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공생활 첫 해
8. “나는 요한을 그의 순결 때문에 사랑한다”
예수의 말씀.
“나를 만난 한 떼의 사람은 수가 많았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나를 알아보았다.
일체의 음란이 없이 순결한 영혼과 생각과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순결의 가치를 강조한다. 순결은 언제나 생각을 명철하게 하는 근원이다.
동정은 지능과 애정의 감수성을 동정인 사람만이 경험하는 정도까지 예민하게 하고 또 유지한다.
동정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될 수 있다. 하는 수 없이 동정으로 있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특히 여자들의 경우에 아무도 결혼할 목적으로 그들을 택하지 않았을 때에 그렇게 된다. 남자의 경우도 이러해야 될 터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정열로 인하여 조숙하게 더러워진 젊음이라면 감정과 또 흔히는 육체까지도 병든 가장밖에는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해서 지키는 동정이 있다. 충성의 정열로 주께 봉헌된 사람들의 동정이 그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동정이다!
하느님의 뜻에 맞는 희생이다! 그러나 땅의 진흙을 모르고, 하느님의 태양과 그 이슬의 입맞춤에만 입을 벌리며, 하늘을 향하여 대를 꼿꼿하게 세운 채로 있는 백합의 그 흰빛을 모두가 보존할 줄은 모른다.
오직 육체적인 충실만을 지키고, 그들이 희생한 것을 아까워하고 갈망하는 그들의 생각으로는 불충실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반밖에는 동정이 아니다. 비록 육체는 있는 그대로라 하더라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마음은 동요하고 끓어오르며, 육감적인 흥분을 내보내는데, 그것들은 자유로운 사람으로서도 불륜이 되고, 서원을 한 사람에게는 불륜 이상의 것이 되는 만족감의 상상을 쫓아버리지 않고 계속 내버려두기 때문에 그만큼 더 교묘하고 더 비난받을 만한 것이다.
그 때에는 서원은 위선이다. 외양은 있지만, 실제는 없는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만일 어떤 사람이 난폭한 사람의 뜻으로 상처를 입은 백합을 가지고 내게로 오고, 또 한 사람은 물질적으로는 다치지 않았지만, 고독한 시간을 그것으로 채우려고 마음 속에 품고 기른 관능성의 넘쳐 흐름으로 더러워진 백합을 가지고 오면, 첫번 사람은 ‘동정’이라고 부르고, 둘째번 사람에게는 이 칭호를 부인하겠다.
그리고 첫째 사람에게는 그가 원치 않은 훼손으로 인하여 그의 육체가 상처를 입고 그의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에 동정과 순교의 두 가지 영광을 주겠다.
순결의 가치는 네가 본 것과 같이 사탄이 나를 우선 음란으로 이끌어 가려고 골몰하였을 정도이다. 관능성의 죄는 영혼을 부수고, 다른 죄에 대하여 쉬운 희생물을 만든다는 것을 사탄은 잘 알고 있다. 사탄의 관심은 나를 이기기 위하여 주요 목표에 전념한 것이다.
빵, 굶주림은 욕구를 상징하는 물질적인 형태인데, 이 욕구들은 사탄이 그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것들이다. 내가 술취한 사람같이 그의 발아래 쓰러지게 하려고 사탄이 내게 제의한 음식은 아주 다른 것이다. 그 뒤에는 탐식, 돈, 권력,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 하느님의 율법에 대한 공식적인 포기가 뒤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차지하기 위한 첫 걸음은 이것이었다. 이것은 그가 아담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사용한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순결한 사람들을 비웃는다. 음란으로 더럽혀진 사람들은 순결한 사람들에게 공격을 가한다.
세례자 요한은 타락한 두 사람의 음란의 희생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이 아직 빛을 조금 가지고 있는 것은 세상 가운데에서 순결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덕택이다. 이들은 하느님의 종들이며, 하느님을 이해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되풀이할 줄 안다. 나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이 세상에서도 뵙게 될 것이다. 관능의 흥분으로 생각이 어지러워지지 않은 사람들은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따르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은 순결한 사람이다. 내 제자들 중에서 ‘순결한 사람’이다. 그의 영혼은 천사의 몸에 피어 있는 꽃이다. 요한은 그의 첫번째 스승의 말로 나를 부르고, 평화를 달라고 내게 청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활의 순결 때문에 평화를 자기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서 빛나고 있는 순결 때문에 그를 사랑하였다. 나는 이 순결에 내 가르침과 내 비밀과 내게 가장 소중하였던 ‘인간’을 맡겼다.
요한은 내 첫번째 제자였고, 나를 본 처음 순간부터 나를 사랑하였다. 그의 마음은 내가 요르단강을 끼고 지나가는 것을 본 날부터, 세례자가 나를 가리키는 것을 본 그 날부터 내 마음과 하나가 되었었다. 그후 내가 광야에서 돌아올 때에 나를 만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는 나를 만날 때까지 찾았을 것이다. 과연 순결한 사람은 겸손하고 하느님의 지식을 배우기를 갈망하여, 마치 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하늘나라 교회의 선생인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로 간다.”
예수의 다른 말씀.
“나는 네가 너의 예수의 관능성의 유혹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비록 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에게, 나를 관능 쪽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사탄이 사용한 계략을 이해하게 하였지마는, 내가 거기 대하여 말하고 다시는 그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였다. 거기 대하여 말하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이야기로 옳겨가자. 사탄의 꽃은 그의 모래 위에 내버려두고, 요한과 같이 예수를 따라오너라. 너는 가시밭으로 걸을 것이다. 그리고 장미 대신에 피방울을 발견할 것이다. 그 피는 네 대신, 네 안에서도 육욕을 이기기 위하여 그분이 흘린 피이다.
나는 어떤 비판에 대하여 미리 답변을 하겠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나와의 만남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리고 다음 날’이라는 말을 썼다. 그래서 내가 세례를 받은 다음 날 세례자가 나를 가리켰고, 요한과 야고보가 즉시 나를 따라온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은 다른 복음사가들이 광야에서 지낸 40일에 대해 말하는 것과는 반대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이렇게 읽도록 하여라. ‘어느 날(요한이 붙잡히고 난) 다음, 세례자 요한이 나를 가리키면서「저분이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하는 말을 들은 그의 두 제자가 나를 다시 보고는 나를 불렀고, 나를 따라왔다’고. 내가 광야에서 돌아온 다음에.
그리고는 우리가 모두 함께 그곳에서부터 내 복음 전도를 시작하려고 피해서 있었던 갈릴래아 호숫가로 돌아갔고, 그 두 사람은 다른 어부들에게 내게 대한 말을 하였다. 그들은 줄곧 나와 같이 길을 걸었었고, 내 집안의 친척벌되는 인심좋은 어떤 친구의 집에서 온 하루를 지냈었다. 그러나 그 대화에 앞장을 선 것은 요한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 순결로 인하여 맑은 그의 영혼은 속죄를 하겠다는 의지로 인하여 맑음의 걸작품이 되어 ‘진리’가 거기에 똑똑히 비치었다.
이와 같이 그는 하느님의 진리와 하느님의 가르침과 길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되면 서슴지 않고 앞으로 나서는 순결한 사람들과 용기있는 사람들의 거룩한 대담성을 가지고 있었다.
순박과 용맹으로 이루어진 이 사적인 성격 때문에 내가 요한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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