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묵주기도의 비밀

Skyblue fiat 2010. 11. 29. 01:35

 

 

루도비코 성인은 생전에 "십자가와 묵주기도의 사도"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십자가와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이 뛰어났으며, 특히 묵주기도는 그 자신의 성화뿐 아니라 선교사로서의 사도직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는 묵주를 일컬어 "생명과 죽음과 영원에 있어서 예수, 마리아의 신비스런 장미나무"라고 했으며 "묵주기도의 장미꽃은 결코 시들거나 죽지 않을 것이며, 수백 년이 지나더라도 지금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했다. 루도비코 성인은 이 작은 책에서 묵주기도에 관한 모든 것을 소박하고 꾸밈없이 펼쳐 보이고 있다.

 


머리말

 

우리는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와 묵주기도에 관해서는 이미 성인전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묵주기도의 비밀"에서는 성인이 친히 이야기하는 바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성인은 타인의 체험을 인용하는 동시에 자신의 체험을 마치 직접 우리에게 이야기하듯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진실한 학교인 묵주기도의 인증된 메시지를 단순하고도 솔직한 태도로써 우리들에게 친밀하게 전해주고 있다.  성인은 묵주기도가 본질적으로 예수님과 마리아의 생애와 죽음과 영광의 신비를 묵상해야 하며, 묵상 뿐 아니라 매 신비마다 우리의 생각을 들어 올려주는 덕행들을 특별히 본받도록 하는 데 관점을 두었다.

 

성인에게 묵주기도는 기도의 단순한 방법인 동시에 자신의 사도직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도구요 무기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인을 "특출한 묵주기도의 사도" 라고 칭송하는 것은 합당하다. 그는 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이를 전파하였고 자신이 파견된 본당마다 묵주기도회를 설립하고 계속적으로 묵주기도를 잘하도록 보살핌으로써 선교의 열매를 거두어들였다. 묵주기도의 힘에는 한계가 없었으며 더욱이 죄인들에 대해서는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인은 "내가 죄인들의 목에 묵주를 걸 수 있도록 해 주시오.  그러면 그 죄인은 내게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오." 라고 곧잘 말하곤 하였다.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은 도미니코회 제3회 회원으로서 도미니코회 묵주기도의 전통을 가장 훌륭히 표현했다. 저술가로서 유명한 도미니코회의 포우폰(R.Poupon)신부는 성인의 묵주기도에 대한 공헌을 이렇게 말하였다.  "루도비코 성인의 천부적 재능은 도미니코 성인과 복자 알라노의 재질과 일직선으로 연장된다. 또 개인적인 은총과 해석을 끌어들임으로써 그분들의 업적을 완성시켰다. " 그리고 월리암(William)신부는 루도비코 성인의 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순수한 관찰을 넘어선 것이다. 우리는 그 책이 묵주기도의 내용과 형태, 진정한 가치, 평가와 사용에 요긴한 교훈등 묵주기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이 묵주기도의 비밀은 거의 250년 전에 쓰여진 것이지만 이 책의 진실성으로 말미암아 새로움과 시대의 적합성 여부에 아무 것도 잃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늘날에 와서는 파티마성모님의 특별한 요청의 빛 속에 성모님의 진정한 옹호자인 신자들에게 이중으로 환영을 받을 것이다. 이 척을 통해 우리는 많은 영혼들이 묵주기도를 기도로서만이 아니라 특별히 영신생활의 방편으로써 더욱 더 잘 이해하게 되리라 확신한다. 

 

 

묵주기도를 드리는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

 

 

세계 평화를 위하여
"매일 묵주기도를 바쳐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매일 묵주기도를 바쳐라"(1917년 파티마의 성모). 교황 바오로 6세에서는[Mense Malo] 라는 회칙을 통해 세계 평화를 위해 모든 평화의 여왕이신 성모님께 기도하도록 모든 신자들에게 촉구하셨고, "묵주기도는 성모님께서 매우 사랑하시는 기도이며 역대 교황님들이 간곡하게 권장한 고귀한 기도"라고 각별한 찬의를 표하셨다.
 

 

가정의 보호를 위하여

"각 가정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매일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다"(교황 비오 12세). "만일 내 말을 듣고 가정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24시간중 10분을 성모님께 드린다면 그 가정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틀림없이 평화롭고 기도에 찬 장소-작은 천국-가 될 것을 확신한다. 이는 가정생활의 창조자이신 하느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계획하셨기 때문이다"(페이톤 신부). 

 

곤경 중에 용기를 얻기 위해

"우리의 용기를 새롭게 하는 가장 힘찬 방법을 이 거룩한 묵주기도에서 발견할 것이다"(교황 레오 13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신앙을 키우고, 진앙에 대한 무지와 과오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한 손쉬운 방법이 우리 손에 놓여진 묵주기도의 장점 가운데 적지 않게 있음을 열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꾸준히 알려 왔다"(교황 레오 13세).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

"교회에서 인정한 모든 신심 가운데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신심만큼 많은 기적을 베푼 것은 없다"(교황 비오 9세). 

 

선종의 은혜를 얻기 위해

"묵주기도를 열심히, 또 자주 바치는 사람은 은총과 상스러움 속에서 성장할 것이며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와 영원하신 하느님과의 우정을 즐기게 될 것이다. 또한 누구든지 죄중에 살지 않으려면
묵주기도를 계속하라. 그러면 죄를 끊어버리게 되든지, 아니면 묵주기도를 포기하게 되든지 할 것이다"(후그보일르 주교).


우리 시대의 악을 퇴치하기 위해

"우리는 현시대의 악을 퇴치하기 위해 묵주기도에 크나큰 신뢰를 두고 있음을 주저 없이 거듭 천명하는 바이다"(교황 비오12세).

 

그리스도인의 완덕의 방법으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극히 거룩한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생활에서 빛나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깊이 묵상함으로써 진실한 완덕을 배우게 되는 학교(묵주기도) 안으로 돌아갈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교황 요한 23세).

 

자신의 사명을 다 하기 위해
"나는 밤낮 쉴틈없이 계속되던 그 지독히 무서웠던 전쟁 때에도 묵주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쳤다. 내가 정확한 작전을 계속하고 결정해야 할 때에도 성모님의 도우심을 얼마나 자주 깨닫게 되었던가! 그러니 체험에서 깨닫게 된 한 노병사의 권고를 받아들여라. 어떤 이유에서든지 묵주기도를 소홀히 하지 말라"(제1차 세계대전의 위대한 군사 지휘자인 마샬 포크).

 


흰 장미꽃


사제들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전파하고 모든 나라에 복음을 가르치는 지극히 존귀한 분의 사랑하올 봉사자들인 나의 동료 사제들인 여러분께 내가 고이 간직하기를 좋아하는 하얀 장미 한송이처럼 이 작은 책을 드립니다. 이 책에 포함된 진실들은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매우 단순하고 솔직한 태도로 대할 것입니다. 이 하얀 장미를 여러분의 마음에 간직하셔서 거룩한 묵주기도를 스스로 실천하여 그 열매를 맛보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기도가 항상 여러분의 입술에 머물게 되어 묵주기도를 전파하고 이 거룩한 신심의 뛰어남을 가르치게 되어 다른 사람들을 회개시키십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무지한 사람들 혹은 몇몇 훌륭하고도 쟁쟁한 학자들에게까지도, 묵주기도의 어떤 조그마한 중요성만이라도 주의 깊게 숙고하기를 간청합니다.

 

아주 미미한 것으로 여기실지 모르지만 묵주기도는 사실 하느님께 영감 받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값진 보물입니다. 하느님에서 감도해주신 대단히 귀중한 보배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마음이 굳어버린 죄인들과 완고한 이단자들의 회개를 위해 이 묵주기도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묵주기도를 통해서 세상에서는 은총을, 그리고 후세에는 영광을 주십니다. 성인들은 이 점을 충실히 이야기하여 왔으며 교황님들은 이를 인정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이 비결을 사제들과 영혼의 지도자들에게 계시해주셨을 때 그들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이 비결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그것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사제들이 이런 비결을 실제로 이해한다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묵주기도를 권장할 것입니다.  복되신 동정마리아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은총을 그의 영혼에 부어주시어 그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의 언변은 단순하지만 1개월 안에 수년간 일해 온 다른 선교사들보다도 더 많은 효과를 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올 동료 사제들이여, 우리는 이 신심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것으로 충분치 못하고 우리 자신부터 스스로 실천해야만 합니다.  우리들이 거룩한 묵주기도의중요성을 확고히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묵주기도를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이 우리의 권고를 실천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갖고 있지 않는 것을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실행하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사도 1, 1참조). 실천하신 바를 전파하신 우리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그대로 해야 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한 바오로 사도를 닮아야 합니다. 기도를 전파한다면 여러분이 하는 일은 바오로 사도가 전파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을 실질적이고도 진실로 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승과 혼합물이 아니라, 예수님과 마리아의 생애, 곧 수난, 죽음, 영광의 신비에 대한 성스러운 신적(神的)종합이며 요약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거룩한 묵주기도를 전파함으로써 얻은 효과를 체험으로 알게 해주시고, 묵주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회개를 가져 왔는지를 내 눈으로 보게 해 주신 하느님의 크신 은총에 대해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날 사제들이 습관적인 행위에 빠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 아름다운 신심을 전파하기 위해 여러분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을 즐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이 모든 것 대신에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 몇 가지 있었던 일들과 입증된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이 내가 쓴 이 작은 요약서보다 더 적합할 것입니다. 이들 인용문이 내가 프랑스어로 충실히 요약한 것들을 실제로 증명해 줄 것입니다.

 


붉은 장미꽃

 

 죄인들에게
죄중에 있는 모든 불쌍한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들보다 더 큰 죄인인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 장미 - 주님께서 당신 고귀한 성혈을 떨어뜨려 진홍빛같이 된 이 장미 한 송이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장미가 여러분들의 생활 속에 진정한 향기를 발산함으로써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여러분들이 처해 있는 위험에서 구해주실 것입니다. 비신자들과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은 부르짖을 것입니다. "장미꽃이 지기 전에 장미 화관을 쓰자"(지혜 2, 8). 그러나 우리는 "지극히 성스러운 묵주로 나를 꾸미자" 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들의 부르짖음과 우리의 외침은 얼마나 다릅니까! 그들의 장미는 육신의 향락이며 세속적 영예와 덧없이 지나가 시들고 썩어 없어질 부귀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장미는 우리가 정성껏 바치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이며 그에 덧붙여 속죄와 보속의 행위를 하는 것이니 결코 시들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지금부터 수천 년간 더 할 나위없이 훌륭하고 싱싱하게 피어날 것입니다. 반대로 죄인들의 장미들은 실제로 장미나무와 같이 보일 것이나 일생 동안 양심의 고통으로 자신들을 찌르는 잔혹한 가시들로써 죽을 때는 지독한 쓰라림과 더욱 거칠어진 몹쓸 괴로움으로 그들을 찢을 것이며, 영원한 세계에서는 분노와 실망의 불타는 창대에 꽃혀 던져버려 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장미들이 가시를 가졌다면 그것은 정말 장미꽃으로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들입니다. 우리의 죄로 병든 것을 치유시켜 주기 위한 것이며 우리 영혼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수단을 다해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이 장미로 우리 자신을 열심히 꾸미고 싶어하며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다섯 단씩 세 번 바치는 것은 세 개의 화환이나 화관을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바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과 마리아의 세 개의 '관을 공경하기 위함입니다. 즉 예수님 탄생 때 은총의 관, 예수님 수난 때 쓰신 가시관, 천상의 지극히 복되신 삼위일체께서 쓰신 삼중관을 공경하기 위함도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예수님과 마리아에게서 이 세 개의 관을 받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일생 동안 공로의 관을, 두 번째는 우리가 죽을 때 평화의 관을, 세 번째는 천상 영광의 관을 받기 위함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죽을 때까지 충실히 묵주기도를 바친다면 당신들의 죄가 아무리 중하다 할지라도 결코 변치 않을 영광의 관을 받게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영원한 파문의 위기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지옥에 한쪽 발을 들여놓았다 할지라도, 악마의 힘을 빌린 마술사들처럼 악령에게 자기 영혼을 팔았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악령처럼 완고한 이단자라 할지라도, 좀 일찍, 혹은 늦게라도 여러분들은 회개하게 되어 여러분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영혼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이 말을 주의 깊게 잘 생각하여 여러분들의 죄에 대한 통회와 용서를 얻고 진리를 깨우치기 위한 목적으로 죽을 때까지 매일 정성껏 성스러운 묵주기도를 바친다면 말입니다. 이 책에는 성스러운 묵주기도의 힘을 통해 회개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으므로 이를 잘 읽고 묵상하기바랍니다.

 


신비스런 장미 (열심한 영혼들에게)

 

성령의 빛 속에 거니는 양순하고 신심 깊은 영혼들이여, 천상에서 곧바로 내려와 당신 영혼의 정원에 심어진 이 신비로운 장미나무를 내가 당신들에게 드린 다해서 마음을 꺼려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당신의 깊은 묵상의 아름다운 향기의 꽃을 해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주의 깊게 계획한 꽃밭을 적어도 방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가 모두 순수하고 잘 정돈되었기 때문이며 질서와 순수성으로 온전히 기울기 때문입니다.

만일 주의깊게 매일 물을 주고 정성껏 돌본다면 그 나무는 놀랄만큼 높이 자라나 잠깐 사이에 그 가지는 넓게 퍼질 것이며 당신의 모든 신심을 막아버린다기보다 오히려 그 신심을 유지시키고 더욱 완전하게 할 것입니다. 물론 당신은 영신적으로 결심한 바가 있으므로 내가 의미하는 바를 압니다만 이 신비스런 장미나무는 삶과 죽음의 영원에 계신 예수님과 마리아이십니다. 푸른 잎들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환희의 신비이며, 그 가시들은 예수님과 마리아의고통의 신비를 말해줍니다. 꽃봉오리들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유년 시기를 보여주고, 갓 피어난 꽃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수난에 처한 모습을 보여주고, 활짝 피어난 장미꽃들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개선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장미꽃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누구든지 좋아하므로 환희의 신비에 있어서 예수님과 마리아를 생각하게 하며, 장미 가시는 날카롭게 찌르기 때문에 고통의 신비에 있어서 예수님과 마리아를 생각하게 하고, 그 향기는 누구나 즐기므로 이 향기로움은 영광의 신비에 있어서 예수 마리아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천상나무를 경멸하지 말고 오히려 영혼의 정원 안에 이 나무를 정성스럽게 가꾸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결심을 하십시오.  묵주기도와 선행으로 나무에 주의를 기울여 물을 주고 그 나무 둘레의 흙을 파서 덮어주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내가 준 이 작은 나무의 씨가 지금은 매우 작게 보이지만 장차 하늘의 새들이, 즉 구원된 그리고 관상 생활을 하는 영혼들이 거기서 살며 보금자리를 지을 만큼 크게 자라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태양의 뜨거운 열기로터 안전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좋은 것은 그들이 그 나무의 영양 많은 열매로 배부를 것입니다. 이 열매는 바로 영원히 존경과 영광을 받으실 공경하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 홀로 높으시니 영광 받으소서. 아멘. 

 

 

장미 꽃봉오리 (어린이들에게)

 

사랑스런 어린 친구들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 꽃봉오리들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묵주알들 중의 하나입니다. 모든 이가 묵주알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러분이 성모송을 잘 바친다면 이 놀라운 꽃봉오리는 찬란한 장미꽃으로 활짝 피어날 것입니다. 물론 어린 친구들에게 매일 15단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하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이겠지만 적어도 5단은 사랑과 정성을 다해 온전히 바치도록 해야 합니다. 이 묵주기도는 여러분이 예수님과 마리아께 드리는 작은 장미 꽃다발이며 왕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파라과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겠습니다.

 

어떤 두 어린 소녀가 자기 집 문 앞에서 아주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아름다운 귀부인이 나타나서 6,7세쯤 되었을 어린 동생 앞으로 걸어와서는 그 어린 동생을 안고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언니는 매우 놀라서 여기저기 그 어린 동생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동생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모님께 동생이 유괴 당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불쌍한 아빠와 엄마는 그 소녀를 3일 동안 꼬박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일이 지나서 부모님들은 문 앞에서 그 어린 딸이 말할 수 없이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부모님들은 그 어린 딸에게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린 딸은 자기가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귀부인이 자기를 데리고 아주 즐거운 곳으로 가서 맛있는 음식도 해주어 먹고 또 갓난아이와 재미있게 놀게 해주었으며 그 아이가 너무 아름다워서 자꾸만 뽀뽀를 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에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톨릭으로 회두하고 예수회 신부님을 찾아가 참된 신앙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으며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 신심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그들은 신부님에게 자신들의 어린 딸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이야기하였고 그 신부님은 직접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도 이 어린 소녀를 본받아 매일 묵주기도를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도 예수님과 마리아를 뵈올 수 있는 천국에 갈 권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마리아께서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마리아를 뵙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해도 죽은 후에라도 영원히 예수님과 마리아를 뵙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식한 사람이든지, 무식한 사람이든지, 의인이든지, 죄인이든지, 위대한 사람이든지, 미소한 사람이든지 모든 신앙인들은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를 매일 바침으로써 예수님과 마리아께 찬미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를 많이 한 마리아에게 문안해 주십시오."(로마서 16,6). 

 

 

첫 번째 장미꽃 (묵주기도의 기도문)

 

묵주기도는 묵상기도와 염경기도로 이루어졌습니다. 거룩한 묵주기도에서의 묵상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의 생애와 죽으심과 영광의 주요한 신비에 대한 묵상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묵주기도에서의 염경기도는 주님의 기도 한 번으로 시작하여 성모송 열 번씩 열다섯 번을 외우면서 그와 동시에 거룩한 묵주기도의 열다섯 가지 신비 중에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실천하신 열다섯 가지 주요한 덕행들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묵주기도 다섯 단에서는 다섯 가지 환희의 신비를 공경하고 묵상하며, 두 번째 묵주기도에서는 고통의 신비 다섯 가지를, 세 번째 다섯 단은 다섯 가지 영광의 신비를 공경하고 묵상합니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의 생애와 수난과 죽음, 영광의 신비와 덕행들을 공경하며 그 신비를 본받고 배우게 되는 묵상기로와 염경기도로 어우러진 거룩한 찬미의 기도입니다.

 


두 번째 장미꽃(그 기원) 

 

거룩한 묵주기도는 원칙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와 천사의 인사로, 즉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그리고 예수님과 마리아의 신비들에 대한 묵상으로 구성되었는데 이것은 신앙인의 첫 기도요, 첫 신심임을 의심할 수 없으며 사도들과 교부들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기를 통하여 전해져 내려 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1214년에 이르러서야 자모이신 성교회가 현재 형태의 묵주기도 방법을 받아들였고 오늘날 우리는 그 방법을사용하고 있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에 의해 교회에 전파된 이 방법은 성모님께서 도미니코 성인에게 알비파의 이단과 다른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나는 이제 복자 알라노(Bt. Alan do la Roche)께서 쓰신「묵주의 존엄성에 대하여(De dignitate Psalterii)」라는 매우 잘 알려진 책에서 발견된, 즉 복자 알라노께서 이 묵주기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사람들의 무거운 죄악이 알비파 이단들의 회개를 방해하고 있음을 보시고 툴루스 가까이에 있는 숲속으로 들어가 전능하신 하느님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열절히 통회를 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몸이 몹시 상하게될만큼 고행(편태)을 한 후 끝내는 혼수상태에 들고 말았습니다. 

 

이때 성모님께서 세 천사를 대동하시고 성인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도미니코, 너는 성삼위께서 이 세상을 다시 새롭게 하시고자 사용하시려는 무기가 어떤 것인지 아느냐?" 도미니코 성인은 "오! 나의 성모님, 어머니께서는 우리 구원의 중요한 도구로 항상 모시고 있는 당신의 아드님 예수그리스도 다음으로 우리 구원의 중요한 도구이시니 저보다도 더욱 잘 알고 계십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성모님은 이렇게 응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네가 영신적 전쟁에서 성을 무너뜨린 도구와 무기는 언제나 신약의 기초가 되는 '천사의 찬미가'였음을 알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네가 저 완고한 영혼들에게까지 도달하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들여 승리하고 싶다면 나의 찬미가(묵주)를 전파하여라." 

 

성인은 이 말씀으로 위안을 받고 일어나 그 지역 사람들의 회개를 위하는 열정에 불타 곧바로 대 성전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즉시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종을 쳐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였고 도미니코 성인은 그들에게 강론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강론을 막 시작하자 무서운 강풍이 불고 땅이 흔들리며 태양이 가리워져 어두워지고 천둥과 번개가 치므로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 떨었습니다.  그때 아직 회개하지 않고 자기 생활을 고치지 않고 천주 성모의 보호를 찾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모님의 팔이 하느님의 분노의 징벌을 불러 내리는 모습이 세 번이나 완연히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거룩한 묵주기도의 새로운 신심이 퍼지고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결국은 도미니코 성인의 기도로 폭풍을 잠재울 수 있었으며 성인도 강론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강요당하듯이 열정적으로 거룩한 묵주기도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설명하게 되었던 것이며, 툴루스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묵주를 붙들고 지금까지 자기들의 잘못된 생활방식을 끊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매우 짧은'시간 안에 커다란 진보가 이 마을에서 이뤄졌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생활을 따라가기 시작하였고 과거의 나쁜 생활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장미꽃(성 도미니코)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이 일어나게 된 이 기적적인 방법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당신 계명을 온 세상에 내려 주시고 그 계명의 가치와 중요성을 명백히 증명해주신 방법과 같은 평행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미니코 성인은 자신이 경험한 바와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감도되고 복되신 동정녀로부터 교화되어 남은 일생동안 묵주기도를 전파하였습니다.  성인은 도시나 시골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나 낮은 사람에게나, 학자들 앞에서나 무식한 사람들 앞에서나, 가톨릭 신자에게나 이단자들에게나 당신의 강론과 더불어 자신의 표양으로 묵주기도를 전파하였습니다. 성인이 매일 바친 거룩한 묵주기도는 바로 자기가 하는 모든 강론을 위한 준비였으며 전교활동 후에 성모님과 직접 만나는 약속이었습니다.  어느 날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강론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언제나 하던 것처럼 중앙의 높은 제대 뒤 작은 경당 안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열심히 기도로 강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모님께서 성인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도미니코, 네가 무엇을 말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도 매우 좋겠지만, 내가 더 훌륭한 강론을 하게 해주겠다. "

 

도미니코 성인은 성모님이 제공해주신 책을 손에 들고 주의 깊게 그 말씀을 읽고 그것을 깨우치고 묵상하게 되었으며 그때 성인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 한없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강론 시간이 되어 성인은 그날이 성 요한 축일임에도 불구하고 요한 성인에 관한 말씀보다 천상 여왕의 인도로 고귀하게 알게 된 바를 강론하였습니다. 그 모임에는 신학자들의 특출하고 연마된 논술을 들어왔던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도, 도미니코 성인은 박식한 논술이나 세속의 눈에 지혜롭다는 것을 들려주려 하지 않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순직성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은 거룩한 묵주기도를 전파하기 시작하였고 성모송을 마치 어린이들이 모임에서 말하듯 한 마디 한 마디 설명하였으며 성모님이 주신 책에서 본 바와 같이 매우 단순한 비유를 들면서 말했습니다. 

 

위대한 학자인 카르타제나는 "묵주의 존엄성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복자 알라노에 관한 내용을 인용하면서 어떻게 이 책이 엮어졌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자 알라노는 서술하기를 어느 날 사부이신 도미니코 성인이 환시 중에 자기에게 말씀하셨는데 "나의 아들아, 이 신심을 전파하는 것이 좋으나 영혼을 구하려고 하는 것보다 칭찬받기 위해서 하는 듯 한 인상을 받을 염려가 항상 있다. 그러니 네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파리에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주의 깊게 들어 보아라.  나는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 봉헌된 대 성전에서 이 신심을 전파하게 되었는데 나는 교만에서가 아니라 그 모임의 높은 지적 수준 때문에 아주 훌륭한 설교를 하려고 각별히 걱정하였었다. 내가 늘 하던 대로 이 신심에 대해 강론하기 전한 시간가량 정신을 가다듬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무아지경의 탈혼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나의 사랑하올 친구인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손에 책을 들고 내 앞으로 오시는 것을 보았다.

성모님은 말씀하시기를 '도미니코, 네가 오늘 강론할 것은 실제로 훌륭하기는 하지만 내가 그보다도 더 훌륭한 강론을 마련해 주겠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그 책을 받아들고 그 책의 하나하나의 낱말까지 모두 마음으로 읽었다. 나는 그 책을 다 읽고 난 후 바로 성모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내가 강론할 바를 올바로 정확히 알게 되어 온 마음을 다하여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  시작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파리 대학교가 마치 수많은 귀족들처럼 막강한 세력으로 뒤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주님께서 나를 통해 이룩하신 위대한 일을 보고 들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곧 강단 위로 올라갔다. 그날은 성 요한 사도 축일이었지만 내가 요한 사도에 대해 이야기한 바는 다만 요한 사도가 천상여왕의 보호를 받을 만큼 훌륭한 분임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 다음에 나는 그 모임의 회중에게 연설하였다.

 

'나의 존경하올 대학교의 저명한 학자들이시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미학적 구미에 알맞는 박식한 강론을 듣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인간적 지혜의 학자적 언어로 여러분에게 말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천주 성령과 성령의 위대하심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여기서 복자 알라노에 관한 인용을 끝맺고 카르타제나는 계속 자기가 하고자 하는 설명을 해 나갔습니다.

 

그런 다음 도미니코 성인은 일상생활에서의 단순한 비교와 비유를 들면서 그들에게 '천사의 인사'(성모송)를 설명하였습니다. 카르타제나가 말한 바에 의하면 복자 알라노는 죄를 없애고 죄인들과 이단자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이 묵주기도를 전파하도록 주님과 성모님이 도미니코 성인에게 점점 더 재촉하고 감도하시려고 여러 번 발현하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카르타제나는 다른 문장에서 이렇게 서술하였습니다.

 

복자 알라노는 성모님이 도미니코 성인에게 발현하셨던 후에도 성모님의 아드님이신 주님께서 성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자신에게 가르쳐 주셨다고 말하였습니다. "도미니코, 나는 네가 너의 인간적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공허한 칭찬을 찾기보다 오히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크나큰 겸손으로 일하고 있음을 보고 매우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제들이 애당초부터 가장 나쁜 종류의 죄악을 물리치고 우뢰같이 힘차게 전파하고자 하지만, 병든 사람 앞에 쓴 약을 주기 전에 그 약이 실제로 그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는 올바른 정신 자세를 갖도록 깨우쳐 주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의 마음에 기도에 대한 사랑을,  특히 '천사의 노래'(성모송)에 대한 사랑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모두 그렇게 기도하게 되고 실제로 지켜나간다면 하느님은 당신의 무한한 자비로 은총을 베풀어주심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나의 묵주기도를 전파하기를 원한다. "또 다른 곳에서 복자 알라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모든 사제들은 이 묵주기도 신심을 전파하는 강론을 하기 전에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기 위해 교우들에게 성모송을 바치게 합니다.  그 이유는 성모님께서 도미니코 성인에게 계시하신 것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성모님은 '나의 아들아, 너의 강론이 네가 희망한 결과를 가져오는 데 실패할까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비도 내리지 않는 밭 한 구석을 경작하려고 하는구나.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습을 새롭게 하시고자 계획하셨을 때 우선 하늘에서 비를 내려 보내심으로써 그 일을 시작하셨다. 이 비는 바로 나에게 전해온 천사의 인사말이다. 이 방법으로 하느님은 온 세상을 변경하셨다. 그러므로 네가 나의 묵주기도를 사람들이 바치도록 권장하고 강론을 할 때 바로 이 방법으로 너의 말은 영혼들을 위해 많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도미니코 성인은 성모님께 순종하고 그때부터 꾸준히 그렇게 하여 자기 강론에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것입니다.

