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15 목 (자) 대림 제3주간 목요일
평일 미사. 대림 감사송 1
① 이사 54,1-10
㉥ 루카 7,24-30.
15 (자)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119(118),151-152 참조
주님, 당신은 가까이 계시나이다. 당신 계명은 모두 진리이옵니다. 당신이 영원하시기에, 일찍이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깨달았나이다.
본기도
주님, 주님의 부당한 종인 저희가 죄를 지어 괴로워하고 있사오니, 외아드님께서 오실 때에 구원의 기쁨을 주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가엾이 여기시어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며, 세례자 요한을 두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은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4,1-10
1 환성을 올려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즐거워하여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아들들이 혼인한 여인의 아들들보다 많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너의 천막 터를 넓혀라. 네 장막의 휘장을 아낌없이 펼쳐라. 네 천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3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고, 네 후손들이 뭇 나라를 차지하여 황폐한 성읍들에 자리 잡을 것이다. 4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수치스러워하지 마라. 네가 창피를 당하지 않으리라. 네 젊은 시절의 부끄러움을 잊고, 네 과부 시절의 치욕을 네가 다시는 회상하지 않으리라. 5 너를 만드신 분이 너의 남편,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의 구원자, 그분께서는 온 땅의 하느님이라 불리신다.
6 정녕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 아파하는 아내인 양,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8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 네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9 “이는 나에게 노아의 때와 같다. 노아의 물이 다시는 땅에 범람하지 않으리라고 내가 맹세하였듯이, 너에게 분노를 터뜨리지도, 너를 꾸짖지도 않겠다고 내가 맹세한다. 10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0(29),2와 4.5-6.11-12ㄱ과 13ㄴ(◎ 2ㄱㄴ 참조)
◎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 주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당신은 저를 구하시어, 원수들이 저를 보고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주님, 당신이 제 목숨 저승에서 건지시고, 구렁에 떨어지지 않게 살리셨나이다. ◎
○ 주님께 충실한 이들아,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이니, 울음으로 한밤을 지새워도,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하리라. ◎
○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 되어 주소서.” 당신은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니, 주 하느님, 영원히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
복음 환호송 루카 3,4.6
◎ 알렐루야.
○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알렐루야.
복음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는 사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4-30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26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27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29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30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에게 온갖 선물을 베풀어 주셨으니, 그 가운데에서 저희가 모아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들이시고, 현세에서 저희 믿음을 북돋아 주시어, 후세에서 영원한 구원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 대림 감사송 1: 183면 참조>
영성체송 티토 2,12-13 참조
우리는 현세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염두에 두시고는 군중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광야란 어디를 뜻합니까? 성경에 따르면 광야는 풀조차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을 뜻합니다. 생명이 싹트기 힘든 곳입니다. 그런 광야에서는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광야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몸담은 사회가 바로 광야입니다. 혼란과 분열, 앞날에 대한 불안, 폭력과 증오, 환경 파괴, 이런 현상을 볼 때 우리는 마치 광야 한복판에 서 있는 것만 같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마음마저 광야가 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하느님을 모시면서도 막상 “하느님은 나와 함께 계신가?” 하는 회의가 들기 때문이지요. 본의 아니게 한눈마저 팔곤 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염두에 두고 군중에게 재차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요한은 어떤 모습을 군중에게 보여 주었습니까?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며 예언자로서 활동하다 헤로데에 의해 목숨마저 잃었지요.
이처럼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충실히 완수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광야와도 같은 이 현실에서 요한을 대신하여 예언자의 임무를 수행하여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2권-56,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하느님 뜻 안에서 살고자 한다.
1918년 7월 16일
1. 아침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오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너 자신 안에, 네 뜻 안에 남아 있지 말고, 내 안으로, 내 뜻 안으로 들어오너라. 나는 무한하다. 그리고 무한한 존재만이 원할 때마다 매번 행위들을 증가시킬 수 있다.
2. 또 저 높은 곳에 있는 존재는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빛을 줄 수 있다. 태양을 보아라. 저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모든 눈에 빛이 된다. 더군다나 모든 사람이 저마다 태양이 완전히 자기 소유이기나 한 듯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
3. 반면에 풀과 나무와 강과 바다와 같이 이 아래에 있는 것들은 사람마다 마음대로 쓸 수 없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태양에 대해서처럼 "내가 원하면 이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여전히 태양을 누릴 수 있다." 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4. 아래에 있는 것들은 오히려 태양으로부터 혜택을 받는다. 어떤 것은 빛을,어떤 것은 열을, 어떤 것은 기름진 토양을, 어떤 것은 색채를 받는다.
5. 그런데, 나는 영원한 빛이고,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그리고 얼마나 더 높은곳에 있는지 그만큼 더 깊은 곳까지 도처에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고, 각 사람에게는 오직 그만을 위해 있는 듯한 생명이다.
