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397~p406

524. 베타바라에서. 세례자를 기억하며
1946. 11. 7.
“선생님, 당신께 평화!”
며칠 전에 앞으로 가서, 그들이 모아놓은 병자들과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원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목자제자들이 인사드린다.
“너희에게 평화. 너희는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느냐?”
“저희는 사흘 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나는 길에서 지체했다. 병자들에게로 가자.”
“저희는 병자들이 이웃 마을들로 왔다 갔다 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도록 천막 몇 채를 쳤습니다. 저희는 병자들을 위하여 저희 목자친구들에게서 양젖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양떼들을 데리고 저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 보호물이 될 수 있을 만큼 우거진 작은 숲으로 예수를 인도하며 말한다.
그곳에는 말뚝들에 의하여 지지되거나 두 개의 나무줄기들 사이에 펼쳐놓은 스무 채쯤의 작은 천막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비참한 병자들의 무리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은 지금 오고 계시는 분께서 누구신지 알게 되자마자 여느 때의 애원을 쏟아낸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들이 오래 기다리게 하기를 원치 않으시거나 그분의 큰 키로 인하여 천막 안에서 똑바로 서 계실 수가 없으므로 몸을 숙이시며 천막마다 그분의 얼굴과 미소를 보여주신다. 그분의 미소는 이미 하나의 은총이다. 그분의 등 뒤의 해가 예수의 그림자를 작은 병상들과 야윈 얼굴들이나 생기가 없는 사지들에 드리운다. 그분께서는 몇 마디만을 말씀하신다.
“믿는 당신들에게 평화”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다음 천막으로 가신다. 그런데 외침소리가 예수를 따라온다. 그분의 말씀이 반복될 때마다 반복되는 외침, 방금 떠나신 천막에서 들리는 외침은 마치 그 전의 천막에서의 외침의 메아리인 것 같다.
“나는 나았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방금 전까지 어두운 천막 아래 누워 있던 많은 병자들이 바깥으로 나와 그분의 뒤에 모여든다. 그들 모두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팡이들이나 목발들을 집어던지고, 지금은 불필요하게 된 들것들의 담요들로 자신들의 몸을 감싸고 더 이상 소용없는 붕대들을 풀어버리고, 특히 병이 나은 기쁨으로 환호한다.
지금은 그들 모두가 치유되었다. 예수께서는 지극히 다정한 미소와 함께 돌아보시며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당신들의 믿음을 갚아주셨소. 함께 그분의 선하심을 찬미합시다.”
예수께서 시편의 노래를 시작하신다.
“온 땅이여, 주님께 환호하고 기쁘게 주님을 섬겨라. 기쁨의 노래들을 부르며 그분의 현존 안으로 오너라. 주님이신 그분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께서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을 알아라, 운운.”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여 그분을 따라한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어떤 사람들은 입술을 움직이며 노래를 따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분명히 노래하고 있다. 그들의 얼굴들로부터 그것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완전하지만 메마른 노래보다 분명히 이 보잘것없는 콧노래를 더 잘 받아들이실 것이다.
마티아가 예수께 말씀드린다.
“오, 주님,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 요한을 언급해주십시오.”
“이 장소가 내 마음에 세례자의 모습을 훨씬 더 생생하게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시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가는 풀로 덮여 있는 약간 높은 땅으로 올라가 말씀을 시작하신다.
