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316~p327

516. 선한 목자 예수
1946. 10. 25.
헤로데 문을 통하여 시내로 들어오신 예수께서는 티로페온과 오펠 구역을 향하여 가시기 위하여 시내를 가로질러 가고 계신다.
“우리는 성전으로 갈 겁니까?”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그렇다.”
“조심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경고한다.
“나는 기도하는 시간 동안에만 거기 머무르겠다.”
“그들은 당신을 억류할 것입니다.”
“아니다. 우리는 북쪽 문들을 통하여 들어갔다가 남쪽 문들로 나올 터이니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조직화하여 나를 해칠 시간이 없을 것이다. 나를 감시하고 밀고하는 사람이 항상 내 뒤에 있다면 몰라도.”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향하여 나아가신다. 성전은 흐릿한 겨울 아침의 누르스름한 초록색 빛 속에 거의 유령처럼 언덕 꼭대기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날 아침에는 태양은 하나의 회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짙은 구름 사이를 뚫고 애써 자기 궤도를 따라 가보려 하지만, 헛수고일 뿐이다!
새벽의 즐거운 광채는 비현실적인 창백한 노란 빛의 반영으로 변하는데, 그것은 퍼져나가지 않고, 고작 초록색 줄이 있는 납빛 반점들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빛 아래서 성전의 대리석들과 황금 장식들은 창백하고 음산하게 보인다. 나는 이것을 죽음의 장소에서 나타나는 폐허와 같이 음울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성전 경내를 향하여 올라가시며 그것을 자세히 바라보신다. 또한 그분께서는 이른 아침의 통행인들의 얼굴을 바라보신다. 주로 야채 재배자들, 도축을 위하여 작은 짐승들을 데리고 가는 목자들, 장보러 가는 하인들이나 주부들 따위의 서민들이다. 그들 모두는 겉옷을 입고 싸늘한 아침 공기로부터 몸을 보호하려고 약간 상체를 숙이고 말없이 걸어간다. 그들의 얼굴들도 이 종족의 사람들의 보통 얼굴보다 더 창백한 것 같다.
이상한 빛이 그 얼굴들을 몹시 푸르스름하게, 거의 진주 빛으로 보이게 한다. 그들은 초록색이나 선명한 자줏빛 진노랑 따위의 다채로운 빛깔의 겉옷을 입고 있지만 그 빛으로 인하여 얼굴에 화사한 빛의 반사광을 보낼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께 인사드리지만,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는다. 지금은 적절한 시간이 아니다. 네거리나 짧은 간격을 두고 거리를 덮고 있는 아치 아래에서 애처로운 소리를 지르는 거지들은 아직 없다. 시간과 계절이 예수께서 장애 없이 자유롭게 가시는 데 이바지한다.
지금 그들은 성벽에 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마당으로 간다. 그들이 기도하는 동안에 그 음색으로 보아 은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나팔 소리가 언덕들 위로 퍼지면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알리고, 유쾌한 향냄새가 풍겨 나와 모리아산 꼭대기에서 맡을 수 있는 덜 유쾌한 모든 다른 냄새들을 압도한다.
덜 유쾌한 냄새들이란 도살되어 불에 태워지는 살 냄새, 밀가루 타는 냄새, 기름 태우는 냄새 따위의 늘 있는 냄새, 강약의 차이는 있어도 줄곧 드리는 번제물로 인하여 항상 저 위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들이다.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데, 성전으로 오고 있는 첫 번째 사람들, 성전에 소속된 사람들, 계산대를 차리거나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환전상들과 판매상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가 너무 적고, 너무 놀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놀라움을 나타내는 말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저 사람은 또 왔구먼!”
“저 사람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갈릴래아로 가지 않았군 그래.”
“그렇지만 저자는 어디 숨어 있었기에 아무 데서도 발각되지 않았지?”
“저 사람은 정말로 그들과 맞서려는 거로구먼.”
“참으로 바보야!”
“정말로 거룩하신 분이야!”
등등 각자의 느낌에 따라서 말한다.
