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8 수난준비

하사시8권 [553. 베드로에게 사죄의 권한과 왜 성인과 무죄한 사람들이 고통당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하시다]

Skyblue fiat 2026. 2. 5. 02:03

 

553. 베드로에게 사죄의 권한과 왜 성인과 무죄한 사람들이 고통당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하시다

1947. 1. 15.

예수께서는 작은 방안에 혼자 계신다. 그분께서는 작은 침대 위에 앉아 생각하시거나 기도하고 계신다. 작은 기름등잔의 작고 노리끼리한 불꽃이 선반 위에서 깜박이고 있다. 집 안에서도, 길에서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밤인가 보다. 단지 급류가 흐르는 소리만이 집 밖에서 밤의 적막 속에서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고개를 들고 문을 보신다. 그분께서는 귀 기울여 듣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일어나 문을 열어주신다. 그분께서는 밖에 서 있는 베드로를 보신다.

“너냐? 들어오너라. 시몬아, 무슨 일이냐? 먼 길을 가야 하는 네가 아직도 자지 않고 있느냐?”

예수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 안으로 끌어들이시고,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다시 닫으신 다음 침대 가장자리 그분 곁에 앉히신다.

“선생님, 저는 오늘도 당신께서 저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지를 보셨느냐고 당신께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가엾은 어린이들과 놀아주고, 한 노파를 위로하고, 젖이 안 나오는 암양 때문에 서로 다투고 있는 두 명의 목자를 화해시키는 일 따위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지어 당신이 저에게 설명해주시는 것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우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지금 저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신께서는 저를 이곳에 그냥 있게 해주십사고 말씀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저희와 함께 가시지 않을 때는 돌아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잘하지 못합니다… 주님, 저를 만족시켜주십시오.”

베드로는 시선을 방바닥의 투박하고 깨진 벽돌들에 고정시킨 채 간절하게 말한다.

“시몬아, 나를 보아라.”

예수께서 그에게 명하신다. 베드로가 순종하자 예수께서는 그를 유심히 응시하시며 물으신다.

“그것이 전부냐? 그것이 네가 깨어 있는 이유의 전부냐? 그것이 너를 여기 남아 있게 해달라고 청하는 유일한 이유이냐? 시몬아, 솔직해라. 네가 네 선생에게 네 생각의 다른 일부를 말하는 것은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한담과 유익한 말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에게 그들의 잘못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한담이고, 대체로 한가한 가운데서 죄를 많이 짓는다. 그럴 때는 자기가 하는 말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분명히 사랑의 결여일 뿐이다. 다소간 신랄하게 꾸짖으면서 조언을 곁들이지 않는 것이 사랑의 결여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나는 옳은 비난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비난들은 부당하고, 그래서 그것들은 우리 이웃을 거스르는 죄이다. 그러나 자기의 이웃이 죄짓는 것을 보고 그가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고 그 자신의 영혼을 해치는 것을 괴로워하고, 자기는 누군가의 죄의 중대성을 평가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 사람을 회개시킬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자기가 충분히 지혜롭지 못하다고 느껴서 의인이나 현인을 찾아가 자기의 염려를 털어놓을 때 그는 죄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추문을 끝내고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수치스러운 병에 걸린 친척을 가진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그 병을 사람들에게 숨기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밀리에 의사를 찾아가 말할 것이다. ‘제 친척은 이러저러하게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에게 어떻게 조언해야 할지, 그를 어떻게 고쳐주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직접 와주시거나 아니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그런 경우에 그가 자기 친척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냐? 아니다. 그 반대다! 만일 그가 잘못된 신중함과 사랑으로 그 병을 못 본 체함으로써 병이 진행되어 죽음을 야기했다면, 그에게 사랑이 없는 것이다.

어느 날―그런데 그 날은 멀지 않을 것이다―너와 네 동료들은 사람들의 마음의 비밀들을 들어야 할 것이다. 너희가 지금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것처럼 사람들로서 듣는 것이 아니라 사제들로서, 즉 내가 의사, 선생, 목자인 것처럼 너희도 영혼의 의사들, 선생들, 목자들로서 들어야 할 것이다. 너희는 듣고, 결정하고, 조언해야 할 것이다. 너희의 판단은 마치 하느님께서 직접 그것을 선고하신 것과 똑같은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를 그분 가까이에 붙들고 계시는 예수에게서 벗어나 일어서며 말한다.

