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사람이 됩시다
이 글은 2011년 4월 13일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성하께서
일반 알현에서 한 강론을 옮긴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한 삶은 특별한 일을 완수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거룩한 삶에 불린 이는 누구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룩한 삶을 일부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목표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는 그것에 반대하면서 하느님의 위대한 계획을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에페 1, 4).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의 중심에 하느님의 얼굴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서 계십니다. 수세기 동안 숨겨져 온 신비가 육화되신 말씀 안에 충만히 계시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콜로 1, 19). 그리스도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듣게 되었고,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은총과 진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요한 1, 14-16 참조).
그리스도 안의 충만한 삶을 뜻하는 거룩함은 어떤 특별한 일을 완수하는 데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분의 신비를 살면서 그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자리가 어느 정도인가에, 성령의 인도에 따라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는가에 거룩함의 정도가 결정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대로, 거룩함은 그리스도와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 29). 성 아우구스티노는 소리 높여 고백했습니다. “당신으로 가득 찬 나의 삶만이 진실한 삶일 것입니다”(고백록 10, 28).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은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선언했습니다. “온갖 생활과 직무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의 성덕을 닦고 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를 따르고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흠숭하며, 가난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교회 헌장 41항).
또 질문이 있습니다.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떻게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까? 내 능력으로 가능합니까? 대답은 분명합니다. 거룩한 삶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시고 거룩하시며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삶은 성령의 활동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 업적 때문에 하느님께 불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에 따라 부름 받고, 주 예수님 안에서 의화되고, 믿음의 세례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였기에 참으로 거룩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살며 이미 받은 성덕을 보존하고 완성해 나가야 한다”(교회 헌장 40항).
거룩함의 근원은 세례성사의 은총 안에 있습니다. 세례성사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비에 “접붙여져서” 그분의 영을, 부활하신 그분의 생명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세례성사의 은총이 인간 안에서 일으키는 변화를 아주 강하게 강조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되살아나고, 함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죽어 없어지지 않고 그분과 함께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 선물을 받아들여 선물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요구를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성령에 힘입어 변화되어서 우리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맞추기를 원하십니다.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의 만남 없이 주일을 헛되이 보내지 맙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 16).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당신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다(로마 5, 5 참조). 그러므로 가장 필요한 첫째 은혜는 사랑이며, 그 사랑으로 우리는 만유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좋은 씨앗처럼 영혼 안에서 자라나 열매를 맺으려면, 모든 신자가 각기 하느님의 말씀을 기꺼이 듣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의 뜻을 행동으로 채워 드려야 하며,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와 거룩한 전례에 자주 참여하고, 기도와 극기, 형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봉사와 모든 덕의 실천에 꾸준히 헌신하여야 한다. 완덕의 끈이며 율법의 완성인 사랑은(콜로 3, 14 ; 로마 13, 10 참조) 모든 성화 수단을 이끌고 가르쳐 그 목표에 이르게 한다”(교회 헌장 42항).
이 문헌의 표현은 매우 고상하지만 본질은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의 만남 없이 주일을 헛되이 보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성체 안에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은 결코 짐이 아니며 오히려 한 주간을 비추는 빛입니다. 적어도 하느님과의 짧은 만남 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일에 부활하신 분을 만나는 것, 하루의 시작과 끝에 하느님과 만나는 것,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하느님께서 주신 안내자를 따르는 것, 이것은 거룩한 삶이 지니는 단순함과 위대함과 깊이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성 아우구스티노는 요한의 첫째 서간 4장에 이런 주석을 달았습니다.
“행하려거든 사랑으로 행하십시오. 침묵하려거든 사랑으로 침묵하고, 말을 하려거든 사랑으로 말하십시오. 올바른 것을 보여주려거든 사랑으로 하고, 용서하려거든 사랑으로 용서하십시오. 그대 안에 사랑의 뿌리를 심으십시오. 오직 뿌리에서 훌륭한 것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이끌려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이끄심을 받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행하려거든 사랑을 행하십시오.”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계와 약점을 지닌 우리가 그토록 높고 넓게 오를 수 있을까? 교회는 성인들은 물론이요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따랐던 사람들도 전례안에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거룩한 삶의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회 역사의 모든 시기에 성인들이 났으며, 세계 곳곳에서 모든 연령에서 그리고 신분과 계층을 막론하고 성인들이 났습니다. 그들은 그 민족과 언어와 국가의 구체적인 얼굴이었으며, 성인들의 면모는 매우 다양합니다. 나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성인들은 역사의 창공에서 빛나는 진짜 별입니다.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사랑하고 잘 알고 있는 소수의 성인들뿐 아니라 교회의 전례력에는 없지만 훌륭한 삶을 산 거룩한 사람들 역시 우리의 “안내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드러나는 영웅적인 행위를 한 적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일상생활을 훌륭하게 승화시켰습니다. 그런 훌륭함이 그리스도교를 지키는 확실한 방어이며 진리의 상징입니다.
하느님께로 높이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덕분에 교회의 전례력에 있든 없든 교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는 성인들과 통공 안에서 우리는 그들의 현존을 기뻐하며 그들의 길을 닮아가고, 어느 날 우리도 그들처럼 영원한 복된 삶에 참여할 수 있다는 굳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우리가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부르심을 이 빛으로 비추어본다면 그 부르심은 너무나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또한 너무나 단순합니다. 우리는 모두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거룩함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척도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에페 4, 7-13).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작용에 자신을 여십시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께서 구원 역사에서 창조하신 거룩함이라는 큰 모자이크 속의 돌이 될 것이며, 그 위에 그리스도의 얼굴이 광채를 내며 충만하게 빛날 것입니다. 높이, 하느님께로 높이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자신이 가난하고 부족하며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모든 일상생활에서 그분의 말씀을 따르도록 합시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마리아지 2011 / 11·12 통권 170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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