 

"이 마지막 인용문은(이태리 사람이 쓴) "거룩한 묵주기도의 기적에 관한 책"에서 인용한 것인데 유스티노의 저서(143번째 강론)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유명한 저자들의 라틴말 원문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제들이나 혹은 거룩한 묵주기도의 놀라운 힘을 의심할 지도 모르는 다른 지식인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미니코 성인의 모범을 따라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을 전파하는 동안에는 열성과 경건한 마음이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는 수도회들과 신자들 사이에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이 이 천상 선물을 소홀히 할 때는 온갖 죄와 무질서가 점점 퍼지고 확장되었습니다. 

 

 

네 번째 장미꽃 (복자 알라노) 

 

모든 것은 아무리 거룩한 것일지라도 변화되기 마련이며 특히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존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묵주기도 형제회(묵주기도회)가 도미니코성인에 의해 제정된 이후 겨우 1세기 동안 열성을 보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실 그 이후 묵주기도 신심은 매장되고 잊혀진 것같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악마의 악독한 계획과 질투가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한 묵주기도를 소홀히 하게끔 매우 광범위하게 작용했던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될 하느님의 은총의 흐름을 막게 된 것입니다.  이리하여 1349년 하느님은 전 유럽의 모든 지역에 이미 알려진 대단히 무서운 전염병(페스트)을 보내시어 징벌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동부 유럽지역에서 시작하여 이태리, 독일, 프랑스, 폴란드와 헝가리 등지를 거쳐 퍼져 나갔으며, 전염병이 이르는 곳마다 참극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살아남아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백 명에 한 명도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 수도회들도 완전히 전염병이 끝날 때까지 거의 3년 동안 황폐화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채찍에는 광신적인 고행자들의 이단화와1376년의 비극적인 교회내 분열이 뒤따라 일어났습니다. 뒤늦게 이러한 격동의 괴로움이 지나가자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감사를 드리게 되었으니 성모님께서 복자 알라노에게 이전의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의 형제회(묵주기도회)를 부활시키도록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복자 알라노는 프랑스 쁘리따뉴 지방의 디낭 수도원 도미니코회의 한 사제였습니다.  그는 탁월한 신학자요 강론가로서 유명했습니다. 성모님께서 그를 택하신 까닭은 본래 형제회가 이 지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며 바로 여기에서 도미니코 회원이 형제회를 다시 일으키는 영예를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복자 알라노는 주님의 특별한 훈계를 받은 후 1460년에 이위대한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주님의 그 강권하시는 메시지(호소)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에 대해 직접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내가 미사를 드리고 있던 어느 날, 주님께서 거룩한 묵주기도를 전파하도록 독촉하시며 성체 안에서 말씀하였다. '너는 나를 어떻게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느냐?' 나는 '주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하고 대답했지만 겁에 질려 있었다. 주님께서는 '너는 네 잘못으로 전에도 한 번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대답하시면서 '나는 네가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성부께서 상처 받으시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지금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기꺼이 원하겠다.

 

그런데 너는 내 어머니의 묵주기도를 전파하는데 요긴한 모든 학문과 지식을 갖추었으면서도 그렇게 실행치 않으므로 너는 지금 나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고 있다. 그러나 네가 이 방법을 실천에 옮긴다면 너는 많은 영혼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치고 그들을 죄로부터 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실행치 않는다면 너는 그들이 범하는 죄에 대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무서운 책망은 복자 알라노에게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전파할 결심을 세우도록 만들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느 날 다시 그에게 거룩한 묵주기도를 더 열심히 전파하도록 격려하시면서 "너는 젊었을 때 큰 죄인이었으나 나는 너를 위해 기도했고 내 아들로부터 너에게 회개의 은총을 얻어 주었다.  회개한 죄인들은 내게 영광이 되기 때문에 나는 네가 내 묵주기도를 더욱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했고 너를 구원하기 위해 나는 온갖 고통을 즐겨 감수하였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미니코 성인도 복자 알라노에게 나타나 자신이 끊임없이 권장하던 이 아름다운 신심으로 얻은 위대한 결과에 대해 말했습니다.그는 끊임없이 거룩한 묵주기도를 전파하였으며 강론은 위대한 결실을 맺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선교활동 중에 회개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거룩한 묵주기도의 전파를 통해 얻은 놀라운 결과를! 성모님을 사랑하는 너와 모든 사람들은 마땅히 이 거룩한 묵주기도를 실천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덕행의 실질적인 학문으로 이끌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도미니코 성인이 어떻게 거룩한 묵주기도를 일으켜주었는지, 그리고 복자 알라노가 어떻게 그 묵주기도 신심을 재생시켰는지에 대한 간략한 내용입니다.

 


다섯번째 장미꽃 (묵주기도회) 

 

엄밀히 말해 매일 성모송 150번을 성실하게 바치겠다고 하는 묵주기도회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실천하는 사람의 열성을 고려하여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즉 평상회원과 종신회원과 일상 정회원이 있습니다. 평상회원은일주일에 한 번 묵주기도 15단을 바칩니다. 종신회원은 일 년에 한 면은 꼭 바치도록 합니다. 그러나 일상 정회원은 성모송 150번으로 된 15단을 매일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이들 회원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다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기도의 계획이 온전히 자발적이고 공로를 세우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심회가 요구하는데에 따라 묵주기도를 성실하게 바침으로써 신분에 따른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결심을 단호히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묵주기도회에 가입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 자기 생활처지의 의무이행과 이중으로 충돌하게 될 때는 누구나 실행해야 할 의무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환자가 묵주기도를 바치는 노력이 자신을 피곤하게 하고 악화시킬 우려가 있을 때는 그 의무를 실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순명으로 요구된 어떤 의무 때문에 혹은 진정으로 순수히 잊어버린 경우나, 혹은 어떤 긴급한 필요 때문에 묵주기도를 바칠 수 없었다면 온 세상에서 바쳐지는 거룩한 묵주기도를 드리는 묵주기도회의 다른 형제자매들의 은총과 공로에도 참여하게 합니다. 내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어떤 일정한 경멸과 모독을 하지 않는 한 사소한 주의력의 부족이나 게으름으로 인해 묵주기도를 궐하였을지라도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정확히 말해서는 이런 경우 자신이 묵주기도회의 기도의 선행과 공로에 참여할 몫은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공로를 세우려고 하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불충실함으로 인해 의무처럼 크나큰 일을 소홀히 하게 되어 나쁜 습관에 빠져 죄의 멍에를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작은 것을 멸시하는 자는 점점 가난해진다"(집회 19, 1)고 하신 말씀처럼 작은 일이라고 멸시하는 자는 조금씩 실패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 장미꽃 (마리아의 시편)

 

일찍이 도미니코 성인께서 거룩한 묵주기도의 신심을 일으켜 세운 이후 복자 알라노께서 1460년 다시 일으켰을 때까지는 묵주기도는 언제나 예수님과 마리아의 시편(찬송)이라고 일컬어져 왔습니다. 이것은 성서에서 다원의 시편 찬미가만큼 천사의 방문인사(성모송)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다원의 시편들을 기도할 수 없는 순박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다원의 시편을 읽는 데서 얻는 유익처럼, 그들에게는 묵주기도를 드림으로써 마치 풍부한 과일을 맛보는 것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천사의 찬송(성모송)에는 더 훌륭하고 고귀한 열매, 즉 강생하신 말씀이 들어있는데, 다윗의 시편은 다만 구세주의 오심을 예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마치 실재적인 물건이 만들어지기 전 형상보다 더욱 중요한 것과 같이, 그리고 몸이 그림자보다 더 중요한 것과 같이, 성모님께 대한 찬송가(성모송)는 만들어지기 전 형상에 불과한 다윗의 시편보다 더욱 위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는 성모님께 대한 찬송가(시편), 즉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으로 이루어진 묵주기도는 지극히 복되신 성삼위의 직접적인 업적이며 인간방법이나 도리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시편, 묵주기도는 매 5단씩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그것은 아래와 같은 특별한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지극히 복되신 성삼위의 영광을 공경하기 위해서이며,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영광을 공경하기위해서이고, 셋째는 천상교회를 본받고 지상교회를 도우며 단련 받는 연옥의 교회가 받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이고, 넷째는 첫째 부분은 수련과 정화되는 생활을 위한 것이고 둘째부분은 빛을 받아 밝아지는 생활을 위한 것이고, 셋째 부분은 일치되는 생활을 따른 것이 됩니다.

 

끝으로 다섯째는 현세에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풍부히 얻고 죽을 때에는 평화를, 영원에서는 영광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 입니다.

 


일곱 번째 장미꽃 (장미의 화관)

 

일찍이 복자 알라노는 하느님의 소리인 이 신심을 하느님 백성의 소리로 쇄신시킨 이후로는 이것을 로사리오라고 불렀습니다.

 

로사리오라는 말은 '장미화관'을 의미하는데 사람들이 제대로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칠 때마다 천국의 흰 장미꽃 백 쉰 세송이와 붉은 장미꽃 열여섯 송이로 된 화관을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머리에 씌워드리는 것입니다. 천상의 꽃이 된 이 장미꽃들은 결코 시들거나 그 우아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로사리오라는 명칭에 대해 당신의 확고한 승인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성모님은 여러 사람들에게 그들이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아름다운 장미를 당신께 드리는 것이며 묵주기도를 온전히 바칠 때는 장미꽃 화관을 드리는 것이라고 밝혀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회의 유명한 알퐁소 로드리게 수사는 묵주기도를 어떻게나 열렬하게 드렸던지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자기 입에서 붉은 장미꽃이 그리고 성모송을 드릴 때마다 하얀 장미꽃이 나오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붉은 장미와 하얀 장미의 그 아름다움과 향기는 똑같았지 만 그 빛깔만은 달랐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 관한 전기에서는 매일 식사 전에 성모님께 화관을 드리는 좋은 습관을 가진 젊은 탁발 수도자에 대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어떠한 사정에서 그랬는지 묵주기도를 미처 드리지 못했는데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장상에게 식탁에 앉기 전에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허락을 청하였고 마침내 자기 방에 들어가서 기도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방에 들어간 지 오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다른 수사를 그를 시켜 불러오도록 했습니다. 그를 데리러 간 수사가 방문을 열어보니 그 수사는 성모님과 두 천사를 대면하면서 천상의 빛에 환히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사의 입에서는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아름다운 장미꽃이 나오고 있었고 두 천사는 그 장미꽃을 받아 성모님의 머리위에 얹고 있었는데 성모님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그 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간 수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수사가 또 찾아 나섰는데 그도 역시 똑같이 그 아름다운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성모님은 묵주기도가 다 끝날 때까지 떠나지 않으시고 그곳에 서 계셨습니다. 이처럼 묵주기도 15단은 큰 장미화관이 되며 묵주기도 5단은 작은 꽃다발 혹은 천상의 작은 장미 화관으로서 우리가 예수 마리아의 머리 위에 씌워드리는 것입니다. 장미는 꽃 중의 여왕이고, 묵주기도는 모든 신심 중의 장미이기에 첫째가는 신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장미꽃 ( 묵주기도의 놀라운 일)

 

성모님께서는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 생각을 얼마나 하시는지, 그리고 다른 모든 신심보다 묵주기도를 얼마나 더 낫게 여기시고 이 신심을 권장하고 확립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보상을 주시는지, 또 한편 이 신심을 반대하는 자들을 얼마나 단단히 책벌하시는지에 대해 충분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일생 동안 마음을 다해 성모님을 찬양하고 성모님의 위대하심을 전파하고 묵주기도로 성모님을 공경하도록 모든 사람을 격려하는 데만큼 관심을 기울인 것은 없었습니다. 그 보상으로 성모님께서는 성인에게 헤아릴 수 없는 큰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천상 여왕으로서 크나큰 능력을 발휘하여 많은 기적과 이적으로 그의 노고를 빛나게 장식해 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성인이 성모님을 통해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항상 허락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광은 성인이 알비파의 이단을 물리치는데 성모님이 도우셨다는 것이며 그를 훌륭한 대 수도회의 창설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복자 알라노께서도 묵주기도 신심을 재건함으로써 성모님께 많은 특전을 받았습니다. 성모님은 그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구원을 얻고 훌륭한 사제, 완전한 수도자로서 어떻게 주님을 본받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는 악마의 강렬한 유혹과 박해에 쫓기기가 일쑤여서 그때마다 깊은 슬픔이 덮쳐와 때로는 낙담하기에 이를 정도였지만 성모님은 그를 항상 당신의 자애로우신 현존으로 위로해주셨고 그의 모든 불안과 마귀의 영향력을 몰아내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그에게 묵주기도를 어떻게 바쳐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묵주기도의 가치와 또 그로써 얻어지는 열매를 설명해 주시면서 당신의 새로운 정배라는 자격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당신의 순결한 사랑의 표시로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셨고 머릿결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그의 목에 걸어주셨으며 묵주도 하나 주셨습니다.

 

사제 뜨리땅, 카르타제나와 나바르의 마르틴 신부(두 분은 매우 학덕이 높은 분이었음)와 그외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복자 알라노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복자 알라노는 1475년 9월 8일 폴란드의 주놀르에서 귀천하셨는데 그때 이미 묵주기도 회원이 10만이 넘었습니다.  복자 성 요한의 토마스는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강론으로 유명했었는데 그의 이러한 행위로써 성공을 거두는 것을 질투한 악마는 그가 앓아 누울 만큼 몹시 괴롭혀 결국의사도 포기할 정도로 깊은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제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악마는 상상도 못할 만큼 아주 무서운 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침대 곁에 모셔놓은 성모님의 상본을 향해 온 마음과 영신의 힘을 다해 부르짖었습니다. "지극히 자애로우신 어머니! 저를 도와주십시오. 구원해주십시오:" 그가 이렇게 외치자마자 그 상본 속의 성모님이 숨을 쉬며 살아 움직이는 것 같더니 팔을 내밀어 그의 팔을 꼭 쥐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 토마스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여기 있지 않느냐? 내가 너를 구하겠으니 지금 일어나 네가 늘 하던 것처럼 나의 묵주기도를 전파하여라.  나는 너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너를 보호해 주마."성모님이 이 말씀에 악마는 도망치고 복자 토마스는 일어나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기쁨의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어지신 어머니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계속 묵주기도를 전파하였고 그의 강론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묵주기도를 전파하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할 뿐 아니라 자신의 표양으로 다른 사람들도 묵주기도를 바치게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훌륭하게 보상해 주십니다. 리옹과 갈리치아의 왕이었던 알퐁소는 자기의 모든 신하들이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복되신 동정녀를 공경하게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행하게도 묵주기도는 바치지 않았지만 허리띠에 커다란 묵주를 달고 다녔습니다.  그로인해 그의 궁에 있는 이들이 묵주기도를 경건하게 바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왕이 몹시 앓아누워 죽음이 임박했을 때 왕은 정신으로 주님의 심판 대전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 이지은 모든 죄를 사탄들이 주님께 고발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주님께서는 주권을 가진 판관으로서 그를 지옥으로 떨어질 죄인으로 선고를 막 내리려는 순간에 성모님이 당신 아드님 앞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변호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저울을 가져와서 그의 죄를 한편 저울판에 달고 다른 저울판에는 그가 늘 본보기로 가지고 다니던 묵주를 얹어 놓고는 그 위에 그의 모범을 따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바쳐진 모든 묵주를 함께 달아놓았습니다.

 

그러자 묵주의 무게가 그의 죄보다 더 무겁게 나타났습니다. 성모님은 그를 매우 인자하신 미소로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나의 묵주를 차고 다님으로써 나에게 바친 작은 공경에 대한 갚음으로 나의 아들로부터 너에게 은총을 얻어주겠다. 네 생명은 앞으로 몇 해 더 연장될 것이니 그 몇 해 동안을 지혜롭게 잘 보내며 통회하도록 하여라."이에 왕은 "오, 성모님의 지극히 복된 이 묵주기도로써 나는 영벌을 면하고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도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다시 건강을 회복한 뒤에 거룩한 묵주기도의 신심을 전파하는데 자기의 여생을 바쳤고 묵주기도를 매일 충실히 바쳤습니다. 복되신 동정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이 알퐁소왕의 모범을 따라야 하며 지극히 거룩한 이 묵주기도회로 많은 영혼들을 구해낸 성인들을 본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과 후세에서 크나큰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가르침을 예언과 같이 널리 펼 것이며, 미래의 세대에까지 물려주리라"(집회서 24, 33).

 


아홉 번째 장미꽃 (이 신심의 적들)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회의 발전을 막는 것은 다른 영혼들에게 불공정한 것이며 실로 부당한 행위인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묵주기도회를 업신여기고 어두운 길로 접어든 많은 사람들과 이를 무너뜨리려 찾아다니는 비열한 사람들을 엄격하게 벌하셨습니다.  많은 기적으로써 거룩한 묵주기도를 인정하는 당신의 인장을 찍어주셨고 묵주기도를 인정하는 교황의 칙서가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거룩한 묵주기도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유사상가들과 종교를 경멸하는 사람들이묵주기도를 비난하거나, 아니면 묵주기도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혀는 지옥의 독에 감염되었고 악마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신앙에 있어서 가장 경건한 것, 즉 주님의 기도와 천사의 인사(성모송), 예수님과 성모님의 생애와 죽음과 영광의 신비들을 비난하고 단죄하지 않고서는 결코 아무도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을 비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사람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는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이단 행위를 하지 않는다 해도 심적으로는 실제적인 이단에 자주 떨어지곤 하여 때때로 몇 사람은 묵주기도와 그 신비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묵주기도회에 대하여 증오심을 갖는다는 것은 하느님과 참된 신앙심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사람들 가운데 있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착실한 가톨릭 신자라면 자모이신 교회가 묵주기도회에 허락한 크나큰 많은 은사들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묵주기도는 죄인을 치유하고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을 감싸주는 확실한 방법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묵주기도회에 가입하는 것을 말리는 것은 영혼들의 구원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자신의 시편 해설집에서) 성모님을 경시하는 사람은 누구나 죄 중에 멸망할 것이며 단죄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모님을 경시한 죄값이 이러하다면 다른 사람들을 그 신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들에게 마련된 책벌은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열 번째 장미꽃 (기적들)

 

도미니코 성인이 카리카소에서 묵주기도를 전파하고 있을때 한 이단자가 그의 기적들과 거룩한 묵주기도의 열다섯 가지 신비를 놀림감으로 삼았고, 이로 인해 다른 이단자들이 회개하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징벌로써 하느님께서는 1만 5천이나 되는 악령이 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셨는데 악령 들린 사람의 부모는 그를 도미니코 성인에게 데려와서 악령으로부터 구해주기를 청했습니다.

 

성인은 기도를 시작하면서 거기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그와 함께 큰 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모송을 한 번 바칠 때마다 성모님은 그 이단자의 몸에서 마귀 백 마리씩을 새빨갛게 타고 있는 숯불의 형태로 뛰쳐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악령의 사슬에서 풀려난 후에 전의 오류를 공공연하게 끊어버리고 회개하여 묵주기도회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패의 여러 사람들도 이 사람이 받은 징벌과 묵주기도의 능력에 크게 감동을 받고 회개하게 되고 묵주기도회에 가입을 하였습니다. 학덕이 높았던 프란치스코회의 카르타제나는 다른 여러 저술가들과 마찬가지로 1482년에 일어났던 이상한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야고보 스프렘거와 동료 수사는 거룩한 묵주기도 신심을 전파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였으며 쾰른 시에서 묵주기도회를 세웠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떤 유명한 두 사제가 그들이 묵주기도 전파를 통해 대단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질투하였습니다. 이 두 사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신심을 비난하였고, 자기들의 유창한 언변과 명성으로 많은 사람들을 묵주기도회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설득시켰습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자기의 나쁜 목적을 달성하려고 묵주기도를 반대하는 특별 강론을 준비하고 그 다음 주일 강론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강론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그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기다리고 있던 신자들 중 몇 사람이 그를 찾아 나섰는데 사람들은 그가 이미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제는 이 죽은 사제가 전적인 자연사라고 확인시키고 그 사제가 계획했던 강론을 이행하려고 또 다시 다른 날을 잡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방법으로 묵주기도회를 소멸하려고 마음먹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가 강론할 날이다가와 강론 시간이 다 되자 손발을 움직이거나 강론할 힘마저 빼앗아버리는 중풍으로 내리 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드디어 자신의 잘못과 동료의 죄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조용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성모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모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다면 그가 이전에 묵주기도를 반대하던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열성으로 거룩한 묵주기도를 전파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는 성모님께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청하였고, 또 성모님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성모님께서는 그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즉시 병이 낫게 되자 그는 거룩한 묵주기도의 옹호자를 돌려 세우려고 했던 박해자 사울처럼 회개하여 묵주기도를 지지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전 죄과를 알리고 공공연하게 사과를 했고, 대단한 열성과 웅변으로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의 놀라움을 전하였습니다.

 

오늘날 자유사상가들과 지나친 비평가들은 내가 이 책에서 한 이야기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질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이 이야기는 매우 훌륭한 현시대의 작가들이 기록한 것을 옮겨놓은 것뿐이며, 부분적으로는 조금 전에 인용한 책, 즉 존경하올 안토니오 토마스 수사 신부께서 쓰신「신비스런 장미나무」에서 끌어낸 것에 불과 합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에 대한 믿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에 있는 이야기에 관해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이성에 반대되지 않고 훌륭한 저자들이 쓴 이야기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훌륭한 저자들이 권하는 것으로써 어떤 때 그것들이 이상하더라도 이치에도 믿음에도 결코 반대되지 않는 경건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경건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너무 쉽게 믿어도 안 되고 혹은 너무 비판적이어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 가운데서 중용을 지킴으로써 바로 거기에 진리와 덕행의 요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애덕이 믿음이나 미풍양속에 반대되지 않는 모든 것을 믿도록 우리를 인도해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고린 13, 7)이와 같은 처지에서 교만은 진실성이 증명된 거의 모든 이야기로 그것들이 성서에 있지 않다는 핑계로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악마의 올가미입니다. 성전을 부정했던 과거의 이단자들은 그런 올가미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지나친 비평가들도 실제적으로 함정에 떨어지지않는다하지만 역시 위의 경우처럼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나 믿으려 하지 않으며 또한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 자신의 교만한 정신과 독자적 자존심 외에 다른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열한 번째 장미꽃 (사도신경)

 

묵주의 십자고상 부분에서 바쳐지는 사도들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 진리의 성스러운 종합이며 요약이므로 공로가 많은 기도입니다. 그것은 신앙이야말로 그리스도교 덕행의 뿌리이고 기초이며 시작이고, 모든 영원한 덕행과 전능하신 하느님께 의합한 모든 기도에 있어서 뿌리가 되고 기초가 되며 시작이 되는 까닭입니다.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브 11, 6). 하느님께로 가고자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모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의 신앙은 더욱 위대해질 것이며, 힘찬 기도는 더 큰 공로가 되어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사도신경의 뜻을 풀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하는 이 몇 마디가 본시 믿음, 희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 신학적 덕행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악마를 패주시키고 우리 영혼을 성화시키는 한 방법으로서 매우 경이적인 효력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라는 말을 함으로써 성인들은 유혹을, 특히 신 ·망 ·애 삼덕을 거스르는 유혹들을 살아 있을 때나 죽음이 올 때는 어떠한 경우라도 이겨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단자들의 잔혹한 칼부림에 머리가 둘로 갈라졌던 베로나의 순교자 성 베드로의 마지막 말이기도 합니다.  성인이 최후 순간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음 직전에 손가락으로 모래 위에 가장 잘 써 놓으려고 했던 마지막 말들이었습니다. 거룩한 묵주기도는 예수 마리아의 많은 신비들을 내포하고 있고, 신앙은 우리를 모든 신비에로 들어가게 하는 유일한 열쇠이므로 우리는 사도신경을 매우 정성껏 신심 깊게 바치면서 묵주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굳건하면 굳건할수록 우리의 묵주기도는 더 큰 공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하며 애덕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묵주기도를 온전히 바치려면 하느님의 은총 가운데 있거나 적어도 이런 은총을 찾는 중에 있어야합니다. 이런 신앙은 굳세고 항구해야 하며 묵주기도를 바치는 데 있어서 감각적 신심과 영신적 위로만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또한 자기 마음에 의외로 생각지도 않은 분심이 헤아릴 수 없이 덮쳐온다고 해서, 혹은 영혼에 이상한 혐오감과 계속적으로 억누를 수 없는 육체적인 피로감을 느낀다고 해서 묵주기도를 포기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감정, 위안, 탄식, 황홀감 혹은 상상의 계속적인 주의집중도 요구하지 않으며 다만 순수한 믿음과 착실한 의향만 있으면 됩니다. "믿음만으로 넉넉합니다."(토마스의 성체찬미).

 

[ 성 베드로(1206~1253) 이탈리아 베로나의 순교자: 이단자들과 용감히 싸웠던 열성적인 도미니코회 사제. 도미니코 성인으로부터 직접 수도복을 받는 영광을 얻었으며 한 때 롬바르디의 종교 재판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는데 일생을 오직 신앙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다시피 하였으며 평소에도 자기 의무에 충실하였다.]

 

 

 열두 번째 장미꽃 (주님의 기도) 


"천주경" 이라고도 불렀던 "주님의 기도"는 그것을 지은 분에게서 그 훌륭함을 얻어냅니다. 그것을 지은 분은 사람이나 천사가 아닌, 천사와 사람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큰 가치가 있습니다.
 성 치프리아노는 우리를 은총의 생활 안에 다시 나게 하신 구세주께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전개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이 신적 기도의 명쾌함은 신적 주관자의 지혜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짧은 기도문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어, 무식한 사람들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학자들도 신앙의 신비에 관한 묵상 자료들을 계속 찾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께 이행해야 할 모든 의무, 즉 모든 덕행의 행위와 우리의 영신적, 육신적 필요를 위한 모든 간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테르툴리아노는 주님의 기도를 일컬어 신약성서의 요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주님의 기도가 성인들의 모든 욕망을 초월하고 모든 시편과 찬미가의 아름다운 찬송의 집약이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간청하며 하느님을 최상의 방법으로 찬미하는 것이고,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우리 영혼을 지상에서 천상에까지 들어 올려 하느님과 긴밀하게 결합시킨다고 말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우리는 주님께서 기도하신 바와 같이 기도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방법대로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간적 한계를 지닌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보다도 우리가 당신의 아드님에게서 배운 이 기도를 바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기도가 영원하신 성부께서는 즐겨들으시는 당신 아드님의 기도이며, 또한 우리는 그분 아들의 지체들이므로 영원하신 성부께서 이 기도를 틀림없이 듣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성자의 귀한 말씀과 공로로 보강되고, 성자의 간절한 부탁으로 이루어진 간청을 선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거절하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으므로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간청을 틀림없이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우리가 정성껏 주님의 기도를 드리면 소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의인들도 하루에 일곱 번 넘어지지만 주님의 기도에 일곱 가지 청이 있어서 그것으로 자기의 죄를 고치고 영신적인 적들에 대해 자기를 강하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너무나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며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에 처해있는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 자주 더 경건하게 바침으로써 더 빠른 원조를 받을 수 있도록 짧고 쉽습니다.

