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의 오늘

2016년 7월 26일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좋은 씨와 가라지의 비유

Skyblue fiat 2016. 7. 26. 12:11

 

2016년 7월 26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26 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기념 미사
① 예레 14,17ㄴ-22
㉥ 마태 13,36-43.
또는
① 집회 44,1.10-15
㉥ 마태 13,16-17.
기념 시간 전례

 

26 화요일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는 다윗 가문의 유다 지파에서 태어났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성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으나, 

요아킴 성인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한 뒤 하느님의 섭리로 마리아가 탄생하였다.

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10세기에는 서방 교회에도 널리 퍼졌다.

 요아킴 성인에 대한 공경은 훨씬 뒤에 이루어졌다.

 

입당송 집회 44,1.22 참조
마리아를 낳은 요아킴과 안나를 칭송하여라.

주님은 만민에게 내리신 복을 그들 위에 베푸셨다.

 

본기도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이신 주님,

복된 요아킴과 안나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어,

성자의 어머니를 그들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으니,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희도 주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이닥칠 재앙을 전하고, 저희와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시라며 주님께 탄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종말에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악한 자들은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이라고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4,17ㄴ-22자라


17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처녀 딸 내 백성이 몹시 얻어맞아, 너무도 참혹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18 들에 나가면, 칼에 맞아 죽은 자들뿐이요, 성읍에 들어가면, 굶주림으로 병든 자들뿐이다.

정녕 예언자도 사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라 안을 헤매고 다닌다.
19 당신께서 완전히 유다를 버리셨습니까? 아니면 당신께서 시온을 지겨워하십니까?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저희를 치셨습니까?

평화를 바랐으나 좋은 일 하나 없고, 회복할 때를 바랐으나 두려운 일뿐입니다.

 20 주님, 저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21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저희를 내쫓지 마시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옥좌를 멸시하지 마소서.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22 이민족들의 헛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비를 내려 줄 수 있습니까? 

하늘이 스스로 소나기를 내릴 수 있습니까? 그런 분은 주 저희 하느님이신 바로 당신이 아니십니까?

그러기에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9(78),8.9.11과 13(◎ 9ㄴㄹ 참조)
주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구하소서.
○ 선조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소서. 어서 빨리 당신 자비를 저희에게 내리소서. 저희는 너무나 불쌍하게 되었나이다. ◎
○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
○ 포로들의 탄식이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죽을 운명에 놓인 이들을 당신의 힘센 팔로 보호하소서.

저희는 당신의 백성, 당신 목장의 양 떼. 끝없이 당신을 찬송하고, 대대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 알렐루야.

 

복음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6-43


그때에 36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의 정성 어린 예물을 받으시고,

주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복을, 저희도 나누어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24(23),5 참조
그들은 주님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느님께 자비를 얻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놀라운 신비로 저희를 새로 나게 하시려고, 성자를 사람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으니,

이 천상 양식을 배불리 먹은 자녀들의 효성을 보시어, 크신 자비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때로는 비록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늘 필요한 곳에는 필요한 도구를, 필요한 사업에는 이에 맞는 사람들을 보내 주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지혜를 공경하던 교회의 신심이 바로 예수님의 외조부모이며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에 대한 공경으로 이어집니다. 요아킴과 안나의 이야기는 2세기경에 쓰인 신약의 외경인 야고보 원복음서에 나타나는데, 동방 교회에서부터 아기가 태어나면 그 부모에게 특별히 축복하던 전통에 따라 성모님의 부모인 두 성인을 공경하는 축일을 제정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이 세상이라는 밭에 좋은 씨를 뿌리십니다.

따라서 이 씨앗을 잘 키운 농부가 칭송받아 마땅하듯이 하느님께서 주신 자녀를 훌륭하게 잘 키워 낸 부모 또한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낳아 주신 성모님을 우리가 공경하듯이, 그 성모님의 부모 또한 공경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좋은 씨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악마가 뿌린 가라지도 함께 자랍니다.

하느님께서 인내하시는 분이시지만, 악을 받아들이지는 못하시므로 결국에는 가라지를 뽑아 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은 사람의 아들이 천사들을 시켜 하실 것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참으로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들도 하나의 씨가 되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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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마태오복음 13,24-30에 이어서...

 

 41. 좋은 씨와 가라지의 비유 - *** |그리스도의 시 둘째 해   2

 

“내 둘레에 와서 들어라. 이 비유의 완전한 뜻을 설명해 주겠다.

이 비유에는 내가 군중에게 말한 면 이외에 두 가지 면이 더 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비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밭은 이 세상이다.

좋은 씨는 하느님께서 세상에 뿌리신 하느님 나라의 아들들이어서,

그들은 그들이 완전히 여물어 낫으로 베어지고

이 세상의 주인에게로 운반되어 가서 곡식창고에 넣어지기를 기다린다.

가라지는 마귀의 아들들인데, 그들도 세상의 주인을 괴롭히고

하느님의 밀이삭에도 해를 끼칠 생각으로 하느님의 밭에 뿌려놓은 것들이다.

