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89.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부모를 공경하여라.”

Skyblue fiat 2021. 10. 21. 12:26

 

예수께서 강가를 천천히 왔다갔다 하신다. 강가의 갈대에 그대로 걸려 있는 음산한 겨울날의 안개를 뚫고 날이 밝아온다. 요르단강 양족 가에는 눈닿는 데까지 아무도 없다. 물 위에 깔려 있는 안개, 갈대에 부딪는 물소리, 최근에 내린 비로 인하여 어지간히 흐린 물이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짝짓기의 계절이 지난 후에 그런 것처럼 짤막하고 슬픈 어떤 새소리가 들려온다. 계절도 그렇고 먹을 것도 없고 해서 새들은 우울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새소리들을 들으시고, 한 작은 새가 시계와 같이 규칙적으로 머리를 북쪽으로 돌리며 “찌르륵?” 하는 소리를 내고, 그 다음에는 남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찌르륵?” 하고 그 울음소리를 되풀이하며 부르는 것에 흥미를 느끼신다. 마침내 작은 새는 건너편 강가에서 들려 오는 “칩” 하는 소리로 대답을 얻은 모양이어서, 조그마하게 기쁜 소리를 내며 날개를 흔들어 강을 건너간다. 예수께서는 “다행이군!”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몸짓을 하시고 나서 다시 걷기 시작하신다.


“선생님, 방해가 됩니까?” 하고 요한이 풀밭 쪽에서 오며 묻는다.
“아니다. 무슨 일이냐?”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려구요. … 이것은 선생님의 마음을 가볍게 해 드릴 수 있는 소식일 것 같아서 즉시 왔습니다. 또 선생님께 조언을 청하기도 하려구요.

제가 방들을 쓸고 있는데 가리옷의 유다가 와서 ‘내가 도와주지’ 하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런 일을 항상 별로 좋아하지 않고, 명령을 해도 기꺼이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저는 놀랐습니다. … 그렇지만 저는 ‘아이고! 고맙네! 그렇게 하면 더 빨리 끝내고 청소가 더 잘 될 거야.’ 하는 이 말밖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쓸기 시작했고, 그래서 저희들은 아내 끝냈습니다. 그때 유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숲에 가세. 나이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해오는데, 그건 좋지 않아. 우리가 가세. 나는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지만 자네가 가르쳐 주면 …’ 그래서 저희들은 숲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다와 같이 나뭇단을 만들고 있는 중에 그 사람이 ‘요한, 자네한테 말하고 싶은 게 한가지 있네.’ 하고 말했습니다.
‘말하게나’ 하고 말하면서 저는 어떤 비난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자네가 제일 젊으니까 우리가 더 화합해 있어야 할거야. 자넨 거의 나를 무서워하다시피 하는데,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자네가 하는 일이 옳기는 하네. 하지만 정말이지. … 나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닐세. 가끔 나는 못되게 굴 필요를 느끼네. 어쩌면 내가 외아들이라 응석받이로 자랐기 때문인지도 몰라. 그런데 나는 착하게 되고 싶어. 나이많은 사람들은 나를 호의적인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아. 예수님의 사촌들은 감정이 상해 있어. … 맞아, 나는 그들에게 대해서 결례한 것이 많아. 그 사람들의 사촌에 대해서도 그랬고. 하지만 자네는 착하고 참을성이 있으니, 나를 사랑해 주게. 내가 자네 형제인 것처럼 해주게. 못됐지만, 그래, 그래도 어떻든간에 사랑해야 하는 형제인 것처럼 말이야. 선생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내가 썩 잘 행동하지 않는 것을 보거든 내게 말해 주게. 그리고 항상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말게. 내가 마을에 갈 때에는 자네도 같이 가세. 내가 나쁜 행동을 하지 않게 도와주게. 어제 나는 많이 괴로웠네. 예수님이 내게 말씀하셨고, 나는 어리석은 원한으로 나 자신도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보지 않았었네. 그런데 어제는 바라보고 깨달았어. … 그 사람들이 예수님이 괴로워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말이야. …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나는 책임이 있다고 느껴. 나는 이제부터는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아. 같이 가세. 가주겠지? 내가 덜 나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겠어?’


