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8 수난준비

하사시8권 [552. 에프라임에서의 다음날. 사람의 영원한 운명의 기억에 대한 비유]

Skyblue fiat 2026. 2. 5. 02:09

552. 에프라임에서의 다음날. 사람의 영원한 운명의 기억에 대한 비유

1947. 1. 12.

“일어나 개울가로 가자. 회당이 없는 외국에서 사는 히브리인들처럼 우리끼리 안식일을 지내자. 아이들도 가자…”

예수께서 텃밭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한쪽 구석에 모여 있는 가엾은 세 아이에게 손을 내미신다.

어린이들은 큰 사건들을 경험한 조숙한 어린이들처럼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얼굴들에 수줍은 기쁨의 빛을 나타내며 그분께 다가온다. 더 큰 두 아이는 그들의 두 손을 예수의 두 손 안에 놓는다. 그러나 작은 아이는 그분의 품에 안기기를 원한다. 예수께서는 그를 만족시켜주시며 가장 큰 아이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 곁에서 어제처럼 내 옷깃을 붙잡아라. 이사악은 너무 지치고 너무 어려서 혼자 걸을 수 없단다…”

소년은 예수의 미소에 기뻐하며 동의하고, 작은 어른처럼 예수 곁에서 걸어가는 것으로 만족한다.

“선생님, 아이를 저에게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어제의 피로의 뒤끝이라 아직 피로하실 테고, 루벤은 당신께서 손을 잡아주시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그가 예수에게서 아이를 받으려고 두 팔을 내밀자, 아이는 예수의 목에 달라붙는다.

“이 녀석도 자기의 모든 동족들처럼 고집이 세구먼!”

가리옷의 유다가 외친다.

“아니야. 이 애는 두려워하고 있어. 자네는 아이들에 대한 경험이 없구먼. 아이들은 그래. 그 애들은 슬프거나 겁이 날 때는 자기들에게 웃어주고 자기들을 위로한 맨 처음 사람에게서 피난처를 찾는다네.”

바르톨로메오가 대답한다. 그는 가장 작은 아이를 안을 수 없으므로 가장 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그에게 다정하게 미소 지은 다음 그의 손을 잡는다.

일행은 여인만을 남겨두고 집에서 나와 개울을 따라 마을 너머로 간다. 개울가는 꽃들이 점점이 박힌 싱싱한 풀로 덮여 있어 아름답다. 맑은 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바위 사이로 흘러가고, 비록 물은 별로 많지 않지만 개울 바닥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더 굵은 조약돌에 부딪혀 하프 뜯는 소리를 내며 졸졸 흘러가거나 갈대가 덮인 몇 개의 작은 섬들의 틈새들 안으로 스며든다.

새들은 즐겁게 지저귀며 개울가의 나무들에서 날아가거나, 양지바른 가지에 앉아 첫 번째 봄노래들을 부르거나, 우아하고 날쌔게 땅으로 날아 내려와 곤충들과 벌레들을 찾거나 개울가에서 물을 마신다. 멧비둘기 두 마리가 부리로 서로 쪼아주고 구구거리며 물가의 굽이진 곳에서 미역을 감는다. 그 다음에 그놈들은 꼭대기들에 꽃이 피고 있는 한 산사나무 가지에 어떤 양이 남기고 간 양털 뭉치를 부리로 물고 날아간다.

“멧비둘기들은 둥지를 지으려고 저렇게 하는 거예요.”

가장 큰 아이가 말한다.

“저 멧비둘기들에게는 분명히 새끼들이 있어요…”

그는 첫 번째의 몇 단어를 말할 때 희미하게 미소 지은 다음 고개를 푹 숙인다. 그는 소리 없이 울면서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바르톨로메오는 멧비둘기 두 마리가 둥지 짓는 것을 보게 되어 아이의 상처가 되살아난 것을 이해하고, 그 아이를 껴안는다. 착한 가장인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아이는 바르톨로메오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둘째 아이는 자기 형의 눈물을 보고 울기 시작하고, 셋째 아이도 따라서 울며 이제 막 말하기 시작한 그 작은 어린이 목소리로 자기의 아버지를 부른다.

“오늘은 이것이 우리의 안식일 기도가 되겠구먼! 당신께서는 이 아이들을 집에 두고 오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런 경우에는 여자들이 저희보다 적합합니다. 그리고…”

가리옷 사람이 논평한다.

