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299~p307

513. 기브온을 향하여. 예수의 고통의 이유들
1946. 10. 18.
예수께서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계실 수 없다. 요한과 예수의 사촌 야고보, 그리고 베드로와 열성당원 시몬이 그분께 다가와 야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전경으로 그분의 주의를 끈다. 그분께서 분명하게 슬퍼하시기 때문에 아마 그분의 기분을 전환시켜드릴 생각으로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지방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상기시킨다.
아스클론으로의 여행… 예수께서 가말라와 야곱의 늙은 아버지의 눈을 다시 보게 해주신 사론평야의 농부들의 집… 카르멜 산 위에서의 예수와 야고보의 피정… 해항 카이사리아와 어린 소녀 아우레아 갈라… 신티케와의 만남… 야포에서의 이방인들… 모딘 근처의 노상강도들… 아리마태아의 요셉의 집에서의 추수의 기적… 이삭 줍는 작은 노파… 그분을 기분 좋게 해줄 수 있는 추억들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모두에게, 또는 그분 혼자에게 눈물과 고통의 추억이 들어 있다. 사도들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중얼거린다.
“참으로 땅 위에서는 모든 것 안에 고통이 있어. 이 땅은 속죄하는 곳이야…”
중간에 제베대오의 야고보와 함께 이 무리에 합류했던 안드레아가 적절하게도 지적한다.
“그것은 우리 죄인들에게는 정당한 법칙이지만, 그분께는 왜 이다지도 많은 고통이 있는 건가?”
조용한 토론이 일어난다. 처음에 말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끌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토론에 참여할 때까지 조용하게 계속된다. 소박한 사람들 가운데서 선생님의 목소리와 몸짓을 흉내 내면서 그들을 가르치느라 노고를 아끼지 않는 가리옷의 유다만이 예외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장된 연극조의 모방으로서 설득력이 없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꽤나 솔직하게 그에게 말하자, 그는 신경질을 내며 그들이 아둔해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며 그들에게 면박을 준다. 그리고 그는 ‘지혜의 진주들을 돼지들에게 던져주는 수고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자기는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생각이라고 언명한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들이 머쓱해져서 자기들은 ‘짐승이 사람보다 열등한 것처럼 자기들은 그보다 열등하다’고 인정하면서 그에게 자기들을 참아달라고 간청하기 때문에 유다는 그대로 머물러 있다.
예수께서는 유다가 말하고 있는 것을 귀담아 들으시기 위하여 그분의 주위에서 열한 사도가 말하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신다. 그분께서 들으시는 것은 분명히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한숨을 쉬시며 침묵하신다. 마침내 바르톨로메오가 무죄하고 죄로부터 자유로운 그분께서 왜 고통당하셔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 관점들을 내놓아 그분께서 곧바로 흥미를 보이시게 해드린다.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저는 사람들이 착한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죄 있는 사람, 즉 대다수의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수는 자기들이 죄 없는 사람과 비교될 때 자기들의 죄악과 악덕들이 더 두드러지게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악의적으로 착한 사람들이 고통당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복수합니다.”
“반대로 저는 당신께서는 당신의 완전성과 저희의 비참함 사이의 대조로 인하여 고통당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설혹 아무도 어떤 식으로도 당신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해도, 당신의 완전성은 사람들의 죄들 앞에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역겨우실 것이기 때문에 당신께서는 똑같이 고통당하실 것입니다.”
타대오가 말한다.
“반대로 저는 당신께서는 인성이 면제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원수들에 대한 당신의 인성의 반발을 당신의 초자연적인 부분으로 억제하셔야 하는 노력으로 인하여 고통당하신다고 주장합니다.”
마태오가 말한다.
“저는 어리석은 자이기 때문에 제 생각은 분명히 틀렸을 거라고 확신하지만, 저는 당신의 사랑이 배척당하기 때문에 당신께서 고통당하신다고 말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인간적인 면이 바랄 수 있는 것처럼 벌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당하시지 않고, 오히려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실 수 없기 때문에 고통당하시는 것입니다.”