“여러분은 무엇을 찾아 이곳에 오셨습니까? 병자들이여, 여러분의 육체의 건강을 찾아왔는데, 그것은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복된 소식을 전하는 말씀을 찾아 왔는데, 여러분은 그 말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육체의 건강은 여러분의 영혼의 건강을 찾도록 여러분을 준비시켜야 하고, 이와 마찬가지로 복된 소식을 전하는 말씀도 정의를 추구하도록 여러분의 의지를 준비시켜야 합니다. 만일 육체의 건강이 살과 피의 기쁨에만 한정되고 영혼에 관해서는 무력한 채로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에게 건강의 선물을 주신 주님을 찬미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대한 여러분의 감사는 환희의 순간 후에 끝나서는 안 됩니다. 감사는 그분을 사랑하겠다는 착한 뜻 안에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모든 하느님의 선물은 비록 그것이 적극적인 힘으로 충만하다 해도 사람 안에 자기 자신의 영혼으로 그것을 하느님께 보상해드리겠다는 뜻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곳은 요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분명히 그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말을 했지만, 그 말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결과들을 나타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차이가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말들을 들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의지들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들에 의하여 나를 받아들이도록 실제로 준비되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들의 거룩함을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나를 거스르도록 준비되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불의를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 그 말들은 보초의 외침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그 외침은 하나뿐이었는데도, 영혼들의 군대는 나누어졌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자기들의 지도자(Leader)를 따르기 위하여 준비했고, 어떤 이들은 나와 나를 따르는 사람들과 싸우기 위하여 무장하고, 연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패배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부에서 분열한 나라는 강할 수 없고, 외국들은 그 나라를 굴복시키기 위하여 그 상황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개별 영혼들도 이와 같습니다. 모든 사람 안에 좋고 나쁜 힘들이 있습니다. 지혜는 사람 전체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좋은 부분만이 다스리게 하기를 원합니다. 한 부분만을 여왕으로 선택하려는 의지에 관해서는 세상의 자녀들이 더 능란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악하기를 원할 때에는 완전히 악할 줄을 압니다. 그들은 마치 그들 안에서 반항할 수 있는 좋은 부분들은 쓸모없는 옷인 것처럼 버립니다.
반대로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빛(the Light)을 향하여 고무된 사람들은 세상의 자녀들을 본받아 그들 안에서 저항하려고 시도하는 악한 부분들을 옷들을 버리는 것처럼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만일 눈이 여러분에게 죄짓게 한다면, 그 눈을 빼버리고, 만일 손이 여러분을 죄짓게 한다면, 그 손을 잘라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눈이나 두 손을 가지고 영원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인 채로 영원한 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세례자는 우리 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그를 알았습니다. 그의 영웅적인 모범을 따르시오. 그는 주님과 자기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에 충실하기 위하여 눈이나 손보다 훨씬 더한 것 즉 자기 목숨까지 주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그의 제자였고,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들이 여러분에게 가르친 것을 행함으로써, 그들의 의로운 행실을 본받음으로써, 그리고 여러분의 전 존재들로 영웅적인 정도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께로 인도하는 선생들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을 증명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건강과 지혜의 선물은 무익하게 남아 있거나 비난으로 바뀌지 않고, 반대로 그분의 나라에서 모든 이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나와 여러분의 아버지의 처소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됩니다.
여러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세례자의 희생 즉 순교로 끝난 희생의 일생과 내 희생 즉 내 선구자의 순교보다 수백 배 더 위대한 순교로 끝날 내 희생의 일생이 여러분에게 무익한 것이 되지 않게 하시오.
의롭게 되고, 믿음을 가지고, 하늘의 말씀에 순종하고, 새 율법 안에서 여러분 자신들을 새롭게 하시오. 복음이 여러분을 착하게 만들고, 그래서 영원한 날에 관대하심(Bounty) 즉 지극히 높으신 주님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하여, 여러분에게 참으로 좋은 소식이 되게 하시오. 참 목자들을 거짓 목자들로부터 구별하기를 배우고, 나에게서 배운 생명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줄 목자들을 따르시오.