“그렇지만 할머니도 별 도리 없이 우실 수밖에 없을 거야! 나도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이런 상황은… 우리를 눈물 나게 하는 일이거든…”

베드로가 둘째 아이를 안으며 대답한다.

“그래, 이런 것은 울 수밖에 없는 일이야, 맞아. 그리고 몹시 슬퍼하는 가엾은 노파인 야곱의 마리아는 위로하는 데 아주 적합하지는 않아…”

열성당원이 확인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할머니도 이 일에 별로 성공할 것 같지 않아. 이 애들을 위로하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생님뿐이셨어. 그런데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

“그분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고? 그분께서는 더 이상 무엇을 하실 수 있었나? 그분께서는 강도들을 설득하셨고, 아이들을 안고 여러 마일을 걸어오셨고, 아이들의 친척에게 알리는 일을 하셨잖은가.”

“그런 건 모두 사소한 일들이야. 그분께서는 죽음에게 명령하실 수 있으니 그분께서는 양 우리로 내려가 목자를 다시 살려내실 수 있었어. 아니 살려내셔야 했어. 그분께서는 라자로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셨잖아. 그런데 그는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었어. 이 경우에는 아버지, 그것도 홀아비인 아버지였고, 고아들로 남게 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부활의 기적은 행해져야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이토록 불손한 자네를 이해하지 못하겠네…”

“조용히 해라, 조용히 해! 유다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느님의 이유들과 죄의 결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유다만은 아니다. 요나의 시몬, 너도 죄 없는 아이들이 왜 고통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가 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일으켜지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시몬의 유다를 판단하지 마라.

내가 나 혼자 멀리 간다고 항상 나를 비난하는 유다가 만일 그 문제에 대하여 숙고했다면, 그는 내가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양 우리는 예리코의 평야에 있었지만, 그 도시 너머 여울 가까이에 있었다. 내가 적어도 사흘간이나 떠나 있었다면, 너희는 뭐라고 말했겠느냐?”

“당신께서는 당신의 영으로 그 사람에게 다시 일어나라고 명령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너는 내가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려낸다고 말함에 있어 부패한 육체의 증거를 원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보다 더 까다로우냐?”

“그들은 당신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께서 당신의 모든 원수를 으깨버리시는 것을 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네 해묵은 감정들과 네 무질서한 사랑이다. 너는 네 마음에서 고목들을 뽑아내고, 그것들을 새 나무들로 대체할 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 고목들은 네가 다가온 빛으로 자양분을 섭취하여 훨씬 더 튼튼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네 오류를 범하고, 미래에도 범할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도움에 영웅적인 의지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오류이다.”

“저와 같이 당신의 제자들인 이 사람들은 고목들을 뿌리 뽑았습니까?”

“그들은 적어도 그것들을 많이 가지치기하고, 그것들에 많이 접붙였는데,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는 심지어 그 나무들이 접붙일 만한 자격이 있는지, 가지를 쳐내야 하는지, 제거해야 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지도 않았다. 유다야, 너는 분별없는 정원사이다.”

“제 영혼에 대해서만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정원들을 다룰 줄 아니까요.”

“너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안다. 너는 모든 세상사들에 대해서는 전문가다. 나는 네가 하늘에 관한 일들에 있어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유능한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당신의 빛이 스스로 저희 안에서 놀라운 일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로 좋은가요? 만일 그 빛이 악에게 자양분을 공급하고 악을 활성화한다면 그것은 좋은 것일 수 없고, 만일 저희가 착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빛의 탓입니다.”

“이 사람아, 자네에 대해서나 말하게. 내가 아는 한 선생님께서 내 나쁜 경향들을 더 강화하셨다고 생각하지 않네.”

토마스가 말한다.

“나도 그래.”

“나도.”

안드레아와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내 경우에는 그분의 능력이 나를 악에서 구해주셨고, 나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네. 자네는 왜 그렇게 말하나? 자네는 자네가 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나?”

마태오가 묻는다.

베드로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곳을 떠나는 쪽을 택하여, 어린이를 무동 태우고 배가 흔들리는 시늉을 하며 빨리 걷기 시작하여 그 아이를 웃게 만든다. 그는 타대오 곁을 지나갈 때 그의 팔을 잡고 외친다.

