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하면서 자비로운 고해신부
비오 신부는 정직하고 성실한 영혼을 대할 때면 따뜻한 말로 감싸 주면서
“잘 가십시오. 예수님은 그대를 사랑하십니다.” 라고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하지만 적잖은 경우에 비오 신부는 사람들을 매우 엄하고 거칠게 다뤄
깜짝 놀라게 했다. 어떤 사람은 고해소에서 내쫓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무뚝뚝함은 대단히 차원 높은 덕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예수님이 위선자들의 청이나 의도적인 일탈에 자주 보여주셨던 것과 같은 것으로
이 방법 또한 영혼을 낚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것은 겸손한 무뚝뚝함이었고
방위 수단으로서의 무뚝뚝함, 그리고 치유 방법으로서의 무뚝뚝함이었다.
그의 거친 말을 듣고 쫓겨난 사람들일수록 더 기쁘고 용감하게 되돌아와
회개했다는 증언들이 이 덕을 증거한다.
한번은 동거생활을 하는 한 젊은이가 고해성사를 보러 왔다.
비오 신부는 그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대뜸 소리쳤다. “이 더러운 놈!”
놀란 그가 부끄러움으로 얼른 고해성사를 보던 제의실을 빠져나갔다.
동료 사제가 놀라서 비오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신부님, 제가 그 사람의 얼굴에 대고 그렇게 퍼붓지 않으면 그는 영영 타락하고 맙니다.
그는 불법적인 동거 생활을 하고 있어요. 주님 앞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에게는 모욕을 당하는 것이 더 이롭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통회도 없이 고해소에 들어와 사죄도 못 받을 것입니다.”
과연 며칠이 지나자 그토록 모질게 쫓겨난 젊은이가 울면서 다시 나타났다.
돌아온 탕자를 웃음과 활짝 벌린 팔로 맞이하며 비오 신부가 말했다.
“그것 보시오, 이제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고 계시오.”
비오 신부에게 죄는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모두 죄일 뿐이다.
그 죄로 인해 예수님이십자가를 지시므로 대죄와 소죄 구별을 하지 않았다.
화해성사는 사랑의 문제이지 무슨 권리나 정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주 보는 고해성사는 회개를 촉진하여 영적 민감성을 기르고
겸손의 덕을 쌓게하며 유혹에 강하게 대적한다는 것을 비오 신부는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잘났다고 뻐기는 바리사이 같은 신자보다 중죄를 범했더라도 통회하고
마음 아파하는 죄인을 더 잘 돌보아 주었다.
어느 날 42년간 고해성사를 보지 않은 남자와 15일마다 고해성사를 보는 남자가 고해성사를 보러 왔다.
진실하게 회개하는 마음을 읽은 비오 신부는 15일마다 같은 죄로 고백하는 남자는 엄하게 꾸짖어 돌려보내고, 42년 만에 진실하게 고백하는 사람의 죄는 사해 주었다.
비오 신부는 고해하는 모든 사람의 죄를 사죄해 주지는 않았다. 마음 읽기에 능통한 신부는
진실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냉정하게 돌려보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돌아가는 사실에 대해
동료 수사가 유감스러워하면 비오 신부는 이렇게 말하며 동료 수사를 위로했다.
“껍질은 떠나고 좋은 알맹이만 남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비오 신부를 영적 지도신부로 모시며 잘 알고 지내던 알베르토 신부가 해준 다음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을 너무 엄격하게 대해서 죄 지은 사람이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 그냥 달아나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자 비오 신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자네 같으면 어떻게 하지? 나야 닥치는 대로 할 수밖에.
그 죄인을 주님께서 때리시려는 것을 내가 본단 말이야. 그때 나는 한쪽 팔로 예수님의 손을 잡고
다른 팔로는 그를 한 대 툭 쳐서 제 정신이 들도록 해주는 거지.
내 말 믿어도 돼. 이 방법은 틀림없고 효과도 있지.”
