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가르침 (13) 호교 교부 / 최원오 신부
현실의 고유 언어로 신앙을 표현
대부분 호교교부들은 그리스 철학에 정통했으며 그리스도교 진리를 발견하고 늦깎이 신자가 된 사람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리스도교는 사도들의 선교 활동 덕분에 재빨리 퍼져나갔다. 특히 2세기는 그리스도교가 세계 곳곳으로 널리 확장된 시기였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낮은 계층 사람들 뿐 아니라, 당대의 뛰어난 지성인과 철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자신들의 믿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고, 세상 사람들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비웃고 무시하였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 믿는 바를 차근차근 설명해낼 재간이 없었으니 딱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터무니없는 오해를 사서 박해를 받기까지 했다. 예컨대,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른다고 하여 근친상간 하는 자들로 오해받기도 했으며, 모일 때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신다고 하여 식인종으로 몰리기도 했다. 이처럼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이 갖은 비난을 견뎌내야 했으며, 로마제국으로부터 목숨의 위협마저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바로 이 무렵, 그리스도교에 귀의한 지성인들은 그리스도교에 덧씌워진 몹쓸 오해를 벗겨내고 로마제국의 부당한 박해에 맞서기 위해서 그리스도교의 참모습을 소개하는 책들을 저술하게 되는데, 이분들을 가리켜 「호교 교부」라고 부른다.
호교 교부들은 거의 대부분 그리스 철학에 정통했으며, 자신의 철학 노선을 모색하다가 그리스도교 진리를 발견하고서 늦깎이 신자가 된 분들이다. 이분들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고 헐뜯는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였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진리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려고 애썼다.
세상과 대화하는 신앙
호교 교부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분은 165년에 순교한 유스티누스 교부이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평신도 신학자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귀의한 후에도 철학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교 진리는 기존 철학 체계를 통하여 조화롭게 설명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유스티누스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말씀의 씨앗」(semina Verbi)을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손수 뿌려주신 이 말씀의 씨앗은 모든 사람들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그래서 유스티누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철학자)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참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미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 진리의 싹이 자라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그리스도인」을 말한 최초의 교부가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교가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의 철학과 문화를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고 계셨다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야말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참된 철학』이라고 내세웠지만, 세상의 철학을 통해서 오래 전부터 계시되어온 하느님의 진리를 부인한 적이 없었다.
▲ 호교 교부중 가장 존경받는 분인 유시티누스 성인의 순교장면.
세상에 등돌린 신앙
그러나, 모든 호교 교부들이 다 현실의 문화를 존중하고 세상과 정답게 대화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철학과 학문들을 악마적인 것으로 단죄한 호교 교부도 있었으니, 타티아누스가 그 좋은 예이다. 타티아누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 이외의 모든 철학과 사상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어떤 진리도 담아내지 못하는 역겹고 야만적인 것들일 뿐이다. 세상을 더럽고 속되고 타락한 것이라 단죄한 그는 그리스도교만 유일하게 참되고 순결한 가치라고 내세웠다. 게다가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주장했던 그는 결국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서 따로 이단 교회를 세웠고, 나중에 로마에서 파문 당했다.
그는 그리스도교 이외의 세계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 아니라 십자가로 정복해야 할 야만인으로 여겼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실을 외면한 채 「순수」 신앙만을 주장하는 일부 신학자들에게서 타티아누스의 망령이 어른거리는 듯하다.
예수의 복음은 동양(히브리 문화권)에서 선포되었다. 그러나 호교 교부들은 주님의 복음 진리를 서양(그리스 문화권)의 철학과 언어로 대담하게 펼쳐낸 분들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의 생생한 복음이 이때부터 그리스 철학 개념 속에서 화석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신앙은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발을 디디고 있던 문화와 현실 위에서 성립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문화와 현실 안에서 자라나고 꽃피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교 교부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던 현실의 고유 언어로 신앙을 이야기한 토착화 신학의 선구자들이다.
토착화 신학의 선구자
신학은 뜬구름 잡는 옛이야기도 아니며, 하느님을 인간 지성으로 도마질하는 말장난도 아니다. 신학의 참된 과제는 처절한 인간의 현실을 온몸으로 껴안고 몸소 인간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오늘의 언어로 선포하고 증언하는 일이다. 호교 교부들의 관심사는 책상머리에서 어려운 철학 용어를 섞어가며 신학작품을 저술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분들은 어떻게 하면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선포하고 증언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이 「상재상서」를 저술하여, 그리스도교 진리를 조선의 문화와 현실에 맞추어 풀어내신 정하상 성인은 초대 교회 교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한국 교회의 위대한 호교 교부인 셈이다.
최원오 신부(부산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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