안드레아가 말한다.
“끝으로 저는 당신께서는 모든 고통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당신께서 모든 고통들을 당하셔야 하기 때문에 고통당하신다고 주장합니다. 당신 안에서 두 가지 속성(Nature) 중 하나가 우세하지 않고, 그것들이 완전한 조화로 함께 섞여 완전한 희생을 이룬다고 주장합니다. 그 희생은 참으로 초자연적이어서 하느님에게 가해진 모욕을 진정시킬 수 있고, 그것은 참으로 인간적이어서 인류를 대표하여 그 인류를 첫 아담의 흠 없는 상태(the immaculacy)로도로 데려가 과거를 취소하고 새로운 인성을 낳을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각에 따른 새로운 인성(humanity), 즉 참으로 그 안에 하느님의 모습(image)과 그분과의 유사성(likeness)이 있고, 사람의 운명 즉 하느님의 나라에서 그분을 소유하는 것과 그분을 소유하기를 염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성을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초자연적으로 고통당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일들이 행해지는 것을 당신께서 보시는 것,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 하느님에 대한 영속적인 모욕이라고 제가 말할 수도 있는 것으로 인하여 참으로 고통당하십니다. 당신께서는 인간적으로 고통당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탄에 의하여 중독된 저희 육체의 정욕을 잘라내시기 위하여 참으로 고통당하십니다. 두 가지 완전한 속성들의 완전한 고통으로 당신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모욕과 사람의 죄를 완전히 없애실 것입니다.”
열성당원이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다. 예수께서 물으신다.
“너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보기에는 어떤 것이 정확한 정의(定義)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말한다. 알패오의 야고보과 요한만 잠자코 있다.
“그럼 너희 두 사람은 어떠냐? 너희는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찬성하지 않느냐?”
예수께서는 집요하게 말씀하신다.
“아닙니다. 저희는 각 주장에 참된 것, 아주 참된 것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저희는 완전한 진리가 빠져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느냐?”
“아마 요한과 저는 그것을 찾아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당신께 말씀드리는 것은 저희에게는 거의 신성모독처럼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착한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그래서 저희는 거의 하느님의 이름을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그분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선택된 민족의 한 사람, 하느님의 아들인 한 사람이 복되신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여 그는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언급할 대용어들을 창안해야 했는데, 사탄이 감히 하느님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희에게 신성모독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도 저희는 당신께서는 하느님이시고, 사탄이 당신을 미워하기 때문에 고통이 항상 당신을 거슬러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는 당신을 어느 누구보다 더 미워합니다. 형제여, 당신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증오를 만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말한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증오를 만나십니다.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려고 일어나는 것은 바리사이들이나 라삐들도 아니고, 이 사람이나 저 사람도 아니고, 이 이유나 저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증오(Hatred)에게서 너무 많은 희생들을 낚아채시기 때문에, 증오가 사람들에게 침투하고 그들을 움직여 증오로 격노하여 당신을 거스르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한다.
“많은 정의들에 여전히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정말로 참된 이유를 찾아보아라, 내가 그 때문에 존재하는 이유를…”
예수께서 그들을 격려하시며 말씀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들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마침내 그들은 단념하고 말한다.
“저희는 그것을 못 찾겠습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그것은 항상 너희 앞에 있다. 그것은 우리의 책들과 우리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자, 그것을 찾아보아라!