“주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일을 저희에게 맡기지 마십시오. 저희는 사람들처럼 판단할 줄도 모르는데, 당신께서는 어떻게 저희가 하느님처럼 판결하기를 바라실 수 있습니까?”

“그때 너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성령께서 너희 위를 맴도시며 그분의 빛으로 너희를 관통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사람들이 너희의 조언을 듣거나 용서받기 위하여 너희에게 내보일 사실들의 일곱 가지 조건들을 고려하여 판단할 줄 알게 될 것이다.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고, 힘써 기억해라. 때가 되면 하느님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 말을 생각나게 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네 자신의 지성으로 힘써 기억해라. 하느님께서 너에게 지성을 주시어 네가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바라고 주장하도록 너를 이끄는 게으름과 정신적인 주제넘음 없이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네가 내 대신 내 위치에서 선생, 의사, 목자가 되었을 때, 그래서 신자가 네 발 앞에 와서 그 자신의 행위나 남의 행위에 의하여 야기된 그의 마음의 혼란을 하소연한다면, 너는 항상 다음 일곱 가지 질문들에 유의해야 한다.

누가: 누가 죄지었는가?

무엇을: 죄의 내용은 무엇인가?

어디서: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무엇으로 또는 누구와: 죄의 재료였던 도구나 사람은?

왜: 죄짓기에 적합한 환경을 야기한 유인은 무엇인가?

언제: 어떤 조건들과 반응들 하에서, 그리고 우발적이었는가, 아니면 불건전한 습관으로 인한 것이었는가?

왜냐하면 시몬아, 보아라. 같은 죄라도 그것을 야기한 모든 상황과 그것을 저지른 사람들에 따라 무한히 많은 뉘앙스와 정도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장 흔한 죄인 육욕의 죄와 재물에 대한 탐욕의 죄를 고찰해보자.

누군가가 음행의 죄를 지었거나, 자기가 그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때때로 유혹을 죄와 혼동하거나 불건전한 욕망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야기된 자극들과 고통스러운 질병의 결과인 생각들도 같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때때로 살과 피가 내적으로 갑작스러운 목소리들을 울려 퍼지게 하여 생각이 미처 그것들을 경계하고, 그것들을 억제하기 전에 그것들이 생각 안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너에게 와서 ‘저는 음행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한다면, 만일 네가 불완전한 사제라면, ‘너는 저주받을 것이다’ 하고 너는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베드로야,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너는 예수의 베드로이고, 자비의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단죄하기 전에 네 앞에서 우는 마음을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어루만져서 죄, 상상의 죄, 양심의 가책의 모든 면을 확인해야 한다.

나는 친절하고 조심스럽게라고 말했다. 너는 네가 선생과 목자일 뿐만 아니라 의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의사는 상처를 덧나게 하지 않는다. 만일 괴저가 있다면, 그는 그것을 잘라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개된 조직을 제거하지 않고 봉합해야 할 때는 날렵한 손으로 그 환부를 덮고 처치할 줄을 안다.

너는 네가 의사이자 목자일 뿐만 아니라 선생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선생은 자기 학생들의 나이에 따라 자기의 말을 조절한다. 만일 죄 없는 어린이들이 모르는 동물의 법칙들을 어린이들에게 알려주어 그들에게 나쁜 지식을 가르쳐 그들을 조숙하게 만드는 교사가 있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영혼들을 다룰 때 신중하게 질문해야 한다. 너는 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만일 네가 모든 영혼을 네 자녀들로 본다면, 그것은 쉬울 것이다. 아버지는 원래 자기 자녀들의 선생, 의사, 인도자이다. 그러므로 죄로 인하여, 죄지었다는 두려움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너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랑해라. 그러면 너는 아무도 상처 입히거나 분개하게하지 않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내 말을 알아듣느냐?”

