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7권 공생활 셋째 해(하)

하사시7권 [481. 에프라임 근처의 열 명의 나병환자]

Skyblue fiat 2026. 2. 7. 08:42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59~p69


481. 에프라임 근처의 열 명의 나병환자

1946. 8. 29.

그들은 여전히 마차는 다닐 수 없고 도보 여행자들이나 더 평탄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작은 나귀들보다 더 크고 더 힘센 나귀들을 탄 사람들만이 다닐 수 있는 바위투성이의 산속 길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꽤나 진부하게 여길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

사마리아에는 복장과 다른 많은 것들에 관하여 다른 지방들의 풍습과는 다른 풍습들이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다른 곳들과 달리 수많은 개들인데, 나는 데카폴리스에 돼지들의 있는 것으로 인하여 놀랐던 것처럼 이것으로 인하여 놀란다.

아마 사마리아에 많은 목자들이 있고, 몹시 험준한 산에는 많은 늑대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마리아에서는 대체로 목자 혼자서, 아니면 기껏해야 한 소년과 함께 그들 자신의 양떼를 치는 것을 보는 반면, 다른 곳들에서는 주로 여러 사람들이 부자들의 수많은 양떼들을 치는 것을 보는데, 바로 그 이유로 인하여 이 지방에 많은 개들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는 각각의 목자가 자기 양떼의 양의 수에 따라 한 마리 또는 여러 마리의 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한 가지 특색은 나귀들인데, 그놈들은 거의 말만큼이나 크고 튼튼하여 길마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도 이 산들을 올라가기에 적합하다. 나는 그놈들이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로 뒤덮여 있는 이 대단한 산들에서 굵은 통나무들을 길마에 올려놓고 내려오는 것을 본다.

또 다른 현저한 특색은 주민들의 거리낌 없는 태도이다. 그들은 유다인과 갈릴래아인들이 치부하는 것처럼 ‘죄인들’이 아니고, 개방적이고 솔직하며, 다른 사람들과 같은 편협성과 어리석은 복잡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또한 인심이 좋다. 이 관찰은 나로 하여금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모든 곳들과 모든 종족들에 선인과 악인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의도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사마리아인들의 행동에 대한 실제적인 묘사도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은 모세5경에서 멈추었을 수 있다. 나는 그들이 그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만을 듣고, 그 밖의 것을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이웃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613개 항목이나 되는 가르침 따위를 가지고 실천하는 것보다 더 올바르게 율법을 실천한다.

사도들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은 비록 완고한 이스라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스켐의 주민들의 태도를 인정하고 칭찬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아는 것이지만, 스켐의 주민들은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도록 예수를 초대했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들으셨지요, 예? 자기들이 유다인들의 증오를 안다는 것을 그들이 얼마나 분명하게 말했습니까?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저희 사마리아인들 모두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사마리아인들을 증오하는 것보다 당신을 더 증오합니다. 당신에 대한 그들의 증오는 한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말한다.

“또한 그 노인은요? 그분이 얼마나 옳은 말을 했습니까!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자 세상의 구세주이시고, 따라서 당신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만이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당신께서는 하느님으로서 한계들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능력, 거룩함, 사랑에 있어 한계가 없으시며, 악에 대한 당신의 승리가 한계가 없을 것이기에 당신에 대한 악(the Evil)과, 악과 일체인 증오(the Hatred)가 한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는 참으로 진리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추론은 많은 것들을 설명해줍니다!”

열성당원이 말한다.

“자네가 보기에 그것이 무엇을 설명해주나? 나는… 나는 그것이 그들이 바보들이라는 것만을 설명해준다고 말하겠네.”

토마스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아니야, 어리석음은 하나의 변명이 될 거야. 그러나 그들은 바보들이 아니야.”

“그렇다면 그들은 취했구먼. 증오에 취했어.”

토마스가 대꾸한다.

“그것도 아니야. 취기는 폭발한 다음에는 수그러들지만, 그들의 증오는 수그러들지 않네.”

“증오는 취기보다 더 억제되기 어려워! 그 증오는 참으로 해묵은 것이어서… 이제는 가라앉아야 할 텐데 말이야.”

“나의 벗들아, 그 증오는 아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마치 그 증오의 목표가 그분 자신의 죽음이 아닌 것처럼 침착하게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다고요?! 그러나 그들이 우리를 끝까지 내버려두지 않으면요?!”