 

천주 성자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시고 모든 신자들에게 명령하신 이 기도를 조금이라도 소홀히 여기는 경건한 영혼들이여, 망상에서 깨어나십시오. 지금 당신들이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입니다. 당신들은 사람들이 쓴 기도문밖에는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영감을 받은 사람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예수 그리스도 그분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니 말입니다. 여러분은 마치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명하신 기도문을 쓰는 것은 창피스러운 일인 것으로 여겨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방식을 사람들의 책에서 찾습니다. 당신들은 책에 있는 기도문들은 학식이 많은 사람들과 상류층의 부자들을 위한 것이고, 묵주기도는 부녀자들이나 어린이들과 저 소득층의 서민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여러분들 스스로가 믿고 있습니다. 마치 당신들이 지금까지 바쳤던 기도문과 찬미가가 주님의 기도문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하느님께 더 의합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문에서 싫증을 내고 그 대신 사람이 쓴 기도문을 택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유혹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하느님을 충실히 찬미하도록 독려하신 성인들의 기도문을 인정치 않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강생하신 하느님의 지혜이신 성자께서 표명하신 기도문보다도 그 기도문들을 더 낫게 여기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란 말입니다. 만일 이 기도문을 모른다면 마치 물이 흘러나오는 샘을 지나쳐 버리고 개울 쪽으로 달려가 맑은 물을 마다하고 흐린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묵주기도는 주님의 기도와 천사의 인사말(성모송)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은 은총의 원천에서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맑은 물인데 비하여 다른 기도문은 이 원천에서 솟아나오는 작은 개울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말마디 하나하나를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면서 정성껏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하거나 혹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 안에서 찾기 때문에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기도문을 바칠 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는 다정한 이름으로 하느님을 부르는 첫 마디에서부터 그분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아버지들 중에서 가장 좋은 분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에 있어 전적으로 전능하시고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 더없이 놀라우시며 당신의 거룩한 섭리에 있어 완전히 사랑하올 분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 항상 선하시고 무한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 한 형제이며 천국은 우리의 본향이며 우리의 유산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세속으로부터 초연해지도록 우리를 가르치는데 더없이 충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천상의 아버지를 모든 것 위에 사랑하고 더욱 간절히 그분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수없이 말씀드립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당신은 무량하신 현존으로서 천상천하를 다 채우시고 아니 계신 데 없이 곳곳에 항상 현존하시는 분, 성인들 안에서는 당신의 영광으로 지옥에 간 사람들 안에서는 당신의 정의로, 의인들 안에서는 당신의 은총으로 죄인들 안에서까지도 현존하시며 인내를 다하여 그들을 너그럽게 용서하시는 아버지. 저희로 하여금 저희의 기원이 하늘에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게 하시고 저희가 아버지의 참다운 자녀들처럼 살고, 저희 모두 열렬한 마음으로 언제나 당신께만 향하게 해주소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다윗 왕은 주님의 이름은 거룩하고 장엄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했고, 이사야는 하늘은 항상 천상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거룩함을 끊임없이 찬송하는 세라핌의 찬가로 반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삼라만상이 이토록 위대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속성들을 알아보고 흠숭하도록 가르쳐주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외교인, 터어키인, 유태인, 야만인과 모든 비신자들에게까지도 더욱 알려지고 사랑받고 흠숭 받도록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그분을 섬기고 살아있는 신앙, 확고한 희망, 불타는 사랑으로써 잘못된 모든 미신을 버리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게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곧 하느님께서 전적으로 거룩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거룩해지도록 우리가 기도하는 데 보탬이 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

 

아버지께서 은총으로
저희가 사는 동안에 저희 영혼을 다스리시어
저희가 죽은 다음에도
아버지의 나라에서
아버지를 뵈옵고
아버지와 함께
완전하고 끝없는
기쁨을 누릴 자격을 얻게 해주소서.

 

그것이
저희에게 허락된 복락임을 굳게 믿으며
바라고 고대하오니,
아버지의 착하심으로
이것을 저희에게 약속해 주신 까닭입니다.
이것은 또한 성자의 공로로
저희에게 얻어 주신 것이오며 광명이신 성령께서
저희에게 계시하신 진복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확실히 미리 모든 것을 예견하시고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방해도 하느님의 섭리를 이미 예정된 것으로부터 능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노가 말하였듯이 오히려 우리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고 기도할 때는 누가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명령하고자 하신 모든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계명으로서 드러난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성인들과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느님께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을 다해 충실히 언제나 신속히 실천하도록 도우심을 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신적인 면에서나 현세적이고 육신적인 사정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하느님께 청하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말도 우리의 가난과 부족을 겸손되이 고백하고 현세적인 모든 선이 하느님의 인자하심에서 얻게 된다는 것임을 믿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드리면서 하느님의 섭리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식'이란 말을 할 때는 생명에 필요한 바를 청하는 것이지 사치나 향락을 포함해서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빵은 우리가 오늘 청하는 것입니다.  "오늘"이란 하느님의 섭리의 손길에 있는 내일을 떠나서 오직 현재에만 관여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내일은 하느님 섭리의 손길에 맡김을 뜻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날그날의 양식을 청하는 것은 매일 하느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며, 하느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음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성 아우구스티노와 테르툴리아노는 "모든 죄는 우리가 전능하신 하느님을 향해 좋지 않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인데, 하느님의 공의하심은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보상하기를 명하신다."고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모두 이 비참한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빚진 것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도 어지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자녀로서 저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순종과 사랑으로 용서하오니,

 

저희의 생각과 말로 범한 저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당신 천상 정의의 눈에 한없이 거스린 저희의 행동과 태만의죄를 용서 하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죄를 진정으로 뉘우치고 전적인 신뢰로써 하느님께로 나아갑시다.

 


"악에서 구하소서."

 

그리고 아버지의 은총에 대해 불성실했을지라도 저희들이세속과 마귀와 육신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고 악에서 저희를 구해주시고 저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현세적인 벌과 영원한 벌의 악에서 구해 달라는 뜻입니다. 

 

 

"아멘(그렇게 되어 지이다)"

 

주님의 기도의 마지막 이 말은 매우 위로가 되는 것인데, 성 예로니모는 이것이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간구에 친히 답해 주시듯 풍족히 허락해 주심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 우리의 청원기도 끝에 붙이는 인준의 짧은 인장이라고 했습니다. "오냐! 너희가 청하는 대로 해주마. 실로 너희가 청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아멘'이라는 말이 바로 그 뜻이니까 말이다. "

 

 

열세 번째 장미꽃 (주님의 기도)


주님의 기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하느님의 완전성에 드리는 찬미이며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풍부함을 흠숭합니다. 영원에서 아들을 낳으시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하느님의 능력을 흠숭합니다.
 아드님은 아버지와 같이 영원하시고, 아버지와 똑같은 본질이시며, 동일한 하느님이시며, 같은 능력이시고, 같은 착함이시고, 같은 지혜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사랑하셔서 성령을 발하시는데, 그분도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시며, 오직 한 분뿐인 하느님이신 세 위이십니다.  

 

 

"우리 아버지 "

 

 우리 아버지! 이 말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계속 보존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이시고 죄인들의 자비로우신 아버지, 의인들의 정다우신 아버지, 복된 이들이 멋진 아버지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이란 말도 우리는 "있는 자 바로 그분이시다"(출애 3, 14) 라고 당연히 불리시는 하느님의 본질의 무한성과 무량함과 충만함에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있는 분이라는 것은 존재 중의 존재이시고 본질적으로, 필연적으로, 영원으로부터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당신 자신 안에 최고의 지존으로서 모든 존재의 완전성을 소유하고 계시며 당신 자신의 본질로써, 당신 자신의 현존과 전능으로써, 그러나 그 어떠한 한계도 없는 완전성 안에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이라는 말로써 우리는 그분의 지존하심과 영광과 위엄을 공경하는 것이며, 그분은 당신의 의덕으로써 모든 사람을 통치하시는 왕좌 위에 앉아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라고 말할 때는 하느님의 신성함을 흠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왕직에 복종해야 하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라는 말로써 하느님의 공의하신 법에 또한 복종해야 하고,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께 순명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용한 양식을 청함으로써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우리의 믿음을 나타내며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아버지의 자비심에 호소하며,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기를 하느님께 간구할 때에는 하느님의 위대한 능력을 기대하는 것이고, 악에서 구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은 우리의 열망으로써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성자께서는 항상 당신의 행동과 모범으로 아버지를 영광되게 하셨으며 인류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가르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직접 우리에게 가르치신 이 기도로 하느님을 어떻게 찬미할 것인지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기도를 자주 바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우리는 이 기도를 경건하고 간절히 그리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정신으로써 바쳐야 합니다.  

 

 

열네 번째 장미꽃 (주님의 기도)

 

우리가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주님의 기도로 간절히 기도할 때 말로써 드러내는 그만큼 가장 고상한 그리스도인의 덕행을 행하는 것이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믿음과 흠숭과 겸덕을 실행하는 것이며,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영광되시기를 청할 때는 그분의 영광에 대한 우리의 불타는 열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고, 아버지께 나라를 차지하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원함으로써 우리의 완전한 순명의 정신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매일 일용할 양식을 청함으로써 마음의 가난과 세상 재물에 초연하며 청빈의 정신을 실천하고,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청할 때는 우리 죄를 진정으로 아파하고 뉘우치며 통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함으로써 우리는 가장 높은 차원에서 자비의 덕을 가장완전하게 실천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유혹을 당할 때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함으로써 겸덕과 지덕과 용덕을 실천하게 되며, 우리를 악에서 구해주시도록 고대함으로써 우리는 인내의 덕을 실천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들과 교회의 모든 신자들을 위해서도 이 모든 것을 청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진정한 자녀로서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을 감싸시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분을 본받는 것이며, 또한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입으로 말한 바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의 지향이 주님의 기도에서 표현된 바와 일치하는 것이라면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우리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과 그 지존하신 엄위로 우리를 무한히 초월하여 계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는 언제나 그분의 현존 안에 우리 자신을 놓고 있으므로 우리의 마음은 당황할 만큼 압도적인 경외심으로 충만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 대한경외심은 모든 자만심을 멀리 쫓아낼 것이며 우리의 절대적인 무가치 안에서 하느님 앞에 엎드리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때는 우리의 존재를 우리 부모님을 통해서 하느님께로부터 받고, 교육까지도 우리의 스승들을 통해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으며, 그분들이 우리에게 하느님 대신에 그렇게 하고 하느님의 살아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분들을 공경하고 존중할 의무가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그분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공경할 의무가 있음을 느끼고, 그분들을 업신여기거나 슬프게 해 드리지 않도록 조심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시도록 기도드릴 때 우리는 그 이름을 모독하는 것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게 됩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나라를 우리의 상속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세상일에 집착할 수 없고, 진정으로 하느님께 우리가 요구한 것과 똑같은 축복을 이웃들이 가질 수 있도록 청한다면 모든 증오심이나 말다툼과 질투를 포기하고 말없이 전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하느님께 청한다면, 부유한 환경에서 번성하는 폭식과 도색을 미워하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도록 하느님께 진정으로 청할 때,  분노와 복수심을 억제하게 되고 악을 선으로 갚으며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유혹을 받을 때, 죄에 떨어짐에서 구해 주시도록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우리가 나태와 싸우고 있다는 증거이며 부도덕한 습관을 뿌리째 뽑고 구원을 위한 방법을 겸허히 찾는 것입니다. 악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기를 기도드리는 것은 하느님의 공의하심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함은 지혜의 시초이고 하느님을 두려워함으로써 사람들은 죄를 피하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번째 장미꽃 (성모송)


"천사의 방문인사"(성모송)는 너무나 숭고하고 고결해서 복자 알라노는 "그 깊은 의미는 우리의 이해력을 능가하는 것이어서 어떤 인간도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복되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그리스도만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 기도의 엄청난 가치는 무엇보다도 천상으로부터 나오게 된 말씀의 강생에 대한 취지와 목적, 그리고 그것을 전해준 가브리엘 대천사와 이 기도문의 대상이 되신 마리아께 달려있습니다.  "천사의 방문인사"는 가톨릭 신학이 복되신 동정녀에 관해 가르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간결한 요약입니다. 이것은 찬미와 청원의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의 찬미부분은 마리아의 위대하심을 이루게 한 모든 것을 보여주며, 두 번째 청원부분은 성모님의 착하심을 통해 받으려고 기대해도 좋을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서는 그 첫 부분을 우리에게 계시하셨으며, 다음 부분은 성령의 감도를 받은 성녀 엘리사벳이 첨가한 것입니다.  자모이신 성 교회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단죄하고 복되신 동정녀는 진실로 하느님의 모친이시라고 제정하였습니다. 이때에 공의회는 성모님께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는 이 영광스러운 호칭으로 기도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에 가장 위대한 사건은 이 세상이 구원되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다시 평화가 이루어지게 된 영원한 말씀의 강생입니다. 성모님은 이 놀라운 사건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로 선택되었고, 그 사건은 천사의 방문인사로 축하를 받으셨던 그 결과로써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한 사자는 천상조정 제후의 하나인 가브리엘 대천사였습니다. 성모송에는 이스라엘의 성조들과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신앙이 희망적으로 들어 있고, 더욱이 성모송은 순교자들의 힘이고, 학자들의 지혜이며, 거룩한 증거자들의 불굴의 신념이며,  모든 수도자들의 생명입니다(복자 알라노). 성모송은 역시 은총의 원칙에 대한 새로운 찬미가인 동시에 천사들과 인류의 환희이며, 악마를 무서워 떨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찬가입니다. "천사의 방문 인사(성모송) “로써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으며, 한 동정녀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고, 의인들의 영혼들은 고성소에서 구출되었으며, 하늘의 폐허가 수리되고, 비어 있던 옥좌들이 채워졌으며 더 나아가 죄는 용서를 받았고,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병든 사람은 낫고, 죽은 이들이 부활하고, 귀양 간 이들이 풀려 돌아왔으며,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의노가 가라앉았고, 인류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성모송은 하느님께서 세상에 내려주신 은총과 자비의표인 무지개입니다(복자 알라노). 

 

 

열여섯 번째 장미꽃 (성모송-아름다움)


하느님의 엄위하심만큼 위대한 것은 없고, 또 인간이 죄인이라는 면을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저열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최고로 엄위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가련한 기도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그분을 찬미하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의 성모님께 대한 축하 인사인 성모송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영광을 능히 노래할 수 있는 가장아름다운 찬미가 중의 하나입니다. "하느님, 새 노래를 읊어드리오리이다"(시편 144, 9). 메시아가 오실 때에 사람들이 부를 것이라고 다윗이 예언한 이 노래는 대천사의 방문 인사와 전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옛 노래와 새 노래가 있습니다. 옛 노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창조하시고 그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시고, 귀양살이에서 해방시켜 홍해바다를 건너 안전하게 인도해 주셨으며, 만나를 내려주시어 굶주림에서 구해 주시고 축복해주신 것과 그밖에 하늘의 다른 모든 호의에 대한 감사로 부른 노래입니다. 새 노래는 그리스도인들이 강생과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경이로운 기적들이 "천사의 방문 인사"로써 이루어졌으므로 우리도 그와 같이 우리에게 한량없이 베푸신 지극히 복되신 삼위일체께 감사드리기 위해 그 같은 인사를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독생성자를 우리의 구세주로 주실 만큼 이 세상을 사랑하신 데 대해 그분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자께서 천국을 떠나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대해서 그분을 찬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죄의 희생이 되신 저 지극히 깨끗한 주님의 육체를 성모님의 태중에 이루어 주신 것에 대해 그분을  찬미합니다. 이런 감사의 정신으로 우리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행위를 실천하며 헤아릴 수 없이 고귀한 구원의 선물에 감사드리며 성모송을 외워야 합니다.  이 새 노래가 비록 하느님의 모친에 대한 찬송으로서 성모님을 직접 노래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 노래가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성모님께 드리는 모든 존경이 성모님의 모든 덕성과 완덕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조물 중에 가장 완전한 이를 공경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를 영광되게 하는 것이고, 성자께서는 우리가 성자의 지극히 순결하신 어머님을 찬미하는 것으로 찬미 받으시며, 성령께서는 당신에서 당신의 짝을 채우신 은총에 우리가 깊이 감복하기 때문에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우리가 이 성모송을 바침으로써 당신께 드리는 찬미와 찬양을, 엘리사벳 으로부터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지극히 높으신 지위에 대해 찬양받으셨을 때 하셨던 것처럼 재빨리 전능하신 하느님께 이 찬미를 돌려 드립니다.  마치 천사의 방문인사가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영광을 드렸음과 같이 또한 성모송은 우리가 성모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찬미가이기도 합니다. 성녀 메틸다는 보다 더 열심히 성모님께 대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기도하다가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그때 성모님은 당신 가슴에 금빛으로 불타오르는 글자가 새겨진 천사의 방문인사(성모송)를 가지고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지극히 홈숭하올 삼위일체께서 내게 하게 하셨고, 또 그것으로 나를 하느님의 어머니의 지위에 올려놓으신 그 인사보다 더 기분 좋은 인사로 나를 공경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와(Eva)의 이름인 'Ave'(아베-역주: 라틴어 성모송의 첫마디)라는 말로써 나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무한한 전능으로 나를 모든 죄와 그리고 최초의 여인이 지배를 받았던 비참함에서 나를 지켜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빛의 여인'이라는 의미를 지닌 '마리아'란 이름은 하느님께서 내게 빛나는 천체와 같이 지혜와 빛을 가득 채워주셔서 하늘과 땅을 비추게 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은총이 가득 하시다'라는 말은 성령께서 그만큼 풍부히 많은 은총을 내게 가득 채워주셔서 내 중재로서 은총을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그 은총을 내가 줄 수 있을 만큼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람들이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라고 말을 할 때, 영원하신 말씀이 내 태중에 강림하셨을 때 내가 느꼈던 그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기쁨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여인 중에 복되시도다'고 말할 때에 나는 나를 이렇게까지 행복하게 해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찬양한다.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도다' 하는 말을 할 때에는 나의 아들인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신 것 때문에 흠숭과 영광을 받으심을 보고 온 천하가 즐거워한다. " 

 

 

열일곱 번째 장미꽃 (성모송-열매)


복되신 동정녀께 매우 깊은 신심을 가졌던 복자 알라노에게 성모님께서는 매우 놀라운 일들을 알려주셨는데, 우리는 그가 자신이 받은 계시들을 장엄한 맹세로써 확고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 중 가장 특별한 동감을 불러일으키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이 세상을 구원하게 된, 천사의 인사에 대해서 소홀하고 냉담하고 혐오감을 가지는 것은 하느님께 머지않아 영원히 버림받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표이고, 둘째는, 이 숭고한 인사말에 대해서 신심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영원한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었다는 매우 큰 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셋째는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다해 섬기는 각별한 은총을 주신 사람들은, 성모님께 당신 아들로 하여금 하늘에 그들의 공로에 알맞은 영광의 지위에 올려놓으실 때까지, 계속 성모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복자 알라t 11장 2절).악마의 자식들이며 하느님께 버림받았다는 표시를 명백히 갖고 있는 이단자들은 성모송을 몹시 싫어합니다.  그들은 아직 주님의 기도는 말하지만 결코 성모송은 바치지 않으며 그들은 스카풀라를 착용하거나 묵주를 가지고 다니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목에 독기를 품은 뱀을 두르고 다니는 것을 더 낫게 여길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에서도 하느님께 버림받은 표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묵주에 대해 별로 관심을 쓰지 않고, 묵주기도를 아예 하지 않거나 드리더라도 열의 없게 재빨리 해치우고 맙니다. 복자 알라노에게 계시하신 바를 믿지 않더라도 내 자신의 경험으로 이런 무섭고도 위안이 되는 진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처럼 작게 보이는 신심이 어떻게 영원한 구원의 그르칠 수 없는 표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신심의결여가 하느님께 버림받는다는 표가 되는지 알지 못하고 또 명백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토록 참다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의해서 단죄된 우리 시대의 새로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표면상의 신앙심을 가지고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을 매우 무시하고, 훌륭한 구실로 이 신심을 단념시키고 심지어 파괴해 버리는 일이 자주 있음을 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세속의 눈에 좋게 보인다는 변명을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묵주기도와 스카풀라를 칼빈주의자처럼 공공연하게 비난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 신심을 공박하는 방법이 원래가 더 교활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위험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성모송이나 묵주기도는 나의 기도이고 악마에게 속아 넘어간 사람들과 하느님의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는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는 매우 확실한 시금석입니다. 나는 높은 명상으로 독수리같이 아주 높은 데로 솟아 오르는것 같은 영혼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도 악마에 의해 가련하게도 샛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성모송과 묵주기도를 자기들보다 훨씬 밑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멸시하고 배격하는 그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성모송은 구원받도록 선택된 사람들의 영혼에게 떨어지는 하늘에서 내려오고 숭고한 이슬입니다. 그것은 모든 덕행이 생겨나고 더욱 자랄 수 있도록 영신의 풍요함을 줍니다.  영혼이 이 기도의 물로 적셔지면 적셔 질수록 영신의 정원은 이 기도에 의해 물이 주어지며 정신이 더 밝아지게 되고 마음은 더욱 열절해지고 그들의 원수에 대항하는 힘은 더욱 강해집니다. 성모송은 날카롭고 불타는 화살이어서 강론자에 의해서 하느님의 말씀과 결합되면 비록 그가 강론하는 데에 타고난 재간이 그리 많지 않더라도 마음을 꿰뚫어 버릴 수 있는 강한 힘을 강론자 에게 주어 아주 굳어버린 마음까지도 움직이고 회개시킬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앞서 내가 말하였듯이 성모님께서 성 도미니코와 복자 알라노에게 가르쳐주시어 이단들과 죄인들을 회개시키게 한 위대한 비밀의 화살인 것입니다. 안토니오 성인이 말하는 것과 같이 많은 사제들이 강론을 시작하기 전에 성모송을 바치는 관습이 바로 여기에서 온 것입니다.

 


열여덟 번째 장미꽃 (성모송-축복)

 

이 숭고한 인사는 예수 마리아의 축복을 풍족하게 우리에게 끌어내려 줍니다.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께서는 그분들에 영광을 드리는 사람들에게 기묘한 방법으로 보상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찬미에 대해 백배로 갚아 주십니다.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을 받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재산을 안겨주고 그의 금고를 가득히 채워준다"(잠언 8, 17, 21). 예수님과 마리아께서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부유하게 하고 그들에게 재산을 가득 안겨준다. " "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2고린 9, 6).만일 지금 우리가 성모송을 온전하게 바친다면 이것이 예수님과 성모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며 영광 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모송을 욀 때마다 우리는 두 분께, 즉 예수님과 마리아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우리가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대신해서 성모님에게 인사하도록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셨을때 하신 것과 같은 경의를 성모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을 저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오히려 선을 베풀어 주시는 그분들께 성모송으로 그분들을 찬미하고 공경하는 사람들에 축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누가 생각 할 수 있겠습니까? 베르나르도 성인과 보나벤투라 성인은 하늘의 모후께서는 확실히 이 세상의 품위있고 예의바른 사람들 못지않게 고맙게 여기시며 완전히 양심적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성모님이 다른 모든 완전성에서 뛰어나신 것처럼 감사함의 덕행에서도 우리 모두를 능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우리가 사랑과 존경으로 당신을 공경하면 배로 갚아주시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실 것입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만일 우리가 성모송으로 성모님께 인사드린다면 성모님은 은총으로 우리에게 인사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성모님의 호의적인 인사와 자애로우신 보살핌으로써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총과 축복을 누가 감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성녀 엘리사벳이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하시는 인사를 들었던 바로 그 순간에 성령이 가득 찼고, 태중의 아기는 기뻐 뛰놀았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의 인사와 축복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된다면 우리도 확실히 은총으로 충만될 것이며, 넘쳐흐르는 영적인 위로가 우리 영혼 안으로 세차게 흘러 들어올 것입니다.  

 

 

열아홉 번째 장미꽃 (행복스러운 친교)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루가 6, 38)라 성서 말씀이 있습니다.  복자 알라노의 비유에 따르면 "만일 내가 매일 당신에게150개의 다이아몬드를 준다면 당신이 혹 내 원수라고 하더라도 나를 용서해 주지 않겠습니까? 또한 당신은 나를 친구로서 사귀며 당신이 줄 수 있는 모든 호의를 내게 베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대가 은총과 영광을 풍부히 얻고자 한다면 복되신 동정녀께 인사드리고 당신의 선하신 어머니를 공경하십시오.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보화를 쌓아 올리는 것이다'"(집회 3, 4). 그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보화를 모으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니 성모님께 매일 적어도 성모송 쉰 번은 바치십시오. 성모송 하나하나에는 귀한보석이 열다섯 개씩 들어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보물을 합친 것보다 더없이 성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자애로우심에서 기대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시며 우리에게 친절한 분이십니다. 성모님은 온 우주의 여왕이시며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과 여왕들이 언제나 어떤 인간적인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은 실제로 그러하며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한 것과 같이 복되신 동정녀의 애덕은 모든 인류의 사랑을 훨씬 능가하며 모든 천사들의 사랑까지도 훨씬 초월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성녀 젤투르다는 금화를 세고 계시는 주님의 환시를 보았습니다. 성녀는 용기를 내어 주님께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물었습니다. 주님은 대답하시기를 "나는 네가 바치는 성모송을 세어보고 있다. 이것은 네가 천국을 사기 위해 지불할 돈이다"고 하셨습니다.  성덕과 학덕이 높은 예수회의 수아레즈 신부님은 천사의 방문인사(성모송)의 가치를 깊이 깨달은 나머지 성모송의 고귀함에 대해 깨달은 바를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며 성모송을 온전히 잘 바치는 그 값으로 자신의 지식 전부를 기꺼이 주겠노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복자 알라노는 성모님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님,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깊이 새기도록 하여 주소서. 제가 성모송을 바칠 때에는 언제든지 천상의 온 집안이 즐거워하며 또한 온 지상도 놀라 넘어지나이다.  제가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세속을 경시하게 되며 제 마음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 넘칩니다. 제가 성모송을 바치면 저의 모든 두려움은 시들어 죽어버리고 저의 격정은 사라지고 평정을 되찾습니다.  제가 성모송을 바칠 때에는 제 안에서 신심은 성장하고 죄에 대한뉘우침이 생겨나고 제 가슴 속에 희망은 굳건히 부풀어 오르고 진주 이슬 같은 위안이 제 영혼에 더욱더 떨어지며, 제가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제 영혼에 즐거움은 더해지고 슬픔은 멀리 사라집니다.  이 부드러운 인사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말도 없고, 너무나 아름답고 감미롭기 때문에 또한 그 경탄스러움을 노래하고 나서도 우리는 충만하고 질은 그 신비를 결코 다 드러내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은 짧지만 그 신비는 엄청나게 풍부하며 꿀보다 달고 금보다 더욱 값진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이것을 자주 묵상해야 할 것이며 거듭 거듭 정성스럽게 바치기 위해 입술에 줄곧 머물게 해야 합니다. "

복자 알라노가 말한 것 중에 한 예를 든다면 거룩한 묵주기도에 항상 열심이던 수녀 한 분이 죽은 후, 그 수녀원의 한 수녀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성모송을 단한 번만이라도 바칠 기회를 가지기 위해 다시 내 육신으로 돌아 갈수 있다면 비록 매우 큰 열성 없이 바치게 된다 할지라도 이기도로 공로를 얻기 위해 다시 덮쳐 올 내가 죽기 전에 받은 모든 고통을 무릎 쓰고 라도 오히려 즐겨 기도하고 싶습니다." (복자 알라노 묵주기도의 존엄성에 대하여 69장).