“예, 선생님, 저는 당신의 말씀을 아주 잘 이해했습니다. 저는 신중하고 참을성 있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상처들을 드러내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상처들에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고 몸소 그 상처들을 살펴보아야 하고, 제가 실제로 상처가 있는 것을 보는 경우에만 ‘너는 알겠느냐? 너는 이러저러하게 함으로써 너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그 사람이 잘못된 상상으로 상처 입었다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에는… 죄의 진정한 근원들을 비출 수 있는 빛을 줄 수 있는 쓸데없는 열성이나 설명을 열심히 해주지 말고, 그 망상을 불어 없애버려야 합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그렇다, 너는 아주 잘 말했다. 그렇다. 만일 누군가가 너에게 ‘저는 음행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한다면, 너는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죄가 모든 연령층에서도 저질러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이들에게서보다는 어른들에게서 더 쉽게 발견될 수 있다.

따라서 어른이냐 소년이냐에 따라 질문들과 답변들이 다를 것이다. 결과적으로 최초의 질문 다음에 죄의 재료에 관한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죄 지은 장소에 대한 세 번째 질문, 상황에 대한 네 번째 질문, 죄의 공범자에 대한 다섯 번째 질문, 죄의 원인들에 대한 여섯 번째 질문, 죄지은 시간과 죄의 수에 대한 일곱째 질문이 이어진다.

너는 대체로 세상에서 사는 어른들의 경우에는 진짜 죄의 상황이 각 질문에 대응하여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반면 나이로나 영적으로 어린이들인 경우에 너는 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여기에는 죄의 두려움이 있는 것이지, 진짜 죄는 없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아니 때로 너는 더러움 대신 흙탕물이 튀었다는 두려움으로 떨고, 그래서 그 꽃받침 속에 내려온 한 방울의 이슬을 흙탕물이 튄 것으로 오인하는 백합꽃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늘나라를 너무 갈망하는 나머지 그들과 태양 사이에 가로질러 있어서 그들에게 잠시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그러고 나서 그 깨끗한 꽃부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도 오점이라고 생각하고 염려하는 영혼들이다.

그들은 참으로 죄 없고 죄 없는 채로 남아 있기를 열망하는 영혼들이어서 사탄이 그들을 상상의 유혹들로 놀라게 하거나, 육체의 자극들을 도발하거나 육체의 진짜 질병들을 이용하여 육체 자체를 자극함으로써 놀라게 한다.

그 영혼들은 죄인들이 아니라 순교자들이기 때문에 위로받고 지지받아야 한다. 항상 그것에 유의해라.

또한 다른 사람들의 부나 재산에 대하여 탐욕으로 죄 짓는 사람들을 똑같은 방법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라. 왜냐하면 만일 궁핍하지 않은데도 탐욕스럽고 무자비하게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강탈하고, 시민들, 하인들 또는 민족들을 핍박하여 정의를 거슬러 행동하는 것은 저주받은 죄이지만, 이웃들에게 빵을 얻지 못하여 자기 자녀들과 자기 자신의 허기를 달래기 위하여 약간의 빵을 훔치는 사람의 죄는 훨씬 덜 중하다.

음란한 사람이나 도둑의 죄를 판단할 때에도 그 죄의 수, 상황, 그리고 중대성이 감안되어야 하고, 그가 죄짓고 있을 때 그 죄인이 그 죄에 대하여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고려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완전히 알고서 행동하는 사람은 무지로 인하여 행동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중대한 죄를 짓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의지의 자유로운 동의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죄짓도록 강요받은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짓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하는데, 외관상 죄로 보이지만 사실은 순교이고, 그래서 순교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을 받을 행위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경우에 단죄하기 전에, 너는 너도 한 사람이었다는 것과 아무도 그에게서 죄를 발견할 수 없었던 네 선생이 지은 죄를 뉘우치는 사람을 아무도 결코 단죄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네 형제들과 네 자녀들의 죄를 일곱 번씩 일흔 번, 그리고 심지어 일흔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라. 왜냐하면 어떤 병자가 다시 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구원의 문들을 닫는 것은 그를 죽이기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알아들었느냐?”

“예, 저는 알아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아주 분명하게 알아들었습니다…”

“좋다, 그럼 네가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말해라.”

“예! 저는 당신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유다는 자기가 가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하기 때문에 만일 제가 저를 대신하여 돌아다니도록 유다를 보내달라고 당신께 말씀드린다 해도, 당신께서는 제가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가 질투한다거나 제가 화났다는 것을 당신께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평화를 주고… 당신께도 평화를 드리기 위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그런 폭풍을 줄곧 당신 가까이에 두시는 것은 참으로 성가신 일일 테니까요.”