“선생님, 이 사람들은 아직 제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을 믿지 않지만, 저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오! 저는 진짜로 사실을 말했어요! 그리고 나는 또한 자네들의 말대로 했다면, 자네들 모두는 세례자처럼 덫에 빠졌을 거라고 말하겠네. 그렇지만 내가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그들은 성공할 수 없을 거야…”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를 바라보신다. 나도 가리옷 사람의 행동이 성덕과 그분에 대한 사랑의 길로의 착하고 진정한 귀환에 기인한 것인지, 그를 속박하고 있는 인간적, 초인간적 힘으로부터의 해방인지, 아니면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더 교묘한 작업, 그리스도의 적들과 사탄에 대한 더 큰 예속인지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본다. 나는 며칠 전부터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다는 너무 특별한 존재여서 그를 판독할 수는 없다. 하느님만이 그를 이해하실 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도의 모든 행동들과 인격 위에 자비와 신중의 베일을 드리우신다… 그것은 하늘의 책들이 열릴 때에만 지금은 신비스러운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완전한 빛을 비추며 찢어질 베일이다.

사도들은 원수들의 증오가 아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 압도되어 한참동안 말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토마스가 열성당원에게 말한다.

“좋아, 만일 그들이 취해 있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다면, 만일 그들의 증오가 많은 것들을 설명하면서 이것은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증오가 무엇을 설명한다는 말인가? 그들은 무엇인가? 자네는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네…”

“그들이 무엇이냐고? 그들은 마귀 들린 자들이지. 그들은 그들이 그분께서 그렇다고 말하는 바로 그것이네(They are what they say He is). 그것이 한계를 모르고, 그분의 능력이 더 많이 드러남에 따라 점점 더 커지는 그들의 분노를 설명해주네.

그 사마리아인은 진리를 말했네. 아버지와 마리아의 아들이시고, 사람이시고 하느님이신 그분 안에 하느님의 무한성이 있고, 그 완전한 무한성을 반대하는 증오는 비록 그 무한한 존재 안에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무한하네. 왜냐하면 하느님만이 그분의 행동들에 있어 완전하시기 때문이야.

그러나 만일 증오가 완전의 심연의 바닥에 도달할 수 있다면, 아니 그것이 심연의 바닥에 도달하려고 돌진해 내려가 지옥의 심연으로의 바로 그 추락을 통하여 다시 튀어 올라와 지옥의 심연에서 낚아채 온 무기들로 그리스도께 상처를 입히려고 할 거야.

하느님에 의하여 조절되는 하늘에 해는 하나밖에 없네. 해는 떠서 빛나다가 달이라는 더 작은 해에게 그 자리를 내주며 지고, 달은 자기 차례에 빛난 다음에 져서 그 자리를 해에게 내주네. 별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네. 그것들은 조물주의 뜻에 복종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네. 그분에 대한 반대가 그 한 가지 예야.

만일 달이 ‘나는 사라지기 싫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온 길을 따라 돌아가겠다’고 말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나? 달은 틀림없이 해와 충돌하게 되어 온 우주를 소스라치게 만들고 손상시킬 거야. 그것이 바로 그들이 해를 산산조각 낼 수 있다고 믿고서 하기를 원하는 것이야.”

“이것은 빛에 대한 어둠의 싸움이야. 우리는 날마다 새벽과 저녁에 그것을 보네. 두개의 힘은 교대로 땅을 지배하며 서로에게 맞서네. 그러나 어둠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항상 패배하네. 작은 빛은 항상, 가장 별이 없는 밤에도 빛나네. 공기 자체가 천국 창공의 무한한 공간 안에서 그 빛을 만들어내고, 비록 그것이 매우 희박한 것이기는 해도 그것을 비추어 별들이 꺼지지 않았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 같네.
그래서 나는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라는 빛을 거스르는 악의 이 특별한 어둠 속에서도, 어둠의 모든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빛이 있어서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위로해줄 것이라고 말하겠네.”

