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307~p316

히브리어 "엄마" אמא (Aleph-Mem-Aleph) 발음:이마 (Ima)
"예수" ישוע (Yod-Shin-Vav-Ayin) 발음: 예슈아 (Yeshua)
514. 기브온에서. 사랑의 지혜
1946. 10. 22.
매우 기름진 평야 한가운데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완만한 낮은 언덕 위에 건설되어 있는 기브온은 봄, 여름, 가을에는 통풍이 잘되고 경치 좋은 도시인 것이 틀림없다. 이 도시의 흰 집들은 지금은 계절 탓으로 헐벗은 나무들과 섞여 있는 온갖 종류의 상록수의 초록빛 잎들로 거의 완전히 가려져 있다. 좋은 계절에는 활엽수들은 야산을 구름과도 같은 가벼운 꽃잎들로 뒤덮을 것이고, 나중에는 과일들로 그 풍요로움을 보여줄 것이다.
지금은 겨울의 회색빛 속에서 잎이 떨어진 포도나무들과 회색빛의 올리브나무들로 줄지어지거나 잎이 떨어진 시커먼 나무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비탈들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이 도시는 아름답고 통풍이 잘되어, 사람들의 시선은 야산의 비탈과 쟁기질로 갈아엎어진 들판을 보고 휴식을 취한다.
예수께서는 넓은 수조 또는 우물 쪽으로 가시는데, 그것은 어쩐지 나에게 사마리아 여인의 그 우물이나 엔 로겔, 또는 더 흡사하게는 헤브론의 수조들을 연상시킨다.
임박한 안식일을 위하여 많은 물을 길어다두려고 서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오늘의 마지막 거래를 마무리 짓는 사람들과 일을 마치고 이미 안식일의 휴식을 즐기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군중 가운데 선생님께서 오신 것을 알리는 여덟 명의 사도들이 있는데, 병자들이 오고, 거지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그들의 집에서부터 오고 있는 것을 보니 사도들의 활동은 이미 성공적이다. 예수께서 수조가 있는 곳에 발을 들여놓으시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리는 제창으로 변한다.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 간구 드린 곳으로 오시는 지혜여, 찬미 받으십시오!”
“지혜를 맞이할 줄 아시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평화, 평화와 축복!”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즉시 병자들과 사고나 병으로 불구자가 된 사람들, 소경들이나 거의 소경이 된 사람들 쪽으로 가서 그들을 고쳐주신다.
예수께서는 한 어머니가 울면서 내미는 벙어리 소년을 그 입에 입 맞추심으로써 고쳐주신다. 그 소년은 자기에게 주어진 말하는 능력을 가장 아름다운 두 이름을 부르는 데 사용한다.
“예수! 엄마!
그 기적은 참으로 아름다운 기적이다. 그 어린이는 자기를 군중 위로 치켜 올리고 있는 엄마의 팔에서 예수의 품으로 뛰어들어 예수께서 기뻐하는 그의 어머니에게 그를 돌려주실 때까지 그분의 목을 꼭 껴안고 있다. 그녀는 자기의 맏아들이고,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부모가 마음속으로 레위 인으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 아이가 결점이 없어진 지금은 어떻게 제관이 될 수 있겠는지를 설명한다.
“저는 제 남편 요아킴과 함께 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애가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해주십사고 청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애가 저를 엄마라고 부르고 저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하기 위하여 당신께 이 애가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한 것이 아닙니다. 이 애의 눈과 입맞춤은 이미 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애가 흠 없는 어린양처럼 온전히 주님께 바쳐지고, 주님의 이름을 찬미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청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주님께서 이 아이의 영혼의 말을 들으셨소.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어머니처럼 사람의 감정을 말과 행위로 바꾸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소원은 좋은 것이어서 지극히 높이신 분께서 그것을 만족시켜주셨소. 이제 당신의 아들을 완전한 찬미를 위하여 교육하여 이 아이가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시오.”
“예, 라삐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이 아이가 자기의 전존재로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오. 그러면 완전한 찬미가 그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꽃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는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 완전하게 될 거요.”
“라삐님,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지혜가 당신의 입술 위에 있습니다. 제발 저희 모두에게 말씀해주십시오.”
