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87.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만들어 가지지 말아라.”

Skyblue fiat 2021. 10. 17. 10:14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너희 주 하느님은 강하고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대 사대에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비를 베푼다.’

 

예수의 목소리는 방안에 울려퍼진다. 비가 와서 모든 사람이 방으로 피해 들어왔기 때문에 방에는 군중이 꽉 찼다. 앞줄에는 병자 네 사람이 있다. 한 여자가 인도하는 소경, 딱지 투성이인 어린이, 황달을 앓거나 말라리아로 고생하는 여자, 그리고 들것에 실려 있는 네번째 병자이다.

예수께서는 빈 구유에 기대서 말씀하신다. 요한과 두 사촌과 마태오와 필립보는 예수 곁에 있고, 유다와 베드로와 바르톨로메오와 야고보와 안드레아는 출입구에서 아직도 오는 사람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토마와 시몬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어린이들을 떠들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의 청원을 들으면서 소액의 연보를 걷는다.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만들어 가지지 말아라.’


여러분은 어떻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시선과 당신의 생각으로 어디에나 다 계시는지를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항상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어떤 방안에 들어박혀 있거나 성전의 가운데 있거나 똑같이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구제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얼굴을 감추는 숨은 은인이거나, 으슥한 험로에서 여행자를 습격하여 죽이는 살인자이거나, 우리는 똑같이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조신(朝臣)들 가운데 있는 왕도, 전장에 있는 병사도, 성전 안에 있는 성직자도, 책을 열심히 일고 있는 현인도, 밭고랑을 파는 농부도, 계산대에 앉아 있는 장사꾼도, 요람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머니도, 신방에 있는 아내도, 아버지의 집에 고이 숨어 있는 처녀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어린이도,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도 하느님의 앞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있고, 사람의 행동도 역시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도!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면서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행동의 목적이 죄이면 무서운 말일 것이고, 행동이 성덕을 얻고자 힘쓰면 위로가 되는 말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은 나쁜 행실을 억제하게 되고, 좋은 행동들은 위안이 되어 격려하게 됩니다.하느님께서는 선행을 하는 사람을 보신다. 나는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안다. 나는 하느님께서 착한 행동은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 상금을 받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이 확신에 의지한다. 이 확신은 내 생활을 차분하게 할 것이고 내 죽음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살거나 죽거나 내 영혼이 하느님의 우정의 빛나는 별의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착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추론합니다.

 

그러나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금지된 행동 가운데에는 우상 숭배가 들어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내가 거룩한 예배를 하는 체할 때에 하나나 여러 거짓 신을 숭배한다는 것을 아신다. 내가 그 거짓 신들에게 제단을 세웠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시다.’고 말입니다.


성전에조차도 하느님의 상이 없는데, 어떤 신들인가 하고 여러분은 말할 것입니다. 참 하느님의 얼굴을 나타낼 수가 없었는데 그 신들은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완전하시고 지극히 순수하신 분을 사람이 상응하게 나타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숭고한 접촉을 할 자격이 있는 성인 곁에 당신 존재를 널리 펴실 때, 오직 영만이 하느님의 영적이고 숭고한 아름다움을 어렴풋이 보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자애를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과 귀와 손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따라서 주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키타라*(역주: 고대 그리이스의 악기, 거문고의 일종.)의 소리로 나타낼 수 없고, 망치와 끌로 대리석에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오! 의인들의 영이여, 그대들이 하느님을 뵐 때 그 행복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제일 먼저 볼 것은 영원무궁세로 여러분과 동행할 지복(至福)의 여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참 하느님을 위하여 할 수 없는 것을 거짓 신들을 위하여는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여자를 신처럼 모시고, 어떤 사람은 황금을,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어떤 사람은 지식을, 또 어떤 사람은 군사적인 승리를 신처럼 모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연 질서에는 자기와 비슷하고, 저 힘과 행운으로만 자기를 능가하는 세력있는 사람을 숭배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숭배하며 ‘나와 어깨를 겨룰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하느님의 백성에 속하는 사람들의 신입니다.


이교도들이 짐승이나 뱀이나 천체들을 숭배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마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은 뱀! 얼마나 많은 짐승! 얼마나 많은 꺼진 천체를 숭배합니까! 입술은 아첨하고 차지하고 매수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은밀한 우상숭배의 기도가 있지 않습니까? 마음은 복수나 부정거래나 매음의 생각을 은밀히 품고 있습니다. 이것이 쾌락과 탐욕과 악의 추한 신들에 대한 경배가 아닙니까?


‘유일하고 영원한 네 참 하느님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숭배하지 말아라.’ 하였고, ‘나는 강하고 질투하는 신이다.’ 하였습니다.


강하십니다. 하느님의 힘보다 더 강한 힘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은 행동의 자유가 있고, 사탄은 유혹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만’하고 말씀하시면 사람은 더 이상 악을 행할 수 없고 사탄은 더 이상 유혹을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그의 지옥으로 추방되고, 사람은 나쁜 행동을 지나치게 하다가 쓰러지고 맙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넘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질투하십니다. 누구를 질투하시고, 어떤 질투를 하시는 것입니까? 소인들의 치사스러운 질투가 아닙니다. 당연한 질투이고, 사랑가득한 질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창조하셨고,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이 여러분을 해치는지를 아시고, 무엇이 여러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하는지를 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들 사이에 들어서서, 이 아들들을 구원이요 평화인 유일한 사랑, 즉 하느님에게서 빗나가게 하는 것에 대하여 질투하십니다. 치사하지 않고, 잔인하지 않고, 사로잡지 않는 이 하느님의 질투를 깨달으시오. 이 질투는 무한한 사랑이고, 무한한 인자이고 끝없는 자유로서, 유일한 피조물을 당신께로, 당신 안으로 빨아들여 당신의 무한히 착하심에 같이 참여케 하려고 당신을 그 유한한 피조물에 주시는 것입니다. 착한 아버지는 자기의 재산을 혼자 누리기를 원치 않고, 그의 자식들이 한몫 끼기를 바랍니다. 결국 그 재산을 모은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보다 자기 자식들을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사랑과 이 욕망에 당신의 행동의 완전성을 가져다 주십니다.