요한이 마치 혼잣말하듯이 자기 자신의 생각에 몰두한 채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의 생각은 알패오의 야고보의 지지를 받는다.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샛별’이라고 불리시네. 그러니 그분께서도 밤을 아실 것이고, 그 생각은 나를 두렵게 하지만, 우리도 밤을 알게 될 걸세. 빛이 강해 보이지 않는 반면, 어둠이 승리를 거둘 것처럼 보이는 일정한 기간을 말이야. 그러나 그분께서는 시간의 한계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샛별’이라고 불리셨으니, 그분께서는 순간적인 밤 후에 첫째 날의 혼돈에 뒤이은 빛처럼 세상을 쇄신하는 순수하고, 신선하고, 순결한 아침빛이실 거라고 나는 말하겠네. 오! 그래, 세상은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재창조될 거야. “

“그리고 루치페르에서부터 거룩한 백성을 모독하는 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미 저질러진 오류들을 되풀이하면서 빛을 치려고 손을 든 타락한 자들은 저주받을 거야. 야훼께서는 사람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시지만 사람을 위하여 지옥이 승리하도록 허락하시지 않을 거야.”

“오! 조로(早老)로 인하여 무디고 굼뜨게 된 것처럼 보였던 우리 모두의 영혼들의 그토록 심한 졸음 후에 지혜가 다시 우리 입술 위에서 번성하는구먼!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들인 것 같지 않았어! 이제 나는 열성당원과 요한, 좋았던 전날의 두 형제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네!”

가리옷 사람이 그들을 치하하며 말한다.

“나는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자신들이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로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베드로가 말한다.

“우리는 정말 변했네! 우리 모두, 자네를 위시해서. 그리고 시몬과 다른 사람들, 나까지 포함해서. 다소간 전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요한이야.”

“흠! 나는 정말로 모르겠는데 무엇이…”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마치 우리가 지치고, 무관심하고, 근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말수가 적어졌었어… 우리는 좋았던 지난날의 대화들과 같은 대화들, 방금 전의 대화처럼 대단히 유익한 회화는 듣지 못했었어…”

“말싸움을 위해서.”

타대오가 그 대화들이 얼마나 자주 말다툼으로 비화되었는지를 기억하며 말한다.

“아니야. 우리의 함양(formation)을 위해서야.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모두가 나이나 지혜에 있어 나타나엘이나 시몬이나 알패오의 아들들 자네들과 같기는 않거든. 그래서 덜 지혜로운 사람이 더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배우는 거야.”

가리옷 사람이 대답한다.

“사실… 나는 가장 필요한 것은 의덕 안에서 자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네. 그런데 이 점에 있어 시몬이 우리에게 훌륭한 교훈을 주었네.”

토마스가 말한다.

“내가? 자네는 사물을 잘못 보고 있네. 나는 많은 사람들 중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네.”

베드로가 말한다.

“아니야. 자네가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이야. 이 점에 대해서는 가리옷의 유다의 말이 옳아. 내가 자네들에게 와서 자네들과 합류했을 때―나를 용서해주게―내가 만났던 시몬에게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시몬이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네. 우리가 등불 명절을 위하여 헤어졌다가 내가 자네를 다시 만난 다음부터 자네는 향상만을 거듭했네.
자네는 지금… 그래서 내가 말하는데, 더 자상하고, 동시에 더 엄하네. 자네는 자네의 불쌍한 형제들을 자네가 전에 견뎌냈던 것보다 더 견뎌내네… 그것이 자네에게는 힘든 일이겠지만, 자네가 자제한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네. 적어도 나는 보네. 그리고 자네가 별로 말하지 않고 우리를 별로 비난하지 않는 지금만큼 자네가 우리에게 존경심을 일으킨 적은 전혀 없었네…”

“글쎄, 내 소중한 벗이여! 자네가 착해서 나를 그렇게 판단하는 거야… 나는 내 안에서 선생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빼놓고는 전혀 변하지 않았네.”

“아니야. 토마스의 말이 옳아. 자네는 아주 많이 변했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확인한다.

“알 게 뭐람! 자네들이 그렇게 말하니…”

베드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그가 덧붙인다.

“선생님만이 확실하게 판단하실 수 있으실 거야. 그렇지만 나는 그분께 여쭙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하네. 그분께서는 내 약점을 아시고, 부당한 칭찬이 내 영혼을 해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네. 그래서 그분께서는 나를 칭찬하지 않으실 텐데, 그것은 그분께서 잘하시는 일일 거야. 나는 그분의 마음과 방법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이 모두 옳다는 것을 알아.”

