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175~p183

499. 멀리 떨어져 있는 자기 자녀들을 칭찬하는 아버지의 비유. 어린 소경 파라와 타마르를 고쳐주시다
1946. 9. 24.
지금은 아름다운 가을 아침이다. 땅에 깔려 있는 노랗고 빨간 나뭇잎들을 빼놓고는, 가을비로 인하여 되살아난 덤불들에서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풀이 어찌나 초록빛인지, 이미 잎이 부분적으로 떨어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부는 바람이 어찌나 싱그러운지, 초봄이 생각나게 한다. 더구나 낙엽수들에 섞여 있는 상록수들이 다른 나무들의 잎이 떨어진 가지들 곁에 작은 가지들 끝에서 움트는 에메랄드빛의 새 잎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마치 잎이 떨어진 가지에 새 잎들이 돋아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양들은 울타리 안에서 나와, 가을에 낳은 어린양들과 함께 울면서 풀밭으로 간다. 마을 초입에 있는 샘의 물은 그것에 입 맞추는 햇빛을 받아 액체 금강석들처럼 반짝이고 있고, 어두운 수반으로 떨어질 때 그 물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검게 된 작은 집의 벽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빛깔의 광선들을 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는 길에 접한 낮은 담 위에 앉아 기다리신다. 그분의 사도들과 마을 사람들은 예수의 주위에 있고, 너무 멀리 떨어지기를 원치 않는 목자들은 더 높이 올라가지 않고, 평야 쪽으로 가는 길 양쪽에 남아 있다.
지금은 계곡에서 느보 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아무도 오고 있지 않다.
“그가 올까요?”
사도들이 묻는다.
“그렇다, 그는 올 것이다. 우리는 그를 기다리자. 나는 동터오는 희망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고, 미래의 믿음을 소멸시키고 싶지 않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당신께서는 여기 계시는 것이 행복하지 않으십니까? 저희는 저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드렸는데요.”
햇볕을 쬐고 있는 노인이 말한다.
“어르신, 다른 곳보다 더 편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친절을 갚아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럼 저희에게 좀 더 말씀해주십시오. 가끔 열정적인 바리사이들과 교만한 율법학자들이 이리로 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희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에서 떨어져… 높은 데 있고, 현인들입니다. 저희는… 그렇지만 저희는 그럼 운명이 저희를 여기서 태어나게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해야 합니까?”
“내 아버지의 집에서는 그분을 믿고, 그분의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분리도, 차별도 없습니다. 율법은 그분의 뜻의 법전인데, 그분의 뜻은 사람이 의롭게 살아 그분의 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들으시오. 한 아버지가 여러 명의 아들들을 두었습니다. 어떤 아들들은 항상 아버지 가까이에서 살았고, 어떤 아들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버지에게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버지의 소원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자신들의 아버지가 자기들과 함께 계시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아들들은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었고, 태어난 첫날부터 다른 언어를 말 하고 다른 관습을 가진 하인들에 의하여 양육되어 아버지를 잘 알지 못했지만, 자기들이 아는 지식보다는 본능에 따라 아버지를 섬기려고 더 애썼습니다.
어느 날 자기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이 교만한 생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들을 열등하다고 여기고, 그들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을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버지가 그의 모든 자녀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인간적 관점에 따라서 그들을 판단하여, 항상 그의 집에 있었거나 별로 떨어져 있지 않아서 그의 명령과 그의 바람을 아는 데 지장이 없었던 아들들에게만 자기의 재산을 차지하게 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반대로 그는 아주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이름으로만 알았던 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모든 행동으로 공경한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의로웠던 그 아들들의 행동들을 고려하여 그들을 자기 가까이로 불러서 말했습니다.
‘너희의 의로움은 이중으로 공로가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아무런 도움 없이 너희 자신의 의지만으로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와서 내 주위에 서 있어라. 너희에게는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다! 다른 아들들은 항상 나와 함께 있었고, 그들의 모든 행동은 내 조언으로 인도되었고, 내 미소로 보상받았다. 너희는 믿음과 사랑으로만 행동해야 했다.