하느님의 원수가 요술로 일부러 뿌려놓은 것이다.

마귀는 정말 사람을 변질시켜 자기의 것을 만들기까지 해서, 다른 방법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었던 다른 사람들을 타락시키기 위해 그 인간을 뿌려놓기 때문이다.

추수,

아니 그보다도 곡식단을 만들어서 곡식창고로 옮기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고,

그것을 책임 맡은 것은 천사들이다.

천사들은 곡식을 벤 다음에 가라지 알들을 따로 떼어놓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비유에 가라지는 불에 태우는 것과 같이 최후의 심판에서 지옥벌의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영원한 불 속에서 탈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서

그의 나라에서 추문과 타락을 만들어내는 모든 사람을 치울 것이다.

그 때에는 나라가 땅 위와 하늘에 있을 것이고,

땅 위의 나라의 시민들 사이에는 원수의 많은 아들이 섞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수의 아들들은 예언자들도 말한 것과 같이 그들의 모든 지상 활동에서 추문과

가증스러움이 극도에 도달해서 영의 아들들에게 엄청난 걱정을 끼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천사들이 마지막 수확물이 나란히 서 있는데 낫질을 해서 베어

밀알과 가라지를 갈라놓고, 가라지는 활활 불타는 가마에 집어던질 것이다.

거기에는 이를 갈며 우는 울음 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의인들,

즉 고른 낟알은 천사들이 영원한 예루살렘으로 데려갈 것인데,

거기서 그들은 내 아버지이시며 너희 아버지이신 분의 나라에서

태양과 같이 빛날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뜻이다.

그러나 너희들에게는 너희가 여러 번, 특히 어제 저녁부터

너희들 자신에게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다른 뜻이 또 하나 있다.

너희들은 이렇게 자문한다.

‘아니 그런데 제자들의 무리 중에 배반자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그러면서 너희들은 마음 속으로 공포와 두려움으로 몸을 떤다.

배반자가 있을 수 있다. 분명히 있다.

뿌리는 사람은 좋은 씨를 뿌린다.

이 경우에는 뿌린다는 말보다는 ‘고른다’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 경우에 있어서나 세례자의 경우에 있어서나 선생은 그의 제자를 골랐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이 타락했느냐? 아니다, 이렇게 말할 것이 아니다.

제자들을 ‘씨’라고 말한 것은 표현을 잘못한 것이다.

그러면 ‘밭’이라고 말하겠다. 제자의 수대로 밭도 그만큼 있다.

그것들은 하느님 나라의 타작마당, 하느님의 재산을 만들기 위하여 주인이 선택한 밭들이다.

주인은 이 밭들을 가꾸어서 100 퍼센트의 소출을 내게 하려고 애를 쓴다.

온갖 정성을 모두 들인다. 참을성을 가지고, 사랑과 지혜와 피로와 끈기로,

선생은 그들의 경향과 메마름과 탐욕도 알고 있다. 그들의 고집과 약함도 안다.

그러나 그는 바라고 여전히 또 바란다.

그리고 그들은 완전으로 인도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의 바람을 기도와 고행으로 강화한다.

 

그러나 밭들은 무방비 상태이다.

밭은 두꺼운 담을 빙 둘러쳐서 주인만이 차지하고 그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이 아니다.

밭들은 세상 한가운데에 세상 사람들 사이에 놓여진 개방된 곳이다.

모든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있고, 모든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무나 아무것이나. 오! 나쁜 씨로는 가라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라지세속의 정신의 뼈저린 경솔의 상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원수가 뿌린 다른 모든 씨에서 싹이 돋아난다.

 

쐐기풀이 있고, 개밀이 있고, 새삼이 있고, 메싹이 있고, 끝으로 독당근과 독초들이 있다.

 왜? 왜? 이것들은 무엇이냐?

쐐기풀 많은 독으로 상처를 입히고 몹시 불쾌하게 하는 콕콕 찌르는 길들일 수 없는 정신이다.

개밀은 주인을 몹시 피로하게 만들고,

귀찮게 굴고 자양분을 흡수하는 것밖에 모르는 기생식물로서,

주인의 일을 이용하고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니,

개밀로 인해서 요구되는 보살핌으로 인하여 주인이 방해를 받지 않으면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더 큰 이익을 얻어낼 것이다.

메싹은 다른 초목을 이용해야만 땅에서 올라올 수 있는 기력이 없는 풀이다.

새삼은 그렇지 않아도 고생스러운 주인의 길에 고통을 더해 주고

선생을 따라가는 제자들에게도 고통이 된다.

새삼은 달라붙고, 박히고, 찢고, 할퀴고 의혹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

독초들은 제자들 중에 있는 죄인들,

독당근과 다른 독초들과 같이 배신하여 생명을 끊기에 이르는 사람들이다.

 

너희들은 희고 붉고 청자색의 작은 알이 되는 작은 꽃들을 가진 이 독당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본 적이 있느냐?

