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영문판번역)/7권 공생활 셋째 해(하)

하사시7권[ 529. 예수께서 발레리아에게 결혼생활과 이혼에 관하여 말씀하시다. 어린 레위의 기적(2)]

Skyblue fiat 2026. 4. 10. 21:33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433~446

 529. 예수께서 발레리아에게 결혼생활과 이혼에 관하여 말씀하시다. 어린 레위의 기적(2)


(지난 회에 이어서 계속)

  예수께서는 어린 소녀를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녀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예수의 무릎에 꽃을 가져다놓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향기 나는 꽃다발에서 제 딴에는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꽃들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르면서 말한다.

“받으세요! 받으세요! 이건 당신 거예요. 아시지요?”

그녀는 지금 장미꽃 한 송이를, 그리고 향기 나는 작은 별모양의 술이 있는 넓은 흰 꽃 한 송이를 예수의 얼굴 가까이로 올린다. 예수께서는 그것들을 받아 향기 나는 꽃다발 위에 얹으신다.

그 동안 발레리아가 말하기 시작한다.

“저는 티베리아스에 가 있었습니다. 제 딸이 건강이 좋지 않고, 저희의 의사가 그리 가보라고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발레리아는 오랫동안 침묵한다. 그러다가 그녀는 얼굴빛을 바꾸며 서둘러 말한다.

“그런데 저는 참으로 울적하여 당신을 뵙기를 갈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한 의사만이 제 고통에 대한 치료방법을 찾아내실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의사란 모든 것에 대하여 정의의 말씀들을 가지고 계시는 당신이십니다… 그러니 저는 어쨌든 왔을 것입니다. 위로받으려는 이기심으로도 그렇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신 당신과 당신의 하느님에 대한 저의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도요…
그러나 선생님, 저희는 많은 것들을 듣고 있습니다. 식민지의 가장 작은 사건들에 대한 보고서들이 날마다 본시오 빌라도의 책상 위에 놓입니다. 그는 그것들을 주의 깊게 살핍니다. 그러나 그는 관련 결정들을 내리기 전에 많은 것들에 대하여 클라우디아와 상의합니다…

많은 보고서들이 당신과 나라 안에서 선동하는 히브리인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들은 당신을 민족 반란의 상징임과 동시에 시민들의 증오의 원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클라우디아가 빌라도의 불명예의 가능한 원인으로 팔레스티나 전체에서 유일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시라고 자기의 남편에게 말할 때 그녀는 정확히 본 것입니다.
빌라도는 날마다 클라우디아의 말을 듣습니다… 지금까지 그녀는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일 미래에 다른 세력이 빌라도를 지배한다면… 그래서 저는 죄 없는 제 어린 딸이 당신을 위로해드릴 것이라는 것을 들었고, 느꼈습니다…”

“부인, 당신은 연민의 정으로 가득하고 밝은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지금과 영원히 당신을 온전히 비추시고, 당신의 따님을 지켜주시기를.”