빛의 명절 즉 성전봉헌 축일이 임박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에 빛이 없다면, 명절과 주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밝히는 수많은 빛들은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사랑은 빛이고, 그 등 걸이는 착한 행실들로 하느님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성전의 봉헌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의 영혼을 하느님께 바치고, 사랑을 통하여 그것을 재봉헌하는 것은 주님께 훨씬 더 크고, 좋고, 유쾌하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의로운 영혼들은 의로운 육체들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체는 제단을 둘러싸고 있는 벽들과 같고, 영혼은 주님의 영광이 그 위에 내려오는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죄들로 더럽혀졌거나 정욕과 악한 생각들로 좀 먹힌 육체와의 접촉으로 더럽혀진 제단들에는 내려오실 수 없습니다.
착하게 사시오. 끊임없는 삶의 시련들 속에서 착하게 살려는 수고는 미래의 상급으로 백배로 보상되고, 지금도 하루하루가 끝날 때 의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평화로 보상됩니다. 그들이 쉬려고 누울 때, 불의하게 즐기기를 원하여 불안한 광란에 붙잡히는 데만 성공하는 사람들의 악몽 대신 가책이 없는 그들의 베개를 발견할 때의 평화 말입니다.
부자들을 부러워하지 마시오. 아무도 미워하지 마시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가지기를 바라지 마시오.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영원한 예루살렘의 문들을 여는 열쇠라는 것을 생각하고, 여러분의 처지에 만족하시오.
나는 여러분을 떠날 것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이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제자들을 위하여 자리들을 마련하러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특별히 내가 다시 보지 못할 여러분의 자녀들과 여러분의 아내들에게 강복합니다. 그리고 남자 여러분… 그렇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도 강복하기를 원합니다… 내 강복은 더 강한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더 약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도록 도울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나를 배반할 사람들에게만 내 강복이 무가치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들 모두를 함께 강복하시고, 그 다음에는 여자들에게 강복하시고, 어린이들에게 입 맞추어주시고, 그분과 여전히 함께 있는 다섯 사도들과 목자제자들과 함께 여울로 돌아오신다.
525. 놉으로 돌아오시며. 예수의 전지하심
1946. 11. 8.
그들은 이미 올리브 밭의 비탈 위에 있고, 예리코, 트코아, 베타니아에 남겨두었던 세 쌍의 사도들도 다시 선생님과 함께 있다. 그러나 가리옷의 유다는 여전히 없고, 사도들은 작은 소리로 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무한히 슬퍼하신다… 사도들은 그것을 보고 서로 말한다.
“이것은 분명히 라자로 때문이야. 그 사람은 끝장난 사람이야… 그리고 그의 여동생들을 보면 가슴 아파… 선생님께서는 너무 심한 증오로 박해받고 계셔서 심지어 그 집에 들르실 수도 없어. 그 집에 들르실 수 있다면 병자와 그의 여동생들 그리고 그분께도 큰 위안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나는 그분께서 왜 그 사람을 고쳐주지 않으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
토마스가 외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할 텐데. 그는 선생님을 그렇게도 많이 도와드리는… 친구이고… 의인인데…”
바르톨로메오가 중얼거린다.
“아! 의롭기로 말하면, 그는 정말 의인이야. 나는 요 며칠 동안에 자네가 그것을 확신하게 됐다고 생각하네…”
열성당원이 바로톨로메오에게 말한다.
“그래, 그건 사실이야. 그리고 자네가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도 맞아. 나는 그의 의덕에 대하여 그리 확신하지 못했었네… 그들의 이방인들과의 친밀한 관계, 우리의 생활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생활에 경도된… 매우, 매우… 관대한 그들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교육으로 인하여…”
“그들의 어머니는 천사였어.”
열성당원 시몬이 단호하게 말한다.
“아마도 그것이 그들이 의인인 이유일 거야… 마리아의 과거는 넘어가세. 지금 그녀는 속죄했으니까…”
필립보가 말한다.
“그래. 그러나 그 모든 것들로 인하여 나는 의심했었네. 그러나 지금 나는 정말로 확신하고 있어. 그래서 나는 선생님께서 왜…”
“내 형제는 사람들의 가치를 평가할 줄 아시네. 우리도 그분이 한 집안인 우리보다 외부 사람들의 청을 더 들어주시는 것을 보고,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질투로 인하여 오랫동안 고통당했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틀렸고, 그분이 옳으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네.
