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4권 공생활 둘째 해(하)1 p218~p229
259. 베드로가 도라의 농부들에게 그 자체가 구원인 사랑에 대하여 설교하다
1945. 8. 22.
“사랑하는 벗들아, 너희는 이 불 가까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예수께서 초저녁에 에스드렐론 평야의 한 네거리에서 제자들이 활활 타는 불 주위에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물으신다.
사도들은 그분께서 오시는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깜짝 놀라 불은 잊어버린 채 그분께 인사드린다. 그들은 오랫동안 선생님을 보지 못하기라도 한 것 같다.
그 다음에 그들이 설명한다.
“저희는 이즈르엘 출신의 두 형제 사이의 분쟁을 조정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너무 기뻐하며 각기 어린양 한 마리씩을 저희에게 주었습니다. 저희는 그놈들을 익혀서 도라의 농부들에게 가져다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요하난의 미카가 어린양들을 도살하여 준비했고, 저희는 지금 그놈들을 구울 참입니다. 당신의 어머니께서는 마리아, 수산나와 함께 해진 후에 관리인이 술을 마시려고 집에 가 있을 때 오라고 도라의 농부들에게 말하려고 가셨습니다. 여자들은 남의 이목을 덜 끕니다…
저희는 그들의 농장을 지나가는 나그네인 척하면서 그들을 보려고 애써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저희는 여기 모여서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말을 좀더… 해주고, 당신께서 전에 하셨던 것처럼 그들의 육체도 만족시켜주기로 결정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신께서 여기 계시니 더 기쁠 것입니다.”
“누가 말하려고 했었느냐?”
“글쎄요… 각자가 조금씩… 격의 없이… 요한, 열성당원, 선생님의 사촌은 말하고 싶어 하지 않고, 시몬의 유다와 바르톨로메오도 말하는 데 열의가 없기 때문에, 저희는 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그 일로 입씨름까지 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다.
“그 다섯 사람은 왜 말하기를 싫어하느냐?”
“요한과 시몬은 항상 자기들만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이고… 당신의 사촌은 제가 한 번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이라고 말하면서 제가 말하기를 원하고, 바르톨로메오는 너무 선생처럼 말하다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신께서는 그것들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아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몬의 유다, 너는 왜 말하기를 원치 않느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이유로요! 그 모든 이유로요. 그 이유들이 모두 옳으니…”
“많은 이유들이 있구나. 그런데 너희가 말하지 않은 이유 하나가 있다. 이제 내가 결정하겠다. 내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 타대오가 지혜롭게 말한 것처럼 요나의 시몬아, 네가 말해라. 그리고 시몬의 유다, 너도 말해라. 이렇게 하면 많은 이유들 중의 하나가, 하느님께서도 아시고 너도 아는 이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선생님, 정말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유다가 항변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의 말을 가로 막으며 말한다.
“오! 나의 주님! 제가 어떻게 당신 앞에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결코 그렇게는 못할 겁니다! 당신께서 저를 놀리실까봐 두렵습니다…”
“너는 혼자 있기도 원치 않고, 나와 함께 있기도 원치 않는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제가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요?”
“네 아우가 어린양들을 가지고 오고 있다. 그를 도와주어라. 양들을 요리하는 동안에 무엇을 말할지 생각해라. 모든 것이 주제를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석쇠 위의 어린양도요?”
베드로가 의심스러워하며 묻는다.
“그렇다. 그러니 순종해라.”
베드로가 깊은 한숨을 쉬는데, 그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안드레아에게 가서 석쇠로 사용되는 끝이 뾰족하게 깎인 막대기에 어린양들을 꿰는 일을 도와준 다음에 진지한 얼굴로 익어가는 고기를 살피는데, 그는 판결하기 시작하는 순간의 재판관처럼 보인다.
“시몬의 유다야, 여자들에게 마중 나가자.”
예수께서 명령하신 다음 도라의 황폐한 밭들 사이로 멀어져 가신다.
“유다야, 훌륭한 제자는 선생이 경멸하지 않는 것을 경멸하지 않는다.”
