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II 40. 예수께서 유다의 목자 이사악을 찾아가신다.

Skyblue fiat 2020. 1. 9. 00:20


물소리가 요란한 시원한 계곡이 나온다. 은빛의 작은 급류에서 거품을 내고 튀어오르면서 남쪽으로 흘러간다. 그 급류의 기분좋은 서늘한 기운은 물가에 있는 작은 풀밭으로 솟아올라가지만, 그 축축한 기운은 비탈에까지 올라가는 것 같다. 그것은 땅에서 덤불과 잔나무들을 거쳐, 호두나무가 많이 섞여 있는 키큰 나무 꼭대기에까지 올라가는 갖가지 색깔의 에머랄드와도 같다. 진짜 삼림에는 가끔 기름진 파란 풀밭으로 된 편편한 빈터가 나오는데, 그것은 가축떼가 기운을 다시 차릴만한 좋은 풀밭이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세 목자들과 같이 급류를 향하여 내려오신다. 뒤떨어진 양이나 길잃은 어린 양을 뒤쫓아간 목자 중 하나를 기다려야 할 때는 참을성 있게 걸음을 멈추신다. 이제야말로 정확히 말해서 착한 목자이시다. 예수께서도 사방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옷에 달라붙으려고 하는 가시덤불과 산사나무와 참아리 줄기들을 헤치며 가시려고 긴 나뭇가지를 들고 계신다. 그래서 그분의 목자다운 모습이 한층 더 어울린다.


“보세요. 유다는 저 위에 있습니다. 급류를 지나가야 합니다. 여름에는 다리까지 가지 않고 건너갈 수 있는 얕은 곳이 있습니다. 헤브론으로 해서 왔으면 더 가까웠을 텐데, 선생님은 그리로 해서 오는 것을 원치 않으셨지요.”


“아니오. 헤브론에는 나중에 갑니다. 언제나 우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가야합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들이 의인이었으면 이제는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의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필요한 죽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해골 곁에 가야만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골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먼지에서 끌어내신 하느님의 능력의 증거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짐승도 해골이 있어요. 어떤 짐승이라도 사람의 것 보다는 덜 완전하지만 해골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왕인 사람만이 그의 신민(臣民)들을 지배하는 왕과 같은 직립 자세를 가지고 있고, 목을 꼬지 않고도 앞과 위를 바라볼 수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아버지의 집이 있는 저 위를 말이지요. 그러나 해골은 역시 해골입니다. 다시 먼지가 된 먼지. 그런데 영원히 인자하신 분이 복된 사람들에게 한층 더 생생한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영원한 날에 그 먼지를 재생시키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하시오. 즉 영들만이 모여서 이 세상에서 사랑하였던 것처럼, 서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할 것이고 또한 그들이 이 세상에서 가졌던 모습으로 서로 다시 보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엘리야 영감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머리가 곱슬곱슬한 귀여운 아기를, 레위와 요셉의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사랑으로 빛나는 마음과 얼굴을 가진 아버지 어머니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 자네도 자네가 늘 그리워하는 그 얼굴들을 보게 될 것일세, 하늘에는 의인들 가운데 고아도, 홀아비도 없을 것입니다‥‥.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는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결합해 있었고, 하느님이시고 어디에나 계시는 완전한 영과 결합하여 있는 영을 위한 영의 기도입니다. 오 ! 영적인 모든 것의 거룩한 자유 ! 거리도 없고, 망명도 없고, 감옥도 무덤도 없어요‥‥육체로서의 유대가 아닌 것을 갈라놓고 무능하게 만들어서 괴롭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갈 것이고, 그 사람들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당신들에게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영들의 이 애정토로에서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원한 불둘레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그 영원한 불은 과거에 있은 것, 지금 있는 것. 장차 있을 모든 것을 창조하시는 절대적인 완전무결한 영이시고, 당신들을 사랑하시고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사랑입니다.

이제 얕은 곳에 다 온 것 같군요. 개울 바닥에 있는 얼마 안되는 물에 찰랑찰랑 돌들이 일렬로 놓여 있는 것이 보이는군요.”

