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225~p235

505. 성전에서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시다(2)
(p225부터 지난회에 이어서 계속)
그러나 적대적인 사람들의 무리에서도 착한 사람들인 어떤 사람들, 진정 정직한 의향에 이끌리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께로 다가와, 그분께 사랑이나 증오로 묻는 것을 그토록 자주 들어왔던 조바심 나는 질문을 한다.
“당신께서는 누구십니까? 저희가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알 수 있도록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이름으로 저희에게 진실을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진리 자체입니다. 그래서 나는 결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항상 팔레스티나의 모든 곳에서 군중들에게 내가 말했던 첫날부터 항상, 그리고 이곳 지성소 옆에서 몇 번 내가 무엇이라고 선언한 그 사람입니다. 나는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지성소의 벼락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 낮 동안에 이 백성에 관하여 말해야 할 것과 심판해야 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내 저녁이 임박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내가 그것을 말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모든 사람을 심판할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나를 보내신 진실하신 분께서 그것을 나에게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영원한 사랑의 포옹 속에서 나와 말씀하시며 그분의 모든 생각을 나에게 말씀해주셨고, 그래서 나는 내 말로 그 말씀을 세상에 되풀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세상에게 선포할 때까지 나는 침묵할 수 없고, 아무도 나를 침묵하게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당신은 당신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계속 말할 거요? 그런데 당신은 누가 당신 말을 믿을 거라고 기대하오? 누가 단 한 번이라도 당신에게서 하느님의 아들을 볼 수 있단 말이오?”
그분의 원수들은 증오로 미치다시피 하여 자기들의 주먹을 그분의 얼굴 앞에 흔들어대며 말한다.
사도들, 제자들, 호의적인 사람들이 선생님의 주위에 보호벽을 형성하여 그들을 밀어낸다. 레위인 즈카르야는 악한 자들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예수, 마나엔, 알패오의 두 아들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그들은 지금 이교도들의 마당 끝에 있다. 서로 반대되는 사람들의 흐름으로 인하여 걸음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동쪽의 마지막 기둥인 그분께서 늘 계셨던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신다. 그분께서는 걸음을 멈추신다. 그들은 군중을 흥분시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교도들도 머무르도록 허용되는 곳에서 참다운 이스라엘 사람을 쫓아낼 수 없다. 그들은 교묘하게도 그것을 피한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분을 모욕하는 자들과 다른 이들에게 대답하시며 다시 연설을 시작하신다.
“여러분이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렸을 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외친다.
“그런데 당신은 누가 당신을 들어 올린다고 생각하는 거요? 어리석은 협잡꾼이자 하느님이 싫어하시는 신성모독자를 왕으로 가진 나라는 비참한 나라요. 우리 중 아무도 당신을 들어 올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두시오. 당신은 당신에게 남아 있는 약간의 지성으로 당신이 시험당할 때라는 것을 때맞추어 알게 되었소. 당신은 우리가 당신을 결코 우리 왕으로 삼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소.”
“나도 압니다. 여러분은 나를 옥좌에 올리지는 않겠지만, 나를 들어올리기는 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들어 올리면서 나를 낮추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를 낮추었다고 생각할 바로 그때 나는 들어 올려질 것입니다. 팔레스티나 위만이 아니라, 세상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의 민족 위만이 아니라, 온 세상 위에, 이교도 나라들 위까지, 세상의 학자들이 아직 모르는 나라들 위까지.
그리고 나는 사람의 일생 동안만 들어 올려지지 않고, 땅의 전 생애 동안에 들어 올려질 것이고, 내 옥좌의 그림자는 땅 위에 점점 더 넓게 퍼져서 세상을 완전히 덮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돌아올 것이고, 여러분은 나를 볼 것입니다. 오! 여러분은 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미치광이 같은 저자의 말을 들어보시오! 우리가 저자를 낮춤으로써 들어 올리고, 저자를 높이 올리면서 낮춘답니다! 저자는 미쳤어요! 미치광이! 저자의 옥좌의 그림자가 온 땅을 덮는다고! 키루스보다 더 위대하다고! 알렉산데르보다 더 위대하다고! 카이사르보다 더 위대하다고! 그런데 당신은 카이사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오? 당신은 카이사르가 당신이 로마제국을 취하도록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시오? 그리고 저자는 세상의 끝까지 자기의 옥좌 위에 남아 있을 거라고! 하! 하!”