“왜냐하면 네가 올곧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점점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너로 하여금 보게 만들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네 선생에 대한 네 사랑이다. 너로 하여금 네 선생을 이해하게 만드는 참되고 가장 위대한 선생인 그는 사랑이다.”

지금까지 듣기만 하시며 침묵하셨던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저는 생각하기를… 그것은 제 안에 있는 고통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고통이? 왜?”
그들 중 몇 사람이 묻는다.

“여보게들! 많은 것들로 인한 고통인데, 결국 그것은 유일한 것이네. 선생님께서 고통당하시는 것… 그리고 그분께서 고통당하실 것이라는 생각이야.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가 얼마나 고통당해야 할지를 알게 된 지금 우리는 우리가 초기에 그랬듯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처럼 방심할 수 없네.

오! 우리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었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데 있어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나타나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네! 우리는 이스라엘과 세상을 쟁취하는 것은 물고기들이 많은 물에 그물을 던지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네! 순진한 나여!

나는 선생님께서 고기를 많이 잡는 데 성공하시지 못한다면 우리는 전혀 못 잡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그들이 악하고, 그래서 그들은 선생님을 고통당하시게 만든다고 생각하네. 나는 그것이 우리의 전반적인 변화의 이유라고 생각하네…”

“그것은 사실이야. 내 경우에는 사실이야.”
열성당원이 확인한다.

“내 경우에도 그래. 내 경우에도 그래.”
다른 사람들도 말한다.

“나는 오랫동안 그것에 대하여 고민해 왔고, 그래서 좋은 도움을 얻으려고 애썼네… 그렇지만 그들은 나를 배신했네… 그리고 자네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네… 나도 자네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자네들이 영적 피로, 신뢰의 결여, 실망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었네…”
“나는 결코 인간적인 기쁨들을 바라지 않았네. 따라서 나는 실망하지 않았네.”
열성당원이 말한다.

“내 동생과 나는 그분께서 승리하시기를 원했네. 그분 자신 기쁨을 위하여. 우리는 제자들로서보다는 그분의 친척의 사랑으로 그분을 따랐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항상 그분을 따랐네. 우리보다 연소하시지만, 항상 우리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그분을…”

야고보가 예수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말한다.
“우리가 유감스러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분의 모든 친척들이 그분을 영혼 안에서(in spirit) 사랑하지 않고, 영혼을 가지고서만(only with the spirit) 사랑한다는 거야. 그러나 잘못된 방식으로 선생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우리만이 아니네.”
타대오가 말한다.

가리옷의 유다가 그를 바라본다. 아마 그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의 주의는 그들이 들어서려고 길을 찾으면서 그 주위를 걷고 있는 작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작은 산에서 들려오는 한 외침에 의하여 방해받는다.

“예수님! 라삐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며 우리 주님이신 분이시여,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나병환자들입니다! 선생님, 가십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 전체가 이리로 달려와서 그들의 집에 우리를 붙들어놓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말한다.

그러나 나병환자들은 그들의 전방, 마을에서 적어도 500미터는 떨어져 있는 길 위 높은 곳에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다리를 절며 내려와 계속 외치며 예수를 향하여 뛰어온다.

“선생님, 마을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저 사람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어떤 사도들이 말한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이 자기들의 의견을 말한다.

“여자들 몇 명이 이미 집 밖에 나와 쳐다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는 나병환자들은 피하겠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붙드는 것을 피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 나병환자들은 점점 더 예수께로 다가온다. 그분께서는 사도들의 ‘그러나들’과 ‘만일들’을 괘념치 않으시고, 계속 길을 가신다. 사도들은 하는 수 없이 그분을 따라간다. 그 동안 치마폭에 아이들을 달고 있는 여자들과 마을에 남아 있던 몇 명의 노인들이 보러 와서 나병환자들과 조심스런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나병환자들은 예수에게서 몇 미터 되는 곳에서 멈추어 서서 다시 한 번 애원한다.


“예수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예수께서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시고 나서 그 고통스러운 집단에 다가가지는 않으시며 물으신다.

“당신들은 이 마을 사람들이오?”