 

여기서 지적해야할 것은 그 수녀가 죽기 전 수 년 동안 늘 병상에서 괴로운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복자 알라노와 함께 거룩한 묵주기도 신심을 재건시키는데 함께 일했고 그의 제자였던 살루부르의 미쉘 드라일 주교는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며 정성껏 바치는 성모송은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악에 대한 구제책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스무 번째 장미꽃 (성모송에 대한 간단한 설명)


당신은 가련한 죄의 상태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거룩하신 마리아를 부르고 그분께 기도하십시오. 아베(Ave) 라는 말은 '지극히 깊은 존경으로 죄도 없고 불행도 없으신 어머니, 아주 공손하게 인사드립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성모님은 여러분을 죄로 인한 불행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무지와 오류의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고 있습니까? 그러면 마리아께 달려가 말씀드리십시오. "마리아님" 이라고 함을 "정의의 태양 빛이신 예수님 안에 잠기신 당신을 환호하나이다." 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얼마간의 빛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 떨어져 방황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마리아를 부르십시오. 왜냐하면 "바다의 별"이라는 마리아의 칭호가 의미하듯이 마리아는 이 세상의 인생 여정 동안에 우리 영혼의 배를 인도하시는 북극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부를 때에 마리아는 영원한 구원의 항구로 당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슬픔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리아께 돌아서십시오. 왜냐하면 마리아의 이름은 이 세상에서는 고통으로 가득찬 쓰라린 바다였는데, 지금은 천상에서 지극히 고결한 기쁨의 바다, 즐거움의 바다로 변한 분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슬픔을 기쁨으로, 여러분의 고뇌를 위안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은총의 지위를 잃어버렸습니까? 하느님께서 헤아릴 수 없는 은총으로 가득 채워주신 복되신 동정녀를 찬양하고 공경하며 그분께 아뢰십시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당신은 성령의 모든 은사로써 충만하십니다." 하고 말씀드린다면 그분은 당신에게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계십니까?


그러면 마리아께 호소하며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이 어머니의 아드님이시라, 그분의 살이 어머니의 살이고, 어머니는 주님과 완전히 닮으셨으며 사랑으로 주님과 함께 계시고, 주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주님과 같으시므로 의인들이나 성인들과 함께 계신 것보다 더 고귀하고 더 긴밀하게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끝으로 "성모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귀중한 성전이시므로 성삼께서 어머님과 함께 계십니다." 라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성모님은 당신을 다시 한 번 전능하신 하느님의 보호와 돌보심 하에 있게 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하느님께 쫓겨난 신세가 되었거나 버림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성모님께 말씀드리십시오. "당신은 '여인 중에 복되시며' 온 세상에서 가장 복되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순결과 무염시태로 하느님의 저주를 축복으로 돌려 버리셨습니다." 그러면 성모님은 당신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은총과 생명의 빵을 갈망하십니까? 그러면 천상에서 내려온 살아계신 빵을 태중에 모셨던 성모님께 가까이 달아들고 말씀드리십시오.

 

"당신은 동정의 아무런 손상도 없이 잉태하셨고, 노고 없이 가지시고 고통 없이 낳으신 태중의 아드님도 복되십니다." 하고 말씀드리십시오.

 

"사로잡힌 세상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십시오. 주님은 병든 이 세상을 치유하셨으며 죽음을 생명에로 일으켜 세우시고 유배된 자를 은총의 생명으로 재생시키며 사람들을 영원한 심판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하고 의심 없이 여러분의 영혼은 현세에서는 은총의 빵으로, 후세에는 영원한 영광의 빵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아멘.  교회와 함께 여러분의 기도를 끝맺으면서 "성모님" 하고 말씀하십시오.

 

성모님은 육신과 영혼이 거룩하시고,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독특하고 영원히 헌신하심으로 거룩하시며,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그 지위에 알맞은 뛰어난 거룩함을 성모님께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자격으로 거룩하십니다. 우리의 어머니시요, 우리의 전구자이시고 중개자이시며, 하느님의 은총을 맡아 나누어 주시는 분이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우리 죄의 용서와 엄위하신 하느님과의 화해를 빨리 마련해 주십시오. 불쌍한 사람들을 몹시 동정하시고, 그들이 없으면 구세주의 어머니가 아니실 그 죄인들을 업신여기지 않으시고 매몰차게 물리치지 않으시는 성모님은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짧고 연약하고 비참한 이 생명이 있는 동안인 "지금" 빌어주십시오. 강력하고 흉포한 원수들에게 밤낮으로 공격을 당하고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이 순간 밖에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이 다하고,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고통과 공포로 쇠약해지는 몹시 무섭고 위험한 "저희 죽을 때에", 사탄이 우리를 영원히 파멸시키기 위해 노력을 배가하는 우리 죽을 때에, 영원한 행복이냐 영원한 불행이냐 하는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그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오, 동정심 많으신 자애로운 어머니, 죄인들의 변호자이시며 피난처이신 성모님, 어머님의 불쌍한 자녀들을 도우러 오셔서 우리 죽을 때에 보기만 해도 무서워서 벌벌 떨게 되는, 우리를 고발하는 우리의 원수인 마귀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쫓아주십시오. 죽음의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비추어 주십시오. 당신의 아들인 우리의 심판관의 심판 대전에 우리를 데리고 같이 가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전구하셔서 아드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에 선택받은 사람들 가운데 받아들이시게 해주십시오. "아멘."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신비의 장미꽃 제2부, 제1장). 두 개의 천상적인 것, 즉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으로 이루어진 거룩한 묵주기도의 아름다움을 탄복하지 않겠습니까? 이 보다 더 전능하신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녀를 기쁘게 해 드리고 더 쉽고 더 좋고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되는 기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극히 복되신 삼위일체와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를 공경하기 위하여 항상 이 기도를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매 단이 끝날 때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하는 영광송을 바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영광의 하느님께서 태초에 계셨으며 지금도 계시고 또 영원히, 세상 끝없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스물한 번째 장미꽃 (묵주기도의 열다섯 가지 신비)

 

신비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고 또한 성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은 그분만이 단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시기 때문에 전적으로 거룩하시고 하느님의 업적입니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행적 역시 그분이 하느님의 창조물 중 가장 완전하며 순수하기 때문에 대단히 거룩합니다.

 

주님과 그의 복되신 모친의 행적을 바로 신비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까닭은 그분들이 하신 일에는 그분들을 공경하는 겸손하고 순직한 영혼들에게 성령께서 밝혀주신 놀라운 일들과 완전성을 갖춘 깊고 숭고한 진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일들은 경이에 찬 꽃들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데, 이 꽃들의 향기와 아름다움은 이 꽃들을주의깊게 공부하는 사람들, 즉 근면하고 정성을 다한 묵상으로 그 꽃들을 열어젖히고 그 꽃향기들을 흡입하는 사람들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성 도미니코는 주님과 성모님의 생애를 그분들의 성덕과 매우 중요한 행적에 입각하여 열다섯 신비로 나누었습니다. 이것들은 그분들의 덕행과 주요한 행동들을 그림처럼 열다섯 가지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모든 특징들은 바로 우리 일생의 행동의 규칙과 본보기의 역할을 합니다.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열다섯 개의 횃불이고,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를 알고 또 우리 자신을 잘 알도록 도와주는 열다섯 개의 반짝이는 거울들입니다. 그것 역시 우리 마음에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사랑의 불을 밝히는데 도와 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예수 마리아의 천상불꽃으로 완전히 타 버리게 할 수 있는 열다섯 개의 불타는 용광로입니다. 성모님은 성 도미니코에게 이 탁월한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주셨고,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열성을 일깨우고 신자들의 가슴 속에 우리의 사랑하올 주님께 대한 사랑을 다시 살리기 위하여 이 기도를 더욱 널리 전파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성모님 또한 복자 알라노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셨고 발현의 환시 중에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모송 백쉰번을 외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유익한 기도이며 내게 매우 즐거운 선물이 된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수난을 묵상하면서 성모송을 한다면 그것은 내게 더 큰 즐거움이 되고 그들은 더욱 좋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묵상은 이 기도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 우리 구원의 성스런 신비에 대한 묵상 없이 바치는 묵주기도는 영혼 없는 육신과 같은 것이며 훌륭한 재료라 해도 묵상이라는 형태가 없는 것입니다. 이 재료를 고정시켜 주는 형태인 묵상이 다른 모든 신심들과 구별되는 점인데 묵상이 없다면 형상이 없는 훌륭한 재료일 뿐입니다.  묵주기도의 첫 부분에는 다섯 가지 신비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그리스도 탄생에 대해 알린 것이고, 둘째는 성모님이 사촌 엘리사벳을 찾아보심 이고,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며, 넷째는 예수 아기를 성전에서 봉헌하심과 성모님의 취결례이고, 다섯째는 성전에서 박사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다시 찾으신 것입니다. 이 신비들이 온 우주에 준 큰 기쁨 때문에 환희의 신비라 부릅니다.  성모님과 천사들은 천주 성자께서 강생하시는 복된 순간에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성녀 엘리사벳과 성 세례자요한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몹시 기뻤습니다. 우리 구세주께서 나실 때 하늘과 땅이 기뻐했고, 시메온은 자기 팔에 예수 아기를 안을 때 크나큰 위안을 느꼈고 기쁨이 가득 찼습니다.  

 

박사들은 소년 예수의 답변에 탄복하고 놀라워했습니다. 또 예수님을 사흘만에 다시 찾은 마리아와 요셉의 기쁨을 누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묵주기도의 둘째 부분에도 다섯 가지 신비가 들어 있는데, 그것을 고통의 신비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그 신비들이 슬픔으로 짓눌리고 상처투성이가 되시고 모욕과 고통과 형고로 괴로움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들 중의 첫째는 예수님이 올리브 동산에서 고민하시며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시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님께서 매 맞으시는 것이고, 셋째는 예수님께서 원수들에 의해 가시관을 쓰신 것이고, 넷째는 예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을 오르신 것이고, 다섯째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갈바리아산 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묵주기도의 셋째 부분에는 또 다른 다섯 가지 신비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영광의 신비라 부릅니다. 그것은 그 신비에서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개선하시어 영광중에 계심을 묵상하며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들의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고, 둘째는 예수의 승천이고, 셋째는 성령께서 사도들 위에 내려오심이며, 넷째는 영화로우신 성모님의 승천이고, 다섯째는 성모님이 천상에서 모후의 왕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신비로운 장미나무의 향기로운 열다섯 송이의 장미꽃들입니다. 열심한 영혼들은 지혜로운 꿀벌처럼 이 꽃들에게 날아가 그 꽃즙을 모으고 굳건한 신심의 꿀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스물두 번째 장미꽃 (신비에 대한 묵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영혼의 주요 관심은 완덕을 지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성 바오로는 우리에게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에페 5, 1).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의무는 영원한 영광에 이르기 위해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해 주신 유일한 방법으로서 우리를 간택하신 영원한 지위 안에 포함된 것입니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매우 명쾌한 비유로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는 예술가이며 우리 영혼은 우리가 그림으로 채워 넣어야 할 공백 상태의 도화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용해야 할 물감은 그리스도의 덕행이며, 우리의 모델은 성부의 살아계신 완전한 모상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마치 화가가 초상화를 실물 그대로의 훌륭한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는 모델을 눈앞에 두고 화필을 움직일 때마다 모델을 쳐다보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덕행들을 눈앞에 두고,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결코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실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도미니코 성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성스런 신비를 묵상하도록 신자들을 가르치게 하신 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고 찬미하게 하기위해서 뿐 아니라, 주로 그들의 생활과 행동을 그분의 덕행에 부합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를 보고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본받고 부모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들의 어투를 배우게 됩니다. 견습공은 자기 주인이 하는 일을 봄으로써 기술을 익히는 것과 같이 거룩한 묵주기도회의 신심 깊은 회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열다섯 가지 신비를 경건하게 묵상함으로써 하느님이신 그 스승의 은총과 복되신 그의 성모님의 전달로 그 스승과 비슷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모세가 유다 백성들에게 그들이 넘치도록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절대로 잊지 말라고 명령하고 그들을 통솔할수 있도록 하느님의 영도를 받았다면, 예수님께서는 더욱이 우리 마음에 깊이 당신의 생애와 수난과 죽음의 신비를 새기고 항상 우리 눈앞에 그것을 보존하도록 우리에게 명하실수 있습니다. 그 신비들이야말로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깨우쳐주며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너무나 벅찬 사랑과 열망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길가는 나그네들이여,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시오. 내가 당신들에 대한 사랑으로 겪는 이 고통과 같은 고통이 또 있었소?  내 가난과 굴욕을 기억하고 당신들을 위해 겪는 고난과 수난을 생각하시오. "이 말씀들과 인용할 수 있을 다른 많은 말씀들은 우리가 주님과 성모님을 공경하기 위해 묵주기도를 입으로만 드리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신비들을 묵상하면서 드려야 한다는 것을 더욱 확신시켜 줍니다. 

 

 

스물 세 번째 장미꽃 (묵주기도는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의 신적인 짝이시며 지극히 사랑하올 벗인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선하심과 당신의 모든 은혜를 명심하기를 원하시며 그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보상을 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정성껏 사랑을 다해 묵주기도의 성스런 신비를 묵상할 때는 언제든지 주님께서도 성모님과 천상의 모든 성인들도 큰 즐거움을 갖게 됩니다. 이들 신비들은 우리에게 대한 주님의 사랑의 가장 독특한 결과이며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러한 선물로 성모님 자신과 모든 성인들도 천상에서 그들의 영광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폴리노의 복녀 안젤라는 주님께 당신을 가장 잘 공경할 수 있는 신심행위를 알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딸아, 내 상처를 바라보아라." 그때 복녀 안젤라는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는 것보다 우리 사랑하올 주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당신 머리의 상처를 그녀에게 보여주셨고, 또한 한층 더 다른 고통을 계시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너의 구원을 위해 참아 받았으며, 나의 이러한 너에 대한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너는 무엇을 할수 있겠느냐?" 미사성제는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께 무한한 공경을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재현하는 것이며 미사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 주님의 순명과 고통, 그리고 주님의 고귀한 성혈의 공로를 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상의 온 집안도 역시 미사로부터 뜻밖의 큰 즐거움을 더불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교회 여러 학자들은 천상의 모든 축복받은 이들이 이로써 영광을 받고, 또 같은 이유에서 신자들의 영성체를 즐거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체성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고, 이 방법으로 사람은 미사의 열매를 나눠 받게 되며 자신들의 구원을 촉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신비를 함께 묵상하며 바치는 성스러운 묵주기도는 우리 구원의 크나큰 은총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는 찬미의 제사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 영광에 대한 성스러운 추억입니다.  

 

그러므로 묵주기도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께, 그리고 축복받은 모든 이들에게 영광을 드리고 뜻밖에 큰 즐거움을 드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주님께 그렇게 영광이 되고 우리 구원에 유익한 묵주기도 실천에 집념하는 우리를 보는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는 회개하고 통회하는 죄인들이 모든 천사들을 기쁘게 한다고 확언합니다. 통회하고 회개한 죄인 하나가 천사들을 즐겁게 하는데 충분하다면 그리스도의 굴욕과 고문과 가혹하고 치욕적인 죽음을 경건하게 정성과 사랑을 다해 묵상하는 이 지상의 우리를 바라보는 것은 주님께 얼마나 더 큰 영광이 되며 온 천상 집안에 크나큰 행복과 환희가 되겠습니까?  이것보다 더욱 확실히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 진실하게 회개시킬 효과적인 것이 또 있습니까? 묵주기도의 신비를 묵상하지 않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우리주님께 아주 배은 망덕하는 것이며, 이 세상을 구원 하시려고 온갖 고통을 감수 인내하신 우리 구세주께 참으로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무시하고 조금 알 정도이거나 아니면 전혀 모른다는 것이며, 우리를 구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하신 일과 그분이 받으신 고통에 대해 조금도 알려는 노력이 없음을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부류의 그리스도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거나 잊은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날에 그들에게 당신과의 관계를 부인하실 것이며 책망하실 것입니다. "분명히 들으시오.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마태오 25, 12) 그러니 거룩한 묵주기도로써 주님의 생애와 고통을 묵상합시다.  주님의 모든 축복에 대해 감사하고 최후의 심판날에 그리스도의 자녀요 벗들 중에 우리를 헤아려 넣어주시도록 그분을 잘 알고 그분의 은혜를 인정하는 일을 배웁시다.

 


스물네 번째 장미꽃 (묵주기도의 신비들을 묵상하는 것은 완덕의 훌륭한 방법이다)

 

성인들은 항상 주님의 생애를 자신들의 중요한 연구 과제로 삼았으며 이 방법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완덕에 이르렀습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이 묵상을 한 번 시작하면 그 묵상을 계속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입교한 바로그때부터 구세주의 고통으로 이루어진 몰약의 꽃향기를 나는만들었다. 나는 구세주의 수난의 채찍과 가시와 못을 생각하며 내 마음에 이 꽃향기를 간직했다. 그래서 매일 이들 신비를 묵상하기 위해 온 정신력을 사용하였다. "거룩한 순교자들도 역시 이와 같이 실천하였으니 우리는그들이 어떻게 그 혹독한 고통을 참아 이겨냈는지 감탄합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순교자들의 그 놀라운 인내와 항구심은 오직 한 가지 원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에 대한 꾸준한 묵상에서만 솟아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순교자들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 속에 들어 있었고, 그 상처들이 그들을 결코 꺾을 수 없는 무적의 용사로 만들었습니다.  구세주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는 일생 동안 당신 아들의 덕행과 고통을 묵상하는 데에만 전념하셨습니다. 그리스도탄생의 기쁨을 노래하는 천사들의 합창을 들었을 때, 말구유에 누워있는 구세주 아기를 경배하러 목동들이 찾아온 것을 보았을때, 성모님의 마음과 정신은 놀라움으로 차 있었고 이러한 모든 기묘한 일들을 묵상하였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말씀의 강생의 위대함을 그분의 질은 겸덕과 비교하셨고, 짚과 구유를 천상의 옥좌와 영원하신 성부의 품속과 비교하셨고, 또한 성모님은 하느님의 전능과 어린 아기의 연약함을, 하느님의 지혜와 아기 예수의 순박함을 비교해 보기도 하셨습니다.  

 

어느 날 성모님은 비르짓다 성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의 아름다움과 예모와 지혜를 묵상할 때에는 내 마음은 언제나 기쁨에 어쩔 줄을 몰랐는데 잔혹한 못에 찢어진 그의 손과 발을 생각할 때에는 내 마음은 통곡했고 슬픔과 고통으로 찢어졌다. "예수 그리스토의 승천 후 성모님은 당신의 여생을 하느님이신 구세주께서 당신이 계심으로나 당신의 고통으로 거룩하게 하셨던 곳곳을 순례하면서 보내셨습니다. 성모님은 그런 곳에서 더할 수 없는 구세주의 무한한 사랑과 무서운 수난을 묵상하곤 하셨습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생뜨 보메에 은거하여 기도 생활을 할 때 마지막 30년을 이와 같은 신심 행위 외에는 다른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Sainte Baume(성유)라고 후에 불려진 프로방스에서 마지막 30년의 여생을 보냈다. 생뜨 보메의 도미니코회 성당순례자들은 이곳에 보존되어 있는 성녀의 머리 유물을 공경하려고 가는 것이다(가톨릭 대 백과사전).  예로니모 성인은 성지에 대한 신심은 초대교회 때의 신자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 왕국의 전 지역에서 성지로 모였는데 그리스도의 탄생과 행적과 고통의 죽음으로 거룩해진 장소와 모든 것을 봄으로써 자기들 마음에 구세주의 위대한 사랑을 깊이 새기고 회상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한 신앙을 가졌으며 한 분이며 동일한 하느님을 흠숭하며 천상에서 동일한 행복을 모두 희망합니다. 그들은 유일한 중개자 예수 그리스토를 모시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모습을 전적으로 본받아야 하며 이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구세주의 생애와 덕행과 영광의 신비를 묵상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신앙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신비를 묵상하는 것을 세속의 흥진 속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 사제들과 수도자만이 관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큰 잘못입니다.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그들의 소명에 제대로 응하며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의 거룩한 신앙의 위대한 진리를 묵상할 의무가 있지마는, 세상에 사는 평신도들도 그들이 날마다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릴만한 영신적 위험을 만나는 사실 때문에 적어도 같은 정도의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묵주기도의 열다섯 가지 신비 안에 매우 아름답게 포용된 사랑하올 주님의 생애와 덕행과 고통에 대해 자주 묵상함으로써 자신을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스물다섯 번째 장미꽃 (묵주기도와 그 신비 묵상 안에 들어 있는 성화의 재산들)


어느 누구도 거룩한 묵주기도의 기도와 신비 묵상 속에 내포된 성화의 놀랄만한 보물을 실제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묵상은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놀라운 결실을 내는 원천이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영혼에 깊은 인상을 넣어주고 옮겨주고 심어주는 것들을 원합니다. 일찌기 열다섯 가지 주요한 장면으로 우리 구세주의 생애와 죽음과 영광의 놀라운 신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이 경탄할 만한 이야기보다 더 감동적인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보다 더 훌륭하고 숭고한 기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모든 열망과 요긴함이 여기에 다 표현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묵주기도와 묵주기도의 신비에 대한 묵상은 모든 기도 중에서 가장 쉬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양한 덕행과 폭넓은 활동 범위가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고 강하게 해주며 잡념들을 피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들 신비가 더욱 깊은 교리의 자료가 되며 단순한 사람들은 그 보화 안에서 훌륭한 교훈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관상생활의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묵상의 이 쉬운 방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이것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삼구(육신과 세속과 마귀) 전쟁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실천해야 할 것으로써 바로 거룩한 묵주기도가 우리에게 주는 모든 덕행을 따름으로써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남겨준 충고입니다.

 

학덕이 높았던 가예타노는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과의 가장 친밀한 일치에 도달하게 하는 길인데 사실 이런 일치 없는 관상생활은 영혼을 속일 수 있는 환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현대의 계몽주의자들이나 정적 주의자들이 이러한 충고를 조금이라도 따랐더라면 그들이 결코 저열하게 떨어져 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러한 악표양을 유발하지도 않고 착실한 사람들의 신심을 뒤엎어 놓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기도를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악마의 교활한 교란의 희생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들 천상적 기도들은 우리 영혼의 지주이고 힘이며 안전장치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기도를 염경기도로만 바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묵상기도가 염경기도보다 더 완전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더 완전하게 일치한다는 핑계로 묵주기도 외는 것을 고의적으로 그만둔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해로운 것이 아니더라도 매우 위험스러운 사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때때로 미묘한 방법으로 자만하는 영혼이나, 성인들의 기도의 숭고한 높이에까지 올라가기 위해 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 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그 이전신심을 포기할 정도로 낮도깨비에 홀려 속아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그 때문에 그는 이 묵주기도를 평범한 서민층 사람들에게나 적당하고, 좀 낮은 것으로 여겨 자신의 이전 신심을 업신여기고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류의 영혼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대천사가 가르쳐 준 기도와 인사에, 그리고 하느님께서 만드시고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하셨던 그 기도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 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마태오 6, 9)·..."에까지 귀를 막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허덕이는 영혼들은 부지중에 첫 번 혼란에서 더 큰 혼란으로 빠져 들어가며 절벽에서 다시 절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묵주기도회의 사랑하올 형제자매들이여, 제발 여러분이 악마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쳐놓은 올가미에 떨어짐 없이 꿀 같은 기도의 높은 수준에 순수히 도달하고 싶다면 매일 묵주기도를 온전히 바치십시오. 15단을 못 바치겠거든 적어도 5단만이라도 바치십시오.  만일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여러분이 기도의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면 그래서 여러분이 그 상태에 계속 머물고 싶고 그를 통해 겸덕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면 거룩한 묵주기도의 실천을 지켜 나가십시오. 따라서 확실히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결코 결정적으로 이단자가 될 수 없고 악마에 의해 곁길로 빠져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피로써 서명할 용의가 있는 명제입니다.  또 한편으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무한한 자비로 몇몇 성인들에게 주었던 것과 같이 힘 있게 여러분을 당신에로 끌어올리신다면 여러분 자신을 당신 손 안에서 수동적인상태로 만드시고 당신을 향해 이끌리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고 기도하시게 한며 그분께서 여러분의 묵주기도를 당신 방법대로 하시도록 맡기십시오. 그리고 그것으로서 그날은 만족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만일 적극적 관상기도나 평상적인 조용한 기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현존 안에 자신을 보존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되는데 그것이야말로 여러분이 묵주기도를 포기하지 않게 되는 세상의 온갖 이유를 갖추는 것이 됩니다.  또한 그것은 여러분이 묵상기도의 영역을 잃게 되거나 영신적 발전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그것이 실질적인 15개의 횡목으로 엮어진 야곱의 사다리가 되어 이 횡목 하나하나를 밟고 덕행에서 덕행으로, 광명에서 광명으로 나아가 현혹될 위험 없이 쉽게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그것이 실질적인 15개의 횡목으로 엮어진 야곱의 사다리가 되어 이 횡목 하나하나를 밟고 덕행에서 덕행으로, 광명에서 광명으로 나아가 현혹될 위험 없이 쉽게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스물여섯 번째 장미꽃 (숭고한 기도)

 

여러분은 묵주기도를 말할 때 자주 거론하게 되는 로마의 억지 부리던 그 부인을 제외하곤, 어떤 열성가처럼 제멋대로이기주의자가 되지는 마십시오. 그 부인은 자신의 거룩한 생활로 교회내의 엄격한 수도자까지도 부끄럽게 할 만큼 열심이고 열성적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자기 영신 생환에 대하여 도미니코 성인의 지도를 받으려고 마음먹고 성인에게 고해성사를 청했습니다. 성인은 그에게 보속으로 묵주기도 15단을 바치라고 했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매일 로마 성당을 순례하며, 14처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굵은 베옷과 고복을 입으며, 일주일에도 여러 번 자신을 편태하고, 또 다른 보속을 많이 하며, 수없이 단식을 한다는 이유로 묵주기도를 바칠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성인은 거듭 거듭 부인에게 자기 충고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하고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권했지만 그 부인은 그 권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고해소를 떠나 보속으로 준 이 새로운 영신 지도자의 방법을 싫어한 나머지 자기가 전혀 좋아하지 않는 이 신심기도를 한번 바치기 위해 자신을 설복시키는 데 여간 애를 먹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기도 중에 탈혼 상태에 빠졌을 때 주님의 심판석 위에 자기 영혼이 서있는 환시를 보았습니다.

