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8 수난준비

하사시8권 [554. 안식일에 에프라임 회당에서 말씀하시다]

Skyblue fiat 2026. 2. 4. 12:47


554. 안식일에 에프라임 회당에서 말씀하시다

1947. 1. 17.

 
사도들이 다시 야곱의 마리아의 집에 다 함께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또 다른 안식일임이 분명하다.
어린이들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있는데, 그들은 화덕 옆 예수 곁에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이렇게 1주일이 지났는데, 이 애들의 친척들은 오지 않았군요.”
유다가 머리를 흔들며 웃는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대답하지 않으시고, 둘째 아이를 쓰다듬어주신다.

유다는 베드로와 알패오의 야고보에게 묻는다.

“그런데 자네들은 스켐으로 가는 두 길들을 따라 걸어갔다고 했지?”

“그래, 우리는 그렇게 말했어. 그렇지만 그것을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었어. 분명히 노상강도들은 번화한 길들로 지나가지 않을 거야. 특히 로마군의 분견대가 끊임없이 순찰하는 지금은 말이야.”
야고보가 대답한다.

“그럼 자네들은 왜 그 길로 갔나?”
가리옷 사람이 집요하게 묻는다.

“글쎄!… 우리는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가나 똑같아. 그래서 우리는 그 길들로 간 걸세.”

“그런데 아무도 자네들에게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었다는 거지?”

“우리는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네.”

“그러면서 자네들은 어떻게 그들이 지나갔는지 아닌지 알기를 기대할 수 있었나? 사람들이 어떤 길을 따라 걸어갈 때 깃발들을 가지고 다니거나 흔적들을 남기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걸세. 왜냐하면 그랬다면 우리는 적어도 우리 친구들에게는 발견되었을 거야. 그런데 반대로 우리가 여기 온 이래 그들 중 아무도 오지 않았잖아.”

유다가 비꼬는 투로 웃는다.

“우리는 왜 아무도 여기 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네. 선생님께서는 아시네. 그러나 우리는 몰라. 사람들이 우리처럼 지나간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물러갈 때 그들의 은신처를 알아내지 않고는 아무도 그들에게 갈 수 없네. 지금 우리는 우리 형제가 우리 친구들에게 말씀하셨는지 알지 못하네.”

알패오의 야고보가 참을성 있게 말한다.

“오! 자네는 그분께서 적어도 라자로와 니까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믿거나 우리에게 믿게 하겠다는 건가?”

예수께서는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한 아이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가신다…

“나는 아무것도 믿기를 원치 않아. 그러나 가령 자네가 말하는 대로라 해도, 자네와 우리 중 아무도 우리 친구들이 오지 않는 이유를 판단할 수 없네…”

“그 이유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아무도 산헤드린과의 사이에 말썽이 생기기를 원치 않는 거야. 특히 부유하고 권세 있는 사람은 더 그럴 거야. 그뿐이야! 우리는 우리 목숨을 거는 유일한 사람들이야.”

“유다, 공정하게! 선생님께서는 우리 중 아무에게도 그분과 함께 남아 있으라고 강요하지 않으셨네. 산헤드린이 무섭다면, 자네는 왜 여기 남아 있나?”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리고 자네는 언제고 자네가 가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네. 자네는 사슬에 묶여 있지 않아…”

제베대오의 아들인 다른 야고보가 말을 막는다.

“아니야! 결코 안 돼! 우리는 여기 있어. 그리고 우리는 여기 남아 있을 거야. 가고 싶은 사람은 전에 떠났어야 했어. 지금은 안 돼. 선생님께서 반대하시지 않는다 해도, 내가 반대하네.”

베드로가 식탁을 주먹으로 치며 느리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그건 왜? 자네가 뭔데 자네는 선생님 대신 명령하고 싶어 하나?”

가리옷 사람이 그에게 거칠게 묻는다.

“나는 선생님처럼 하느님으로서 이치를 따지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이치를 따지는 사람일세.”

“자네는 나를 의심하고 있나? 자네는 내가 배반자라고 생각하나?”