유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려 제 가슴은 사내아이에게 붙잡힌 새가슴처럼 뛰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착하게 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제 가슴이 기쁨으로 뛰었고, 선생님 때문에도 기뻐했습니다. 그렇지만 무서워서 가슴이 몹시 뛰기도 했습니다. … 그것은 제가 유다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 유다를 받아 주신 날 말씀하신 것이 머리에 떠올라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응, 자넬 도와주겠어. 그렇지만 만일 내가 다른 명령을 받으면 순종해야 돼 …’ 하고.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선생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면 집에서 멀리 떠나지 않게 명령을 주시게 하겠다 하고 말입니다.”


“이거봐라. 요한아, 너를 가게 내버려두겠다. 그러나 네 정신을 혼란시키는 무엇을 느끼면 내게 와서 말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요한아, 너는 나를 매우 기쁘게 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가지고 저기 온다. 요한아, 가거라.”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몸을 돌리시고 “고기 많이 잡았느냐?” 하고 물으신다.
“흠 별로요, 잔챙이뿐입니다. … 그렇지만 이걸 그럭저럭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어떤 짐승이 밧줄을 끊어서 그물을 하나 잃었다고 투덜댑니다. 저는 ‘그 놈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아? 불쌍한 짐승을 동정하게.’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웃으면서 말한다.


“형제인 어떤 사람에 대해서 내가 하는 말이 그 말이다. 그것을 너희들은 할 줄을 모른다.”
“유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지요.”
유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 사람은 착한 욕망과 비뚤어질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노련한 어부인 네가 말 좀 해다오. 내가 요르단강에서 배를 타고 겐네사렛 호수까지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어! 그것은 엄청난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닥이 평평한 작은 배로는 성공하실 것입니다. …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수심을 재야 하고, 강가와 얕은 곳, 떠다니는 나뭇가지, 물살 따위를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돛이 어떤 경우에는 유익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 그런데 선생님은 강으로 해서 호수를 돌아가시려는 것입니까? 흐름을 거슬러 가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럿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
네가 바로 말했다. 어떤 사람이 악습에 젖어 있으면, 선을 향해 가려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혼자서 성공할 수가 없다. 유다가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는 불쌍하게 혼자 가다가 얕은 데 걸려서 올라앉고, 꼼짝 못하고,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만다. 한편 수심을 재면 동시에 키를 잡거나 노를 젓거나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비난을 하느냐? 너희들은 외부 사람들은 동정하면서 너희들의 동료인 저 사람은 동정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것은 옳지 않다. 저기 요한과 그가 빵과 야채를 사려고 마을로 가는 것이 보이지? 유다는 제발 혼자 가지 않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그가 요한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청한 것은 그가 바보가 아니어서 너희들 나이먹은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요한을 보내셨습니까? 요한도 타락하면 어쩌시려구요?”
“누가? 내 아우가? 그 애가 왜 타락할거야?” 하고 갈대 사이에서 그물을 도로 찾아 가지고 오는 야고보가 묻는다.
“유다가 요한과 같이 가기 때문이야.”
“언제부터?”
“오늘부터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러면,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셨으면 ….”
“그렇다. 나는 모두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너희들은 그 사람을 너무 혼자 내버려둔다. 그에 대해서만 재판관이 되지는 말아라. 그도 다른 많은 사람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그가 가장 귀염 받으며 자랐다. 그것도 어렸을 때부터.”
“예, 맞습니다.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제베대오와 살로메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 있었더라면 지금같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 부모는 착합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에 대해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네가 말하는 것이 옳다. 오늘 나는 바로 거기에 대해서 말하겠다. 이제는 가자. 벌써 풀밭으로 해서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먹을 시간도 기도를 할 시간도 쉴 시간도 없습니다. … 그리고 사람들은 자주 더 많이 오구요.” 하고 베드로가 한편 감탄하고 한편 걱정이 되어서 말한다.
“너는 그것을 불평하느냐? 이것은 아직도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표이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때문에 고통을 겪으십니다. 어제는 선생님이 식사를 걸르기까지 하셨고, 지난 밤에는 선생님의 겉옷 말고 다른 담요는 못 덮으셨지요. 선생님의 어머님이 그걸 아시면!”
“어머니는 내게 그렇게도 많은 신자를 데려다 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실 것이다.”