“예, 선생님. 여깁니다. 물이 불어날 때에는 요란스러운 하나의 폭포가 되지만, 지금은 얕은 곳에 놓여 있는 큰 돌 여섯 개 사이로 지나가는 즐거워 보이는 일곱 줄기의 작은 시냇물 같습니다. ”


사실, 대강 다듬은 큰 돌 여섯 개가 한뼘 남짓씩 떨어져서 급류 바닥에 놓여 있고, 그곳까지는 반짝이는 오직 하나의 편편한 리본 같던 물이 일곱가닥의 작은 리본으로 갈라진다. 그 물줄기는 즐거운 듯이 흘러가며 얕은 곳을 지나 다시 시원한 하나의 물줄기로 합쳐지려고 서두르며, 바닥의 모래와 조잘거리면서 흘러 내려 간다.


목자들은 양들이 건너가는 것을 감시한다. 양들의 일부분은 돌들을 밟고 건너고, 더러는 아예 깊이가 한 뼘밖에 되지 않는 물로 내려가서 거품을 내며 좔좔거리고 흘러가는 금강석 같은 물을 마신다.
예수께서는 돌다리로 건너가시고 제자들도 뒤에 따라간다. 일행은 건너편 기슭에서 다시 걸어가기 시작한다.
“선생님은 이사악에게 선생님이 여기 오셨다는 것만 알리라고 하시고 마을에는 안들어가시겠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헤어지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이사악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레위와 요셉은 양떼들을 데리고 선생님을 모시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올라가겠습니다. 그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
그러면서 엘리야는 저 꼭대기에 햇빛을 받아 빛나는 한무리의 하얀 집들을 향하여 비탈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나는 그를 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가 첫번째 집들이 있는 데 이르렀다. 그는 집들과 정원들 사이에 나있는 오솔길로 들어서서 몇 십 미터를 가다가 더 넓은 길로 돌더니 거기에서 어떤 광장으로 들어간다. 이 모든 일이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말을 지금 하는 것은 광장에 아직 장이 서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주부들과 장사꾼들이 광장에 그늘을 지게 하는 나무들 밑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있다.
엘리야는 서슴지 않고 광장이 큰 길로 이어지는 지점까지 간다. 그 길은 꽤 아름답다. 아마 그 마을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인 것 같다. 모퉁이에 오막살이가 하나 있다. 오막살이라기보다는 문이 열려 있는 방 하나가 있다. 문지방 바로 곁에 초라한 침대가 하나 있고, 그 위에서는 해골처럼 마른 불구자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행인들에게 동정을 청하고 있다.


엘리야는 급히 들어가며 “이사악‥‥ 날세” 하고 말한다.
“자네가? 자네가 올 줄은 몰랐는데. 자네는 지난 달에 왔었지.”
“이사악‥‥ 이사악‥‥ 내가 왜 왔는지 알겠나?”
“모르겠는데 ‥‥ 자네 흥분해 있구먼‥‥무슨 일이 생겼어?”
나자렛의 예수님을 보았네 ! 이제는 어른이 되셨어. 선생님이야. 나를 찾아오셨어‥‥ 그리고 우리들을 보고 싶어하셔. 아이고 ! 이사악, 자네 어디 불편한가?”

사실 이사악은 죽는 것처럼 털썩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아니야, 그 소식 때문에 ‥‥ 어디 계셔? 어떠시던가? 아이고! 뵈었으면 좋겠는데!”
“저 아래 계곡에 계셔. 자네에게 정확히 이렇게 말하라고 하시며 나를 보내셨어. ‘이사악, 오시오. 보고 싶고 축복해 주고 싶소’ 이렇게 말이야. 자네를 데리고 내려가는 일을 도와줄 사람을 불러 오겠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나? ”
“그렇게 말씀하셨어. 아니 그런데 자네 뭘 하는건가? ”
“그리 갈거야.”


이사악은 담요들을 밀어젖히고 꼼짝 못하는 다리를 움직이고 침대 밖으로 내놓더니 방바닥에 올려놓는다. 그는 아직은 약간 자신 없는 듯이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이 모든 것이 엘리야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데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마침내 그는 깨닫고 소리를 지른다‥‥ 어떤 작은 할머니가 이상해서 달려온다. 그 할머니는 불구자가 일어나서, 다른 것 입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담요 한 장을 몸에 두르는 것을 본다. 노파는 겁을 집어먹은 암탉처럼 소리를 지르며 가버린다.


