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규칙보다 사랑의 계명을 더 존중하신다
1947. 1. 11.
열 명의 사도들이 피로에 지치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집으로 돌아온다. 노파가 그들에게 대문을 열어주면서 인사하자 그들은 그녀에게 대뜸 묻는다.
“선생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저는 그분께서는 여느 때처럼 기도하시며 숲속에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께서는 오늘 아침 아주 일찍 나가셨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분을 찾으러 가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 두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베드로가 흥분하며 외친다.
“여보시오, 성화부리지 마시오. 그분께서는 우리 가운데에서 마치 그분의 어머니의 댁에 계시는 것처럼 안전하실 겁니다.”
“그분께서 안전하시다고요! 당신은 세례자를 기억하십니까? 그분은 안전했습니까?”
“그분은 자기에게 말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세례자에게 그것을 허락하셨다 해도 그분의 메시아께는 분명히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당신은 여자이고 사마리아인인 내가 믿는 것보다 그것을 훨씬 더 믿어야 할 겁니다.”
“마리아 할머니의 말씀이 옳아. 하지만 그분께서는 정확히 어디로 가셨지요?”
“나는 몰라요. 그분께서는 때로는 이쪽으로 가시고, 때로는 저쪽으로 가시니까요. 그분께서는 때로는 혼자 가시고, 때로는 그분을 몹시 좋아하는 어린이들과 함께 가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시며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그분께서는 정오에 돌아오지 않으셨으니 아마 오늘은 혼자이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어린이들과 함께 계실 때 그분께서는 항상 정오에 돌아오십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일정한 시간에 먹이를 원하는 어린 새들이니까요…”
작은 노파가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녀는 자기의 열 명의 자녀들을 회상하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한숨을 내쉰다… 왜냐하면 인생의 모든 추억들에는 기쁨과 고통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유다와 요한은 어디 있습니까?”
“유다는 샘에 갔고, 요한은 땔감을 구하러 갔어요. 나는 당신들이 떠날 때 깨끗한 옷을 입게 해주려고 당신들의 모든 옷을 빨아 널었기 때문에 땔감이 떨어졌어요.”
“할머니,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갚아주시기를. 저희가 당신을 힘들게 일하게 해드리고 있군요…”
토마스가 마치 할머니를 어루만지기를 원하는 듯이 그분의 야위고 꾸부정한 어깨에 한 손을 얹으며 말한다.
“오!… 이것은 피곤한 게 아니에요. 나는 마치 내가 다시 내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 같이 느끼고 있어요…”
노파가 다시 미소 지으며 말하는데, 늙은 여인의 움푹 들어간 눈에서 눈물이 반짝인다.
요한이 커다란 나뭇짐을 지고 들어오는데, 어지간히 어둡던 복도가 그가 들어오자 환해지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요한이 있는 곳마다 빛나는 듯한 밝은 빛을 알아보았다. 어린이와 같은 그의 몹시 다정하고 솔직한 미소, 아름다운 4월의 하늘처럼 미소 짓는 그의 맑은 두 눈, 자기의 동료들에게 인사할 때의 그의 기뻐하는 목소리는 햇살이나 평화의 무지개와도 같다.
가리옷의 유다를 빼놓고는 모두가 그를 사랑한다. 나는 유다가 요한을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요한을 질투하고, 자주 그를 놀리고, 때로 그를 모욕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유다는 여기 있지 않다.
사도들은 요한을 도와 짐을 내려놓게 하고, 예수께서 어디 계시냐고 묻는다. 요한도 그분의 귀가가 늦어지는 것을 다소 걱정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하느님을 더 신뢰하며 말한다.
“그분의 아버지께서 그분을 악에서 구해주실 거야. 우린 주님을 믿어야 해.”
그러고 나서 그가 덧붙인다.
“그렇지만… 이리 오게. 자네들은 지쳐 있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구먼. 우리는 자네들을 위하여 음식과 뜨거운 물을 준비해놓았다네. 오게…”
가리옷의 유다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물병들을 가지고 돌아온다.
“자네들에게 평화. 자네들은 좋은 여행을 했나?”
그가 묻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친절이 들어 있지 않고, 경멸과 불만이 섞여 있다.