“유다가 다시 불평했느냐?”

“글쎄요! 그는 불평했습니다! 그는 당신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씀이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말했습니다. 당신께서 아이들에게 말씀하셨던 것도요. 그는 당신께서 하와가 왕관처럼 빛나는 그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가 그 나무에 갔다고 말씀하셨을 때 당신께서는 자기를 두고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저는 거기 어떤 암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식합니다. 반대로 바르톨로메오와 열성당원은 유다가 빛나는 것과 허영심을 자극하는 모든 것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가장 아픈 데가 건드려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혜로우니 그들의 말이 옳을 것입니다.

선생님, 당신의 불쌍한 사도들에게 선심을 베풀어주십시오! 유다를 기쁘게 해주시고, 그와 함께 저도 기쁘게 해주십시오. 어쨌든요! 당신께서도 아시지요? 저는 그저 아이들이나 즐겁게 해줄 줄 알고… 선생님의 품안에서 아이가 될 줄이나 압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온 힘을 기울여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자기의 예수께로 바짝 다가앉는다.

“안 된다. 나는 너를 기쁘게 해줄 수 없다. 고집부리지 마라. 너는 바로 네가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전도하러 가야 하고, 그는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 남아 있어야 한다. 내 형제도 그것을 나에게 언급했었다. 그런데 내가 내 사촌을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안 된다고 대답했다. 설혹 내 어머니께서 부탁하신다 해도, 나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벌이 아니라 약이다. 유다는 그 약을 먹어야 한다. 혹시 그것이 그의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내 영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그를 성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소홀히 했다고 나 자신을 비난하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엄격하시고, 권위적이시다.

베드로는 두 팔을 떨어뜨리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다.

“시몬아, 그것에 대하여 염려하지 마라.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고, 서로 사랑할 것이다. 너에게는 나에게 말할 것이 더 있었지…”

“선생님, 시간이 늦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주무셔야 합니다.”

“시몬아, 너는 나보다 더 쉬어야 한다. 너는 새벽에 길을 떠나야 하니 말이다.”

“오! 저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침대에 있는 것보다 당신과 여기 함께 여기 머물러 있는 것이 더 휴식이 됩니다.”

“그럼 말해라. 너는 내가 잠이 적다는 것을 안다…”

“예! 저는 돌대가리입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부끄럼 없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저에게 달린 것이라면, 저는 아주 유식해지려고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가장 큰 지혜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따르고, 당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당신께서는 저를 이리저리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에게 질문들을 해대고, 저는 그 질문들에 답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당신께 여쭙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생각들은 엇비슷하니까요.

어제 당신께서는 죄 없는 사람들과 성인들은 항상 고통당할 것이라고, 아니 그들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고통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당신께서 그들 스스로가 그것을 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것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제가 알아듣기 힘드니 다른 사람들도 알아듣기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들이 저에게 질문한다면, 저는 그들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이번의 첫 여행 중에 한 어머니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제 어린 딸은 착하고 죄가 없었는데, 그 애가 그렇게 심하게 고통당하면서 죽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빼앗아가셨으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시기를’이라는 욥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고, 그녀를 설득하지도 못했습니다. 다음번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제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질문이다. 들어보아라. 가장 착한 사람들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고통당하는 것은 불의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위대한 정의이다. 자, 시몬아, 나에게 말해라. 땅(the Earth)이란 무엇이냐? 이 땅 전체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이 땅이오? 먼지와 물, 바위들, 나무들, 동물들, 그리고 인간들로 이루어진 큰, 매우 큰 공간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그게 전부입니다… 만일 당신께서 그것이 사람이 벌 받고 귀양살이하는 곳이라고 제가 말하는 것을 바라시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시몬아, 땅은 하나의 제단이다. 거대한 제단이다. 땅은 그 창조주께 영속적인 영광을 드리는 제단이어야 했다. 그러나 땅은 죄악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땅은 그 위에서 희생제물들이 불살라지는 끝없는 속죄와 희생의 제단이 되어야 한다. 땅은 우주에 널려 있는 다른 세상들처럼 그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시편들을 노래해야 할 것이다. 보아라!”

예수께서는 목제 창들을 여신다. 그러자 활짝 열린 넓은 창으로 밤의 서늘한 기운과 개울물의 졸졸거리는 소리와 달빛이 들어오고, 별들이 흩뿌려진 하늘이 보인다.