예수께서는 벌써 성전 밖으로 나오셔서 오펠 쪽으로 가는 길을 향하여 내려오신다. 그분께서는 시온으로 가는 길과 교차하는 곳에 내려오셨을 때 최근에 치유된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만나신다. 그 사람은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사과들로 가득 찬 바구니들을 잔뜩 들고, 역시 사과 바구니들을 들고 예수께서 가고 계시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다른 젊은이들과 농담을 나누며 즐겁게 오고 있다.
그 젊은이는 예수의 얼굴과 사도들의 얼굴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로서는 아마 이 우연한 만남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기적적으로 치유해주신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시고 그를 부르신다. 바르톨마이라고도 하는 사도니아는 돌아서며 좁은 골목길을 향하여 가면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키가 크고 수수한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위엄이 있는 그분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리 오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명하신다.
젊은이는 짐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예수를 곁눈질로 쳐다보면서 그분께 다가오며 그분이 사과를 사려고 하는 줄로 생각하며 말한다.
“제 주인은 이미 이 사과들을 팔았습니다. 그렇지만 손님께서 사과를 사고 싶으시다면, 제 주인에게 아직 더 남아 있습니다. 이놈들은 잘 생기고 맛이 좋습니다. 어제 사론의 과수원에서 온 것들입니다. 만일 손님께서 많이 사신다면, 주인님이 값을 많이 할인해드릴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그분의 오른손을 들어 젊은이의 수다를 막으시며 말씀하신다.
“나는 사과를 사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축하해주고, 당신에게 친절하셨던 지극히 높으신 분을 찬미하려고 당신을 불렀소.”
“오! 그렇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그렇게 합니다. 제가 보는 빛으로 인해서도 그렇고, 마침내 제가 부모님을 도와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도 저는 그렇게 합니다.
저는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유다인은 아니지만, 착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회당에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바구니들을 땅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그들이 당신을 내쫓았소? 왜? 당신이 무슨 일을 했기에?”
“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주님께서는 저에게 메시아라고 불리는 분을 만나게 해주셨는데, 당신도 보시다시피 그분께서 저를 고쳐주셨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저를 내쫓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고쳐준 사람은 결국 완전히 좋은 일만을 해준 것은 아니구려.”
예수께서 그를 시험하시며 말씀하신다.
“여보세요,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분께서는 저에게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고, 그 다음에는 제가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당신은 항상 보셨으니까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오!… 사람은… 사람은 보는 것과 동시에 모든 것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제가 저기 실로암 못 가에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로 기뻐하며 웃다가 울다가 했습니다. 예! 저는 제 불행 중에도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을 만큼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저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착하신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멋진 일을 하며 제 생활비를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무엇보다 제가 받았던 기적이 저에게 주기를 제가 바라는 모든 것입니다만, 저는 메시아라고 불리는 분과 그분의 제자를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렇데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저는 그분을 찬미하고 싶습니다. 그분과 그분의 제자를요. 그리고 저는 틀림없이 하느님으로부터 오시는 그 선생님께 저를 그분의 하인으로 받아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뭐라고요? 그 사람 때문에 당신이 파문당했고,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었고, 더 엄하게 벌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도 당신은 그를 섬기기를 바란다는 거요? 당신은 당신을 고쳐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박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오?”
“예, 저도 압니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우리끼리 하는 말처럼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비록 저 높은 곳(그는 성전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원치 않지만요. 그리고 그분을 섬기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릴 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럼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을 믿고 그분이 팔레스터나에 계신다는 것을 믿소?”
“저는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을 제 지성으로만이 아니라 제 전 자아로 믿고 싶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분께서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께서 어디 계시는지 아신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그분께 가서 그분을 뵙고, 그분을 완전히 믿고, 그분을 섬길 수 있도록요.”
“당신은 이미 그를 보았소. 그러니 당신은 그에게 갈 필요가 없소. 당신이 바로 지금 보고 있고,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오.”