비오 신부가 고해자의 죄를 사죄해 주지 않고 고해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도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시오? 하지만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데
난들 어쩌겠소. 나는 아무도 여기에 부르지 않았고, 아무도 내쫓을 생각이 없소.
당신들을 내쫓으시는 이는 다른 분이시오. 그분의 보잘것없는 도구가 바로 나란 말이오.”
비오 신부는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친절했던 것에 대하여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다소 엄하게 했을 때마다
후회했고 고해성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이웃에 대한 부드러움은
그저 헤프게 허락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비오 신부에게 고백하러 오는 사람들이 다 탕자인 것인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이
탕자의 형과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아버지 집을 한번도 떠난 적이 없지만
소죄까지 성찰하는 양심을 더 많이 닦아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비오 신부의
고해성사는 죄를 각성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변화하여 나중에 카푸친회에 들어간 안드레아 만다토 신부는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말했다.“나는 주일마다 성당에 가기는 했지만 고해성사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아
고해한 적이 별로 없었지요. 그런데 비오 신부에게 다녀온 후 고해성사를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분께 처음 고해했을 때 그분은 내가 어떤 죄들을 지었는지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네, 욕설을 자주 하는군.” 하시는 겁니다. 나는 “네, 신부님” 그랬지요.
신부님은 “자, 그러면 하느님께 용서를 받게. 그 고백으로는 충분하지 않아.”하셨습니다.
이 말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는 고해소를 나오자마자 내 속의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는 것을 느꼈지요.
나는 울기 시작했어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지요. 생전 처음 나는 하느님께 죄를 짓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욕설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비오 신부님께 받은 은혜지요.
다시 죄를 짓고서 말로만 “하느님, 저를 용서하소서!”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사제들은 성모송이나 주님의 기도 같은 것을 보속으로 주지요. 그러나 비오 신부님은 30일동안이나 속죄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고백한 죄가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도 그분은 제게 한 달이나 보속을 주셨다니까요! 그 보속은 제가 하느님을 거슬러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좋은 징계가 되었지요. 그게 그분의 목적이셨어요.
저 자신을 잘 알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비오 신부는 주일미사를 궐하는 죄에 대해서는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습관적인 죄, 과다한 음주, 줄담배, 외도 등의 방탕한 생활에 대해서도 쉽게 용서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한 경우 반드시 개선의 시험기간을 주어 행실을 고치게 했다.
올바른 통회와 결심이 없으면 비오 신부에게 사죄를 바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고해자들이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
피상적으로 짓는 많은 죄에 대해 양심의 눈을 뜨고
거룩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렇게 영혼을 구하는 데만 온 정성을 다한 비오 신부가
특별히 강조한 양심성찰에 대하여 몇 가지 알아보자.
십계명에 준한 양심성찰 - 독성죄
비오 신부는 특히 독성죄에 대하여 엄하게 경고했다.
한 부인이 비오 신부에 대한 호기심을 고해소를 찾았다.
비오 신부는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무섭게 말했다.
“나가시오. 당신과 노닥거릴 시간 없소!”
자존심이 몹시 상한 부인은 스무날 동안 매일 찾아오면서 똑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진실로 회개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비오 신부가 이렇게 말했다.
“엄하게 대했다고 나를 괴롭힐 생각일랑 하지 말고, 중죄인인 당신을 받아들이시는
하느님께 감사하시오. 당신은 대죄 중에 있는데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날마다
영성체를 해왔소. 죄 중에 영성체를 하는 사람은 자기 복을 다 까먹고
하느님의 특은을 받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시오?
이런 사람을 가까이 둔 사람은 그를 위해 또 기도와 희생을 해야 한단 말이오.”
이 말을 듣고서야 그녀는 진지하게 회개하였다.
그리고 속죄하기 위해 자신이 범했던 독성죄를 주위에 알리며 다녔다.
십계명에 준한 양심성찰 - 기도생활
비오 신부는 신자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면 그 하루는 잘 마치게 된다.”
“기도하는 이는 구원받지만 기도하지 않는 이는 멸망한다.”