“가세‥‥더 빨리 하게,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여기서 떠나세. ‥‥빨리, 엘리야.”


그들은 뒷뜰 문으로 해서 뛰어 나온다. 그리고 마른 나뭇가지로 엮은 사립짝을 밀어 닫는다. 그들은 밖으로 나와서 보잘 것 없는 오솔길로 빨리 걷다가 야채밭들 가운데 난 작은 길로 들어서고, 거기에서 풀밭과 나무숲을 건너질러 개울에까지 내려온다.


“저기 예수님이 계셔” 하고 엘리야가 손가락질 하며 말한다. “흰 옷에 붉은 겉옷을 입으신 키 큰 금발 미남자 말이야‥‥.”
이사악은 풀을 뜯고 있는 양떼를 사이로 뛰어가 승리와 기쁨과 경배를 곁들여 부르짖으면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린다.
“이사악, 일어나시오. 내가 왔소. 당신에게 평화와 축복을 갖다주려고 왔어요. 얼굴을 보게 일어나시오.”
그러나 이사악은 일어나지를 못한다. 너무나 많은 감격이 한꺼번에 왔다. 그래서 땅에 엎드린 채 행복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당신은 곧 왔군요. 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
“주님이 오라고 말씀하셨으니‥‥왔습니다. ”
“선생님, 이 사람은 문도 닫지 않고, 돈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상관없어요. 천사들이 그의 집을 지켜 줄 것입니다. 이사악, 기쁩니까?”
“아이고. 주님 ! ”
“선생이라고 부르시오.”
“예, 주님, 선생님. 병이 낫지 않았더라도 선생님을 보는 것이 무척 기뻤을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다지도 선생님의 총애를 받을 수 있었습니까?”
“이사악, 당신의 믿음과 인내 때문이오. 당신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나는 압니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젠 아무 것도 아닙니다 ! 살아 계신 선생님을 만났으니! 선생님이 여기 와 계시니! 그것이면 그만입니다‥‥나머지는, 나머지는 모두 지나간 일입니다. 그렇지만 주님. 선생님, 이제는 안가시지요?”
“이사악, 나는 온 이스라엘에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해요. 그래서 떠납니다‥‥그러나 내가 여기 남아 있을 수는 없지만, 당신은 내게 봉사하고 나를 따를 수 있어요. 이사악, 내 제자가 되고 싶소?
“오 ! 그렇지만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은 내가 누구라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겠소? 업신여기고 위협하는데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내가 당신을 불렀고, 그래서 당신이 왔다고 말할 수 있겠소?”
“그렇게 하는 것을 선생님이 원치 않으시더라도 그 말을 모두 하겠습니다. 그 일이라면 선생님의 말씀을 어기기라도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용서하십시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신다. “그것으로 당신이 제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아이고 ! 그렇게만 하는 일이라면야 ! 저는 더 어려운 줄 알았습니다. 저는 선생님 중의 선생님이신 선생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학교에 다녀야 하는 줄로 ‥‥ 이렇게 나이 많은 제가 학교에 다녀야 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
사실 그 사람은 적어도 쉰살은 되었다.
“이사악, 당신은 벌써 학교에 다녔소.”
“제가요? 안 다녔습니다.”
“아니요. 당신이 다녔어요. 당신은 계속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공경하고 찬미하지 않았소? 이웃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이웃에게 축복하지 않았소? 그리고 샘을 내지 않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당신이 가졌다가 이제는 가지지 못하게 된 것까지도 욕심내지 않기를 계속하지 않았소? 그렇게 해서 당신에게 해가 되는 때에도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죄를 범함으로써 사탄과 야합하지 않기를 계속하지 않았소? 불행만을 겪은 지난 30년 동안 이 모든 것을 하지 않았소?


“그렇게 했습니다. 선생님.”


“자 봐요, 그러니까 벌써 학교에 다닌거요. 계속 그렇게 하시오, 그리고 내가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을 거기에 덧붙이시오. 그 이상 다른 일할 것이 없소.”


