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이 영혼을 다스릴때

99. 영혼 안에서 다스리고자 오시는 하느님의 뜻

Skyblue fiat 2018. 2. 19. 18:48


99.

1925년 2월 8일

영혼 안에서 다스리고자 오시는 하느님의 뜻


1. 오늘 아침에는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어찌나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 내 변변찮은 영혼이 연민으로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팔다리의 뼈가 빠진데다 깊이 팬 상처들이 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분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트시는 것이었다.


2. 내 옆에서 그러시는 것을 보니 내가 고통을 함께 나누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다만 그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내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고통이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매우 자애로운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더는 못 견디겠구나. 나의 이 상처들을 매만져 아픔을 가라앉혀 다오. 모든 상처에 네 사랑의 입맞춤을 주어, 내가 겪고있는 이 심한 경련을 너의 사랑으로 진정시키려무나.


4.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의 이 상태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내 뜻의 참모습이다. 내 뜻이 그들 가운데 있지만 떨어져 나간 것처럼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내 뜻이 아닌 뜻을, 곧 그들 자신의 뜻을 행하고 있어서, 내 뜻은 그들에 의해 상처 받고 뼈가 빠진 채로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너는 내 뜻과 결합하여 나의 이 탈골 상태를 위로해 다오.”


5. 나는 그분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손의 상처들에 입을 맞추었다. 오, 얼마나 심한 상처들인지! 그것은 인간의 많은 활동들이 – 비록 거룩한 활동이라고 할지라도 – 하느님의 뜻에 그 기원을 두지 않는데서 오는 상처들이었다.


6. 그 아픔을 덜어 드리려고 나는 두 손으로 상처들을 꽉 죄어 오므렸다. 예수님은 내가 하는 대로 그냥 두실 뿐더러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시기도 하기에, 다른 상처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하였다. 그러다 보니 그분께서 거의 오전 내내 머물려 계셨는데, 마침내 나를 떠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7. “딸아, 네가 위로해 주었기 때문에 이젠 내 뼈들이 제 자리에 붙은 느낌이다. 그런데 나의 빠진 뼈들을 어루만져 제 자리에 붙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그것은 그 자신 안에 내 뜻이 군림하게 하는 것이다.


8. 영혼이 자기의 뜻에 생기를 주는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고 그것을 아예 제쳐놓으면, 그때에는 내 뜻이 그 영혼의 주인으로 행동한다. 그안에 군림하여 명령을 내리며 다스린다. 내 뜻이 마치 자기 자신의 집에 있는 것처럼, 즉,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9. 그러므로 나는 내 소유가 된 그 집에서 주인으로 행동하며 내것을 자유로이 관리하고 배치한다. 나의 집인 이상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안에 놓을 수 있고, 집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피조물이 내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영예와 영광을 받게 된다.


10. 이와 반대로 자신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주인으로 행동하며 관리하고 명령하기에, 내 뜻은 가련한 외인처럼 푸대접을 받고 때로는 멸시를 당하기도 한다.


11. 내 것을 갖다 놓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은, 인간 자신의 뜻이 나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룩한 일에서조차 이 뜻이 우두머리 행세를 하려고 들기에 내 것은 아무것도 둘 수 없는 것이다. 자기 뜻의 지배를 받으려고 드는 그런 영혼 안에서 나는 얼마나 큰 불쾌감을 느끼는지 모른다!


12. 어떤 아버지가 멀리 있는 아들을 보러 갔다고 하자. (또는 한 친구를 찾아간 친구가 있다고 하자). 문을 두드리자 아들네가 (또는 친구네가) 열어 주긴 했으나, 그를 받아들인 방에 그대로 둔 채 식사도 잠자리도 마련해 주는 이가 없고, 자기네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 아버지에게 (또는 그 친구에게) 얼마나 큰 모욕이, 얼마나 큰 슬픔이 되겠느냐?


13. 그는 친절하게도 보배로운 것들을 가지고 갔었으나 하나도 남겨 두지 않고 그 집을 떠나고 말 것이다. 가슴을 꿰찌르는 깊은 상처를 받은 채 말이다.


14. 반면에, 그를 보자마자 즐거운 잔치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들은 그에게 더할 수 없이 푸짐한 식사와 포근하기 짝이 없는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온 집과 그들 자신을 다스릴 주인의 권한도 보태 준다.


15. 이것이야말로 아버지 (또는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영광과 사랑과 존경 및 복종의 표현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그는 그들의 그 융숭한 대접에 보답하려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남김없이 다 내놓지 않겠느냐?


16. 그러한 것이 나의 뜻이다. 나의 뜻은 사람들 안에서 살기 위하여 하늘에서 온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주인으로 섬기기는 고사하고 낯선 가난뱅이로 있게 한다.


17. 그렇다고 해서 나의 뜻이 영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나를 외인으로 취급해도 나는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나의 선과 은총과 성덕을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의 뜻은 사람들 안에서 살기 위하여 하늘에서 온다.

12. 어떤 아버지가 멀리 있는 아들을 보러 갔다고 하자. (또는 한 친구를 찾아간 친구가 있다고 하자). 문을 두드리자 아들네가 (또는 친구네가) 열어 주긴 했으나, 그를 받아들인 방에 그대로 둔 채 식사도 잠자리도 마련해 주는 이가 없고, 자기네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 아버지에게 (또는 그 친구에게) 얼마나 큰 모욕이, 얼마나 큰 슬픔이 되겠느냐?

13. 그는 친절하게도 보배로운 것들을 가지고 갔었으나 하나도 남겨 두지 않고 그 집을 떠나고 말 것이다. 가슴을 꿰찌르는 깊은 상처를 받은 채 말이다.

14. 반면에, 그를 보자마자 즐거운 잔치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들은 그에게 더할 수 없이 푸짐한 식사와 포근하기 짝이 없는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온 집과 그들 자신을 다스릴 주인의 권한도 보태 준다.


천상의 책 17권-30,  http://blog.daum.net/skybluegirin/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