“고맙습니다, 주님. 저에게는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발레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그렇습니다. 당신에게는 그분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하느님 안에서 모든 위로를 받을 것이고, 당신이 판단하고,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는 데 있어, 특히 이 이 아이를 참 하느님의 자녀들의 행복한 생명을 가질 수 있도록 양육하는 데 있어 의로울 수 있도록 지도자를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보세요. 당신이 몰랐던 하느님, 당신이 당신네들의 신들과 당신네들의 법들과 종교들과 전혀 다른 그분과 그분의 율법을 비웃었을지도 모르는 하느님, 만일 당신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면 아직 중하지는 않겠지만 성덕을 더 심하게 어기고 당신들도 창조하신 신께 죄를 짓도록 이끌어가는 많은 일에서 성덕이 존중되지 않는 생활방식으로 틀림없이 모욕했을 하느님, 그 하느님께서 당신을 참으로 사랑하여 한 어머니로서 당신의 인간성이, 즉 내세를 알지 못하고, 따라서 아이의 육체로부터의 일시적 분리를 알지 못하는 어머니로서의 인간성이 느낀 고통을 통하여 당신을 나에게로 데려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참으로 사랑하시어 당신이 임종의 마지막 고통 속에서 이미 식어가기 시작하는 당신의 아이의 육체를 보며 거의 임종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을 때 나를 카이사리아로 인도하셨을 정도였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시어 그 아이를 당신에게 돌려주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시어 당신이 참 하느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항상 정신에 새길 수 있도록, 당신이 모든 이교적인 방종에 대한 억제력과 당신의 결혼생활의 모든 고통들에 대한 위로를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시어 또 다른 고통을 통하여 당신이 길, 진리, 생명으로 오고, 거기서 당신의 딸과 함께 정착하려는 당신의 의지를 강화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애만이라도 유년기의 시작부터 이 땅의 슬픈 날들에 위안과 평화, 구원과 빛을 소유하고, 그것들이 당신의 더 나은 부분 안에서와 감정적인 부분 안에서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으로부터 이 애를 보호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더 나은 부분이란 그것이 살아가야 하는 주위의 어두침침하고 불결한 분위기를 견뎌내지 못하는 본능적으로 착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고, 감정적인 부분이란 그 착함에 있어서 무질서한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인, 애정들에 있어 당신은 이교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당신이 양육되어 온 이교국의 탓입니다. 참 종교 안에서 사는 사람만이 애정들에 올바른 가치, 정도, 표현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알지 못하는 어머니인 당신은 당신의 딸을 무질서하게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애가 죽으려 하는 것을 보고, 그 애의 임박한 죽음으로 미치다시피 하게 되어 그 상실에 대하여 절망적으로 반항했습니다. 마치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미치광이에게 붙잡혀, 만일 그가 떨어지기만 하면 나올 수 없는, 아니 자기의 마지막 사랑의 입맞춤을 받을 차디찬 시체로도 돌아올 수 없을 심연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는 사람처럼, 그와 똑같이 당신은 당신의 딸 파우스티나가 허무의 심연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더 이상 자기의 딸을 가지지 못하게 될 가엾은 어머니! 그녀는 그 딸을 육체로도, 영혼으로도 가지고 있지 못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허무. 영적인 생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인 끝장, 가혹한 끝장입니다.

다정하고 충실한 이교도 아내인 당신은 당신의 남편을 당신의 지상의 신처럼 육체적인 사랑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는 자기와 동등한 부인의 품격을 노예의 지위로 떨어뜨리며 자기를 숭배하게 만드는 당신의 잘생긴 신이었습니다. 아내는 자기의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겸손하고, 충실하고, 정숙해야 합니다.

나는 동의합니다. 남자인 그는 가장입니다. 그러나 가장이 폭군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이란 자기 아내의 육체만이 아니라 더 나은 부분에도 어떤 변덕스러운 짓을 해도 합법적인, 변덕스러운 주인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당신들은 말합니다. ‘카이우스, 당신이 있는 곳에 카이아 저도 있어요.’
방종이 당신들의 신들의 이야기에도 있는 곳의 불쌍한 여인들, 당신들 중에서 정숙하지 않거나 억제되지 않은 여자들은 어떻게 그들의 남편들이 있는 곳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방탕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여자가 자기가 지금까지 신으로 숭배하던 남편이 짐승 같은 동물성에 지배되고, 추잡스럽고, 간통하고, 생각이 없고, 무관심하고, 자기 아내의 감정과 품격은 아랑곳하지 않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혐오감을 가지고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지금까지 신으로 숭배했던 그에 대하여 심금이 끊어지는 지독한 고통을 느끼고, 그에 대한 자기의 모든 숭배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울지 마시오. 나도 모든 것을 압니다. 백부장들의 보고들이 없어도요. 부인, 울지 마시오. 오히려 당신의 남편을 질서 있게 사랑하기를 배우시오.”

“저는 더 이상 그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사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그를 경멸합니다. 저는 그를 본받음으로써 저 자신을 낮추지 않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저희 사이의 모든 것은 끝났습니다. 저는 그가 떠나는 것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않고… 떠나가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가 떠나준 것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그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를 찾지 않겠습니다. 도대체 언제 그가 제 동반자였습니까?