오너라. 너희의 자리들은 내 집에 이미 마련되어 있다. 나는 항상 집에 있었던 아들들이나 떠나 있었던 아들들 간에 어떤 차별도 두지 않는다. 단지 차이가 있는 것은 내 가까이에 있었든, 떨어져 있었든, 내 아들들의 행동들뿐이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그리고 그 설명은 이것입니다. 성전 주위에서 사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 영원한 날에 주님의 집에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하느님의 일들에 관한 희박한 지식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그때 그분의 품에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얻게 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순종을 지향하는 사람의 뜻이지 수많은 종교적 의식의 실행들이나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제 내가 여러분에게 설명한 대로 하시오. 마비시키는 지나친 두려움 없이, 벌을 피하려는 계산 없이 그렇게 하시오.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에게서 사랑받으시기 위하여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만 그렇게 하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아버지의 집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오! 저희에게 계속 말씀해주세요!”
“나는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어제 당신께서는 어린양과 숫양의 제물보다 하느님을 더 기쁘시게 해드리는 제물이 있고, 육체의 나병보다 더 수치스러운 나병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 목자가 말한 다음에 다시 결론짓는다.
“당신께서는 어린양이 한 돌이 되기 전에 얼룩이나 흠이 없어 양떼에서 가장 훌륭한 양일 때 저희가 얼마만한 희생을 해야 하고, 그 놈을 양떼의 종양(種羊)으로 사용하거나 종양으로 팔고 싶은 유혹을 몇 번이나 물리쳐야 하는지 아십니까? 만일 1년 동안 온갖 유혹에 저항하고 양 떼의 보석인 그놈을 돌보아서 그놈에게 애착을 느끼게 된다면, 그놈을 이득 없이, 그리고 깊이 상심하며 제물로 바치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인지 당신께서는 아십니까? 주님께 바쳐지는 제물 중 그보다 더 큰 제물이 있습니까?”
“여보시오, 내가 진실로 당신에게 말하는데, 제사는 제물로 바쳐진 짐승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제물로 바치려고 그 짐승을 보존하기 위하여 당신이 기울인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당신에게 말하는데, 영감 받은 말씀이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나는 어린양들과 숫양들의 제물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실 것이고, 유일하고 완전한 제물을 요구하실 날이 지금 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제사는 영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에 주님께서 어떤 제물을 더 좋아하시는지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제물을 원하셨다면 저는 그것을 당신께 드렸겠지만, 번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위한 제물은 뉘우치는 영혼입니다(그리고 나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순종하고 사랑하는 영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속죄의 제사뿐 아니라 찬미와 기쁨과 사랑의 제사도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하느님을 위한 제사는 회개하는 영혼입니다.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그 제사는 회개하는 겸손한 영혼을 업신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는 죄지은 다음에 회개한 마음을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깨끗하고 의로운 마음의 제사를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것이 가장 합당한 제사(the most agreeable sacrifice)입니다. 그것은 율법과 영감들(inspirations)과 일상의 사건들 안에서 여러분에게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에 사람의 뜻을 날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장 부끄러운 나병은 사람의 눈에 띄지 못하게 하고 기도하는 곳에 오지 못하게 하는 육체의 나병이 아니라 죄의 나병입니다. 그것은 흔히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고 그냥 지나쳐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사람들을 위하여 사십니까, 아니면 주님을 위하여 사십니까?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납니까, 아니면 그것이 저 세상에서 지속됩니까? 여러분은 압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의 눈에 여러분이 나병환자들로 보이지 않도록 거룩해지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영혼 안에서 깨끗하게 남아 있으시오.”
“그런데 만일 그가 완고한 죄인이라면요?”
“그는 카인을 본받지 말고, 아담과 하와를 본받지 말고, 하느님의 발 앞으로 달려가서 참된 뉘우침으로 자비를 청해야 합니다. 병자나 상처 입은 사람은 치료받기 위하여 의사에게 갑니다. 죄인은 하느님의 용서받기 위하여 하느님께로 가야 합니다!…”
“선생님, 당신께서 여기에?”
다른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온통 겉옷에 감싸인 채로 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는 한 사람이 외친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신다.
“당신은 나를 못 알아보십니까? 나는 라삐 사독입니다. 우리는 가끔 만나는군요.”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만나기를 원하실 때 세상은 항상 좁습니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라삐. 우선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그는 평화의 인사에 대한 답례인사를 하지 않고 묻는다.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당신이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을 했습니다. 이 산이 당신에게는 신성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제자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율법학자입니다!”
“그런데 나는 율법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모세를 공경하듯이 나도 모세를 공경합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말로 그의 말을 무효화하고, 더 이상 우리가 아닌 당신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당신들에게는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들의 주장입니다. 당신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 대한 복종이 필요 없다고요? 끔찍한 일이오!”
