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하느님 뜻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카를로스 신부님

Skyblue fiat 2016. 9. 27. 13:44

 

 

 


대전 정하상 교육회관 제 10 강의 (수정)

 

  (2013. 4. 17 전체 피정 셋째 날 오후 강의2)

 

 


10. 하느님 뜻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 1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이 방법대로 살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다시 또 말하지만 이것은 이런 저런 다른 신심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신비와 우리 그리스도인 신자생활의 더 깊은 차원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을 하기 위해서 수도자들에게 수도복을 바꿔 입으라고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수도회의 규칙들을 바꾸라는 말씀도 아니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자비의 사도직을 그만 두거나 바꾸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하느님의 뜻을 초대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의 중심에 그것을 놓아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일상생활의 모든 작은 행위까지도 그분 뜻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기혼이든 미혼이든, 교구의 주교님이나 수도회의 장상이나 본당의 신부님의 허락을 받아서 이것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행위는 주교님이나 장상이나 가정의 부모에게도 아주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창조적인 능력에 참여하라는 이 선물에 의해서 이런 모든 행위는 영원토록 현행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완전하고도 영원한 방법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을 바치고 모든 세대에 선을 행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께서 하느님으로서 하시는 모든 일 안에 그분과 합쳐지고 모든 일에서 그분과 함께 하기를 우리가 원하기를 바라십니다. 만일 그분께서 그분과 함께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함께 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신 것을 기뻐하시면 그것은 잘 된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에 우리를 합치시켜 주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대로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피앗이라고 합니다.

 

 주님, 저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존재하는 이 우주를 당신과 함께 유지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모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저는 성부께 대한 당신의 영원한 사랑 안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 어머니께 대한 당신의 무한한 사랑 안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또 당신 교회에 대한 당신의 사랑 안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영혼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 안에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제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원하시면 저도 당신과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저를 정화해 주십시오. 저에게 빛을 주십시오. 저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십시오. 당신과 하나 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저에게 주십시오.

 

 예수님, 당신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에 이 선물을 성부께 청했습니다. 저는 저의 삶 안에서 당신의 기도가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 자신을 위해서 원하는 것과 이 세상의 저의 모든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제가 원하는 것도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뜻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기도의 그 무한한 대양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겸손한 마음으로 먼저 우리는 교회가 기도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요약편 534번 : 기도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교회가 우리에게 대답해줍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은혜를 간청하는 것이다. 기도는 언제나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무한히 선하신 성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들의 마음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과 맺는 생생한 인격적인 관계이다.

 

 루이사의 장(章)들 중에서 우리가 읽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살기 위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 밖으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이것이 기도이다.” 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들어 높이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혹은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은혜를 간청하는 것입니다.

 

 아주 자주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을 청하는 기도를 합니다. 주님께서 루이사에게 “내 마음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내 마음 안으로 들어 올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청원 기도가 하느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면 그 청원 기도는 성령에 의한 영감을 받은 것이라야만 됩니다. 만약 그 청원 기도가 내 인간적인 뜻에서 나온 것이고 성령에 의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그 청원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허가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는, 특별히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청하려고 할 때에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자신에게 무엇을 청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도록 먼저 우리가 성령의 선물을 청해야 됩니다.

 

 


 야고보 사도가 그 서간에서 “청하고 청하고 청해도 너는 아무것도 못 받는다. 제대로 잘 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을 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 열정에 의해서 청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네가 못 받는 이유이다.” (야고 4,3 참조)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가 청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기도가 청원 기도라면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처럼,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시니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믿음으로 우리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과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원한다는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청원 기도의 끝에는 언제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라는 말로 끝을 맺어야 합니다. “저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라는 이것이 청원의 완전한 기도입니다. “저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피앗에 따라서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이것이 교회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에 맞는 것을 청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청하는 것이 그분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모를 때가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끝에 가서는 “제가 당신께 청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덧붙여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다음에 교회가 아주 중요한 진실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기도는 언제나 사람을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참된 기도의 원천은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취해야 하는 모든 좋은 것들은 다 하느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하느님 뜻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닮게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 타당한 기도를 바치고, 아름답고 거룩한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거울이 되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 거울 안에 나타나야 될 아름다운 것은 바로 하느님 자신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일, 그분의 사랑, 그분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발명해야 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하고 깨끗한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우리들 마음속에 아주 완전하게 성취하실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작은 양들처럼 그분을 보면서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의 얼굴로 반사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숨을 받고 또 그분의 숨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분의 뜻 안으로 우리의 숨을 불어넣으면 됩니다. 주님의 현존 안에 이런 식으로 있는 것이 바로 진짜 기도입니다.

