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7권 공생활 셋째 해(하)

하사시7권 [484. 성전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화려하게 오지 않는다”]

Skyblue fiat 2026. 2. 10. 11:17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81~p90

 

484. 성전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화려하게 오지 않는다”

1946. 9. 3.

예수께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신다. 그분께서는 사도들과 적어도 내가 얼굴은 아는 매우 많은 수의 제자들과 함께 계신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 뒤에는 마치 자기들도 선생님의 제자들로 여겨지기를 바라는 듯 제자들의 무리에 합류한 새 얼굴들이 있다.

안티오키아에서 온 그리스인의 영악한 얼굴만을 빼놓고는 모두들 내가 모르는 얼굴들이다. 이 사람은 아마 자기와 같이 이방인인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이 계속 나아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당으로 들어가는 동안에 이 사람과 그의 대화상대는 이방인들의 마당에서 걸음을 멈춘다.

물론 사람들로 가득 찬 성전에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는 없다.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 새로운 웅성거림이 일어나 이교도들의 행각에서 가르치는 박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한다. 마치 마술에 걸린 듯 수업들이 중단되고, 율법학자들의 제자들이 사방으로 달려가 예수의 도착 소식을 전한다. 그래서 그분께서 안마당을 통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당으로 들어가실 때에는 몇몇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 사제들이 흩어져 그분을 지켜본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께서 기도드리시는 동안에는 그분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가오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예수께서 이교도들의 마당으로 돌아오시자 그들은 그분을 따라간다. 그리고 악의를 가지고 따라오는 사람의 수도(首都) 구경꾼들과 선의를 가지고 따라오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어난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하는 말들이 사람들 사이로 퍼진다. 이따금씩 좀 더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네는 저분께서 오실 거라는 것을 이제야 믿나? 저분께서는 의인이셔. 저분께서는 명절을 안 지키실 수 없으셔.”

 

또는

“저 사람은 왜 왔지? 사람들을 더 오도하려고?”


또는

“당신은 이제 만족하시오? 저분께서 어디 계시는지 당신도 지금 볼 수 있지요? 당신은 저분을 그렇게도 열심히 찾더니!”

고립된 논평들이 제자들이나 지지자들의 사랑 바로 그것으로 증오심을 품은 원수들을 위협하는 의미 있는 시선들에 의하여 즉시 목구멍 속에서 막혀버린다. 군중이 무서워 독을 뿜어내는 빈정대는 독설들이 잠잠해진다. 사람들은 선생님을 위한 인상적인 시위 후에 잠잠해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력자들의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상호간의 공포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뿐이시다.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가시고자 하는 곳을 향하여 천천히 위엄 있게 걸어가시는데, 그분께서는 약간 생각에 잠겨 계시지만 깊은 생각에서 빠져나와 한 어머니가 내미는 어린이를 쓰다듬어주시고, 그분께 인사드리며 그분을 찬미하는 노인에게 미소 지으신다.

가말리엘이 이교도들의 행각 안 한 무리의 제자들 가운데 서 있다. 그의 발밑에 깔려 있는 짙은 빨간색의 두꺼운 양탄자와 대조되어 더 희게 보이는 눈부시게 하얀 매우 넓은 찬란한 옷을 입고 있는 그는 팔짱을 끼고 있다. 그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로 생각에 골몰해 있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반면 그의 제자들은 강한 호기심으로 몹시 흥분해 있다. 키가 아주 작은 한 제자는 더 잘 보려고 스툴 위로 올라가기까지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말리엘의 맞은편에 계실 때 그 라삐는 얼굴을 들고, 그 사상가의 이마 아래 있는 그윽한 그의 두 눈이 예수의 평화로운 얼굴을 잠시 응시한다. 질문하는 것 같은, 괴롭히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는 시선이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느끼시고 돌아서신다. 그분께서는 그를 바라보신다.

두개의 섬광들이다. 새까만 눈들과 사파이어 빛깔의 눈들이 서로 만난다. 예수의 눈은 온유하고 탐색을 허용하는 개방되어 있는 눈이고, 가말리엘의 눈은 불가해하고 진리의 신비의 심장부에 다가가고 알려고 애쓰는 눈이다. 사실 갈릴래아의 라삐는 그에게 하나의 수수께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분의 생각에 대하여 바리사이답게 시샘하여 하느님과 무관한 모든 탐구에 대하여 닫혀 있다. 그들은 잠깐 동안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예수께서는 계속 가시고, 가말리엘은 다시 고개를 숙인 채로 그의 주위의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의 솔직하고 불안해하는 질문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음험하고 악의적인 질문들에는 일절 귀 기울이지 않는다.