제가 그에 대한 제 숭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자 저는 그의 행동을 기억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제가 갓 시집오고 제 딸의 출산이 임박했을 때 병든 제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그를 따라와야 하는 것 때문에 울 때 그가 제 마음을 동정했습니까? 그는 제 눈물과 구역질을 보고 자기의 친구들과 함께 어리석게 비웃으면서 자기의 옷을 더럽히지 말라고 저에게 경고했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외국에서 향수에 젖어 있을 때 그가 제 곁에 있어주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제 몸의 상태로 인하여 제가 갈 수 없는 연회에 자기의 침구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가 저와 함께 갓 태어난 우리 아기의 요람을 들여다보았습니까? 사람들이 그에게 우리 딸을 보여주었을 때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거의 이 애를 땅에 파묻었으면 좋을 것 같구먼. 나는 딸들을 얻으려고 결혼의 멍에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어.’
그는 정결의식이 무언극이라고 말하면서 그 의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울자 그는 나가며 말했습니다. ‘그 애에게 리비티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 여신에게나 바쳐요.’

그리고 파우스티나가 죽어갈 때 그가 저의 고뇌를 함께 나누었습니까? 당신께서 오시기 전날 밤에 그는 어디 있었겠습니까? 발레리안의 집 연회에 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사랑했었습니다. 당신께서 바로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는 저의 신이었습니다. 저는 제 남편에게 있는 모든 것을 좋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제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뜻에 가장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노예였습니다. 당신께서는 무엇 때문에 제가 그를 멀리하는지 아십니까?”

“예, 나는 압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영혼이 당신의 육체 안에서 깨어났고, 당신은 더 이상 암컷이 아닌 여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저는 제 집을 존경할 만한 집으로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안티오키아의 집정관을 돕도록 전근되도록 신청하고, 자기를 따라오지 못하도록 저에게 명령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소녀노예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오! 저는 그를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저는 제 딸을 가지고 있으니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일부분을, 모든 것(the Everything)의 작은 일부를, 당신이 유덕하게 되는 데 도움이 될 만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이십니다. 당신의 딸은 당신에게 모든 것이신 분에 대한 불의의 원인(cause)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정의의 원인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딸을 위하여, 그리고 그 딸과 함께 당신은 유덕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로해드리려고 왔는데, 당신께서 저를 위로해주시는군요. 그러나 저는 이 어린 소녀를 자기의 구세주께 합당한 사람이 되게 만들려면, 제가 이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도 당신께 여쭈어보려고 왔습니다. 저는 개종자가 되고, 이 아이도 그렇게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남편은 어떻게 하고요?”
“오! 그와는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그의 아내입니다. 착한 아내의 의무는 자기의 남편을 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저와 이혼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만, 아직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할 때까지 당신은 당신들의 법률에 의해서도 그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아내로서 당신의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당신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자리는 당신의 딸에 대하여, 그리고 하인들과 세상 사람들에 대하여 당신의 남편 다음으로 집안에서 둘째 자리입니다.

당신은 그가 나쁜 모범을 보였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덕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의무를 당신에게 면제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는 떠났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딸과 하인들에게 그를 대신해야 합니다.

당신들의 모든 풍습이 비난받을 만한 것은 아닙니다. 로마가 덜 부패했을 때 여자들은 정숙했고, 근면했고, 덕행과 믿음의 생활로 신을 섬겼습니다. 설령 그들의 이교도로서의 불쌍한 처지로 인하여 거짓 신들을 섬겼다 해도, 그 사상만큼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종교사상에, 종교와 신에 대한 공경의 필요에 그들의 덕행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그 신의 진짜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그 존재는 느끼고 있었는데, 그들이 느끼는 그 신은 신화적인 전설들에 따라 타락한 신들이 살던 난잡한 올림포스 산의 신들보다 위대한 분이었습니다. 당신들의 올림포스 산은 존재하지 않고, 당신들의 신들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옛 미덕들은 사람들이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들이 유덕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의 결과였습니다. 그것들은 당신들이 숭배했던 신들에 대하여 당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느꼈던 의무들의 결과였습니다.

세상, 특히 우리 히브리 세계의 눈으로 볼 때 당신들은 존재하지 않은 것을 공경함으로 인하여 어리석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덕행들, 그 존경, 그 의무들은 원하고 참된 정의에게, 모든 인간과 모든 것의 오직 한 분뿐이시고 전능하신 창조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헛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선과 믿음과 종교를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이 자기가 진리 안에 있다고 확신한다면, 선은 항상 선이고, 믿음은 항상 믿음의 가치를 가지고 있고, 종교는 항상 종교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집안에, 당신의 자리에 그 집의 기둥과 빛으로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정숙하고, 근면하고, 충실했던 당신들의 옛 여인들을 본받으라고 권고합니다. 당신이 홀몸이라고 해서 당신의 하인들의 존경을 잃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지금까지 그들은 두려움으로, 그리고 때로는 미움과 반항의 숨은 감정을 가지고 당신을 섬겼습니다. 지금부터 그들은 사랑으로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노예들은 고통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당신의 기쁨은 그들에게 쓰디쓴 자극이었습니다. 당신의 고통은 그 단어의 가장 증오하는 의미에서의 여주인이라는 차가운 빛을 당신에게서 없애주고, 동정의 따뜻한 빛으로 다시 당신을 감싸줄 것입니다.

