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복녀 키아라 루체 바다노

Skyblue fiat 2017. 2. 20. 08:22

  

 

“이 순간 내게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심장을 가지고 있고,

그로써 저는 언제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 복녀 키아라 루체 바다노 (1971-1990)


출처: Cassie Pease's Facebook

 

 

복녀 키아라 루체 바다노(Chiara Badano)는 1971 년에 이탈리아 사세노에서 태어나, 1990 년에 골육종이라는 암으로 사망하기까지 열 여덟 해 짧은 생을 살았지만,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영웅적인 성덕으로 살았습니다.  9 세 때에 포콜라레 운동에 입문하여 포콜라레 운동의 창시자 키아라 루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합니다.  16 세 때 '골육종'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했으나 오히려 그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밝은 모습으로 힘과 용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투병 생활중 키아라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그분의 십자가상의 수난을 나누고자 하는 원의와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자에서 진통제인 모르핀 투약을 거부했습니다: 

 

 

“It reduces my lucidity and there’s only one thing I can do now: to offer my suffering to Jesus because I want to share as much as possible in his sufferings on the cross."

 

그것[모르핀]은 저의 의식의 명료함을 감소시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저의 고통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을 가능한 많이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입원했던 투린의 병원 의사 안토니오 델로구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Through her smile, and through her eyes full of light, she showed us that death doesn’t exist; only life exists."

 

그녀의 미소를 통해서, 그리고 빛으로 가득한 그녀의 눈을 통해서, 그녀는 우리에게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오직 생명만 존재합니다.

 

그녀를 문병온 포콜라레 운동 친구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At first we thought we’d visit her to keep her spirits up, but very soon we understood that, in fact, we were the ones who needed her. Her life was like a magnet drawing us to her.

 

처음에 우리는 그녀의 사기를 붇돋아 주려고 병문안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곧 우리가 그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우리를 이끌어 들이는 자석과도 같았습니다.

 

Cardinal Saldarini heard about Chiara’s illness and visited her at the hospital. He asked her, “The light in your eyes is splendid. Where does it come from?” Chiara simply replied, “I try to love Jesus as much as I can."

 

또한 살다리니 추기경께서 키아라의 병을 전해 들으시고 병원을 방문하셨는데 키아라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의 눈빛이 아주 반짝이는구나.  어디에서 그런 빛이 온 거니?  키아라는 단순히 답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가능한 많이 사랑하려 노력합니다.

 

항암치료가 실패했음에도 복녀 키아라 루체 바다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If I had to choose between walking again and going to heaven, I wouldn’t hesitate. I would choose heaven."

 

내가 만일 다시 걸을 수 있는 것과 하늘나라에 가는 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하늘나라를 택할 것입니다.

 

1989년 출혈로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 복녀 키아라 루체바다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Don’t shed any tears for me. I’m going to Jesus. At my funeral, I don’t want people crying, but singing with all their hearts."

저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아 주세요.  저는 예수님께로 갑니다.  저의 장례식에서 저는 사람들이 울기를 원치 않고 마음을 다하여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복녀 키아라 루체 바다노는 2010 년 9월 25일 시복되었고 축일은 10월 29일입니다.

 

 〔사진〕복녀 키아라 루체 바다노의 어릴 적 모습들

 

 

 

[사진] 16세 때 ‘골육종’이라는 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일 때 모습들. 항암치료로 머리가 한 줌씩 빠지기 시작했을 때, 키아라는 “예수님, 당신을 위해서에요.”라 말하며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겨 드렸습니다.

 

 

 

 

[사진] 2년간의 암투병 후 선종한 복녀 키아라 루체 바다노

 

 

 

- 출처 : 일석 (peace_2000)

http://blog.naver.com/peace_2000/22007948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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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아라 루체 바다노(Chiara Luce Badano, 1971-1990, 키아라 루스 베이든)'는 1971년 10월 29일 이탈리아 사셀로(Sassello)에서 신심깊은 부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구약의 선지자 '사무엘' 처럼 부모님의 기도로 얻은 딸이었다. 그래서인지 '키아라'는 9세 때 '젠(Gen, 새 청소년 운동)'이라는 일종의 청소년 신심단체에 입단하게되었고, 그 단체에서의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예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게 만들었다.

1985년에 사보나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키아라'는 오늘날 모든 청소년들이 겪는 세상 속에서의 고민과 맞서 싸워야했다. 또래 집단의 은어 역할을 하는 욕설을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으며, TV에서 방영하는 유익하지 못한 영화의 유혹을 받아야 했고, 그녀는 그런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장에 주변의 친구들도 그런 유행을 거슬러 가기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을 적어놓기도 했다.

그녀는 보통 사춘기 청소년들처럼, 친구와 다투기도 하고 그로인해 우정에 금이가기도 했으며, 그런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키아라'는 예수님 앞에 달려가 자신의 모든 고통을 털어놓았다. "주님, 이것은 저에게 가장 커다란 고통이예요. 이 고통마저 주님께 즉시 드리지 못했어요. 마음의 평화를 찾는데 시간이 필요해요. 그 모든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키아라'의 친구는 이 당시의 그녀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키아라'가 비록 겉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자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신앙을 사람들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의 '키아라 루체'

 

그러나 '키아라'는 예전의 생기발랄함을 잃어가고 있었다. 눈에 띠게 자주 피로를 호소하는가 하면,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기도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운동인 테니스를 칠 때도 어깨통증을 호소하며 라켓을 떨어뜨리거나 쓰러지기도 했다. 1989년 2월 그녀는 골수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받기 전에 그녀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만일 내가 죽으면 아름다운 미사를 봉헌해 주세요" 수술후 항암제 투여로 인한 고통이 몰려올 때 그녀는 "나는 아직 어려. 아직 할일이 더 있어." 라고 생각하면서 건강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의사들은 회의적이었다. 약물과 방사선 치료로 그녀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모두 잃었을 때 '키아라'는 이렇게 기도했다. "예수님 당신을 위해서 바칩니다." 그녀가 "이 고통을 십자가에서 저를 구원하신 당신께 바칩니다."라고 기도하는 도중에 이미 주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 큰 팔로 그녀를 안으시고 위로해주셨으리라.

 

 


병상에 누운 '키아라 루체'

 

육신의 고통의 강도는 점점 커졌으나 '키아라'는 그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그녀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순간을 잘 산다면 모든 것은 의미가 있다. 만약 그 끔찍한 고통의 순간을 예수님께 선물로 드린다면, 이 끔찍한 순간까지도...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그냥 흘러보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한 의미있는 선물로 바친다면 고통은 그냥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친구에게 했던 말도 같았다.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너는 상상할 수 없을 거야. 하느님께서 나를 더 자주, 더 가까이, 더 큰 무엇에로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져. ...밤은 끔찍하지만 나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나의 모든 고통을 예수님께 선물했어." '키아라'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진통제의 투여도 마다했다.

마지막 순간이 되자 '키아라'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천국으로 갈 거야.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아프지않고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거야. 안녕 엄마. 나는 행복하니까 엄마도 행복해야돼." 1990년 10월 7일, 만 19세 생일을 3주 남겨놓고 그녀는 하늘 고향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친구이자 신랑이신 예수님이 계신 그곳으로...

 


'키아라'는 2010년 10월 25일 교회의 복자(복녀)로 시복되었다
 

http://blog.naver.com/holyserv/140133695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