비오 신부는 고해자에게 사죄경으로 죄를 사해 준 뒤에 기도하고 있는가를 꼭 확인했다.
비오 신부의 보속 또한 기도생활에 대한 교육적 효과를 고려한 처방이었다.
한 참회자가 비오 신부에게 받은 보속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 비오 신부님에게 처음 고해성사를 보았을 때 석 달 동안 90번의 주모경을 매일 바치는 보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고해성사에서는 석달 동안 45번, 세 번째는 30번,
네 번째는 15번의 주모경을 보속으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비오 신부님이 주신 보속을 날마다 바치면서 기도를 사랑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매일 미사를 드리게 되었으며 가족과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신부님의 보속을 받지 않고서도 날마다 15번의 주모경을 바치는 기도 습관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비오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
때로는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들이 자신이 매우 어려운 처지에서 약속했던
이행하기 쉽지 않은 서약을 풀어 달라고 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비오 신부는 서약을 풀어주지 않고, 대신 그것을 지킬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며 힘과 용기를 주었다.
엘레나라는 한 소녀는 큰 병에 걸렸을 때, 낫기만 하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정이 아주 어려운 교회를 돕는 모금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이 소녀는 얼마 안 되어 정말 나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곧바로 약속한 대로 모금에 착수했다.
그러나 모금은 그리 쉽지 않았고, 몇 사람으로부터 퇴짜를 맞고 나서는 끝내 포기하고
그 서약 대신 좀 쉬운 일을 하기로 했다.
비오 신부에게 고백할 때 그녀는 그 서약을 풀어 달라고 졸랐다.
비오 신부는 그녀를 서약에서 풀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서약을 충실히지킬 수 있도록
주님께 전심전력으로 청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비오 신부의 말씀에 따랐다. 그 후 며칠에 걸쳐 그녀는 대범한 기부자들을 만나,
얼마 안 되어 약속한 모금을 마칠 수 있었다. 약속이 이행되자 이번에는 몇년 전부터
헛되이 기도했던 묵은 소원 하나에 예기치 않은 도움까지 얻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은 몇 년 전부터 영속의 묵주기도 회원이 되어 매월 7일에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기로 서약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몇 달치를 까먹고 말았다.
이것을 고해하자니 괜히 유난만 떠는 것 같아 미지근한 마음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러 가게 되었다.
그가 비오 신부에게 매월 7일에 묵주기도를 바치기로 서약했던
자신의 의무를 다할 수 없었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비오 신부는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딱하긴! 복을 받자면 열심히 해야지, 게으름뱅이나 잠꾸러기가 복을 받을 것 같소?”
그때부터 그는 특별한 열성으로 기도 시간을 지켰고, 그때마다 비오 신부를 생각했다.
비오 신부가 힘과 열성을 보태어 주었기 때문이다.
십계명에 준한 양심성찰 - 주일미사
비오 신부는 주일미사에 빠지는 것을 가장 참지 못했다.
그래서 이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은 고해소에서 퇴장을 당하곤 했다.
어떤 사람이 비오 신부에게 주일미사에 빠졌다고 하자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성실하게 미사에 참례한 다음 다시 오시오. 그러면 그 때 당신의 죄를 사해 주겠소.”
그 사람은 신부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 두 달 동안 주일 미사에 빠짐없이 참례했다.
그러고는 다시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사죄경을 받기 위해 산 조반니 로톤도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의 집에서 비오 신부의 수도원은 너무나 먼 거리였다. 수도원에 오기 위해
그는 기차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버스를 갈아타는 시간을 놓쳐버려
어쩔 수 없이 주일미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다시 산 조반니 로톤도에 도착한 그는 비오 신부의 고해소에 들어가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오다 버스를 놓쳐서 그만 부득이 주일미사에 빠졌습니다.” 라고 고백했다.
비오 신부는 이번에도 가차없이 그 사람을 고해소 밖으로 내쫓았다.