“저기 저 섬으로 가세. 저 섬에는 꽃바구니처럼 꽃이 만발해 있네. 나타나엘, 필립보, 시몬, 요한 가세… 한번 펄쩍 뛰면, 우리는 저 섬으로 갈 수 있어. 이렇게 갈라져 있는 개울은 섬 양쪽에 있는 두 개의 실개천에 지나지 않네.”

베드로가 맨 먼저 점프하여 목장처럼 풀로 덮여 있고 양탄자 형태를 이루며 철 이르게 핀 꽃들로 가득한 몇 미터 너비의 모래톱에 착지한다. 그 한가운데에는 가벼운 바람에 꼭대기가 흔들리는 키가 크고 가느다란 포플라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그가 부른 사람들이 천천히 그와 합류하고, 뒤이어 예수와 더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뒤따라간다. 예수께서는 가리옷 사람에게 말씀하시면서 뒤에 남아 계신다.

“그런데 저 사람은 아직 끝내지 않았니?”

베드로가 자기의 동생에게 묻는다.

“선생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작용하고 계셔.”

안드레아가 대답한다.

“어휴! 유다의 마음에 정의가 들어가게 하기보다 내가 이 나무에 무화과가 열리게 하는 것이 더 쉽겠다.”

“그리고 그의 생각에도.”

마태오는 한 술 더 뜬다.

“저 사람은 어리석기를 원하기 때문에 바보인 거야. 자기가 그것을 원하니…”

타대오가 말한다.

“저 사람은 자기가 복음을 전하도록 선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심통난 거야. 난 알아.”

요한이 설명한다.

“나에 관한 한… 저 사람이 내 대신 가고 싶어 한다면… 나는 전혀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베드로가 외친다.

“우리 중 누구도 가고 싶어 하며 안달하지 않아. 그런데 저 사람은 가기를 원해. 그런데 내 형제는 그를 보내기를 원치 않네. 나는 유다의 기분을 알고, 그 이유들도 알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그분께 말씀드렸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마음이 그토록 불건전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내 곁에 붙들어두려고 한다. 고통당하는 양자들이야말로 의사와 그들을 지지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말씀하셨어.”

“물론이야!… 좋아!… 애들아, 이리 오너라. 우리는 지금 이 아름다운 갈대들을 꺾어서 작은 배들을 만들자. 봐라 이것들이 얼마나 예쁘냐! 그리고 우리는 안에 어부들 대신 이 작은 꽃들을 넣자. 이 꽃들이 희고 붉은 두건을 쓴 머리 같지 않니?… 우리 여기 항구를 만들자. 그리고 여기는… 어부들의 작은 집들이다… 이제는 배를 이 가는 풀로 매고, 너희는 배들을 물에 띄워라. 이렇게… 그리고 너희는 고기잡이를 마친 다음에 이것들을 뭍으로 끌어올려라… 너희는 섬을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암초들을 조심해라, 응!…”

베드로의 참을성은 놀랍다. 그는 주머니칼로 갈대를 두 매듭들 사이를 조각조각 잘라 한쪽을 제거하여 작은 배들을 만들고, 아직 봉오리로 있는 데이지 꽃을 꺾어 넣어 어부들을 만들고, 모래를 파 소인국의 항구를 만들고, 젖어 있는 모래로 작은 집들을 만든다. 그는 성공적으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는 만족하여 주저앉으며 중얼거린다.

“불쌍한 어린 것들!…”

예수께서는 두 아이가 놀이를 시작할 때 섬에 발을 들여놓으신다. 그분께서는 막내아이를 땅에 내려놓으시며 두 아이를 쓰다듬어주신다. 막내아이도 형들의 놀이에 어울린다.

“여기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이제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자.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고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은 자기의 사명에 대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드린 다음, 즉 하느님께 말씀드린 다음 우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들을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만유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자. 일어서서 기도하자.”

그분께서 히브리어로 몇 편의 시편을 노래하시자, 사도들도 그분과 함께 노래한다.

자기들의 작은 배들을 가지고 옆으로 비켜나 있던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 놀이와 새된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것을 중단하고 어른들에게 다가온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모든 것이신 예수께로 자기들의 시선을 고정하고 주의 깊게 듣는다. 그 다음에 그들은 어린이들의 모방정신으로 시편의 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곡조를 흥얼거리며 기도하는 사도들과 같은 자세를 취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죄 없는 작은 목소리들의 콧노래를 격려하는 미소로 그들을 바라보신다. 그들은 그분께서 자신들을 인정해주시고 격려해주신다는 것을 느낀다…

시편들의 노래가 끝난다. 예수께서는 풀 위에 앉아 말씀을 시작하신다.