나는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면서 지극히 잘 생겨지시고 빛나시는 것처럼 보여 아주 짧게 변모(transfiguration)하신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그분을 믿는 소박한 신자에게 상주시기 위하여, 그리고 그의 믿음을 굳세게 해주시기 위하여, 빛이 깜빡할 동안만큼 그분의 미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
내 말의 뜻은 미래의 아름다움이란 그분께서 부활 후에 지니시고, 하늘에서 지니고 계실 그 아름다움, 영광스럽게 된 사람의 아름다움, 전적으로 그분의 것인 완전의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과 섞인 영광스럽게 된 육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순간의 섬광이었다.
두 사람이 말하기 위하여 물러갔던 약간 어두운 길모퉁이, 길의 장식 홍예 창도리 아래서 예수에게서 발산되는 빛으로 이상하게 빛난다. 내가 되풀이하여 말하지만, 그때 예수께서는 매우 아름다워지신다.
그 다음 모든 것이 평소대로 돌아온다. 다만 그 젊은이는 지금 땅바닥에 엎드려 얼굴을 먼지에 파묻고 흠숭하며 말한다.
“주님, 나의 하느님, 저는 믿습니다!”
“일어나시오. 나는 빛과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가져다주고, 사람들을 시험하고 그들을 심판하려고 세상에 왔소. 나의 이때는 선택(choice), 임명(election), 선별(selection)의 때요. 나는 마음과 의향이 깨끗한 사람들, 겸손한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그리고 정의와 자비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다양한 부에 그 실제 가치를 부여할 줄 알고 물질적 부보다 영적 부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빛 즉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막기 위하여 두꺼운 벽들을 쌓아 올렸기 때문에 소경이었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자기들을 보는 자들로 여기는 사람들은 소경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와 있소…”
“그렇다면 당신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고, 그래서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착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착하다면, 당신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소경이 되지 않기를 바랄 테니까요.”
몇 명의 바리사이들이 끼어든다. 그들은 큰 도로에서부터 와서 사도들의 뒤에 있는 사람들의 무리에게 살그머니 다가왔었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바라보신다. 그분께서는 분명히 더 이상 신적 아름다움으로 변모해 계시지는 않는다. 사파이어 빛 눈으로 그분의 박해자들을 응시하시는 그분께서는 매우 엄하신 예수시고, 그분의 목소리는 더 이상 기쁨의 금빛 음이 아니라 청동과 같은 목소리이며, 그분께서 대답하실 때의 그분의 목소리는 청동 소리처럼 날카롭고 엄하다.
“나는 지금 진리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볼 수 없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 자신이 보지 않으려고 그들의 눈동자 앞에 널빤지들을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소경이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분리(the division)가 일어나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소경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알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도 혹시 이 소경들 가운데에 있습니까?”
“만일 당신들이 소경들이고, 그래서 보려고 애쓴다면, 당신들에게는 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우리는 본다’고 말하면서 보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죄짓습니다. 당신들은 소경들인데도 보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에 당신들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길, 진리, 생명을 보아야 합니다. 이 젊은이가 그랬던 것처럼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은 자기 집을 알기 때문에 항상 지팡이를 사용하여 자기 집의 문을 찾아 그것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면, 그는 그 새 집의 문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고, 벽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새 율법의 시대가 왔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새 세계, 새 백성, 새 나라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과거의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시대를 압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왕궁이 있는 새로운 도시로 옮겨졌지만, 그 왕궁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소경들과도 같습니다.
나는 그들을 그리로 인도하고, 그들을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려고 왔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집, 하느님의 나라, 빛, 길, 진리,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또한 나는 인도자 없이 남아 있는 양떼를 모아 유일한 양의 우리 즉 아버지의 양의 우리로 인도하기 위하여 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는 문이고, 동시에 목자이기 때문에 양 우리의 문을 압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때 드나듭니다. 그리고 나는 자유롭게, 그리고 문을 통하여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나는 참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하느님의 양들에게 다른 것들을 지시하거나 그들을 다른 우리들과 다른 길들로 데려가 잘못 인도하려고 한다면, 그는 착한 목자가 아니라 우상 목자(an idol shepherd)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울타리를 뛰어넘어 다른 방식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목자가 아니라 도둑이고, 암살자입니다.