 

 이제 기도를 하기 위한 조건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래서 루이사의 글에서 좋은 기도를 하기 위한 조건이나 차원에 대한 알맹이를 좀 뽑아서 보겠습니다.

 

 하느님 뜻의 무한한 선물에 대한 내용은 11권, 12권, 13권 등에 있습니다만, 지금은 우선  제1권으로 가겠습니다. 루이사의 기도학교로 들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내적침묵입니다.

 

 


 루이사가 글을 쓰기 시작하자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정신이 이렇게 종알거린다면 내 음성을 더 분명히 들을 수가 없고, 나로 하여금 은총을 쏟아 붓지도 못하게 한다. 이 은총은 네가 나만을 사랑하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네가 온전히 내 것이 되겠다고 약속하여라. 그러면 내 자신이 이 일을 하겠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네 말은 맞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뜻을 나에게 다오.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첫 권에서는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하시는 영원한 행위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30년 후에 루이사에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가지신 목적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는 너의 뜻을 원한다. 나는 너의 뜻이 내 뜻과 완전히 같아지는 것을 확인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분의 뜻과의 완전한 일치화의 효과에 대해서는 루이사에게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네 뜻을 나에게 다오. 나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라고 루이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첫째는 내적침묵입니다. 우리는 외적침묵으로 내적침묵을 도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귀에 헤드폰을 끼고 하루 종일 일한다면 우리는 내적침묵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밤에까지 하루 종일 TV나 라디오를 켜놓으면 내적침묵은 불가능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삶 안에 침묵의 공간을 두지 않으면 내적침묵은 불가능합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이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주님과 단둘이만 있을 수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귀와 우리 마음에 어떤 소리가 들리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살면 우리 마음속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의 다른 요소는 평화입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집중시키는 것이 어렵더라도 평화를 가져야 됩니다.

 주님께서 루이사에게 “너는 그렇게 방해를 많이 받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너는 내가 평화의 영이라는 걸 모르느냐? 내가 너한테 제일 첫 번째로 권하는 것은 네가 네 마음의 평화를 혼란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타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르타는 평화를 잃었던 겁니다. 방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평화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평화를 잘 유지해야 됩니다. 평화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는 첫 번째의 것은 먼저 죄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경향, 주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할 때, 이런 것들이 성령께서 주신 평화를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또 우리가 하는 일에 주의력이 부족한 것은 사랑이 부족한 것입니다. 이 사랑의 부족도 우리 마음의 평화를 방해합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에게 달린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너 자신을 집중시키지 못하면, 네가 이런저런 것을 생각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런 것인지 혹은 어떻게 그렇지 않은 것인지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을 생각할 때 너는 분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네가 그런 상태에 있는 너 자신을 발견할 때, 제일 먼저 네가 할 일은 너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그런 아픔들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고 고백을 하면서 너 자신을 주님 팔 안에 놓아드려라.

 

 겸손한 어린 양이 자기를 죽이는 사람 손을 핥을 정도로 너 자신을 낮추어라. 너도 마찬가지로 그 양처럼, 너 자신이 매를 맞고 마음이 괴롭고 네가 혼자인 것을 볼 때에는 너는 네 자신을 포기하고 나의 처분에 다 맡기고 온 마음을 다해서 나에게 감사해라. 너를 때리는 내 손에 키스를 해라. 오히려 그런 고통조차도 너에게는 부당하다고 인정을 하면서 너를 때리는 내 손에 키스해라. 그리고 그 쓰라림, 걱정, 권태로움 이런 것들을 나에게 봉헌해라.

 

 그런 것들을 찬미의 희생으로 받아달라고 나에게 기도해라. 너의 죄에 대한 보상으로 받아달라고 나에게 기도해라. 그런 모든 것들이 나에게 준 모욕에 대한 보상으로 받아달라고 기도해라. 만약 네가 그렇게 하면 네 기도는 아주 가장 향기로운 유향처럼 내 어좌 앞으로 올라 올 것이다. 그것이 내 마음에 사랑의 상처를 주게 되고, 그러면 너는 새로운 은총과 새로운 은사들을 받게 될 것이다.”

