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의 오늘

2016년 11월 19일 "이제는 존재하기만 하는 것을 그만두고 ‘살기를’ 시작하시오. "

Skyblue fiat 2016. 11. 19. 07:59

 

2016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19 토 (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11월 20일부터 11월 26일까지는 성경의 생활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성서 주간이다.

 

 

 

입당송 시편 48(47),10-11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주님의 두 증인이 죽었다가 사흘 반이 지나 하느님의 숨을 받아 일어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제1독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후사가 없이 죽은 일곱 형제 이야기를 들자 예수님께서는 저세상에서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 두 예언자는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1,4-12
나 요한에게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여기 나의 두 증인이 있다.” 4 그들은 땅의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입니다. 5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립니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원할 때마다 온갖 재앙으로 이 땅을 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7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서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8 그들의 주검은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내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9 모든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들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무덤에 묻히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10 땅의 주민들은 죽은 그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 두 예언자가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들을 쳐다본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2 그 두 예언자는 하늘에서부터, “이리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4(143),1.2.9-10(◎ 1ㄱ)
◎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내 손가락에 싸움을, 내 손에 전쟁을 가르치셨네. ◎
○ 그분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성채,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민족들을 내 밑에 굴복시키셨네. ◎
○ 하느님, 당신께 새로운 노래 부르오리다.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당신은 임금들을 구원하시고, 당신 종 다윗을 구하시나이다. ◎

 

복음 환호송 2티모 1,10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 기도
주님, 주님께 바치는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날마다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9 참조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가득히 받고 비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우리는 오감을 통해서 세상을 체험하고 터득해 갑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져서 체험한 것들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지만, 그 체험을 넘어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우리 인간들은 동물들과 달라서,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이라도 독서나 학습 등의 간접 체험을 통해서 익혀 나가고, 이 간접 체험은 우리 삶의 질적 차원을 완전히 상승시켜 놓았습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은 초월의 세계를 받아들입니다. 독서와 학습을 통해서는 세상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신앙을 통해서는 부활과 하느님의 나라라는 초월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늘 나라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간접 체험을 통한 삶의 질적 상승과는 비교될 수 없는, 엄청난 차원의 새 삶의 지평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몇 사람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들의 질문은 역시 이 현세의 삶의 지평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면, 짝을 만나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는데, 이 복잡한 인연의 고리가 저세상에서 어떻게 정리될 수 있는지를 예수님께 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 안에서 만나는 하느님의 나라는 삶과 죽음, 인연과 악연 등의 고통이 없는 온전한 기쁨의 세계입니다. 단순히 지상의 삶을 연장시키는 것은 그리 큰 감동이 될 수 없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되는 삶, 그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초대받은 하느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사람은 생명과 죽음을 고찰할 때와 이 두 가지 용어를 적용할 때에 잘못 생각합니다.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먹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때를 생명이라 부르고, 숨쉬고 먹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일하지 못하게 되어 차고 감각이 없는 유해가 되어서 무덤 속으로 돌아갈 차비가 되어 있는 때를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생명을 이해하게 하고 생명 적합한 행위를 알려주고자 합니다.

 

 

생명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존재가 생명은 아닙니다. 이 기둥에 달라붙어 있는 포도나무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생명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멀리 있는 저 나무에 매어져서 매애매애 하고 울고 있는 저 양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생명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내가 말하는 생명은 어머니의 태중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 생명은 하느님께 창조되어 육체 안에 살도록 만들어진 영혼으로 하느님의 생각 안에 태어날 때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죄가 그것을 죽일 때 끝나게 됩니다.

 

 

처음에 사람은 발육하는 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씨는 밀이나 실과의 씨가 그런것처럼 부질이나 골수가 아니라 살로 된 씨입니다. 맨 처음에는 그것이 지금 이 양의 태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와 다를 바 없는 동물의 태아로 형성되는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임신된 인간 안에 형체가 없는, 그러면서도 인간을 높여 주는 무형 속에서 오히려 더 강력한 그 부분이 스며들어오는 때부터는, 그 동물적 태아가 그의 심장의 박동과 더불어 존재할 뿐 아니라 창조하시는 생각에 따라살고하느님의 모습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이 되고, 하늘나라의 미래의 시민인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되어야 이렇게 됩니다. 사람이 인간의 형체는 그대로 가지고 존재는 하되, 이미 사람이 아니라 생명이 분해되는 무덤이 되어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은 존재와 더불어 시작되지 않고, 육체와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생명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됩니다. 그런 다음 생명은 끝이 없습니다. 영혼은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천상의 것이기로 되어 있는 그의 운명에는 죽지만, 그의 벌을 받기 위하여는 살아남습니다. 생명은 은총에 죽을 때에 이 축복받은 운명에 죽습니다. 그의 운명에 대한 죽음이라는 회저(壞疽)에 걸린 그 생명은 영원한 세월을 두고 영벌과 고통 속에서 연장됩니다.