 

성 미카엘 대천사가 자기의 모든 보속과 기도를 천평 저울 한쪽 접시에 얹어놓고 다른 쪽 저울판에는 그녀의 모든 죄와 결점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선행의 저울 접시쪽이 죄와 결점의 저울 접시 때문에 가볍게 올라가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그만 겁에 질려 복되신 동정녀의 도움과 은혜로 전달을 청하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성모님은 그 부인이 단 한 번 보속으로 바쳤던 묵주기도만을 가벼운 선행의 저울 접시에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이 한 번의 묵주기도가 자기 모든 선행과 모든 죄보다도 더 중량이 무거웠습니다.  그때 성모님은 그 부인이 당신의 종 도미니코 성인의 충고를 따르려 하지 않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책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제 정신을 차리게 된 그 부인은 도미니코 성인에게로 달려가 그의 발 아래 엎드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불신앙을 용서해 달라고 용서를 빌며 매일 묵주기도를 충실히 바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 부인은 이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완덕에로 향상되어 나갔으며 결국 영원한 영광에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사실에서 신비에 대한 묵상을 함께 하며 바치는 지극히 성스러운 묵주기도에 얼마나 놀라운 힘이 있는가를 배우십시오. 몇몇 성인들은 바로 주님과 성모님의 슬하에서 묵상기도를 배우는 특전을 가졌습니다. 천사들에 의해 천상에 들어 올려졌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보다 더 높은 기도의 경지에 이른 이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성녀는 어느날 하느님의 사랑에 더 전진하며 완덕의 높은 단계에 이르는 확실한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카엘 대천사를 보내시어 당신의 수난을 묵상하는 것보다 완덕에 도달하는 다른 길이 없음을 말하게 하였습니다. 천사는 성녀의 동굴 앞에 세워놓은 십자가 한 가운데에서 자기 눈으로 보았던 고통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시대의 위대한 영신 지도자였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모범은 여러분이 거룩한 묵주기도회에 가입하도록 박차를 가해 줄 것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거룩한 분이었는데도 살아있는 동안에 날마다 매일 묵주기도 전부를 바치겠노라고 서약하여 의무를 지고 이를 실천했습니다.  가롤로 보로메오 성인도 역시 매일 묵주기도를 바쳤으며 자기 교구 사제들과 신학교의 성직자들과 모든 교우들에게도 이 신심을 강력히 권장하였습니다.  일찍이 교회를 통솔했던 가장 위대한 교황들 중의 한 분이신 비오 5세 성인도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셨습니다. 발렌스의 대주교, 빌라노바의 성 토마스, 성 이냐시오, 성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성녀 데레사, 성 필립보 네리, 그 밖에 일일이 여기에 열거하지 못하는 다른 많은 위대한 분들이 모두 이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이 깊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들의 모범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의 영신 지도자들도 기뻐할 것이고, 여러분들의 지도자들이 이 신심에서 얻는 성과를 알게 된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먼저 이 신심을 택하도록 촉구할 것입니다. 

 

 

스물일곱 번째 장미꽃 (은전)

 

나는 여러분들에게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실천했던 이 신심을 한층 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해 신비들을 묵상하며 바치는 묵주기도가 다음과 같은 기적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덧붙여 말하겠습니다.  첫째는,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높여 주어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알도록 점진적으로 깨우쳐 줍니다.
둘째는, 우리 죄를 씻어 주고 우리 영혼을 정화시켜 줍니다.
셋째는, 우리의 모든 원수들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해줍니다. 넷째는, 우리가 쉽게 덕행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다섯째는, 주님께 대한 사랑에 불타게 해 줍니다. 여섯째는, 우리를 은총과 공로로 부유하게 해 줍니다. 일곱째는, 하느님과 우리 이웃 사람에게 진 모든 빛을 갚기 위해 요긴한 것을 보충해 주며 끝내는 전능하신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은총을 우리에게 얻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지식이며 구원을 위한 지식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 지식은 가치 면에 서나 완전성에 있어서 모든 인간적 과학에 비할 바 없이 뛰어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필립 3, 8참조).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대상은 존엄하신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분의 존엄성 때문에 그러하고 그분 앞에서는 이 세상은 한낱 한 방울의 물이나 한 알의 모래에 지나지 않습니다.  둘째로는, 그 유익 때문에 그러합니다. 인간적인 지식은 우리에게 교만의 바람과 안개와 같이 공허한 자만심만을 가득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그 필요성 때문에 그러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깨달음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지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 의해 빛을 받는다면 구원받겠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생애와 죽음과 수난과 영광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 사랑하올 주님에 대한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묵주기도는 정말 다행스러운 것입니다.

 

세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에 넋을 잃고 탄복하여 말하였습니다. "언제나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2역대 9, 7) 그런데 우리 구세주의 생활과 덕행과 고통과 영광을 주의 깊게 묵상하는 신앙인들은 더욱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방법으로써 영원한 생명이 달려있는 완전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 3).성모님께서는 복자 알라노에게 도미니코 성인이 묵주기도를 전파하기 시작하자마자, 완고한 죄인들까지도 이에 감동을 받아 간절히 통회하며 자기 중죄를 뉘우쳤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이 어린 어린이들까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참회보속을 실천하였으며, 성인이 묵주기도를 전파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죄인들이 생활을 개선하고 모든 사람들이 보속하고 회개하며 교화되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양심이 죄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면 묵주를 붙잡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나 수난이나 영광의 어떤 신비만이라도 공경하는 뜻으로 적어도 한 부분이라도 묵상하며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들 신비를 묵상하고 공경할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성스러운 상처를 천상성부께 보여드릴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변호하실 것이며 여러분의 죄에 대한 통회와 용서를 얻어 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는 복자 알라노에게 "만일 불쌍하고 가련한 죄인들이라 할지라도 묵주기도를 바친다면 내 수난의 공로를 나눠받게 될 것이며 나는 그들의 변호인으로서 성부의 공의하심을 진정시켜 줄 것이다" 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생활은 끊임없는 투쟁과 일련의 유혹입니다. 우리는 살과 피로 된 적들과 혈육의 원수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옥의 강력한 세력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적들과 싸우기 위해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와 악령들을 내쫓고 죄악을 파멸시키고 이 세상을 혁신시키는 "천사의 인사(성모송)"와 우리 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에 대한 묵상보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더 좋은 무기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 베드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쳐 이기셨는데도 우리를 매일 괴롭히는 똑같은 그 원수들을 대항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에 대한 생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악마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겸덕과 수난으로 부서졌기 때문에 주님의 생활에 대한 묵상으로 무장된 영혼을 공격할 수가 없으며 만약 그러한 영혼을 괴롭히려 덤벼든다면 부끄럽게도 패배할 것이 틀림없다"고 후게스 추기경은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하십시오."(에페 6, 11) 그와 같이 하느님의 무기, 즉 거룩한 묵주기도로 여러분 자신을 무장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악마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며 모든 유혹에 직면하였을 때에도 튼튼히 서있게 될 것입니다.

 

묵주라는 물질적 재료 자체까지도 악마에게는 매우 무서운 것이어서 성인들도 악마를 얽어매는데 묵주를 사용하였고, 악마에게 점령된 사람들의 몸 밖으로 악마를 내쫓는 데에도 묵주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한 여러 실제적 사건들을 증언하는 기록을 많이 보고되었습니다.

 

복자 알라노는 당신이 알고 있는 어떤 마귀들린 사람이 자신을 점유하고 있는 그 악령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려고 온갖 신심을 다 실행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절망적인 상태에 있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목에 묵주를 걸 생각을 하게 되어 묵주를 목에 걺으로써 실제로 꽤 안정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에건 묵주를 벗길 때면 악령은 또다시 자신을 잔혹하게 괴롭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아예 밤낮 없이 묵주를 목에 걸고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악령은 더 이상 그 무서운 쇠사슬을 차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영영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복자 알라노는 묵주를 이렇게 목에 걸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악령으로부터 구해 주었다고 증언합니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쟌 아마 신부님은 아라곤 왕국에서 사순절 강론을 하고 있었는데 악령에게 사로잡힌 나이 어린 한 소녀가 그에게 왔습니다.  그 신부님은 여러번 구마경을 하고 악마를 내쫓으려 했지만 별 효과가 없자 자기 묵주를 그 소녀의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녀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더니 찢어지는 듯 한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떼어 주세요. 나를 괴롭히는 이 알을 떼어줘!" 그 소녀가 너무나 가엾게 보여 신부님은 그 묵주를 떼어 주었습니다. 바로 그날 밤, 신부님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그 소녀를 사로잡고 있었던 악마가 찾아와 화가 나서 거품을 물고 날뛰며 신부님의 몸을 잡아 채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신부님은 손에 묵주를 움켜잡고 있었기 때문에 마귀들도 신부님으로부터 묵주를 빼앗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의 모후여, 저를 도우러 오소서!" 하고 묵주로 마귀들을 호되게 때려 주려 하자 그만 마귀들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신부님이 성당에 가다가 아직도 마귀가 떨어지지 않은 그 불쌍한 소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소녀 안에 있던 마귀들 중 하나가 신부님을 비웃고 놀리면서 말했습니다. "야! 이 친구야, 만일 네가 묵주만 안 가졌더라면 우리가 너 같은 것은 단단히 혼내줬을거다!"  이 말을 들은 그 착한 신부님은 더 지체하지 않고 다시 그 소녀의 목에 자기 묵주를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악마들아,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의 힘으로 너에게 명한다. 이 몸에서 썩 나가라." 그러자 마귀들은 어쩔수 없이 곧 복종하였고 그 소녀는 악마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거룩한 묵주기도의 힘이 악마와 온갖 죄악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유혹을 이겨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축복받은 묵주알은 악마를 내쫓을 수 있는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물여덟 번째 장미꽃 (구원의 효과)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아주 힘차게 어떤 영신적 수련행위로 자주 구세주의 고통을 생각하는 것만큼 더 유익하거나 더 풍부한 결실을 내는 것은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제자로 삼았던 복자 알베르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단순히 생각하거나 묵상하는 것이 1년 내내 금요일 마다 빵과 물만으로 단식 생활을 하거나 매주 한 번씩 자신을 피가 날 때까지 편태를 하거나 매일 시편집을 전부 바치는 것보다 그리스도인에게 더 많은 공로가 된다는 것을 계시로 알았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구세주의 온 생애와 수난을 기억하는 거룩한 묵주기도로 얻는 공로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어느 날 성모님께서는 미사 후에 복자 알라노에게 "미사는 가장 생생하게 사랑하올 우리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고 미사 다음으로는 묵주기도보다 더 좋은 신심이나 더 큰 공로가 되는 신심이 있을 수 없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에 대한 기억이요, 표현과 같은 것으로 둘째가는 거룩한 신심이다" 라고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돌란드 신부님 말씀에 의하면 1481년 성모님께서는 트레베스에 살면서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있던 카르투시오 회의 수도자인 가경자 도미니코에게 "어떤 신자가 은총의 지위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을 묵상하면서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언제나 그의 모든 죄를 온전히 전적으로 용서를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은 또 복자 알라노에게 이런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나의 묵주기도를 바칠 때 벌써 수많은 은사를 붙여주었지만 대죄가 없는 상태에서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 바치는 사람들에게는 다섯 단을 바칠 때마다 더 많은 은사를 덤으로 보태줄 것이라는 것을 알아라. 이렇게 하면서 묵상과 더불어 거룩한 묵주기도의 신심을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또 나는 그에게 죽을 때에 자기 모든 죄의 벌과 허물에 대한 전적인 용서를 얻어 줄 것이다. 이것이 네가 믿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고 믿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하늘의 왕의 어머니이고은총이 가득하신 자라고 불리는 만큼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은총을 가득히 입은 내가 그것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자유로이 베풀어준다. "

 

도미니코 성인은 거룩한 묵주기도의 효력과 그 위대한 가치를 확신하고 계셨기 때문에 고해성사 때의 보속으로 묵주기도 외에 다른 어떤 보속은 잘 주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도미니코 성인이 보속으로 묵주기도를 한 꿰미를 보속으로 바치도록 한 로마의 부인에 대한 일화 속에서 그 실례를 알고 있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위대한 성인이므로 이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다른 고해신부들도 성스러운 신비를 묵상하며 바치는 묵주기도를 고해성사 때 보속으로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보속을 준다는 것은 오히려 공로가 적을 것이며, 하느님께도 덜 의합하며 그들을 덕행의 길로 나가도록 도와주는데 있어서도 묵주기도만 못하며, 죄를 피하는 데도 묵주기도만큼 효과적인 것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다른 신심에서는 얻어지지 않는 은사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라시우스 수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에 대해 묵상하는 묵주기도는 확실히 주님과 성모님을 매우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며 모든 은총을 얻는데 가장 성공적인 방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과 동시에 우리에게 기도를 부탁한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그리고 온 성교회를 위해서도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서 우리의 모든 요구에 응해 줄 수 있는 묵주기도로 돌아갑시다. 그럴때 우리는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청하는 은총을 틀림없이 얻을 것입니다.

 


스물아홉 번째 장미꽃 (구원의 방편)

 

성 디오니시오는 영혼들의 구원에 협력하고 영혼을 파멸하려는 악마의 간계를 부수는 것보다 더 숭고하고 더 훌륭하며 하느님께 더 의합한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주 성자께서는 다만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지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교회를 세우심으로써 사탄의 세력을 꺽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9세기, 12세기, 13세기에 온 세상에 퍼뜨린 알비파의 이단과 증오와 분쟁과 지독한 악습들로 인해 다시 힘을 얻고 영혼들에게 잔혹한 타격을 가해 원한을 풀었습니다.  이러한 무서운 혼란을 치료하고 사탄의 세력을 어떻게 능히 격퇴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교회의 수호자이신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거룩한 성자의 의노를 진정시키고 이단을 뿌리채 뽑아버리며 그리스도교 윤리 도덕을 재건시키기 위한 가장 힘찬 방법으로 우리에게 거룩한 묵주기도회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방법은 교회 초기의 전성시대에 영양소가 되었던 것처럼 다시 성사를 자주 받게 하고 애덕을 도로 불러일으켰으며 그리스도교 윤리도덕을 재건시킨 결과가 그 값어치를 증명하여 주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는 칙서에서 "묵주기도회는 교회를 파괴하려는 악마를 제지시키는 방벽으로서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녀를 공경하기 위해 창설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묵주기도는 하느님의 의노를 진정시키고 성모님의 전달을 간청하는 방법으로 천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리우스 3세 교황께서도 "묵주기도는 성모님의 특별한 배려로 우리에게 하늘의 문을 더욱 쉽게 열려 지도록 하기 위해하느님이 감도해 주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오로 3세와 복자 비오 5세 교황께서도 묵주기도는 신자들이 영신적 평화와 위안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언명했습니다. 확실히 모든 사람은 그러한 숭고한 목적을 위해 창립된 묵주기도회에 가입하고 싶을 것입니다. 카르투시오회의 도미니코 신부는 거룩한 이 묵주기도에 매우 신심이 깊었는데, 어느 날 천국이 환히 열리고 천국 궁전이 거대한 차림으로 정열하여 운집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황홀한 음율로 묵주기도를 노래하는 것을 들었는데 묵주기도의 한 단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과 영광의 신비를 공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모님의 성스런 이름을 말할 때는 머리를 숙이고 예수님의 이름을 말할 때는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회 회원들이 이 지상에서 바치는 거룩한 묵주기도를 통하여 지상과 천상에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심에 감사를 드리는 것을 주의하여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그들이 이 신심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향나는 화려한 꽃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아름다운 화관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모두 온전한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그들이 천상에서 착용할 수 있는 자신들의 화관을 만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르투시오회 수도자가 본 거룩한 환시는 사도 요한이본, 묵시록의 환시와도 매우 비슷합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 구원을 위하여 수난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수많은 천사와 성인들의 무리를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묵주기도회의 신심깊은 형제들이 바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묵주기도가 여자들과 어린이들과 순직한 사람들과 무식한사람들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묵주기도는 남자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위대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도미니코 성인이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회를 세우라는 천상의 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노첸시오 3세 교황께 품달하자마자, 성하께서는 즉시 이를 전적으로 지지하셨고 성 도미니코에게 이를 전파하도록 격려하시며 친히 묵주기도회의 회원이 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많은 추기경들도 큰 열성으로 이 신심을 옹호하였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로페즈는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어느 누구도, 다른 어떤 조건도 거룩한 묵주기도 신심으로부터 한 사람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신심회는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졌는데 공작의 신분과 왕자들도 있으며 고위 성직자, 추기경, 교황들도 있습니다.

 

이 책자에 그 이름을 다 열거하기에는 너무 길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그대도 이 신심회에 들어오게 된다면 세상에서는 그들의 신심을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은총에 한몫 끼어 은총을 나누어 받게 될 것이고, 하늘에서는 여러분이 신심 안에서 그들과 일치기리 때문에 여러분은 영광중에 있는 그들의 지위에 한 몫 끼게 될 것입니다. " 

 

 

서른 번째 장미꽃 (묵주기도회의 특전)

 

만일 특전과 은총과 은사가 어떤 신심회를 추천할만한 것이 되게 한다면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회는 교회의 가장 보람된 모임이며 신자들에게 가장 추천할 만한 신심회이기에 적극적으로 가입하도록 강조되어야 할 모임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내의 다른 어떤 단체보다 더 많은 은사가 주어졌기 때문이며, 또한 그 시초부터 줄곧 그 이상의 특전으로 풍요하게 해 줄 교회의 보고를 열어놓지 않는 교황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황 레오 13세께서는 이에 대한 은사의 기록부를 수정해 주셨다. 다만 여기서 성 루도비코의 원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옮겨 놓는다. 묵주기도회에 대한 은사는 부록에 있으니 참고 바란다. ) 열변이나 특별한 옹호보다 훌륭한 표양은 다른 이들에게 거절치 못하게 하는 권면이 됨을 교황들께서는 아시고 자신들이 직접 묵주기도회에 가입을 하여 자신들의 높은 관심과 배려보다 더 훌륭한 길임을 보이셨습니다. 여기서 우선 교황들께서 묵주기도회에 전적으로 준 은사들을 간단히 요약해 놓겠습니다.  

 

그 은사들은 1679년 7월 31일 인노첸시오 11세 성하에 의해 재차 확인하셨고, 같은 해 9월25일 존경하올 파리 대주교님이 이를 받아서 공식 발표할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  

 

1) 묵주기도회에 가입하는 그날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2) 임종에도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3) 묵주기도 세 꿰미 중에서 한 꿰미 바칠 때마다 10년과40일씩 열 번의 한대사를 얻을 수 있다.

4) 경건하게 예수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기도할 때마다 7일의 한대사

5) 묵주기도의 행렬에 경건하게 참가하는 사람에게는 7년과 40일씩 일곱 번의 한대사

6) 겸손되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받고 매달첫째 주일과 주님 축일과 성모님 축일에 묵주기도회가 설립되어 있는 일정한 날에 교회 내의 거룩한 묵주기도 경당을방문하면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7) 살베 레지나(Salve Regina) 성가에 참여시 100일 한대사(살베 레지나는 도미니코회 신부, 수사, 수녀들이 저녁 끝기도 후, 행렬할 때 부르는 노래. 이 풍습은 도미니코 성인에 의해 시작되어 다른 수도회에서도 실천하게 되었다).

8) 묵주를 정성스럽게 착용하고 좋은 표양을 보이는 사람에게 100일 한대사
9) 교회에 나갈 수 없는 환자가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하고 묵주기도 15단을 바치거나 또는 적어도 묵주기도 5단을 바치는 사람은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10) 역대의 교황 성 하께서는 묵주기도회가 창립된 교회의 다섯 제단을 순례하고 교회의 평화로운 상태를 위하여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다섯 번을 제단 앞에서 바칠 때 로마의 십자가의 길 14처에 부여한 은사를 얻을 수 있도록 허락하심으로써 묵주기도회 회원들에게 관대함을 보여주셨습니다.
 만일 묵주기도회의 성당의 제대가 하나나 둘 뿐이라면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스물다섯 번을 그 제대 앞에서 바치면 됩니다. 이것은 본래 로마의 14처 성당에서 전대사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써 영혼들이 연옥에서 구원될 수 있는 것인데, 아무런 경비나 지출 없이 또 자기가 사는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묵주기도 회원들이 조그마한 노력으로 여러 가지 다른 많은 은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묵주기도 회원들에게는 놀라운 특혜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가 사는 곳에 묵주기도회가 세워져 있지 않으면 어떤 성당이든지 다섯 성당을 찾아감으로 그와 똑같은 은사를 얻을 수 있는 허락을 레오 10세께서 윤허하셨습니다. 교황청의 사면위원회는 로마시밖에서도 로마의 14처에서의 은사를 얻을 수 있도록 일정한 날짜를 일람표로 명시하셨습다.  교황님은 1678년 3월 7일 이러한 일람표를 인정하셨고 엄격히 준수되도록 명하셨습니다.

 

이러한 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림시기의 모든 주일, 사계 대제일의 3일간,성탄 전야, 성탄 자정미사, 새벽미사, 낮미사, 성 스테파노 첫순교자 축일, 성 요한 복음 사가 축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축일, 주님 공현 축일, 칠순주일, 육순주일, 오순주일,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후 첫 주일까지의 매일, 주님 승천 전 3일, 주님 승천 대축일, 성령강림 전야, 성령 강림 대축일과 8부내 매일, 그리고 추계 3일 동안입니다.  사랑하는 묵주기도회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이 얻을 수 있는 다른 은사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자 한다면 묵주기도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주어진 은사의 전체적 일람표를 보도록 하십시오. 거기에는 여기에 다 실을 수 없는 여러 다른 은사와 역대 교황님들의 명단과 연도와 많은 특혜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서른한 번째 장미꽃 (카스야의 블랑쉬, 알퐁소 8세) 

 

프랑스의 왕후 카스티의 블랑쉬는 결혼한 지 12년이 되는데도 아이를 낳지 못해 매우 우울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도미니코 성인이 그녀에게 매일 하느님께 자녀를 갖게 해 달라고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권고하자 왕후는 성인의 권고대로 충실히 실행하였습니다. 드디어 1213년에 맏아들을 낳아 이름을 필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왕자는 어려서 죽고 말았습니다. 왕후는 이런 실망 속에서도 활기를 잃지 않고 오히려 그 전보다 더욱 열심히 성모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리하여 궁전과 나라의 여러 도시의 사람들에게 묵주를 나누어주고 자기와 합심하여 하느님께서 더 전적인 축복을 내려주시도록 간청하자고 호소하면서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쳤습니다. 이리하여 1215년에 프랑스의 영광이 된 성 루이 왕자가 태어났고 그리스도교 국왕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아라곤과 카티야의 왕 알퐁소 8세는 무질서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벌을 받았는데 그 책벌 중 하나가 전쟁터에서 부상당하여 동맹국에 속한 어느 한 도시에 피신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이 마침 성탄 축일에 그 도시에 도착하여 늘 하시던 대로 묵주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은총이 얼마나큰 것인가를 지적하면서 거룩한 묵주기도를 전파하였습니다.

 

성인은 다른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묵주기도를 열심히 정성껏 바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적을 물리쳐 승리를 얻고 전쟁터에서 잃은 모든 것을 다시 찾게 되리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왕은 주의 깊게 그 말을 듣고는 성인을 다시 오게 하여 묵주기도에 대해 강론한 그 말들이 실제로 진실인가를 물어보았습니다. 성인은 그것을 의심해서는 안되며 이보다 더 진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이 신심을 실천할 뿐 아니라 묵주기도회에 가입한다면 그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라고 확신시켜주었습니다.  왕은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기로 결심하고 1년 동안을 계속하였습니다.  바로 다음 해 성탄절이었습니다. 왕이 묵주기도를 마치자 성모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알퐁소야, 1년 동안 네가 매일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치며 나를 섬겼으니 나 또한 네게 보상해 주려고 왔다. 나의 아들로부터 네 죄에 대한 용서를 얻어냈다는 것을 알아라. 그리고 이 묵주를 너에게 주니 늘 몸에 지니고 사용하여라.  그러면 나는 너의 어떤 원수도 너를 다시는 해칠 수 없도록 하겠다."

 

성모님은 사라지셨고, 왕은 너무나 기쁘고 용기백배하여 곧장 왕비가 있는 데로 찾아가 성모님의 선물과 약속에 대해 모두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왕비의 눈앞에 그 묵주를 들어 보였는데 그때 왕비는 눈을 뜨게 되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묵주를 통해 왕비는 잃었던 시력을 되찾고 완쾌되었던 것입니다. 얼마 후, 왕은 동맹국의 도움으로 몇몇 군대를 정비하여 대담하게 적군을 공격하였습니다.  왕은 적군들을 완전 제압하고 빼앗겼던 영토를 도로 찾았으며 자기를 거스렸던 다른 반대자들도 개심시키고 완전히 적군을 패주시켰습니다. 사실 왕이 전쟁터에 나타날 때마다 승리는 틀림없이 왕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사방에서 군인들이 왕의 깃발 아래 몰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왕은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먼저 바치지 않고는 결코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왕은 자기 궁전 안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회에 가입하도록 명하고, 또한 그의 보좌관이나 시종들이 묵주기도에 정성을 다하는지 실제로 보살폈던 것입니다.  왕비도 묵주기도회에 가입하여 역시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고, 왕과 왕비는 성모님을 열심히 섬기고 일생을 진실로 거룩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서른 두 번째 장미꽃 (돈 페레즈)

도미니코 성인에게는 매우 부도덕한 생활을 하던 돈 페레즈,혹은 페드로라는 이름을 가진 사촌이 있었습니다. 돈 페레즈는 자기 사촌이 묵주기도의 경이로움을 전파한다는 말을 듣고, 또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묵주기도로 생활을 고쳤다는 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나는 구원받기는 틀렸다고 희망을 포기하고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마음을 잡기 시작해야겠다. 그래서 이 하느님의 사람의 말을 실제로 들어봐야겠다." 그 후 어느날, 그는 도미니코 성인의 강론을 들으러 갔습니다. 나중에 성인은 그를 보자 더 열절히 그의 악습을 공격하며, 그의 영혼이 얼마나 통탄스럽고 비참한 상태에 있는지 비춰주시기를 전능하신 하느님께 온 마음을 다해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돈 페레즈는 처음에는 좀 놀라는 것 같았지만 아직도 자기 생활 태도를 바꾸려고 결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도미니코 성인의 강론을 들으러 왔는데, 그 사촌은 특별한 충격 없이는 도저히 움직여질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단단히 굳어있었기 때문에 성인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 오, 예수님, 방금 당신 집에 막 들어온 저 사람의 상태를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이 현실적으로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그러자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은 갑자기 큰 쇠사슬로 옭아 매여 있는 흉측한 맹수의 모습의 마귀들이 돈 페레즈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여기저기로 몰려다녔고 돈 페레즈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피하는 것을 보고 그들보다 더 소스라치게 질겁하였습니다. " 이 쓸모없는 사람아, 자 네가 얼마나 불행하고 통탄스러운 상태에 있는지를 알고 성모님의 발아래 엎드리게. 이 묵주를 들고 정성을 다해 기도를 바치고 자네의 모든 죄를 진실히 뉘우치며 지금까지의 생활을 고칠 결심을 단단히 하게." 그러자 돈 페레즈는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 15단을 정성을 다해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깊이 통회하고 고해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그에게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지시하자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며 묵주기도회의 명단에 자기 이름을 기입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을 무섭게 했던 그의 얼굴이 성당을 떠날 때에는 모든 공포가 사라지고 천사처럼 환해보였습니다. 그는 거룩한 묵주기도의 신심을 꾸준히 지켰으며, 매우 착실한 생활을 한 후에 선종하였습니다.