“이스라엘, 에돔, 유다의 왕들이 모압 왕과 싸우려고 연합하여 엘리사 예언자에게 조언을 청했을 때 그는 왕들의 사자에게 대답했다. ‘만일 내가 유다의 왕 여호사팟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보지도 않았을 거요. 지금 수금을 탈 줄 아는 사람을 데려오시오.’

악사가 연주하는 동안에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예언자에게 말씀하시어 사람들과 가축들이 마실 물이 가득 채워지도록 마른 개울에 도랑 위에 도랑을 파도록 명령하게 하셨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제사시간에 바람이나 비가 없었는데도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개울에 물이 가득 찼다.너희가 보기에 이 삽화의 교훈은 무엇이냐? 말해보아라”

사도들은 서로 의논한다. 어떤 사도들이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불안해하는 마음에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엘리사는 자기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자기 앞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왕을 봄으로써 야기된 분노를 가라앉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한다.

“그것은 정의의 교훈입니다. 엘리사는 죄 없는 유다의 왕을 벌하지 않기 위하여 죄 있는 왕도 구원합니다.”

다른 사도들이 말한다.

“그것은 믿음과 순종의 교훈입니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어리석은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도랑들을 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은 맑고 바람이 없는 날인데도 물을 기다렸습니다.”

“너희의 대답들은 맞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못하다. 하느님께서는 불안해하는 마음에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금들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필요하지 않다. 사랑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랑은 낙원의 곡조들을 가진 영적인 수금이기 때문이다. 한 영혼이 사랑 안에서 살 때 그 마음은 평온하고,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이해한다.”

“그럼 엘리사의 마음이 어지러워진 것을 보면, 그는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았군요.”

“그는 정의의 시대에 살았다. 우리는 옛날의 이야기들을 사랑의 시대로 옮겨오고, 그것들을 천둥과 번개의 빛 안에서 보지 말고, 별들의 빛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너희는 새 시대에 속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왜 그렇게도 자주 옛날 사람들보다 더 화를 잘 내고 불안해하느냐? 과거를 벗어버려라. 비록 유다가 되풀이되는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그것을 너희에게 되풀이한다. 뿌리 뽑고, 가지치고, 접붙이고, 새 나무들을 심어라. 너희 자신들을 새롭게 하고, 겸손, 순종, 믿음의 도랑들을 파라.

그 왕들은 비록 그들 중 두 사람이 유다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느님의 예언자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명령들을 전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메마른 땅에서 갈증으로 죽었을 것이다. 그들은 순종했고, 물은 그들이 파놓은 도랑들을 채웠으며, 그들은 갈증으로 죽는 것으로부터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적들을 이기기도 했다. 나는 생명의 물이다. 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너희의 마음 안에 도랑들을 파라.

그리고 지금은 들어라. 나는 길게 말하지 않겠다. 나는 너희가 묵상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순한 생각들을 주겠다. 너희는 항상 이 어린이들과 같을 것이고, 심지어 이들보다 열등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죄가 없는데 너희는 그렇지 않고, 그래서 만일 너희가 묵상에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영적인 빛이 더 흐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항상 듣지만, 결코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희의 지성은 깨어 있지 않고, 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들어라.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비록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그때가 그 달 초하루나 안식일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예언자에게 가기를 원했다. 그녀는 자기가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어떤 일들은 지체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녀는 그 문제를 영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줄 알았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을 생명으로 회복시켰다. 너희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당신께서 안식일 문제로 저를 꾸짖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유다야, 그렇다면 너는 네가 원할 때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구나? 그러니 정의를 향하여 네 마음을 열어라.”

“예… 그러나 당신께서는 사람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시기 위하여 안식일을 어기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그보다 더한 일을 했다. 나는 그들의 파멸과 죽음을, 그들의 진정한 죽음을 막았다. 그리고 나는 도둑들에게 상기시켰다…”

“오! 당신께서 무언가 좋은 일을 하셨다고 자위하시기 전에 기다리십시오! 저는 그들이 당신께 복종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엘리사도 수넴 여인의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어. ‘주님께서 그것을 나에게 비밀로 해두셨다’고. 그러니 예언자들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

가리옷 사람이 대답한다.