가운데 금빛 작은 중심이 있는 희거나 약간 분홍색을 띤 별모양으로 생긴 저 꽃부리가,

새들과 아이들이 몹시 좋아하는 다른 장과(漿果)와 아주 비슷한 저 여러 가지 빛깔의 산호 같은 것들이

익으면 죽음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누가 말하겠느냐?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순진한 사람들이 달려든다.

그들은 그것들이 자기들처럼 좋은 것으로 믿는다....그래서 따먹고 그로 인해 죽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기들처럼 착하다고 생각한다!

오! 이것은 정말 선생을 높이 올리고 선생을 배반하는 사람은 단죄하는 기막힌 진리이다!

 

아니? 착함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지 못하는가?

착함이 악의를 품은 사람을 해가 없게 만들 수 없는가? 그렇게 못한다.

타락해서 원수의 먹이가 된 사람은

고상한 모든 것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되기 때문에

악의를 품은 사람을 해가 없는 사람이 되게 할 수는 없다.

고상한 모든 것이 그가 보기에는 모습이 변한다.

착함은 짓밟아도 괜찮고 그의 악의를 돋우는 약함이 된다.

마치 맹수의 경우에 목을 물어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피냄새로 돋워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선생까지도 항상 순진한 사람이다. 그래서 배반자가 그를 독살하도록 내버려둔다.

선생은 사람이 무죄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생의 밭인 제자들에게로 원수들이 온다. 원수는 참 많다. 그런데 으뜸은 사탄이다.

다른 원수들은 사탄의 종들, 사람과 격정과 세속과 육신이다.

 

저기 제자가 있다.

그 제자가 선생님 아주 가까이에 있지 않고,

선생과 세속 사이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원수들이 그에게 더 쉽게 다다른다.

그는 자기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속해 있기 위하여

세속과 육신과 격정과 마귀라는 것과 헤어질 줄 모르고 헤어지기를 원치도 않는다.

이것들이 그에게 세속, 육신, 격정, 마귀라는 그놈들의 씨를 뿌린다.

황금과 권력과 여자와 교만과

세상 사람들에게 나쁘게 평가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실리주의 따위 씨를.

‘유력자들이 가장 힘있다. 자 그들을 친구를 삼게 그들을 섬기겠다.’

그래서 저 보잘없는 것들 때문에 범죄자가 되고 영벌을 받게 된다.

 

이 사람이 나를 죽일 것이다.’ 하는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

그 제자의 결점을 잘 알고 있는 선생이 자기를 따라다니는 제자들 중에서

왜 그를 쫓아내지 않는가? 이것이 너희들이 내게 하는 질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무익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그를 원수로 가지게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고,

발각되었다거나 쫓겨났다거나 하는 데에서 오는 격노와 고통으로 인하여

이중으로, 그리고 더 악착스러운 원수가 되는 것을 막지도 못할 것이다.

고통스럽다, 그렇다,

이것은 나쁜 제자가 때로는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귀가 하는 일은 하도 치밀해서 제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마귀가 되면서도 그가 그런 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한다.

격노, 그렇다. 마귀와 그 추종자들의 일을 모르고 있지 않는 터에

그러한 사람으로 알려진 데 대한 격노이다.

마귀의 추종자들이란

성인의 착함에 그들이 비교하는 그들의 악의 때문에

그들에게 모욕을 주는 성인을 세상에서 없애기 위하여

약한 사람을 그의 악함을 가지고 유혹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래서 성인은 기도를 하고 자신을 하느님께 맡긴다.

사람들이 행하도록 허락하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다만 이 유보조건을 덧붙인다.

그것이 당신의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이라는 이 유보조건을.

성인은 가라지가 그의 수확물에서 나쁜 가라지가 분리되는 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안다.

누가 분리하겠는가?

당신의 사랑의 의지가 승리하는 데 유익한 것 이상의 것이 이루어지게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친히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선생님이 그것이 항상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의 일이라고 인정하시면 …

그 때문에 그 제자의 책임이 적어질 것 같은데요.” 하고 마태오가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라. 악이 있지만 선도 있다. 더불어 자유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의 의지가 승리하는 데 유익한 것 이상의 것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만일 하느님께서 그 잘못을 허락하시면 그 잘못이 유익하고 하느님의 뜻이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되겠군요.” 하고 가리옷 사람이 덧붙인다.

“그러니까 너는 마태오와 같이 이것이 제자의 죄를 정당화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로구나.

하느님께서는 사납지 않은 사자와 독이 없는 뱀을 창조하셨다.

런데 지금은 사자는 사납고 뱀은 독이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이유 때문에 그놈들을 사람과 갈라놓으셨다.

이것을 묵상하고 그것을 적용하여라.

들어가자. 해가 벌써 뜨겁다. 소나기가 시작되려는 것처럼 너무 뜨겁다.

그런데 너희들은 밤을 뜬 눈으로 새웠으니 피곤하다.”

 

엘리야의 어머니가 말한다.

“집에는 옥상이 크고 시원한 방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서 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깥 층계로 해서 올라간다. 그러나 제자들만이 쉬려고 자리에 눕는다.

예수께서는 매우 키가 큰 떡갈나무로 한 구석에 그늘이 진 옥상으로 나오셔서

생각에 잠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