“그렇다네, 우린 데카폴리스에서부터 시작했어.”
“자네들은 돌에 맞아 죽을까봐 겁이 나서 그랬나, 아니면 부정탈까봐 그랬나?”
가리옷 사람이 빈정대며 묻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네. 우리는 초심자들의 조심성으로 그렇게 했네. 내가 그렇게 하자고 제안했어. 두루마리들 위에서 백발이 된 내가 자네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네.”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유다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방금 돌아온 사도들이 준비되어 있는 음식을 먹는 동안 부엌을 나간다.
베드로가 지나가는 가리옷 사람을 바라보며 머리를 흔든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반면 타대오는 요한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묻는다.
“요사이 저 사람이 어떻게 행동했나? 저 사람은 항상 저렇게 짜증냈나? 솔직히 말해주게…”
“나는 항상 솔직하네, 유다. 그러나 나는 그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자네에게 확인해줄 수 있네. 선생님께서는 거의 항상 외따로 계시네. 나는 아주 친절한 할머니와 함께 머무르고, 그분께 말씀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서 그분께 말씀드리네. 반면 유다는 마을을 돌아다니네. 그는 몇 명의 친구들을 사귀었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 사람은 그렇게 생긴 걸… 그는 우리처럼 가만히 있을 줄을 모르잖아…”
“나에 관한 한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 그가 괴롭히지만 않으면, 나는 행복해.”
“아니야. 그는 괴롭히지는 않아. 그는 분명히 지루해하기는 해. 그러나… 선생님께서 오셔! 그분의 목소리가 들려. 그분께서는 누군가와 말씀하고 계셔…”
그들은 밖으로 뛰어나가 예수께서 어두워지는 황혼 속에서 두 명의 어린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한 아이는 그분의 겉옷에 매달리게 하신 채, 그들이 울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달래며 오고 계시는 것을 본다.
“선생님, 하느님께서 당신께 강복하시기를! 그런데 이 늦은 시각에 당신께서는 어디에서 오십니까?”
예수께서는 집으로 들어오시며 대답하신다.
“나는 노상강도들을 만났다가 돌아오는 길이다. 나도 내 먹잇감을 탈취했다. 나는 일몰 후에 걸었었다. 그러나 내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용서해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자비의 행위를 했으니까… 요한아, 이 애들을 받아라… 시몬, 너도… 내 두 팔은 피로로 욱신거리고 있다… 나는 정말로 피곤하다.”
그분께서는 난로 가까이의 스툴에 앉으신다. 그분께서는 미소 지으신다. 그분께서는 피로하시지만 행복하시다.
“노상강도들에게서요? 그런데 당신께서는 어디 가셨었습니까? 이 아이들은 누굽니까? 당신께서는 무언가를 드셨습니까? 당신께서는 어디 계셨습니까? 어두울 때 그렇게 멀리 가시는 건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저희는 걱정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숲속에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들 모두가 동시에 묻는다.
“나는 숲속에 있지 않았다. 나는 예리코 쪽으로 갔었다…”
“당신께서는 어쩌면 그렇게 무모하실 수 있습니까! 당신께서는 그 길들에서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만나실 수도 있습니다.”
타대오가 그분을 나무라며 말한다.
“나는 그들이 우리에게 말해준 오솔길로 갔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그곳으로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구속되어야 할 불행한 사람들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들을 위하여 때맞추어 갔어야 했다.
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나는 이 아이들이 무언가 음식을 먹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그 노상강도들을 무서워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먹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내가 목자 한 사람이라도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안식일이 임박했기 때문에 모든 풀밭에 아무도 없었다.”
“물론이지요! 한참 동안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뿐입니다…”
항상 신랄한 가리옷의 유다가 지적한다.
“자네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 자네는 무엇을 암시하고 있나?”
그들이 유다에게 묻는다.
“나는 우리가 두 번의 안식일 동안 해가 진 다음에 일해 왔다고 말하고 있네.”
“유다야, 너는 우리가 왜 지난 안식일에 걸어야 했는지 알고 있다.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 항상 그것을 어기는 사람의 죄가 아니고, 그것을 어기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사람들의 죄일 때도 있다. 그리고 오늘은…
나는 안다. 너는 오늘도 내가 안식일을 어겼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너에게 대답하는데, 안식일의 휴식계명이 크다면 사랑의 계명은 더욱 크다.