“주 예수님, 저는 벌써 주님을 전했습니다. 제 다리가 구부러져서 얻어먹으면서 이 마을에 와서 아직 양털 깎는 일이나 젖짜는 일을 좀 할 때 제게 오는 어린이들에게 선생님을 전했고, 그 후 병이 더해져서 허리 아래를 쓰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들이 제 침대 곁으로 올 적에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때의 어린이들에게 선생님 말씀을 했고, 지금은 그때 어린이들의 아들들인 어린이들에게 말을 합니다‥‥어린이들은 착하고 언제나 믿습니다. 선생님이 나신 때 이야기를 했고‥‥ 천사들과‥‥ 별과 동방 박사들‥‥ 그리고 선생님의 어머니에 대해서 말해 주었습니다‥‥아이고 ! 선생님, 어머님이 살아계시지요?”
“살아 계시고 안부를 전하라고 하셨소. 어머니는 당신들 이야기를 하셨어요.”
“아이고 ! 어머님을 뵈었으면 ! ”
“보게 될거요. 언젠가 내 집에 오시오. 어머니 마리아가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할거요.”
마리아‥‥ 그렇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제 입에 꿀과 같이 답니다. 유다에 한 여인이 있습니다. 예, 이제는 여인이지요, 넷째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 됩니다. 전에는 계집아이였고 제 친한 여자친구의 하나였습니다. 그 여자는 아이들에게 첫째와 둘째에는 마리아와 요셉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셋째 아이는 감히 예수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못하고 그 여자와 그 집과 이스라엘에 축복받은 이름이 되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엿새 전에 난 넷째 아이에게 무슨 이름을 붙여 줄까 하고 궁리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 그 여자가 내 병이 고쳐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 또 선생닝이 여기 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기뻐할까요 ! 그 여자 사라는 그지없이 친절하고, 남편 요아킴도 친절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또 어떻구요? 그분들 덕택에 제가 지금 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거두어주고 도와주었습니다. ”


“그들에게 가서 해가 너무 내리쬐는 시간에 피난처를 청하고, 그들의 자선을 위하여 축복을 갖다줍시다.”
“선생님, 이곳에서는 양떼를 위해서도, 또 틀림없이 흥분해 있을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도 더 편리할 것입니다. 제가 일어나는 것을 본 그 노파가 틀림없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일행은 급류를 따라가다가 더 남쪽에 가서 급류를 뒤에 남겨 두고 오솔길로 들어선다. 그 오솔길은 배의 이물처럼 생긴 산의 물결 가르는 부분같이 된 곳을 따라 올라가기 때문에 어지간히 가파르다. 이제는 급류가 올라가는 길과 반대쪽에 있으며 양쪽에 솟아 있는 산들 사이 바닥으로 흘러가는데, 그 산들은 서로 엇갈리면서 기복이 심한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고 있다. 나는 이 장소를 알아보겠다‥‥혼동할 수가 없다, 지난 봄에 보았던 예수와 어린이들의 환상이 벌어졌던 장소이다. 내가 잘 아는 마른 돌로 쌓은 낮은 담이 계곡을 자른 소유지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사과나무들과 무화과나무들과 호두나무들이 있는 풀밭들이 저기 있고. 초록빛깔 바탕 위에 흰 집이 저기 있는데, 삐죽하게 나온 그 측면이 계단을 보호하고 동시에 회랑도 되고 의지할 곳도 되며, 맨 꼭대기에는 작은 둥근 지붕이 있으며. 우물이 있는 야채밭이 있고, 정자와 화단들이 있다.


집안에서 커다란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이사악은 앞으로 나아가 집안으로 들어가서 큰 소리로 묻는다. “마리아, 요셉, 임마누엘, 어디 있냐? 예수님한테로 오너라.”


세 꼬마가 달려 온다. 다섯 살쯤 된 계집아이와 네 살 두 살 된 사내아이 둘인데, 두 살 짜리는 아직 걸음걸이가 시원치 않다. 그들은 다시 살아난 사람을 보고 입을 딱 벌린 채로 있다. 그러다가 계집아이가 외친다. “이사악 아저씨야! 엄마! 이사악 아저씨가 여기 왔어! 유딧 할머니가 맞았어!”


