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III. 공생활 둘째 해
48. 다리케아에서 다볼산을 향하여. 두 번째 과월절 여행
예수께서는 “이리 돌아오지 않겠다.” 고 말씀하시며 배들을 보내시고, 사도들의 앞장을 서시어 건너편에서 볼 때에는 기름진 땅 같이 보이던 지역을 건너질러 남남서쪽으로 보이는 산을 향하여 가신다.
사도들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황량한 이 지방으로 해서 여행하는 것이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길에는 골풀이 깔려 있어 발에 달라붙고, 갈래들이 우거져 있어 잎에 남아 있던 이슬이 비처럼 머리에 쏟아지고, 나무혹들이 그 단단히 마른 덩어리로 얼굴을 때리고, 흐느적거리는 수양버들 가지들이 사방에 늘어져 간지르며, 단단한 땅에 난 것같이 보이지만 반대로 발이 빠지는 물구덩이를 가리고 있는 음흉한 풀무더기들은 갈퀴덩굴이 얼키고 설킨 것에 지나지 않으며, 어떻게나 빽빽하게 났는지 그것들이 태어난 원소를 가길 지경이다. 사도들은 서로 눈으로만 이야기하면서 말없이 걸어간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수없이 많은 여러가지 빛깔로 장식된 그 초목과 그 모든 꽃 가운데에서 놀라우리 만큼 행복하신 것 같다. 꽃들 중에는 땅에 깔려 있는 것도 있고, 꼿꼿하게 서 있는 것도 있고, 올라가려고 달라붙는 것도 있고, 아주 엷은 연보라색의 가벼운 메꽃이 군데군데 박힌 예쁜 꽃줄을 늘어 놓은 것도 있으며, 넓고 편편한 수련(睡蓮)잎들 가운데 희거나 분홍이거나 파란 완전한 모양의 꽃부리를 벌리고 있는 습지의 물망초 수천 송이로 예쁜 파란빛 양탄자를 이룬 것들도 있다. 예수께서는 보드랍고 이슬이 진주같이 맺힌 습지의 갈대의 깃털 장식들을 감상하시고, 에머랄드 빛깔의 베일로 물을 덮고 있는 뚝새풀의 섬세함을 살펴보시려고 넋을 잃고 몸을 구부리신다. 예수께서는 새들이 짓는 둥지들 앞에서 황홀해서 걸음을 멈추신다. 새들은 트레몰로로 멋을 부리며 기쁘게 왔다갔다 하고, 포롱포롱 날고, 부리에는 건초 부스러기나 갈대에서 뜯은 털이나 이동하는 양떼들에게서 울타리에 걸려 빠진 양털 뭉치 따위를 잔뜩 물고 명랑하게 서두르며 집을 짓는다. …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분인 것 같이 보인다. 악의와 거짓과 고통과 계략이 가득 찬 세상은 어디 있느냐? 세상은 모든 것이 향기롭고 빛나고 웃고 노래하는 파랗고 꽃이 핀 저 푸르름의 오아시스 저쪽에 있다. 여기는 아버지께서 창조하시고 사람이 더럽히지 않은 땅이며, 여기서는 사람을 잊어버릴 수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호의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신다. 마음들은 그 많은 적의로 피로하고 격앙하였다. 그들은 그 적의를 침묵으로 사물들에 향하게 하고 선생님에게까지도 향하게 하는데, 그 침묵은 꼭 소나기가 오기 전에 바람 한 점 없는 것과 같다. 다만 사촌 야고보와 열성당원과 요한만이 예수의 관심을 끄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적의를 품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 그저 방심한 채로 있다. 어쩌면 수다를 떨지 않기 위하여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속으로는 말을 할 것이 틀림없고, 해도 너무 많이 할 것이 틀림없다.
은빛나는 작은 물고기를 가지고 암컷에게로 날아오는 살아 있는 보석같은 비둘기를 보고 지르는 더 생생한 감탄이 마침 그들의 말문을 열어놓는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니 이보다 더 예쁜 것이 있을 수 있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한다. “더 예쁜 건 아마 없을지 모릅니다. … 그렇지만 정말이지 배가 더 편리합니다. 여기도 물이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쾌적하지는 못합니다 ….”