그런 자는 죽이고 훔치려고 들어갑니다. 그는 그렇게 하여 도둑질당한 양들이 소리 질러 지키는 사람들과 목자의 주의를 끌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거짓 목자들은 이스라엘의 양떼의 양들 가운데에서도 그들을 풀밭으로부터 이탈하여 참 목자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려고 암시합니다.
그리고 거짓 목자들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양들을 양떼로부터 떼어낼 태세를 갖추고, 만일 필요하다면 양들을 죽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쳐서, 양들로 하여금 목자(the Shepherd)에게 거짓 목자들의 속임수들을 알리지 못하게 하거나 그들의 원수들과 목자의 원수들에게서 자기들을 보호해달라고 하느님께 호소하지 못하게 하려고 양 우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착한 목자입니다. 내 양들은 나를 알고, 영원히 참된 양 우리를 지키는 사람들이었던 사람들도 나를 압니다. 그들은 나와 내 이름을 알아 왔고, 이스라엘에게 그 이름이 알려지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묘사했고 내 길들을 준비했습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게 되었을 때 그들 중 최후의 사람이 나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참 목자를 기다리고 있던 양떼에게, 자기의 지팡이 주위에 모여든 양떼에게 말했습니다. ‘보아라! 저분이 내가 내 뒤에 오실 분이라고 말한 그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에 나보다 앞서 가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위하여, 너희가 그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도록, 그분이 이스라엘에 드러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러 왔다.’
그리하여 그 착한 목자(the good sheep)는 내 목소리를 들었고,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들은 나에게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양들이 착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가 어디로 가든 그를 따라가는 양들에게 그가 알려질 때 그가 하는 것처럼 나는 그 양들을 나에게 데려왔습니다. 착한 목자가 양들을 모두 나오게 할 때, 그는 그들의 선두에 서서 걸어가고, 그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양들은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그에게서 멀리 도망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내 양들의 앞장을 서서 걸어가며 그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내가 가장 먼저 위험들을 맞닥뜨리고 그것들을 양떼에게 알려줍니다. 그 이유는 내가 안전한 내 나라로 그들을 인도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느님의 나라가 아닙니까?”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참 예루살렘과 하느님의 나라로 올라가는 출발점입니다.”
“그럼 약속된 메시아는 어떻습니까? 당신이 메시아라고 말하는 그 메시아는 그럼 이스라엘을 승승장구하고, 영광스럽게 하고, 세상의 지배자가 되고, 모든 민족들을 그의 왕권 아래에서 복종시키고, 이스라엘이 한 민족이 된 이후에 그를 굴복시켰던 모든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오! 잔인하게 복수하는 분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럼 이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란 말입니까?
당신은 예언자들을 부인하려고 합니까? 당신은 우리 라삐들이 바보들이라고 말할 작정입니까? 당신은…”
“메시아의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 위에 기초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메시아는 민족들과 군대들의 왕이 아니고 영들의 왕입니다. 메시아는 선택된 민족에서, 왕족의 가문에서 올 것이고, 특히 그를 낳으시고 그를 보내신 하느님에게서 올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초와 사랑의 법의 공포와 예언자에 의하여 언급된 기쁜 소식의 선포가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세상의 왕, 왕들의 왕일 것이고, 그의 나라에는 시간과 공간에 있어 한계나 경계가 없을 것입니다. 눈을 뜨고 진리를 받아들이시오.”
“우리는 당신의 헛소리(nonsense)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소. 당신은 전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말을 하고 있어요. 비유들 없이 우리에게 말하고 대답하시오. 당신은 메시아요, 아니오?”
“그런데 당신들은 아직도 알아듣지 못했다고요? 그래서 나는 내가 문이고 목자라고 당신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높은 담이 둘러쳐지고 출입문들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제 내가 왔고, 들어가는 문이 만들어졌습니다.”