물론 비오 신부는 그가 지난 두 달 동안 성실하게 미사에 참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가 자신에게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먼 거리를 왔고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주일미사에 빠졌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비오 신부는 주일미사에 빠졌다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비오 신부는 “당신이 비행기에 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날이 주일이라면
주일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땅으로 내려와야 한단 말이오.” 라고 말했다.
비오 신부에게는 주일미사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았다.
전쟁 중에 한 장군이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러 왔다.
고해성사 끝에 비오 신부는 다른 죄가 없는지 물었지만 그는 없다고 했다.
그러자 신부는 미사를 드리는지 물었고,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비오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성찬례가 시작된 후 성당에 들어와 놓고 어떻게 미사를 보았다고 할 수 있소?”
이것으로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지 않았다.
그 장군은 떠나기 전에 비오 신부에게 인사하러 왔는데, 비오 신부는 더 머물라고 지시했다.
비오 신부의 말에 따라 그날 저녁 산 조반니 로톤도에서 하룻밤 더 자는 동안
그 장군이 있던 지역에 폭탄이 떨어졌다. 그 장군은 고해성사를 통해 영적 건강함도 얻고
육신의 생명까지 구하게 된 것이다.
십계명에 준한 양심성찰 - 판공성사만 보는 신자들
비오 신부는 자신의 영적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깨끗이 청소한 집이라 하더라도 일주일만 지나면 먼지가 쌓인다!
영혼도 그러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고해성사를 봐라.”
우리들의 어머니이신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께서도 말씀하셨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꼭 고해성사를 보아라.
고해성사 볼 것이 없는 사람은 사제에게 가서 충고라도 들어라!”
고해성사는 영혼의 목욕탕이다.
자주 보는 고해성사는 회개를 촉진하여 영적 민감성을 길러준다.
십계명에 준한 양심성찰 - 부모의 의무
비오 신부는 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도 못지않게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를 많이 강조했다.
8남매를 키우는 한 어머니가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면서 자녀양육에 대한 고충과 피곤함에 대해 말했다. 비오 신부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강한 어조로, 그러나 사랑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어머니는 순교의 동의어임을 모르십니까?”
훈계이지만 동시에 위로가 되는 이 말에 그녀는 빛을 받았다. 어둔 밤이었던 그의 영혼에
어머니로서의 위대한 소명이 다시 빛을 밝히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그녀는 성모님이 함께 해 주시는 매일의 순교에 감사드리며 13명의 아이를 기쁘게 양육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비오 신부는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다.
“내 딸이여, 당신의 힘을 믿지 말고 하느님의 도우심에 모두를 맡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을 잘 키울 수 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어머니에 대한 비오 신부의 교리는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가정에서 먼저 하느님 뜻을 실천할 때, 모든 여성은 마리아처럼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형제가 되는 것이고 자녀 교육의 지혜 또한 풍부해지게 되는 것이다.
비오 신부는 1920년대에 이런 말을 했다. “자녀들을 교육시킬 줄 모르는 어머니 세대가 올 것이다.”
그분은 그때 이미 죄로 인한 가정의 파괴를 예언하였고,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비오 신부는 부부가 짓는 죄가 자녀의 교육과 성장을 방해하는
첫 번째 원수임을 분명하게 강조하였다.
십계명에 준한 양심성찰 - 낙태와 증오는 살인죄
비오 신부는 낙태를 살인죄라고 했다.
“하루라도 태아를 죽이지 않는 날이 온다면, 하느님은 세상에 모든 전쟁을 중단시키고
평화를 주실 것이다.”
증오와 복수로 마음에 칼을 가는 것에 대해서도 비오 신부는 냉정하게 대했다.
화해하지 않는 참회자는 먼저 화해부터 하라고 돌려보냈고
사죄는 반드시 화해한 사람에게만 주었다.
십계명에 준한 양심성찰 - 불륜과 이혼
이 분야에 있어 비오 신부는 진정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의 삶은 파괴된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는 일에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모든 부부를 결혼의 원천으로 데려가 거룩한 혼인성사의 권능을 부여했다.