“저는 이 … 정원보다는 – 선생님이 이 곳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든다면요. – 이 정원보다는 대상들이 다니는 길이 더 좋겠습니다. 그래서 시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대상들이 다니는 길은 너희들이 원치 않았다.”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아! 물론입니다. … 하지만 저는 게라센 사람들에게 양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그 곳은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 건너 편으로 길을 계속해서 가다 라와 펠라로 해서 계속 내려갔을 것입니다.”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투덜거린다.
그의 친한 친구 필립보가 말을 맺는다. “결국 길은 사람의 것이니까 우리도 그리고 지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아, 이 사람들아! 나는 몹시 괴롭고, 몹시 혐오감을 느낀다. … 너희들의 비속함으로 내 마음 고통을 더하게 하지 말아라. 미움을 모르는 물건들에서 위안을 좀 구하게 내버려다오 ….”
이 나무람이 예수의 조용한 슬픔으로 사도들을 감동시킨다.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희들은 선생님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선생님은 거룩하시고 또 마음의 눈으로 보시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저희들은 보잘 것 없는 육체들이라 이 육체의 말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낙원에 있다 해도 선생님이 안 계시면 쓸쓸하리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나 선생님을 모시고 있으면 … 아이고! 마음으로 볼 때에는 항상 아름답습니다. 말을 안 듣는 것은 몸뚱이입니다.” 하고 여럿이 중얼거린다.
“여기서 나가서, 덜 시원하긴 해도 더 편리한 땅을 찾기로 하자.” 하고 예수께서 약속하신다.
“정확히 어디로 갑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과월절을 갖다 주러 간다. 나는 얼마 전부터 그렇게 하기를 원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갈릴래아로 돌아가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우리가 택하지 않은 길로 해서 갈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이제는 요나의 가엾은 친구들에게 축복하러 가겠다.
“그렇지만 그러면 우리가 시간을 허비하게 되겠는데요! 과월절이 임박했거든요!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항상 늦어지게 되는 걸요.” 또 다른 푸념의 합창이 하늘로 올라간다.
예수께서 어떻게 그렇게 참을성이 많은지 모르겠다 ….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비난의 말을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제발 나를 방해하지 말아라!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야 하는 내 필요를 이해하여라. 나는 세상에서 사랑하고 하느님의 뜻을 행한다는 이 위안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그리로 갑니까? 나자렛에서 가는 것이 형편이 더 좋지 않았겠습니까?”
“만일 내가 그 제안을 했더라면 너희가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이 근처에서는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 ….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무서워하는 … 너희들을 위해 하는 것이다.”
“무서워하다니요? 아! 아닙니다! 저희는 선생님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너희들을 시험하지 마십사고 주님께 기도하여라. 나는 너희들이 싸우기를 좋아하고 앙심을 잘 먹으며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이웃을 모욕하는 괴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 모든 것은 안다. 그러나 너희가 용감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 같으면 나 혼자서라도 보통 길로 해서 갔을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를 불쌍히 여기고 어머니께 순종도 한다. 그렇다, 이것도 있다. 그러나 나는 바리사이파 사람 시몬에게 모욕을 주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무도 모욕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모욕할 것이다.”
“그럼 여기서 어디로 해서 갑니까? 저는 이 지방을 알지 못합니다.” 하고 토마가 말한다.
“다볼산으로 간다. 다볼산을 부분적으로 끼고 엔도르 근처를 지나 나임으로 간다. 거기서는 에스드렐론 평화로 가고. 겁내지 말아라! … 도라의 아들 도라와 죠가나는 벌써 예루살렘에 가 있다.”
“오! 얼마나 아름다울까! 산꼭대기 어느 지점에서는 큰 바다, 로마의 바다가 보인다고 하던데요. 그게 정말 몹시 마음에 듭니다! 바다를 보게 데려가시겠지요?” 요한이 그 아름다운 어린 얼굴을 예수께로 돌리고 청한다.