“오! 다른 사람들도 자기들이 메시아라고 말했었는데, 나중에 그들은 노상강도들이고, 반역자들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정의는 그들의 죄악을 처벌했습니다. 당신이 그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누가 우리에게 보증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기들이 왕이라고 말하며 백성들을 반란을 일으키도록 부추기는 거짓말쟁이들 때문에 로마의 준엄함을 우리도 당하고, 백성들에게도 당하게 하는 데 지쳤습니다!”
“아닙니다. 당신들의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고통당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고통당해도 당신들은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지금까지 우리 지배자들의 준엄함 위에 과중한 십일조들과 다른 것들로 일반 백성들을 압제해 왔습니다.
내가 악한이 아니라는 것을 누가 당신들에게 보증하느냐고요? 내 행동들입니다. 로마의 손길을 무겁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오히려 때로 나는 지배자들에게는 인정을 권고하고, 지배받는 백성들에게는 인내하도록 권유함으로써 그것을 가볍게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것을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 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어 큰 길의 통행이 방해받게 되어 사람들이 모두 골목길로, 목소리가 들리는 차양 아래로 물러간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에 동조하며 말한다.
“십일조에 대한 당신의 말씀은 맞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는 복종을 권하시고, 로마인들에게는 연민을 권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여느 때와 같이 군중의 동조로 인하여 화가 나 그리스도에게 말하는 그들의 말투가 훨씬 더 신랄해진다.
“그렇게 많은 말로 우리에게 대답하지 말고,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시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나는 메시아입니다. 나만이 하늘의 양 우리의 문(the Door of the Fold of Heaven)입니다. 나를 통과하지 않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른 거짓 메시아들이 있었고,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유일하고 참된 메시아입니다.
지금까지 메시아가 아니고, 단지 도둑들이고 산적들이면서 자기들이 메시아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동류인 소수의 사람들에게 자기들을 메시아라고 부르게 했던 사람들만이 아니고, 메시아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으면서도 참다운 메시아에게도 드려지지 않는 경배를 요구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들은 들으시오.
이 점에 유의하시오. 양들은 거짓 메시아들과 거짓 목자들과 거짓 선생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은 친절하게 들리기를 원했지만, 사실은 잔인한 그들의 목소리의 거짓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몇몇 숫염소들만이 그들을 따라가 악행을 저지르는 데 있어 그들의 동반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양의 우리에, 진정한 왕이자 목자인 사람의 왕홀 아래로 들어오기를 원치 않는, 길들여지지 않고 고집 센 염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지금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들의 왕인 그는 양떼의 목자가 되는 반면, 언젠가 양떼의 목동이었던 사람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자와 후자가 다 약속들과 예언들에서 말하는 것처럼 같은 뿌리 즉 이사이의 뿌리에서 옵니다.
거짓 목자들은 진실한 말들이나 위로의 행동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양떼를 흩어버리고 괴롭히거나 늑대들에게 내맡겨버리거나, 아니면 팔아서 이익을 얻으려고 죽이거나 살려놓거나, 양들에게서 목장들을 빼앗아 쾌락의 장소들이나 우상들을 위한 작은 숲들을 만들었습니다.