발레리아, 당신은 하느님, 당신의 딸, 그리고 당신의 하인들에게 사랑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당신이 더 이상 아내가 아니고 이혼녀가 되었다 해도(예수께서는 일어서신다), 법적인 별거도 자기의 혼인서약에 충실해야 하는 아내로서의 의무를 없애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당신은 우리 종교를 포옹하고 싶어 합니다. 하느님의 계명들 중 하나는 아내는 자기 남편의 몸의 몸이고, 하느님께서 유일한 한 몸을 만드신 것을 아무도, 그 어떤 것도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혼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음란, 원죄, 남자들의 타락의 악한 열매로 인하여 온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무죄한 아담에게, 따라서 죄로 흐려지지 않은 지성으로 말하는 아담에게 영감을 주시며, 남편과 아내는 한번 결합되면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음이나 질병의 재앙으로 인해서만 다른 몸에서 갈라집니다.

끔찍한 죄를 피하기 위하여 허락된 모세의 이혼은 여자에게 매우 보잘것없는 자유만을 줄 뿐입니다. 이혼한 여자는 그대로 남아 있든, 재혼하든 사람들의 생각에 항상 열등합니다. 하느님의 판단에 따르면, 만일 여자가 그녀의 남편의 악의로 인하여 이혼당하고 이혼녀로 남아 있다면, 그녀는 불행한 여자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녀가 그녀 자신의 수치스러운 죄로 인하여 이혼당하고 재혼한다면, 그녀는 죄인, 간부(姦婦)일 뿐입니다.

당신은 나를 따르기 위하여 우리 종교를 수용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인 나는 완전한 종교의 시대가 왔으므로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을 당신에게도 말합니다. 즉 하느님께서 결합시키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자기의 배우자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재혼하는 남자나 여자는 항상 간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혼은 남자와 여자를 음란죄를 지을 수 있는 처지에 놓아두기에, 그것은 합법적인 매음입니다. 이혼당한 여자가 살아 있는 남자의 과부로, 충실한 과부로 남아 있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이혼한 남자는 결코 자기의 첫 번째 결혼에 충실하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다른 결합으로 넘어가면, 사람의 수준에서 짐승의 수준으로 내려갑니다. 짐승들은 그 순간의 관능의 유혹에 따라 암컷을 바꿀 수 있습니다.

가족들과 조국에게 위험한 합법적인 간음은 죄 없는 어린이들에게 죄가 됩니다. 이혼한 부부의 자녀들은 자기의 부모들을 심판하게 됩니다. 자녀들의 심판은 엄한 것입니다! 적어도 부모 중 한 사람은 자녀들에 의하여 단죄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단절된 애정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다음에 죄 없는 자녀들에게서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빼앗아가는 이혼의 가정적 결과들에 자녀들을 맡은 배우자의 새로운 결혼이 덧붙여지면, 부모 중의 한 사람이 단절된 애정생활의 비운에 또 다른 단절이 더해집니다. 그것은 갈라졌거나 새 사랑과 재혼에서 얻은 자녀들에 대한 사랑에 완전히 몰두해 있는 부모 중 다른 한 사람의 애정을 다소간 완전히 상실하는 단절입니다.

이혼한 남자나 여자의 새 결합의 경우에 결혼식과 결혼생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결혼이라는 것의 의미와 본질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배우자 중 한 사람의 죽음과 그 결과로 남아 있는 사람의 홀아비나 과부의 신분만이 재혼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의 운명을 조절하시는 분의 항상 의로운 결정에 승복하고, 죽음이 결혼상태를 끝냈을 때 순결하게 남아 자기를 온전히 자녀들에게 헌신하고, 자녀들 안에서 죽은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모든 물질성이 없어진 거룩하고 참된 사랑입니다.