나는 너에게 나 자신을 정당화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나는 관용, 겸손, 그리고 거룩한 필요가 있을 때는 융통성 있는 영으로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큰 진리를 너에게 가르쳐주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 우리 역사에는 그런 필요성의 많은 예들이 있다.
나는 새벽에 아둠밈 산맥을 향하여 갔다. 왜냐하면 나는 거기 죄의 나병에 감염되어 있는 영혼을 가진 몇 명의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만나 그들에게 말하고 해지기 전에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의도했던 말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것들을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야의 보잘것없는 양의 우리 입구에서 울고 있는 이 세 아이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밤에 어린양들을 훔치고, 목자가 대항하면 목자도 죽이려고 내려왔었다. 겨울 산의 굶주림의 고통은 끔찍하다… 그리고 잔인한 마음들이 그런 굶주림의 고통을 당할 때 그 굶주림은 사람들을 늑대보다 더 사납게 만든다.
이 아이들은 자기들보다 불과 몇 살 많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겁먹은 어린 목동과 함께 거기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의 아버지는 밤사이에 죽어 있었다. 아마 그것은 어떤 짐승에게 물렸거나 심부전으로 인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의 차가운 시신이 양들 옆의 짚에 누워 있었다. 맏아들이 그의 곁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하여 노상강도들은 학살하는 대신 죽어 있는 사람과 울고 있는 네 아이를 만났던 것이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버려두고 양들과 어린 목동을 앞으로 몰았고, 가장 악한 사람들에게도 억제하기 어려운 연민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들은 아이들을 거두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할지 의논하고 있을 때 그들을 만났다. 보다 흉포한 사람들은 그들의 도둑질과 은신처의 위험한 증인인 열 살 먹은 목동을 죽이기를 원했다. 덜 잔인한 사람들은 양떼는 붙잡아두고, 목동은 위협한 다음에 돌려보내자고 말했다. 그들 모두는 어린 아이들을 데려가기를 원했다.”
“어떻게 하려고요? 아이들에게는 가족이 없습니까?”
“그들의 어머니는 죽었다. 그래서 그들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겨울 목장으로 데려왔다가 이제 산들을 넘어 자기의 외로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노상강도들에게 내버려두어 그들이 아이들을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로 만들게 할 수 있었겠느냐?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그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나를 더 잘 이해했다. 그들이 어찌나 잘 이해했던지 그들은 아이들을 나에게 넘겨주었고, 목동을 내일 스켐으로 가는 길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그 시골에 아이들의 외삼촌들이 살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어린이들을 거두었다. 나는 이 아이들의 친척들이 올 때까지 그들을 데리고 있겠다.”
“그럼 당신께서는 자만하시기를 노상강도들이…”
가리옷 사람이 말하고 웃는다…
“나는 그들이 어린 목자를 결코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판단하지 말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착한 행동 하나가 그들의 구원의 시작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생각에 잠겨 고개를 숙이신다. 그는 그 생각이 궁금하다.
사도들과 노파는 겁먹은 아이들을 동정하며 서로 말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그들을 위로해준다…
예수께서는 가장 어린 아이, 세 살쯤 된 갈색머리의 어린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시고 머리를 들고, 그에게 양젖을 먹이려고 애쓰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야고보에게 말씀하신다.
“그 아이를 나에게 주고, 너는 가서 내 배낭을 가져오너라.”
그분께서는 어린이가 그분의 무릎 위에서 진정되고, 방금 전에 거절했던 양젖을 꿀꺽꿀꺽 먹는 것을 보시고 빙그레 웃으신다. 좀 더 큰 다른 아이들은 그들 앞에 가져다준 수프를 먹는다.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런! 얼마나 슬픈 일이야! 자! 우리가 고통당하는 건 정당해. 그렇지만 죄 없는 아이들이!…”
어린이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는 베드로가 말한다.
“시몬, 자네는 죄인일세. 자네는 하느님을 비난하고 있으니 말이야.”
가리옷 사람이 지적한다.
