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블랙 마돈나 - 폴란드 체스토코바의 성모님

Skyblue fiat 2014. 9. 19. 00:34

 

 


   블랙 마돈나 - 체스토코바의 성모님

                                                                                                                                                             - 류해욱 신부님

 

  지난 순례 중에 저와 우리 순례자들이 아주 깊은 인상을 받은 곳 중의 하나가 폴란드, 체스토코바의 '빛의 언덕'이라는 뜻인 '야스나 고라(JASNA GORA)'에 있는 바오로 은수회 수도원입니다. 늦은 오후 그곳 수도원의 대성당 한쪽 구석에 있는 경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수많은 순례자들의 틈을 비집고 유명한 블랙 마돈나라고 불리는 성화가 모셔져 있는 중앙 제대로 갔을 때, 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신랑과 신부처럼 정장과 하얀 드레스로 차려 입은 아이들의 첫영성체 모습을 보면서 순례자들의 입에서‘아, 참 예쁘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지요. 아이들의 상기된 얼굴을 보면서 이 첫영성체가 아이들에게 어떤 인상으로 그들의 생애에 깊이 아로새겨 질 것인데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첫영성체를 하는 아이들은 체스토코바 지역에 속한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폴란드 전역에서 첫영성체를 하러 오기 때문에 블랙 마돈나 앞의 중앙 제대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계속 첫영성체 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미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제가 우리 순례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의 하나이지요. 제가 4년 전 이곳 폴란드를 순례하면서 느낀 것이 이들의 신앙은 일상의 삶 안에 살아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비가 오는데도 줄을 서서 고백성사를 보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었지요. 폴란드인들의 그런 살아있는 신앙의 모습을 순례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들이 아이들에게 첫영성체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도록 이끌어 주는지 함께 볼 수 있어 내심 기뻤습니다.

 

야스나 고라가 순례자들의 참배수로 볼 때, 세계에서 두 번째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신자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성모 성지가 어디냐고 물으면, 대개 ‘루르드’라고 답합니다. 실제 통계적으로 세계 최대의 성모 성지는 단연 멕시코의 과달루페이지요. 연간 순례자들의 수가 2000만을 넘는다고 합니다. 그 다음이 바로 블랙 마돈나가 모셔져 있는 폴란드의 야스나 고라입니다. 연간 순례자 수가 500만을 넘는답니다. 그 다음이 메쥬고리예로 450만에 이르고 있지요. 그 다음이 루르드로 300만 정도입니다.

 

야스나 고라가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입니다.

교황이 되신 후에 이곳 야스나 고라를 참배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폴란드의 아들을 베드로좌로 부르신 사실은 이 성지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곳은 큰 희망의 땅이며, 나는 이 성상 앞에서 수 없이 기도하곤 하였습니다."(1979년 6월 4일).
 
  야스나 고라의 바오로 은수자회 수도원에 있는 블랙 마돈나로 알려진 성모 성화는 많은 전설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전설이며 이 성화가 폴란드 국민들의 성모님을 넘어서서 모든 가톨릭 신자들의 공경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성 요셉이 성 가정을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식탁 위에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성화를 조사해본 결과, 5세기 내지 8세기의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이 성화는 신비스런 여행 끝에 이곳에 모셔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팔레스티나에 모셔져 있다가 비잔티움으로 옮겨졌고, 그다음은 헝가리로 갔다가 루테니아로 갔고, 마지막에는 베츠성(城)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역사적인 기록으로는 폴란드의 라디슬라오 오플치크 왕자가 전리품으로 이 성화를 획득하여 체스토코바로 옮겨온 뒤, 1384년에 성 바오로 수도원의 수사들에게 넘겨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430년에는 약탈자들이 침입하여 많은 손상을 입혔는데, 국왕 라디슬라오 야기엘로가 아우그스부르그 궁중 미술가를 불러 복원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미술가는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 시킨 것이 아니라, 비쟌시움과 서방 양식을 혼합하였습니다.
  체스토코바의 마돈나는 "호디지트리아"로 알려진 동정 성모님의 모습인데, 이 말은 성모 마리아가 당신 왼팔에 안고 있는 거룩한 예수 아기를 오른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이 성화의 신비스러운 모습과 극적인 전설과 실제로 알려진 내용의 역사를 통해 대중적인 공경을 불러일으키고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그치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1402년에 일어난 첫 번째 기적 때문에, 이 성모상은 "병자의 구원" "자비의 어머니" 그리고 "폴란드의 여왕"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1957년까지 대략 1,500회 이상의 기적 이야기가 보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 마치 루르드처럼 치유를 받고 목발을 버리고 간 수많은 목발들이 성당 벽면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1655년, 야스나 고라의 수도자들이 스웨덴의 침략을 기도로써 물리친 다음부터 순례자들이 수없이 몰려왔고, 성모님의 발현으로 적을 격퇴하였음에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폴란드 의회는 이 축일을 수도자에게 감사드리는 날로 선포하였고, 1764년에는 폴란드가 성모 마리아께 은혜 입은 것을 영원히 갚아야 할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18세기에는 폴란드가 독립을 잃게 되었는데, 이때 성모님은 모든 항쟁의 수호자가 되셨고, 민중들은 마리아를 해방과 국가 통치권의 수호자로 열렬히 모셨습니다. 그러므로 침략자인 러시아는 순례를 금지시키고, 이 성상을 제거하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이 때, 그들을 비웃는 희화를 비롯하여 성모님께 더욱 매달리기를 호소하는 책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또 체스토코바의 성모 성당이 최초로 건립되었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폴란드가 자유를 잃게 되자, 야스나 고라 수도원은 폴란드 애국주의의 중심이 되었으며,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국민들이 나치에 항거하며 이 수도원까지 행진하여 그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모님과 성당은 폴란드 국민의 힘이지요. 이리하여 폴란드는 천주의 성모님께 봉헌되었는데, 폴란드의 신앙은 체스토코바의 성모 손에 달렸다고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폴란드 국민들에게 야스나 고라 수도원은 그들의 영적 고향으로 누구나 찾아가기를 원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79년 6월에 순례하신 다음부터는 세계 도처에서 순례자들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폴란드인들의 성지가 아닌 참배 순례자 수로 세계 두 번째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고 요한 바오로 2세는 체스토코바의 성모 신심은 자신뿐만 아니라 폴란드 전 국민의 심중에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전체 교회에 대한 감도와 신앙의 표상이 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고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야스나 고라에 대해 말씀하신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야스나 고라의 성모는 모든 영혼들에게, 모든 가정에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모성적 사랑을 알려 주십니다"