“왜 큰 바다를 보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냐?” 하고 예수께서 그를 쓰다듬으시며 물으신다.
“모르겠습니다. … 그 바다가 커서 끝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 그 바다는 제게 하느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 저희들이 레바논산에 갔을 때 저는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습니다. 저는 요르단강 유역과 우리 작은 바다 말고 다른 곳에는 도무지 가본 일이 없었으니까요. … 그래서 저는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하늘도 그렇게 넓고! 물도 그렇게 많고! 그리고 그 물은 절대로 넘치지 않고요! … 얼마나 희한한 일입니까? 그리고 바다 위에 빛나는 길을 그려놓는 천체를 … 오! 나를 비웃지들 마라! 해의 황금빛 길을 눈이 부시도록 바라다보고, 달의 은빛길을 눈에 그 찬란한 흰 빛만이 남아 있기까지 바라다보았고, 그 길들이 저 멀리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어요. 그 길들이 내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하느님께서는 저 무한히 먼 곳에 계시며, 한 영혼이 하느님께로 가기 위하여는 불같이 뜨거운 길과 순결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오너라. 이 두 길로 저어 오면서 무한 속에 잠겨라. 그러면 무한을 만날 것이다.’ 하고.”
“자넨 시인이로구먼, 요한.” 하고 타대오가 감탄조로 말한다.
“이것이 시인지는 모르겠어.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이 내 마음을 타오르게 한다는 거야.”
“그렇지만 너는 바다를 가이사리아와 프톨레마이스에서도 보았지, 아주 가까이에서. 우리가 바닷가에 있었으니까! 나는 다른 넓은 바다를 보려고 그렇게 먼 길을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겠다. 요컨대 … 우리는 물 위에서 태어난 셈이야 …”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지적한다.
“그리고 불행히 지금도 물 위에 있단 말이야!” 하고 베드로가 부르짖는다. 베드로는 요한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잠깐 방심했다가 눈에 띄지 않는 물구덩이를 보지 못하고 철버덕하고 빠졌었다. … 모두들 웃는데, 베드로가 제일 먼저 웃는다.
그러나 요한은 이렇게 대답한다. “맞아, 그렇지만 높은 데에서 보면 더 아름다워. 더 넓게 더멀리 보여. 그래서 더 높게 더 넓게 생각하게 돼. … 갈망하고 … 꿈꾸고 …” 그러면서 정말 요한은 벌써 꿈을 꾼다. … 그는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의 꿈에 미소를 보낸다. … 젊은 금발인 그의 윤기있고 맑은 피부가 어떻게나 부드러운 살색을 띠는지 아주 엷은 이슬에 젖은 살색 장미꽃과도 같다. 부드러운 살색이 약간 땀에 젖어서 한층 더 장미꽃잎과 비슷하다.
“무엇을 갈망하느냐? 그리고 무슨 꿈을 꾸느냐?” 하고 예수께서 총애하는 제자에게 상냥하게 물으신다. 조용히 잠자면서 말을 하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가만히 물어보는 아버지와 같다. 예수께서 정말 요한의 영혼에게 말씀하신다. 그만큼 사랑 가득한 꿈을 깨우지 않으시려고 질문을 조용히 하신다.