“그렇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옷을 장식하고 있는 펄럭이는 많은 술들이 가을바람을 막는 데 필요하지 않는 것보다 더 필요 없습니다. 당신을 보호해주는 것은 당신의 옷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가르치는 많은 말들 중에서 나는 거룩하고 필요한 말들, 즉 모세의 말들을 받아들이고, 다른 말들은 무시합니다.”
“사마리아인! 당신은 예언자들을 믿지 않는군요!”
“당신들도 예언자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들을 존경한다면, 당신은 나를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독, 저 사람을 내버려두시오. 당신은 마귀와 말하기를 원하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방금 도착한 다른 순례자가 말한다. 그는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무리를 냉혹한 시선으로 둘러보다가 가리옷의 유다를 보고, 빈정거리며 그에게 인사한다.
모종의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지역 주민들이 예수를 방어해드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트라 사람이 그의 하인 한 사람을 뒤따라오게 하고 군중을 헤치고 나아온다. 그 사람과 하인은 아이 한 명씩을 안고 있다.
“나를 지나가게 해주시오. 주님, 제가 당신을 너무 많이 기다리시게 했지요?”
“아니오, 나에게로 오시오.”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준다. 그는 예수께로 와서 머리를 아마포 붕대로 감은 작은 소녀를 땅에 내려놓으려고 무릎을 꿇는다. 하인도 주인을 흉내 내어 눈 먼 소년을 땅에 내려놓는다.
“내 자녀들아, 선생님, 주님이시다!”
그가 말한다. 한 아버지의 모든 희망과 고통이 이 짧은 말 속에서 떨고 있다.
“여보시오, 당신은 큰 믿음을 가지고 있소. 그런데 만일 내가 당신을 실망시켰다면 어쩔 뻔 했소? 아니면 만일 당신이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니면 만일 내가 이 아이들을 고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저는 당신의 말씀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저는 당신을 보지 못한다는 명백한 사실마저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제 믿음을 시험하시느라고 숨으셨다고 말하고, 제가 당신을 찾아낼 때까지 찾을 것입니다.”
“그럼 대상과 당신의 이익은 어떡하고요?”
“그런 것들이요? 제 자녀들을 고쳐주실 수 있고, 당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저에게 주실 수 있는 당신과 비교할 때 그것들이 무엇입니까?”
“소녀의 얼굴을 드러내놓으시오.”
예수께서 명하신다.
“이 애가 빛을 몹시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에 저는 이 아이의 눈을 가려놓았습니다.”
“잠깐 동안의 고통에 지나지 않을 거요.”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어린 소녀는 필사적으로 울기 시작하고, 절대로 붕대를 풀지 못하게 한다.
“이 애는 당신께서도 의사들이 했던 것처럼 불로 자기를 괴롭히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합니다.”
아버지가 붕대에서 소녀의 두 손을 치우려고 애쓰면서 설명한다.
“오! 얘야, 무서워하지 마라. 네 이름은 뭐니?”
소녀는 울면서 대답하지 않는다. 그 애의 아버지가 자기 딸 대신 대답한다.
“얘는 태어난 곳의 이름을 따서 타마르라고 합니다. 아들은 파라입니다.”
“타마르야, 울지 마라. 나는 너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내 두 손을 느껴보아라. 나는 손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 무릎으로 오너라. 그 동안에 나는 네 동생을 고쳐주겠다. 그러면 네 동생이 자기가 어떻게 느꼈는지 너에게 말해줄 것이다. 애야, 이리 오너라.”
하인은 트라코마로 눈이 망가진 가엾은 어린 소경을 예수의 무릎을 향하여 밀친다. 예수께서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그에게 물으신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아니?”
“나자렛의 예수, 이스라엘의 라삐, 하느님의 아들이요.”
“너는 나를 믿을 거니?”
“예, 저는 믿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눈 위에 그분의 한손을 얹으시는데, 그의 얼굴의 반 이상이 가려진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것을 원한다! 이 아이의 두 눈의 빛이 믿음의 빛에 길을 열어주게 해라.”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손을 떼신다.
소년은 자기의 양손을 자기의 두 눈에 대며 소리 지른 다음 말한다.
“아빠! 나는 볼 수 있어.”