“저 별들을 보아라! 그들은 창공의 무한한 공간 안에서 빛과 움직임인 그들의 목소리로 하느님께 찬미가들을 노래하고 있다. 그들의 노래는 수백만 년 동안 하늘의 푸른 들판들로부터 하느님의 하늘까지 계속 올라간다. 우리는 항성들, 행성들, 혜성들을 별인 사람들로 상상하여 사제별들, 레위인 별들, 동정녀별들, 평신도별들처럼 무한한 성전에서 창조주께 찬미가들을 노래하고 있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

시몬아, 들어보아라. 나뭇잎들 사이로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소리와 밤의 물소리를 들어보아라. 땅도 하늘처럼 바람들, 물, 새들과 짐승들의 목소리들로 노래 부른다.

그러나 창공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별들의 빛나는 찬미는 창공에는 충분하지만, 바람들, 물들, 짐승들의 노래는 땅인 성전에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땅에는 무의식적으로 하느님께 찬미가들을 노래하고 있는 바람들, 물들, 짐승들만이 아니라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동물들, 광물들, 식물들처럼 물질을 가지고 있고, 하늘의 천사들처럼 영혼을 가지고 있어 시간 안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모든 존재들보다 뛰어난 완전한 피조물이다. 만일 그가 시련 중에서 충실하다면, 처음에는 은총으로, 나중에는 천사들처럼 천국에서 하느님을 알고, 소유하게 되어 있다. 모든 본성들(natures)을 포함하고 있는 종합체(synthesis)인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사명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그에게 의무일 뿐 아니라 기쁨이기도 해야 할 터인데, 그 사명이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명 외에도 하늘을 주신 사랑에 대하여 그분께 갚아드리기 위하여 지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지적인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시몬아, 이것을 숙고해보아라.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에게서 무슨 유익을 얻으시느냐? 그분께서는 무슨 이익을 취하시느냐? 그분께서는 아무 이득도 얻지 않으신다. 피조물은 하느님을 더 크게 하지 못하고, 그분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고, 그분을 부유하게 해드리지 못한다. 그분께서는 무한하시다. 피조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해도 그분께서는 그러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느님(God-Love)께서는 사랑을 가지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사랑을 가지기 위하여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사랑만을 피조물에게서 얻으실 수 있을 뿐이시며, 그 사랑은 천사들과 사람들 안에서만 있는 지성적이고 자유로운 것인데,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이고, 천사들의 기쁨이고, 사람들의 종교이다.

땅의 큰 제단이 찬미와 사랑의 간구를 그치는 날에 땅은 존재하기를 멈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이 꺼지면 속죄도 끝날 것이고, 하느님의 진노는 지상의 지옥이 되어버린 땅을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이 존재하려면, 그것은 사랑해야 한다.

또한 땅은 사람들이 지성을 가지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성전이어야 한다. 그런데 성전에서 항상 어떠한 제물들이 바쳐지느냐? 깨끗하고, 티 없고, 흠 없는 제물들이다. 그런 제물들만이 주님께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제물들이다. 그것들은 이른 열매들이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들이 가족의 아버지에게 드려져야 하고, 만물의 이른 열매들과 정선된 것들이 인류가족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드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땅이 두 가지 희생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찬미의 의무와 속죄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땅 전체에 퍼져 있는 인류는 최초의 사람들 안에서 죄지었고, 하느님을 멀리한 죄에 세상과 육신과 사탄의 목소리들에 대하여 동의하여 셀 수 없는 다른 죄들을 더함으로써 끊임없이 죄짓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고, 그 자신의 지성과 하느님의 도우심을 가지고 으면서도 죄 있는 인류, 아주 죄 많은 인류는 점점 더 죄를 짓는다. 별들도 순종하고, 식물들도 순종하고, 광물들도 순종하고, 동물들도 순종하며, 그것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찬미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충분히 순종하지 않고, 주님을 충분히 찬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사랑하고 속죄하는 희생자 영혼들(victim-souls)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알지 못한 채 죄밖에 지을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쓰라린 고통의 벌의 대가를 지불하는 죄 없는 어린이들이다. 그들은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들을 희생하는 성인들이다.