유다가 흥분하며 말한다.

“자네가 바로 말했네. 자네가 고의적으로 배반할 거라고 내가 생각해서가 아니야. 그러나 유다, 자네는 너무… 생각이 없고, 너무 변덕스럽네! 그리고 자네는 너무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어. 또한 자네는 모든 일에 있어 두드러져 보이기를 너무 열망하네. 자네는, 오! 자네는 침묵할 줄을 모를 거야! 자네는 어떤 악한 원수에게 논박하거나 자네가 사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말할 거야. 그래서 자네는 여기 있고, 여기 남아 있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자네는 해를 끼치지 않고, 어떤 가책도 느끼지 않게 될 거야.”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자유를 억제하지 않으시는데, 자네는 그렇게 하고 싶은가?”

“그래, 나는 그렇게 하겠네. 그렇지만 결국 나에게 말하게. 자네가 비를 맞나? 빵이 없나? 공기가 나쁜가? 사람들이 자네를 모욕하나? 그 어떤 것도 아니지. 비록 집은 부유하지 않지만, 견고하고, 공기도 좋고, 음식도 결코 떨어진 적이 없고, 주민들도 자네를 존경하네. 그런데 왜 자네는 감옥에라도 갇힌 것처럼 여기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나?”

“‘내 영혼이 미워하는 두 민족이 있고, 내가 미워하는 셋째 민족은 민족도 아니다. 즉 세이르 산의 주민들과 필리스티아인들과 스켐에 살고 있는 어리석은 백성이다.’ 나는 현자의 말로 자네에게 대답했네. 그런 내 생각은 옳네. 이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하는지를 보게!”

“흠! 자네에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다른 사람들, 자네 고장 사람들이나 내 고장 사람들이 이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은 것 같지는 않네. 우리는 유다와 갈릴래아에서 돌팔매를 맞았는데, 갈릴래아에서보다 유다에서 훨씬 더 많이 맞았고,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성전에서 더 많이 맞았네. 나는 필리스티아인들의 지방에서나 여기서나 다른 어떤 곳에서 우리가 학대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다른 어디? 다행히 우리는 그 밖의 다른 곳에는 가지 않았네. 그러나 가령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면, 나는 자네들과 오지 않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걸세. 나는 더 부정 타기를 원치 않아.”

“부정 탄다고? 시몬의 유다, 자네가 염려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네. 자네는 성전 사람들과 소원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지. 그것이 바로 자네를 괴롭히는 것이야.”

베드로, 알패오의 야고보, 필립보와 함께 부엌에 남아 있는 열성당원 시몬이 조용히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 명씩 두 아이를 데리고 선생님에게로 갔다. 그것은 다툼을 피하려는 것이었으므로 공로가 되는 도망이었다.

“아니야. 그것 때문이 아니야. 그러나 내가 시간을 낭비하고 바보들에게 지혜를 주기 싫어서 그래. 생각해보게. 에르마스테오를 받아들였던 것이 무슨 유익이 있었나? 그는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네. 요셉은 자기가 그와 헤어질 때 그는 자기가 장막절에 돌아오겠다고 말했다는데. 자네는 그를 보았나? 변절자…”

“나는 그가 왜 돌아오지 않았는지 모르네. 그리고 나는 그를 판단할 수 없네. 하지만 나는 자네에게 묻겠네. 선생님을 떠나 그분의 원수가 된 사람이 그 사람뿐인가? 우리 유다인들 가운데, 그리고 갈릴래아인들 가운데에는 변절자들이 없나? 자네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나?”

“나는 증명할 수 없어. 그건 사실이야. 그러나 나는 여기 있는 게 불편해. 만일 그들이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안다면! 만일 그들이 우리가 안식일들에 사마리아인들의 회당에 갈 정도로 그들과 친밀하게 지낸다는 걸 안다면! 그분께서는 그것을 원하셔… 만일 우리의 그런 행동들이 발각된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걸세! 그 고발은 정당화될 걸세…”

“자네의 말은 선생님께서 단죄 받으실 거란 말이지. 하지만 그분께서는 이미 유죄선고를 받으셨네.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알기 전에 이미 유죄판결을 받으셨네. 아니 그분께서는 유다에서 유다인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다음에 유죄선고를 받으셨네.