얼마 후에 예수께서 거두절미하고 말씀하신다.
“선생님, 저는 경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바르톨로메오처럼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말하지 않는 편을 택한 겁니다.”
“나타나엘은 내 갈망을 만족시키지 못할까봐, 즉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고 위안해주지 못할까봐 염려하고 있다. 주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에게도 잘못이 있다. 그러나 너는 농부들이 네 말을 알아듣지 못할까봐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미덕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대하여 무식한 비천한 농부들이 네 말을 알아듣는 것을 경멸하고 있다.
사실 미덕에 관한 한 그들은 너희 중 많은 사람들을 능가한다. 유다야, 너는 아직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복음은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고통당하는 사람들, 노예들에게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이다. 그 다음에는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져다주는 좋은 소식이다. 그것은 바로 모든 종류의 불행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고 위로해주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유다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는다.
한 관목 숲에서 복되신 동정녀, 클레오파의 마리아, 수산나가 나온다.
“어머니, 잘 지내셨습니까? 다른 분들에게도 평화!”
“아들아! 나는 저… 불쌍한 사람들에게 갔었다. 그러나 나는 다소 위안이 되는 소식을 들었다. 도라가 이 땅을 팔았고, 요하난이 그것을 샀다는구나. 이 땅이 낙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지옥은 아니다. 관리인이 오늘 농부들에게 그렇게 말했다더라.
관리인이 밀을 마지막 한 알까지 마차에 싣고 떠나 모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는 채로 남아 있게 되었다는구나. 그리고 요하난의 관리인은 오늘 자기네 사람들이 먹을 식량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라의 농부들은 굶고 지내야 할 참이었다. 그 어린양들을 얻게 된 것은 참으로 하느님의 섭리이다!”
“그 농부들이 더 이상 도라에게 속해 있지 않게 된 것도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저희는 그들이 사는 집들을 보았는데… 돼지우리들 같았습니다.”
수산나가 분개하며 말한다.
“그 불쌍한 사람들은 아주 행복해해요!”
클레오파의 마리아가 대화를 마감한다.
“저도 기쁩니다. 그들은 이전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돌아오시며 대답하신다.
엔도르의 요한이 에르마스테오와 함께 물병들을 들고 예수께로 온다. 그는 예수께 공손하게 절한 후에 설명한다.
“요하난의 농부들이 이것들을 저희에게 주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어린양 두 마리가 짙은 연기 속에서 기름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고 있는 곳으로 온다. 베드로는 계속 막대기를 돌리며 생각을 가다듬는다. 한편 유다 타대오는 한 팔로 자기 형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왔다 갔다 하며 대화에 몰두하고 있다. 다른 사도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나무를 가져오고, 다른 사람들은… 걸상으로 쓰려는지 식탁으로 쓰려는지 모르지만 커다란 돌들을 가져다가 식탁을… 준비한다.
도라의 농부들이 도착한다. 그들은 전보다 더 수척해졌고, 더 남루한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몹시 기뻐한다! 그들의 수는 스무 명쯤 되는데, 어린이와 여자는 단 한명도 없다. 가엾은 남자들뿐이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 여러분에게 더 나은 주인을 주신 것으로 인하여 주님을 찬미합시다. 여러분을 그토록 모질게 괴롭힌 사람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며 그분을 찬미합시다. 그렇지요? 어르신, 행복하세요? 저도 기쁩니다. 저는 아이를 데리고 더 자주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말씀드렸습니까? 당신은 기뻐서 울고 계시지요, 그렇지요? 이쪽으로 오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예수께서 마르지암의 할아버지에게 말씀하신다. 노인은 울면서 고개 숙여 예수의 손에 입 맞추며 중얼거린다.