한 점잖은 기브온 사람이 군중을 헤치고 예수에게 다가와서 말한 다음 그분을 회당으로 초대한다. 그는 틀림없이 회당장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회당을 향하여 가시고, 모든 사람이 그분을 뒤따라간다. 그러나 도시의 전체 주민들과 이미 그분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회당에 들어갈 수는 없으므로 그분께서는 회당에 붙어 있는 자기 집 옥상에서 말씀하시라는 회당장의 권고를 받아들이신다. 그 집은 낮고 긴 집인데, 그 집의 양 옆은 무성한 초록빛 재스민 덩굴로 뒤덮여 있다.
예수의 힘차고 조화로운 목소리가 어두워져 가는 저녁의 고요한 공기 속에 퍼지면서 광장과 그리로 들어오는 세 군데 길로 퍼져나간다. 그 동안에 수많은 군중은 시선을 치켜들고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다.
“자기가 자기의 어린 아들의 입술에서 사랑스러운 말을 듣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가 하느님을 섬기는 데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그 아들이 말하기를 바랐었던 여러분의 도시의 여인은 나에게 이 도시의 한 위대한 사람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오랜 옛날의 다른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께서 여러분의 동향인 여인의 말을 들어주신 것처럼 그녀의 말을 승낙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그 두 말 모두에서 정의의 요청, 그분께서 그 기도들을 들어주시고 그분의 은총을 주시기 위하여 모든 기도들 안에 들어 있어야 할 정의의 요청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원한 상급, 끝없는 지복 안에서 끝없는 참 생명을 얻으려면 여러분의 일생 동안에 무엇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여러분의 전존재로 주님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이웃을 여러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을 친구로 가지고, 그분으로부터 은총들과 축복들을 얻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조건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어 다윗 사후에 실권을 행사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이 도시로 올라와 많은 희생들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날 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주기를 바라는 것을 청해라.’ 이것은 하느님으로서는 큰 호의이고, 사람에게는 큰 시험입니다. 왜냐하면 각 선물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선물이 크면 클수록 책임도 더 큽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혼이 성취한 향상의 정도의 증거입니다. 만일 하느님께 축복받은 영혼이 더 완전해지는 대신 물질주의를 향하여 내려간다면, 그 영혼은 그것으로써 향상의 결여나 그 부분적인 향상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시험에 불합격하게 됩니다.
사람의 영적 가치를 나타내는 두 가지 표지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쁠 때 그가 행동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의 때에 그가 행동하는 방식입니다. 의덕(justice)에 있어 진보한 사람만이 영광 중에서 겸손할 줄 알고, 기쁨 중에서 충실할 줄 알며, 그가 만족하여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을 때에도 감사하고, 꾸준할(persevering) 줄을 압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인인 사람만이 고통들이 끈질기게 계속될 때에도 인내하고, 자기의 하느님을 계속 사랑할 줄을 압니다.”
“선생님, 제가 당신께 무언가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예, 말하시오.”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당신의 말씀의 취지는 솔로몬이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죄지었습니다. 이제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만일 그가 나중에 죄짓게 되어 있었다면, 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그렇게도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까?
주님께서는 틀림없이 그 왕의 미래의 죄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왜 왕에게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에게 주기를 원하는 것을 청해라.’ 그것은 좋은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나쁜 것이었습니까?”
“항상 좋은 것이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악한 일들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모든 선물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솔로몬은 지혜를 청했고, 그래서 그것을 얻은 다음에…”
“그는 지혜롭게 행동할 책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혜롭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지혜롭지 못했던 탓에 벌을 받았는데, 그것은 옳은 일이라고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청한 지혜를 그에게 주신 하느님의 행위는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라 지혜를 청한 솔로몬의 행위도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시고 정의이시므로, 솔로몬이 잘못을 저지를 때 그분께서는 그 죄인이 한때 다른 어떤 사물이나 사람보다 지혜를 더 사랑했었다는 것을 고려하시어 그 잘못의 대부분을 용서하셨습니다.