가엾은 어린이들! 죽음이나 가정의 파탄 후에 둘째아버지나 둘째어머니의 냉혹함을 맛보고, 자기들의 형제들이 아닌 다른 자녀들과 애무가 나누어지는 것을 보는 고통을 경험하다니!
안 됩니다. 내 종교에는 이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새 결혼을 계약하기 위하여 민법에 따라 이혼하는 남자는 간통자이고, 죄인일 것입니다. 인간의 법이 내 칙령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내 종교에서의 결혼은 더 이상 그 목적을 위하여 지명된 증인들의 면전에서 이루어지고 승인되는 민법적인 계약이나 정신적인(moral) 약속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성사(sacrament)가 되도록 내가 그 계약에 줄, 성화하는 힘으로 규정되고, 확인되고, 성화되는 불가분의 유대가 될 것입니다.
당신이 알아듣도록 말한다면, 그것은 신성한 의식일 것입니다. 그 힘은 결혼의 모든 의무를 거룩하게 실천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겠지만, 유대의 불가해소성(dissolubility of the bond)의 선고도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결혼은 이성인 두 사람 사이의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상호간의 계약입니다. 그러나 내 법이 시행될 때부터 그것은 부부들의 영혼들에까지 확장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하느님의 사제들을 통하여 그분께서 재가하시는 영적인 계약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아무것도 하느님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결합시키신 것은 어떤 권위도, 어떤 법도, 인간적인 변덕도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의식(ritual)인 ‘카이우스, 당신이 있는 곳에 카이아, 저도 있겠습니다’는 내세까지, 우리의, 그리고 내 의식(rite) 안에서 지속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남편의 자기의 아내로부터의 일시적인 분리에 지나지 않고, 사랑해야 하는 의무는 죽음 후에도 지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과부들이 순결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순결할 줄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또한 부부는 상대방을 개선할 상호간의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흔들지 마시오. 이것은 의무입니다. 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이 의무를 준수해야 합니다.”

“선생님, 오늘 당신께서는 엄격하십니다.”

“아닙니다. 나는 선생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 앞에 은총의 생명 안에서 자랄 수 있는 한 사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지금의 당신이 아니라면, 나는 당신에게 덜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좋은 기질을 가지고 있고, 고통은 당신의 성품(character)을 점점 더 깨끗하고 견고하게 만듭니다. 어느 날 당신은 나를 기억하고, 내가 이렇게 했던 것에 대하여 나를 찬미할 것입니다.”

“제 남편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죄 없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증오심 없이, 복수심 없이, 그러나 헛된 기다림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미련 없이 정의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럼 당신께서는 제가 그를 잃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나는 압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를 잃은 것이 아니라, 그가 당신을 잃은 것입니다. 그는 당신에게 걸맞지 않았습니다.

자, 들으시오… 이것은 엄격합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은 나를 위로해주기 위하여 장미꽃들과 죄 없는 어린이의 미소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는 당신이 써야 할 버림받은 아내들의 가시관밖에 마련해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시오. 만일 우리가 시간 안에서 파우스타가 죽어가고 있었던 그날 아침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당신의 마음이 당신의 딸과 당신의 남편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을 반드시 잃어야 해서 둘 중 한 사람을 골라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고르시겠습니까?…”

부인은 대화가 시작될 때 몇 방울의 눈물을 흘린 후에 얼굴이 창백해졌으나 고통 중에서 용맹하게 곰곰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몸을 숙여 바닥에 앉아 예수의 발 주위에 작은 흰 꽃들을 놓으며 혼자 놀고 있는 자기의 어린 딸을 껴안으며 외친다.

“저는 이 애를 택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애에게 제 마음 자체를 줄 수 있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가 배운 대로 이 애를 키울 수 있으니까요. 제 딸! 그리고 내세에서도 결합해 있어 저는… 항상 이 애의 어미로, 이 애는 항상 제 딸로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녀가 자기의 딸에게 키스세례를 퍼붓자 그 어린 딸은 다정한 미소와 함께 자기 엄마의 목에 매달린다.