“저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 더 이상 아무것도 청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청한 것보다 더 많이 주셨습니다. 저는 너무 오래 살아서 다시 고통이 저를 압도할까봐 두렵기 때문에 지금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있어 다소 거북해하던 농부들은 이내 대담해진다. 전에 가져다놓은 돌들 위에 넓은 나뭇잎들이 깔리고 그 위에 두 마리 어린양이 놓인 다음 분배되어 각 사람의 몫이 접시로도 사용되는 얇고 넓은 일종의 밀전병에 놓이자 농부들은 긴장을 풀고 원래의 소박함을 회복하여 맛있게 먹어 그렇게도 오랫동안 굶주렸던 허기를 달래면서 최근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중 한 사람이 말한다.
“저는 항상 메뚜기들, 두더지들, 개미들을 저주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놈들이 모두 주님의 사자들처럼 보입니다. 그놈들 덕분에 저희가 지옥을 벗어나게 되었으니까요.”
비록 개미들과 메뚜기들을 천사들의 군대와 비교하는 것이 다소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 말 속에 숨겨져 있는 비극적인 상황을 느끼기 때문에 아무도 웃지 않는다.
불꽃이 회중을 비춘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불꽃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들 앞에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모든 눈들이 예수의 얼굴을 향하여 있다가 음식을 나눠주느라 분주한 알패오의 마리아가 허기진 농부들의 밀전병에 고기를 더 놓아줄 때만 잠시 눈을 돌린다. 그녀는 구운 양의 넓적다리 고기 두 덩이를 넓은 나뭇잎에 싸는 것으로 일을 마치며 마르지암의 할아버지에게 말한다.
“이것을 받으세요. 여러분은 내일도 각자가 조금씩 드실 것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동안 요하난의 관리인이 뭔가를 마련해주겠지요.”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는 운반해 갈 짐이 덜어질 것입니다. 받으세요, 할아버지.”
두 마리 어린양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발라먹은 뼈들과 꺼져 가는 나무 위에서 아직도 타고 있는 녹아서 떨어진 비계의 오래 가는 냄새뿐이다. 이제 불은 사위어가고, 그 빛 대신 달빛이 비춘다.
요하난의 농부들도 다른 사람들과 합류한다. 지금은 농부들에게 말할 시간이다.
예수의 파란 두 눈이 반쯤 그늘진 나무 곁에 있는 가리옷의 유다를 찾으시느라 위쪽을 향하신다. 유다가 그 시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체하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신다.
“유다야!”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일어서서 앞으로 나온다.
“따로 떨어져 있지 마라. 부디 내 대신 복음을 전해라. 나는 매우 피곤하다. 어쨌든 만약에 오늘 저녁에 내가 여기 오지 않았다면, 너희 중 누군가가 말해야 했을 것이다.”
“선생님… 저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몇 가지 질문이라도 해주십시오.”
“너에게 질문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슨 말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무엇에 대한 설명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예수께서 농부들에게 물으신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본다… 그들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마침내 한 농부가 묻는다.
“저희는 주님의 능력과 그분의 너그러우심은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분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요하난과 함께 있게 되었으니, 어쩌면 저희는 좀 더 배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는 메시아께서 약속하시는 나라를 얻기 위하여 저희가 반드시 해야 할 필수적인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래도 저희가 그 나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유다가 대답한다.
“여러분은 확실히 매우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안과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공모하여 여러분을 나라에서 쫓아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원할 때마다 선생님께 올 자유가 없는 것, 도라와 같은 하이에나는 아닐지라도 우리가 아는 한 자기 하인들을 포로처럼 잡아두는 집 지키는 개 같은 주인의 하인이라는 사실, 여러분의 고통과 실의는 모두 여러분이 나라에 선택되는 데 불리한 조건들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을 그토록 가혹하게 다루는 사람에게 여러분이 분노와 앙심과 비난과 복수의 감정을 품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과 자기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운명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뜻에 소극적으로 복종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도록 주의해야 하고, 분명히 여러분의 주인에게 우호적일 수 없거나 여러분의 …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일 수 없을 판단을 표현하는 자유를 누리지 말고, 여러분의 주인을 참을성 있게 견뎌야 합니다.