한 행위가 다른 행위의 가치를 감소시켰던 것입니다. 죄짓기 전에 행한 좋은 행동은 남아 있고, 그래서 죄인이 죄지은 다음에 뉘우칠 때 용서를 위하여 그것이 고려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에게 착한 행동을 할 모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죄를 뉘우칠 때 그것들이 여러분의 죄들을 차감하는 돈(money discounting your sins)처럼 되게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설혹 착한 행동들이 지나가버린 것처럼 여겨지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더 이상 우리 안에서 좋은 것들을 위한 새로운 유인들과 힘을 창조함으로써 더 이상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해도, 그것들은 최소한 의기소침한 영혼의 깊은 곳에서 다시 올라와 자기가 착했던 시절에 대한 회한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을 통해서라도 항상 살아 있습니다. 회한(regret)은 흔히 의덕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여놓는 첫 걸음이 됩니다.
나는 목마른 사람에게 사랑으로 주어진 한 잔의 물도 보상 없이 남아 있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물 한 방울은 물질적 가치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랑은 그것을 크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것은 보상받지 않은 채로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때로 그 보상은 그 행위, 목마른 형제의 말, 그때의 자기 마음의 느낌들,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마실 물을 준 마음에 대한 기억에 의하여 야기된 선으로의 돌아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일련의 회상들을 통하여 어둔 밤 후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돌아오셔서 그분을 잃었던 불쌍한 마음의 지평선 위에서 빛나십니다.
그러면 그 마음은 그분의 형언할 수 없는 현존에 매혹되어 자신을 낮추며 외치게 됩니다. ‘아버지, 저는 죄지었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다시 한 번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지혜입니다. 그것은 지혜 중의 지혜인데,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땅거미가 내려오고, 저녁 바람이 여러분의 몸을 추위로 떨게 하고, 여러분이 켜서 들고 있는 등불들을 흔드는 동안에 나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어떻게 지혜를 얻었는지, 그리고 그가 지혜를 얻기 위하여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기술하는 지혜서의 구절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나를 기억하고, 안전한 길 위에서 나아가고, 여러분을 인도해줄 빛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회당장과 함께 그 대목들을 읽으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는 바입니다.
지혜서는 영적 생활의 법전(code)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혜서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여러분을 인도하고, 성덕과 내 가르침에 대한 완전한 지식으로 여러분을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내 길을 준비하고, ‘단명하고, 정의와 율법들에 대한 너무 적은 이해만을 가진’ 사람들을 ‘하느님의 종들과 하느님의 여종들의 아들들’로 만들고, 하느님의 낙원의 신들(the gods)을만들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첫째 자리에 지혜를 놓으시오. 그래서 영원한 날에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말을 듣도록 하시오. ‘네가 특히 여기에 관심을 쏟고, 부, 물건, 영광, 장수 또는 네 원수들에 대한 승리를 청하지 않았으니, 지혜가 너에게 주어지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하느님 자신이 주어지기를 원하신다는 말인데, 지혜의 영(Spirit of Wisdom)은 하느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거룩한 지혜를 추구하시오. 그러면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다른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터인데 여러분은 이 세상의 어떤 권력자들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시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만을 열망하시오.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이웃을 사랑하시오. 여러분 자신들을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분께서 승리를 거두시는 일에 헌신하시오. 하느님의 친구들이 아닌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이키시오.
거룩하시오.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결점들에 대한 방어로서 거룩한 일들을 쌓으시오.
주님께 충실하시오. 산 사람들도, 죽은 사람들도 비판하지 말고, 착한 사람들을 본받으려고 힘쓰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들의 땅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하여 주님께 은총들을 청하시오. 그러면 그것들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갑시다. 내일은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신 다음 그들을 돌려보내신다.
515.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1946. 10. 24.
습한 찬바람이 야산 위의 나무들을 빗질하고 있고, 하늘에서는 잿빛 구름들을 불어가고 있다. 예수께서는 두꺼운 겉옷을 꼭 여미신 채 열두 사도들과 스테파노와 함께 평야로 가는 길을 따라 기브온에서 내려오고 계신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있고, 그 동안에 예수께서는 침묵 가운데 잠심하여 그분의 주위에 있는 것들로부터 떠나 계신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침묵에 잠기신 채로 계시다가 야산에서 중간쯤, 아니 거의 야산 밑의 교차로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말씀하신다.