 


서른세 번째 장미꽃 (악마의 지배)

 

도미니코 성인이 카라카스 근처에서 묵주기도를 전파하고 있을 때 악령에 사로잡힌 이단자 한 사람을 성인에게 데려왔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많은 군중이 모인 앞에서 그 사람에게서 마귀를 내쫓았습니다.  거기에는 성인의 강론을 들으려고 모여 있던 수는 만 이천명이 넘었는데 그렇게 많은 군중들 앞인데도 불구하고 이 가련한 사람을 지배하고 있던 마귀는 성인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을 수 없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을 하였습니다. 1) 이 불쌍한 사람의 몸에는 만 오천이나 되는 마귀가 들어 있는데 그것은 이 이단자가 묵주기도의 열다섯 신비를 공격했기 때문이고,2) 마귀들은 도미니코 성인이 묵주기도를 전파함으로써 지옥을 두려움과 공포로 몰아넣었으며, 묵주기도의 신심을 통해 자기들로부터 영혼들을 빼내어 갔기 때문에 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3) 그리고 그 마귀들은 다른 여러 가지 것들도 밝혔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자기 묵주를 그 이단자의 목에 걸고 하늘의 모든 성인들 중에서 가장 두려운 분이 누구며,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할 분이 누구인지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악령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기절할 만큼 땅바닥에 뒹굴며, 매우 무시무시한 비명을 처절하게 질려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답하지 않으려고 온갖 간교를 다 부리면서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동정심이 발동하여 함께 따라 울만큼 처량하게 통곡하며 한탄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마귀들은 그 이단자의 입을 통해 비통한 소리로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이시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는 결코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당신은 항상 죄인들과 근심 속에 빠진 사람들을 동정하셨으니 너무도 무거운 곤경 중에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벌써 너무도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나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고통을 더 크게 하십니까." 이 고통을 더 크게 하지 마시고 현재의 고통으로 만족할 수는 없나이까?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도미니코 성인은 이들 가련한 악령들에 대한 동정심 같은 것에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질문에 답할 때 까지는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도미니코 성인만이 알아들을 수 있게 답변을 속삭이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성인은 누그러지지 않고 큰 소리로 대답을 명백히 하도록 독촉했습니다. 그러자 마귀들은 갑자기 조용해지며 도미니코 성인의 지시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다른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성인은 무릎을 꿇고 성모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능하시며 놀라우신 동정 마리아님,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의 힘으로 어머니께 간구하오니 인류의 원수들이 제게 대답하도록 명령해 주소서." 성인의 이런 기도를 하자마자, 번쩍이는 불꽃이 이단자의 귀와 입과 콧구멍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렸으나 그 불꽃이 사람을 해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 악령은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이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모 마리아와 모든 성인의 공로로 당신께 간청하오니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냥 이 사람의 몸에서 나가게 해 주소서. 왜냐하면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천사들이 당신의 질문에 답해 드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까? 왜 우리를 믿으려하십니까?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마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도미니코 성인은 "도저히 말을 듣지 않는 너희 가련한 악령들에게 앙화로다."하고 말하고 나서 무릎을 꿇은 채 성모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지극히 공경하올 지혜의 어머니시여, '성모송'을 온전히 올바르게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배운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있기에 제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원수들을 제압하시고 진정한 진실만을 지금 여기 모인 군중 앞에서 공표하게 하소서." 

 

이 기도를 마치자 도미니코 성인은 성모님이 많은 천사들에 둘러싸여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모님은 가지고 있던 금막대기로 악령에 사로잡힌 그 사람을 내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즉시 나의 종 도미니코에게 대답하라"(사람들은 성모님을 보거나 말을 듣지 못했으나 도미니코 성인의 거동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악령들은 소리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 우리의 적이며 우리를 패망하게 하는 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이토록 무섭게 괴롭히십니까? 오, 죄인들의 변호자시여, 바로 지옥의 문에서 그들을 빼앗아 천국으로 가는 확실한 길이여, 우리가 마지못해 진실을 전부 털어놓을 수밖에 없단 말입니까? 우리의 멸망이며 부끄러움의 근원이 되는 이 사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해야 한단 말입니까? 오, 암흑의 왕자들인 우리에게 앙화로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잘 들어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는 매우 능력 있는 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신의 종들을 구해 낼 수 있다. 이 여자는 우리의 간계와 교활의 어두움을 파괴하는 태양이다.  이 여자는 우리가 감춰놓은 음모를 벗겨내고 우리가 숨겨놓은 올가미를 망쳐 버리며 유혹하는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아무런 효력이 없게 만든다. 우리는 정말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여자를 진정으로 섬기는 단 한 사람의 영혼도 우리와 함께 단죄해 버린 일은 한 번도 없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이 여자의 한숨소리 하나가 모든 성인들의 기도와 열망과 호소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우리는 천상의 모든 성인들보다 마리아를 더 무서워하며 마리아의 충직한 종들과는 겨루어 이기지 못한다.  죽을 때에 마리아를 부르고 의탁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보통 기준에 따르면 마땅히 지옥의 심판을 받을 자들인데 마리아의 전달과 중개로 구원받는다. 그리고 이 마리엣다가(그들은 격분하여 성모님을 이렇게 불렀다. 역주: 마리엣다는 마리아를 작게 부르는 것임.) 우리를 대항하여 우리의 계획과 노력을 뒤엎어 놓지만 않았다면 우리는 교회를 정복하고 이렇게 되기 전에 벌써 파괴해 버렸을 텐데……. 그리고 교회 내의 모든 수도회가 오류와 불화에 떨어지는 꼬락서니를 볼 것인데 원통하도다. 그뿐 아니라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강제에 못 견디어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묵주기도를 충실히 바치는 사람은 누구도 영원한 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자가 자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죄에 대한 간절한 통회와 은총을 얻어주며 또 이 방법으로써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얻어주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미니코 성인은 거기 모였던 사람들에게 묵주기도를 매우 천천히 정성을 다해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때 놀랄 만한 일어났습니다. 성인과 거기 모인 사람들이 성모송을 함께 바칠 때마다 악령의 큰 무리가 그 가련한 사람의 몸밖으로 벌겋게 타는 석탄 덩어리 모양을 한 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악령이 이렇게 모두 쫓겨 나가자 그 이단자는 드디어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고, 성모님은(볼 수는 없지만) 당신의 축복을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내리셨는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이 때문에 매우 큰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이 기적으로 많은 이단자들이 수없이 회두하였고, 거룩한 묵주기도회에 가입했습니다. 

 

 

서른네 번째 장미꽃 (시몬 드 몽포르 알랑 드 랑발리와 오데르)


시몬 드 몽포르 백작이 묵주기도의 모후인 성모님의 보호로 알비파 이단과 싸워 이긴 승리를 믿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이 승리는 너무나 유명해서 온 세상이 아직까지 그에 필적할 만한 어떤 사실도 결코 본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한 번은 오백 명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의 힘으로 만 명이 넘는 이단자를 패배시켰고, 또 한 번은 삼십 명으로 삼천 명을 제압했으며, 그 후 팔백 명의 기병과 천 명의 보병으로 십만 명이나 되는 막강한 아라곤 왕의 대군을 완전히 전멸시 켰는데 그의 군대에서는 기병 한 사람과 병졸 여덟 명밖에 잃지 않았습니다.  성모님은 또 브레톤(프랑스 브레타뉴 지방)의 기사인 알랑드 랑발리를 크나큰 위험에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는 신앙을 위해 알비파 이단자들과 싸우고 있던 어느 날 홀로 사방으로 적군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는데 성모님께서 150개의 바위들을 나타나게 하시어 적군의 손으로부터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또 어느 날 그의 함대가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복되신 성모님께서 바다 위에 150개의 작은 언덕들이 기적적으로 나타나게 하심으로 안전하게 브레타뉴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매일 드린 묵주기도 때문에 성모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에 대해 감사를 드리기 위해 그는 성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을 위한 수도원을 하나 지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도 수도자가 되어 오를레앙에서 거룩한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보쿨스의 브레톤 군인이었던 오데르는 곧잘 이단자들의 무리나 강도들을 물리치곤 했는데 그는 언제나 묵주를 팔에 걸치고 다니거나 칼자루에 차고 다녔습니다.  한 번은 그가 적군과 싸우고 있을 때 적군들은 그의 칼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고, 또 그는 예수 마리아와 성인들의 상본이 박혀있는 방패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 방패는 적군으로 하여금 그를 볼 수 없게 했으며 그에게 적을 잘 공격할수 있도록 강한 힘을 주었습니다.  다른 때에 그는 열 중대의 동료들과 함께 이만 대군의 이단자들을 무찔렀는데 자기 동료들은 한 사람도 다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에 감동된 그 이단자들의 대장은 오데르를 직접 만나러 나와 자기의 이단을 끊어버리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쟁 중에 오데르가 불꽃이 이는 칼로 둘러싸여 있음을 보았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습니다.

 


서른다섯 번째 장미꽃 (피에르 추기경)

 

복자 알라노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티벨강 건너 성 마리아 교회의 명예 주교였던 피에르 추기경은 도미니코 성인에게서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을 배운 후 묵주기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서 늘 묵주기도에 대해 끊임없이 예찬을 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묵주기도를 권장했습니다. 그러던 추기경은 교황 특사로 성지에 파견되어 사라센과 싸우고 있는 십자군에 가입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갔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비참해질 것으로 알고 있던 전쟁에서 하느님께 급격히 도움을 간청하도록 했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하며 묵주기도의 힘에 의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삼천 명의 신자들이 십만 명의 적군을 격퇴시키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악마는 묵주기도를 말할 수 없이 두려워합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성모송"이야말로 악마들을 도망치게 하고 온 지옥이 벌벌 떨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복자 알라노께서도 사람들이 세례 때의 서원을 저버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함으로써 영혼과 육신을 모두 악마에게 팔았을지라도 거룩한 묵주기도를 붙들고 기도한 후에 사탄의 속박에서 구출되는 사람을 여러번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서른여섯 번째 장미꽃 (사탄으로부터 해방된 자)

 

1578년에 앵버르의 어떤 부인이 자신을 사탄에게 맡기고 그런 약속의 표시로서 혈서를 쓴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그 부인은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이 저지른 이 무서운 행위를 고치겠다는 강한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좋은 지도를 해 줄 친절하고 지혜로운 고해신부를 찾아 나섰습니다.  부인은 그 마을의 묵주기도회지도신부이며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신부인 헨리코 신부를 찾아가 자기를 묵주기도회에 가입시켜 주고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간청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신부님을 찾아갔을 때 만난 사람은 헨리코 신부님이 아니라 도미니코회 신부로 변장한 그 사탄이었습니다.  사탄은 그 부인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고 꾸짖으며 살아있는 동안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희망은 전혀 없고, 또 그 계약서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부인은 너무나 침통하게 되었지만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한 번 헨리코 신부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 부인은 또 다시 돌아오고 말았는데 드디어 세 번째에 하느님의 섭리로 부인이 애타게 찾던 진짜 헨리코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그 부인을 매우 친절하게 대접하시면서 전능하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진정한 고해성사를 받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신부님은 그 부인을 묵주기도회에 받아들이시고 자주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성모님은 악마에게 부인이 쓴 계약서를 그 부인에게 돌려주라고 강압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 부인은 마리아의 권능과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의 신심으로 악마에게서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서른일곱 번째 장미꽃 (수도원 혁신)

 

어느 귀족이 여러 딸을 두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딸을 완율(그리 엄격하지 않은) 수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그 수녀원의 수녀들은 대단히 교만하여 단지 세속적 즐거움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고해신부는 매우 열심한 사제였으며 묵주기도에 대한 큰 열성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사제는 우선 그 젊은 수녀를 더 나은 생활로 인도하고 싶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과 영광을 묵상하면서 복되신 동정녀를 공경하기 위해 묵주기도를 매일 바치라고 지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수녀는 즐거이 묵주기도를 바치게 되었고, 차츰 조금씩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동료 수녀들의 제멋대로의 버릇을 조금씩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멸시하고 조롱하며 광신자라고 불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묵과 기도로 이 신심을 좋아하며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 무렵 성덕이 높은 어느 사제 한 분이 수녀원을 방문했는데 묵상 중에 이상한 환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수녀가자기 방에서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너무나 기막히도록 아름다운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문을 속삭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은 불꽃이 이글거리는 창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오는 마귀들을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 악령들은 몹시 흉측한 짐승의 탈을 쓰고 다른 수녀의 방으로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환시를 본 그 사제는 그 수도원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상태에 있는지 깨닫게 되었고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죽을 것만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제는 직접 그 젊은 수녀를 불러 더욱 열심히 끝까지 꾸준히 실천해 나가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제는 묵주기도의 가치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고 이 신심으로 수녀들을 쇄신시키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 사제는 아름다운 묵주를 사다가 수녀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며 묵주기도를 충실히 바치기만 한다면 행실을 고쳐 다른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간청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녀들은 놀랍고 기이하게도 모두 이 제의에 찬성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묵주를 받아들고 묵주기도를 바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수녀들은 허무하고 세속적인 행사들을 버리기 시작하였고 침묵과 묵상에로 마음이 끌렸으며, 1년도 채 못되어 수도원은 혁신되었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묵주기도는 그 사제가 수녀들에게 권고와 명령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것보다 그들의 마음에 더한 변화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서른여덟 번째 장미꽃 (어느 주교님의 신심)

 

도미니코 성인에게 거룩한 묵주기도를 배운 바 있는 어느 스페인의 여백작은 매일 묵주기도를 충실히 바쳐 그 결과 영신 생활이 놀라우리만큼 발전되고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이러한 신심의 실천이 자신을 얼마나 높은 완덕의 경지로 오르도록 도와주는지 유명한 설교가인 어느 주교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주교님은 먼저 그녀에게 그녀의 영혼의 상태와 또한 실천하는 신심이 무엇인지를 알려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신심은 환희와 고통과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매일 바치는 성스런 묵주기도이며 이 신심으로써 자기 영혼은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주교님은 신비를 포함한 매우 귀중한 내용에 대한 그 여자의 설명을 듣고 대단히 즐거워하시며 탄복하여 "내가 20여년 신학자로 있으면서 여러 가지 신심 실천에 관한 훌륭한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아직까지 이보다 더 유익하고 그리스도교에 잘 어울리는 신심행위는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인 것이며 이것 이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신심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도 당신의 모범을 따라 지금부터 묵주기도를 전파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주교님의 교구는 훌륭하게 발전하였고, 주교님의 전교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도박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부도덕함과 세속적인 것에 대한 두드러진 거부 현상이 나타났으며, 사람들이 신앙생활로 귀의하며 죄인들은 제 잘못을 배상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의 사악한 생활을 완전히 끊어 버릴 결심을 진정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앙적 열성과 그리스도교 애덕이 싱싱하게 살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전에 주교님이 때때로 자기 교구를 혁신하려고 애를 썼지만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변화는 정말 괄목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이 묵주기도 신심을 끈덕지게 되풀이하여 가르치기 위해주교님은 근사한 묵주를 차고 강론할 때마다 모인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곧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나는 신학박사요 로마법과 교회법 박사이지만 여러분의 주교로서 나의 주교 직분의 어떤 표시나 박사의 예복보다 성모님의 묵주기도를 더 자랑스럽게 착용하고 있습니다. "

 


서른아홉 번째 장미꽃 (변화된 본당)

 

덴마크의 어느 한 사제는 스페인의 주교님이 자기 교구에서 일으킨 그와 똑같은 발전이 자기 본당에서도 어떻게 일어났는지 즐겨 말하곤 하였습니다. 또 그것은 전능하신 하느님께 더욱 영광을 드렸기 때문에 신부님은 늘 큰 기쁨 속에서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곤 하였습니다. "나는 우리의 성스러운 신앙에 대한 많은 관점을 논하면서,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활 태도를 고쳐 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논증을 제시하면서할 수 있는 한 많은 강론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전처럼 자신들의 생활 태도를 조금도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성스런 묵주기도를 전파하려고 결심하고 묵주기도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바칠 것인지를 교우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는 이 성스런 묵주기도를 계속 전파하였는데 이 신심은 드디어 본당 안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섯 달 후에 사람들이 실제로 더 나아지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뻤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숭고한 이 기도의 힘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그 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죄에 대한 두려움과 덕행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운다는 것은 참으로 진실된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어느 날 복자 알라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전능하신 하느님이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당신 말씀이신 성자의 강생을 가져오도록 '천사의 인사말'을 선택한 것같이 도덕적 혁신을 가져오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바로 천사의 인사말로 나를 축하하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이 인류에게 내려온 통로이며 또한 사람들이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는 통로이니 나를 통해서 은총과 덕행을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묵주기도가 아주 단단히 굳어버린 마음도 회개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본당피정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아주 겁을 주는 강론에도 조금도 감동하지 않고 아직도 그대로였는데, 마침내 권고에 따라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는 습관을 들여 나는 내가 회개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피정지도를 했던 여러 본당의 신자들의 행실들 가운데서 굉장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묵주기도를 아예 포기해버려 다시 죄의 생활로 떨어져 있었으며, 묵주기도를 충실히 바친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날마다 정진하고 있음을 발견 하였습니다.

 


마흔 번째 장미꽃 (탄복할 효과)

 

복자 알라노, 쟝 뒤몽 신부, 토마스 신부, 성 도미니코의 전기와 이러한 사실을 자기 눈으로 보았던 다른 저자들은 20년, 30년, 심지어 40년을 죄와 말할 수 없는 악습에 젖어있던 대죄인들 까지도 회개한 사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성스런 묵주기도를 꾸준히 실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전에 온갖 권면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길게 쓰고 싶지 않으므로 이러한 놀라운 회개에 대해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야기 안하려는 여러 가지 이유도 내 눈으로 본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만일 이 신심을 실천하고 권장한다면 다른 어떤 서적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성모님께서 도미니코 성인과 복자 알라노와 그리고 성모님께서 매우 사랑하시는 이 신심을 실천하고 권장하는 모든 이들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성모님께서 보답해 주시는 행복을 갖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묵주기도는 사람들에게 예수 마리아의 덕행에 대해서 가르치고, 묵상기도를 하게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인도해 줍니다.  또 자주 성사를 보도록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덕행을 따라 겸손되이 노력하게 하며, 온갖 선행을 다하도록 해줍니다. 또한 묵주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훌륭한 은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합니다. 사람들은 목주기에 얼마나 풍부한 은사가 주어 졌는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제들이 묵주기도에 대해 강론을 할 때 은사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으며, 감탄을 연발할 만큼 화려하고 인기 있는 강론은 하지만 거의 그 이상의 어떤 것도 가르쳐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복자 알라노의 말씀대로 이 묵주기도는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의 뿌리이며 창고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1) 죄인들에게 용서를 얻어주고,2) 목마른 영혼들에게 갈증을 풀어주고,3) 자유를 속박당하고 있는 자들의 속박을 풀어주고,4) 울고 있는 자들에게 기쁨을 찾아주며,5) 유혹당하는 자들에게 평안을 찾아주며,6) 극빈자들에게서 가난을 몰아내고,7) 수도자에게 혁신을 가져다주며,8)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고9) 현세에서는 교만을 이기는 살아있는 가르침을 주며,10) 후세에서는 (연옥 영혼들이) 전구의 방식으로 자비를 베풀어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고 영생에 들어가게 해줍니다.

 

어느 날 성모님께서는 복자 알라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나는 묵주기도의 신심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과 죽을 때와 죽은 후에 내 아들의 은총과 축복을 얻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이 후세에서는 마치 왕들처럼 왕관을 쓰고 왕홀(王笏)을 쥐게 되며 영원한 영광을 즐길 수 있도록 온갖 억압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원한다."

 

 

마흔한 번째 장미꽃 (순수한 지향)


전능하신 하느님의 마음에 들고 하느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도는 길게 하는데 있지 않고 열성을 다 하는데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성모송이라도 온전히 바치는 것은 시원치 않게 백쉰 번을 바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묵주기도 15단이나 혹은 5단을 어떻게 해서라도 바치며 적어도 성모송 몇 단은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소수의 사람만이 자기 죄를 끊고 영신생활로 나가고 있는 까닭은 웬일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묵주기도를 제대로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의합하고 더욱 거룩해지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첫째로 묵주기도를 바쳐 영신의 유익을 얻으려면 누구나 은총의 상태에 있거나 적어도 그 죄를 끊어버릴 충분한 결심이 서 있어야 합니다. 이는 대죄 상태에서 하는 선행이나 기도는 죽은 행위와 다름없다고 모든 신학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에 의합할 수도 없고 영생을 얻도록 도와줄 수도 없습니다. 이 이유를 집회서 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죄인의 입에는 찬미가 맞지 않으니"(집회서 15, 9)하느님의 찬미와 천사의 인사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까지도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 의해 바쳐질 때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마르코7, 6). 이것은 마치 "나의 묵주기도회에 가입하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지만(아마도 15단까지) 자기 죄를 뉘우침 없이 입술로만 나를 섬기고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영신의 유익을 얻기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려면 누구나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하며 적어도 대죄를 끊어버릴 충분한 결심이 서 있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하느님께서 은총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죄 중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기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물론 죄인들이 착한 사람들보다 더욱 기도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기도를 드린다 해도 무익한 일이니까 도무지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교회가 단죄한 오류이기 때문에 한 죄인에게 묵주기도를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라도 바치더라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며 무익한 것이니까 드리지 말라고 해서는 절대도 안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죄인들이 만일, 죄중에 머물러 있을 뜻을 가지고 자기 죄를 끊어버릴 조그마한 의향도 없이 성모님의 묵주기도회에 가입하고 다른 몇 가지 기도를 바친다면 이들은 뻔뻔스럽고 주제넘게 회개치 않는 거짓된 신심가들의 대열에 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몸에 성의를 지니거나 손에 묵주를 들고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님" 하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죄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재차 주님의 몸을 잡아 찢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크나큰 비극이며 성모님의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회의 대열 한가운데 에서 영혼들을 지옥의 불속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거룩한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진지하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의인들에게는 하느님의 은총을 꾸준히 보존하고 그 안에 성장하도록 권고하고, 죄인들에게는 자기 죄에서 빠져나오라고 권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죄인에게 계속 죄악을 좋아하면서 성모님의 망토로 자기를 보호해 주리라는 생각으로 죄를 계속 격려하는 것과 우리의 온갖 병고를 고쳐주는 묵주기도가 치명적인 해로운 독약이 되게 하라고는 권하지 않습니다.  

 

"가장 착한 사람의 타락은 가장 나쁩니다. "박식한 위그 추기경은 "누구든지 진실로 복되신 동정녀께 가까이 가고 '성모송'을 외기 위해서는 천사와 같아야만 할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성모님은 매일 거룩한 묵주기도를 드리는 어떤 부정한 사람에게 오물로 더러워져 있는 그릇에 담긴 훌륭한 과일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그것을 보고 몸서리를 치자 성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네가 나를 공경하는 태도이다. 너는 오물투성이의 그릇에다 아름다운 장미꽃을 넣어 바치고 있다. 내가 이런 종류의 선물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라."

 


마흔두 번째 장미꽃 (정신 차려라)

 

기도를 잘 드리기 위해서 모든 기도 중에서 가장 훌륭한 묵주기도의 방법으로 우리의 간청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거기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도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입으로 내는 소리보다 마음의 소리에 더 귀기울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동안 고의적인 분심 잡념을 계속 하면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존경과 공경이 크게 부족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우리의 묵주기도를 아무런 열매도 못 맺게 만들 것이며 죄를 만들 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도하는지 정신 차리지 않고 또 지엄하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마치 나비를 쫓아다니느라 일부러 머뭇거린다면 어떻게 하느님께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주시기를 감히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과실을 저지르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그 축복은, 오히려 불경스럽게 기도하였기 때문에 저주로 변하고 맙니다. "야훼께서 시키신 일, 건성으로 하다가는 천벌을 받으리라"(예레 48, 10). 사실 고의적이 아닌 몇 가지 분심도 하나 없이 묵주기도를 능히 바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성모송 한 번만이라도 조금도 상상이나 흔들림 없이 바치기는 어렵습니다. 그럴지라도 여러분이 고의적인 분심 잡념 없이 기도를 드릴 수 있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상상을 조절해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써야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은 하느님 앞에 있으면서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여러분을 내려다보시고, 수호천사는 여러분의 오른편에 있으면서, 여러분이 성모송을 제대로 외우면 그것을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께 드릴 화관을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장미꽃처럼 거두어들이는데 그렇지 않으면 왼편에서는 악마가 잠복해 있다가 여러분이 성모송을 겸손하고 경건하게 바치지 않는다면 그것을 잡아먹고 죽음의 책에 기록하려고 맴돌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바치는 성모송 기도 한번이라도 정성들이지 않고 분심 속에서 바치도록 하기 위해서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특히 성모송 열 번을 외울 때 신비를 공경하며 바칠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할 때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여러분이 공경하는 신비 안에 함께 계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프레몽트레 수도회의 복자 헤르만이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껏 신비를 묵상하면서 묵주기도를 바칠 때에는 성모님께서 매력적인 아름다움과 위엄으로 말할 수 없이 빛난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열성이 식어졌을 때 정신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급하게 묵주기도를 바치는 상태로 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때 성모님이 다시 나타나셨는데 성모님의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엔 주름이 잡히고 슬픈 빛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헤르만은 성모님의 변화에 몹시 두려워하자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헤르만아, 내가 너에게 이렇게 나타내 보인 것은 네가 나를 멸시받는 한 여인으로만 여기며 아무런 중대성이 없는 자로 대접하는 네 영혼상태 때문이다. 너는 왜 내 신비를 묵상하고 나의 특전을 찬양하면서 조심성과 공경심을 다해 나에게 인사하던 시절은 어디로 갔느냐?" 

 

 

마흔세 번째 장미 (분심을 물리침)

 

묵주기도를 제대로 잘 바치는 기도보다 예수 마리아께서 더 영광스럽고 영혼에 더 많은 공로가 되는 기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말로 꾸준한 간청을 정신차려 하지만 거의 불가피한 분심에 빠지게 되므로 계속 잘 바치며 수행해 나가기가 이보다 더 어려운 기도도 없습니다.

