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130~p138

490. 베타니아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살인할 수 있다”
1946. 9. 14.
점점 더 슬퍼지지만 항상 기분 좋은 베타니아의 집이다… 벗들과 제자들이 있다고 해서 이 집에서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기 요셉과 니코데모, 마나엔, 그리고 엘리자와 아나스타시카가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엘리자와 아나스타시카는 예수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는데, 그것에 대하여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불순종한 것처럼 사과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헤어지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있다.
엘리자는 그것에 대하여 타당한 이유들을 설명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남자들만의, 더군다나 박해받는 남자들만의 무리에 필요한 여성적인 보살핌을 선생님과 사도들에게 드려야 하는데, 라자로의 여동생들이 그분을 따라다니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희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마르타와 마리아는 자기들의 오빠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요안나는 여기 없고요. 안나리아는 당신의 일행을 따라다니기에는 너무 젊어요. 니까는 지금 있는 곳에 그대로 있으면서 당신을 거기서 맞이하는 것이 좋을 거고요.
제 백발머리는 쑥덕공론을 막을 수 있어요. 당신께서 가시는 곳마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아니면 당신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곳에 제가 머물러 있겠습니다. 그러면 당신께서는 항상 한 어머니를 당신의 곁에 두시게 되고, 저는 여전히 한 아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을 섬기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들 모두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들으시고, 그 말에 동의하신다. 아마 그분께서는 그분의 깊은 심적 고통 가운데서 어머니다운 마음을 그분의 가까이에 두시고, 그 안에서 그분의 어머니의 상냥한 마음씨의 반영을 보시기를 바라시는 것 같기도 하다… 엘리자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예수께서 엘리자에게 말씀하신다.
“저는 자주 놉으로 가겠습니다. 당신은 늙은 요한의 집으로 가세요. 요한은 제가 놉에 들를 때 그 집에 머무르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리로 돌아갈 때마다 저는 당신을 만날 겁니다…”
“당신께서는 궂은 날씨에도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묻는다.
“그렇소. 나는 베로이아 쪽으로 가서 솔로몬의 집에 머무르고 싶소. 그 다음에 나는 예리코와 사마리아를 향하여 가겠소. 오! 나는 더 많은 곳들에 가고 싶소…”
“선생님, 수비대가 있는 길과 백인대가 주둔해 있는 도시에서 너무 멀리 가시지 마십시오. 그들은 마음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역시 마음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두려움, 두 가지 감시입니다. 당신에 관하여. 그리고 그들에 대한 저희의 감시요. 그러나 당신께서는 당신에 관한 한 로마인들이 덜 위험하다고 확신하셔도 됩니다…”
“그들은 우리를 버렸습니다!…”
가리옷의 유다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오? 그렇지 않소. 당신의 말씀을 듣는 이방인들 중에서 당신은 혹시 클라우디아나 본시오가 보낸 사람을 식별할 수 있소? 클라우디아의 해방된 남자 노예들이나 여자 친구들 중에는 만일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벨 니드라스크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소. 유식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로마는 세계를 예속시키고 있고, 로마의 귀족들은 그들의 집을 꾸미기 위하여 최상의 전리품을 가지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운동가양성 책임자들과 곡마단 관리자들은 그들에게 이익과 영광을 마련해줄 수 있는 것을 택하지만, 로마의 귀족들은 교양과 아름다움이 그들의 집과 그들 자신들을 꾸며주고 기쁘게 해주는 사람들을 택하고… 선생님, 이렇게 말하다 보니 무언가가 생각나는군요… 제가 당신께 한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말하시오.”
“작년에 여기 있었던 그 여자… 당신에 대한 기소거리를 제공하던 그 그리스 여자는 어디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좋지 않은 의향으로요. 그러나 저에게 나쁜 의도는 없습니다… 단지… 저는 그 여자가 잘못된 가르침으로 돌아갔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자는 탁월한 지성과 진정한 정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더 이상…”
“땅의 한 부분에서 이교도 여인인 그 여자는 박해받는 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지 않았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소.”
“당신께서는 엔도르의 요한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는 그 여자와 함께 있습니까?”
“그는 죽었소. “
“죽었어요?”