“말씀해주십시오. 오! 선생님,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사람들에게 영웅적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시는 당신께서 저희 둘 다 당신의 나라 안에 있으려면, 제가 이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이 애에게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가르쳐야겠습니까?…”

“특별한 행위들이나 말들은 요구되지 않습니다. 완전하게 되시오. 그러면 이 아이는 당신의 완전을 반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시오. 그러면 이 아이는 사랑하기를 배울 것입니다. 땅 위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사시오. 그러면 이 아이는 당신을 본받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시오. 나중에 당신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사랑하신 내 아버지께서 당신들의 영적인 필요들을 돌보실 것이고, 그러면 당신들은 내 이름을 가질 믿음 안에서 지혜롭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행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악(Evil)에 대한 필요한 모든 억제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이웃에 대한 사랑 안에서 당신은 고독의 우울함에 대한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과 당신의 딸에게 용서하기를 가르치시오. 당신은 내 말의 뜻을 이해하겠습니까?”

“예, 저는 이해합니다… 그것은 의로운 말씀입니다… 선생님, 저는 당신을 떠납니다. 불쌍한 여자를 축복해주십시오… 충실한 배우자를 가진 거지보다 더 불쌍한 여자를요…”

“지금 당신은 어디 머무르고 계십니까? 예루살렘?”

“아닙니다. 저는 베텔에 있습니다. 몹시 착한 요안나가 자기의 저택으로 저를 보냈습니다… 저는 거기서 너무 괴로웠습니다… 요안나가 예루살렘으로 올 때까지 저는 거기 머무를 것입니다. 그녀는 머지않아 예루살렘으로 올 것입니다. 그녀는 봄에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당신의 어머니와 다른 여자제자들과 함께 유다로 올 것입니다.
저는 얼마 동안 그녀와 함께 있겠습니다. 그 다음에 다른 여자들이 오면, 저는 그 여자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제 상처를 그전에 낫게 했을 것입니다.”

“시간과, 특히 하느님과 당신의 어린 딸의 미소가 그렇게 해줄 것입니다.
발레리아, 안녕히 가세요. 당신이 착한 영혼으로 찾는 참 하느님께서 당신을 위로해주시고, 보호해주시기를.”

예수께서는 한 손을 소녀의 머리 위에 얹으시고 그녀에게 강복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닫힌 문으로 다가가시며 물으신다.
“당신은 여기 혼자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노예에서 해방된 여자 한 사람과 함께 왔습니다. 마차가 마을 어귀 숲속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까요?”

“나는 성전봉헌 축일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겠습니다.”

“선생님, 저도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제 새 생활을 위하여 당신의 말씀을 필요로 합니다…”
“가시오. 그리고 염려하지 마시오. 하느님께서는 도움을 찾는 사람들을 도움 없이 두시지 않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오! 저희의 이교세계는 정말로 슬픕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참된 삶이 없는 모든 곳에 슬픔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사람들은 웁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더 이상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여인은 몸을 깊이 숙여 절하고, 어린 소녀에게 무언가를 암시한다. 그러자 소녀는 얼굴을 들고,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며 되새처럼 명랑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베, 도미네, 예수”

예수께서는 이미 모양이 만들어진 그 작은 입술들에서 죄 없는 입맞춤을 받으시려고 몸을 숙이시고 다시 한 번 소녀를 축복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방으로 돌아와 생각에 잠기신 채 방바닥에 흩어져 있는 꽃들 가까이에 앉으신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베드로의 성실한 얼굴이 나타난다.

“너냐? 들어오너라…”

“아닙니다. 당신께서 저희에게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는 춥습니다. 참 아름다운 꽃들이로군요! 아주 비싸겠습니다!”

베드로는 말하면서 자기의 선생님을 살펴본다.
“그렇다. 이것들은 아주 값비싸다. 그러나 그 몸짓과 그것이 행해진 방식은 꽃들보다 더 가치 있다. 이 꽃은 클라우디아의 로마인 여자 친구 발레리아의 어린 딸이 나에게 가져온 것이다.”

“예! 저도 압니다! 알아요! 그렇지만 왜요?”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내가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발레리아가 그런 친절한 생각을 한 것이다. 그녀는 죄 없는 어린이의 꽃들이 나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로마여자가!… 그런데 저희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신께 고통만을 드리는군요… 유다의 의심이 맞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마차 한 대가 멈추어 서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여자는 틀림없이 로마여자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베드로는 몹시 궁금해 하며 말한다.

“유다는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는 이렇게 묻기만 하신다.