 

성모 소 성무일도나 일곱 편의 시편을 읽거나 혹은 묵주기도가 아닌 다른 기도문들은 그 낱말과 표현이 다양해서 우리를 깨어 있게 하며 우리의 상상력이 떠돌아 다니지 않도록 예방할 뿐 아니라 더 잘 기도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와 반대로 묵주기도는 똑같은 형태로 동일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의 계속적인 반복 때문에 지루하고 졸려서 더 새롭고 덜 지루한 기도가 되게 하거나, 쓸데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기도문이나, 다윗의 시편을 바치는 것보다 묵주기도를 계속 바치는 데 더 열성어린 신심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잠깐이라도 안정되기 어려운 우리의 상상이 더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를 분심들게 하고 기도를 멀리하도록 애쓰는 마귀의 악의입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물리치고 묵주기도를 한결같이 바칠 때 악마는 끝없이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것입니다.

 

인간인 우리는 쉽게 피곤해지며 부주의하게 됩니다. 악마는 이 어려움을 더 증가시켜 버립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도 하기 전에 악마는 우리가 따분함을 느끼게 하며 분심들거나 비쳐버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였을 때에 사방에서 우리를 억누르고 많은 어려움과 분심잡념을 들도록 성가시게 굴고 기도를 끝마쳤을 때에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네가 방금 바친 기도는 아무런 값어치도 없는 것이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네게는 소용없는 일이다.

 

너는 다른 것을 하는 것이 더 좋겠다. 네가 무슨 기도를 하든지 정신 차리지 않고 하는 기도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반시간 동안 묵상을 하거나 다른 영적 독서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내일 덜 졸릴 적에 더 주의 깊게 기도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니 나머지는 내일로 미루어라." 이런 종류의 속임수로 악마는 묵주기도를 포기해 버리도록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혀 기도할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묵주기도를 멀리해 버리거나 아니면 다른 신심으로 바꾸도록 만듭니다.

 

사랑하는 묵주기도회 형제자매들이여, 이런 악마에게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묵주기도를 바칠 때 여러분의 상상이 줄곧 여러분을 귀찮게 굴고 온갖 종류의 잡된 생각이 여러분의 정신을 채울지라도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고 가장 좋은 묵주기도는 가장 훌륭한 공로를 쌓으며, 쉬울 때보다도 어려울 때 기도하는 것이 더 큰 공로가 됨을 명심하십시오. 기도는 영혼에 즐거운 맛을 못 느낄 때, 그리고 지루하고 침착하지 못할 때, 여러분의 뜻과 달리 상상이 어지럽힐 때, 그리고 기도하고 있는 그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평화 속에서 쉴 시간이 조금도 주어지지 않을 때 기도는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묵주기도를 바치는 동안 온통 분심과 싸워야 할지라도 손에 무기(묵주)를 들었을 때 더 잘 싸울 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기가 어렵고, 좋은 기분을 느낄 수가 없더라도 묵주기도를 중단하지는 마십시오.  내가 알기로는 이것은 무서운 전쟁이지만 그것은 충실한 영혼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팔을 내리고 묵주기도를 포기한다면 여러분은 패배를 인정하게 될 것이며 악마는 그대의 꿋꿋함을 쳐 이긴 승리를 가지고 여러분을 그대로 가만 놔두었다가 심판 때 악마는 여러분의 불충실과 비겁함을 조롱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합니다." (루가 16,10). 아무리 작은 기도를 바칠 때라도 가장 작은 분심까지도 충실히 싸우는 사람은 역시 더 큰 일에 충실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이만큼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시종이며 시녀인 여러분은 모두 묵주기도를 명심해서 드리고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고 묵주기도를 바칠 때 항상 예수 마리아의 현존 안에 있게 되는, 예수 마리아의 친구들인 여러분을 파리떼들이(나는 기도하는 동안 여러분에게 전쟁을 걸어오는 분심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비열하게 굴도록 만들지 않게 하십시오. 따라서 나는 여러분에게 분심을 없애는 방법을 제의합니다. 

 

 

마흔네 번째 장미꽃 (좋은 방법)

 

여러분이 기도를 잘하기 위해 성령의 도움을 청한 다음 잠시 하느님 앞에 있으면서 다음에(쉰 번째 장미) 가르쳐 주는 방법으로 각 단을 바치십시오.

 

먼저 한 단을 바치기 전에 잠깐 멈추어 여유를 가지고 이 단에서 찬양하려는 신비를 생각하고 복되신 어머니의  전달을 통하여 이 신비에서 가장 빛나는 덕행의 하나나 혹은 여러분이 당장 특별히 필요로 하는 덕행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꼭 청원하십시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묵주기도를 바치는 동안 두 가지 잘못을 피하기 위해 아주 조심하십시오.  첫 번째 위험은 어떠한 은혜도 전혀 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왜 묵주기도를 드리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언제나 몇 가지 은혜를 꼭 청하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교의 큰 덕행 중에 하나를 키우기 위해 혹은 여러분의 죄악 중의 하나를 억누르기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십시오.

 

두 번째 큰 잘못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 너무 빨리 끝내 버릴려고 하는 것 외에 그 이상의 아무런 뜻도 안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묵주기도를 할 때 무거운 짐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것이 우리 양심에 무거운 짐이 된다면 이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거나 혹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고 다소간 보속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성스런 묵주기도를 어떻게 바치는지를 보면 실제로 민망스럽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빨리, 그리고 우물우물 중얼거리며 바치기 때문에 말마디가 충분히 전혀 발음되지도 않게 합니다. 최하위의 사람에게도 그런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인사말을 하지 않을 터인데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그러한 방식의 묵주기도로 공경을  받으신다고 생각하다니요!  그러니 우리의 거룩한 신앙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기도들이 아무런 효과도 없고 묵주기도를 천 번 만 번 드린 뒤에도 그 전보다 더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묵주기도회 형제여러분,  모든 기도의 빠른 속도를 여러분이 조종하고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칠 때 각 구절을 좀 짧게 쉬도록 하십시오.

 

처음에는 여러분이 급하게 기도를 바치는 나쁜 습관 때문에 이렇게 끊고 쉬는데 어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다음 보시는 바와 같이 끊을 자리마다 +표시를 해 놓았으니 참고하십시오.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저희에게 잘못한 일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성모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 여인 중에 복되시며 +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처음에는 여러분이 급하게 기도를 바치는 나쁜 습관 때문에 이렇게 끊고 쉬는데 어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정신을 가다듬고 바치는 한 단은 그저 빨리, 조금도 쉬지 않고 경솔하게 수천 번 바치는 묵주기도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복자 알라노와 성 로벨로와 다른 제자들, 그 중에도 벨라르미노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착한 사제가 그에게 고백을 하는 모두 같은 자매인 세 여자에게 성모님께 영광의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1년 동안 날마다 어김없이 묵주기도를 경건하게 드리라고 권하면서, 그것은 자기가 하늘로부터 받은 비밀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자매는 모두 1년 동안 묵주기도를 드렸습니다. 성모취결례 날(주님의 봉헌 축일) 밤 자매들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성모님께서는 성녀 가타리나와 성녀 아녜스를 데리고 그 자매들의 방으로 들어오셨는데 온통 빛이 반짝이고, 사방에 금글자로 Ave Maria gratia plena(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라는 말이 쓰여 있는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하늘의 모후께서는 큰언니의 침대로 가까이 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너는 내게 그렇게도 자주 그토록 공손하게 인사를 했으니, 나도 네게 인사한다. 나는 네가 만들어 준 아름다운 옷에 대해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러 왔다."

 

성모님을 모시고 온 두 동정녀도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세 분이 다 사라지셨습니다.

 

한 시간 후에 성모님은 두 동행자와 함께 다시 방으로 들어오셨는데, 이번에는 금과 빛이 없는 초록빛 옷을 입고 계셨고, 둘째 언니의 침대로 가까이 가셔서 그가 묵주기도를 드려서 만들어 드린 그 옷에 대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둘째 언니는 성모님이 큰언니에게는 훨씬 더 반짝이는 옷을 입고 나타나신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네 언니가 묵주기도를 너보다 더 잘 드려서 더 아름다운 옷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한 시간쯤 후에 성모님이 세 번째로 제일 어린 자매에게 나타나셨는데, 더럽고 찢어진 누더기 옷을 입고 계셨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가 내게 이렇게 옷을 입혀 주었으니 고맙다." 처녀는 몹시 부끄러워서 외쳤습니다. "오! 성모님, 제가 그렇게도 잘 입혀드리지 못했으니 용서를 빕니다. 묵주기도를 더 잘 드려서 더 아름다운 옷을 해 드릴 수 있는 시간을 제게 주십시오." 환시가 사라진 다음 제일 어린 자매가 몹시 괴로워하며 일어난 일을 모두 고해신부에게 말했습니다. 고해신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완전하게 묵주기도를 1년 동안 드리라고 그들을 고무했고, 세 자매는 그렇게 했습니다. 1년이 지난 같은 성모취결례 날 성모님이 화관을 쓴 성녀 가타리나와 성녀 아녜스를 데리고 밤에 다시 그들에게 나타나셨는데, 훌륭한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성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들아,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안심해라.  너희는 내일 매우 기뻐하며 하늘나라로 들어올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세 자매는 "사랑하는 성모님, 저희 마음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희 마음은 준비되어 있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환시는 사라졌는데, 바로 그날 밤에 세 자매가 병이 들어 고해신부를 모셔오게 해서 마지막 성사를 받고, 그들에게 거룩한 신심행위를 가르쳐 준 것을 감사했습니다.  끝기도 후에 성모님이 매우 많은 동정녀를 데리고 그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세 자매에게 흰 옷을 입히게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세 자매가 걸어가는 동안 천사들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여, 와서 영원히 당신들에게 준비되어 있는 화관을 받으시오"(J.A.코펜슈타인)

 

이 이야기에서 여러 가지 사실을 배우십시오. 첫째는 거룩한 신심행위, 특히 거룩한 묵주기도를 고취하는 훌륭한 지도자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묵주기도를 주의 깊고 경건하게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고, 셋째는 과거를 뉘우치고 더 낫게 하기로 작정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성모님이  얼마나 관대하시고 자비로우신가 하는 것이며, 넷째는 사람들이 당신께 충실하게 드린 보잘것없는 봉사를 살아있는 동안과 죽을 때와 영원에서 성모님이 얼마나 후하게 갚아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흔다섯 번째 장미꽃 (경건한 마음으로)


나는 또 묵주기도는 경건하게 바쳐져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겠습니다. 묵주기도는 할 수 있는 대로 무릎을 꿇고 손을 합장하고 묵주를 손에 들고 바쳐야만 합니다.
 그러나 몸이 아프면 물론 침대에 누워서 바칠 수도 있고 여행 중이라면 걸으면서 바칠 수도 있습니다. 또 병약한 몸으로 무릎을 꿇을 수 없다면 앉아서나 서서 바칠 수도 있습니다. 또 자기 직업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일자리를 떠날 수 없다면 일을 하면서도 드릴 수 있습니다.  손으로 하는 일이 반드시 염경 기도와 반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혼은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손으로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기도와 같은 정신의 활동에는 주의를 덜 기울이게 된다는 것을 나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달리할 수 없을 때의 이러한 종류의 기도도 성모님 앞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성모님은 외부적인 행동보다는 우리의 착한 뜻을 보상해 주십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묵주기도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하루 중 각기 다른 시간에 5단씩 매 신비를 바치라고 권고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한꺼번에 묵주기도 15단을 전부 바치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만일 단번에 묵주기도 한 꿰미를 계속 바칠 시간을 마련할 수 없다면 한 단씩 나누어서 점진적으로 조금씩 바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일을 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묵주기도를 전부(15단) 바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본받으십시오. 그는 매우 훌륭한 충실성의 모범을 남기셨습니다. 그는 아침부터 밤중까지 일에 아주 지쳤을 때에도 자기가 미쳐 바치지 못한 묵주기도 몇 단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의 비서가 피곤한 그를 보고는 걱정한 나머지 기도는 다음 날에 하고 쉬도록 아무리 권면해도 기도를 다 마칠 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또 성 프란치스코 성인 전기에서 알려진, 식사 전에 항상 지극한 정성과 공경심으로 묵주기도를 바친 거 거룩한 수도자의 신앙과 경건심과 진심도 본받으십시오. 

 

 

마흔여섯 번째 장미꽃 (단체 구송기도)


거룩한 묵주기도를 바치는 여러 방법 중에서 하느님께 가장 영광이 되고 영혼에 가장 유익하고 악마가 다른 어떤 것보다 무서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두 사람 이상이 소리내어『계』 『응』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느님께서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을 대단히 기뻐하십니다.  천사들과 천상의 축복받은 자들은 하느님께 끊임없이 찬미를 드립니다. 지상의 여러 공동체의 착한 사람들도 밤낮없이 이 모든 성인의 통공기도에 함께 참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특별히 이 공동기도를 권하셨고 적어도 두 세 사람이 당신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서는 언제나 그들 가운데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태 18,20참조).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시려면 함께 모여서 묵주기도를 바치면 됩니다(이 몽포르 성인의 메시지는 현대 가정묵주기도의 십자군의 호소와 너무나 일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황제의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자주 함께 모여 기도한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그들 가운데모시기 위해 모이는 것을 게을리 하기보다는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는 일을 택했던 것입니다. 이 기도의 방법이 우리 영혼에 가장 큰 유익이 되는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공동으로 하는 기도에서 우리 정신이 보통 주의를 더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공동으로 기도할 때에는 각 개인이 드리는 기도 하나하나가 모임 전체에 공통적인 것이 되어 모든 기도가 함께 하나의 기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잘 기도하지 않을 때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이 그 기도의 부족한 부분을 더 좋게 채워주고 완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강하게 끌어 올리며 열성적인 사람은 미지근한 사람을 격려하고, 부유한 자는 빈곤한 자를 풍족케 하고, 악인도 성인 축에 끼게 됩니다. 어떻게 좋지 않은 곡식을 되질하여 팔 수 있겠습니까. 이럴 때 좋은 밀을 너댓말과 섞기만 하면 그 전체가 팔려 나갑니다.  셋째는, 혼자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묵주기도 한 번의 공로밖에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30명이 함에 모여 바친다면 묵주기도 30번의 공로를 얻습니다. 얼마나 유익하고 얼마나 이로운 것입니까!  넷째는, 우르바노 8세 교황은 묵주기도의 신심이 로마에 전파되고 특히 소프라미네르바의 성 마리아 수녀원에서 둘이상 모여서 『계』 『응』으로, 혹은 성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있는 것을 매우 기뻐하시며 둘 이상 『계』 『응』으로 성가를 부르며 단체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매번 백일 은사를 부여하셨습니다. Totles quoties(매번). 이 단어들이 Adperpetuam rei memoriam 라는 말로 시작되는 1626년에 쓰여진 그의 교서에서 이 일을 영구히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쓰인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둘 이상 모여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언제나 항상 백일 은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이 공동의 기도는 하느님의 분노를 진정시키고 하느님의 자비를 이끌어 내는 데 개인 기도보다 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모이신 성교회는 공공의 재해와 고통을 당할 때에 언제나 이 공적기도를 하도록 주장해 왔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묵주기도에 대한 당신 교서에서 명백히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회 형제회의 공적 기도와 기도 행렬은 1571년 10월의 첫주일에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터키의 해군에 대해서 레판토 앞바다에서 거둔 큰 승리를 하느님에게서 얻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것을 경건히 믿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선왕 루이 13세는 혁명적인 이단자들이 강점하고 있던 라로쉘르를 포위하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에게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묵주기도를 공동으로 바쳐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여왕인 어머니는 파리 근교의 쌩 호노르의 도미니코 성당에서묵주기도를 공동으로 바치게 하기로 결심했고 파리 대주교의배려로 1628년 5월 20일에 이 기도를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황태후와 국정을 보는 왕후와 오를레앙의 태공과 라로쉬푸코 추기경, 드 베룰르 추기경과 다른 고위 성직자들이 이 묵주기도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장에는 수많은 일반 시민들로꽉 찼습니다. 대주교님은 묵주기도의 신비에 대한 묵상을 큰소리로 읽은 다음 각 단의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바치기 시작하였고 일반 평신도들은 응을 했습니다.  묵주기도 끝에는 성모 호칭기도를 노래하며 성모상을 선두로 장엄하게 행렬을 했습니다. 이러한 신심 행사를 토요일마다 놀라운 열성으로 계속했는데 그 결과로 천상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모든 성인의 축일 날에 왕은 레(Re)섬에서 영국인들을 물리치고 라 로델르에 개선 부대가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공동으로 드리는 기도가 얼마나 위대한 능력이 있는지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묵주기도를 함께 바칠 때는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악마에게는 더욱 큰 무서움이 되는데 이 공동기도가 악마를 공격하는 군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 악마는 가끔 개인적인 기도를 압도하지만 그 기도가 다른 사람들의 기도와 한데 뭉쳐진다면 악마는 아무리 해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막대기 하나 꺾기는 매우 쉽지만 이 막대기가 다른 막대기와 다발로 한데 묶여졌다면 그걸 꺾을 수는 없습니다.  "뭉치면 강해집니다."군사들은 적을 이겨내기 위해 한 군단으로 함께 단결합니다. 악인들은 환락과 댄스파티를 위해 자주 모이며 악령들도 우리 영혼을 타락시키기 위해 모입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좌중에 모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의 의노를 진정시키고,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끌어내며 악마를 더 힘 있게 내쫓고 쓰러뜨리기 위해 모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묵주기도회 형제 여러분, 그대들이 도시에 살거나 시골에 살거나 본당 신부님의 허락을 받고 자기 본당이나 가까운 경당에 적어도 매일 저녁에 가서 거기 오고자 하는 사람들과 모두 함께 두 편으로 나누어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만일 본당이나 경당이 마땅치 않으면 여러분의 집에서나 이웃 사람의 집에서 함께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이것은 죄를 멀리하고 복음 선포의 소명으로써 가져온 선을 보호하고 증대시키기 위해 내가 사명감을 지니고 전도한곳에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하심으로 일으켜 세운 거룩한 관습입니다. 거룩한 묵주기도가 그 조그마한 마을과 시골에 뿌리내리기전에는 환락의 무도회와 파티가 언제나 계속되었으며 방탕과 방자함, 독설과 분쟁, 그리고 오랜 불화밖에 없었고 들리는 것은 이중적 이고 추잡한 노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찬미노래와 두 편에서 주고받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밖에 들리지 않고 수도자들처럼 정한 시간에 20명, 30명, 100명, 또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전능하신 하느님의 찬미하는 것들만 보입니다.  묵주기도를 날마다 하루에 세 번에 나누어서 공동으로 바치는 곳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천상의 축복입니까! 그런데 세상에는 어디든지 불량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므로 여러분이 사는 곳이라고 안전하다고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묵주기도를 바치려고 교회에 가는 것을 피해 버릴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오히려 그걸 조롱까지 할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나쁜 표양과 말로 자기들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못하게 온갖 힘을 다 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꿋꿋하게 버티십시오.  그 비열한 사람들은 그들이 있을 곳이 곧 지옥이므로 하느님과 영원한 천국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니 이 지상에서도 벌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시종들과 시녀들이 모인 데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마흔일곱 번째 장미꽃 (특유한 배열)


간택받은 영혼들인 여러분은 하느님의 것이니 악인들과 헤어지십시오. 그리고 경건치 못한 생활과 게으름과 신심의 부족으로 스스로를 영벌을 자초하는 사람들로부터 단연히 떨어져 나오십시오. 그리고는 지체 없이 믿음과 겸손과 신뢰와 꾸준한 노력으로 묵주기도를 자주 바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표양을 따라 항상 기도하라고 하신 명령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리 마음이 어둡고 무지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도가 무한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러한 주님의 계명을 존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평생 묵주기도회가 요구하는 것처럼 해마다 한 번씩, 또는 보통 묵주기도회가 요구하는 것처럼 매주 한 번씩 묵주기도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묵주기도회가 강조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구원의 의무 말고 다른 의무는 없는데도 날마다 어김없이 묵주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1.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루가 18,1참조). 이것은 우리의 사랑하올 주님께서 친히 하신 영원한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말을 믿어야 하며 우리가 영원한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그 말씀을 굳게 지키고 따라야 한다는 조건으로 실천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직접 표양을 남기심으로써 우리에게 당신말씀에 대한 진정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 15), 그리고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가 6, 12).마치 낮에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신 것같이 밤 시간도 기도하는 데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깨어 기도하라"(마태 26, 41)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육신은 연약하며 유혹은 어디든지 도사리고 있고 항상 여러분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 중 몇 사람은 주님의 이 말씀이 자기들의 목적과는 완전히 빗나간 충고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료가 되었지만 유혹과 죄에 떨어진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묵주기도회 형제 여러분, 유행적인 생활을 따라가고 세속에 속해 있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때때로 대죄를 지은 다음 고해성사를 받으러 가고 세속이 사악하게 생각하는 뚜렷한 죄는 피하려 고는 하지만 동시에 원만한 죄는 부끄러울것 없는 죄라고 서슴없이 그대로 저지르기를 원한다면 물론 그렇게 많이 기도하거나 묵주기도를 바칠 필요는 없겠지요.  여러분이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아침저녁으로 잠깐의 기도나 드리고 보속으로 주어지는 경우 묵주기도를 우연히, 그리고 정신없이 공상을 하면서 성모송 몇 단을 외우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점잖은 사람으로 사는 데에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치 않고 그러나 그 보다 조금이라도 적게 바친다면 자유사상가나 방탕자로 낙인 찍힐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보다 많이 바친다면 중심 잃은 괴벽자나 광신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실한 그리스도인 생활을 해 나가며 자신의 영혼을 구하고자 원하고 성인의 길을 걷고자 원한다면 절대로 대죄에 떨어져서는 안 되고 여러분이 사탄의 올가미를 깨뜨리고 불타는 투창을 빗나가게 하기 위해 주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실행하도록 명하신 대로 언제나 기도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이러한 원의를 갖고 있다면 여러분은 적어도 묵주기도를 드리거나 그와 맞먹는 몇 가지 기도를 매일 바치십시오. 내가 "적어도" 라고 또 말하는 것은 흔히 가장확실한 사람들도 휩쓸어 가는 세상의 타락의 급류 가운데에서, 가장 식견이 있는 사람들도 자주 무분별하게 만드는 짙은 어두움 속에서, 또 그 어느 때보다도 경험이 풍부하고, 유혹할 시간이 적어졌기 때문에 더 교활하게 더 성공적으로 유혹하는 악마들 가운데에서 모든 사죄를 피하고 모든 유혹을 이기는 것이 날마다 묵주기도와 더불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만일 여러분이 세속과 마귀와 육신과 죄에서 벗어나 하늘로 피해 들어가면, 거룩한 묵주기도의 은총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한 것이 되겠습니까! 내가 주장하는 것을 믿고 싶지 않거든 여러분들 자신의 경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여러분이 세상에서 하는 기도를 조금 밖에, 그것도 사람들이 보통 하는 방식대로밖에 하지 않았을 때, 여러분의 무분별 때문에 가벼운 것으로 보이는 중대한 잘못과 중한 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눈을 뜨고, 죄 없이, 적어도 대죄는 없이 성인으로 살고 성인으로 죽기 위해 항상 기도하십시오. 날마다 묵주기도를 드리십시오.  성모님께서 도미니코 성인에게 묵주기도를 주시면서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또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이 매일 바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도미니코 성인은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겠다고 완전히 결심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묵주기도회에 가입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일주일에 한 번만 바쳐도 일반 평회원이 되도록 허락되었지만 그것은 열심이 점점 줄어들고 애덕이 점점 식어진 까닭입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기도에 있어서 궁색한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좋지 못한 기도자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여기 꼭 강조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는 정 회원으로서 묵주기도회에 가입하고 묵주기도 회원의 기도와 공로를 나눠받고 싶다면 일반 평 회원으로 등록하거나 혹은 매일 묵주기도를 하겠다는 결심만으로는 충분치 못하고, 그렇게 함과 동시에 등록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자기 이름을 기재토록 하여야 합니다.

또 이러한 특별지향으로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이런 까닭은 일반 평회원은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는 정회원에 포함되지 않으나 정회원은 동시에 평회원도 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매일 혹은 일주일에 한번, 혹은 일 년에 한 번 묵주기도를 궐했다 해도 아무 죄도, 소죄조차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몸이 아팠을 때나 자기 윗사람에게 순명하여 일할 때, 혹은 어떤 실제적 필요에 따라, 혹은 고의적이 아닌 건망증으로 묵주기도를 못 바칠 때라도 다른 묵주기도 회원의기도와 공로에서 나눠 받을 자기 몫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러분의 탓 없이 드리지 못한 묵주기도를 보충하기 위해 다음 날 묵주기도를 두 번 바칠 의무는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여러분이 몸이 아프고 병들었을 때도 묵주기도를 부분적으로 바칠 수 있으며 또 일부분은 바쳐야 합니다.  "언제나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1열왕 10, 8). "당신 집에 사는 사람, 복되오니 길이길이 당신을 찬미하옵니다."(시편 84,4). "오, 사랑하을 주 예수님, 날마다 주님의 나자렛의 작은 집 둘레와 갈바리아 언덕에 있는 주님의 십자가 둘레와 하늘나라의 주님의 옥좌 둘레에 있으면서 매일 주님의 환희와 고통과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바치는, 묵주기도회의회원인 형제자매들은 정말 행복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은총 때문에 그들은 지상에서 얼마나 행복하며 주님을 특별한 방법으로 찬양할 천국에서는 얼마나 행복 하겠나이까!  "

 

2. 묵주기도는 신앙을 가지고 바쳐야 합니다. 주님께서는"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마르 11, 24)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청한 바를 전능하신 하느님의 손에서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하느님은 여러분의 간청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때 하느님은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가 보아라.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8, 13)."만일 여러분 중에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느님께 구하십시오. '조금도 의심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야고 1, 5-6).만일 어떤 사람이 지혜를 필요로 한다면 오직 믿음으로 머뭇거림 없이 묵주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세리와 같이 겸손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는 땅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세리는 성당의 맨 뒤에 멀찍이 서서 바리사이파 사람처럼 제단의 지성소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눈을 내리깔고 바리사이파 사람과 같이 거만하게 머리를 쳐들거나 둘러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는 가슴을 치고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가 18, 13)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적어도 기도하면서 남을 업신여기거나 자기의 선행을 자랑하는 바리사이파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죄를 더하는 바리사이파 사람의 교만심을 본받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도로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얻어낸 세리의 겸손함을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은 평범한 것 이상의 어떤 것을 하거나, 묵주기도를 바치는 동안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몇몇 성인들에게 일시적으로 주신 기적적인 은총이나 환시, 그리고 계시나 특별한 것에 대한 깨달음까지도 청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믿음만으로 충족합니다. " 거룩한 복음과 모든 신심과 열심한 수련행위가 굳건히 일으켜지는 믿음만으로 우리에게는 아주 충족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영혼의 메마름이나 권태나 내적인 낙심으로 괴로워 할지라도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러한 정도로 포기한다는 것은 바로 교만과 불충실의 표시임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은  예수 마리아의 진실한 투사와 같이 아무런 위안도 없고 보고 듣고 느껴보지 못할지라도 신비에 대한 정신 집중을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 냉정히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마치 매일의 빵을 먹는데 어린이처럼 그에 따른 과자나 사탕까지 고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때때로 기도하기 귀찮고 어려움을 느낄 때, 더욱 천천히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올리브 동산에서 고민 속에서도 더욱 열절히 기도하신 우리 주님을 본받아 더 오래 기도하십시오."예수께서는 마음의 고통과 싸우면서도 굽히지 않고 더욱 열렬하게 기도하셨다"(루가 22,44).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같이 여러분에 대해서도 "더욱 열절히 기도하였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4. 하느님의 선하심과 무한하신 관용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에 근거한 크나큰 신뢰로써 기도하십시오. 하느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으로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생명의 샘물입니다.  영원하신 성부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당신의 자비와 은총의 생명수를 나눠주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오히려 우리에게 간청하고 계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있다."(이사 55, 1).  이는 "기도를 통하여 나의 샘에 와서 마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당신을 저버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백성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생수가 솟는 샘인 나를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 하여 물이 괴지 않는 웅덩이를 팠다"(예레 2, 13).