“선생님, 저분입니까? 당신은 저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습니다! 당신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저 사람은 누굽니까?”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선택하신 지점으로 가신다. 오! 예수의 발밑에는 양탄자들이 없다! 그분께서는 심지어 행각 아래 계시지도 않는다. 그분께서는 행각 끝 계단의 가장 높은 단 위에 서 기둥에 기대고 서 계신다. 그것은 가장 보잘것없는 자리이다. 그분의 주위에는 사도들, 제자들, 추종자들, 구경꾼들이 있다. 그 뒤에는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 사제들, 라삐들이 있다. 가말리엘은 자기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무수히 해 오셨던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와 그것의 준비에 대하여 선포하기 시작하신다. 그런데 나는 예수께서 거의 같은 장소에서 20년 전에 자세히 설명하신 것과 같은 개념들을 더 힘차게 되풀이해 말씀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분께서는 다니엘의 예언에 대하여, 예언자들에 의하여 예언된 선구자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동방박사들의 별과 죄 없는 어린이들의 학살을 상기시키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상에의 내림의 표징들을 보여주는 이 이 예비적 회고들 다음에 그분의 오심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다른 표징들이 전에 육화되신 그리스도의 내림을 특징지었듯이 교사이신 그리스도(Christ Teacher)를 특징짓는 현재의 표징들, 즉 당신과 공존하는 반대, 선구자의 죽음, 하느님께서 그분의 그리스도와 함께 계시는 것을 확인해주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기적들을 언급하신다.

그분께서는 결코 그분의 반대자들을 공격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심지어 그들을 보시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추종자들의 믿음을 굳게 해주시고, 그들의 잘못 없이 여전히 진리에 대한 전적인 무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비추어주시기 위하여 말씀하신다…

한 쉰 목소리가 군중의 끝 쪽으로부터 들려온다.

“당신이 금지된 날들에 기적들을 행한다면, 어떻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기적 속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어제도 당신은 벳파게로 가는 길에서 나병환자 한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분을 방해하는 사람을 바라보시지만, 대답하지는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계속하여 사람들을 억압하는 지배에서의 해방과, 영원하고, 패배를 모르고, 영광스럽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나라의 설립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 일어납니까?”

한 율법학자가 빈정거리며 묻는다. 그가 덧붙인다.

“우리는 당신이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당신과 같은 왕은 이스라엘의 파멸일 것입니다. 왕으로서의 당신의 힘은 어디 있습니까? 당신의 군대, 재물, 동맹관계는 어디 있습니까? 당신은 미치광입니다.”

그와 동류의 많은 사람들이 웃고 그분을 비웃으며 머리를 흔든다.
한 바리사이가 말한다.

“그렇게 행동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저 사람이 말하는 나라가 무엇인지, 그 나라는 어떤 법들을 가지게 될 것인지, 그 나라가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 것인지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뭐라고요? 혹여 고대의 이스라엘 왕국이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처럼 단번에 완전해졌습니까? 당신은 완전한 왕국의 왕으로서의 영광이 있기 전의 많은 불확실성들과 어려운 시기들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최초의 왕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게 기름을 바를 사람을 양성해야 했고, 그래서 엘카나의 한나의 불임을 없애야 했고, 그녀에게 자기의 태의 열매를 바치도록 영감을 불어넣어야 했습니다.

한나의 찬미가를 묵상하시오. 그것은 우리의 냉혹함과 맹목성에 대한 하나의 교훈입니다. ‘주님처럼 거룩한 분은 없네… 거만한 말들을 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죽음도 주시고, 생명도 주시네… 그분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일으키시네… 그분께서는 그분의 신자들의 걸음을 지켜주시지만, 악인들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통해서 강하게 되기 때문이라네.’

오! 기억하시오! ‘주님께서는 땅의 극변들을 심판하실 것이고, 그분의 왕에게 권세를 주실 것이며, 그분의 그리스도의 뿔을 높여주실 것이다.’ 예언들의 그리스도는 다윗의 줄기에 속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무엘의 출생부터 줄곧 예언되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하여 언급된 것이 아닙니까? 선생님, 당신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다윗의 후손이 아닙니까?”


마침내 그가 예수께 직접 묻는다.

“에, 당신이 말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간결하게 대답하신다.

“오! 그럼 저희의 생각들을 만족시켜주십시오. 당신은 침묵이 마음속에 의심의 구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지요.”