떠들썩한 방에서 아이들 어머니인 한 여인이 나온다. 갈색 머리에 키가 크고 건강해보이며 멀리서 보아 아름다운 여인인데, 명절 빔을 입어서 더 아름답다. 흰 아마로 만든 옷은 화려한 슈미즈 같은데 주름이 져서 발목까지 내려오며, 웬만큼 굵은 허리에 여러 가지 빛깔로 된 쇼올로 졸라매서 펑퍼짐한 엉덩이를 돋보이게 하고는, 술달린 쇼올이 무릎 언저리까지 내려와 뒤로 처지고, 앞쪽으로는 포개서 허리깨에 선세공(線細工)을 한 버클로 고정시켰기 때문에 벌어져 있다. 엷은 밤색 바탕에 색깔있는 장미가지 수를 놓은 가벼운 베일이 땋아늘인 검은 머리에 작은 터번 모양으로 고정되고, 목덜미에서 주름져서 굽슬굽슬하게 어깨와 가슴으로 내려온다. 고리로 연결된 작은 메달로 된 관이 머리에 고정되어 있다. 무거운 고리로 된 귀걸이가 늘어져 있다. 긴 웃옷은 옷에 있는 여러개의 구멍을 거쳐 지나가는 은목걸이로 죄어져 있다. 팔에는 무거운 은팔찌가 끼어져 있고.


“이사악! 아니 어떻게 된거야? 유딧 아주머니가‥‥ 쨍쨍 내리쬐는 해 때문에 머리가 돈 줄 알았는데 ‥‥ 이사악, 걷고 있지 않아! 대관절 어찌된거야?”
“구세주께서, 아이구! 사라! 그분이야! 그분이 오셨어!”
“누구 말야? 나자렛의 예수님말야? 어디계셔?”
“저기 호두나무 뒤에. 여기서 받아주겠느냐고 물으셔!”
“요아킴! 어머니! 모두들 와요! 메시아가 오셨어요!”
여자, 남자, 소년, 아기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온다‥‥그러나 키가 크고 위엄있는 예수를 보고는 겁을 집어먹고 화석이 된 것처럼 꼼짝 않고 있다.
“이 집과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평화와 강복이 있기를 ! ” 예수께서 미소를 지으시면서 사람들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 가신다.


“친구분들, 나그네에게 휴식처를 주시겠습니까?” 그러시면서 한층 더 미소지으신다.
예수의 미소가 두려움을 물리쳤고. 남편이 용기를 내서 말한다. “들어오십시오, 메시아님. 우리는 선생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을 알고나서는 더 사랑할 것입니다. 우리 집은 오늘 세 가지 일로 마냥 즐겁습니다. 선생님과 이사악과 제 셋째놈의 할례 때문입니다. 선생님, 그애에게 축복해 주십시오. 여보, 아기를 데려와요! 주님, 들어오십시오.”