 

 기도생활은 영혼 안의 신학적이거나 다른 덕들을 실천하는 것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하느님을 모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나 통역수녀님은 지금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만, 앞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기도는 희망과 사랑과 겸손 등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이 언제나 불타오르거나 황홀경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항상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도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느 날 여러분이 피곤하고 늑대와 같이 여러분의 뒤에서 여러분을 무너뜨리려는 많은 문제점이 있을 때에는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이 평화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고 이렇게 기도하기 어려운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루이사에게 “그러지 마라. 겸손하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이 모든 어려운 것들을 네 죄에 대한 보속으로 다 나한테 다오. 이 겸손이 네 영혼에게 새로운 은총과 새로운 은사를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주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식으로 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 안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 그 이유나 설명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기도는 우리 자신을 떠나서 그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만일 그분의 마음의 문이 확실히 닫혀있으면 겸손하게 여러분 자신을 낮추고 그 어두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루이사의 글에서 우리가 찾아내는 기도의 둘째 요소는 기도 안에서의 항구함입니다.

 

 왜냐하면 내적 침묵을 가질 것과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는데 이런 것은 하루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동안 그렇게 해보는 것은 기도생활이 아닙니다. 하루 동안은 그렇게 훌륭하게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것이 기도생활은 아닙니다.

 

첫째 권을 계속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루이사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권고하는 것은 기도이다. 비록 네가 죽음의 고통을 당하게 되더라도 너는 네가 늘 하던 것을 절대로 게을리하면 안 된다.”

 

 이것은 기도에 대한 위대한 스승이며 교회학자인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과 똑같은 것입니다. 대(大) 데레사 성녀는 자기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이렇게 위대한 기도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 대(大) 데레사 성녀의 결론이 이것과 똑같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과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아침 기도를 바치고 미사참례를 하기로 주님과 약속을 했으면 죽을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 약속을 충실히 지키십시오. 더욱이 여러분 자신이 깊은 구렁 속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보게 되더라도 여러분을 자유롭게 해 주실 수 있는 분께 더 많이 도움을 청하십시오.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특별히 이 세상에서 결혼생활을 하고 평신도로 사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할 때에는 한 시간 동안 성체조배를 하겠다는 주님과의 약속을 여러분은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도를 하겠다고 주님과 약속을 할 때에는 그분의 뜻 안에서 지혜롭고 신중하게 해야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결혼을 했고 아버지나 어머니라면 일을 하러 가야하고, 집 안에서도 준비할 일이 많습니다. 이 경우에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그 신분에 순명하고 충실해야 합니다.

 

 기도와 관련하여 여러분이 하는 약속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현실에 맞게, 신중하고 상식에 맞는 결정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물론 지금 말하는 상식은 그렇게 일반적인 것은 아닙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은 이렇게 하기가 좀 쉽습니다. 왜냐하면 사제생활이나 수도생활은 이미 그 생활 안에 기도를 하기 위한 특별한 시간이 주어져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도생활은 기도시간을 방해하지 못하는 그런 구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 속에서 그냥 사는 사람들의 삶에는 이런 것이 쉽지도 않고 잘 조직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가족이 일어나기 전의 시간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그래서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한 시간 동안 기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혹은 가족들이 전부 다 자러간 다음에 한 시간 동안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기도에 대해서 주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인지를 각자가 찾아내야 합니다. 일단 이렇게 기도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면 여러분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그 약속을 지키기 어려운 점이 나타나면 여러분을 이 어려움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분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세 번째 요점은 지속적인 기도의 정신입니다.

 

4권 138장 1902년 7월 28일 : 끊임없는 기도의 정신

 

2. 그렇게 말씀하신 그분께서 친히 나를 다른 데로 데려가셨다. 그러면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끊임없는 기도의 정신을 가지기 바란다. 언제든지 나하고 대화를 나누기 위한 영혼의 이 끊임없는 노력은, 그것이 마음으로건 정신으로건 입으로건 혹은 단지 의향만으로 건 간에 그 영혼을 내 앞에 매우 아름답게 단장해 주기에,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곡조가 내 마음의 가락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끊임없는 기도의 정신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나와 대화를 나누기 위한 영혼의 끊임없는 노력이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렇게 대화를 하려면 우리 존재 전체를 가지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입으로 기도를 할 수 없으면 여러분의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의 마음으로 기도할 수 없으면 여러분의 정신으로 기도하십시오.