요컨대 여러분은 반항하지 않으려면 깊이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반항은 사랑을 죽일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첫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거의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착한 영혼과 결합된 착한 뜻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여러분이 증오와 복수심을 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하느님의 자비는 매우 크기 때문에 여러분의 완전에 여전히 부족한 것을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침묵이 흐른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깊숙이 숙이고 계셔서 나는 그분의 얼굴 표정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얼굴들은 볼 수 있는데, 그 표정들은 분명히 기쁜 것이 아니다. 농부들은 전보다 더 실의에 빠진 것처럼 보이고, 사도들과 여자들은 깜짝 놀라다 못해 거의 공포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참을성과 용서와 반대되는 어떤 생각도 억누르려고 애쓰겠습니다.”
노인이 겸손하게 대답한다.
다른 농부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우리가 완전한 사랑에 이르기는 분명히 어려울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 것만도 이미 대단한 것이니까요! 영혼은 너무 괴로워하는데, 비록 미워하지는 않는다 해도 저 빼빼마른 어린이들이 자라기 어려운 것처럼 사랑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보시오. 그렇지 않아요. 나는 오히려 여러분이 그토록 심하게 고통당하면서도 살인자가 되거나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여러분의 영혼은 우리의 영혼보다 더 강하게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농부들을 위로하려고 말한다.
베드로는 자기가 말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말을 끊으며 말한다.
“오! 선생님!… 그런데… 당신께서는 제가 말해야 한다고… 심지어 제가 굽고 있는 어린양에서라도 주제를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여기 있는 우리 형제들과 그들의 처지에 맞는 좋은 말을 찾아내려고 계속 어린양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둔하기 때문에 적당한 것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생각 속에서 멀리 방황하다가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들이 이상한 생각인지, 거룩한 생각인지 제가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이상한 생각이라면 분명히 제 생각일 것이고, 거룩한 생각이라면 분명히 하늘에서 오는 것일 것입니다.
저는 그 생각들을 떠오른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께서 저에게 그것에 대하여 설명해주시거나 나무라십시오. 그리고 내 벗들인 여러분은 제 말을 참고 들어주십시오.
저는 먼저 불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보자, 불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가?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나무는 자기 혼자 불타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르지 않으면 전혀 불붙지 않는다. 물이 나무를 무겁게 하여 부싯깃이 나무에 불붙이지 못하게 한다. 나무는 죽으면 썩고, 벌레들이 가루로 만들어버리지만, 자기 혼자서는 불붙지 못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무를 적당히 모아놓고 불쏘시개를 붙잡고 부싯돌을 부딪치면 불똥이 일어나고, 잔가지들 위를 불어서 불꽃을 커지게 하면, 언제나 가장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법이니 불꽃이 일어나 아름답고 유익하게 되어 굵은 장작을 포함한 모든 것을 불붙게 한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나무와 같다. 우리 스스로 불붙일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살과 피의 둔한 수분이 우리에게 너무 배지 못하도록 주의하며 불똥에 의하여 불쏘시개가 타오르게 해야 한다. 우리는 불살라지기를 갈망해야 한다. 우리가 소극적으로 있다면, 우리는 악천후와 벌레 즉 사람들과 마귀에 의하여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일 우리가 사랑의 불에 자신을 내맡긴다면, 그 불이 먼저 잔가지들을 태워 없애고―저는 잔가지들이 결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 다음에 더 커져서 더 굵은 장작들 즉 더 강한 열정들에 불을 붙일 것이다. 그렇게 하여 물질적이고, 거칠고, 둔하고, 심지어 추하기도 한 나무와도 같은 우리가 불꽃이라는 아름답고, 비물질적이고, 민첩하고, 밝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불쌍한 죄인들인 우리를 미래의 천사와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만드는 부싯돌과 부싯깃인 사랑에 우리 자신을 내맡겼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 가지 생각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약간 고개를 드셨다. 그분께서는 두 눈을 감으시고 입술에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신 채 귀 기울여 듣고 계신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놀란 채 베드로를 쳐다보고 있지만, 더 이상 겁에 질려 있지는 않다.
베드로가 침착하게 말을 잇는다.