“우리 형제는 예언자보다 더 위대하셔.”

타대오가 지적한다.

“나도 아네. 이분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셔. 그러나 이분께서는 사람이기도 하셔. 그래서 사람으로서 이분께서는 대화와 귀환에 관한 이 문제와 같은 부차적인 일들은 불가피하게 알지 못하실 수도 있어… 선생님, 당신께서는 항상, 정말로 항상 모든 것을 아십니까? 저는 자주 궁금증이 듭니다…”

가리옷 사람이 고집스럽게 주장하며 말한다.

“그런데 너는 무슨 생각으로 그것을 알기를 원하느냐? 평화를 위해서, 조언을 위해서, 아니면 마음을 어지럽히기 위해서냐?”

예수께서 물으신다.

“글쎄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궁금하고…”

“그런데 자네는 궁금해 하면서도 불안해 보이는구먼.”

토마스가 말한다.

“내가? 물론 당혹감은 항상 사람을 어지럽히는 법이지…”

“트집이 많기도 하군! 나는 그렇게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네. 나는 질문하지 않고 믿네. 그리고 나는 무언가에 대하여 당혹스러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도록 해드리세. 저는 이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저희에게 아름다운 비유 하나를 말씀해주십시오. 아이들도 그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한 가지 더 질문하겠다. 이것이다. 너희가 보기에 예언자들의 자녀들의 수프에서 쓴맛을 없애는 밀가루의 의미는 무엇이냐?”

이 질문에 깊은 침묵이 대답한다.

“아니? 너희는 대답할 줄 모르느냐?”

“아마 밀가루가 쓴맛을 흡수했겠지요…”

마태오가 별로 자신 없이 말한다.

“모든 것이, 밀가루도 쓴 맛이었던 모양인데.”

“자기의 하인에게 굴욕감을 주기를 원치 않았던 예언자의 기적으로 인해서요.”

필립보가 제안한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주님께서는 평범한 일에 있어서도 그 예언자의 능력을 빛나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열성당원이 말한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정확한 뜻이 아니다. 예언자들의 생애는 때가 꽉 찼을 때, 즉 내 때 어떠하리라는 것을 예견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내 생활을 상징들과 예표들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침묵이 흐른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요한이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미소 짓는다.

“요한아, 너는 왜 네 생각을 말하지 않느냐? 어떤 사람에게 굴욕감을 줄 의향이 너에게 없으니, 네가 말하는 것은 사랑이 결여된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저는 그것이 이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굶주림과 지혜의 기근의 시대에, 즉 당신께서 오신 이 시대에 모든 나무는 야생상태로 돌아가 사람의 아들들의 독으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쓴 열매들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열매들을 따보아야 소용없었고, 먹으려고 조리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아버지의 관대하심은 선택된 밀가루이신 당신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여러 세기 동안 변질되었던 성경의 두 나무들과 정욕으로 타락한 사람들의 미각들을 당신의 완전으로 회복시켜 모든 음식으로부터 독을 제거하십니다.

이 경우에 밀가루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여 그것을 쓴 수프에 부으시는 분은 아버지시고, 당신께서는 사람들의 양식이 되기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시는 밀가루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제헌 후에는 세상에 쓴맛이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저희의 하느님과의 우정을 재건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이 틀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생각은 틀리지 않다. 그것이 상징이다.”

“오! 자네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생각했나?”

베드로가 놀라서 묻는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몇 분 전에 네가 한 말을 가지고 너희에게 말하겠다. 한번 훌쩍 뛰기만 하면 너희는 고요한 영성의 꽃이 만발해 있는 섬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 뛰어 올라 개울가 즉 세상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서투른 점프를 보고 웃거나 쓸쓸한 작은 섬을 세상보다 선호하는 우리의 단순함을 경멸하는 누군가가 있는지 염려하지 말고 점프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처입거나 물에 젖거나 실망하게 될 것을 겁내지 말고, 점프해야 한다. 너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피해 들어가야 한다.