주님을 속이지 마시오. 주님은 죄있는 사람들과 죄있는 아들의 아들들에게 벌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약속을 하실 때 절대로 거짓말을 안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고 하느님의 아들인 여러분, 러분의 정신이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른 약속을 듣고 아주 기뻐하시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비를 베푼다.’ 고 하신 약속입니다.


착한 사람들의 후손 천대까지, 그리고 악의로가 아니라 경솔함과 마귀의 계략으로 죄에 떨어진 가엾은 사람의 아들들의 천번째 약함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또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뉘우치는 마음과 눈물에 젖은 얼굴로 ‘아버지,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압니다. 아버지 앞에서 저를 낮추고 그것을 인정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용서는 제가 참 삶을「살되」돌아오기 위한 힘이 될 것입니다.’ 하고 말하면, 주께서는 팔을 버리실 것입니다.


두려워 마시오. 여러분이 약함으로 인하여 죄를 짓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냉정하게 되시는 것은 다만 여러분이 끝까지 죄중에 남아 있어서, 죄를 실제로 원하고, 한가지 또는 여러가지 죄를 가지고 여러분의 소름끼치는 신을 만드는 때일 뿐입니다. 그 모든 우상을 쓰러뜨리고 참 하느님께 자리를 내드리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오직 당신만이 계시는 것을 볼 때에 여러분의 마음을 신성하게 만들기 위하여 당신 영광으로 내려오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그분의 집을 돌려드리시오. 그 집은 돌로 지은 성전에 있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 문지방을 물로 씻고, 집안에서는 쓸 데 없거나 죄되는 사치는 일체 치워버리시오. 하느님만을! 그분 하나만을! 하느님께서 전부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사람의 마음, 하느님이신 손님께 자기의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점으로도 낙원보다 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마음을 지니고 하늘을 만드시오. 지극히 높으신 분과 동거를 시작하시오. 여러분의 영원한 미래에서 이 동거는 완전한 능력과 기쁨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과의 이 동거는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의 두려워하는 놀람을 능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동거가 전능하신 분과의 전격적이고 무시무시한 만남이 아니라 아버지와 친구로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내 기쁨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이다. 네가 나를 기쁘게 해주는구나. 아들아, 고맙다.’ 하고 말씀하시는 분과 같이 머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명이 넘는 군중은 얼마동안의 큰 기쁨의 시간이 지난 다음 나간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 틈엔가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똑같은 기쁜 바람으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사람들도 있다. 요컨대 군중은 잠이 깨는 것 같다. 처음에는 웅성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힘찬 탄식 같기도 하다가 마침내 해방의 외침같이 된다.

 

“선생님, 찬미받으십시오! 선생님은 저희들에게 평화의 길을 뚫어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대답하신다.

“여러분이 지금부터 당장 옳은 길을 걸어가면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병자들에게로 가신다. 병든 어린이와 노경과 얼굴이 노란 여자를 손으로 스치신다.

그리고 마비환자에게로 몸을 숙이시고 말씀하신다. “네가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하고.

그 남자는 예수를 쳐다보며 외친다. “지쳐빠진 제 몸이 뜨거워집니다!”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 일어난다. 마침내 누군가가 병상에 있는 담요를 그의 몸에 씌어준다. 엄마는 딱지가 다 없어진 아기를 치켜들고, 소경은 빛과의 첫번 접촉을 하려고 눈을 비빈다. 여자들이 소리지른다. “디나는 이제 샛노랗지가 않아요.” 하고.


감격이 극도에 달하였다. 소리를 지르고, 찬미하고, 보려고 서로 떼밀고, 마을에 가서 말하려고 나가려고 애를 쓰고 한다. 예수께서는 사방에서 습격당하시는 격이 되었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예수를 거의 찍어 누르는 것을 보고 외친다.  “여보게들! 선생님이 숨이 막히시겠네! 와서 선생님을 빼내게!”

그래서 열 두 제자는 팔꿈치를 휘두르고 정강이를 차기까지 해서 예수를 끌어내고 해방에서 밖으로 모셔가는 데 성공한다. 베드로가 말한다.

“내일은 제가 이것을 생각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문 곁에 계시고, 다른 사람들은 안쪽으로 들어가게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없다!”

“그 사람들 미치광이 같았습니다. 무슨 버릇이람!”

“내버려두어라. 그 사람들은 행복하였다. … 그리고 나도 그들과 같이 행복했고, 유다, 너는 시몬과 같이 헌금을 거지들에게 주어라. 모두. 우리는 주의 사도들에게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졌다. 가거라. 베드로야, 가. 너무 많이 한다고 두려워 말아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께 네 변호를 할 것이다. 자, 잘들 가거라.”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기진맥진하셔서 집안으로 들어가시고, 제자들은 그동안 각기 순례자들에게 그들이 맡은 임무를 행한다.

 

 

 

키타라 *역주: 고대 그리이스의 악기, 거문고의 일종.

 

 

 

 

87.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만들어 가지지 말아라.” – 평화의 오아시스 (medjugorj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