“의심의 구름이 아니라 교만의 구름인데, 그것은 훨씬 더 중대합니다.”

“뭐라고요? 당신에 대하여 의심하는 것이 교만한 것보다 덜 중대하다고요?”

“그렇습니다. 교만은 생각(mind)의 음란(lust)입니다. 그것은 루치페르의 죄와 똑같은 죄이므로 더 큰 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것들을 용서해주시고, 그분의 빛은 무지를 비추고 의심들을 떨쳐버리게 하기 위하여 다정하게 빛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자기가 그분보다 더 위대한 체하며 그분을 비웃는 교만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중 누가 자기가 하느님보다 더 크다고 말합니까? 우리는 그분을 모독하지 않습니다…”
그들 중 몇 사람이 외친다.

“당신들은 입술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행위로는 그것을 확인합니다. 당신들은 하느님께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는 갈릴래아인, 서민일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이 그분일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목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방금 전 예수께서 거지처럼 기둥에 기대고 계실 때 그분께서는 약간 소박하셨지만, 지금 그분께서는 몸을 똑바로 세우시고, 기둥에서 떨어지시며 머리를 엄숙하게 똑바로 드시고 빛나는 그분의 빛나는 두 눈의 광채로 군중을 압도하신다.

그분께서는 여전히 계단 위에 서 계신다. 그러나 그분의 모습이 어찌나 당당한지 그분께서는 마치 높은 옥좌 위에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거의 겁에 질려 물러가고, 아무도 그분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던 차에 영혼도 외모처럼 추할 것이 틀림없는 주름투성이의 키가 작은 남자인 라삐가 질문하는데, 그는 질문에 앞서 혀를 끌끌 차며 교활한 거짓웃음을 웃는다.

“음란죄를 짓는 데는 두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각은 누구와 음란죄를 짓습니까? 생각은 육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음란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은 무형의 것인데, 그것은 죄지으려면 무엇과 짝지어야 합니까?”

그는 느릿느릿 말하며, 교활한 웃음을 웃는다.

“누구와? 사탄과. 교만한 자의 생각은 하느님과의 사랑을 거슬러 사탄과 간음합니다.”

“그럼 루치페르는 아직 사탄이 없었는데, 누구와 간음하여 사탄이 되었습니까?”

“자기 자신과 함께, 자기 자신의 지적이고 무질서한 생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율법학자 양반, 음란이란 무엇입니까?”

“글쎄요… 내가 당신에게 먼저 말했습니다! 음란이 무엇인지 누가 모릅니까? 우리 모두는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당신은 악의 삼중의 열매인 이 보편적인 죄의 본질을 알지 못하니 지혜로운 라삐가 아닙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께서 사랑의 세 형태이신 것처럼 말입니다.

오, 율법학자여, 음란은 무질서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욕망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똑같이 그것을 만족시키기를 원하는 자유롭고 의식적인 지성(free conscious intelligence)에 이끌린 무질서입니다.

음란은 자연법칙들, 정의, 하느님과 우리 자신들과 우리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거스르는 무질서와 폭력입니다. 모든 음란이 다 그렇습니다. 육체의 음란도 그렇고, 땅의 재물과 권력을 노리는 음란도 그렇고, 그리스도가 그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막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음란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에게 타격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터무니없는 야망으로 음모를 꾸미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웅성거림이 군중 사이에서 퍼져나간다. 양탄자 위에 혼자 남아 있는 가말리엘은 다시 머리를 들고 예수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그럼 언제 하느님의 나라가 옵니까? 당신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방금 전의 바리사이가 다시 물고 늘어진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옥좌에, 다른 어떤 옥좌보다 높고 이 성전보다 높은 옥좌에 그가 있게 될 때입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것이 명백한데, 어디서 그것이 준비되고 있다는 말입니까? 로마가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 가능합니까? 독수리들이 그토록 눈이 멀어 무엇이 준비되고 있는지를 보지 못한단 말입니까?”

“하느님의 나라는 화려하게 오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눈만이 그것이 형성되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눈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읽으시니까요. 그러므로 ‘사람들이 바타네아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들이 엔게디 광야의 동굴들에서, 해변에서 모의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마시오.

하느님의 나라는 여러분 안에 있고, 여러분의 내면에, 하늘에서 온 율법을 참 고향의 율법으로,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하는 율법으로 받아들이는 여러분의 영혼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 가르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 마음들로 이어지는 길들을 준비하기 위하여 요한이 나보다 먼저 온 것입니다. 그 길들은 회개를 통하여 준비되어 왔고, 사랑을 통하여 나라가 세워질 것이고,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금지하는 죄의 속박은 무너질 것입니다.”