6. 따라서 네가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고자 한다면, 나의 무한성 안으로 들어와서 저 높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너 자신에게서도 벗어난 상태로 말이다.
7. 그리하지 않으면 땅이 너를 둘러싸고 있을 것이니 네가 풀이나 나무는 될 수있어도 결코 태양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주는 대신 받아야 할 처지가 될것이고, 네가 행하게 될 선도 그 수를 셀 수 있을 만큼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12권-57, 영혼의 거룩한 상처는 위로의 향유이다.
1918년 8월 1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와 걱정거리들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었으므로 드물잖게 한탄이 나오곤 했는데, 그분께서 오셔서 나를 끌어당겨 가슴에 딱 붙여 안으시고, "내 옆구리에 입을 대고 마셔라!" 하셨다.
2. 나는 그래서 그분 심장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지극히 거룩한 피를 마셨다. 얼마나 행복하던지! 한데 예수님은 나로 하여금 한 번 마시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셨다. 한 번 더 마시라고 하신 다음 또 한 번 더 마시하고 하셨던 것이다. 내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많이 마시라고 하셨으니 그분의 선하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3. 나중에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딸아, 나의 부재와 이로 인한 고통을 겪을 때마다 네 마음은 거룩한 상처로 꿰뚫린다. 그런데 이는 거룩한 상처이기 때문에 내 마음에 반영되어 상처를 입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4. 이 상처는 감미롭다. 내 마음을 달래는 향유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피조물이 내게 만드는 잔혹한 상처들, 곧 그들의 무관심과 나에 대한 멸시와 망각이라는 상처들을 진정시키는 데에 사용한다.
5. 그러므로 영혼이 냉랭함과 무미건조와 정신이 흐트러짐을 느낄 때나 때문에 이를 괴로워한다면, 그는 스스로 상처를 입으며 내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상처로 위로를 받고 원기가 회복됨을 느끼는 것이다.“
12권-58, 영혼들 안에서 계속되는 예수님의 죽음.
1918년 8월 7일
1. 예수님의 부재를 두고 그분을 향해 우는소리를 하다가, "이젠 만사 끝장이야. 얼마나 쓰디쓴 나날인지! 내 예수님은 사라지셨어. 나를 떠나셨어. 어떻게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담?" 하고 혼잣말을 하였다.
2. 이 말 외에도 이런저런 군소리를 주절대고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력에서 솟아나는 빛을 통하여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나의 십자가상 죽음은 아직도 영혼들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착한 의향을 가진 영혼이 나에게 자기 안의 생명을 줄 때에는 내가 내 인성 안에서 살듯이 그 영혼 안에서 다시 살아간다.
4. 사랑의 불꽃이 나를 태우고 있기에 이를 피조물에게 증명해 주고 싶어서 나는 애가 탄다. 그래서 말한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너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나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킨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안의 생명을 내게 준 이 영혼 안에서도 너희에 대한 사랑으로 타죽기를 원한다.
5. 그러므로 나는 그 영혼으로 하여금 자기 안의 내 생명이 소멸되는 것을 느끼게한다. 그러니 그는 궁지에 몰리며 임종 고통을 겪게 된다. 자기 안에서 예수의 생명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어졌기에 그 자신도 소멸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6. 자기 안의 내 생명을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 생명이 사라지자 버둥거리며 온 몸을 부들부들 떨게 되는데, 이는 내 신성이 십자가에 달린 내 인성에게서 힘을 거두고 죽게 했을 때, 그때의 내 인성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7. 영혼의 이 소진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고 온전히 신적인 것이다. 나는 또 하나의 내 신적 생명이 나에 대한 사랑으로 소진된 듯한 만족을 느낀다. 사실 소진된 것은 영혼의 생명이 아니고 나의 생명이었다. 영혼은 이를 더 이상 느끼거나 볼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내가 죽은거나 다름없이 보이는 것이다.
8. 그리하여 나는 피조물을 위한 내 죽음의 효과를 새로이 하는 한편, 이 영혼을 위한 은총과 영광도 갑절로 늘린다. 나로 하여금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하게 했던 내 인성의 감미로운 황홀과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9. 그러니 너도 내가 네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해 다오. 네가 나를 자유롭게 해 주면 내 생명을 계속 살아가겠다."
10. 또 다른 날 다시 내가 우는 소리로 "당신께서 저를 떠나셨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엄숙하고도 위압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잠자코 있어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다. 네 영혼 깊은 곳에 있다. 이래서 네가 나를 보지 못하는 거다.
11. 네가 나를 보게 되는 것은 그때 내가 네 영혼의 표면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정신이 흐트러진 상태로 있지 마라. 나는 네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바란다. 그래야 만인의 선익을 위해서 내가 너를 보존할 수 있게 된다.“
12권-59, 한없이 감미로운 폭력.
하느님 뜻 안에서 받는 고통의 효과.