우리는 그분의 행동을 무관심으로,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와 몰이해로 생각했었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해하게 되었어. 그분께서는 일그러지고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을 그분 자신께로 이끄는 것을 선호하셔.
그분께서는… 그분의 무한한 방법으로 지극히 비참하고, 멀리 떨어져 있고, 그래서 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영혼들을 매혹하시네.
자네들은 길 잃은 양의 비유를 기억하나? 그분의 행동방식의 진실, 열쇠가 그 비유에 들어 있네. 그분께서 그분의 충실한 양들이 그분을 따라오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곳에 원하시는 대로 있는 것을 보실 때 그분의 영혼은 쉬시네. 그분께서는 그 휴식을 활용하여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시네.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시고, 라자로와 그의 여동생들이 그분을 사랑하고, 여자제자들과 목자들이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시네.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사랑의 시험으로 우리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시네.
그분께서는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네. 그분께서는 항상 우리를 그분의 마음속에 품고 계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선생님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거기서 나오기를 원치 않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죄인들과 길 잃은 사람들!… 그분께서는 그들 뒤를 뛰어서 쫓아다니면서 사랑, 기적들, 그리고 그분의 능력으로 그들을 그분께 이끄셔야 하네. 그리고 그분께서는 사실 그렇게 하시네. 라자로, 마리아, 마르타는 기적이 없어도 그분을 계속 사랑할 거야…”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그분의 마지막 인사는 무슨 뜻이었을까? 자네들도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지. ‘너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너희의 사랑에 비례하여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완전하기 위하여 두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날개가 크면 클수록 사랑이 더 완전해진다는 것을 기억해라. 두 날개란 믿음과 희망이다.’”
안드레아가 말한다.
“그래! 그분께서는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그들 중 몇 사람이 묻는다.
침묵이 흐른다. 토마스가 깊은 한숨과 함께 자기 혼자서 생각했던 것에 대하여 결론짓는다.
“…그렇지만 그분의 훌륭한 참을성이 항상 구속을 얻으시는 것도 아니야. 나도 때로는 그분이 가리옷의 유다에게 보이시는 편애 때문에 괴로웠어.”
“편애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를 나무라시는 것처럼 그도 나무라셔…”
안드레아가 말한다.
“그분께서는 정의로 그러셔, 맞아. 그렇지만 그가 얼마나 더 엄하게 다루어져야 마땅한지를 생각해보게…”
“그건 사실이야.”
“그래, 나는 자주 그것으로 인하여 괴로웠어. 그렇지만 지금 나는 그 사람이 우리 중에서 가장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네.”
“자네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 말해야 해, 토마스! 가장 비참한 사람. 자네들은 그분의 슬픔이―그러면서 그는 그분의 고뇌에 잠기신 채 혼자서 앞장서 걸어가시는 예수를 가리킨다―라자로의 병과 그의 여동생들의 눈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구먼. 나는 그것이 유다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겠네. 그분께서는 베타바라로 가고 계실 때 길에서 그를 만나기를 바라고 계셨네. 그분께서는 적어도 돌아오는 길에 예리코나 트코아나 베타니아에서 그를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계셨네.
지금 그분께서는 더 이상 바라지도 않으시네. 그분께서는 지금 유다가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확신하고 계시네. 나는 줄곧 그분을 살펴보았어… 그런데 나는 자네와 바르톨로메오네가 ‘유다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할 때 그분의 얼굴이 몹시 쓸쓸하게 보이시는 것을 보았네.”
타대오가 말한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아셔. 나는 그것을 확신해!”
요한이 외친다.
“그분께서는 많은 일들을 아시지 그 일들을 다 아시는 것은 아니야. 나는 그분의 아버지께서 연민으로 인하여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그분께 숨기신다고 생각하네.”
