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피'는 '성체성사', '물'은 '세례성사'(요한19,31~37) -예수성심대축일(2015년 6월 12일)-임언기 안드레아 신부

Skyblue fiat 2015. 8. 25. 00:25

 

2015년 6월 12일 금요일 예수 성심 대축일 복음(요한19,31~37)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3~34)


로마 시대의 가장 몹쓸 죄를 지은 사형수에게 내리는 형벌이 십자가형이라고 하는데,

보통 십자가에 못박히면 못박힌 자리의 근육이 파열이 되어 흘러내리는 그 피가

사람의 폐에 차면 죽는데, 일반적으로 72시간(24시간×3일)이 되면 죽는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오전 6시에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3시간 동안 조롱과 매질을

당하신 후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며(마르15,25), 오후 3시에

운명하셨으니(마르15,37) 6시간 만에, 거의 반나절 정도에 이렇게 빨리

죽으신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으로 너무나 연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십자가에서의 격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빨리 숨을 거두셨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전날 겟세마니 동산에서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심문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잔인한 채찍질을 당하시는 등

극심한 고난을 받으셨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께 휘두른 채찍의 끝에는 차랑이 박혀 있어

때릴 때마다 등에 고랑이 파여져 시편 129장 3절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했던 것이다.

 

'밭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고랑을 길게 내었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관저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골고타까지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데도, 수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넘어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이미 힘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예수님의 죽음은 겉으로는 인간의 잔인한 물리적 고통, 타율적 고통에 의해

이루어진 것 같지만, 인간 생명의 절대권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당신 자율적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 것, 자신의 영혼을 성부 하느님께

능동적으로 봉헌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요한19,30).


인간 예수님의 봉헌을 하느님 아버지께서 수락해 주셨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의 유월절(과월절)을 준비하시기 위해서

양들을 잡는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의 시간에 맞춰 당신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바쳤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요한 복음 19장 34절에서 당시 로마 군인들이 사용하던 '창'으로 번역된

'롱케'(longche; with a spear)'송곳 끝'이라는 뜻에서 파생된

'창 끝'이다.


이 창은 그만큼 가늘고 길어서 예수님의 시신 옆구리 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예수님을 찌른 날카로운 창은 뼈와 몸 안의 내장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피와 수액이 흘러나오게 했다.


이러한 내용은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요한 1서 5장 6절의

증거처럼 사람이 물과 피로 이루어졌다는 고대 팔레스티나 지역의 인간관에

기인한 내용을 보이기도 한다.


이 인간관에 의하면, 사람은 물로 말미암아 출생하고, 피로 말미암아

생명이 유지되며, '영'(프뉴마; pneuma)출생시에 들어왔다가

죽을 때에 나가는 비(非)물질적 존재로 여겨졌다.


따라서 피와 물이 나왔다는 것은 그 육체가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공관 복음서의 저자들이 기록하지 않고 사도 요한 복음사가에 의해서만

기록된 이 내용실제 사실에 대한 목격자인 사도 요한의 정확한 증거일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의도를 가지고 씌어진 것이다.


첫째로는 사도 요한이 고대 가현설론자(假現說論者)들의 주장,

즉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논리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서 자신이 스스로 목격한 것을

분명하게 기록했다는 주장이다.


둘째로는 초대 교부들 가운데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금구),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은

예수님의 몸에서 나오는 피 마태오 복음 26장 28절에서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라는 구절의 성취로 보았고,

'물''새로 남'(거듭 남)을 얻기 위한 세례 성사의 상징으로 보았다.


특히 예수님의 죽음에서 세례성사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세례성사의 신학적 목적 중의

하나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이처럼 새로운 생명을 얻기 이전에

죽음이 전제되어야 함을 보여 주고, 무죄(無罪)하신 성자 예수님의 대속(代贖)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이 베푼 세례는 회개를 가져오는 세례에 불죄과하지만(마태3,11),

예수님의 세례는 당신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세례인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최초의 성사(聖事)가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면서, '피'는 '성체성사'를, '물'은 '세례성사'를 의미하며, 바로 여기에서

교회가 출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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