그들의 말은 손바닥으로 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그들의 조롱은 채찍질보다 더 매섭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말하도록 내버려두신다. 그분께서 당신을 비웃는 사람들과 당신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외침 속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리게 하시려고 목청을 돋우시자, 그 소리는 성난 바다의 포효하는 소리처럼 그곳을 꽉 채운다.
“여러분이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렸을 때 그제야 여러분은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내가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신 것만을 말하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계십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림자가 몸을 따라다니듯이 비록 보이시지는 않지만 내 뒤에서 지켜보시며 현존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계시면서 나를 위로해주시고, 나를 도와주시며, 내가 항상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하기 때문에 나에게서 떠나지 않으십니다. 반대로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이 그분의 법과 그분의 영감들을 따르지 않을 때는 떠나가십니다. 그렇게 되면 그분께서는 떠나가시고, 그들을 버려두십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죄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혼자 남아 있을 때 그는 의로운 채로 남아 있기가 어렵고, 쉽게 큰 뱀(the Snake)의 똬리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빛과 자비에 반항하는 당신들의 죄로 인하여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떠나시어 더 이상 이곳이나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살지 않으실 것이고, 예레미야가 그의 예언들과 애가에서 한탄했던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들을 묵상하고, 떨며 착한 마음으로 돌아오시오. 위협들을 귀담아 듣지 말고, 아직은 속죄하고 자신들을 구원할 가능성을 부여받고 있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경고하시는 아버지의 인자한 말씀을 들으시오. 그분의 말씀과 업적들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시오.
그리고 만일 옛 이스라엘이 여러분을 질식시키기 때문에 여러분이 내 말을 믿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옛 이스라엘의 말은 믿으시오. 옛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주 하느님께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리고 구세주를 따르지 않는다면 성도(聖都)와 우리 조국 전체가 당할 위험들과 불행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하느님의 손이 이 민족을 짓눌렀습니다. 그러나 과거나 현재는 이 민족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자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미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기다리는 것은 그 준엄함에 있어서나 기간에 있어 과거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나는 미래 세기들을 바라보면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민족은 뿌리째 뽑혀 세찬 강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진 나무처럼 하느님의 저주로 얻어맞을 맞을 것입니다. 이 민족은 끈질기게 이 지점이나 저 지점의 강안(江岸)에 자리 잡으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것은 원기가 있기 때문에 싹이 나고 뿌리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착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다시 세찬 물살에 휩쓸려 다시 뽑히고, 뿌리들과 순들이 부러지고, 더 멀리 옮겨져서 고통당하고, 다시 뿌리내리고, 그랬다가 다시 뽑혀 또 다시 흩어질 것입니다.
그 무엇도 그에게 평화를 주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분노와 민족들의 업신여김이 그것을 추적하는 홍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살아 있고, 거룩하게 하는 피의 바다(a sea of living sanctifying Blood)에 뛰어듦으로써만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피를 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 피의 목소리가 히브리 민족을 초청하겠지만, 그 소리는 자기를 부르는 아벨의 피, 카인을 부르는 천상의 아벨(the heavenly Abel)의 목소리처럼 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의 광범한 속삭임이 넓은 성전 구내에서 바다의 파도소리처럼 퍼진다. 그러나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 그들을 따르는 유다인들의 사나운 목소리들은 그 속에 들어 있지 않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용하여 떠나려고 하신다.
그러나 그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다가오며 말한다.
“선생님, 저희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희는 모두 저 사람들(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의 원수들을 가리킨다)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당신을 따르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목소리는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말하는 수백 수천의 목소리와 맞서서 단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것은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저희 아버지들에게서 들은 것과 똑같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말씀은 당신을 믿도록 저희를 끌어당깁니다. 그런데 저희가 완전히 믿고 생명을 얻으려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희는 마치 저희가 과거의 생각들에 의하여 결박되어 있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만일 여러분이 내 말 안에 정착한다면, 여러분은 마치 지금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을 것이고, 여러분의 믿음은 완전해질 것이고, 여러분은 내 제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과거를 떨쳐버리고, 내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가르침은 과거를 전부 지워버리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그것은 과거의 거룩하고 초자연적인 것을 유지해주고, 그것 안으로 새 생명을 주입해줍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항상 불완전한 인간적인 가르침들이 있는 곳에 완전한 내 가르침을 두어 불필요한 인간적인 부가들(the superfluous human additions)을 없애줍니다.