 

우리가 그분께 은총을 청할 때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며 우리가 청하지 않는다면 그분은 정감어린 불평을 하십니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해 본 적이 없다"(요한 16, 24).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마태 7, 7).  더군다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더욱 신뢰를 주기 위하여 당신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영원하신 성부께서 허락해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친히 하심으로써 계약을 맺고 계십니다.  

 

 

마흔여덟 번째 장미꽃 (꾸준한 노력)


5. 나는 기도에 있어서 꾸준한 노력에 대해 덧붙여 말하겠습니다.
 꾸준하게 간구하고 찾으며 문을 두드리는 자만이 받을 것이고, 얻을 것이며,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에 어떤 일정한 은총을 한 달 동안, 1년, 10년, 혹은 20년 동안까지도 간청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우리는 간청하는데 지쳐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는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계속 간청해야 하며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의탁을 보이는 이런 꾸준한 기도와 결부시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들이 나를 죽인다 하더라도 나는 하느님께 바라겠고, 내가 그분께 청하는 것을 그분에게 받기를 바라겠습니다"(욥 13,15). 세상에 훌륭하고 부유한 사람은 서민들이 무엇을 청하기전에 그들의 요구를 미리 알고 그들에게 베풀어 줍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주시고자 하는 은총을 오랜 기간 동안 찾고 간구하는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며, 매우 고귀한 은총은 훨씬 더 오래 미루십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렇게 하심으로 은총을 한층 더 증가시키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이고, 둘째로는 은혜를 받는 자로 하여금 그 은총에 의 진가를 인정하고 고맙게 생각하도록 하시는 것이며, 셋째로는 은총을 받은 영혼들이 진실로 그 은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대단히 주의를 기울이게 하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빨리, 그리고 아주 작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는 진가를 인정하지 않거나 고맙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묵주기도회의 형제 여러분은 영신적 이든 육신적 이든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를 통하여 여러분의 필요와 특히 무한한 보물인 지혜(지혜 7, 14참조)를 전능하신하느님께 꾸준히 간청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이에 대한간청을 중단하지 않고 인생 여정에서 조금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그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갈 길이 고될 터이니 ···"(1열왕 19, 7). 이것은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천국을 사고, 묵주기도회의 충실한 회원은 기다리는 아름다운 월계관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영원의 보물과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넉넉히 모으기까지는 아직 많은 길을 가야하고, 궂은 날씨도 많이 겪어야하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많은 적을 쓰러뜨려야만 할 것입니다. " 아무에게도 네 월계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여라."(묵시 3,11) 여러분보다 더 충실하게 묵주기도를 바치는 어떤 사람에게 당신의 월계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그 월계관은 당신의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위해 마련해놓은 것이며 당신이 열심히 바친 묵주기도로 벌써 반쯤은 획득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경주하는데 당신보다 의외로 앞서 가는 어떤 사람이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더욱 충실하여 당신의 것이나 다름없는 월계관을 가져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잘 달리고 있던 그 훌륭한 길에서 멈추어 섰기 때문에 당신을 앞질러 간 다른 사람이 먼저 거기 도착했고, 더 부지런하고 더 충실한 다른 사람이 묵주기도와 선행으로 값을 치르고 그 월계관을 가지는 데 필요한 것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그렇게도 잘 달리고 있었는데 누가 여러분을 가로막아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였습니까?."(갈라 5, 7) 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 12참조). 이 월계관은 세속의 조롱과 위협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영혼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묵주기도를 조심성 없이, 조급하게, 빨리 그저 아무렇게나 바치는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월계관은 온전히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미친 듯이 묵주기도를 방해하려 달려드는 것에 용기를 잃는, 때때로 바치다 말다가 하는 겁쟁이들이나 거룩한 묵주기도를 반대하는 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묵주기도회 형제 여러분, 묵주기도를 매일 바침으로써 예수 마리아를 섬기고자 원한다면 시련에 대비해야만합니다. "아들아, 네가 주님을 섬기려면 스스로 시련에 대비하여라."(집회 2, 1).이단자들과 방탕한 사람들, 세속에서 약간 인정을 받는 자들, 표면상으로만 열심한 사람들은 거짓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타락한 본성과 지옥 그 자체와 온통 한 패가 되어 이 거룩한 신심 수행을 포기하도록 온갖 노력으로 여러분을 대항하여 만만치 않게 무서운 전쟁을 걸어 올 것입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의 맹공격에 대비하여 여러분이 더욱 훌륭히 무장하도록 그들이 많이 말하고 생각하는 몇 가지 점에 대해 미리 말해 두고자 합니다. 이단자들이나 방탕한 자들은 아예 제쳐놓고, 오히려 세속의 눈에 좀 훌륭하다고 여김을 받는 자들과 묵주기도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이상하게도 열심인 것같이 보이는 자들, 그런 모든 이들을 경계하도록 여러분은 대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떠버리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사도 17,18) "의인은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긴다고 우리를 책망하고 배운 대로 하지 않는다고 나무라니 그를 함정에 빠뜨리자"(지혜 2, 12) "저 묵주를 가지고 줄곧 씨부렁거리는 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저자는 뭘 밤낮 중얼거리는 거야? 게으름도 심하기도 하지!저 작자는 묵주 알을 굴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처럼 많은 맹목적인 믿음의 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텐데 말이야.  묵주기도만 드리면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온다는 거야. 묵주기도가 먹을 것을 갖다 줄 테니까.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셨어. 왜 그렇게 많은 기도로 시달리는거야? '짧은 기도가 하늘을 뚫는다.'고 했어 주님의 기도, 성모송 한번을 제대로만 하면 충분한 거야. 하느님에서는 우리에게 묵주기도를 명하지 않으셨어.  그건 좋은 것이지, 시간이있을 때에는 좋은 것이야. 그래도 역시 구원을 받을 것이거든. 그렇지만 묵주기도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성인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사람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고, 만사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조심성 없는 사람들도 있고, 죄가 없는 곳에 죄가 있다고 보는 세심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묵주기도를 드리지 않는 사람 모두가 영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 

 

"묵주기도를 드리는 것은 글을 읽지 못하는 오죽잖은 여자들에게나 적합한 것이다. 묵주기도를 드리라고? 성모 소 성무일도를 읽거나 일곱 시편을 외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성령께서 불러 주신 이 시편들만큼 훌륭한 것이 또 있는가?" "당신은 날마다 묵주기도를 드리려고 하지요, 그것은 모두짚불과 같은 것이어서 오래 가지 못합니다. 여보시오. 친구, 내 말을 믿고,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잘 드리고 낮 동안에는 하느님을 위해서 일하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지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래도 괜찮겠지요.  당신이 묵주기도를 드리기로 약속해도 될 것입니다. 당신은 주일과 축일에는 마음대로 묵주기도를 드려도 됩니다. 하지만 일하는 날은 안됩니다. 일을 해야지요. ""아니? 여편네와 같이 그렇게 큰 묵주를 가지라니? 나는 한단짜리 묵주를 보았는데, 그것이 15단짜리 묵주와 같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아니! 묵주를 허리에 차고 다니다니, 그 얼마나 맹목적인 믿음입니까! 에스파니아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목에 걸고 다니라고 권하겠습니다. 그 사람들은 묵주기도를 굉장히 많이 드리는데, 한 손에는 커다란 묵주를 들고, 또 한 손에는 돌발 사태를 일으키려고 단검을 들고 다닙니다.  외부적인 신심은 집어치우시오. 집어치워요, 참된 신심은 마음 속에 있습니다. "

 

그리고 이와 유사하게 좀 현명치 못한 사람들과 학식이 많은 학자들은 여러분이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을 그만 두게 하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통회의 시편 일곱 편이나 몇 가지 다른 기도문을 바치라고 부추길 것입니다.   만일 어떤 훌륭한 고해신부가 여러분에게 보속으로 묵주기도를 보름이나 한 달 동안 매일 바치라고 말하였다 해도 만일 여러분이 그런 이들 중의 어떤 사람에게 가기만 하면 그 보속은 다른 기도나 단식 또는 미사참례나 자선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묵주기도를 전혀 바치지 않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에게 기도생활을 지도해 줄 의견을 묻는다면 그는 묵주기도를 권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묵상기도를 배우기 위해서는 묵주기도를 버려야 할 것처럼 말할 것입니다. 마치 묵주기도에 깊은 정성을 들인 성인들 모두 관상의 높은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거룩한 묵주기도와 묵상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의 집안에 있는 적들은 여러분들과 더 긴밀히 결합해 있으므로 그만큼 더 더욱 잔혹하게 여러분을 공격할 것입니다. 내 말의 뜻은 여러분 영혼의 능력과 육체적 감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의 잡념, 근심과 의지의 불안정, 마음의 메마름, 육신의 피로와 병고,  이 모든 것들이 악마와 결합하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그만둬라, 그것은 네게 골치 아픈 것만 안겨 줄 뿐이다. 아주 포기해 버려라. 그렇다고 죄를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네가 만일 묵주기도를 바치기를 원한다면 부분적으로만 바쳐라.   네가 완전히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그 어려운 이유는 하느님께서 네가 그 기도를 드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표이다. 네가 네 몸의 상태가 더 나아진다면 그때 드려라‥“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는 이들은 어떻게 많은 적을 갖고 있는지 이 기도를 죽을 때까지 꾸준히 드릴 수 있는 은총을 나는 하느님의 각별한 배려 중의 하나로 고려해 볼 정도입니다.  묵주기도를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그 성실한 만큼 천상에 준비된 월계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너는 죽기까지 충성을 다 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월계관을 너에게 씌워 주겠다."(묵시 2, 10). 

 

 

마흔아홉 번째 장미꽃 (은사)

 

여기서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한 많이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묵주기도회 회원들에게 베풀어지는 대사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성인들의 교회의 보고 속에 포함되어 있는-넘치는 속죄 공로의 적용으로 실제적으로 범한 죄에 딸려있는 잠벌에 대한 사면이나 완화입니다.   전대사는 죄에 당연히 따라오는 전체적 벌에 대한 사면이며, 한대사(부분대사)는 예를들 어 백일 은사, 천년 은사는 누가 교회의 옛 법전에 명기된 보속을 그대로 다 수행하여야 할 때 백일, 혹은 천년 동안 속죄해야 할 그만큼의 벌을 사면하는 것입니다.  현재 이러한 교회법은 한 번의 대죄에 대해 7년, 때로는10년 혹은 15년의 보속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7년간 보속을 적어도 20번 이행해야만 할 것이며 다른 경우에도 그와 같이 해나가야 합니다.  묵주기도회 회원들이 은사를 얻으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합니다.  첫째로 진정으로 회개하고 대사에 대한 교황 교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해야 하며, 둘째로는 소죄에 대한 애착심까지 전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애착심이 남아 있다면 죄가 역시 남아 있기 때문이며 죄가 거기에 머물러 있다면 따라서 벌도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로는 교황 교서에서 정해놓은 대로 기도를 바쳐야 하며 선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만약 교황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라 전대사를 못 얻을 경우 부분적인 대사(한대사 : 예를 들면 백일 은사)를 얻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그 대사를 얻기 위해서 고해성사와 영성체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한대사는 묵주기도를 합송하면서 하는 행렬과 묵주기도에 많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대사들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플라민(Flammin)과 같은 많은 저명한 저술가들이 알렉산델이란 이름을 가진 귀족 출신의 어린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소녀는 도미니코 성인에 의해 기적적으로 회개하고 묵주기도회에 가입하였는데 죽은 후 성인에게 나타나서 자신이 지은 여러 죄와 세속적인 생활 태도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도 죄를 짓게 한 까닭에 연옥에서 7백년을 지내야 하는 벌을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그 소녀는 성인에게 자기를 도와주고 묵주기도회 회원들에게도 기도해 주길 청하였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그 소녀의 청대로 해 주었습니다. 그 소녀는 2주일 후에 태양보다 더 눈부신 모습으로 다시 성인에게 나타났는데 회원들이 자기를 위해 바친 묵주기도를 통해 연옥에서 빨리 구출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는 도미니코 성인에게 연옥의 영혼들이 거룩한 묵주기도를 계속 전파하도록 간청하는 메시지와 자기들의 부모에게 자기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쳐줄 것을 간청해달라며 그들이 영광에 들어간 후에는 풍부히 그들에게 보상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묵주기도회 주요 규칙


회원들이 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누구나 묵주기도회 대장에 이름을 등록하고 할 수 있는 한 그날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묵주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2) 축복한 묵주를 지녀야 합니다.

3) 매일 묵주기도를 바친다. 바치지 못할 경우 적어도 매주한 번은 꼭 바쳐야 합니다. 

 4) 할 수 있으면 언제나 매달 첫 주일에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거룩한 묵주기도의 행렬에 참가해야 합니다. (이 규칙은 어기더라도 죄가 되지 않음을 기억해 두십시오.)'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에 가입하여 서약대로 기도한다면 묵주기도회에 가입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묵주기도의 힘과 가치의 신성함 (복자 알라노에게 주신 성모님의 계시)


묵주기도는 남녀를 불문하고 아주 굳어버린 죄인들도 회개하며 지나간 과거의 죄를 겸손되이 통절히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게 합니다.
 어린이들까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보속을 실천하며, 나의 아들과 나에 대한 신심이 마치 천사들이 지상에서 살고 있는 것같이 보일 정도로 철저히 전파됩니다. 신앙은 향상되고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신앙을 위해 피를 흘리고 이단자들을 대항해 싸우기를 열망합니다.  이리하여 나의 지극히 사랑하는 도미니코의 강론과 묵주기도의 힘으로 이단자들의 영지가 모두 교회로 되돌려 졌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의연금을 희사했고 병원과 교회가 많이 건설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윤리적이고 준법적인 생활을 해나가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놀랄 만큼 업적을 행하게 되고 신성함과 속세를 떠남이 더욱 성행합니다. 성직자는 모범적 이며 군주들은 정의롭고 사람들은 서로 평화롭게 살며 조합 단체나 가정은 정의롭고 공정하게 다스려집니다. 여기에 또 더욱 인상적인 것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나의 시편을 바칠 때까지는 자기 연장을 내려놓지 않으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고서는 잠자리에 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잠자다가도 내게 이런 기도를 바치지 못했음을 깨달았을 때엔 다시 일어나 -밤중일지라도-가책을 느끼며 크나큰 존경으로 내게 인사할 것입니다.  이 묵주기도는, 정성을 다 하여 바치는 사람은 누구나 틀림없이 묵주기도 회원으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만큼 그렇게 널리 전파되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죄중에 산다면, 혹은 신성한 것을 불경스럽게 모독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주 적절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아무리 해도 도미니코 성인의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

 

"나는 내가 거룩한 묵주기도를 통해서 다른 지역에서 행한 표적과 기적을 말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페스트와 같은 역병을 중지시키고 잔인한 죄악과 무서운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나의 묵주기도를 통해서 사람들은 시련을 모면할 용기를 찾았다.   너희들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 천사들은 즐거워하고, 복되신 성삼위께서도 기뻐하시며, 나의 아들 역시 거기서 기쁨을 찾고 나도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미사성제 다음으로 내가 묵주기도처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교회 안에 아무것도 없다. "도미니코 성인이 매우 간곡히 강조하고 독려한 바대로 도미니코회 모든 수사 수녀들은 나의 아들과 나를,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끊임없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방법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매일 적어도 묵주기도세 꿰미(15단)를 완전히 바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날묵주기도를 못 바쳤다면 아마 그는 종일 기분이 언짢음을 느끼게 됩니다.  성 도미니코회의 수사들은 이 신심을 대단히 사랑하며 따라서 묵주기도의 신심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며, 또한 그들은 곧잘 수도자의 기도로 만일 그들 중 한 사람이 자기가 할 바를 주의 없이 이행하는 것을 보면 다른 형제들이 침착하고 믿음직하게 말할 것입니다.  "오, 형제여, 그대는 마리아의 시편을 좋은 마음으로 바치지 않고 있으며, 또 나쁘게도 바치지 않고 있군요."  묵주기도의 인사는 천상 여왕에게 가장 알맞는 것입니다

 

"천상의 거룩한 천사들이 성모송으로써"-들리지 않게 하지만 천사들만이 알 수 있게-지극히 복되신 동정녀에게 인사드립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그 인사를 통해 타락한 영혼들의 죄를 배상하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 인사로써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고 따라서 세상은 새로워졌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복자 알라노)  어느 날 묵주기도회의 회원인 한 부인의 꿈에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딸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네가 매일 충직하게 찬미하는 너의 사랑하는 어머니이다.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실천하여라.   나는 네가 이 '성모송'이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실제로 설명할 수 없는 큰 즐거움을 내게 준다는 것을 알기 원한다."(궐롬 프팽, 금묵주의 강론 47).  성녀 젤투르다는 환시 중에 이것을 확신하게 되었는데 성녀의 계시 2권 4장에서 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모 영보 축일 아침에 성녀 젤투르다의 수도원에서는 성모송이 찬송되고 있었습니다. 성가를 부르는 동안 성녀는 세개의 시냇물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부터 세차게 흘러와 동정이신 마리아의 성심으로 천천히 흘러 들어가고 있는 환시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흐르던 물이 성모 성심에 이르자, 잠시 후 흘러 나왔던 본 원천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성녀 젤투르다는 복되신 성삼위께서 성모님이 천주성부 다음으로 가장 능력 있고, 천주 성자 다음으로 가장 지혜롭고, 천주 성령 다음으로 가장 사랑스런 분이 되시도록 허락해 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성녀는 언제나 "성모송"이 충실히 바쳐질 때마다 성모님 주위에 있는 세 가지 신비스런 냇물이 성모 성심 안으로 힘차게 소용돌이치며 급히 흘러들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물은 성모님을 완전히 행복 속에 잠기게 한 후, 전능하신 하느님의 품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성인들과 천사들은 이 기도를 바치는 지상의 충실한 사람들과 같이 넘치는 기쁨을 나누어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모송이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한 모든 선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모님이 친히 성녀 젤투르다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결코 성모송보다 더 아름다운 어떤 것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어떤 인사도 하느님이 친히 내게 말씀하신 이 아름답고 장중한 말씀보다 나의 마음에 들 수는 없다. "어느 날 성모님은 성녀 메틸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게 바친 성모송은 모두 나의 망토를 빛나게 하고 있다"(그때 성모님은 당신 망토의 한 부분을 들어 보이셨습니다),  "나의 망토의 이 부분이 성모송으로 가득 찼을 때 나는 너를 거두어들이고 나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으로 들어오게 하겠다. "카르투시안 사람 데니스는 어느 부하에게 나타나신 성모님의 발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입과 마음과 행동으로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에게 인사를 드림으로써 성모님이 '이 백성들은 입으로만 나를 공경하고 자신의 마음으로는 이미 나를 떠나 있다' 고 우리에게 말할 수 없으시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 로렌조의 리카르도는 강론을 시작할 때, 성모송을 바치는 합당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열거했습니다.  

 

1) 현세에서 투쟁하고 있는 교회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십시오." 하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전에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고 말하면서 크나큰 존경을 다하여 축하의 인사를 드린 가브리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2) 교우들은 성모송으로 서두를 시작한 강론에서 더 충실한 열매를 끌어낼 것이며 강론하는 사제는 바로 천사의 역할을 다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자들은(신앙으로써) 자기 영혼 안에 그리스도에서 탄생하시도록 해 드리기 위하여 먼저 그리스도를 낳으신 복되신 동정녀로부터 이 은총을 우선 얻어내야 합니다. 그러면 성모님과 함께 그들은 천주 성자의 모친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 없이 영혼 안에 예수님을 출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복음 성서는 성모송의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기도문을 통해 성모님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것입니다.

4) 성모송을 바침은 위험스러운 함정을 피하는 길이며 위대한 보호의 방책입니다.

 5) 모든 이들이여, 성모님의 표양을 따르고 하느님의 말씀을 더 주의 깊게 듣고 명심하십시오. 

 

6) 악마는(인류와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의 적) 성모송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믿음이 생길까봐 믿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빼앗아 버릴 악마가 나타날 위험이 있으므로 이 성모송은 대단히 필요한 것입니다. 클레멘스 로순은 이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 첫 강론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이 귀천하신 후, 묵주기도 신심은 페스트전염병이 나라마다 곳곳에 일어났을 때 거의 죽은 상태로 쇠퇴해 있었습니다. 그때 이 가련한 백성들은 사막에서 매우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는 성자다운 은수자의 가르침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전능하신 하느님께 전달해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은수자는 천주의 모친을 부르며 죄인들의 변호자로서 그들을 도우러 오시도록 성모님께 간청 하였습니다. 그러자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의 찬미의 노래를 중단했다. 이것이 그들이 징벌을 받게 된 까닭이다.  만일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 예전 신심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들은 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묵주기도는 내가 좋아하는 찬송의 형태이므로 그들이 묵주기도를 찬송한다면 나는 그들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리아께서 요청한 바를 실행했으며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영신으로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은사
은사는 이미 용서받은 죄에 딸린 잠벌에 대해 하느님 앞에서 사면 받은 것입니다. 은사는 구원의 관리자로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가톨릭교회를 통해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은 죄와 그로 인해 받아야 할 영원한 벌이 상등통회와 고해성사로써 면제되지만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죽기 전이나후에도 이미 용서받은 죄일지라도 하느님의 정의를 보상하도록 계속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지은 죄에 대해 충분히 보상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우리는 연옥에서 죄에 상당한 시간동안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은사는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한 이런 연옥의 벌을 감소시키거나 없애는 것입니다.  은사를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세례성사를 받은 가톨릭 신자로서 죄를 뉘우치고 은총의 지위에 있어야 합니다. 은사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역시 은사를 얻으려는 지향을 가져야 하며 은사를 얻을 수 있도록 부여된 공로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공로를 쌓기 위해 실행할 수 있는 그날 시작 때 은사를 얻겠다는 지향을 갖는다면 은사가 부여된 일을 실천할 때마다 매 번 지향을 갖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나 연옥 영혼들에게 은사를 허락해 주십사고 하느님께 간청할 수는 있지만 살아있는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는 간청할 수 없습니다. 전대사는 죄에 따르는 모든 벌을 없애주며 죽은 후에 천국에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작은 소죄일지라도 우리 영혼에서 지워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죄에도 조금이라도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정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의 법을 어기는 어떠한 생각이나 말이나 행실로부터 스스로 완전히 돌아설 때에만 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당신의 명을 거두십니다.  

 


새로운 규정

 

 전대사를 얻기 위해선 은사가 부여된 일을 꼭 실천해야하며 세 가지 조건을 채워야만 합니다. 즉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며 교황의 뜻대로 기도합니다(교황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한다는 조건은 각자의 열성과 교황께 대한 효성에 따라 어떤 다른 기도문을 자유롭게 바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한 번 바치면 족합니다) 세 가지 조건은 전대사가 부여된 일을 실천하기 여러 날 전이나 여러 날 후에 채워져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영성체와 교황의 뜻대로 기도하는 일은 전대사의 조건을 실행하는 바로 같은 날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정해진 기간 동안 한 번 고해성사를 받음으로써 여러 번전대사를 받을 수 있으나 한 번 영성체하고 교황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으로 그 때마다 한 번만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매일 전대사를 얻으려고 완전히 마음을 먹는다면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전대사는 하루에 1번 얻을 수 있으나 죽는 순간에는 예외입니다.  이 경우에 그날 전대사를 얻은 후일지라도 교황의 특별한 강복을 받게 됩니다. 전대사를 얻으려는 사람이 불완전한 지향을 가졌거나 전대사가 부여된 일을 실행한 후 필수적 조건을 다 채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교회는 그 사람의 죄에 따른 잠벌의 부분적 사면을 베풀어줍니다. 부분대사는 죄에 따른 벌의 부분만 사면됩니다.  그리고 사면받기 위한 특정한 시간의 총계를 지적함 없이 허락되는 것입니다. 부분대사는 하루 동안 여러 번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달리 지시가 되어 있습니다. 은사를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시된 일(조건)을 실행해야만 합니다. 또 은총의 지위에 있어야 하며 할 수 있는 한 거룩하고 완전한 지향을 갖도록 애써야 합니다.  

 

 

 

묵주기도에 대한 은사 

 

성당이나 경당에서, 혹은 가족이 함께 혹은 수도단체나 신심단체에서 묵주기도 5단을 바칠 때 전대사가 주어집니다. 그때 모두 한자리에 모여 소리 내어 기도해야 하며 신비에 대한 묵상은 그곳 관습대로 바쳐져야 합니다. 부분대사는 그외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묵주기도를 바쳤을 때 허락됩니다.   묵주기도회의 가입 묵주기도회에 가입하고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 밑에서 많은 은전을 받고 싶으면 파티마 세계 사도직(푸른 군대) 본부로 편지하십시오.  

 

 

[티 없는 마리아 성심께 드리는 봉헌문]

 

 불충한 죄인(이름)이 오늘 저의 세례 때의 약속을 새롭게 하고 굳건히 하며, 영원히 마귀와 그 영화와 행실을 끊어버리고, 사람이 되신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봉헌하오니 이는 일생 동안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며 종전보다 예수님께 더 성실하기 위함이나이다. 천상의 모든 성인성녀들 앞에서, 오 마리아님, 저는 오늘당신을 저의 어머니와 여왕으로 모시오며 저의 영혼 육신과저의 내적, 외적인 소유,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저의 모든 선행의 대가까지도 당신의 종으로서 봉헌하오며, 하느님의 큰 영광을 위해 현세와 내세에 있어서 저의모든 것을 온전히 당신께 맡기나이다. 아멘. 

 

 

[미카엘 대천사에게 드리는 기도]

 

 (레오 13세 성하께서 공포하신 것; 3년 은사) 성 미카엘 대천사여, 저희를 이 삼구전쟁에서 보호하여 주시며, 악마의 흉악한 함정에서 저희의 방패가 되소서. 악마를 명령하고 다스릴 하느님의 능력으로 사탄과 영혼들의 파멸을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는 다른 악령들을 지옥으로 쫓아 몰아내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