“이 길을 따라 놉으로 가자.”
“뭐라고요? 당신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으실 겁니까?”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놉과 예루살렘은 장거리를 걷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는 거의 같은 곳이다. 그러나 나는 놉에 가 있는 편을 선택한다. 이것이 네 마음에 들지 않느냐?”
“오! 선생님! 저야 여기나 저기나… 저는 오히려 당신께서 당신께 아주 호의적인 곳에 모습을 아주 많이 드러내시지 않으시는 것이 꽤나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당신께서는 분명히 당신께 우호적이지 않은 벳 호론에서 더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반대로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께서는 당신께 호의적이라고 당신께서 느끼시는 도시들을 점점 끌어당겨 그들을… 당신의 원수들에게 지배되고 있는 도시들에 맞서 방어물들로 활용하셔야 합니다.
당신께서는 예루살렘에 인접한 도시들을 당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요컨대 예루살렘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른 곳들도 중요성을 가질 수 있고, 그 중요성으로 예루살렘의 결정들에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왕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충성스러운 도시들에서 선포되는데. 다른 도시들은 선포되고 나면 체념합니다…”
“그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때는 그렇겠지. 반란이 일어난다면 골육상잔의 내란이 일어나는 거지. 나는 메시아께서 그분의 나라를 내란으로 시작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필립보가 말한다.
“나는 한 가지만을 바란다. 그것은 메시아의 나라가 너희 안에서 상황에 대한 올바른 시각(vision)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시각은 아직 올바르지 않다… 그럼 너희는 도대체 언제 알아들을 수 있겠느냐?”
가리옷 사람은 자기가 책망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자 다시 묻는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왜 여기 기브온에서는 그토록 짧게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쉬는 편을 더 낫게 여겼다. 너희는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우리는 거기 머물러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도 있었는데요. 만일 당신께서 그토록 피로하시다면, 당신께서는 왜 다시 길을 떠나셨습니까?”
바르톨로메오가 서글프게 여쭙는다.
“내 사지가 피로한 것이 아니다. 나는 팔다리를 쉬게 해주기 위하여 멈출 필요가 없다. 지쳐서 휴식을 필요로 하는 것은 내 마음이다. 그런데 나는 사랑을 발견하는 곳에서 휴식한다.
너희는 혹여 내가 그토록 많은 쓰디쓴 증오에 대하여 둔감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또한 거절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너희는 사실은 내 곁에 심어둔 내 원수들의 첩자이면서도 내 벗으로 가장하는 자의 배신들에 대하여…”
“주님,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심지어 그것을 의심하셔도 안 됩니다. 당신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저희를 모욕하고 계십니다.”
가리옷 사람이 다른 모든 사도들의 분개를 능가하는 서글픈 분개와 함께 항의하며 말한다.
다른 모든 사도들도 항의하며 말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그 말씀으로 저희를 슬프게 하시고, 저희를 불신하십니다.”
제베대오의 야고보는 충동적으로 부르짖는다.
“선생님, 저는 당신과 하직하고 카파르나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상심한 마음을 안고서 떠나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카파르나움이 충분히 멀지 않다면, 저는 티로와 시돈의 어부들과 함께 친티움으로 가거나 제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신을 배반한다고 당신께서 생각하실 수 없을 만큼 저는 아주 멀리 가겠습니다. 노자로 저를 축복해주십시오!”
예수께서는 야고보를 껴안으시며 말씀하신다.
“내 사도야, 마음을 가라앉혀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내 친구라고 말한다. 너희들만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내 말들이 너를 고통스럽게 하고, 너희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나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내 사도들과 믿음직한 내 제자들의 마음 말고 어떤 마음들에 내 고민을 털어놓아야 하고, 어떤 마음들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들을 결합시키기 위하여 내가 떠난 일치, 즉 하늘에 계시는 내 아버지와의 일치의 일부를 너희 안에서 찾고 있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내가 떠난 사랑, 즉 내 어머니의 사랑의 한 방울을 너희에게서 찾고 있다. 나는 의지할 대상으로서 그것들을 찾는다.