당신들은 늑대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들은 똑같은 거짓 목자들이 가장 먼저 그것들을 실천하면서 양떼에게 가르쳐준 악한 정열들(evil passions)과 악덕들(vices)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우상들을 위한 작은 숲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들은 그 앞에서 너무 많은 향이 피워지는 자신들의 이기심입니다. 다른 두 가지는 그 말의 뜻이 너무나 명백하므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 목자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양들을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양들을 거짓 목장들이나 사실은 도살장들인 거짓 양의 우리들로 데려가려고 오는 도둑들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나에게로 오는 양들은 안전합니다. 그 양들은 나와서 내 목장들로 갈 수도 있을 것이고, 돌아와 나와 함께 휴식하고, 거룩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튼튼해지고 살찔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야위고 실의에 빠져 있었던 내 백성, 내 양들이 생명을 얻고, 평화와 기쁨 안에서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참으로 이것을 원하여, 나는 내 양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충만하고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내 목숨을 주려고 왔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입니다. 착한 목자는 늑대들과 도둑들에게서 자기의 양떼를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칩니다. 반면 양들을 사랑하지 않고, 목장으로 양들을 데려가는 대가로 버는 돈만을 사랑하는 품꾼은 자기 목숨을 구하는 것과 자기 품안에 간직하고 있는 품삯만을 염려하고, 늑대들이나 도둑들이 오는 것을 보면 달아납니다. 그는 나중에 돌아와 늑대들에게 반쯤 죽은 채 남겨지거나 도둑이 흩어놓은 양들을 찾아내 전자는 죽여서 자기가 먹고, 후자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팔아넘긴 다음에 자기의 주인에게 거짓 눈물을 흘리면서 양이 한 마리도 살아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늑대가 양들을 물어뜯고 흩어놓든, 도둑이 양들을 약탈하여 도살업자에게 넘기든 돈만 바라고 일하는 사람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혹시 양들이 자라는 동안에 양들을 돌보고 그놈들을 튼튼하게 하려고 그놈들을 보살폈습니까?
그러나 양 한 마리가 얼마만한 값어치가 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의 노동과 보살핌과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지를 아는 주인은 양들이 자기에게 소중하기 때문에 그놈들을 사랑하고 보살핍니다.
나는 양들의 주인 이상입니다. 나는 내 양떼의 구세주이며, 나는 단 한 영혼의 구원이 나에게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무엇이든 기꺼이 하려고 합니다. 그 영혼은 내 아버지에 의하여 나에게 맡겨졌습니다. 아주 많은 수의 영혼들을 구원하라는 지시들과 함께 모든 영혼들이 나에게 맡겨졌습니다.
내가 영혼들을 영혼의 죽음으로부터 많이 낚아챌 수 있을수록 내 아버지께서는 더 영광스럽게 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혼들의 모든 원수들, 즉 그들의 자아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육신으로부터, 마귀로부터, 그리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빼앗아가려고 나와 다투는 내 원수들로부터 그들을 구해내기 위하여 싸웁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생각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내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하도록 나를 보내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그분과 영혼들에 대한 내 사랑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 양떼의 양들도 나와 내 사랑을 알고, 그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하여 내가 기꺼이 내 목숨을 바치려고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다른 양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들은 이 양 우리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내 정체에 따라 나를 알지 못하고, 많은 양들은 내가 무엇이라는 것과 내가 누구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들은 우리 중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야생염소들보다 못한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진리를 알고 생명과 그 나라를 얻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양들입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양들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에게도 다가가 그들에게 나 자신을 알려주고, 기쁜 소식을 알게 해주고, 그들을 내 목장들로 데려오고, 모아야 합니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침내 내 목소리를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로지 한 목자 밑에 오로지 한 양 우리만이 있을 것이고, 하느님의 나라가 땅 위에 형성되어, 내 왕홀과 내 표와 내 참 이름 아래 하늘로 옮겨지고 받아들여지도록 준비될 것입니다.
나의 참 이름! 그것은 나에게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뽑힌 사람들(chosen ones)의수가 차고, 환희의 송가들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내 이름으로 표시되고, 그 이름에 대한 그들의 사랑으로 인하여 어떤 상을 받을 것인지 그 정도와 그 깊이를 완전히 알지 못하면서도 그 이름에 충실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한 나의 선택된 자들이 신랑과 신부의 큰 혼인 잔칫상에 앉게 될 때, 그때 내 이름이 그들에게 알려질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충실한 내 양들에게 주기를 원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내 자신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황홀한 눈물로 반짝이는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들을 향하여 돌리시는데, 그 입술에 미소가 떨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그분의 영화된 얼굴의 영화된 미소여서 지복직관으로 그리스도께서 황홀경에 사로잡히시고, 사랑으로 그 지복직관이 성취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깨닫는 군중을 전율하게 한다.