“짐승들을 굽고 있는 동안에 또 하나의 생각이 제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내 생각이 유치하다고 말하지 마시오. 선생님께서는 내가 보고 있는 것에서 이야깃거리들을 찾아내라고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순종했습니다.
나는 짐승들을 들여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여기 있구나. 죄 없고 온순한 짐승 두 마리가 여기 있다. 우리 성경에는 어린양에 대한 좋은 암시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모세의 어린양으로 상징된 바와 같이 언약된 메시아이자 구세주이신 분을 기억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예언자들이 그렇게 말한다.
메시아께서는 그분의 양들을 모아서 상처 입은 양들은 도와주고, 다리가 부러진 양들은 안아서 데려오려고 오셨다. 얼마나 큰 선하심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우리에게 그토록 큰 자비를 약속하시는 하느님을 우리가 무서워하면 안 된다! 그러나’
저는 또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무죄하지 않은 만큼 온순해야 한다. 우리는 적어도 온순하기는 해야 한다. 우리는 온순해야 하고, 사랑으로 불살라지기를 갈망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어린양이라도 도살된 후에 불 위에서 익혀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악취 나는 시체가 된다. 그러나 불은 그것을 건강에 좋은 복된 음식이 되게 한다.’
그래서 저는 결론지었습니다. ‘요컨대 모든 좋은 것들은 사랑을 통하여 얻어진다. 사랑은 우리에게서 인간성의 둔함을 없애서 우리를 빛나고 유용하게 만들어주고, 형제들에게 착하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사람을 만들어준다. 사랑은 우리의 타고난 좋은 자질들을 초자연적인 미덕들의 이름을 가진 높이로 높이 들어 올림으로써 그것들을 향상시킨다. 유덕한 사람은 거룩하고, 거룩한 사람은 하늘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완전에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지식이나 두려움이 아니고 사랑이다. 사랑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슬프시게 해드리지 않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에, 사랑은 처벌의 두려움보다 훨씬 더 우리를 악에서 멀어지게 한다.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형제들을 동정하게 해준다. 그들은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사람의 구원이고, 성화이다.’
이것이 바로 내 예수님께 순종하여 어린양이 구워지는 것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것들밖에 생각해내지 못한 것을 용서해주시오. 나에게는 이것들이 유익했습니다. 나는 이것들이 여러분에게도 유익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 생각들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예수께서 눈을 뜨시는데, 그 눈은 기쁨으로 빛난다. 그분께서는 한 팔을 뻗어 손을 베드로의 어깨에 얹으신 채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찾아내야 할 말들을 찾아냈다. 순종과 사랑이 너에게 그 생각들을 찾아내게 했다. 겸손과 네 형제들을 위로해주겠다는 갈망은 그 생각들을 그들의 어두운 하늘에 그 수만큼의 별들이 되게 할 것이다. 요나의 시몬아, 하느님께서 너에게 강복하시기를!”
“선생님, 하느님께서 당신께 강복하시기를! 그런데 당신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내일 이 사람들은 새로운 섬김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내 말로 이들의 시작을 축복해주겠다. 이제는 평안히 가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260. 요하난의 농부들에게 말씀하시다. “사랑은 순종이다”
1945. 8. 23.
지금은 동트기 전이다. 예수께서는 황폐하게 된 도라의 과수원의 한가운데에 서 계신다. 말라 죽었거나 말라 죽어가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그 중 많은 나무들이 이미 쓰러졌거나 뽑혔다. 그분의 주위에는 도라와 요하난의 농부들과 사도들이 있는데, 몇 명은 서 있고 몇 명은 쓰러진 나무줄기에 앉아 있다.
예수께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새 날이 밝아오고, 새 출발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떠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다른 주인에게 가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떠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착하고 경건한 다른 농부들과 합쳐져 한 가정을 이룰 터인데, 거기서 여러분은 속임수를 쓰지 않고도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서로를 부축해주시오. 서로 도우시오.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견뎌내고, 서로를 고양시켜주시오.