그분께서는 사마리아인이라고, 그리고 세리들과 창녀들의 친구라고 미움 받으시고, 고발당하시네. 그분께서는… 줄곧 그러셨네. 그리고 자네는 누구보다 그분께서 미움 받으시는지, 아닌지 잘 알고 있네.”

“나타나엘, 자네의 말은 무슨 뜻인가? 자네는 무엇을 말하고 싶나?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내가 자네들이 아는 것보다 무엇을 더 안다는 건가?”

유다는 매우 흥분해 있다.

“여보게 젊은이, 자네는 마치 적들에게 둘러싸인 생쥐처럼 보이네그려. 그러나 자네는 생쥐가 아니고, 우리는 자네를 잡아 죽이려고 몽둥이들을 들고 있지도 않네. 자네는 왜 그렇게 두려워하나? 만일 자네의 양심이 평화롭다면, 자네는 왜 죄 없는 말에 그렇게 흥분하나?

바르톨로메오가 한 말 중 어떤 말이 자네를 그렇게 흥분하게 만드나? 그분 가까이에서 잠자고, 사는 그분의 사도들인 우리가 그분께서 사마리아인, 세리, 죄인, 창녀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들을 사랑하시고, 그 영혼들만을 돌보시며, 바로 그런 이유만으로 그분께서 사마리아인들, 세리들, 창녀들과 동행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만이 그분의 지극히 깨끗하신 아드님께서 사람들이고, 죄인들인 우리가 ‘쓰레기’라고 부르는 것에 다가가셔야 할 때 어떤 노력을 기울이셔야 하는지를 아신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아무도 더 알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여보게 젊은이, 자네는 아직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네! 자네는 바로 그 사마리아인들 자신들, 필리스티아 사람들, 페니키아 사람들, 그리고 자네가 말하고 싶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그분을 덜 아네…”

베드로가 말한다. 그가 마지막 말을 할 때는 슬픔이 배어 있다.

유다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침묵한다.

노파가 돌아와서 말한다.

“길에 시내 사람들이 와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안식일의 기도시간인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 제가 가서 그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에프라임 사람들에게 우리가 갈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베드로가 대답하고, 예수께 그것을 알려드리려고 텃밭으로 나간다.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자네도 갈 건가! 만일 자네가 가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분께서 자네의 거부로 인하여 슬퍼하시기 전에 밖으로 나가서 외출하게.”

열성당원이 유다에게 말한다.

“나도 자네들과 함께 가겠네. 여기서는 말할 수가 없구먼! 나는 가장 큰 죄인이라도 된 것 같아!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오해하니, 원.”

예수께서 부엌으로 들어오시자, 그들은 말하기를 멈춘다.

그들은 길로 나가 에프라임 사람들과 함께 읍내로 들어간다. 그들은 회당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걸음을 멈춘다. 말라키가 회당의 문에 있다가 그들에게 인사하고, 그들을 영접한다.

나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기도장소와 내가 다른 지방들에서 본 기도장소들 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곳들에는 항상 통상적인 등불들, 통상적인 독서대들이나 두루마리들이 놓여 있는 선반들, 회당장이나 회당장 대신 가르치는 사람의 자리 등이 있다. 만일 여기에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에는 다른 회당들보다 훨씬 적은 수의 두루마리들이 있다는 점이다.

“저희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이미 기도드렸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신다면… 선생님, 당신께서는 어떤 두루마리를 원하십니까?”

“나에게는 어떤 두루마리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당신들은 내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로 돌아서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히브리인들이 그때로부터 50년 전에 파괴된 솔로몬의 성전을 재건하도록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에 의하여 그들의 고국으로 돌려보내졌을 때 제단은 그 기초 위에 다시 세워졌고, 매일의 번제가 조석으로 그 제단 위에서 드려졌으며, 매달 초하룻날의 특별 번제와 주님께 신성한 명절들의 특별 번제와 개인들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봉헌된 번제들이 드려졌습니다.