“아닙니다, 선생님. 저희는 여러 지방 출신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머무르고 있는 산의 반대쪽은 예리코로 가는 길에 면해 있어 저희에게는 좋은 곳입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있는 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가서 자신들을 사제들에게 보이시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다시 걷기 시작하시는데, 그분께서는 나병환자들을 접촉하지 않으시려고 길가로 가신다. 그들은 예수께서 다가오시는 동안에 그분을 바라보는데, 그들의 불쌍한 병든 눈에는 희망만을 담고 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자, 그분께서는 손을 들어 그들에게 강복하신다.

마을 사람들은 실망하여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나병환자들은 그들의 동굴 또는 예리코로 가는 길을 향하여 가려고 산으로 다시 올라간다.

“당신께서 그들을 고쳐주지 않으신 것은 잘하신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밤이 되기 전에 에프라임에 도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계속 걸어가시며 침묵하신다. 마을은 지금 산 밑의 불규칙한 구불구불한 윤곽을 따라 나 있는 길의 굴곡으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 목소리가 그들에게 다가온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과 그분의 참 메시아에게 찬미. 모든 능력, 지혜, 연민이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찬미. 오, 유다, 사마리아, 갈릴래아, 요르단 강 너머의 사람들이여, 지극히 높으신 분과 그분의 그리스도에 대한 찬미가 매우 높은 헤르몬 산의 눈에 이르기까지, 이두매아의 뜨겁게 달아오른 돌들에 이르기까지, 큰 바다의 파도들에 덮인 백사장에 이르기까지 울려 퍼지게 하시오.

발라암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의 별이 참 목자에 의하여 재통합된 조국의 회복된 하늘 위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조들에게 주어진 약속들도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를 사랑한 엘리야의 말이 여기, 여기 있습니다. 팔레스티나의 백성들이여, 그 말을 듣고 이해하시오. 더 이상 양쪽에서 흐느적거리지 말고, 영의 빛에 의하여 선택해야 합니다. 만일 그의 영혼이 의롭다면, 그는 올바르게 선택할 것입니다.
이분께서는 주님이십니다. 이분을 따르시오! 아! 지금까지 우리는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 받아 왔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거짓 제단을 저주하며 예언했습니다. ‘다윗 가문에서 요시아라 불리는 한 아들이 태어날 터인데, 그는 제단 위에 아담의 뼈를 제물로 바치고 태워버릴 것이다. 그때 제단이 땅속까지 갈라지고, 제물의 재가 북쪽과 남쪽, 동쪽과 해지는 곳으로 퍼질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이스라엘에 계시는데, 에크론의 신에게 문의하려고 사신들을 보낸 어리석은 아하즈야처럼 하지 마시오.발라암의 암나귀보다 못한 사람이 되지 마시오. 그 나귀는 빛의 영에 대한 공경으로 살 자격이 있었고, 보지 못했던 예언자는 벌 받아 쓰러졌을 것입니다.우리 가운데로 지나가고 계시는 빛이 여기 계십니다. 영혼이 눈 먼 여러분, 눈을 뜨고 보시오.”

나병환자들 중 한 사람이 그들을 따라와 점점 거리를 좁히며 간선도로 위까지 올라와 거기에서 행인들에게 예수를 가리킨다.

사도들은 짜증이 나 두세 번 뒤돌아보며 지금은 완전히 병이 나은 나병환자에게 침묵하라고 명한다. 그들은 마지막에는 그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기 위하여 외치던 것을 멈추고 대답한다.

“그럼 여러분은 제가 하느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큰일들을 찬미하지 않기를 바랍니까? 여러분은 제가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기를 바랍니까?”
“마음속으로 그분을 찬미하고 조용히 하시오.”
사도들이 화내며 대답한다.

“안 됩니다. 저는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입술에 말들을 놓아주십니다.”
그는 더 큰 소리로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경계 양쪽 도시의 주민 여러분, 이곳을 지나가는 여러분, 걸음을 멈추고, 주님의 이름으로 다스리실 분께 경배하시오. 나는 참으로 많은 말씀들을 비웃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씀들이 실현된 것을 보기 때문에 그 말씀들을 되풀이합니다. 보시오. 모든 민족들이 움직이며 바다와 사막들을 건너, 산들과 야산들을 넘어 기뻐하며 주님께로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을 걸어오고 있는 백성인 우리도 죽음의 지역에서 나와 떠오르신 큰 빛을 향하여, 생명을 향하여 갈 것입니다.