그것이 사랑입니다. 비록 다른 방식이기는 했지만, 어제 저녁에 여러분은 사도들에게서 사랑은 구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그 특유의 순박하고 친절한 말로 사랑이 어떻게 여러분의 둔중한 인간성을 초자연적인 성질로 바꾸는지, 사랑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요리되지 않은 도살된 동물처럼 부패하거나 부패하게 하는지, 또는 그가 물에 젖어 썩은 나무처럼 불붙을 수 없게 되는지, 사랑이 어떻게 사람을 하느님의 분위기 안에서 살게 하고, 그래서 그가 부패에서 빠져나와 자기 이웃에게 유익하게 되는지를 여러분에게 숙고하게 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사랑은 우주의 위대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결코 싫증내지 않고 계속 말하겠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에 대한 아담과 하와의 사랑의 결핍에 의하여 야기된 죽음과 질병들을 위시하여 세상의 모든 불행은 사랑의 결핍에서 옵니다.
사랑은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반역자입니다. 반역자는 자기가 반역하는 대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전쟁이나 경쟁하는 가문들의 몰락과 같은 보편적이거나 특수한 다른 불행들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것은 이기심에서 오는데, 그것은 소원함(estrangement)입니다. 가문의 몰락과 함께 하느님의 벌로 물질적인 파산도 뒤따라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조만간 사랑 없이 사는 사람을 벌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기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소문으로 인하여 어떤 사람들은 나를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은 공포심을 가지고 나를 보거나 새로운 벌로 나를 들먹이거나 벌이 무서워서 그것을 감수합니다. 나는 내 시선이 이 밭들을 저주받게 했다는 소문이 이 지방에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주를 불러온 것은 내 시선이 아니라 불의하고 잔인한 사람의 이기심이었습니다. 만일 내 두 눈이 나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땅을 불태워야 한다면, 팔레스티나에 초록빛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를 상대로 드러낸 악의에 대하여 결코 복수하지 않고, 자기 이웃에 대한 이기심의 죄에 고집스럽게 남아 있고 사랑의 계명을 독성적으로 비웃는 사람들을 아버지께 넘겨드립니다. 말과 적절한 행위를 통하여 사랑으로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들은 점점 더 잔인해집니다.
나는 항상 뉘우치는 영혼에게 기꺼이 손을 들고 말할 용의가 있습니다. ‘나는 네 죄를 사해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러나 나는 변하기를 원치 않는 냉혹함에 동의함으로써 사랑을 모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올바른 빛으로 사물을 보고, 존경심의 발로이든, 분노한 공포의 발로이든 진실과 다른 이야기들을 논박할 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시오.
여러분은 주인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땅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땅의 지금 상태로 보아 이 땅을 돌보는 것은 미친 짓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 땅에서 여러분의 의무를 다하시오. 지금까지 여러분은 잔인한 벌이 무서워서 이 땅을 돌보았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과거와는 다르게 취급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라도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오. 아니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 받을수록 여러분은 더 부지런히, 더 기쁘게 일해야 한다고, 여러분에게 인정을 베푼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일을 통하여 인정을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조상에게서 나왔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벌거숭이로 태어나고 죽어 그가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똑같이 썩고, 재산이라는 것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의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정직하게든, 부정직하게든 자신들을 위하여 그것을 모은 사람들의 것이며,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압제하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매수되지 않으시고, 보석이나 금전으로 유혹할 수 없고, 오로지 우리의 착한 행동을 통해서만 우리의 벗을 삼을 수 있는 분, 하느님이신 진짜 주인께서 엄한 눈초리로 보시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재산을 사랑과 조심성과 정의를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인들은 자신들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인정을 가져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편 하인들도 주인들에게 착해야 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을 이 비천한 처지에 두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순박함과 착한 뜻을 가지고 행하시오. 여러분은 디베스의 비유(거지 라자로의 비유)를 압니다. 하늘에서 보상받는 것은 금이 아니라 성덕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성덕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하느님을 사람의 벗으로 만들어줍니다.사람들의 행위들을 통하여 항상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것은 착한 사람들 안에서는 쉽습니다. 그러나 나쁜 사람들 안에서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영혼이 하느님은 선하시지 않다고 설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사탄에게 미혹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행하는 악을 극복하고, 여러분에게 그토록 많은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이 장벽 너머로 고통의 진리와 그 아름다움을 보아야 합니다.