오! 쓰디쓴 파도와 잔인한 무거운 짐이 내 마음을, 사람의 아들을 압도하고 짓누른다!… 내 수난, 내 시간이 점점 더 차오르고 있다… 내가 그것을 견뎌내고 완수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다오…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선생님의 말씀 안에서 떨고 있는 깊은 고통에 충격 받아 서로를 쳐다본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분께로 바싹 다가와 그분을 어루만지고, 그분께 입 맞추어드리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유다는 오른쪽에서, 요한은 왼쪽에서 예수의 얼굴에 동시에 입 맞춘다. 예수께서는 가리옷의 유다와 요한이 그분께 입 맞추는 동안에 눈을 감으신다…
그들은 다시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중단되었던 그분의 생각을 끝내실 수 있다…
“이토록 큰 고뇌 중에서 내 마음은 사랑과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곳들을 찾는다. 메마른 돌들이나 음험한 뱀들, 또는 꿈꾸는 나비들에게 말하는 대신 내 마음이 어디서 다른 마음들의 말을 들을 수 있고, 그 마음들이 진실하고, 다정하고, 의롭다는 것을 느낌으로써 위로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 기브온은 이런 곳들 중의 하나이다. 나는 한 번도 여기 오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하느님의 아주 훌륭한 일꾼들에 의하여 쟁기질로 갈아엎어지고 씨 뿌려진 밭을 발견했다.
그 회당장! 그는 빛을 향하여 왔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이미 빛나는 영혼이었다. 하느님의 착한 종은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느냐! 기브온은 분명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의 음모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거기서도 암시들과 부패가 시도될 것이다.
그러나 의인인 회당장이 거기 있어 악의 독들이 거기서는 독성을 잃는다. 너희는 항상 바로잡아야 하고, 비판해야 하고, 심지어 질책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 유쾌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기브온의 회당장에게 말한 것처럼 ‘너는 지혜를 이해했다. 네 길을 따라 나아가고, 거룩해라’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기분 좋다.”
“그럼 우리는 다시 그곳으로 가게 될까요?”
“아버지께서 나에게 평화로운 곳을 만나게 해주실 때 나는 그것을 누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내 아버지를 찬미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위하여 오지 않았다. 나는 죄 있고,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들을 그분께 돌이키게 하려고 왔다. 너희는 내가 베타니아에 머무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거기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라자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요.”
“아니다, 시몬의 유다야. 돌들도 라자로가 내 친구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 점에 있어 위안을 얻고자 하는 내 갈망을 내가 억제하는 것은 무익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왜냐하면…”
“라자로의 여동생들 때문이지요. 특히 마리아 때문에.”
“그것도 아니다, 시몬의 유다야. 돌들도 육체의 정욕이 나를 어지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나를 대적하여 만들어진 사람들의 수많은 고발들 중에서 가장 먼저 기각된 것이 그것이라는 것에 유의해라. 왜냐하면 가장 악랄한 나의 원수들도 그 주장을 유지하는 것이 거짓말하는 그들의 습관을 폭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내가 음란하다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관능성은 초자연적인 것을 양식으로 삼지 않고, 희생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나 유혹할 수 있다. 그러나 희생에 헌신한 사람들, 희생인 사람들에게 한 시간의 쾌락이 어떤 유혹이 될 수 있겠느냐?
희생자의 영혼들의 즐거움은 전적으로 영혼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영혼들이 육체로 옷 입고 있다 해도 그 육체는 옷에 불과하다. 너는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이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육체는 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옷과 같을 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영적인 사람은 참다운 초인이다. 그는 관능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물질적인 사람은 진정한 인간의 품격에 관해서는 무가치하다. 왜냐하면 그는 야수들과 공통되는 너무 많은 욕망들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동물의 본능을 타락한 악덕으로 바꿈으로써 야수들을 능가하기에 야수들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다.”
유다는 당혹스러워하며 자기의 입술을 깨물다가 말한다.
“그렇습니다. 어쨌든 당신께서는 더 이상 라자로에게 해를 끼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곧 죽음이 모든 복수의 위험들로부터 그를 구출해줄 테니까요…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왜 베타니아로 더 자주 가지 않으십니까?”
“왜냐하면 나는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개시키려고 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너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당신의 형제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즐기시지요?”