그분께서는 다시 침착해지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정신이 보시는데 두 눈이 드러낼지도 모르는 신비를 감추시기 위하여 잠깐 눈을 감으신 다음에 다시 말씀하신다.
“오 내 백성이여, 오, 내 양떼여!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나의 목숨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나는 다시 그것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먼저 여러분이 생명을 얻도록, 여러분 자신의 생명으로 여러분의 구세주를 가질 수 있도록 그 목숨을 줄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내 목숨을 주어 여러분이 그것을 먹고 살게 하고, 내가 목자에서 목장과 샘으로 바뀜으로써 그것이 음식과 음료를 줄 터인데, 광야에서의 히브리인들에게처럼 40년 동안만이 아니라 땅 위의 사막들에서의 귀양살이의 전체기간 동안 줄곧 줄 것입니다.
사실 아무도 내 목숨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나를 자신들의 전존재로써 사랑함으로써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나 자신을 희생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고, 한없는 증오와 어리석은 두려움으로 내 목숨을 빼앗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것을 주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다면, 만일 아버지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둘이 죄지은 인류를 위한 사랑의 황홀경에 붙잡히지 않았다면, 아무도 목숨을 빼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원할 때 나는 언제든 다시 그것을 가질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이 생명을 이기는 것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께서 나에게 그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아니 아버지께서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쳐지고 소멸된 내 목숨을 통하여 사람들이 유일한 민족, 즉 내 백성, 하느님의 자녀들의 천상의 백성이 되고, 그래서 백성들 가운데에서 양들이 숫염소들과 분리된 것이고, 양들은 그들의 목자를 따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큰 소리로 말씀하셨던 예수께서 달콤한 냄새가 나는 사과 바구니들을 그의 발 앞에 내려놓고 줄곧 그분 앞에 서 있었던 바르톨마이라고 불리는 사도니아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말씀하신다.
“당신은 나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렸구려. 이제 당신은 틀림없이 벌을 받고, 일자리를 잃을 것이오. 당신은 그것을 알겠소? 나는 항상 당신에게 고통의 원인이오. 나 때문에 당신은 회당을 잃었고, 지금은 나 때문에 당신의 주인을 잃게 되었소…”
“그런데 만일 제가 당신을 가진다면, 제가 그 모든 것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당신만이 저에게 가치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당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이 과일들을 산 사람에게 이것들을 가져다주게 해주십시오. 그 다음에 저는 당신과 함께 가겠습니다.”
“함께 갑시다. 그 다음에 당신의 아버지께로 갑시다. 당신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니 그분께 당신을 축복해주시기를 청함으로써 그분을 공경해야 하오,”
“예, 주님. 모든 것을 당신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왜냐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예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까요. 저는 소경이었기 때문에 심지어 읽고 쓸 줄도 모릅니다.”
“그것은 염려하지 마시오, 당신의 착한 뜻이 당신을 가르칠 거요”
그리고 그분께서는 큰 길을 향하여 출발하시는데, 그 동안 군중은 논평하고 토론하고 심지어 말다툼까지 하며, 여느 때처럼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뉜다. 즉 나자렛의 예수는 마귀 들린 사람인가, 아니면 성인인가?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논쟁하는 동안에 예수께서는 멀어져 가신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영문판번역) > 7권 공생활 셋째 해(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사시7권 [518. 트코아로 가시며. 늙은 엘리안나(2)] (1) | 2026.03.24 |
|---|---|
| 하사시7권 [517. 베타니아와 라자로의 집으로 가시며 518. 트코아로 가시며. 늙은 엘리안나(1)] (1) | 2026.03.24 |
| 하사시7권 [514. 기브온에서. 사랑의 지혜. 515.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0) | 2026.03.20 |
| 하사시7권 [513. 기브온을 향하여. 예수의 고통의 이유들] (1) | 2026.03.15 |
| 하사시7권 [512. 결심하지 못한 젊은이. 벳 호론에서의 기적들과 경고들(2)] (1) | 2026.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