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죄 없는 가장 착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 -그리스도의시

Skyblue fiat 2014. 5. 3. 18:4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죄없는 사람들과 성인들이 항상 고통을 당할 것이고, 또 바로 그들이 모든 사람을 위해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제 머리로는 알아듣기 힘듭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그것을 바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듣기 힘듭니다. 그리고 제가 알아듣기 힘드니까 다른 사람들도 알아듣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제게 질문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이번 처음 여행 중에 한 어머니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어린 딸이 착하고 죄가 없었으니까, 그 애가 그렇게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죽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하고. 그래서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빼앗아 가셨으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는 욥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확신을 가지지 못했었고, 그 어머니를 설득하지도 못했습니다.다음번에는 무슨 말을 할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옳은 말이다. 들어봐라. 가장 착한 사람들이 모든 사람을 위해 고통을 당하는 것은 부당한 것같이 보이지만, 매우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시몬아, 말 좀 해봐라. 이 세상은 무엇이냐? 이 세상 전체가 무엇이냐 말이다.”
  “이 세상이요? 먼지와 물, 바위, 초목, 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이루어진 큰 공간, 매우 큰 공간입니다.”

“또 그리고?”


“그리고, 그게 전부입니다….

세상이 사람에게는 벌을 받고 귀양살이를 하는 곳이라는 말을 하라고 그러시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시몬아, 땅이 하나의 제단이다. 엄청나게 큰 제단이다. 땅은 그 창조주께 영속적인 영광을 드리는 제단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땅에는 죄악이 가득 찼다. 그러므로 땅은 그 위에 희생 제물이 타고 있는 영속적인 속죄와 희생의 제단이 되어야 한다. 땅은 우주에 널려 있는 다른 세상들과 같이 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시편을 노래해야 할 것이다. 보아라!”

예수께서 나무로 만든 겉창을 여신다. 그러니까 활짝 열린 창으로 밤의 서늘한 기운과 개울물의 졸졸거리는 소리와 달빛이 들어오고,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이 보인다.

“저 천체들을 보아라! 천체들은 창공의 무한한 공간 안에서 빛과 움직임이라는 그것들의 목소리로 하느님의 찬미를 노래한다. 수천 수만년 전부터 하늘의 파란 들판에서 하느님의 하늘에까지 올라가는 그것들의 노래가 계속된다. 우리는 천체와 유성(遊星), 별들과 살별들을 별의 사제와 성직자, 동정녀 및 신자처럼 끝없는 성전에서 창조주의 찬미를 노래하기로 되어 있는 별인 피조물로 생각할 수 있다.

시몬아, 들어봐라. 나뭇잎들 사이로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 소리와 밤의 고요 속에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하늘과 땅도 바람과 물로, 새들과 짐승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창공으로서는 그것을 가득 채운 천체들의 빛나는 찬미로 넉넉하지만, 땅이라는 성전으로서는 바람과 물과 짐승들의 노래로는 충분하지 않다. 땅에는 무의식적으로 하느님의 찬미를 노래하는 바람과 물과 짐승들만이 있지 않고,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현세와 세상에서는 동물과 광물과 식물과 같이 물질을 가지고 있어 모든 생물 위에 뛰어나는 완전한 피조물이며, 하늘의 천사들과 같이 영을 가지고 있고, 시련을 당하는 중에 충실하면 우선은 은총으로, 그 다음에는 천사들과 같이 천국으로 하느님을 알고 차지하게 되어 있는 완전한 피조물이다.

 

모든 상태를 포함하고 있는 종합체인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명은 그에게 있어서 의미인 외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기쁨이어야 할 것이다. 지혜롭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하느님께 사랑의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심으로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하늘을 주심으로 베풀어 주신 사랑을 하느님께 갚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예배를 드려야 한다.

 시몬아,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께서 피조물에게서 어떤 이익을 얻으시느냐?
무슨 이득을 취하시느냐? 아무 이득도 얻지 않으신다. 피조물은 하느님을 더 크게 하지 못하고, 하느님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고, 하느님을 부유하게 해 드리지 못한다. 하느님은 무한하시다. 피조물이 존재하지 않았어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가지기를 원하셨고, 사랑을 가지기 위하여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피조물에게서 얻으실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며, 천사들과 사람들에 있어서만 지적이고 자유로운 이 사랑이 하느님의 영광이고, 천사들의 기쁨이고, 사람들에게는 종교이다.
 땅의 큰 제단에 사랑의 찬미와 애원이 들리지 않게 되는 날에는 땅이 존재하기를 그치게 될 것이다. 사랑이 깨지고 나면, 속죄도 꺼질 것이고, 하느님의 분노는 지상의 지옥이 되어버렸을 땅을 없애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은 존재하기 위하여는 사랑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라, 땅은 사람들의 지능으로 사랑하고 기도하는 성전이어야 한다.

그러나 성전에는, 어떤 신전에나 어떠한 제물들을 바치느냐? 티 없고 흠없는 깨끗한 제물을 바친다. 그런 제물만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다. 이런 제물과 맏물을 드려야 한다. 가장에게는 제일 좋은 물건을 드려야 하고, 인류의 가족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는 모든 물건의 맏물과 정성된 물건들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땅이 두 가지 제사의 의무, 즉 찬미의 의무와 속죄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세상을 뒤덮고 있는 인류는 최초의 사람들에게서 죄를 지었고, 또 끊임없이 죄를 지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죄에 세속과 육신과 사탄의 목소리에 집착하는 수많은 다른 죄를 덧붙인다.