너희의 모든 정의에 약간의 진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첫째 이유가 빠져 있다. 그것을 현재에서 찾지 말고, 가장 먼 과거 안에서. 예언자들 너머에서, 성조들 너머에서, 우주의 창조 너머에서…”
사도들은 곰곰 생각하지만… 그것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 말들을 기억한다면, 너희는 그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아직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그래도 어느 날 너희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잘 들어라. 우리 함께 시대들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자. 시간의 한계들 너머까지. 너희는 누가 사람의 영혼을 타락시켰는지를 안다. 그것은 사탄, 뱀, 적대자, 원수, 증오이다. 너희가 좋을 대로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런데 그가 왜 사람을 타락시켰느냐? 그가 시샘(envy)에 먹혔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쫓겨난 하늘에 사람이 가게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기가 받고 있는 유배형(exile)을 사람도 받기를 원했다. 그는 왜 쫓겨났느냐? 그가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너희도 안다.
그런데 그가 무엇에 있어 반역했느냐? 순종에 있어서다(in obedience). 고통의 기원에 불순종(disobedience)이 있다. 그렇다면 항상 기쁨인 질서를 회복하려면, 완전한 순종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필연적으로 논리적이지 않느냐?
순종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중대한 문제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어려운 것은 그것을 성취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기쁨을 다시 가져다주도록 사랑(the Love)에게 요청받은 내가 하느님의 생각(the Thought of God)에게 순종하기 위하여 무한히 고통당해야 하지 않았겠는지 깊이 생각해보아라,
그러므로 나는 이기기 위하여, 한 개의 죄나 천 개의 죄들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루치페르의 천사의 영에 있어서 또는 그 산 아담에게 있어서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의 죄였고,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항상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의 죄일 그 현저한 죄 자체(the very preeminent Sin)를 취소하기 위하여 고통당해야 한다.
사람들아,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너희의 순종은 작은 것에―그것은 커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작다―제한된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정의 안에서 너희가 드릴 수 있는 것만을 너희에게 요구하신다. 하느님의 뜻에 관하여 너희는 너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안다.
그러나 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관하여 그분의 모든 생각을 알고 있다. 지식과 실천에 관하여 나에게 아무런 제약이 부과되어 있지 않다. 사랑하는 제물공여자(the loving Sacrificer), 하느님이신 아브라함(the divine Abraham)께서는 제물과 그분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다.
배상과 제물들을 요구하는 것은 만족되지 않고 모욕당한 사랑이다. 만일 내가 영원 전부터(ab aterno) 천주 성자로서, 그리고 아버지께서 의로움을 발견하신 사람으로서 순종하려고 준비하면서 아버지께 ‘예’하고 말씀드리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처럼, 만일 내가 수천 년을 산다 해도 사람(Man)을 그 마지막 섬유까지 태워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순종은 고통과 영광이다. 순종은 영과 마찬가지로 결코 죽지 않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참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 세상, 사탄에 대한 지속적인 싸움 후에 신들처럼(like gods) 될 것이다. 순종은 빛이다. 사람이 더 순종할수록 더 빛을 발하게 되고, 더 잘 보게 된다.
순종은 참을성 있다. 그래서 사람이 더 순종할수록 그는 사람들을 더 잘 견뎌낸다. 순종은 겸손하다. 그래서 사람이 더 순종할수록 자기의 이웃에게 더 겸손하게 된다. 순종은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래서 사람이 더 순종할수록 사랑의 행위들이 더 많아지고, 더 완전해지게 된다.
순종은 영웅적이다. 영혼의 영웅은 성인이고, 하늘나라의 시민이며, 신성해진(deified) 사람이다. 사랑이 한 분이시고 삼위이신 하느님을 만나는 성덕이라면, 순종은 너희의 선생인 나를 만나는 성덕이다. 거룩한 모든 것에 대한 절대적 순종으로 너희가 내 제자들인 것을 세상이 알게 해라. 유다를 불러라. 나는 유다에게도 할 말이 있다…”
유다가 도착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내려오는 데 따라서 점점 더 좁아지는 전경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신다.