열성당원이 말한다.
열한 사도들은 두 편으로 갈라진다. 일부는 이런 해석을 , 다른 일부는 저런 해석을 지지한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이유들을 말한다.
요한이 부르짖는다.
“오! 나는 어느 쪽의 말도 듣고 싶지 않고, 나 자신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아! 우리는 모두 하찮은 인간들이라 사물들을 정확하게 보지 못해. 나는 예수께 가서 그분께 여쭤봐야겠어.”
“안 돼. 그분께서는 다른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계실 수도 있어. 그래서 이 질문이 그분에게 유다를 상기시키고 그분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어.”
안드레아가 말한다.
“아니야. 나는 우리가 유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그분께 말씀드리지는 않을 거야. 나는 아무런 언급 없이… 그분께 그것을 여쭈어볼 거야.”
“그럼 가세! 그렇게 하면 그분의 생각이 슬픈 생각들을 잠시 잊으시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자네들은 그분이 얼마나 슬퍼하시는지 보지 못하나?”
베드로가 요한을 밀면서 말한다.
“나는 가겠어. 누가 나와 함께 가겠나?”
“자네 혼자 가게. 그분께서는 자네에게는 기탄없이 말씀하시네. 그 다음에 자네가 우리에게 말해주게나…”
요한이 간다.
“선생님!”
“요한아!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예수께서는 그분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시고, 그분의 가장 소중한 사도를 한 팔로 감싸고 걸어가신다.
“저희는 저희끼리 서로 이야기하다가 한 가지에 대하여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것입니다. 당신께서는 미래를 다 아십니까, 아니면 미래의 일부는 당신께 감추어져 있습니까? 저희 중 몇 명은 이렇게 말했고, 몇 명은 다르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너는 뭐라고 말했느냐?”
“저는 당신께 여쭈어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왔구나. 잘했다. 이것은 사랑의 순간을 누릴 기회를 너와 나에게 준다… 지금은 우리가 잠시 조용한 시간을 누릴 기회를 가지는 일도 몹시 드물구나!…”
“그렇습니다! 처음 시절은 참으로 아름다웠는데요!…”
“그렇다.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시절이 더 아름다웠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영혼에게는 요즈음이 더 낫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느님의 말씀이 더 잘 알려져 있고, 우리가 더 많이 고통당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통당할수록 그는 더 많이 구속하는 것이다, 요한아…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평화로웠던 지난날들을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고통과 함께 우리에게 영혼들을 주는 지금을 더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네 질문에 대답하겠다. 들어라. 나는 하느님으로서 안다. 그리고 나는 사람으로서 안다. 나는 미래의 사건들을 안다. 왜냐하면 나는 시간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시간을 넘어서 보기 때문이다. 원죄와 본죄들과 연결되어 있는 불완전들과 제한들이 없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the gift of introspection of hearts)을 가지고 있다.
그런 능력은 그리스도에게만 제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그것은 성덕을 성취하여 완전히 하느님과 결합해 있어,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 그들 안에 존재하는 완전을 통하여 행동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 안에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으로서 나는 미래 세기들에 대하여 알고, 의인으로서 나는 마음들의 상태를 안다고 너에게 대답할 수 있다.”
요한은 생각에 잠긴 채 침묵한다. 예수께서는 그를 잠시 그대로 놔두셨다가 말씀하신다.
“예컨대 지금 나는 네 안에서 이 생각을 본다. ‘그럼 내 선생님께서는 가리옷의 유다의 상태도 정확히 아시는구나!’”
“오! 선생님!”
“그렇다. 나는 안다. 나는 알고, 나는 계속 그의 선생님일 것이고, 너희가 계속 그의 형제들이기를 바란다.”