만일 여러분이 나에게로 온다면 여러분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 저희가 마치 과거에 매여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끈은 감옥도 아니고, 노예상태도 아닙니다. 저희는 영적인 것들에 있어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저희가 오류에 빠져 있지 않다면, 노예들의 후손인 하가르의 후손과는 반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은 영적인 후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어떻게 저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이스마엘과 그의 자손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이사악과 이스마엘의 아버지였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노예였고, 이집트인이었던 여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불결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만, 노예상태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죄의 노예상태입니다. 죄짓는 사람만이 노예입니다. 그는 돈으로 속량할 수 없는 노예상태에 있게 되는데, 냉혹하고 잔인한 주인의 노예가 되어 하늘나라에서의 자유로운 주권(the free sovereignty)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잃어버립니다.
전쟁이나 불행들로 인하여 노예가 된 사람은 착한 주인의 재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이 그를 다른 잔인한 주인에게 팔 수 있으므로 그의 좋은 처지는 항상 불안정합니다. 그는 하나의 상품일 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때로 그는 노예를 빚 갚는 돈처럼 쓰이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불평할 권리조차 없습니다. 반면 하인은 해고당할 때까지만 자기의 주인의 집에서 삽니다. 그러나 아들은 영원히 그의 아버지의 집에 남아 있고, 아버지도 그를 내쫓을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만 집을 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노예 신분과 하인 신분, 하인 신분과 친자관계의 차이인 것입니다. 노예 신분(slavery)은 사람을 예속상태에 놓아두고, 하인 신분(servitude)은 사람을 주인의 자의(恣意)에 맡기는데, 친자관계(filiation)는 사람을 영원히 아버지의 집에 두고, 아버지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합니다. 노예 신분은 인간을 죽이고, 하인 신분은 그를 종속시키는데, 친자관계는 그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죄는 사람을 영원히 가장 잔인한 주인인 사탄의 노예가 되게 만듭니다. 하인의 경우에는 하인 신분은 옛 율법인데, 그것은 하느님이 마치 완고한 존재인 양 사람을 두렵게 합니다. 친자관계, 즉 그분의 맏아들인 나와 함께 하느님께로 오는 것은 사람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알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많은 사랑받는 자녀들 중의 맏아들인 나와 함께 하느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슬을 끊기 위하여 나에게 오기만 한다면, 나는 여러분의 사슬을 끊어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고, 나와 함께 하늘나라를 공동상속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아브라함을 공경하지 않고 사탄을 공경하며, 충실한 노예들로서 사탄을 섬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내 말을 물리치고, 그래서 내 말이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믿거나 나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나를 보내시어 내가 여러분에게 그분의 뜻을 알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내 아버지 곁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자기의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암시하는 것을 합니다.”
차도를 보이다가 되살아나는 병의 발작증세처럼 누그러진 것처럼 보이던 유다인들,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의 분노가 다시 맹렬하게 되살아난다. 그들은 예수를 빽빽이 에워싸고 있는 군중을 쐐기처럼 뚫고 들어와 그분께로 다가가려고 애쓴다. 군중은 그들의 마음의 감정들이 상반되듯 서로 반대되는 물결처럼 움직인다. 유다인들은 분노와 증오로 얼굴이 창백해진 채 부르짖는다.
“아브라함이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에게는 다른 아버지가 없소.”
“사람들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십니다. 아브라함 자신도 보편적인 아버지의 한 아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참 아버지를 버리고 아버지가 아닌 자에게로 가는데, 그자가 그들의 무절제한 욕망을 더 힘 있게, 그리고 더 기꺼이 충족시켜줄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자가 선택된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일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여러분은 왜 아브라함이 했던 일을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했던 일을 알지 못합니까? 내가 그것들의 성격과 상징을 열거할까요?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해주신 곳으로 감으로써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가도록 준비되어야 하는 모든 사람의 상징입니다.
그는 자기 동생의 아들에게 친절하여, 그가 더 좋아하는 지역을 선택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웃에 대하여 가져야 하는 행동의 자유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정신의 상징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자기를 특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신 다음에도 겸손하여, 자기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지극히 높으신 분에 비하여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항상 깨닫고, 마므레에서 그분을 공경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그의 하느님께 항상 가져야 하는 경건한 사랑의 상징입니다. 아브라함은 가장 믿기 어려운 일과 가장 행하기 힘든 일에 있어서도 하느님을 믿었고, 그분께 순종했으며, 안전해지기 위하여 이기적이 되지 않았고, 소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수많은 순종에 대한 갚음을 원하여 주님과 계약을 맺지 않았고, 오히려 주님을 끝까지, 극한에 이르기까지 공경하기 위하여 지극히 사랑하는 자기의 아들을 그분께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지는 않았소.”