“그렇소. 그들은 그가 내 가까이에서 죽게 해줄 수도 있었소…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도 아니었소… 그를 멀리 떠나보내려고 애썼던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마치 칼로 무장한 자기들의 손을 그에게 쳐든 것처럼 살인을 저질렀소. 그들은 그의 마음을 부수어놓았소. 그들은 그가 죽은 이유를 알면서도 자신들이 살인자라고 생각하지 않소. 그들은 자신들이 살인자가 되었다는 가책을 느끼지 않소.
형제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살해될 수 있소. 무기들, 말들 또는 모종의 사악한 행동으로, 박해받는 사람의 은신처를 박해자에게 밀고하거나 불행한 사람에게 그의 위안의 피난처를 빼앗는 것 따위로 말이오… 오! 얼마나 많은 방식들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그러나 사람은 그것에 대하여 가책을 느끼지 않소.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죽였는데, 그것은 그의 영적 타락의 표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면서 어찌나 엄하신지 아무도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서로 곁눈질로 쳐다본다. 가장 죄 없고 가장 착한 사람들마저도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잠시 동안의 침묵 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아무도 내가 한 말을 죽은 사람과 내 원수들에게 알려 그들에게 악마적인 기쁨을 주어서는 안 되오. 그러나 누군가가 당신들에게 묻는다면, 당신들은 요한은 평화 가운데 있고, 그의 육체는 먼 곳의 무덤 속에 있고, 그의 영혼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도 좋소.”
“주님, 당신께서는 그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으셨습니까?”
니코데모가 묻는다.
“무엇 말이오? 그의 죽음 말이오?”
“예”
“아니오, 그것은 그렇지 않소. 그의 죽음은 그의 평화였기 때문에 그것은 나에게 평화를 주었소. 나는 야비한 감정으로 그가 제자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산헤드린에 밀고하여 그를 떠나게 한 사람들로 인하여 고통당했소. 심하게 말이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기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오로지 크고 착한 뜻만이 본능과 체계를 바꿀 수 있소.
그러나 나는 말하오. ‘밀고한 사람은 다시 밀고할 것이고, 죽게 한 사람은 자기를 죽게 할 것이오.’ 그러나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이오. 그는 승리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패배하고 있소. 그리고 하느님의 심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소.”
“선생님, 당신께서는 왜 저를 그렇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제베대오의 요한이 마치 자기가 죄인인 듯 불안해하고 얼굴을 붉히며 묻는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바라본다 해도, 아무도, 가장 악한 사람조차도 네가 네 형제를 미워해 왔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히 바리사이나 로마인이겠지요… 그는 로마인들에게 달걀을 납품했었으니까요…”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그것은 마귀였다. 그러나 그는 요한을 해치기를 원했지만, 그에게 좋은 일을 했다. 그는 요한의 완전한 정화와 평화를 촉진했으니까.”
“당신께서는 어떻게 아십니까? 누가 당신께 소식을 가져왔습니까?”
요셉이 묻는다.
“당신께서 당신께 소식을 가져다드리는 사람을 필요로 하시겠습니까? 당신께서 사람들의 행동들을 보지 못하시겠습니까? 당신께서는 요안나가 당신께 오도록, 그래서 고쳐주시도록 요안나에게 가시지 않고 그녀를 불러오지 않으셨습니까?”
막달라의 마리아가 열정적으로 말한다.
“그건 사실이지만,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네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어리석은 질문을 했었다.”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생님, 오세요. 저희 오빠가 깨어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그리고 단호하게 더 이상의 대화와 질문의 가능성을 일축하고 그분을 모시고 간다.
491. 엔 로겔의 샘 근처에서
1946. 9. 16.
예수께서는 하부도로를 통하여 베타니아에서 돌아오신다(나는 올리브 산을 거쳐 오지 않고, 변두리 동네 토펫을 거쳐 시내로 들어오는 더 먼 길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선 빵만을 청하는 나병환자들을 도와주시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신 다음 뚜껑이 있고, 한쪽만을 열어놓고, 사방이 막힌 커다란 장방형의 우물로 곧바로 가신다.