늑대들, 표범들, 사자들이던 우리가 주님의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 향백나무로 자라난 이사이의 싹의 그늘에서 땅의 동서남북에서 그분에 의하여 모여든 민족들이 야영하며 그분 안에서 서로 사랑할 것입니다.

이제 에프라임의 질투가 끝날 날이 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이스라엘도, 유다도 없고, 유일한 나라 즉 주님의 그리스도의 나라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나를 구원해주시고 위로해주신 주님께 찬미가들을 노래합니다. 지금 나는 말합니다. 그분을 찬미하고, 구세주의 샘으로 와서 구원의 물을 드시오.

호산나! 그분께서 하신 위대한 일들에 호산나! 그분의 영을 사람들 가운데 두시고 구속주가 되시도록 그분을 육체로 옷 입히신 지극히 높으신 분께 호산나!”

그는 지칠 줄 모른다.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 붐비며 길을 막는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달려 나오고, 앞서 가던 사람들은 돌아온다. 지금은 가까이에 있는 작은 마을의 주민들도 행인들과 합류한다.

“주님, 제발 저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해주십시오. 저 사람은 사마리아인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저희도 당신을 앞서가면서 당신을 전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니 저 사람도 당신에 대하여 말하면 안 됩니다.”
성난 사도들이 말한다.

“나의 소중한 벗들아, 나는 너희에게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엘닷과 메닷이 진영 안에서 예언하고 있는 것을 불평할 때 모세가 그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해야겠다. ‘너는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오! 야훼의 모든 백성들이 예언하고, 야훼께서 그분의 영을 그들 모두에게 주셨으면!’ 그러나 나는 너희를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고 저 사람을 돌려보내겠다.”

그분께서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치유된 나병환자를 부르시자, 그가 달려와 예수 앞에 엎드리며 땅에 입 맞춘다.

“일어나시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소? 당신들은 모두 열 명이 아니었소? 다른 아홉 명은 주님께 감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군요. 그런데? 열 명의 나병환자들 중에 사마리아인은 한 명뿐이었는데, 이 외국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생활과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기 전에 돌아와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느끼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이 사람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인들이 술에 취하여 보는 대상을 둘로 보지 않고, 비틀거리지 않고 구원의 길로 오고 있으니 그들은 더 이상 취해 있지 않단 말입니까? 외국인들은 말씀(the Word)의 말을 알아듣는데 그의 동향인들은 알아듣지 못하니, 말씀이 외국어를 말하기라도 합니까?”

그분께서는 그분의 놀라운 두 눈을 들어 팔레스티나의 곳곳에서 거기 와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신다. 빛을 발하는 그 눈은 견딜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말이나 나귀를 재촉하거나 걸어서 그곳을 떠난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마리아인을 지극히 다정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옆구리에 늘어뜨려져 있던 손을 들어 그를 축복하시며 말씀하신다.
“일어나서 가시오. 당신의 믿음은 당신 안에서 당신의 육체보다 더한 것을 구원했소. 하느님의 빛 안에서 전진하시오. 가시오.”

그 사람은 다시 땅바닥에 입 맞춘 다음 일어서기 전에 청한다.

“주님, 저에게 이름을 주십시오. 모든 것이 제 안에서 새로워졌고, 영원히 새로워졌으니, 새 이름을 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어떤 지방에 있소?”
“에프라임 지방입니다.”

“그럼 생명(Life)이 당신에게 생명(life)을 두 번 주셨으니, 이제부터 당신의 이름은 에프렘이오. 가시오.”

그는 일어나 떠나간다.
그 지역 주민들과 몇몇 순례자들이 예수를 붙들려 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시선으로 그들을 굴복시키신다. 그 시선은 엄하지 않고 아주 부드럽지만, 아무도 예수를 붙들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그것이 큰 힘을 발산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작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길을 벗어나 밭을 가로지르신 다음 작은 개울과 오솔길을 건너 숲이 우거진 동쪽 비탈을 올라가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숲으로 들어가시며 말씀하신다.

“길을 잃지 않도록 숲속 길로 가자. 저 구부러진 곳을 지나면, 이 산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우리는 거기서 한 동굴을 찾아 거기서 자고, 에프라임은 새벽에 지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