“그는 길을 가는 동안 순종하려는 의지로 마음속으로 이미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바쳤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아들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다만 그가 자기의 아들의 가슴을 가르려는 순간에 아버지로서의 그의 마음이 이미 찢어지고 있을 때 천사가 그 제사를 중단시켰을 뿐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사탄을 공경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여러분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의 일들을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하느님에게서 들은 대로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오는 목소리를 죽이려 하지 않고, 그 목소리에 순종했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일들을 하지 않고, 여러분의 아버지가 여러분에게 알려준 일들을 합니다.”
“우리는 창녀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소. 우리는 사생아들이 아니오. 당신은 스스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아버지시라고 말했소. 우리는 선택된 민족이고, 이 민족 중 선택된 계급들에 속하는 사람들이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유일하신 아버지로 가지고 있소.”
“만일 여러분이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을 여러분의 아버지로 인정한다면, 여러분은 내가 하느님에게서 기원하고, 그분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나를 사랑할 것입니다. 나는 내 임의로 오지 않았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만일 여러분이 정말로 아버지를 안다면, 여러분은 그분의 아들이고, 여러분의 형제이며, 구세주인 나도 알 것입니다. 형제들이 서로 알아보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유일하신 아버지의 자녀들이 유일하신 아버지의 집에서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내가 하는 말을 용납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나는 하느님에게서 오고, 여러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집을 떠났고, 그 안에 사시는 분의 얼굴과 언어를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자발적으로 하느님이 아닌 다른 자가 지배하고, 다른 언어를 쓰는 다른 지방으로, 다른 집들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지배하는 자는 그곳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자녀들이 되고, 자기에게 복종하기를 강요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 하느님을 버리고 부인하며, 여러분 자신들을 위하여 다른 아버지를 선택합니다. 그 아버지는 사탄입니다. 여러분은 마귀를 아버지로 두었고, 그가 여러분에게 제안하는 것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마귀의 욕망들은 죄와 폭력인데, 여러분은 그것들을 받아들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에 꾸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진리를 거슬러 반역하여 자기 안에 진리에 대한 사랑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할 때 그는 자기가 생긴 대로 거짓말쟁이이고 음험한 자로서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로 거짓말쟁이이고, 교만으로 잉태되어 반란으로 길러진 다음에 거짓말에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욕이 그의 안에 있는데, 그는 사람들을 중독시키기 위하여 그것을 내뱉고 접종합니다. 그는 음험하고 조롱하는 자이며, 기어 다니는 저주받은 뱀이며, 치욕이고, 공포입니다. 그의 행위들은 오랜 옛날부터 사람을 괴롭혀 왔으며, 그의 표징들과 열매들은 사람들의 지성 앞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가 거짓말하고 파괴하는 자임에도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내가 참되고 좋은 말을 하는데도 내 말을 믿지 않고, 나를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증오나 사랑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온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내가 죄짓는 것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누가 진실하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나와 나를 믿는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증거들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십계명 중 어느 계명을 어겼습니까? 누가 하느님의 제단 앞에서 내가 율법과 관습, 교훈들, 전통들, 기도들을 어기는 것을 보았다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 중에서 누가 분명한 증거들을 가지고 내가 죄지었다는 것을 납득시켜 나에게 얼굴을 붉히게 만들 수 있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 중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고, 천사들 중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외치십니다. ‘그는 무죄한 자다.’ 여러분 모두도 그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나를 고발하고 있는 여러분은 여러분과 나 중 누가 옳은지 알지 못하는 이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그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만이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 밤낮으로 울리는데도, 여러분은 그것을 듣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께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을 위하여 살고, 지극히 높으신 분을 공경하기 위하여 규칙들을 가장 엄밀하게 지키면서 사는 우리가 하느님께 속해 있지 않다는 말이오? 당신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소? 아!”
그들은 마치 밧줄에 목이 졸리는 것처럼 증오로 숨이 막히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는 당신을 마귀 들린 사람, 사마리아인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소?”