나중에 예배에 필수적이고 불가결한 것을 복구한 다음에 그들은 그들이 귀환한 이듬해에 예배의 틀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 즉 외부적인 것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영원하신 아버지를 공경하기 위하여 행해진 것이기 때문에 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인데, 사랑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감지되고 드려지는 것이지 다듬어진 돌들, 값진 나무들, 금과 향을 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은 주님을 공경하기보다는 자기들의 나라나 자기들의 고장의 자긍심을 만족시키는 것을 더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의 성전을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랑으로 가득한 영혼들이 없는 벽들과 대리석들의 성전에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하는데, 깨끗하고 다정한 마음의 성전만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고, 그분께서 그분의 빛과 함께 그 안에 거하시는 유일한 성전입니다. 또한 자기들의 기도장소들의 아름다움에 따라 지역들과 고을들을 구분하는 경연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집들에서 부유함과 장식들을 두고 경쟁합니까? 설사 유한한 것이 솔로몬의 성전과 모든 왕궁들을 합친 것보다 열배나 더 아름답다한들, 그것이 무한하신 분을 만족시켜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어떤 공간이나 어떤 물질적인 화려함 속에도 포함되실 수 없고, 그 안에서 공경 받으실 수 없는 무한하신 분이시기에, 그분께서는 그분께 걸맞고 그분을 공경하기에 합당한 유일한 장소를 아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계실 수 있습니다. 아니 그분께서는 그것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의인의 영혼은 사랑의 향기 속에서 그 위에 하느님의 영께서 맴도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머지않아 삼위일체이신 영께서 지금 하늘에 계시는 것처럼 실제로 거하실 성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석공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자마자 사제들이 다윗의 칙령에 따라 예복을 입고 나팔들을 가지고 오고, 레위인들은 심벌즈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께서는 선하시고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시니 그분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하고 노래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제들과 족장들과 레위인들과 원로들은 과거의 성전을 생각하며 하염없이 눈물 흘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기쁨의 함성이 섞여 있어 그것들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인접한 지역들의 백성들이 자기들도 이스라엘의 하느님, 유일하신 참 하느님을 추구했기에 그들이 성전을 짓도록 예물을 드리겠다고 제안했는데도 그것들을 받기를 거절한 성전건축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그들을 방해했다는 것도 읽습니다. 그런 방해들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공사를 재개하기를 원하실 때까지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이것은 에즈라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말한 대목이 얼마나 많은 교훈들, 그리고 어떠한 교훈들을 우리에게 줍니까? 우선, 예배가 사람의 마음으로 감지되어야 하고, 돌들이나 나무 또는 옷과 심벌즈와 영혼이 없는 노래로 표현되지 않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된 교훈이 있습니다. 또한 비록 좋은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 해도 상호간의 사랑이 없는 것은 항상 지연과 혼란의 원인이 된다는 교훈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 없는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적절한 상황에 우리 자신들을 두지 않는 한 하느님을 찾아도 소용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 안에서 발견되십니다. 사랑 안에서 정주하는 사람이나 사람들은 힘들게 찾을 필요도 없이 그분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의 모든 일들에 있어 성공합니다.

성전과 성곽들의 재건에 수반되었던 고통스러운 사건들에 대한 묵상 후에 한 현인의 마음에서 솟구친 시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집을 짓지 않으신다면, 집 짓는 사람들의 수고가 헛되다. 주님께서 도시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지 않으신다면, 파수꾼들의 수고도 헛되다.’