세상에서 분리된 섬에 남아 있어야 하고, 개울가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나무, 지혜의 나무만이 있는 영혼의 섬에서 딴 꽃들과 맑은 물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만 거기서 나와야 한다. 세상의 소음에서 떠나 그 나무 가까이에 있음으로써 사람은 그 나무의 모든 말을 듣고 자기가 제자인 것을 알면서 선생이 된다. 이것도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이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비유 하나를 이야기하자. 이리로 내 가까이로 오너라.”

세 어린이는 어찌나 가까이 오는지 숫제 그분의 품에 앉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껴안고 말씀을 시작하신다.

“어느 날 주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사람을 만들겠다. 사람은 지상낙원에서 살 것이다. 그곳에서는 큰 강이 있는데, 그 강은 그 후 피손, 기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의 네 물길들로 나누어져서 땅 위에서 흐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피조세계의 모든 아름답고 좋은 것들과 그의 영혼의 기쁨을 위하여 내 사랑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이 섬보다 꽃이 더 만발해 있고, 모든 종류의 나무들과 동물들이 있는 큰 섬에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의 위에는 그의 영혼 위에 해처럼 빛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새들의 노래들보다 더 감미롭게 들리는 그분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섬에,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 가운데로,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되어 독 있는 이빨이 없고, 몸의 구부러지는 부분에 사나움이 없는 모든 것들과는 다른 뱀이 기어 들어왔다. 그 뱀도 다른 뱀들의 가죽처럼 보석들의 빛깔들이 있는 가죽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놈은 다른 뱀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서 낙원의 멋진 나무들 가운데로 꿈틀거리며 나아오는 왕의 거대한 보석처럼 보였다. 그놈은 낙원 가운데 서 있는 나무로 가서 감겼다.

그 나무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아름다운 나무였는데, 다른 나무보다 훨씬 더 크고, 훌륭한 잎들과 열매들로 덮여 있었다. 뱀은 아름다운 나무 둘레에 매달려 있는 아름다운 보석처럼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짐승들이 그놈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놈이 창조되고 있거나 전에 그놈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놈들 중 어떤 놈도 그 뱀에게 다가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뱀이 줄기에 감겨 있는 지금 그놈들 모두가 그 나무에서 멀어져 갔다.

남자와 여자만이 그것에 다가갔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먼저 갔다. 왜냐하면 그녀는 햇빛에 반짝이고 있고, 여전히 반쯤 닫힌 꽃과 같은 대가리를 움직이고 있는 그 빛나는 물건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뱀이 말하고 있는 것을 들었고, 주님께 불순종했으며, 아담도 복종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들은 불순종 후에야 뱀이 무엇인지를 보았고, 자신들의 죄를 깨달았다. 지금은 그들이 그들의 마음의 무죄성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을 찾고 계시는 하느님으로부터 숨었고, 그들에게 묻고 계시는 하느님께 거짓말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낙원의 경계에 몇 명의 천사들을 세우시고, 사람들을 쫓아내셨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에덴동산의 안전한 강가로부터 봄철에 강들이 물이 불었을 때처럼 물이 가득히 찬 땅 위의 강들에 던져진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쫓겨난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들의 영원한 운명의 기억, 즉 그들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사랑을 느꼈던 아름다운 동산으로부터 그들이 하느님을 완전히 누렸을 낙원을 지나온 기억을 남겨주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 기억과 함께 사람들에게 정의의 생활을 통하여 자기들이 잃어버린 곳으로 올라가려는 거룩한 유인도 남겨주셨다.

그러나 나의 소중한 아이들아, 너희는 방금 전에 배가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갈 때는 쉽지만, 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파도들에 휩쓸려가지 않고, 강의 식물, 모래 또는 돌들 사이에서 좌초되지 않고 물 위에 떠 있기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했다. 만일 시몬이 너희 작은 배들을 개울가의 실가지들로 붙잡아매지 않았다면, 자기의 실가지를 놓쳤기 때문에 이사악에게 일어난 일처럼 너희도 배들을 모두 잃었을 것이다.