“나는 그 둘 다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이 나를 비난하기 위하여 내 아버지를 부인하지만, 나는 그분을 공경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모욕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 영광을 찾지 않으니까요. 내 영광을 돌보시고 심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것이 나를 모욕하기를 원하는 여러분에게 내가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내 말을 받아들이거나 이미 받아들여 그것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아! 이제 우리는 당신에게 들려 있는 마귀가 당신의 입술을 통하여 말한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알겠소! 당신 스스로가 그렇게 말했소. ‘마귀는 거짓말쟁이처럼 말한다.’
당신이 말한 것은 거짓말이오. 그러므로 그것은 마귀의 말이오. 아브라함도 죽었고,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당신의 말을 지키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오. 그럼 당신은 죽지 않는다는 거요?”
“나는 사람으로서만 죽었다가 은총의 시간에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말씀으로서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은 생명이므로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결코 죽지 않을 것이고, 내가 그를 부활시킬 것이므로 하느님 안에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신성모독자! 미치광이! 마귀!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들보다 크다는 말이오?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오?”
“당신들에게 말하는 시작(the Beginning)이오.”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소요가 진행되는 동안에 레위인 즈카르야는 알패오의 아들들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예수를 마당의 한쪽 구석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천천히 민다. 아마 그 사람들은 심지어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분을 돕고 있는 것 같다.
예수께서 벽에 등을 기대시고 그분의 앞에 있는 그분께 가장 충실한 사람들에 의하여 보호되셨을 때, 그리고 소란이 약간 가라앉았을 때 그분께서는 극히 예리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어지러운 순간에도 지극히 침착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내가 나 자신을 찬양한다면, 내 영광은 무가치합니다.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의 아버지라고 말하지만 그분께서는 전혀 여러분의 아버지가 아니시기에, 여러분은 그분을 알지 못하고, 한 번도 그분을 안 적이 없었고, 내가 그분을 알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그분에 대해 말해주어도 나를 통하여 그분을 알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만일 나에 대한 여러분의 증오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분을 안다고 말하는 여러분처럼 거짓말쟁이가 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어떠한 이유로도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의 아들은 설령 진실을 말함으로서 자기의 죽음을 불러오더라도 거짓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의 아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그는 더 이상 진리의 아들(the Son of Truth)이 아닐 것이고, 진리(the Truth)가 그를 자기로부터 쫓아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느님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하느님을 압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으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그분의 말씀을 간직하고 지킵니다.
이스라엘이여, 그것에 대하여 숙고하시오! 약속(the Promise)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 지점(here)에서입니다. 내 안에서 그 약속이 성취됩니다. 내 정체를 알아보시오!
여러분의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예언적으로 그것을 보았고,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 날을 살고 있는 여러분은…”
“닥치시오! 당신은 쉰 살도 안 됐는데, 아브라함이 당신을 보았고, 당신이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당신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거이오?”
그들의 빈정거리는 웃음은 독이나 부식하는 산의 물결처럼 퍼진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있습니다(I am).”
“‘나는 있습니다? 하느님만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분만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소. 당신은 그렇게 말할 수 없소! 신성모독자! ‘나는 있다니!’ 저주받으시오!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당신이 하느님이라는 거요?”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외친다. 그는 방금 도착했는데, 그가 오자 모든 사람이 거의 공포에 질려 길을 내 주었기 때문에 이미 예수의 가까이에 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중요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천둥소리 같은 소리로 대답하신다.
모든 것이 증오하는 자들의 손 안에서 무기가 된다. 예수께 마지막으로 질문한 사람이 소름끼칠 정도로 분개한다는 일련의 몸짓을 하며, 자기의 두건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헝클어뜨리고, 마치 혐오로 인하여 졸도하려는 듯이 자기의 겉옷을 목에 고정시키는 죔쇠들을 푸는 동안에 분개하는 혐오감을 흉내 내어 표출하는 행위에 길을 내주어 흙과 돌들을 집어 선생님께로 던진다.
