 (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