이것은 큰 수조, 한 면을 빼놓고는 온통 뚜껑이 덮여 있는 큰 우물인데,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큰 우물이다. 이 우물은 사마리아 여인의 우물보다 더 큰데, 틀림없이 물도 더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북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메마르고 음산한 힌놈 골짜기와는 대조적으로 그 주위의 땅이 그 물을 공급받아 매우 기름지기 때문이다.
이 우물과 그 뚜껑의 돌들과 같은 육중한 돌로 만든 건조물만이 땅의 습기를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검고 육중한 돌들이 귀중한 물을 보호하며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흐린 날씨이고, 근처에 항상 몹시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나병환자들의 무덤들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도, 이곳은 기분 좋은 곳이다. 그 이유는 땅이 기름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뒤편인 북쪽에는 시내를 낮게 덮고 있는 회색 하늘로 잎이 우거진 꼭대기들을 꼿꼿이 세우고 있는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있는 정원들이 있고, 앞쪽인 남쪽으로는 키드론 계곡이 있는데, 키드론 계곡은 폭이 넓어지면서 더 많은 물이 흐르고, 계곡도 베타니아와 예리코로 가는 길을 따라 꽤 긴 거리에 걸쳐 더 밝아지고 더 빛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물 항아리를 든 여인들, 통들을 실은 나귀 모는 사람들, 도착하거나 떠나가는 대상들이 우물곁에서 멈춰 서서 물을 긷고 있다. 넓은 땅이 통들로부터 다른 그릇으로 물을 옮겨 부을 때 거기서 흘리는 물로 인하여 넓은 땅이 축축하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여자들의 목소리, 어린이들의 날카로운 목소리, 낮고 걸걸하고 힘찬 남자들의 목소리, 나귀들이 우는 소리들이 들리고, 짐을 실은 채로 누워 물을 길어오는 낙타몰이꾼을 기다리는 낙타들의 거칠게 우는 소리들이 들린다.
그것은 흐린 날의 황혼에 특유한 광경인데, 하늘에는 모든 것 위에 이상한 빛을 퍼뜨리는 부자연스럽고 갑작스러운 노란색의 반점들이 있고, 더 높은 곳에는 납빛의 무거운 구름들이 겹겹이 쌓인다. 도시의 고지대들은 유황 빛깔의 줄들이 그려져 있는 납빛의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이상한 빛 속에 환영처럼 보인다.
“날씨가 물과 바람 일색으로 보이는데…”
베드로가 격언조로 말하고 나서 묻는다.
“오늘 저녁에 우리는 어디로 갈 겁니까?”
“과수원 가꾸는 사람 집으로 간다. 내일 나는 성전에 올라가서…”
“또요? 당신께서 하시고 계시는 일을 조심하세요. 당신께서는 차라리 회당 가까이에 사는 해방된 노예들의 초청을 받아들이시는 편이 더 좋을 텐데요.”
열성당원이 제안한다.
“그런데 회당도 회당 나름이지. 다른 회당들, 즉 선생님을 모시고 싶은 의사를 밝힌 회당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 사람들이야?”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장 안전한 사람들이니까. 그건 이유를 말할 것도 없어.”
열성당원이 대답한다.
“안전하다고? 자네는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나?”
“그들이 고통당한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전히 충실하게 남았다는 사실이지.”
“말다툼하지 마라. 내일 나는 성전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것은 결정된 것이다. 잠시 여기 머무르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은 항상 좋은 곳이다.”
“다른 곳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왜 이곳을 선호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고, 유다야? 많은 이유들이 있는데, 나는 그것들을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말하겠다. 또한 내가 특별히 너희 모두에게 말하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동방에서 온 세 현자들은 그토록 먼 곳으로부터 자신들을 인도해왔던 별이 사라지자 의혹과 실의에 빠져 엔 로겔 샘의 이 우물에서 머물렀다. 다른 누구였다 해도 그는 하느님과 자기 자신을 불신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고 있는 하인들 가운데에서 자기들만 깨어 있으면서 피로한 그들의 낙타들 곁에서 새벽까지 기도했다.