“이분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분이 장인(匠人)이라고 말합니까?”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한다. 복장으로 보아 유다인들이고, 아마도 예수의 원수들에게 사주 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를 응시하다가 그들의 교사자들에게 다가가 묻는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했소? 누가 이분이 사람들에게 길을 잃게 한다고 말할 수 있겠소?”

또 다른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는 놀라고 있소. 그러니 우리에게 말해주시오. 만일 당신들 중 누구도 이분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분이 이토록 지혜로울 수 있소? 만일 이분이 선생에게서 배우지 않았다면, 이분은 그 많은 지혜를 어디서 배웠단 말이오?”

그들이 예수께 묻는다.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당신은 어디서 당신의 교리를 발견하셨습니까?”

예수께서는 영감으로 충만한 얼굴을 드시고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이 가르침은 내 가르침이 아니라 나를 여러분 가운데로 보내신 분의 가르침입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어떤 선생도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는 어떤 살아 있는 책에서도, 어떤 두루마리나 어떤 기념비에서도 그것을 찾아내지 않았습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나는 살아 계시는 분께서 내 영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이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온 말씀을 하느님의 백성에게 줄 시간이 지금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합니다. 또한 나는 마지막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말을 듣고도 부드러워지지 않는 돌들은 내가 숨을 거둔 다음에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느꼈던 공포보다 더 큰 공포를 경험할 것이고, 그 공포 안에서 축복하거나 저주하는 진실의 목소리, 거절된 내 가르침의 말들이 돌에 새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들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표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그때라도 내 가르침을 받아들일 사람들에게는 빛이 사랑과 함께 남아 있게 될 것이고, 그것이 나를 보내 그분의 나라를 세우게 하신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때도 깨닫지 못할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어둠이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창조의 시초에 말해졌습니다. ‘빛이 있어라.’ 그러자 혼돈 안에 빛이 있었습니다.

내 생애의 시초에 말해졌습니다.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 착한 뜻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그것을 반대하지 않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그것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내 가르침이 나 자신에게서 오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나와 맞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혹시 내가 내 영광을 추구합니까? 혹시 내가 은총의 율법과 용서의 시대의 창시자(the Author)라고 말합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닌 영광을 취하지 않고, 모든 좋은 것들을 만드신 분이신 하느님의 영광에 영광을 바칩니다. 내 영광은 아버지께서 내가 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칭찬받으려고 자기를 위하여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도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그것을 물리치며 ‘이것은 내가 창조한 내 영광이 아니라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아버지의 영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하고 말하는 사람은 진리 안에 있고, 그의 안에는 불의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기가 차지하지 않고 각자에게 그들의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나를 원하셨기 때문에 내가 있습니다(I am).”

예수께서는 잠깐 말씀을 멈추신다. 그분께서는 군중의 양심을 조사하시고, 읽으시고, 저울질해보신 다음 다시 말씀을 시작하신다.

“여러분은 침묵합니다. 여러분 중 절반은 나에게 감탄하고, 나머지 절반은 자기들이 어떻게 해야 나를 침묵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누가 그것들을 여러분에게 주었습니까?”

“모세요!”
군중이 외친다.

“아닙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종인 모세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형식적인 틀들(formulae)은 가지고 있지만, 믿음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 우리도, 히브리인들도 시나이 산 밑에서 그분을 보지 못했다.’ 오! 하느님께서 모세의 면전에서 천둥을 치게 하시는 동안에 산에 불붙인 벼락조차도 하느님께서 현존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믿게 하는 데 이바지하지 못합니다. 벼락들과 지진들마저도 하느님께서 구원과 단죄의 영원한 계약을 쓰시기 위하여 여러분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믿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체 없이(very soon) 이 벽들 안에서 무시무시한 새로운 공현(公現, epiphany)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빛의 나라가 시작되고, 지성소가 세상의 목전에서 높이 들리고,더 이상 3중의 휘장 아래 감추어져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비밀의 장소들이 어둠 속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전히 믿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믿게 하려면 도대체 무엇이 필요합니까? 정의의 벼락들이 여러분의 육체를 쳐야 할까요? 그러나 그때는 정의가 진정되고, 사랑의 섬광들이 내려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들도 여러분의 마음 안에, 여러분 모두의 마음 안에 진리를 기록하지 못할 것이고, 뉘우침과 그 다음에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입니다…”

가말리엘의 긴장한 두 눈이 예수를 응시한다…

“그러나 모세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그의 시대의 편년사가들이 그에 대한 기술(記述)을 여러분에게 남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모세가 누구인지, 그가 누구로부터 어떻게 율법을 받았는지를 알지만, 과연 그 율법을 지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중 누구도 그것을 지키지 않습니다.”