그런데 만일 하느님께서 그 주민들이 그들의 이웃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속에 그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신다면, 어떻게 그분께서 그 집을 지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그들의 자신들의 이웃들에 대한 증오로 인하여 그들이 그분을 모시고 있지 않아서 그분께서 그들 안에 계실 수 없다면, 어떻게 그분께서 그 도시를 보호해주시고, 그것을 방어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민족들이여, 증오의 장벽들로 갈라져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을 더 위대하게 만들었습니까? 더 부유하게 만들었습니까? 더 행복하게 만들었습니까? 증오도, 원한도, 어떤 유익도 없고, 혼자인 사람은 결코 강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사랑받지 못합니다.

또한 시편에서 말하는 것처럼 위대하고, 부유하고, 행복하게 되려고 해뜨기 전에 일어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삶의 고통들 속에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쉬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빛과 사람이 누리는 다른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선물인 것처럼 잠은 그분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잠자든, 깨어 있든 사랑을 자기의 동반자로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의 일, 그의 가족, 그의 사업이 번창할 것이고, 특히 그의 영혼이 번영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들과 그분의 나라의 상속자들의 왕관을 차지할 것입니다.

백성들이 호산나 찬미가들을 부르는 동안에 어떤 사람들은 과거를 생각하며 그리워했기 때문에 하염없이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란한 외침 속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들을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사마리아의 자녀들이여, 그리고 유다와 갈릴래아의 아들들인 너희 내 사도들이여! 하느님의 새 성전이 영원한 기초들 위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요즘에도 호산나 찬미가를 부르는 사람들과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도 일을 방해하고, 하느님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그분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에도 하느님의 명령이 아닌 키루스의 명령에 따라, 즉 영의 목소리들에 따라서가 아니라 세상의 명령에 따라 그것을 세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도 열등했던 과거, 참으로 선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아서 하느님의 진노를 유발할 정도였던 과거에 대하여 어리석고 인간적인 그리움을 가지고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에도 우리는 마치 우리가 빛의 날들에 있지 않고, 여전히 오랜 옛날의 모호함 안에 있는 것처럼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빛인 내가 말하고 있는 대상인 여러분만이라도 볼 수 있기 위하여 여러분의 마음을 빛을 향하여 열고, 빛으로 여러분을 가득 채우시오. 지금은 모든 것이 재건되는 새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로 들어오기를 거부하고, 새 믿음의 성전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방해할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 성전의 모퉁이 돌이고, 그래서 나는 그 돌들을 위한 회반죽을 만들기 위하여 나의 전체 자아를 그 성전에게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건물은 거룩하고 강하게 우뚝 서서 시대를 통하여 경탄할 만하게 되고, 그 빛으로 가득 채워질 지구만큼 넓게 되게 할 것입니다.

나는 그림자라고 말하지 않고, 빛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내 성전은 불투명한 물질들이 아닌 영혼들로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영원한 영과 함께 그 돌이 될 것이고, 내 말과 새 믿음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도 그 성전을 위한 무형의 빛나는 거룩한 돌일 것입니다. 그리고 새 성전의 빛은 온 땅에 퍼질 것이고, 성전을 지혜와 성덕으로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의 바깥에는 불순한 눈물을 흘리고, 과거를 그리워할 사람들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인간적인 이익과 명예의 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인 여러분, 새 시대와 새 성전을 향하여 마음을 여시오!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새로워지고, 그래서 과거의 생각과 영의 구별들과 경계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들에게 유배자들, 나병환자들로 취급되는 것이 행복합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느님의 품에서 거부된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것에 대하여 환호합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여러분이 느끼는 것, 여러분의 영혼들, 여러분의 육체 안에 갇혀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는 실수했습니다. 그러나 길 잃은 양들처럼 양 우리로 돌아옵니다’ 하고 말하기를 거부하는 여러분의 오만한 생각의 통제 아래 있는 여러분의 불쌍한 영혼들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원치 않는데, 그것도 나쁜 것입니다. 적어도 하느님께는 그렇게 말씀드리시오. 설사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혼들의 부르짖음을 억누른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보편적이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의 집에서 유배당하여 불행한 여러분의 영혼의 탄식을 들으십니다.