그들은 새벽에 일어나 미치광이와 선동자로 간주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목숨의 위험까지도 감수하며 성문들을 향하여 갔다. 그때는 피에 굶주린 왕인 헤로데 치하였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래서 그 현자들이 그에게 말하고 싶어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게 말했다 해도, 그것은 헤로데가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영광, 재물, 명예를 찾고 있지 않았었다. 그들은 나를, 나만을 찾고 있었다. 한 아기를, 즉 그들의 메시아를, 그들의 하느님을.
하느님을 찾는 것은 선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항상 도움과 용기를 준다. 공포와 저속한 것들은 비천한 것들을 꿈꾸는 사람들의 유산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경배하기를 열망했다. 그들은 강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랑은 몇 시간 후에 보상받았다. 달밤에 여기서 그 별이 다시 그들의 눈에 나타난 것이다. 정의와 사랑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별이 없을 수 없다.
세 명의 현자들! 그들은 헤로데가 사제장들, 율법학자들, 박사들의 대답을 들은 후에 자기들에게 주기를 원했던 거짓 경의 가운데에서 휴식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몹시 지쳐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하룻밤도 머무르지 않고 성문이 닫히기 전에 나와 여기서 새벽까지 머물렀다. 그 다음에… 태양의 새벽이 아니라 하느님의 새벽이 다시 나타나 은처럼 길을 밝게 했다. 그 별이 그 밝은 빛으로 그들을 불렀고, 그래서 그들은 빛(the Light)으로 왔다. 복되다! 그들도 복되고, 그들을 본받을 줄 아는 사람들도 복되다.”
사도들과 마르지암과 이사악은 예수께서 그분의 탄생을 회상하실 때 언제나 보이는 지극히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집중하여 듣고 있다. 그리고 이사악은 도취되고, 한숨짓고, 미소 지으며 황홀한 얼굴로 현재의 시간과 장소를 멀리 떠나, 3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그날 밤 그가 자기의 양떼 가운데에서 보았던 그 별을 회상하고 있다…
이곳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다가와서 듣는다. 어떤 사람은 놀라운 여행자들의 무리와 그들이 가져왔던 소식을…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한다.
“이곳은 항상 묵상의 장소입니다. 역사는 항상 되풀이됩니다. 여기는 항상 시련의 장소입니다. 착한 사람들에게도, 악한 사람들에게도. 그러나 인생 전체가 사람의 믿음과 정의에 대한 하나의 시련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후사이, 사독, 에브야타르, 그리고 요나탄, 아히마아츠의 충성을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왕을 구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떠났었는데, 그들이 정의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동일한 이 장소와 관계되는 사건으로서 그것이 부당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 일에 강복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행복한 결과를 가지지 못했던 사건을 상기시키겠습니다.
엔 로겔의 샘에서 가까운 조헬렛의 돌 근처에서 아도니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음모를 꾸며 자기편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왕으로 선언하게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악행은 그에게 무익했습니다. 왜냐하면 연회가 끝나기도 전에, 에브야타르의 요나탄이 말하기도 전에 기혼에서 울려 퍼지는 호산나 소리가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것과 왕권을 찬탈하고자 한 자기는 그저 솔로몬의 자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도니야의 행동을 되풀이하여 가장 강하게 보이는 무리를 따라서 진짜 왕을 공격하거나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밉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다가 용서를 간청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며 제단의 뿔을 붙잡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우물 근처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사건들을 고찰한 지금 우리는 이 장소가 좋거나 나쁜 영향들에 매여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장소가 아닙니다. 시간이 아닙니다. 사건들이 아닙니다. 사람의 행동들을 어지럽히는 것은 사람의 의지입니다.
엔 로겔은 다윗의 부하들의 충성과 아도니야의 죄를 보았고, 마찬가지로 세 현자들의 믿음도 보았습니다. 이것은 같은 우물입니다. 요나탄과 아히마아츠, 아도니야와 그의 추종자들, 세 현자들이 이 우물의 돌에 기댔었고, 그들 모두가 그 물로 갈증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물과 돌들은 세 가지 다른 일들을 보았습니다. 다윗 왕에 대한 충성, 다윗 왕에 대한 배반, 하느님과 왕들의 왕에 대한 충성을 본 것입니다.