“그리고 어머님은 여러 가지 부탁을 드린 저를 나무라실 것입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을 맺는다.


필립보와 바르톨로베오가 손짓을 하면서 그들을 향하여 온다. 그들은 예수를 보고 걸음을 재촉하며 말한다. “아이고!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이것 진짜 순례자의 행렬입니다. 병자들도 있고, 우는 사람들도 있고, 멀리서 온 돈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빵을 사자. 부자들이 기부금을 내니, 그것을 쓰기만 하면 된다.”
“해는 짧고, 헛간은 벌써 야숙하는 사람들로 혼잡합니다. 밤은 습기차고 춥습니다.”
필립보야, 네 말이 옳다. 우리는 모두 한 방에 빽빽히 끼여 자기로 하고, 다른 방들은 저녁에 그들의 집에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자.”
“알겠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볼멘 소리를 한다. “얼마 안있어 저희들은 손님들에게 옷을 갈아 입을 허락을 청해야 될 판이군요. 그 사람들이 하도 우리들에게 몰려들어서 우리를 도망치게 만들 것입니다.”

“베드로야, 너는 다른 도망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저 여자는 무슨 일이냐?” 그들이 벌써 마당에 들어왔고, 예수님께서는 울고 있는 여자를 알아보셨다.

 

“모르겠습니다. 저 여자는 벌써 어제도 여기 있었고, 어제도 울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만나넨과 말씀하실 때 선생님께 마주 오려고 하다가 그냥 갔습니다. 저 여자가 다시 온 것을 보면 마을에 머물러 있거나 이 근방에 머물러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병이 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 바랍니다. 아주머니.” 하고 예수께서 옆으로 지나가시며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여자는 조용히 대답한다. “선생님과도 같이 있기 바랍니다.”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적어도 300명은 있다. 헛간에는 불구자들과 소경들과 벙어리들이 있고, 몸을 온통 부들부들 떠는 사람도 있다. 아주 어린 소년인데, 뇌수종에 걸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 남자가 손으로 붙잡고 있다. 그 소년은 얼빠진 모습으로 그저 신음하고 침을 흘리고 머리를 젓기만 하고 있다.
“아마 저 여자의 아들인 모양이지?”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모르겠습니다. 시몬이 순례자들을 돌보고 있어서 사정을 잘 압니다.”
열성당원을 불러서 물어본다. 그러나 그 남자는 그 여자와 같이 있지 않다. 여자는 혼자이다.

“저 여자는 그저 울고 기도만 합니다. 조금 전에 저 여자는 저보고 ‘선생님은 마음도 고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하고 열성당원이 설명한다.

“아마 배반당한 여자인 모양이군.” 하고 베드로가 주석을 단다.