비오 신부는 혼인성사를 통해 결합한 부부들의 고행을 통해
영성의 질을 높이도록 가르쳤다.
가정이 하나의 작은 교회가 되어야 부부의 소명은 비로소 완성된다.
가정의 수준을 도덕적이고 거룩하게 고양하는 비오 신부의 특별한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믿음이고 또 하나는 성사와 함께하는 기도 생활이다.
오늘날에는 약혼하거나 결혼한 남녀들에게
인간적 사랑만을 주로 강조하지만
비오 신부는 가정 성소에 대한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양심과 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십계명에 준한 양심성찰 - 도둑질
장사하는 한 남자가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았다.
비오 신부는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기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질문에 적당히 답하면서 자선을 하고 있다고 슬쩍 변명하였다.
이에 비오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이의 돈으로 자선을 한다고! 도둑놈! 나가라!”
십계명에 준한 양심성찰 -거짓말
거짓말이라는 죄 앞에서 비오 신부는 특별히 전율했다.
험담하고 거짓말하며 잘못된 증언을 하는 것 등
모든 종류의 크고 작은 중상모략에 대해 몸을 떨었다.
예를 들어, 어느 신사가 고해성사를 보면서 주일에 빠진 횟수를
정확하게 말하지 않을 때에도 비오 신부는 “거짓말쟁이, 나가라.”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거짓말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신의 영혼에 해가 된다.
진리이신 하느님께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십계명에 준한 양심성찰-음욕
그리스도인은 악과 나쁜 생각을 의식적으로 방어하고 차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죄는 언제난 인간의 지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는
생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모든 부부관계의 파괴도 생각에서 나와 마음과 몸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오 신부는 여자들이 단정하기 못한 옷을 입고 성당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자들도 쫓겨나지 않으려면 긴 바지를 입어야 했다. 여자나 남자 모두 소매가
팔 길이의 3/4은 되어야 성당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빈에서 온 한 여인이 산 조반니 로톤도에 오래 머물고 있었다. 거기서 밀라노에서 온 한 친구를 만났는데,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려는 이 친구는 치마가 너무 짧아 고민이라고 했다.
빈 여인이 그녀에게 긴치마를 빌려주었다. 고해소에서 비오 신부는 그 밀라노 여인에게
“먼저 빌려 입은 그 옷은 돌려주고, 밀라노에 돌아가 그것과 똑같은 길이로 점잖은 옷을 만들어
집에서 한동안 입고 지내다 다음 기회에 다시 오시오. 절대로 장난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라고 말하고는 고해소 문을 닫았다.
1964년에는 그리스에 사는 공주가 왔는데, 수도원 원장이 비오 신부에게 만나보라고 하였다.
그 공주는 긴치마를 입고 나타났는데도 비오 신부는 공주와의 만남을 거부하였다.
그녀는 평소 짧은 치마를 즐겨 입으면서
다만 비오 신부를 만나기 위해 잠시 동안만 긴치마를 입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짧은 치마에 대해 엄격한 비오 신부를 두고 신자들이 불평하자
동료 사제도 걱정이 되어 “이대로 가면 성당이 텅 빌 것이다.”라고 중얼거렸다.
이에 비오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성당이 마귀들로 가득 차는 것보다 텅 비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비오 신부는 사제복을 입지 않고 오는 사제들도 만나주지 않았다.
많은 사제가 비오 신부가 정말 사제복을 입지 않은 사제를 알아보는지 호기심으로 방문하였다.
그러나 비오 신부는 그들을 초자연적 능력으로 알아보고 고해성사를 주지 않았다.
어느 날 오후, 사복 차림의 어떤 사람이 제의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오 신부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숙소에 가서 수도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오십시오. 당신은 도미니코회 신부님이시지요?”
그가 대꾸했다. “고맙습니다. 비오 신부님, 감사합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그는 의심을 버렸다.
- 오상의 비오 신부 이야기 / 이상각신부 /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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