“거룩하신 선생님!…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항상 모든 것을 아십니까? 보십시오. 때로 저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원수들을 만나시는 곳들로 가시니까요. 당신께서는 가시기 전에 당신께서 그들을 만나게 되실 것이고, 당신의 사랑으로 그들과 싸우기 위하여, 그들을 얻어 사랑하도록 그리로 가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니면… 당신께서는 알지 못하시다가 그들이 당신의 앞에 있을 때만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읽으십니까?
언젠가 당신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그때도 당신께서는 매우 낙심해 계셨는데, 항상 같은 이유로 그러셨습니다―당신께서는 당신께서 보지 못하는 어떤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섭리를 의지하며 보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의 고통도 경험했다. 나는 죄짓는 것을 빼놓고는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아버지께서 육체, 세상, 마귀를 거슬러 두신 보호 장벽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내 의지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와 비슷하다. 그러나 나는 너희보다 더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도 유혹당하지만 나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다. 너희의 공로가 여기 있는 것처럼, 내 공로도 여기 있다.”
“당신께서 유혹당하신다니!… 그것은 저에게는 거의 불가능하게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유혹들은 너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깨끗하다. 그래서 내가 너보다 더 깨끗하기 때문에 유혹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육체의 유혹은 내 순결에 비하여 참으로 약하여 내 자아에게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꽃잎 하나가 단단한 화강암 한 조각을 치는 것과 같다. 화강암은 꽃잎을 퉁겨낸다…
마귀 자신도 나에게 그 화살을 쏘는 데 지쳐 있다. 요한아, 그러나 너는 얼마나 많은 다른 유혹들이 내 주위에 있는지 모르느냐?”
“당신 주위에요? 당신께서는 부도, 명예도 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그 유혹들은 무엇입니까…?”
“너는 내가 목숨, 애정들, 내 어머니에 대한 의무들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이 위험을 피하라고 나를 유혹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느냐? 뱀(Snake)은 그것을 ‘위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의 진짜 이름은 ‘희생’이다. 그리고 너는 나도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느냐? 나의 정신적인 자아(moral ego)는 내 안에 있는데, 그것은 모욕들, 조롱, 속임수로 인하여 고통당한다.
오! 내 요한아! 너는 거짓말과 거짓말쟁이들이 얼마나 나에게 혐오스러운지를 깨닫느냐? 너는 내 온유함을 포기함으로써, 냉혹하고 불관용하게 됨으로써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런 것들을 거슬러 반응하도록 마귀가 나를 얼마나 여러 번 유혹하는지 아느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그가 얼마나 여러 번 교만으로 불타는 그의 입김을 내뿜으며 이렇게 말하는지를 아느냐? ‘이것이나 저것을 자랑스러워하시오. 당신은 위대합니다. 세상이 당신을 우러러봅니다. 자연의 힘들이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자기가 거룩한 것을 기뻐하라는 유혹! 가장 교묘한 유혹!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교만으로 인하여 이미 얻었던 성덕을 잃느냐! 사탄이 어떻게 아담을 타락시켰느냐? 그의 관능, 생각, 영혼을 유혹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그런데 나는 사람을 다시 재창조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냐? 새로운 인류는 나로부터 올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영원히 파멸시키기 위하여 같은 수단을 시도하고 있는 사탄이 있는 것이다. 이제는 네 동료들에게 가서 내 말을 그들에게 되풀이해주어라. 그리고 유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해 하지 마라.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라. 그 생각이 한 마음을 채우는 데 충분하지 않느냐?”
그분께서는 요한에게 입 맞추시고 그를 돌려보내신다.
그분께서는 다시 혼자 계시게 되셨을 때 올리브나무 가지들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시며 탄식하신다.
“아버지! 저에게 적어도 이것을, 제가 마지막 시간까지 그 죄악(the Crime)을 숨겨두어 제가 지극히 사랑하는 제자들이 피로 그들의 손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들은 너무 약해서 모욕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을 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의 시간에 그들이 마음속에 증오를 품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만이 보시는 눈물을 닦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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