군중이 항의하며 소란을 피운다.

예수께서 침묵을 요구하신다.

“여러분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율법을 지킨다고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나를 죽이려고 합니까? 다섯째 계명은 살인을 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나를 죽이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당신은 미쳤소! 당신은 마귀 들렸어요! 마귀가 당신 안에서 말하고 있고, 당신에게 열변을 토하게 하고, 거짓말하게 만듭니다! 우리 중 누구도 당신을 죽이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누가 당신을 죽이기를 원한다는 거요?”

실제로 바로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외친다.

“누가? 당신들이요. 당신들은 그렇게 하려고 구실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거짓 잘못들을 꾸며내 나를 비난합니다. 당신들은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주었다고 나를 비난하는데, 그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모세는 쓰러진 나귀와 소가 여러분의 형제의 재산이기 때문에 우리가 동정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되찾은 건강이 물질적인 위로가 되고, 하느님의 선하심으로 인하여 그분을 찬미하고 사랑하는 영적인 수단이 되는데, 내가 형제의 병든 몸을 동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당신들은 모세가 성조들에게서 받아 당신들에게 준 할례를 안식일에도 행하지 않습니까? 할례가 한 소년을 율법의 아들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안식일에 한 남자에게 할례를 행해도 모세의 율법이 침해당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왜 내가 안식일에 한 사람의 육체와 영혼을 완전하게 고쳐주어 그를 하느님의 아들로 만들었다고 항의합니까?

외양과 글자에 따라 판단하지 말고, 건전한 판단력과 영에 따라 판단하시오. 왜냐하면 글자와 형식들과 외양은 죽은 물건들, 그려진 경치들이지 참 생명이 아닌 반면, 말들과 외양들의 영이야말로 참 생명이고 영원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이런 것들을 이해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자.”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돌아서서 출입구 쪽을 향하여 가시는데, 그분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그분을 뒤따르고 에워싼다. 그들은 그분께 연민을 느끼고 그분의 원수들에게 분개하며 그분을 바라본다.

예수께서는 창백한 얼굴로 미소 지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슬퍼하지 마라. 너희는 내 친구들이다. 그런데 너희는 잘하고 있다. 내 때가 끝나가는 이 마당에 너희가 내 친구들이니 말이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이 날들 중 하루를 보기를 갈망할 때가 곧 올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더 이상 그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너희가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동안에 그분을 사랑했고, 그분께 충실했다’고 말하는 것은 위로가 될 것이다. 그들은 너희를 조롱하고, 너희를 바보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리스도가 돌아왔다. 그는 여기 있다! 그는 저기 있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 목소리들을 귀담아 듣지 마라. 가지도 말고, 그 빈정거리는 자들을 따라가지도 마라. 사람의 아들은 한 번 가고 나면, 그의 날(His Day)까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현현(His manifestation)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번쩍이는 번개처럼 빨라서 눈이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너희는, 그리고 너희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있었고, 있고, 있을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고 내가 마지막으로 나타날 때 나를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의 아들은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는 모든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는 인류의 모든 고통을 당해야 하고, 나아가 이 세대에게 거절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주님, 당신께서는 이 세대가 당신을 칠 수 있을 모든 악을 겪으시겠네요.”

목자 마티아가 언급한다.

“아니다. 나는 ‘인류의 모든 고통’이라고 말했다. 인류는 이 세대 전에도 있었고, 이 세대 후에도 세대들을 통하여 존재할 것이다. 인류는 항상 죄지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구속자가 되기 전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들의 모든 쓴맛을 마지막 죄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 안에서 맛볼 것이다. 그는 자기의 영광 후에도 인류가 자기의 사랑을 짓밟는 것을 보고, 그의 사랑의 영 안에서 여전히 고통당할 것이다. 지금은 너희가 이해할 수 없다… 이 집으로 가자. 이 집은 우호적인 집이다.”

그분께서 대문을 두드리시자 문이 열리며 그분을 들어오시게 하는데, 문지기는 예수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수를 보고 놀라움에 사로잡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