땅에서 흐르는 물들에 던져진 사람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들은 그들의 뜻을 마치 실가지와 같으신 하늘에 계시는 착한 아버지시며, 모든 사람들, 특히 죄 없는 어린이들의 아버지의 손에 맡겨드리면서 항상 하느님의 손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을 하느님께 결합해 있게 해주는 의지의 끈을 떼어냄으로써 그들의 영혼들의 배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깨뜨리거나 집어삼킬 수 있을 식물들과 골 풀, 돌들, 소용돌이, 진흙 따위를 피하기 위하여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낙원에 있지 않고 지금은 땅 위에 있는 뱀이 진짜로 영혼들을 파선하게 하려고 애쓰고,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기혼, 피손 강을 거슬러 올라가 영원한 낙원 안에서 흐르면서, 영원한 열매들을 맺어 하느님과 그분의 천사들과 결합하기 위하여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갈 줄 안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아무 고통도 영원히 당할 필요가 없이 즐기게 될 생명과 건강의 나무들에 영양을 공급해주는 큰 강(the Great River)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 말하곤 했어요.”

가장 큰 아이가 말한다.

“그래.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막내아이가 혀짤배기소리로 말한다.

“너는 그것을 몰라. 나는 크니까 알 수 있어. 그렇지만 네가 참말이 아닌 것을 말하면, 너는 분명히 낙원에 가지 못해.”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어.”

둘째가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는 우리 엄마의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야.”

“너희의 아버지는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었니?”

알패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네, 저희 아버지는 딴 데서 왔었어요. 그렇지만 엄마는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저희도 사마리아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엄마는 저희도 그분과 같기를 바랐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엄마도 저희한테 낙원과 에덴동산에 대해서 이야기해줬어요. 그렇지만 당신만큼 잘하지는 못했어요. 저는 그 뱀과 죽음이 무서웠어요. 엄마는 뱀을 마귀라고 말하고, 저희 아버지는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버린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혼자 있게 되어서 아주 불행했어요. 그리고 저도 지금은 착해보았자 아무 쓸데없다고 말했었어요. 왜냐하면 저희 아버지와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저희가 착하게 되면 저희는 그분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저희가 착해도 기쁘게 해줄 사람이 없어졌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저는 알아요… 저는 착하게 될 거예요. 저는 제가 세상의 물들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느님의 손에서 제 줄을 없애버리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물을 거슬러 올라갔어, 아니면 물에 떠밀려 내려갔어?”

둘째 아이가 당혹해하며 묻는다.

“아가, 네 말의 뜻이 무엇이냐?”

마태오가 묻는다.

“내 말은 이런 뜻이야. 우리 엄마는 어디 있나? 엄마는 영원한 낙원의 강으로 간 거야?”

“내 아이야, 그렇기를 바라자. 만일 네 엄마가 착했다면…”

“그 여자는 사마리아 여자였는데…”

가리옷 사람이 경멸하며 말한다.

“그럼 우리가 사마리아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천당이 없는 거야? 그럼 우린 하느님도 가지지 못하는 거야? 이분은 그분을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나는 고아로서 아직도 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했는데… 그렇지만 만일 우리에게 아버지가 없다면…”

그 아이는 고개를 숙이며 슬프게 말한다.

“애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다. 네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너를 덜 사랑했니? 나는 너를 두고 노상강도들과 다퉜다. 그리고 나는 너를 두고 마귀와 다툴 것이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만일 예루살렘의 성전의 대사제가 자기의 아들을 구세주가 구해주는 것을 불명예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의 아들을 마귀에게서 구해주겠다. 아니다. 나는 네가 외톨이고 불행하니 너를 두고 더 확실하게 싸울 것이다.

나에게는 유다인의 영혼과 사마리아 사람의 영혼 간에 차이가 없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마리아와 유다 사이의 구별이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그의 이름을 가질 유일한 백성만을 가질 것이고,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아우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런데 당신은 나를 우리 엄마에게 데려다주실 거예요?”

세 아이 중 가장 큰 아이가 묻는다.

“형은 우리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저기 저 사람은 우리는 단지 바랄 수만 있다고 말했어…”

둘째가 말한다.

“나는 몰라. 하지만 주님은 아신다. 그분은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아셨어. 반대로 우리는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잖아.”

“노상강도들하고 있었어… 강도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했어…”

둘째 아들의 작은 얼굴에 다시 공포의 빛이 나타난다.

“그 강도들은 마귀들 같았어. 그렇지만 이분은 우리의 천사들이 그분을 불렀기 때문에 우리를 구해주셨어.”

“천사들이 우리 엄마도 구해줬어. 난 늘 엄마 꿈을 꾸니까 그걸 알아…”

“이사악, 너는 거짓말쟁이야. 넌 우리 엄마의 꿈을 꿀 수 없어. 너는 엄마를 기억하지 못하잖아.”