그러나 그 아이는 자기의 아버지에게로 달려가지 않고, 어린이다운 자연스러움으로 예수의 목에 매달리며 그분의 뺨에 입 맞추고, 목에 매달린 채로 자기의 눈을 다시 햇빛에 적응하게 하느라 자기의 작은 머리를 예수의 어깨에 묻는다.
군중은 그 기적에 함성을 지르는 동안에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예수의 목에서 떼어내려고 한다.
“이 애를 그대로 두시오. 이 애는 나를 귀찮게 굴지 않소. 그런데 파라야,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지 네 누나에게 말해주어라.”
“타마르 누나, 한번 쓰다듬었어. 엄마의 손과 같았어. 오! 누나도 나아, 그래서 우리 함께 놀아!”
소녀는 아직도 약간 주저하면서 예수의 무릎에 앉는다. 예수께서는 그 애의 붕대에 손을 대지도 않고 고쳐주려고 하신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그들의 동료들이 외친다.
“저건 속임수다. 소녀는 볼 수 있다. 오, 이곳의 주민 여러분, 이것은 저자가 당신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꾸민 수작이오.”
“내 딸은 병자요. 나는…”
“그냥 놔두시오. 타마르야, 이제 내가 붕대를 풀 테니 너는 가만히 있어라.”
이제 소녀는 설득되어 동의한다. 마지막 아마포 붕대를 제거하자 기막힌 광경이 펼쳐진다! 두 개의 빨갛고, 딱지로 덮여 있고, 부어오른 상처들이 소녀의 두 눈이 있는 자리에 있고, 그곳으로부터 눈물과 고름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동정심으로 소리 지르는데, 소녀는 자기를 아주 고통스럽게 할 것이 틀림없는 빛을 가리기 위하여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소녀의 관자놀이에는 최근에 지진 두 개의 화상이 빨갛다.
예수께서는 소녀의 작은 두 손을 떼어놓으시고, 그 심한 상처 위에 그분의 한 손을 대고 가볍게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신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살아 있는 것들의 기쁨을 위하여 빛을 창조하시고, 각다귀들에게도 눈들을 주셨으니, 당신의 딸인 이 아이에게 빛을 주시어 이 아이가 당신을 보고 당신을 믿을 수 있게 하시고, 믿음을 통하여 이 땅의 빛에서 당신의 나라의 빛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손을 떼신다…
“오!”
그들 모두가 외친다.
더 이상 상처들이 없어졌다. 그러나 소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타마르야, 눈을 떠라. 두려워하지 마라. 빛은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다.”
소녀는 꽤나 소심하게 순종하는데, 아이가 눈을 뜨자 두 개의 초롱초롱한 검은 눈을 드러낸다.
“아버지!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어요!”
이제 소녀도 빛에 천천히 적응하기 위하여 예수의 어깨에 편히 기댄다.
군중은 환호하고, 페트라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의 발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당신의 믿음이 그 보상을 받았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감사가 사람인 나(the Man)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더 높은 영역으로, 참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당신의 믿음을 이끌어가기를 바라오. 일어나시오. 갑시다.”
예수께서는 기쁨으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소녀를 바닥에 내려놓으시고 일어서시며, 사내아이와도 떨어지신다. 그분께서는 다시 한 번 그들을 껴안아주시고, 고쳐진 눈들을 보기 위하여 몰려들고 있는 군중을 뚫고 지나가려고 하신다.
“영감님, 당신도 당신의 백내장에 걸린 눈을 고쳐달라고 청하실 걸 그랬어요.”
한 제자가 눈이 너무 침침해서 누군가의 손에 잡혀 인도되는 한 노인에게 말한다.
“나? 나 말이야?! 나는 마귀에게서 빛을 받고 싶지는 않아. 정반대로! 저는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에게는! 저에게는 완전한 어둠을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마귀, 저 마귀의 얼굴, 저 독성자, 저 신성모독자, 저 하느님을 죽이는 자의 불경스러운 얼굴을 보지 않게 해주십시오! 어둠이 영원히 내 눈 위에 떨어지게 해주십시오. 제가 그를 절대로 보지 않도록 어둠이, 어둠이!”
그 사람이야말로 마귀 같다! 그는 마치 자기의 두 눈을 터뜨리기를 원하듯이 자기의 눈두덩을 때리며 발작을 터뜨린다.