1918년 8월 12일
1. 평소와 같이 지내면서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주님께서 내게 어떤 것을 바라신다면 사제의 방문을 받아야 하는 고충을 면하게 해 주신다는 표를 주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2. 그러자 복되신 예수님께서 한손에 공을 드신 모습으로 나의 내면에 나타나셨는데, 그것을 막 땅으로 던지시려는 참이었다. 그러다가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나의 뜻에 의해 네가 처해 있는 고충을 면하는 것 - 이것이 너의 주된 수난이다. 나는 온 세상을 위하여 너를 이 상태로 있게 한다. 세상을 통째로 멸하지 않으려고 너를 쓰고 있는 것이다. 너는 이것 말고 다른 선을 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하나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4. 그 말씀에 아연해진 나는 "예수님,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고통을 받지 않고 지내도록 하시니 산 제물의 상태를 정지시키신 듯한데, 그럼에도 세상을 멸하지 않기 위해서 저를 쓰고 계시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였다.
5. "하지만 네가 고통을 받고 있지 않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나를 완전히 무력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받고 있지 않을 뿐이다. 또한 때때로 정지된 상태로 있다고 해도 거기에는 너의 일부가, 곧 너의 뜻이 들어 있지 않다. 너의 뜻은 오히려 그 반대쪽에 있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6. 과연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너의 기다림으로, 산 제물의 상태가 정지된 것을 통감하는 것으로, 이전처럼 나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그럼에도 변동 없이 같은 자리에 남아 있는 것으로, 네가 나에게 얼마나 감미로운 폭력을 쓰고 있는지를!
7. 나는 너에게 자유롭게 행동하고자 한다. 마음이 내키면 너의 상태를 정지시켜 둘 것이고, 내키지 않으면 너를 묶어둘 것이다. 네가 너의 뜻을 가지지 않고 내 뜻의 처분대로 내맡기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이것이 네 마음에 든다면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없을 것이다."
8. 또 다른 날은, 먹은 것을 계속 토했기 때문에 속이 메슥메슥하였다. 그래서 다정하신 예수님께 "제 사랑이시여, 저는 음식을 먹으면 토하지 않을 수 없으니, 먹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은총을 주셔도 무방하지 않으십니까?" 하였다. (이는 사제의 명령에 순명하기 위하여 드린 말씀이었다).
9.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딸아, 무슨 소리냐? 조용히, 조용히 있어라. 그 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마라. 너는 알아야 한다. 네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면 내가 사람들을 굶어 죽게 하리라는 것을.
10. 하지만 네가 필요로 하기에, 따라서 네 필요에 소용될 수 있기에, 내가 너에 대한 사랑으로, 너 때문에, 피조물에게 필요한 것을 주게 된다. 그런즉 내가 네 말을 들어주면, 네가 다른 이들을 해치는 격이 된다. 그 대신 네가 음식을 먹고 그 다음에 토하면, 다른 이들에게 선을 행하고 네 고통으로 나를 찬양하게 된다.
11. 게다가 네가 토하면서 고통 받는 것을 내가 얼마나 자주 보겠느냐! 네가 내 뜻 안에서 고통을 겪기에, 내가 피조물의 유익을 위하여 너의 그 고통을 손에 들고 더욱더 많아지게 하며 쪼개는 것이다. 그리고 기뻐하면서 '이는 내 딸의 빵이다. 내가 내 자녀들의 유익을 위하여 내어 주는 빵이다.'하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12권-60, 가장 흉측한 죄.
1918년 8월 19일
1. 일상적인 상태로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마치 원형의 빛에 싸이듯 내 내면 안에 계신 모습을 보여 주셨다. 나를 보시면서 "어디 보자. 오늘은 우리가 어떤 선을 행했더라?" 하셨다. 그리고 보시고 또 보셨다...
2. 나는 그 원형의 빛이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거룩하신 뜻에 나도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3. 그러고 나서 그분은 이렇게 부언하셨다. "어쨌든 나는 사제들의 사악이 지긋지긋하다. 더는 참고 봐 줄 수가 없다. 완전히 끝장내고 싶다.
4. 오, 황폐해진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 중 다수는 얼마나 꼴사납게 변질되어 있는지!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5. 나를 모욕하기 위해서 거룩한 것을 사용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고통이고, 가장 흉측한 죄이며, 전반적인 파멸의 표시이다. 더할 수 없이 큰 저주를 끌어당기면서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통교를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6. 그런 자들을 지상에서 뿌리째 없애 버리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래서 징벌은 계속될 것이고 갈수록 그 수가 증가할 것이다. 죽음이 도시들을 휩쓸어 수많은 집과 길이 사라지고 거기에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니, 어디든지 비탄과 황량함만이 감돌 것이다."
7. 나는 예수님께 거듭거듭 간구하였다. 그분은 밤 시간에 상당히 오래도록 나와 함께 머물러 계셨는데, 어찌나 괴로워하시는지 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분의 마음이 누그러지기를 나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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