꼬마는 울면서 말한다.

“아니야, 아니야. 난 엄마 꿈을 꿔. 난 엄마 꿈을 꾼단 말이야…”

“루벤아, 네 동생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지 마라. 네 동생의 영혼은 네 엄마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시는 착한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알도록 해주시는 것처럼 어린 고아에게 엄마에 대하여 꿈꾸고 엄마를 부분적으로 아는 것을 허락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제한된 지식으로부터 기꺼이 그분을 완전히 알고 싶어 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항상 착하게 살면 얻는 것이다.

이제 가자. 우리가 하느님에 대하여 말했으니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냈다.”

그분께서는 일어나 다른 시편들을 노래하기 시작하신다.

합창소리를 듣고 몇 명의 에프라임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시편이 끝나기를 기다려 예수께 인사드린 다음 그분께 말한다.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오시는 것보다 이리로 오시는 것을 선호하셨습니까? 당신께서는 저희를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당신들 중 아무도 나를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사도들과 이 아이들과 함께 이리로 왔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당신의 제자가 저희 의 소원에 대하여 당신께 말씀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과 유다를 바라보신다. 그러자 유다가 대답한다.

“어제 저는 그것을 당신께 말씀드리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아이들이 있어 저는 그것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작은 섬을 떠나 작은 실개천을 지나 에프라임 사람들을 향하여 가신다. 사도들도 그분을 따라가는데, 아이들은 남아 있는 작은 두 척의 갈대배를 푸느라고 지체한다. 베드로가 그들을 재촉하자 그들이 대답한다.

“우리는 그 교훈을 기억하기 위하여 이 배들을 간직하고 싶어요.”

“그럼 나는 어쩌지? 난 내 배를 잃어버렸어. 그러니 나는 기억하지 못할 거야. 그렇게 되면 나는 낙원에 가지 못할 거야.”

막내아이가 울며 말한다.

“기다려라! 울지 마라. 나는 즉시 너에게 작은 배 하나를 만들어주마. 물론 너도 교훈을 기억해야겠지. 아 참! 우리 모두가 이물에 달려 있는 실가지로 작은 배를 하나씩 만들어서 그것을 기억해야 할 거다. 그것은 너희 어린이들보다 어른들인 우리에게 더 필요할 것이다! 그래!”

그러면서 베드로는 실가지 하나를 깎아서 작은 배 하나를 더 만든다. 그 다음에 그는 한꺼번에 세 아이를 품에 안고 실개천을 껑충 뛰어 건너서 예수께로 간다.

“이 아이들입니까?”

에프라임의 말라키가 묻는다.

“예, 이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스켐 사람들입니까?”

“그 목동이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애들의 친척들이 시골에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엾은 어린 것들! 그러나 만일 친척들이 오지 않는다면, 당신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올 것입니다.”

“그 노상강도들… 그들도 오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혹시 그들이 온다 해도… 내가 그들의 것을 빼앗지, 그들이 당신들의 것을 약탈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서 네 명의 희생자들을 빼앗았고, 그들의 영혼들 중 일부를 죄에서 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들 중 몇 사람은 말입니다.”

“저희는 이 아이들에 관하여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신께서는 그것을 저희에게 허락해주십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여러분의 지방 아이들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죄 없는 아이들이기 때문이고, 죄 없는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은 사람을 하느님께로 빨리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죄한 어린이들을 차별하지 않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유다인이나 갈릴래아인은 이 어린 사마리아 아이들을 거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희만을 싫어하지 않고, 사마리아 인이 무엇이고 유다인이 무엇인지를 아직 알지도 못하는 어린이들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잔인한 일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 법을 따를 때는 더 이상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말라키, 보시오. 아이들은 지금 시몬 베드로, 내 형제, 열성당원에게 안겨 있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사마리아인도, 아버지도 아닙니다. 그런데 심지어 당신도 내 제자들이 사마리아의 고아들을 껴안듯이 당신 자신의 아이들을 껴안지 않을 것입니다.

메시아사상은 모든 사람을 사랑 안에서 재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사상의 진리입니다. 땅에서는 메시아의 왕권 아래 오로지 한 백성. 하늘에서는 유일하신 하느님의 눈길 아래 오로지 한 백성.”

그들은 서로 대화하며 야곱의 마리아의 집을 향하여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