돌들은 비둘기와 다른 짐승들을 파는 사람들이 울타리의 밧줄을 팽팽하게 하는 데 쓰이는 것이고, 환전상들이 목숨보다 더 집착하는 그들의 돈궤를 용의주도하게 지키기 위하여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행각 밑 너무 안쪽에 계셔서 그분을 맞힐 수가 없기 때문에 흙과 돌은 분명히 군중 위에 떨어지고, 그래서 군중은 저주하고 불평한다…
레위인 즈카르야는 예수를 한번 세게 민다. 그분을 행각의 담장 안에 감추어져 있는, 이미 열려 있는 작고 낮은 문에 도달하시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그는 알패오의 두 아들, 요한, 마나엔, 토마스와 함께 그분을 그 안으로 밀어 넣는다. 다른 사람들은 밖의 북새통 가운데 남아 있다… 그 소음은 약해져서 두꺼운 두 돌 벽 사이의 긴 복도 안으로 들어온다.
이 석벽을 정확한 건축용어로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나는 모른다. 그 벽의 돌들은 큰 돌들과 더 작은 돌들이 서로 맞물려있는데, 작은 돌들 위에 큰 돌들이 있고, 그 반대로도 되어 있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내가 잘 이해시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돌들은 우중충하고 크고 거칠게 끌질한 것인데, 이곳이 완전히 어둡고 탁하게 되지 않도록 위쪽에 일정한 간격으로 낸 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으로 그것들이 겨우 보일 뿐이다.
그것은 좁은 통로인데, 그것의 용도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마당을 돌아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마도 이것은 엄밀한 의미의 성전, 즉 지성소 주위의 경내를 구성하는 마당들의 벽들을 증강하고 강화해주는 방어용도로, 피난처로 축조된 것일 것이다. 요컨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보는 것을 말하고 있다. 습기의 냄새, 포도주 지하 저장실처럼 차가운지 아닌지 말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냄새가 거기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뭘 하려는 거지?”
토마스가 묻는다.
“조용히 해! 즈카르야는 자기가 올 터이니 우리가 꼼짝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나에게 말했다네.”
타대오가 대답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를 믿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기를 바라네.”
“두려워하지 마라. 그는 착한 사람이다.”
예수께서 그들을 위로하시며 말씀하신다.
밖에서는 소음이 사라져 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다. 그 다음에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오고 깜빡거리는 작은 빛이 깊은 어둠속에서 다가온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거기 계십니까?”
들리기를 바라지만 들릴까봐 겁내는 듯한 목소리가 말한다.
“그렇소, 즈카르야. 나는 여기 있소.”
“야훼께 찬미! 제가 당신을 기다리게 했지요? 저는 사람들이 다른 문들로 달려가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십시오, 선생님… 당신의 사도들은… 저는 시몬에게 모두 함께 벳자타로 가서 거기서 기다리라고 말해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내려갑니다… 이것은 그리 밝지는 않지만, 안전한 길입니다. 저수지들로 내려가서… 키드론 개울 쪽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것은 오래된 길인데, 언제나 좋은 목적으로만 쓰이지는 않았던 길이지만, 이번에는… 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됩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깜빡이는 등잔 빛만으로 부서지는 깊은 어둠 속에서 줄곧 내려간다. 마침내 다른 종류의 빛이 바닥에서 보이고… 그 너머로 멀리 몇 개의 초록빛이 보인다… 어찌나 무겁고 두꺼운지 대문처럼 보이는 철책이 이 통로의 끝이다.
“선생님, 저는 당신을 구해드렸습니다. 당신께서는 이제 가셔도 됩니다. 그러나 제 말씀을 들으십시오. 한참 동안 오시지 마십시오. 저는 매번 들키지 않고 당신을 섬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는 이 길과 여러분을 이 길로 인도한 저를 잊어주십시오.”
즈카르야는 무거운 철책의 몇 개의 장치를 움직여 겨우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열면서 말한다. 그가 반복한다.
“저를 위하여 이 모든 일을 잊어주십시오.”
“염려하지 마시오. 우리 중 아무도 말하지 않을 거요. 그리고 당신의 이 사랑으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바라오.”
예수께서는 손을 들어 젊은이의 숙인 머리에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나오시고, 그분의 사촌들과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나온다. 그분께서는 직접 올리브 밭 앞에 있는 가시덤불이 뒤엉킨 황량한 작은 공간으로 겨우 모두가 들어설 수 있는 곳을 찾아내신다. 좁고 험한 길이 가시덤불 사이로 급류를 향하여 내려간다.
“가자. 우리는 양들의 문의 높이까지 다시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형제들과 함께 요셉의 집으로 갈 터이니, 그 동안에 너희는 벳자타에 가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너라. 우리는 내일 저녁 해진 다음에 놉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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