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평화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오신 예수님 -임언기신부님

Skyblue fiat 2016. 7. 11. 14:0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 12,51)

 

 

이제 루카 복음 12장 51~53절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의 가치관 세상의 가치관과의 투쟁

분열(분쟁)하는 가족 관계로 비유하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의 성격상

세상과 분열(분쟁)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음을 역설한다.

 

여기서 '평화'로 번역된 '에이레넨'(eirenen)의 기본형은

'평화'(루카19,42),'평안'(에페4,3)이라는 뜻의 '에이레네'(eirene)이다.

이 단어는 여기서 '일치' 혹은 '화목','화해'(사도7,26)의 의미로 쓰였다.

 

'분열'로 번역된 '디아메리스몬'(diamerismon)의 기본형은

'디아메리스모스'(diamerismos)이다.

이 단어는 여기서 '분리'(division)라는 의미로 쓰였다.

 

어쨌든 '평화'와 '분열'이라는 두 단어가 본문에서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병행구절인 마태오 복음 10장 34절에서는 '분열' 대신에

'칼'(검)을 가리키는 '마카이라'(machaira)로 대치되어 있는데,

둘 다 '분리'를 의미한다.

 

'분열'을 의미하는 '디아메리스모스'는 동사 '디아메리조'(diamerizo)에서 유래했다.

'디아메리조'는 '~을 통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디아'(dia)와

'나누다'는 뜻의 동사 '메리조'(merizo)가 합성된 단어이다.

 

그래서 '분배하다','조각으로 나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다툼의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분쟁으로 인해

둘 사이가 완전히 분리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분쟁하는 두 사람안에 지배하는 영이 달라

사상과 가치관과 신앙의 차이 때문에

완전히 결별되고 등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로 번역된 '엔 테 게'(en te ge)는 '~안에'를 뜻하는 '엔'(en)과

'땅'을 가리키는 명사'게'(ge)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땅 가운데'(on earth)가 된다.

 

여기서 '땅'은 '하늘'과 대조되는 것으로 이러한 '분열'은

천상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질 '일시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본문에서 말하는 '분열'(분리)은 최종적 하늘 나라가 완성되기 이전에

이 땅에서 있을 하느님의 백성과 땅의 백성과의 구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분열'(분리)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시간에도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단어가

'이제부터는'('아포 투 뉜'; apo tu nyn; from now on)이다.

 

지금 현재부터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제부터는'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과 구별하여

'예수님의 공생활 활동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분열'(분리)은 '심판주의 도래'를 동시에 의미하는데,

'분열'을 가져다주는 심판은 이미 예수님의 강생(육화)와 더불어

예수님의 활동 시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성취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그 심판의 완성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최종적으로 확증되고 완성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카 복음 12장 52~53절을 보면,

한 집안의 식구들처럼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예수님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

고통스런 대립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해 주시는 말씀인 것이다. 

 

주님의 계시 진리, 구원의 복음, 절대적 생명의 말씀 앞에 양다리는 없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회색 지대는 없다.

 

진리이신 하느님의 말씀 앞에 이것 아니면 저것이고,

'예'(yes) 아니면 '아니오'(no)인 것이지

어중간하고 애매모호한 태도는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서로 이질적인 문화나 종교 체계가 만나 부딪히면

스파크나 충돌이 불가피하여 박해, 군란, 순교와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고 일찌기 말했다.

 

우리 믿음의 순교 선열들도 천주교와 관련된 것은 모두 죽음을 의미하던 그 시대에

그렇게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진리이신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며,

온전히 자신의 생명을 미련없이 생명의 주인께 되돌려 드린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영원을 바라보면서

가톨릭 교회가 예수님 부활의 목격 증인들인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정통교리,

성경과 성전을 통해 피로서 지켜오고 믿어온 진리를 죽을 각오로

주님의 진리요, 구원과 영생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옹호하고 수호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