그들은 잔치를 하려고 준비해 놓은 방으로 들어간다. 사방에 식탁과 음식, 양탄자와 나뭇가지 장식들이 있다.
사라가 잘생긴 갓난아기를 안고 와서 예수께 내민다.
하느님께서 항상 이 아기와 같이 계시기 바랍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름이 없습니다. 얘는 요셉, 또 얘는 임마누엘입니다. 그런데 막내는‥‥아직 이름이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두 내외를 똑바로 바라보시며 미소를 짓고 말씀하신다. “아기가 오늘 할례를 받아야 한다면 이름을 정해야지요 ‥‥. ”
두 내외는 서로 쳐다보고, 예수를 쳐다보고 입을 벌리다가 아무 말하지 않고 입을 다시 다문다. 모두가 주의를 기울인다.
예수께서는 계속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역사에 위대한 이름, 기분좋은 이름. 축복받은 이름이 하도 많은데, 가장 기분좋고 가장 축복받은 이름은 벌써 주었지만, 그래도 어떤 다른 이름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두 부부가 함께 외친다. “주님, 선생님의 이름이오!” 그리고 아내가 덧붙인다. “그렇지만 그 이름은 너무 거룩해서‥‥”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물으신다. “할례는 언제입니까?”
“집도자(執刀者)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나도 예식에 참례하겠소. 그동안 내 이사악 때문에 당신들에게 감사합니다. 이제는 이사악이 착한 분이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착한 분들은 아직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당신들은 셋째 아이 이름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내 봉사자에게 자선을 베푼 때부터 하느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축복을 받으시오. 세상에서도 하늘에서도 우리는 당신들의 행위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사악은 지금 떠납니까? 우리를 떠나는 것입니까? ”
“섭섭하시겠지요. 그러나 그 사람은 그의 선생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돌아올 것입니다. 나는 다시 오겠습니다. 당신들은 그동안 메시아에 대해 말하시오‥‥세상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메시아에 대해 말을 아주 많이해야 합니다! … 기다리는 사람이 오는군요.”
점잔을 빼는 사람이 조수를 데리고 들어온다. 인사를 하고 절을 하고 “아기가 어디 있소? ” 하고 그 사람이 거만하게 묻는다.
“여기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시아께 인사하세요, 여기 계신데.”
“메시아요? 이사악을 고쳐준 사람 말이오? 아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나는 바쁘오. 아기와 이름을.”
거기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태도에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무례한 언행이 당신께 대한 것이 아닌 것같이 미소를 지으신다. 그리고 아기를 받아 그를 축성하시려는 것처럼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만지시면서 말씀하신다‥‥아기의 이름은 예사이요.” 하고 말씀하시고 아기를 아버지에게 돌려주신다. 아버지는 거만한 사람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옆방으로 간다. 예수께서는 죽을 힘을 다해서 우는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그곳에 그대로 계신다.
“아기 엄마, 아기를 내게 주시오. 울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고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위안하시려는 듯이 말씀하신다. 아기는 예수의 무릎에 오자 과연 울음을 그친다.

예수 둘레에는 모든 어린이들이 빙 둘러 앉고 그 다음에는 목자들과 제자들이 둘러 앉아 한떼를 이루었다. 밖에는 엘리야가 울타리 안에 가둔 양들이 매애매애 하고 울고 있다. 집안에서는 즐겁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예수와 제자들에게 맛있는 것들과 음료를 갖다 드린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것들을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선생님, 안 드십니까? 받아들이지 않으시는군요. 진심으로 드리는건데요.”
“요아킴, 나도 압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게 내버려두시오. 이것이 내 기쁨이요‥‥.”
“선생님, 저 사람 일은 상관하지 마십시오.”
“아니다, 이사악아. 나는 그가 빛을 보도록 기도한다. 요한아, 두 어린 것을 데리고 가서 양들을 보여주어라. 마리아야. 너는 더 가까이 오너라. 내가 누구냐?”
“베들레헴에서 난 나자렛 마리아의 아들 예수요. 이사악 아저씨가 아저씨를 봤대요, 그래서 내가 착하게 되라구 아저씨의 어머니의 이름을 붙여 줬어요.”
하느님의 천사처럼 착하고, 산꼭대기에 핀 백합꽃보다도 더 깨끗하고 제일 거룩한 레위파 사람이 그래야 할 것처럼 경건하고 해서 그분을 본받아야지. 그렇게 하겠니?
“네, 예수님.”
“선생님이라고 하든지 주님이라고 해야 한다, 얘야.”
“유다야, 이 아이가 내 이름을 부르게 내버려두어라. 죄없는 어린이들의 입술로 해서 나와야 이 이름이 내 어머니의 입술에서 나오는 때와 같은 소리를 잃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든 사람이 이 이름을 부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또 많은 사람은 이 이름을 모독하기 위하여 부를 것이다. 오직 죄없는 사람들만이 이해타산없이 증오심없이 이 어린아이와 내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이 이름을 부를 것이다. 죄인들도 내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러나 동정이 필요해 부를 것이다. … 너는 왜 나를 예수라고 부르니? ”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물으신다.

“나는 예수님을 아버지와 엄마와 동생들처럼 ‥‥ 좋아하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예수의 무릎을 껴안고. 얼굴을 쳐들면서 웃는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입맞춤하시려고 몸을 숙이신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