예수께서 병자들에게로 가시는 동안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는 수 많은 순례자들을 데리고 세례를 주러 간다.
그 여자는 그가 있는 구석에 울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기적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 그 머리를 긴 두 손으로 잡으시고 입김으로 지능을 불어넣어 주시는 얼간이의 기적은 정말 훌륭하다. 모든 사람이 그 둘레로 모여든다. 베일을 쓴 여자까지도 온다. 아마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조금 가까이 다가와 울고 있는 여자 곁에 서는 것 같다. 예수께서 바보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 안에 지능의 빛이 들어가 너를 하느님의 빛으로 이끌어 가기를 원한다. 얘야, 나와 함께 ‘예수’ 하고 말해라. 그렇게 말해라. 명령이다.”
짐승처럼 신음만 하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던 바보가 어렵게 “예수”라고, 아니 오히려 “제쥬”라고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말한다. 예수께서는 보기흉한 머리를 여전히 두 손으로 잡으시고 당신 눈길로 그를 진정시키면서 “또 한번” 하고 명령하신다.
“옛수.”
“또.”
“예수!” 하고 바보가 마침내 말한다. 그리고 그의 눈이 이제는 무표정하지 않고, 입에는 다른 미소가 떠오른다.
“여보시오.” 하고 예수께서 아버지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이 믿음을 가져서 당신 아들의 병이 나았습니다. 아들에게 물어보시오. 예수의 이름은 병과 격정에 대해서 기적을 행합니다.”
그 남자는 아들에게 “내가 누구냐?” 하고 말한다. 그러니까 소년은 “아버지” 하고 말한다.
남자는 아들을 가슴에 꼭 껴안으며 설명한다. “얘는 날 때부터 이랬습니다. 제 아내는 얘를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얘는 생각도 못하고 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십시오. 제가 믿음을 가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요빠에서 왔습니다. 선생님께 무엇을 해드려야 하겠습니까?”
“착하게 사는 것이오. 그리고 당신 아들도 당신과 같이.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리고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하구요. 아이고! 곧 가서 네 외할머니께 말씀드리자. 얘 외할머니가 제게 여기로 올 결심을 하게 했습니다. 장모님이 축복받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은 기쁘게 떠나 간다. 지난 날의 불구에서 남은 흔적이라고는 소년의 큰 머리통밖에 없다. 표정과 말은 정상적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선생님의 의지로 나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의 이름의 힘으로 나았습니까?” 하고 여러 사람이 묻는다.


아들에게 항상 친절하신 아버지의 뜻으로 나았습니다. 그러나 내 이름도 또한 구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요. 예수는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건강에는 영혼의 건강과 육체의 건강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 믿음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병과 죄에서 회복되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것은 영신적이거나 육체적이거나 어떤 병에도 사탄의 날카로운 발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육체의 고통 때문에 반항과 실망으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육체의 병을 만들어내고, 영벌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정신적 또는 영신적 병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선생님 생각으로는 인류의 모든 불행에 벨제붓이 관계가 없지 않다는 말씀이군요.”

 

“벨제붓이 관계가 없지 않습니다. 그를 통해서 질병과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고, 좌악과 타락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도 그를 통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불행으로 괴롭힘당하는 것을 여러분이 보게 되면, 그도 역시 사탄을 통해서 괴로움을 당한다고 생각하시오. 어떤 사람이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도 사탄의 도구라고 생각하시오.”


“그렇지만 병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병은 질서 안에 있는 무질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실 사람을 건강하고 완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질서 안에 사탄이 가져온 무질서는 육체의 병약과 거기서 나오는 결과, 즉 죽음이나 치명적인 유전들을 끌고 왔습니다. 사람은 아담과 하와에게서 원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것만을 물려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흠은 점점 더 퍼져서 사람의  세 가지 분야에 미칩니다. 점점 더 타락하고 그로 인해서 약해지고 병드는 육체, 점점 더 교만해지고 그로 인하여 더 타락하는 마음, 점점 더 우상숭배적인 것이 되는 정신 말입니다. 이 때문에 내가 저 정신장애자에게 한 것과 같이 사탄을 도망치게 하는 이름을 가르쳐야 하고, 그 이름을 정신과 마음에 새기고, 내적인 자아(自我)에 소유권을 나타내는 도장처럼 찍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우리를 차지하십니까?” 선생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그토록 믿어야 합니까?”
“그렇기만 하다면! 그러나 그렇지 못합니다. 만일 내가 여러분을 차지한다면 여러분은 벌써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권리일 것입니다. 나는 구세주이고, 내가 구해준 사람들을 차지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요한은 … -저는 요한(세례자)을 따르던 사람입니다.- 요한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에브라임과 예리고 근처에서 설교를 하고 세례를 주는 분에게로 가거라. 그분은 맺고 푸는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 그런데 나는 다만 네 영혼이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민첩하게 만들기 위하여 회개하여라 하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고 말입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기적을 받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전에는 목발을 짚고 걸었었는데, 지금은 목발없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세례자는 사람들이 그를 떠나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하고 어떤 사람이 묻는다.
그러니까 먼저 말한 사람이 대답한다. “괴로워하다니요? 요한은 모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가시오! 가시오! 나는 지는 별이고, 그분은 떠올라서 영원한 광채로 빛날 별이오. 어두움 속에서 남아 있지 않으려면 내 희미한 빛이 꺼지기 전에 그분께로 가시오.’ 하고 말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선생님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끌기 때문에 원한을 잔뜩 품고 있습니다. 그걸 아십니까?”
“압니다.” 하고 예수께서는 짤막하게 대답하신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나 또는 적어도 그들의 행동 방식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대꾸를 용납하지 않는 “비난하지 마시오.” 하시는 말씀으로 토론을 종결시키신다.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가 세례를 받은 사람들과 같이 돌아온다.