죄가 있는 인류, 하느님과 비슷하고, 고유한 것으로 지능을 가지고 있고 하느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항상 죄를 짓고 점점 더 짓는 죄있는 인류이다. 천체들이 복종하고 초목들이 복종하고, 동물들도 복종하며, 그것들이 아는 대로 주님을 찬미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넉넉히 순종하지 않고 주님을 넉넉히 찬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사랑하고 속죄하는 제물이 되는 영혼들이 필요한 것이다.
죄없고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죄지을 줄밖에 모르는 사람들 대신으로 쓰라린 고통의 벌을 받고, 성인들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자발적으로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이제 얼마 안 있어 ― 1년이나 1세기도 영원에 비하면 언제나 ‘얼마 안 되는 것’이다. ― 땅의 큰 성전의 제단에는 완전한 제물과 더불어 제물이 되어 끊임없는 제사로 불살라질 사람인 희생의 번제물(燔祭物)이 아닌 다른 번제물을 바치지 않게 될 것이다.

시몬아, 당황하지 말아라. 나는 몰로크(사람을 제물로 바쳤다는 카나니아의 신)와 바알(서부 셈족에서 섬기던 신)과 아스타르테(바빌로니아 신화에 나오는 여신)에 대한 예배와 같은 예배를 세우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자신이 우리를 제물로 바칠 것이다. 알아듣겠느냐? 우리를 제물로 바칠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람 대신으로 속죄하고 사랑하기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향해 갈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사랑이 영속적인 제사에서 큰 제물과 더불어 불살라버릴 깨끗한 제물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그 제물들이 장차 올 때와 미래의 성전의 제물들이 될 것이다. 어린 양과 숫염소, 송아지와 비둘기 말고, 마음의 제물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다.  다윗이 거기 대한 직관을 가졌었다. 새로운 시대, 영과 사랑의 시대에는 다만 이 제물만이 기분 좋은 제물일 것이다.

 시몬아, 하느님이 큰 죄와 사람들의 수많은 죄로 인한 하느님의 정의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육체를 취해야 했으니, 진리의 시대에는 사람들의 정신의 제물만이 주님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그분께서 짐승의 새끼들과 초목의 열매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주셨나?’ 하고 너는 생각하지. 내가 말해주마. 그것은 내가 오기 전에는 사람이 더렵혀진 번제물이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사랑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랑이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랑을 알게 될 은총을 돌려주겠기 때문에 사랑을 알 사람이 혼수상태에서 나와 기억을 하고 이해하고 살 것이고, 그의 선생이요 구속자인 나를 본받기 위하여 사랑과 속죄의 희생이 되어 염소와 어린 양들을 대신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벌이었던 고통이 완전한 사랑으로 변할 것이고, 완전한 사랑으로 고통을 고르는 사람들은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들은….”

“아직 자기를 바칠 줄 모르는 사람들 말이지…. 그런데 하느님께서 언제 그들 안에서 말씀하시는지 아느냐?
하느님의 언어는 영적인 언어이다. 영혼이 그 언어를 이해하는 데, 영혼은 나이가 없다.
더 나아가 어린이의 영혼은 악의가 없기 때문에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에는 죄있는 늙은이의 영혼보다 더 어른스럽다고까지 말하겠다. 시몬아, 네게 분명히 말한다만, 너는 많은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너 자신에게도 영웅적인 사랑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을 볼 만큼 오래 살 것이다.
그러나 자연사로 죽는 저 어린이들 안에서는 내가 네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고상한 사랑의 이유로 하느님께서 직접 작용하셔서, 그들을 생명의 책에, 하늘나라에서 지극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만이 읽을 책에 쓰여진 지혜들 속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하느님뿐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까지도 알기 위하여는 하느님을 쳐다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시몬아, 우리는 달이 지게까지 했구나…. 새벽이 되어 가는데 너는 자지를 못했구나….”

"상관없습니다. 선생님. 저는 잠 몇 시간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지혜를 얻었고, 또 선생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허락하시면 이제 가겠습니다. 자려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검토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는 벌써 문께로 가서 나가려고 하다가 생각을 하면서 발을 멈추더니 말한다.

 

“또 한가지 있습니다. 선생님.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고통은 벌이 아니라 하나의…은총이라고, 우리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고, 힘들더라도 아름다운 것이고,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진저리나고 우울한 것으로 보일 수 있어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제가 말하는 것이 옳습니까?”

“시몬아, 그렇게 말해도 된다. 그것은 진리이다.

고통은 그것을 받아들여서 정당하게 쓸 줄 알 때에는 벌이 아니다.
시몬아, 고통은 사제직과 같은 것이다.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사제직이다.

하느님의 마음에 대해서 큰 능력을 주는 사제직, 또 큰 공로를 주는 사제직이다. 죄와 함께 생겨난 이 사제직은 정의를 가라앉힐 줄 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증오가 고통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낸 것까지도 선에 소용되게 할 줄을 아신다. 나는 죄를 없애기 위하여 다른 방법을 원치 않았다. 이보다 더 훌륭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8권 p212-217」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