“그렇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편애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집들에 방을 얻기 위하여 헤어져야 할 때 그들은 대체로 나와 함께 머무르지 않고, 너희가 나와 함께 머무른다. 그것은 구속에 헌신한 사람들의 눈과 생각에 살과 피는 가치가 없고, 오로지 마음들의 향상과 그것들의 구속만이 가치 있다는 것을 너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놉으로 가 잠자기 위하여 다시 헤어질 터인데, 이번에도 나는 너와 함께 있을 것이고, 마태오, 필립보, 바르톨로메오와도 함께 있을 것이다.”
“아마 저희는 가장 덜 향상된 사람들인 모양이지요? 당신께서 항상 저를 당신과 함께 머무르게 하시는 걸 보니 특히 제가 그런가 보죠?”
“네 말이 맞다, 시몬의 유다야. “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는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리옷 사람이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며 말한다.
“만일 네가 이해했다면, 너는 왜 너 자신을 향상시키려고 애쓰지 않느냐? 너는 너에게 굴욕감을 주지 않기 위하여 내가 거짓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더군다나 우리는 형제들끼리라 한 사람의 결점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고, 만일 한 사람이 모든 형제들의 불완전한 점들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훈계를 듣는다 해도 그것으로 인하여 의기소침해서도 안 된다. 아무도 완전하지 않다. 이것은 내가 너에게 분명히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 인내하기가 아주 고통스러운 각자의 결점들도 상호간의 불편을 증가시키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유다야, 비록 내가 너의 진면목을 보기는 하지만, 누구도, 심지어 네 어머니마저도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 예수가 너를 착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만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내 말을 믿어라.”
“그러나 당신께서는 저를 질책하시고, 저에게 굴욕감을 주십니다. 심지어 제자 앞에서도요.”
“내가 너에게 정의를 상기시킨 것이 이번이 처음이냐?”
유다는 대답하지 않는다.
“내 질문에 대답해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예수께서 권위적으로 말씀하신다.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몇 번이나 공공연하게 그렇게 했느냐? 너는 내가 너를 망신시켰다고 말할 수 있느냐? 아니면 너는 내가 너를 감싸주고, 변호해주었다고 말해야겠느냐? 크게 말해라.”
“당신께서는 저를 변호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나 지금 그것은 너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죄지은 자기의 아들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은 나중에 그의 상처들을 싸매주어야 할 것이라고 격언은 말한다. 또한 다른 격언은 잘못 길들여진 말은 다루기 힘들게 되고, 제어되지 않은 아들은 고집불통인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제가 혹시 당신의 아들이기라도 합니까?”
유다가 노한 빛을 가라앉히며 묻는데, 얼굴을 더 이상 찡그리지 않고 뉘우치는 기색을 나타낸다.
“만일 내가 너를 낳았다 해도, 네가 지금 이상으로 내 아들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내 마음을 주고, 너를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내 창자를 도려내기라도 하겠다…”
유다는 진실한 회개의 충동들 중 하나를 나타내며… 진실한 것처럼 보이는 얼굴로 예수의 품으로 뛰어들며 부르짖는다.
“아! 저는 당신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저는 마귀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걸맞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는 너무 착하십니다! 예수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운다. 그는 악한 행동과 자기를 사랑하시는 선생님을 슬프게 해드렸다는 가책으로 어지러워진 마음의 고통으로 정말로 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영문판번역) > 7권 공생활 셋째 해(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사시7권 [517. 베타니아와 라자로의 집으로 가시며 518. 트코아로 가시며. 늙은 엘리안나(1)] (1) | 2026.03.24 |
|---|---|
| 하사시7권 [516. 선한 목자 예수] (1) | 2026.03.21 |
| 하사시7권 [513. 기브온을 향하여. 예수의 고통의 이유들] (1) | 2026.03.15 |
| 하사시7권 [512. 결심하지 못한 젊은이. 벳 호론에서의 기적들과 경고들(2)] (1) | 2026.03.15 |
| 하사시7권 [511.지혜로운 부자와 가난하고 무지한 소년의 비유 512. 결심하지 못한 젊은이. 벳 호론에서의 기적들과 경고들(1)] (1) | 2026.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