선이나 악을 불러오는 것은 항상 사람의 의지입니다. 하느님의 의지는 사람의 의지에 그분의 빛을 비추시고, 사탄의 의지는 그 유독한 김을 내뿜습니다. 빛을 받아들여서 의인이 되거나 독을 받아들여 죄인이 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우물에는 지키는 사람이 배치되어 있어서 아무도 물을 오염시킬 수 없었습니다. 지키는 사람 외에도 이 우물은 담들과 지붕도 부여받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바람이 그 안으로 나뭇잎들과 오물들을 불어넣어 귀중한 물을 더럽히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도 보호자를 주셨는데, 그것은 지성적이고 의식하는 사람의 의지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사람에게 보호물들을 주셨는데, 그것들은 계명들과 천사들의 조언(angelical advice)입니다. 그렇게 하여 사람의 영혼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부패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양심과 그의 지성을 타락시킬 때 그는 하늘로부터의 영감들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율법을 짓밟습니다. 그는 우물을 지키지 않고 방치하는 우물 지키는 사람이나 우물의 방어물들을 부수는 미치광이와도 같습니다. 그는 들판을 악마적인 원수들, 세속과 육신의 사욕과 유혹에 열어놓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들에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중하게 감시하고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우연히 이리로 와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 예루살렘의 아들들, 히브리인들, 개종자들, 여행자들이여, 사람을 더럽히는 행동들로부터 자신의 자아를 지킬 줄 아는 진정한 지혜로 지혜롭게 되시오.
나는 여기서 많은 이방인들을 봅니다. 나는 그분들에게 알려드리겠는데, 재물과 상품만이 구입해야 할 것들이 아니고, 획득해야 할 다른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자기 영혼의 생명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안에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무형의 것이지만 그를 살아 있게 하고, 육체가 죽을 때도 죽지 않는 것이며, 참된 삶, 영원한 삶을 살 자격을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자기의 악한 행동들로 자기의 참 자아를 죽인다면, 그는 그것을 살(live) 수 없습니다.
우상숭배와 이교신앙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현인은 묵상하고 말합니다. ‘참 하느님께로 가면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데, 왜 나는 우상들을 따라야 하고, 더 나은 생명에 대한 희망 없이 살아야 하는가?’사람은 자기의 날들을 아끼고, 죽음을 몹시 무서워합니다. 그가 거짓 종교들의 어둠 속이나 불신앙 안에 에워싸여 있으면 있을수록 그는 더 죽음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참 믿음으로 오는 사람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죽음 너머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거기서 영혼들은 다시 만날 것이고, 더 이상 고통들이나 이별들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유일하신 참 하느님을 믿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모든 행동에 있어 정직을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스라엘 사람 여러분은 명령된 것이 무엇이고, 금지된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러나 나는 내 말을 듣고 있고 그것을 멀리 가지고 갈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되풀이하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십계명을 말씀하신다).
참 종교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지, 헛되고 성대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도덕과 결함 없는 덕행의 계명들에 복종하고, 자비롭고, 사람을 더럽히는 것을 피하고, 허영심과 기만적인 점술과 거짓된 전조들과 악인들의 꿈들을 버리고, 지혜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선물들, 즉 건강, 부유함 재산, 지성, 권력 따위를 정의롭게 활용하며,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시는 동안만 살아 있고, 건강하고, 부유하고, 지혜롭고, 능력 있기 때문에 어리석음의 표지인 교만을 가지지 않고, 자주 범죄로까지 이끌어가는 터무니없는 욕망들을 가지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컨대 짐승처럼 살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타락하기는 쉽고, 향상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타락의 심연에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구역질나는 심연에서 그대로 살기를 원하고, 거기서 나와 햇빛으로 빛나는 꽃이 만발한 꼭대기들로 다시 올라가려고 애쓰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죄인의 삶은 깊은 심연 속에 위치해 있고, 오류에 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여 진리로 오는 사람들은 빛의 정상들로 올라갑니다.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의 목적지들로 가시오. 그리고 엔 로겔의 샘 근처에서 지혜의 근원(the Source of Wisdom)이 여러분에게 그 물을 주어 마시게 했고, 그렇게 하여 여러분이 다시 그 물을 목말라하게 하고, 그래서 여러분이 그리로 돌아오게 하려고 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논평하고, 서로 묻고 대답하도록 내버려두신 채 군중을 떠나 시내를 향하여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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