“내가 죄인일 수 있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을 비난하고 있지는 않네. 나는 다만… 선생님, 왜 어린이들이 고통당해야 합니까? 그들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요.”
“모든 사람에게는 죄가 있어. 적어도 원죄는 말이야.”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베드로는 그에게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의 대답을 기다린다. 이제는 배불리 먹고 졸고 있는 어린이들을 어르고 계시는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시몬아, 고통은 죄의 결과이다.”
“좋습니다. 그럼… 당신께서 죄를 없애신 후에는 어린이들은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여전히 고통당할 것이다. 시몬아, 화내지 마라. 땅 위에는 항상 고통과 죽음이 있을 것이다. 가장 깨끗한 사람들도 고통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니 그들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고통당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 속죄하는 희생들이다(The victims propitiatory to the Lord).”
“그런데 왜요?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네가 땅 위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많이 있다. 너는 적어도 완전한 사랑이 그것들을 원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회복된 은총이 가장 거룩한 사람들에게 숨겨진 진리들을 알게 할 때 사람들은 바로 가장 거룩한 사람들이란 스스로 희생들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통의 능력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잠들었구나. 마리아 할머니, 당신이 아이를 데리고 주무시겠어요?”
“선생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겁먹은 아이는 적게 자고, 많이 울며, 둥지 없는 새에게는 어미의 날개가 필요하다고 이 고장 사람들은 말합니다. 제가 혼자서 자는 지금 제 침대는 너무 큽니다. 저는 아이들을 그리로 안아다놓고 보살피겠습니다. 이 다른 아이들도 잠들려고 하는데, 그들은 자면서 그들의 고통을 잊을 것입니다. 이리 오시오. 아이들을 침대로 옮깁시다.”
그녀는 예수의 무릎에서 어린이를 받아 데려간다. 베드로와 필립보가 그녀를 뒤따라간다. 그 동안 제베대오의 야고보는 예수의 배낭을 가지고 돌아온다.
예수께서는 배낭을 열고 그 안을 뒤지신다. 그분께서는 두꺼운 옷 한 벌을 꺼내시고, 그것을 펴서 그 너비를 헤아리신다. 그분께서는 만족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튜닉과 같이 색깔이 짙은 겉옷을 찾아 한쪽에 두신다. 그분께서는 배낭을 닫은 다음 그것을 야고보에게 돌려주신다.
베드로가 필립보와 함께 돌아온다. 노파는 세 아이 옆에 남아 있다. 베드로는 즉시 펴서 따로 놓아둔 옷들을 보고 말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옷을 갈아입으시겠습니까? 당신께서는 몹시 지치셨으니 뜨거운 물에 목욕하시면 회복되실 겁니다. 뜨거운 물이 있습니다. 저희는 당신의 옷을 따뜻하게 만든 다음 저녁을 먹고 취침하겠습니다. 가엾은 아이들의 이 이야기로 저는 굉장히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지만,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이렇게만 말씀하신다.
“죄 없는 어린이들을 구하시도록 나를 늦지 않게 이리로 인도해주신 주님을 찬미하자.”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입을 다무신다. 그분께서는 분명 몹시 피로하시다…
노파가 아이들의 옷들을 가지고 돌아온다.
“옷들을 갈아입혀야 합니다… 옷들은 찢어지고, 더럽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더 이상 제 자녀들의 옷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이것들을 바꾸어줄 수 없군요. 저는 내일 이 옷들을 빨겠습니다…”
“아닙니다, 할머니. 안식일이 지나면, 제 옷으로 작은 옷 세벌을 지으십시오.”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는 단지 세 벌의 튜닉만을 가지고 계실 뿐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만일 당신께서 한 벌을 주어버리신다면, 당신께는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겉옷을 여자 나병환자에게 주셨을 때처럼 라자로가 여기 있는 것도 아닌데요!”
베드로가 말한다.
“염려하지 마라. 두벌이 남아 있는데, 사람의 아들에게는 그것도 너무 많다. 마리아 할머니, 이것을 받으세요. 내일 해가 지면 일을 시작하세요. 그러면 박해받는 사람은 자기가 아는 가난한 사람들의 근심거리를 도와주며 기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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