“밖에 있습니다. 제 말씀은 길에, 숲 근처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누가 당신께 왔는지 보고 싶어 합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유다는 이미 부엌에 있다. 그는 예수께서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돌아서며 말한다.
“설령 당신께서 그것을 부인하기를 원하신다 해도, 당신께서는 그 여자가 무언가에 대하여… 불평하려고 왔다는 것을 부인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여자들은 아직도 더 할 말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여자들이 할 일이라고는 그저 염탐하고, 고자질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것을 말한다. 시몬은 이미 그 여자가 누구인지를 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모두에게 그 여자가 왜 왔는지 말하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행복한 사람들에게도 위안과 조언이 필요할 수 있다.

안드레아야, 이층으로 올라가서 어린 소녀가 가져온 꽃들을 주워서 그것들을 어린 레위에게 가져다주어라.”
“왜요?”

“왜냐하면 지금 그 애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애가 죽어가고 있다고요? 그렇지만 저는 3시에 그 애를 보았는데, 그 애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요.”
바르톨로메오가 몹시 놀라서 말한다.

“그 애는 건강했었다. 그러나 그 애는 어두워지기 전에 죽을 것이다.”

“그 애가 그렇게 심하게 아프다면, 그 애는 꽃들을 즐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 그러나 낭패해 있는 그 집에서 구세주가 보낸 꽃들이 빛나는 말을 해줄 것이다.”

예수께서는 앉으신다. 그 동안 그들 모두가 인생의 무상함에 대하여 말한다. 그리고 엘리자가 겉옷을 입으며 말한다.
“저도 안드레아와 같이 가겠습니다… 그 가엾은 어머니!…”

나는 안드레아와 엘리자가 꽃들을 손에 들고 멀어져 가는 것이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침묵하고 계신다. 유다도 잠자코 있다. 그는 망설인다. 예수께서는 침묵하시나, 엄격해보이시지는 않는다… 유다는 알고 싶은 욕망과 양심의 평화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좌불안석의 불안에 추동되어 그분의 주위를 걸어 다닌다.

마침내 그는 베드로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그에게 물어본다. 그는 베드로와 말한 다음에 자신감을 회복하고, 식탁의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글을 쓰고 있는 마태오에게로 가서 그에게 집적거린다.

안드레아가 뛰어 돌아온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선생님… 소년은 정말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갑자기… 그들은 미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자 아주머니가 ‘주님께서 이것들을 보내셨어요’ 하고 말했을 때 저는… 그들이 ‘아이의 상여에 놓으라’는 뜻으로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아이의 부모가… 동시에 말했습니다. ‘오! 맞아! 뛰어가서 그분을 모셔 와요. 그분께서는 이 애를 고쳐주실 거예요.’”

“믿음의 말이다. 가자.”

예수께서는 거의 뛰어 나가신다. 물론 그들 모두가 그분을 따라가고, 늙은 요한도 뒤에서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 집은 마을의 끝에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내 그곳에 도착하시어 열린 문을 막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시며 나아가신다. 그분께서는 복도 끝에 있는 한 방으로 똑바로 가신다. 왜냐하면 그 집은 아마 형제들끼리인 많은 사람들이 사는 넓은 집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부모와 엘리자가 방안에 있는 급조된 침대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 집에 평화”

그들은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야 비로소 그분을 본다.

그 불행한 부모들은 침대를 떠나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린다. 엘리자만이 거기 남아 식어가는 팔다리를 방향성 물질로 문지르는 일에 골몰해 있다.

소년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다. 그의 몸은 벌써 죽은 사람처럼 무겁게 축 늘어져 있고, 얼굴은 밀랍 빛깔이고, 콧구멍은 검고, 입술은 보랏빛이다. 그는 그 작은 가슴에 경련을 일으키며 어렵게 숨을 쉬는데, 호흡 간의 간격이 너무 길어 매번의 호흡이 마지막 호흡인 것 같다.

아이의 어머니는 예수의 발 앞에 얼굴을 대고 운다. 아버지도 바닥에 엎드린 채로 말한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는 다른 말을 하지 못한다.

그분께서는 팔을 내미시며 말씀하신다.
“레위야, 나에게로 오너라.”

다섯 살쯤 되었을 그 아이는 마치 그가 자고 있는 동안에 누군가가 큰 소리로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떤다. 그는 어렵지 않게 일어나 앉아 그 작은 두 주먹으로 자기의 두 눈을 비빈 다음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다가 미소 지으시는 예수를 보고, 침대에서 아래로 뛰어내려 작은 속옷 바람으로 그분을 향하여 씩씩하게 걸어간다.