“나는 미래의 영혼의 선생들이 될 너희를 위한 작은 비유 하나를 말하겠다. 너희가 어렵고 힘든 완전의 길을 올라갈수록, 너희는 더 보게 될 것이다. 방금 전에 우리는 밭과 과수원들이 있는 두 평야 즉 필리스티아인들의 평야와 사론평야를 많은 마을들과 함께 볼 수 있었고, 심지어 먼 광대한 푸른 공간 즉 대해와 저기 끝에 있는 초록빛 카르멜 산도 볼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약간밖에 볼 수 없다. 전망이 좁아졌고, 점점 더 좁아져 계곡 바닥에서는 그것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영적으로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의 성덕과 지혜는 점점 더 제한되고, 그의 판단력은 점점 더 좁아져 마침내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혼의 선생은 그의 사명에 대하여 죽은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식별하거나 인도할 수 없다.
그는 시체이고, 자기가 썩은 것처럼 부패시킬 수 있다. 내려가는 것은 때로 아니 거의 항상 그를 유혹한다. 왜냐하면 바닥에는 관능적인 만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휴식과 음식을 얻기 위하여 계곡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육체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지만, 정신적, 영적 호색의 계곡으로 내려감으로써 육체적인 정욕과 영적 게으름을 만족시키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너희가 내려가도 되는 계곡은, 단 하나의 계곡은 겸손의 계곡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겸손한 영혼들을 이끌어 그분께로 올리시기 위하여 몸소 그 계곡으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들어 올릴 것이다. 다른 모든 계곡은 치명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을 하늘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 그것 때문에 당신께서는 사람을 보내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렇다, 그것 때문이다. 너는 너에게 질문하는 사람들과 많은 말을 했다.”
“예,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들은 노새보다 더 아둔합니다.”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이 사라진 그곳에 한 생각을 남겨두고자 했다. 네가 네 영혼에게 영양을 공급할 수 있게 하려고.”
유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분을 바라본다. 그는 자기가 보상받고 있는지, 책망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유다의 추종자들과의 회화내용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예수께서 유다의 교만을 꾸짖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유다는 눈치 빠르게 화제를 돌리며 묻는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로마인들과 페트라의 그 사람, 그들이 언젠가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들은 당신과 아주 제한된 접촉만을 가졌기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 알렉산데르는요? 그 사람은 갔고… 우리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의 로마인들도 그렇고요.
그들은 본능적으로 진리를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까지 이교에 잠겨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좋은 것을 하는 데 성공하게 될까요?”
“너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선생님.”
“왜 그들이 성공하지 못한단 말이냐?”
“그들은 죄인들이니까요.”
“그들이 유일한 죄인들이냐? 우리 중에는 죄인들이 없느냐?”
“많습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만일 시대들을 통하여 지혜와 진리로 자양분을 공급받은 우리도 죄인들이고, 우리도 의로워지고 당신께서 대표하시는 진리를 따르는 데 성공하지 못하는데, 더러움이 절어 있는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그가 어디에서 출발하든 하느님이신 진리(the Truth)에 이르고, 그것을 소유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정신적 교만(mental pride)과 성적 도착이 없고, 진리와 빛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있고, 순수한 의향과 하느님에 대한 갈망이 있을 때 사람은 확실히 하느님을 향한 길 위에 있는 것이다.”
“정신적 교만과… 성적 도착… 선생님… 그렇다면…”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말해라.”
유다는 머뭇거리다가 말한다.
“그럼 그들은 변태적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이를 수 없겠군요.”
“유다야, 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다. 너는 왜 네 생각과 네 양심에 재갈을 물렸느냐? 오! 사람이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그런데 주된 장애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묵상하고 자기의 잘못들을 인정하기를 원치 않는 그 자신 안에 있다.