모두가 다 어려우면 여러분의 의향이나 여러분의 뜻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의 입으로 기도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미사에서 소리 내어 말로 기도를 해야 할 때에는 물론 소리를 내어 말로 기도를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은 미사에서 말로 하는 기도는 아주 잘합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안에는 벙어리같이 보이는 사람들도 가끔 있습니다. 벙어리들은 말을 못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미사에 참례할 때에는 모든 교회와 함께 교회가 여러분에게 말하라고 청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제가 말해야 하는 부분을 여러분이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말해야 하는 부분을 여러분의 입과 마음과 여러분의 목소리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침묵의 기도를 할 때에는 침묵을 지키십시오. 침묵의 기도를 할 때에는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으로도 기도를 할 수가 없으면 여러분의 의향이나 뜻으로 기도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곡조가 내 마음의 가락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래서 나는 이 영혼과 대화를 하고 싶어진다. 내 인성의 외적인 업적뿐만 아니라, 신성이 내 인성 안에서 행한 내적 업적의 일부까지 그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끊임없는 기도의 정신으로 기도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비와 당신의 비밀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하시고,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빛을 주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의 내적 생활의 신비의 일부까지도 보여주십니다.

 

3. “그래서 나는 이 영혼과 대화를 하고 싶어진다. 내 인성의 외적인 업적뿐만 아니라 신성이 내 인성 안에 행한 내적 업적의 일부까지 그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영혼이 끊임없는 기도의 정신으로 찬란한 아름다움을 지니게 되므로 악마가 말하자면 벼락 맞은 꼴이 된다. 그러니 올가미를 쳐서 그를 해치려고 들었던 간계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천상의 책 4-138,3)

 

 여러분 중에 수도자와 사제들이 많은데 전례의 기도 즉, 각 공동체마다 바치기로 정한 성무일도가 있겠습니다만, 각 공동체는 그 성무일도를 충실하게 잘 바쳐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사제생활이나 수도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차원인 이 성무일도를 바꾸거나 옆으로 밀쳐버려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어떤 구실도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제나 수도자들은 교회와 약속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약속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교회 전체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전례적 기도를 하지 않으면 여러분 안에 있는 교회 전체가 기도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의 삶에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예로써, 우리 사제들에게 있어서 전례기도는 우리가 부제로 서품되었을 때부터 우리가 교회 안에서 우리의 남은 일생의 모든 날에 이 기도를 바치기로 주님께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성제를 거행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미사를 거행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본당의 본당 신부님이라면 꼭 미사를 거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떤 이유로 여러분이 본당에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꼭 미사를 거행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사를 드릴 의무가 없는 그런 날에도 성무일도는 절대로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경험 안에서 보면 수도생활이나 사제직을 그만 둔 사람들은  대부분이 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 성무일도의 기도가 여러분의 영혼을 아주 강력하게 보호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무일도를 하지 않으면 마귀가 여러분의 영혼을 가지고 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우리 영혼을 주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가게 합니다. 우리 사제나 수도자들은 의무적으로 이 성무일도를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이 기도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적어도 아침기도나 저녁기도나 끝기도를 잘 배워서 기도를 하는 것은 아주 훌륭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미사 참례 다음으로 다른 어떤 기도보다도 중요하고 강력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의 이름과 교회의 이름으로 평신도 여러분들에게 이 성무일도를 배워서 꼭 기도하라고 강력히 권고합니다. 하느님 뜻의 우리 그룹에서는, 예를 들면 니카라과나 플로리다 주(州)의 마이애미에 있는 하느님 뜻 집과 이태리의 베네벤토, 멕시코에 하느님 뜻 집에서는 우리는 모여서 미사를 드리고 모두 함께 성무일도의 아침기도나 저녁기도를 바칩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치는 것과는 형식은 조금 다르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시편기도를 하셨는데 성무일도가 시편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무일도 안에 포함된 모든 기도의 내용들은 전부 다 성령께서 영감을 주신 내용입니다. 성무일도는 완전한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성무일도 안에는 찬미도 있고, 축복도 있고, 흠숭도 있고, 보속도 있고, 간청의 기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여섯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 중요한 기도의 요소들이 전부 다 확실하게 성무일도 안에 있고 또 미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 성무일도의 아름다움을 껴안고 성무일도를 배우기를 청합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성무일도를 하십시오. 사제와 수도자 형제 여러분은 이미 이 멋진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만, 모든 성무일도를 하느님 뜻 안에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성부의 뜻 안에서 기도를 하셨듯이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 그분을 초대해서 이 기도를 바치십시오. 이렇게 성무일도를 바침으로써 여러분은 성삼위께 완전한 영광을 바치게 되고 또 여러분의 모든 세대의 형제자매들에게도 선을 행하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 뜻과 우리 영성생활에 이 중요한 것을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느님께 기도의 선물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과 성부님과 성령님께 놀랍고도 엄청나고 또 특별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선물로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우리와 함께 기도해 주시고 하느님 뜻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라고 예수님께 청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