“저는 저 무한한 바다로 가고 싶습니다. …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지방으로 … 거기 가서 선생님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 저는 로마로, 그리이스로, 어둠에 싸여 있는 곳으로 가서 빛을 갖다 주고 …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선생님과 접촉해서 세상의 빛이신 선생님과 일치해서 살게 하기를 갈망하고 또 갈망합니다. … 저는 더 나은 세상을 갈망합니다. … 선생님을 알게 해서, 즉 착함을 만들어내고, 깨끗하게 하고, 용맹하게 하는 사랑을 앎으로써, 그 세상을 한층 더 좋게 만들기를 갈망합니다. 미움을 초월하고 죄와 육신과 정신의 악습을 초월하고 황금을 초월해서 선생님의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모든 것 위에 선생님의 이름과 선생님께 대한 믿음과 선생님의 가르침을 높이는 세상을 만들기를 갈망합니다. … 저 형제들과 같이, 즉 제 형제들과 같이 있고, 하느님의 바다를 통해 빛의 길로 선생님 전하러 가기가 소원입니다. … 마치 전에 선생님이 하늘에서 오실 때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선생님을 모셔온 것과 같이 … 제 꿈은 … 제 꿈은 사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고통 앞에서도 걱정이 없고 …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의 기운을 북돋워 주기 위해 노래하는 어린 아이가 되는 것이고, 미소를 머금고 죽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어린 아이 …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하고 다만 사랑이신 선생님을 향해서 간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가지는 겸손으로 영광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어린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
사도들은 요한이 넋을 잃고 고백하는 동안 숨을 죽였다. … 그들이 있는 곳에 그대로 멈춰 서서, 마치 그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격정을 베일로 가리듯이 눈꺼풀로 눈을 가리고 말하는 제일 나이어린 동료를 바라다보고 있다. 그들은 당신 제자에게서 그렇게도 완전하게 당신 자신의 모습을 다시 만나는 기쁨으로 변모하시는 예수를 쳐다본다.
요한이 약간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을 때 – 그 모습은 나자렛에서 천사의 아륌을 들으실 때의 겸손한 마리아의 우아함을 연상시킨다. – 예수께서는 그의 이마에 입맞춤하시며 말씀하신다. “네가 이 세상의 내 나라의 장래를 꿈꿀 수 있게 우리 바다로 가자.”
“주님 … 그 다음에는 우리가 엔도르에 간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저도 기쁘게 해 주세요. … 그 어린 아이의 생각에 대한 고민을 제가 없앨 수 있게요 ….”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오! 너는 아직 그것을 생각하고 있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아직두요. 저는 선생님의 눈과 동료들의 눈에 가치가 떨어졌다는 느낌입니다. 선생님과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머리를 피곤하게 하는구나! 나는 그 하찮은 일은 이미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었고,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틀림없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네가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 너는 애무만 받아 버릇한 어린 아이다. 그래서 한 아이의 말이 네게는 판사의 선고처럼 보인 것이다. 그러나 네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 말이 아니라, 오히려 네 행동과 하느님의 심판이다. 그러나 네가 전과 같이, 언제나처럼 내게 소중하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말하겠는데, 네게 그 기쁨을 주마. 엔도르에서 무엇을 보고 싶으냐? 그 곳은 바위투성이의 보잘 것 없는 곳인데 …”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 데려가 주십시오.”
“좋다. 그러나 나중에 그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
“이 사람이 바다를 보는 것 때문에 괴로워할 수가 없다면, 저도 엔도르를 보는 것으로 손해를 입을 수는 없습니다.”
“보는 것으로? … 아니다, 그것이 아니고, 네가 보면서 보려고 힘쓰는 그것에 대한 욕망이 네게 해를 끼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기는 간다 ….”
그들은 다볼산 쪽으로 가는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다볼산의 덩어리는 점점 더 가까이 보이는데 땅은 질척질척한 모습이 사라져서 단단해지고 초목이 성기어지며, 키가 더 큰 초목들이나 새로 돋아나는 잎들과 일찍 피는 꽃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산사나무와 가시나무 덤불들이 대신 나타난다.
'그리스도의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 나임에서 과부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다. (0) | 2022.11.04 |
---|---|
49. 엔도르에서. 마녀의 동굴에서. 요한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는 펠릭스의 회개 (0) | 2022.10.29 |
47. 게사센의 마귀들린 사람들 (0) | 2022.10.18 |
46. “불행은 너희들에게 너희가 무가치함을 믿게 하는 데 소용된다.” (0) | 2022.10.14 |
45. 폭풍우가 가라앉다. (0) | 2022.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