예수께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같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이제는 여러분이 아침부터 이곳에 왔으니, 내가 아침나절에 하느님께 대한 말을 여러분에게 하고, 여러분은 오정에 떠나가는 것이 편리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또 저녁나절에 집에 돌아갈 수 없는 나그네들은 머무르게 할 생각도 했습니다. 나도 나그네와, 어떤 친구가 동정해서 준 최소한의 필수품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요한은 나보다도 더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건강한 사람들이나 병이 별로 중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불구나, 소경, 벙어리 같은 사람들이 가지, 내게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심한 열병환자들은 안갑니다. 그들은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고 요한에게 가는데, 내게는 육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도 옵니다. 율법에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고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내가 형제들의 육체적인 필요에 대해서라도 마음의 문을 닫는다면 어떻게 내 사랑을 보여주겠는가 하고.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들이 내게 주는 것을 그들에게 주겠다. 부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빵을 구걸하겠다. 내 침대를 포기하고, 피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맞아들이겠다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형제들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말로 증명되지 않고 행위로 증명됩니다.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은 카인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에 반항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형제입니다. 그러나 가정 안 – 같은 핏줄로 결합하고, 피와 살과 더불어 아담에게서 우리에게 오는 우애로도 결합해 있는 그곳 – 에도 증오와 불화가 있음을 나도 보고 여러분도 봅니다. 형제와 형제가 대립하고, 자식들이 부모에게 항거하고, 부모가 서로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항상 나쁜 형제가 되지 않고, 언젠가 불륜(不倫)의 남편이나 아내가 되지 않기 위하여는 어릴 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도 가장 큰 조직체인 가정에 대한 존중을 배워야 합니다. 한 도시나, 한 지방, 한 나라, 한 대륙에 비하면 가장 작습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것입니다. 조국이니 나라니 하는 개념이 아직 없을 때에 하느님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것이니, 그 때에도 벌써 민족의 근원이 되고, 남편은 왕이고 아내는 왕후이고 자녀들은 신민(臣民)이 되는 작은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살아 있고 활발한 가정의 핵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과 반목이 있으면 그 나라가 오래 갈 수 있습니까?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한 가정도 순종과 존경과 경제와 착한 뜻과 일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없이는 유지되지 못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십계명은 말합니다. 부모를 어떻게 공경합니까? 어떻게 공경해야 합니까?


공경은 참다운 복종과 결함없는 사랑과 신뢰하는 존경과 존경을 곁들인 두려움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존경을 곁들인 두려움은 신뢰를 배제하지 않지만,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나이많은 사람들을 마치 우리가 종이나 아래사람이 되는 것같이 대우하지도 않게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까닭은 하느님 다음으로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우리의 모든 물질적 필수품을 마련해 주었으며, 이 세상에 태어난 어린 존재의 첫번째 선생이고 첫번째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땅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주거나 빵 한 조각을 주는 사람에게 우리는 ‘복받으세요’ 라고 말하기도 하고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배불리 먹이기 위하여, 또 우리의 옷감을 짜주고 옷을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일을 하느라고 건강을 해치는 분들에게, 우리의 잠을 지켜 주느라고 일어나고, 우리를 보살피기 위하여 휴식을 취하지 않고, 우리가 가장 고통스럽게 피로하였을 때 그분들의 품으로 우리의 침대를 만들어 주는 그분들에게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복받으세요’ 라는 말과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는 우리의 선생입니다. 우리는 선생을 두려워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선생은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벌써 알고, 또 먹는 것과 기본적인 말을 하는 것을 벌써 알 때에 우리를 떠맡고, 또 우리가 인생의 가장 어려운 교훈을 받아야 할 때에는, 즉 ‘예절’을 배워야 할 때에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둡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에게 학교에 갈 준비를 시키고 인생살이의 준비도 시킵니다.


