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18~19)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15장 1~11절에서 믿는 이들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다룬 후,
범위를 확대해서 요한 복음 15장 12~17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한 믿는 이들 상호간의
관계를 다루고, 요한 복음 15장 18~27절에서 믿는 이들에 대한 세상의 핍박 및
이에 대한 믿는 이들의 자세를 교훈하신다.
특히 요한 복음 15장 18~27절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할 당시 이 말씀을 듣던
제자들 및 믿는 이들이 이 세상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다.
박해와 핍박에 대한 예고는 다음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게 됨으로써 가시화되고,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과 믿는 이들이 무수한 세상의 박해를 받으며, 사도 요한 복음사가가
이 복음을 쓴 1세기 후반에 있어서도 믿는 이들은 유대교 및 이방 종교의 박해 만이 아니라
황제 숭배 등과 관련된 로마 공권력의 조직적인 박해를 받아 왔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 15장 18~27절의 내용은 이 교훈을 직접 들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사도 요한 당시의 믿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와 힘을 주었을 것이다.
여기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은 조건문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으로 번역된 '코스모스'(kosmos; world)의 성격을 규명하는 열쇠가 된다.
당시 로마 세계를 지배하던 희랍 사상에 있어서 '코스모스'(kosmos)는
조화로운 곳이며, 신의 개념으로까지 숭배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와 정반대인데, 코스모스'(kosmos)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죄로 말미암아 파멸되고 타락한 곳이다.
특히 이 구절에서 세상은 '코스모스'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 즉 하느님과 동떨어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집단이며, 사탄의 지배아래 죄와 죽음의 올가미에 사로잡혀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눈이 먼 자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여기서 '미워하거든'으로 번역된 '에이~ 미세이'(ei~misei; if~hates)는
조건을 나타내는 불변사 '에이'(ei; if)가 현재 직설법 동사와 함께 쓰여
명백한 사실을 조건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박해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미세이'(misei; hates)는 '미세오'(miseo)의 현재 3인칭 단수이며, '미워하다'는
뜻만이 아니라 '미워서 박해하다'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까지 지니고 있다.
'미세오'(miseo)는 고전 희랍어에서 '혐오하다', '배척하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어떤 행동에 대한 반감만이 아니라 타인들, 심지어는 신(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을
드러낸다.
70인역(LXX)에서는 거의 히브리어 '사네'(sane)의 역어로 등장하는데,
원수로 여긴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런 것들로 볼 때, 세상의 믿는 이들에 대한 미움은 그 지배 세력이 하느님의 원수인
사탄이기 때문에, 믿는 이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더불어 반드시 복수해야 할
원수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요한 복음 15장 18절의 후반절처럼, 단순히 믿는 이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것의 또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
이 구절은 세상이 믿는 이들에 대한 미움을 가지는 이유를 나타낸다.
믿는 이들에 대한 세상의 미움과 적개심은 영적 불일치에 근거한다.
믿는 이들이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세상은 믿는 이들을
미워하고 원수로 여긴다.
여기서 전치사 '에크'(ek; of)는 '에이미'(eimi)동사를 기본형으로 하고 있는
'에스테'(este; you are)와 함께 쓰였는데, 이때에는 '~에게 속한다'는
'소속'의 의미를 나타낸다.
'에스테'(este)는 '에이미'(eimi)의 복수 2인칭 현재 시제이다.
여기서 계속성을 나타내는 현재형이 쓰인 것은 예수님과 일치한 제자들이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항상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우리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한, 우리는 결코
이 세상의 지배를 받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요한 복음 15장 19절에서 '세상에(서)'에 해당하는 '에크 투 코스무'
(ek tou kosmou; of the world)가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즉 요한 복음 15장 19절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과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와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에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믿는 이들과 세상의 관계가 너무나 미묘하기 때문에 거듭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앞의 두번은 '소속'의 의미로 사용되어 영어 번역에서 'of'로 번역했고,
뒤의 한번은 '분리'의 의미로 사용되어 'out of'로 번역했다.
이것은 '에크'(ek)라는 전치사가 가지는 포괄적 의미 때문에 대조적인 용례로
사용된 것이다.
하지만 앞선 두번의 '에크'(ek)도 내면적으로는 '분리'를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내면적으로는 '분리'의 의미가 강한 '에크'(ek)라는 전치사의
중복 사용을 통해, 믿는 이들은 모름지기 이 세상에서 내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역설하셨다.
-임언기 안드레아 신부님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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