고통은 악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악의 힘이 존재하고, 그것이 하느님의 자녀들의 영적 황금에 대한 시금석이기 때문에 악을 없앨 수 없는 하느님께서는 그 독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약의 즙을 뽑아내도록 강제하십니다. 왜냐하면 고통의 신랄함은 착한 사람들을 점점 더 거룩하게 만들고, 그들을 신령하게 하는 반응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착하고, 공손하고, 순종하시오. 여러분의 주인들을 판단하지 마시오. 그들을 심판하는 분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사람이 의인이 되어 여러분의 삶을 더 쉽게 하고, 그 자신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하느님의 눈에 공로가 더 크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여러분의 주인을 속이려 하지 마시오. 속임수로 얻은 돈과 식료품은 부유하게 하거나 배부르게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손과 입술과 마음을 깨끗하게 간직하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들에서 강제로 일한다 해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여러분은 안식일과 의무적인 명절들을 은총으로 지키는 셈이 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노동은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하여 자기들의 의무를 지키러 가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기도보다 더 가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들은 모든 사람과 그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그들 자신을 위하여 안식일과 명절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는 율법에 불순종함으로써 계명을 위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거룩하게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안식일과 명절들에 참례하지 못하게 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 의식들을 더 잘 지키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강복하고 지금 떠나려고 합니다. 지금 해가 뜨고 있는데, 나는 더위가 너무 심해지기 전에 야산 위에 도착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곧 가을이 다가오니 우리는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요하난의 새 하인들과 이전 하인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또한 여러분의 마음이 평온하기를.”
예수께서는 농부들 사이로 지나가시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강복하신다.
말라죽은 큰 사과나무 뒤에 반쯤 숨어 있는 사람이 있다. 예수께서 못 본 체하시며 지나가려 하시자, 그가 펄쩍 뛰어나오며 말한다.
“저는 요하난의 관리인입니다. 요하난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의 라삐께서 오신다면, 그분을 내 땅에 머무르시게 하고, 하인들에게 말씀하시도록 해드리게. 그분께서는 좋은 일만 가르치시니 사람들이 우리를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할 걸세’
그리고 어제 그는 편지로 오늘부터 이 사람들이(그는 도라의 농부들을 가리킨다) 저와 함께 있게 되고, 이 땅이 요하난의 것이 된다는 것을 저에게 알리며 말했습니다. ‘그 라삐께서 오신다면,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귀담아듣고, 그에 따라서 행동하게. 우리에게 불행이 닥쳐오지 않도록 그분께 많은 경의를 표하게. 그러나 그분께서 이 땅에 대한 저주를 취소하시게 할 수 있는지 보게.’
왜냐하면 요하난이 앙심을 품고 이 땅을 샀다는 것을 당신께서는 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이미 그것을 후회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은 목초지나 만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테니까요.
“당신은 내가 말하는 것을 들었소?”
“예, 선생님.”
“그럼 당신은 당신과 당신의 주인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 거요. 당신의 주인에게 말하시오. 당신에 관해서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의 피로가 어떤지를 실제로 알고, 주인에게 잘 보인 당신이 그의 명령을 완화하시오. 그러나 당신의 영혼을 잃는 것보다 주인의 호의와 당신의 자리를 잃는 편이 더 낫소. 안녕.”
“그러나 저는 당신께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나는 우상이 아니오. 나는 은총을 주기 위하여 이익을 얻는 경의를 받을 필요가 없소. 당신이 들은 것을 실천함으로써 당신의 영혼으로 나를 공경하시오. 그러면 하느님과 당신의 주인을 동시에 섬긴 셈이 될 것이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여자들과 모든 농부들의 앞장을 서서 밭들을 지나 다시 한 번 모든 사람에게 인사하신 다음 야산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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