그의 부모는 몸을 숙이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영원히 좋으신 분!”
엘리자가 감탄한다.

“오!”
사도들과 복도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사람들이 외친다.

그러자 그들은 방바닥에서 얼굴을 들고 자기들의 어린 아들이 언제 임종 직전까지 갔었느냐는 듯이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거기 있는 것을 본다…

각 개인의 성향에 따라 사람들은 기쁨으로 웃고, 울고, 소리 지르고, 침묵한다. 여기서는 기쁨이 거의 공포스러운 놀람인 것처럼 침묵의 원인이 된다… 방금 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너무 달라 고통으로 망연자실해 있던 부모들은 기쁨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예수께서 소년을 품안에 안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마침내 기쁨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되자 침묵에 뒤이어 기쁨과 찬미의 감탄사들이 섞인 말들의 홍수가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동시에 쏟아져 나온 이 말들의 홍수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내가 그들의 말에 따라 이 사건을 재구성한다면 이렇다. 정오에 텃밭에서 놀고 있던 어린이가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왔었다. 그 애의 할머니가 그 애를 안고 화덕 곁에 있자, 그 애는 나아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오후 세시쯤 아이는 배속에 있는 것들을 토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임종 직전까지 갔었다. 전형적인 급성복막염이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병의 초기증상들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의사를 데려왔었다. 그 의사는 그 동안에 토하기 시작한 아이를 보고 나서 말했다.

“이 애는 살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돌아갔다… 과연 아이의 병세는 급전직하하고, 그의 몸은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그 갑작스러운 불행의 고통 속에서 구원이 임박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 안드레아와 엘리자가 꽃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예수께서 이 꽃을 레위에게 보내십니다.”
그들은 마치 내적인 빛으로 비추어진 것처럼 말했었다.

“예수께서 이 애를 살려주실 것이다.”
“당신께서 이 애를 살려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영원히 찬미 받으십시오! 당신의 꽃들! 소망! 믿음! 오! 예! 저희에 대한 당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
그러나 당신께서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복되신 분이시여! 당신께서 저희에게 원하시는 모든 것을 요구하십시오! 마치 저희가 당신의 노예들인 것처럼 저희에게 명령하십시오! 저희는 당신께 모든 것을 빚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여전히 아이를 안고 계시는 채로 그들의 말을 들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지칠 때까지, 그토록 심하게 긴장했었던 그들의 신경이 그들의 감정을 토로함으로써 이완될 때까지 말하도록 허용하신다.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다정하게 말씀하신다.

“나는 어린이들과 충실한 마음들을 사랑합니다. 놉의 주민 여러분 모두는 나에게 아주 친절하십니다. 만일 내가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주어야 하겠습니까?
나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고통으로 인하여 당신들이 생명의 원천을 잊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길을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럼 당신께서는 왜 직접 오지 않으셨습니까, 주님? 혹시 당신께서는 저희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염려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사랑으로 받아들일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사람들과 그들의 마음의 상태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을 확신할 필요가 있는 몇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나는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그분께서 응답하신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이제는 안심하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점점 더 깊어지게 하시오.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
레위야, 잘 있어라. 네 엄마에게 가거라. 부인,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에 대한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고 지금 당신의 태중에 있는 아이도 주님께 바치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주인장. 당신의 영혼을 정의 안에 보존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떠나시려고 돌아서서, 복도에 몰려 있는 친척들, 즉 기적적으로 치유된 아이의 조부모, 삼촌들, 사촌들을 어렵게 헤치며 지나가신다. 그들 모두는 예수께 말하고,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께 축복받고, 그분의 옷과 손에 입 맞추기를 원한다… 그리고 많은 친척들 다음 마을 사람들도 같은 일을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기적으로 축복받은 집의 식구들이 그들의 기쁨을 만끽하도록 내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길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지금은 어두워진 길로 기쁨의 때 으레 있는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놉 사람들 전체가 예수를 요한의 작은 집으로 다시 모시고 간다. 선생님을 조용히 놔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읍내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는 사도들의 모든 권위가 필요했고, 만일 그들이 예수를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면 이튿날 아침 모두 그곳에서 떠나겠다고 위협하는 더 강력한 방법을 그들의 권위에 덧붙여야만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피로하신 분께서 쉬실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