계속되는 시편의 말씀을 들으시오. 여러분은 시대들을 통하여 높은 도성, 참 예루살렘, 천상의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그곳으로부터, 즉 하늘로부터 여러분의 영혼들은 육체에 생명을 주기 위하여 내려왔기에, 그것들은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탄식합니다.

여러분은 왜 여러분의 영혼들을 희생하고, 그들이 나라를 상속하지 못하게 하기를 원합니까? 만일 그 영혼들이 사마리아에서 잉태된 육체들 안으로 내려왔다면, 그들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오직 유일하신 아버지에게서 옵니다. 그들은 유다와 갈릴래아, 페니키아와 데카폴리스의 영혼들이 가진 것과 똑같은 창조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영들의 목적이십니다. 모든 영은 하느님을 지향합니다. 설혹 모든 종류의 우상숭배나 해로운 이단들이나 분열주의들이나 신앙의 결핍이 그것을 참 하느님에 대한 무지 안에 가두어둔다 해도, 만일 그 영혼이 진리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배아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래서 그 진리를 갈망하지 않았다면, 하느님에 대한 그의 무지는 절대적일 것입니다.

오! 그 기억과 갈망을 더 크게 자라게 하시오. 여러분의 영혼들의 문을 여시오. 빛이 들어가게 하시오! 생명이 들어가게 하시오! 진리가 들어가게 하시오. 길이 열리게 하시오! 모든 것이 햇살처럼, 춘분과 추분의 파도들과 바람들처럼 밝고 활기차게 솟구쳐 나오게 하여, 나무가 그 배아로부터 자라나 위로 올라가 그것의 주님께 점점 더 가까이 가게 하시오.

여러분의 귀양살이에서 나오시오! 나와 함께 노래하시오. ‘주님께서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때 그들의 영혼들은 기쁨으로 꿈꾸는 것 같다. 우리의 입들은 미소로 가득하고, 우리의 양 입술들에는 노래로 가득하다. 우리는 지금 말하리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일들을 해주셨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큰일을 해주셨고, 그래서 여러분은 기쁨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오! 나의 아버지! 저는 제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듯이 이들을 위해서도 당신께 기도합니다. 오, 주님, 우리의 이 갇힌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에게, 그리고 저에게 그들은 완고한 오류의 사슬에 묶여 있는 죄수들이기 때문입니다.

오, 아버지, 이들을 큰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급류처럼 당신의 자비와 평화의 대해로 이끌어주십시오. 제 종들과 저는 눈물 흘리며 이들에게 당신의 진리를 씨 뿌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큰 추수 때 당신의 진리를 가르치는 당신의 종들인 저희가 지금은 검은딸기나무와 독초만이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밭고랑들에서 당신의 곡식창고들에 들어갈 정선된 곡식을 기쁨으로 거둘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 저희의 피로, 눈물, 고통, 수고와 씨 뿌리는 데 있어 저희의 동반자들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저희의 동료들을 통하여 저희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정의와 진리로 다시 태어난 영혼들을 곡식 단들처럼 들고 당신께로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멘.”

참으로 인상적인 절대적인 침묵이 회당과 그 앞에 있는 광장을 꽉 채운 대단히 많은 군중 속에서 흐르다가, 조심스러운 속삭임이 되더니 점점 더 커져서 중얼거림이 되었다가… 한 외침이 들리고… 호산나로 발전한다. 사람들은 손짓을 하며 자신들의 감상을 말하고, 환호한다…

여기서는 성전에서의 연설들의 결말과 얼마나 다른가! 말라키가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말한다.

“당신만이 아무도 모욕하지 않고, 굴욕감을 주지 않고, 그렇게 진실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정말로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저희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저희는 시대들을 통하여… 믿음과 길고 긴 모욕으로 냉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저희의 딱딱한 껍질을 깨뜨려야 합니다. 저희를 참아주십시오.”

“나는 그보다 훨씬 더한 것을 주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겠습니다. 착한 뜻을 가지시오. 그러면 껍질은 저절로 깨질 것입니다. 빛이 여러분에게 오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군중 사이로 길을 내시고 나가시자 사도들이 그분을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