“염려하지 마시오. 당신은 나를 보지 못할 거요. 어둠은 빛을 원하지 않고, 빛은 자기를 물리치는 사람에게 자기를 강요하지 않소. 노인장, 나는 가겠습니다. 당신은 땅 위에서 다시 나를 보지 않겠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나를 볼 거요.”
그분께서는 몹시 상심하시어 키 큰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앞으로 약간 몸을 숙여 꾸부정한 걸음걸이로 완만한 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하시는데, 그것은 여느 때보다 더 두드러져 보이신다. 그분께서는 어찌나 낙심하셨는지 벌써 십자가를 지고 모리아 산을 내려가시는 사형수와 같으시다… 그리고 미친 늙은이가 흥분시킨 그분의 원수들의 외침은 성금요일의 예루살렘의 군중들의 외침과 아주 많이 흡사하다.
페트라 사람은 무서워하며 울고 있는 자기의 어린 딸을 안은 채 원통해하며 속삭인다.
“주님, 저 때문에! 저 때문에! 당신께서는 저에게 이토록 많은 선을 베푸셨는데! 그리고 저는 당신께 드릴…! 저는 낙타 위의 천막 안에 당신께 드릴 무언가를 놔두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께 당하시게 한 모욕에 비하면 그까짓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당신께 온 것이 부끄럽습니다…”
“여보시오, 그렇지 않소. 이것이 나의 매일의 쓴 빵(My bitter daily bread)이오. 그리고 당신은 그 빵의 맛을 달게 하는 꿀이오. 빵은 항상 꿀보다 많소. 그러나 꿀 한 방울만으로도 많은 빵을 달게 하는 데 충분하오.”
“당신께서는 착하십니다… 그러나 이 상처를 싸매드리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어도 말씀이라도 해주십시오.”
“지금 당장은 당신이 할 수 있는 대로 나에 대한 믿음을 보존하시오. 머지않아… 그렇소, 내 제자들이 페트라까지, 그리고 더 멀리까지 갈 거요. 그때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시오. 왜냐하면 그들을 통하여 내가 말할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 당장은 내가 당신에게 해준 것을 페트라 사람들에게 말하시오. 그래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갈 때 내 이름이 페트라 사람들에게 모르는 이름이 되지 않게 하시오.”
내리막길 아래 로마인들의 길에 세 마리의 낙타들이 서 있다. 한 마리는 안장만 얹혀 있고, 다른 놈들은 닫집이 얹혀 있다. 한 하인이 낙타들을 지키고 있다.
그는 한 천막으로 꾸러미들을 가지고 와서 예수께 드리며 말한다.
“여기 있습니다. 이것들은 당신께 유익할 것입니다. 저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당신께서 저에게 주신 것에 대하여 제가 당신을 찬미해야 하니까요. 주님, 만일 당신께서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축복해주실 수 있다면, 저와 제 자녀들을 축복해주십시오!”
그가 자기의 자녀들과 함께 무릎 꿇는다. 하인들도 따라서 한다.
예수께서는 두 손을 펼치시고 하늘을 응시하시며 낮은 소리로 기도하신다.
“가시오. 의롭게 사시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가는 길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될 거요. 그러면 당신은 다시는 그분을 잃지 않고 그분을 따르게 될 거요. 안녕, 타마르! 안녕, 파라!”
그분께서는 그들이 하인들과 함께 한 낙타에 한 명씩 타기 전에 그들을 쓰다듬어주신다.
짐승들은 낙타몰이들이 외치는 소리에 일어서서 몸을 돌려 남쪽으로 가는 길을 속보로 걷는다. 두 개의 작은 갈색 손이 커튼 사이로 나오고 새된 두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 주 예수님! 안녕, 아빠!”
그 사람도 이제 낙타에 오르려고 한다. 그는 땅바닥에까지 몸을 숙여 예수의 옷에 입 맞추고, 안장에 올라 북쪽으로 떠나간다.
“그럼 이제는 가자.”
예수께서 북쪽으로 향하시며 말씀하신다.
“뭐라고요? 당신께서는 가기를 원하셨던 곳으로는 이제 안 가실 겁니까?”
사도들이 그분께 묻는다.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리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의 목소리들이 옳았다!… 그 이유는 세상이 약삭빨라서 마귀의 활동들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리코로 갈 것이다.”
예수께서는 얼마나 슬퍼하시는가!… 그들 모두가 그 사람이 준 꾸러미들을 가지고 낙심한 채 말없이 예수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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