참으로 모든 영적 파멸의 원인을 사탄에게 돌림으로써 사탄도 아주 자주 중상당한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훨씬 더 많이 중상당하신다. 모든 사건들이 그분의 탓으로 돌려지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신다. 사탄은 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이길 수 없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은 백 번 중 일흔 번을 자기 자신의 의지로 죄짓는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양심을 성찰하기를 회피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설혹 그의 양심이 예기치 않은 움직임으로 자기 안에서 반응하여 그가 묵상하기를 원치 않는 진리를 외친다 해도, 그 외침들을 억누르고, 자신의 지성에 심각하고 고통스럽게 나타나는 모습을 파괴하고, 고발하는 목소리에 의하여 영향 받은 자기의 생각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키면서 예컨대 이렇게 말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정신적 교만과 육체의 타락으로 인하여 진리에 이를 수 없구나.’
그렇다. 진실로 우리는 우리 가운데 정신의 교만과 육체의 타락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길들을 향하여 나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행동들이 사람들이나 당파들의 이익에 배치될 때는 하느님의 행동들을 비판하거나 방해할 정도로 사탄의 교만과 진실로 경쟁할 수 있는 교만이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죄로 인하여 영벌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희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 아직 백성들의 모든 계급에 착한 영혼들이 있다. 유식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보다는 서민들 가운데에 더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 내가 거의 3년 동안 복음을 전하고, 도와주느라고 쇠약해지고 있는 팔레스티나의 이 사람들에 비하여 몇 명이나 되느냐 말이다. 이스라엘에서 내 나라로 기꺼이 오려는 영혼들보다 구름 낀 밤에 빛나는 별들이 더 많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그 이방인들은 당신의 나라로 올까요?”
“그들의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올 것이다. 심지어 내 제자들 모두가 끝까지 인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썩었기 때문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에 대하여 걱정하지 말자! 가능한 한, 친절함과 확고함, 나무람과 용서, 인내와 사랑으로 그 열매들이 썩지 않도록 애쓰자.
그 다음에 그들이 그들을 구원하기를 원하는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아니오’ 하고 말하면서 뉘우치지 않고 죽어서 죽음과 사탄의 품안으로 뛰어든다면, 고개를 숙이고 그 영혼을 구원함으로써 그 영혼으로 인하여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는 우리의 고통을 그분께 드리자.
모든 선생은 그런 실패들을 만난다. 그런데 그것들도 유익하다. 그것들은 영혼들의 선생들의 교만을 꺾고, 자신들의 임무에 대한 그들의 항구성을 시험한다. 하나의 실패가 영혼들의 선생의 의지를 지치게 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그것은 미래에 더 많이 더 잘 하도록 그를 자극해야 한다.”
“당신께서는 왜 그 십인대장에게 당신께서 한 산 위에서 그를 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당신께서는 어떻게 아십니까?”
예수께서는 유다를 바라보신다. 그것은 길고 이상한 시선인데, 그 안에는 슬픔이 미소에 섞여 있다.
“왜냐하면 그는 내 들어 올림(My assumption)의 현장에 있게 될 사람들 중 한 명일 것이고,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박사에게 심각한 진리의 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그 순간부터 그는 빛을 향한 그의 안전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기브온에 와 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 일곱 명과 함께 가서 내가 왔다는 것을 알려라. 나는 나를 따라오고 있는 이웃 마을들의 사람들을 돌려보내기 위하여 즉시 말하겠다. 다른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남아 있을 것이다. 유다야, 너는 마태오, 시몬, 바르톨로메오와 함께 남아 있어라.”
(나는 그 십인대장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있었던 병사들 중 한 한 사람으로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내 예수를 살펴보는 데 전념하여 그들에게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도 말해야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근무 중인 병사들의 무리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모든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더 잘 살펴볼 수 있었을 때는 빛이 너무 희미해서 나는 잘 아는 얼굴들만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을 고려할 때 나는 그가 가말리엘에게 몇 마디의 말을 한 병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말을 지금 기억할 수 없고, 지금 집에 혼자 있기 때문에 수난에 대한 공책을 나에게 가져다주도록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 없어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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