이와 반대로 창조된 그대로 보존된 생명은 그의 창조주와 같이 영원하고 완전하고 지극히 행복하게 되어서 완전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생명에 대하여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어떤 것이든지 정성들여 쓰고 보존해야 합니다. 그것을 주시는 하느님만큼이나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왕의 선물을 마구 쓰겠습니까? 아니지요. 왕의 선물은 집안의 영광으로 대대로 물려 줍니다. 그렇다면 왜 하느님의 선물은 냉대를 합니까? 그러나 하느님의 이 선물을 어떻게 쓰고 또 보존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천국의 꽃 같은 이 영혼의 꽃을 생생하게 가꾸어 하늘에 옮겨 심을 수 있도록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늘을 위하여, 그리고 존재를 넘어서살게됩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명백한 계율들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이스라엘이 계율들을 지키기 위하여는 그에게 모범과 말을 주는 예언자들과 의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는 성인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잘못 생각할 수도 없고, 또 잘못 생각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마음 속에 있는 결점들과 사방에서 불어나는 죽은 정신들을 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회개하고, 여러분의 영혼의 문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이시오. 변함없는 율법을 지키고, 여러분 안에서 쇠약해져서 지쳐빠진 ‘생명을 튼튼하게 하시오. 그리고 만일 그 생명이 벌써 죽었으면 참 생명이신 하느님께로 오시오. 여러분의 죄를 한탄하고,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으시오. 그러나 다시 일어나시오. 내일 영원한 고통에 넘겨지지 않도록 산송장이 되지 마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생명을 다시 찾거나 보존하는 방법에 대한 것 말고 다른 말은 안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음란한 부정한 불과 여러분의 죄의 진흙을 없애서 깨끗하게 하시오.’하고.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함께 율법을 공부합시다. 율법에서 참 하느님의 온정 넘치는 목소리를 다시 들읍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마음에 내려오기 바랍니다.하고 영원하신 분께 함께 기도합시다, 하고 말입니다.


지금은 우중한 겨울입니다. 그러나 멀지 않아 봄은 올 것입니다. 죽은 영은 결냉으로 인해서 잎이 떨어진 수풀보다도 더 초라합니다. 그러나 겸손과 의지와 회개와 믿음이 여러분 안에 스며들어가면, 봄이 되면 숲이 그렇게 되는 것과 같이 생명이 여러분에게 돌아와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위하여 활짝 피어나고 그 다음에는, 영원무궁세의 내일에 참 생명의 영원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생명에게로 오시오. 이제는 존재하기만 하는 것을 그만두고살기를시작하시오. 그렇게 되면 죽음은이 아니라 시작일 것입니다. 황혼이 보이는 하루의 시작, 권태도 없고 한도도 없는 기쁨의 시작일 것입니다. 죽음은 육체 이전부터 살고 있는 것의 승리일 것이고, 내가 참 하느님의 이름으로 약속하는 그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을 육체의 승리일 것입니다. 이 생명을 나는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생명원해서하느님의 아들들의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관능과 정욕을 짓밟는 모든 사람에게 약속합니다
.
가보시오. 날마다 이 시간에 영원한 진리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 바랍니다
.”
사람들은 이러쿵 저러쿵 말을 많이 하며 천천히 떠나간다. 예수께서는 외따른 집으로 돌아오신다.

 

 

 

 

 

 

 

 

 

내가 너희들에게 가지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 대한 거룩한 갈망이 아니라,

너희들의 성덕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욕망이다.

또 이것뿐 아니라, 너희들을 온전히 드리라고 내가 말한

그분에게 사랑을 조금 드린 것 때문에

하늘 나라에서 그분의 오른쪽에 앉기를 바랄 만큼

환전상이나 고리대금업자와 같은 탐욕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축복받은 사람이 믿음과 바람, 온순함과 순결, 절제와 힘, 정의와 조심성, 한없는 자비를 가졌고, 그의 마음 속에는 그의 피를 가지고 나의 이름과 나에 대한 믿음을 썼으므로, 그의 안에 있는 나에 대한 사랑과 그의 이름이 하늘에 있으리로다. 오 의인들아, 주 안에서 기뻐 용약하여라. 사람은 모르나 하느님께서는 보시는도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책에 나의 약속들과 너희들의 행적을 써넣으시고, 너희들의 행적들과 더불어 장차 올 세월의 왕자들이며 주의 그리스도와 더불어 승리자가 될 너희들의 이름을 써넣으시는도다.

 

예수께서는 오솔길에 있는 수양버들의 휘기쉬운 가지 하나를 꺾어 가지고 말씀하신다.

보시오. 내 손이 이 가지를 쉽게 휘는 것과 같이 사랑도 당신의 마음을 휘어서 영원한 관을 만들 것입니다.

사랑은 개인의 구세주요.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구속을 시작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그 구속을 완성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