부모는 우리의 친구입니다. 그러나 어떤 친구가 아버지보다 더 친할 수 있으며, 어떤 친구가 어머니보다 더 친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아버지 어머니를 무서워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가 나를 배반하셨다. 어머니가 나를 배반하셨다’고 여러분이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저 어리석은 젊은이와 그보다도 더 어리석은 처녀 외부 사람들을 친구를 삼고,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냉담하며, 죄가 된다고는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분별없는 관계로 그들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망치고, 이러한 관계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의 원인, 녹은 납방울과 같이 부모의 마음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그 눈물들이 먼지와 망각 속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눈물을 거두시고 세십니다. 사람들이 짓밟는 아버지의 고통은 주께서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아들이 아버지에게 가하는 고통은 비록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들의 비통한 사랑으로 죄지은 아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애원하더라도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고 싶으면 부모를 공경하여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나는 ‘또 하늘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며’이라는 말을 덧붙이겠습니다. 부모에게 모욕을 주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오래 살지 못한다는 벌은 너무 가벼울 것입니다! 내세는 부질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내세에서는 이 세상에서 어떤 생활을 했느냐에 따라서 상을 받거나 벌을 받거나 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모욕을 주는 사람은 하느님께 모욕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사랑의 계명을 주셨고, 따라서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해서 육체적 생명 이상의 것, 즉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참 생명을 잃고 죽음을 맞이하러 가게 되며, 그의 영혼이 주의 총애를 잃었기 때문에 그는 벌써 죽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 다음으로는 가장 거룩한 사랑을 해치기 때문에 벌써 자기 자신 안에 죄악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쁜 아들은 성실치 못한 남편이 되기 때문에 그는 자기 안에 장래의 간부의 싹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쁜 아들에게는 장래의 도둑, 끔찍하고 포악한 암살자, 몰인정한 고리대금업자, 방탕한 유혹자, 파렴치한 향락자, 조국과 친구와 자식과 아내와 모든 사람을 배반하는 혐오감을 주는 인간이 나오기 때문에 그는 자기 안에 사회적 퇴폐의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어머니의 사랑을 서슴지 않고 배반한 사람, 백발이 된 아버지를 무시한 사람에 대하여 존경심과 신뢰를 가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아직 더 들으시오. 자녀들의 의무에는 그와 비슷한 부모의 의무가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죄지은 자식들은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죄지은 부모도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나쁜 짓을 본받지 못하도록 행동하시오. 여러분은 정의와 자비로 주어진 사랑으로 사랑받게 되도록 하시오. 하느님께서는 자비 자체이십니다. 하느님 바로 뒤에 오는 부모들도 자비로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의 모범이 되고 격려가 되시오. 자녀들에게 형화가 되고 그들의 지도자가 되시오. 그들의 첫째 사랑이 되시오.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가 얻기를 바라는 첫째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그의 어린 딸들이 바라볼 때에 그들이 남편감으로 꿈꾸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특히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들의 장래의 아내나 남편을 슬기롭게 고르게 하고, 그들의 장래의 아내나 남편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있는 것, 즉 참된 덕행이 있기를 바라게 하시오.


만일 이 문제를 철저하게 고찰해야 한다면 하루낮, 하룻밤으로도 충분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 대한 사랑으로 줄이겠습니다. 나머지는 영원하신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씨를 뿌리고 나서는 갑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들 안에서는 씨가 뿌리를 내리고 이삭을 낼 것입니다. 가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 바랍니다.”