  (1979년 6월 4일).

 

   "체스토코바는 교회 안에 성모님이 임재하심을 알리는 상징입니다. 천상 어머니께서 분명히 여기 이 자리에 계십니다. 어머니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십니다. 마리아는 만인을 위해 그리고 당신을 뵈오려 순례의 길을 찾아든 모든 이와 함께 계십니다……."(1979년 6월 4일).

 

"흰옷을 입고 계시는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나는 다시금 당신의 모성적 사랑과 배려 앞에 나 자신을 바치나이다. 나는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당신께 전 교회를 -세상이 마칠 때까지- 봉헌하나이다! 든 인류를 어머니께 봉헌하나이다!

나의 모든 형제자매들과 전 인류를, 모든 나라를 어머니께 바칩니다.

어머니여, 우리를 받아주소서! 어머니시여, 우리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어머니여, 우리를 인도하소서!  (1976년 6월 4일).

 

 

[출처] 블랙 마돈나- 체스토코바의 성모님-류해욱신부-|작성자 진주

 
성 요한바오로 2세 교황성하께서 바티칸의 개인경당에 이 성화를 똑같이 모사한 블랙마돈나성화를 모셔놓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어릴적부터 죽는날까지 함께 하신 교황님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님께서 스테파노 곱비신부님을 통해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은 내가 직접 길러온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었습니다.

 

 

성모화는 예수님의 성가정에서 사용하던 사이프리스 나무로 만든 탁자의 윗면에 성인 루카가 그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성인의 요청에 의하여 성모님은 의자에 앉으셔서 모델이 되셨다고 전해지는데, 완성된 초상화를 보시고 매우 흡족하시어 “나의 은총이 이것과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 초상화의 기적적인 역사는 이렇게 해서 시작된다.

 

1655년에 수도원은 막강한 스웨덴 군대의 침공을 물리치고, 1683년에는 터키군대, 그리고 1920년에는 구소련의 볼쉐비키 군대의 침공을 물리치게 된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첸스토호바(Czestochowa)의 성모님은 폴란드의 여왕 (Queen of Poland)으로 등극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격동기를 거치는 동안 초상화는 오염과 훼손을 당하게 된다. 1430년에 후스(Huss: 보헤미아의 종교개혁자)의 추종자들이 수도원을 약탈하여 야스나 구라의 모든 보물들을 마차에 싣고 가려고 하였으나, 초상화가 실린 마차를 끄는 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후스의 추종자들이 초상화를 마차 밖으로 버리자 비로소 말들이 마차를 끌기 시작하였다. 초상화를 뒤덮고 있던 보석들과 금을 본 약탈자 중의 한사람이 검으로 초상화를 내리쳤는데, 성모님의 오른쪽 얼굴을 두 번 찌르고 세 번째 찌르려하는 순간 그는 넘어져서 죽고 말았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예술가들에 의해서 여러 차례 상처의 복구가 시도되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복구를 시도할 때마다 매번 얼굴의 상처는 다시 드러나곤 하였는데, 이것은 성모님의 성지(聖址 ; Her Shrine)를 오염시키려는 자들에 대한 경고로서 상처가 그 자리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성모님의 뜻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초상화의 성모님의 얼굴과 손 색깔이 어둡게 변했기 때문에, "검은 마돈나(the Black Madonna)"라는 애칭으로 불리워 오고 있다. 이 칭호는 "나는 검지만, 아름답다,"라는 아가(雅歌)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준다.  초상화의 색깔이 검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었겠지만, 오랜 세월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 초상화는 위험들을 피하기 위하여 여러 장소들에서 보관되어 왔는데, 그 장소들은 예술품을 보관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곳들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초상화 앞에서 봉헌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촛불들로 인한 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수없이 여러 번 함부로 다루어졌다.

초상화의 크기는 높이가 19 인치(48 cm), 넓이가 13인치(33 cm)이며, 두께가 반 인치(1.25 cm)이다.  초상화의 뒷면에 부착된 천에는 초상화의 역사와 성모님께서 개입하셔서 행하신 기적들 중 몇 가지를 설명하는 광경들이 묘사되어 있다.

 

 

제대 뒤와 성당 곳곳에 치유받은 사람들의 목발과 봉헌의 의미를 담은 묵주가 수 없이 많이 걸려 있다.

1402년 첫번째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 1957년까지 1500회 이상 보고되었다고 한다.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swisssophia/110073834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