떠나는 사람들은 즉시 출발한다. 그리고 머무를 사람들은 셋째 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져온 빵이나 제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주는 빵을 먹는다. 투박한 틀들 위에 널빤지와 짚을 깔아서 순례자들이 거기서 잘 수 있다. 베일을 쓴 여자는 빨리 간다. 전에도 울었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에도 계속 울었던 여인은 결정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떠나기로 결정한다.


예수께서는 식사를 드시려고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그러나 겨우 음식을 들기 시작하셨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문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안드레아가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간다. 안드레아는 말을 하더니 들어온다. “선생님, 여인이, 울고 있던 그 여인이 선생님을 뵙겠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떠나야 하는데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그럽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선생님이 어떻게 언제 식사를 하시겠어.” 하고 베드로가 외친다.
“나중에 오라고 말해야 할걸 그랬네.” 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조용히 해라. 나는 나중에 먹겠다. 너희들은 식사를 계속하여라.”
예수께서 나오시다. 여인은 거기 밖에 있다.

“선생님 … 한 말씀만은 …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 아이고! 집 뒤로 오십시오. 제 고통을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여인의 말대로 하신다. 집 뒤로 가서야 비로소 예수께서 물으신다.

 

“내게서 무엇을 바랍니까?”

 

“선생님 … 저는 처음에 선생님이 저희들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 설교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저를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육체의 병에나 정신의 병에나 모두 사탄이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 제게는 마음이 병든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애가 선생님이 부모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들었으면 했습니다! 이것에 제 고민입니다. 그애는 동무들하고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 … 꼭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 도둑이 되었습니다. … 지금 당장은 집안에서만 그렇습니다만 … 그애는 싸움을 좋아합니다. … 남을 압도하려 드니까요. … 그애는 젊기 때문에 음탕과 연회로 돈을 마구 씁니다. 제 남편은 그애를 내쫓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 저는 어미입니다. … 그래서 말할 수 없이 괴롭습니다. 제가 얼마나 고민하는지 아시겠지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제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저는 어제부터 선생님께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 아이고, 선생님께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저는 난폭한 아들을 두었습니다!’하고 말하기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여인은 예수 앞에서 몸을 구부리고 애달프게 운다.


“아들의 병이 나을 것이니, 이제는 울지 마시오.”


“그애가 선생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면 그렇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그애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습니다. 아이고! 그애는 영영 낫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들 대신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들을 위해서 믿음을 가지기를 원합니까?”
“그걸 제게 물어보시다니요. 저는 선생님께 그애을 위해 청하려고 상부(上部) 베레아에서 왔습니다 ….”
“자 그러면 가 보시오! 당신이 집에 도착하면 아들이 뉘우쳐서 마중을 나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요?”


“어떻게요? 그럼 당신은 하느님께서 내가 청하는 것을 하실 수 없다고 믿습니까? 당신 아들은 저기 있고, 나는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나는 하느님께 ‘아버지, 이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마음 속에 그분의 부르는 소리를 울려퍼지게 하실 것입니다. 아주머니, 가 보시오. 나는 언젠가 당신의 마을이 있는 지방을 지날 터인데, 당신은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를 데리고 내 마중을 나올 것입니다. 당신 아들이 당신 무릎에 엎디어 울면서 용서를 청하고, 그가 이겨서 새로운 영혼을 가지고 나온 알 수 없는 싸움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났느냐고 묻거든 이렇게 말해 주시오. ‘네가 예수에 의해서 두번째로 선에 태어났다’고. 아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시오. 당신이 내게로 온 것은 당신이 알고 있다는 증거요. 아들과 더불어 구원하는 힘을 가지기 위하여 아들이 나를 알고 또 나를 생각하게 만드시오. 잘 가시오.

믿음을 가진 어머니와 돌아오는 아들과 기뻐하는 아버지와 다시 모인 집안에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가 보시오.”


여인이 마을 쪽으로 향해 간다.

 

-그리고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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