머지않아ㅡ영원에 비하면, 1년이나 1세기도 항상 짧은 시간이다ㅡ더 이상 땅의 큰 성전의 제단 위에서 희생들이 바쳐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영원한 희생, 완전한 희생과 함께 희생들, 사람들의 희생들은 바쳐지지 않을 것이다.

시몬아, 어지러워하지 마라. 나는 내가 몰록, 바알, 아스타롯에 대한 예배의식들과 같은 예배의식을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자신들이 우리를 제물로 바칠 것이다. 너는 알아듣겠느냐?

그들은 우리를 제물로 바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속죄하고, 사랑하기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직면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는 날들이 올 것이다. 그러나 항상 사랑이 영속적인 제물 안에서 큰 제물(the Great Victim)과 함께 불사를 깨끗한 제물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진실로 그 제물들이 미래의 날들과 미래의 성전의 제물들일 것이다. 더 이상 어린양들, 숫염소들, 송아지들, 비둘기들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의 제물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다윗은 그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새로운 시대, 영과 사랑의 시대에는 그 제물만이 합당한 제물일 것이다.

시몬아, 하느님께서 큰 죄(the great Sin)와 사람들의 수많은 죄들에 대한 하느님의 정의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육화되어야 하셨으니, 진리의 시대에는 사람들의 영의 제물들만이 주님을 진정시켜드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라.

너는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극히 높으신 그분께서 짐승들의 새끼들과 식물들의 열매들을 그분께 제물로 바치라고 사람들에게 명하셨을까?’ 내가 너에게 말해주겠다. 왜냐하면 내가 오기 전에 사람은 얼룩진 희생이었고, 하느님의 사랑(Love)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사랑이 알려질 것이다. 내가 사람에게 은총을 돌려줄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은총을 통하여 사랑을 알게 될 것이고, 자기의 무기력 증상에서 나올 것이고, 기억할 것이고, 이해할 것이고, 살 것이며, 자기의 선생이고 구속자인 하느님의 어린양을 모범으로 삼아 사랑과 속죄의 희생이 되어 염소와 어린양들을 대체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벌이었던 고통이 완전한 사랑으로 변할 것이고, 완전한 사랑으로 고통을 포옹하는 사람들은 복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이들은…”

“너는 아직 자신들을 바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너는 하느님께서 언제 그들 안에서 말씀하시는지 아느냐? 하느님의 언어는 영적이다. 영혼은 그 언어를 이해하는데,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아니 나는 어린이의 영혼은 악의가 없기 때문에 하느님을 이해하는 능력에 있어 늙은 죄인의 영혼보다 더 어른스럽다고 너에게 말하겠다.

시몬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데, 너는 많은 어린이들이 어른들, 심지어 너 자신에게 영웅적인 사랑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을 볼 만큼 오래 살 것이다.

그러나 자연적인 이유들로 죽는 어린이들은 생명의 책들에, 하늘나라에서 복된 영혼들만이 읽을 책에 쓰인 지혜의 일부이기에, 하느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드높은 사랑의 동기들로 직접적으로 활동하신다. 나는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만, 사실 하느님을 알 뿐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도 알려면, 그분을 쳐다보기만 하면 충분할 것이다.

시몬아, 달이 졌구나. 새벽이 되어 가는데, 너는 자지 못했구나…”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선생님. 저는 몇 시간 동안 잠자지 못했지만, 아주 많은 지혜를 얻었고, 당신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지금 저는 가겠습니다. 자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미 문에 있다. 그는 나가려고 하다가 문득 생각이 떠오르는지 걸음을 멈추고 말한다.

“선생님, 질문 하나가 더 있습니다. 제가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고통은 벌이 아니라 하나의… 은총이라고, 우리들의 사명과 같은… 그 무엇이고, 비록 힘들지라도 아름다운 것이고, 설혹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쾌하고 슬픈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해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까?”

“그렇다, 시몬아, 그렇게 말해도 된다. 그것은 진리이다. 고통을 받아들여 그것을 올바르게 쓸 줄 알 때 그것은 벌이 아니다.

시몬아, 고통은 사제직과 유사하다. 그것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사제직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제직이다. 그것은 큰 공로이다. 죄와 동시에 태어난 고통은 정의(Justice)를 진정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증오가 고통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낸 것도 선한 목적들을 위하여 사용하실 수 있다. 나는 죄를 없애기 위하여 다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것보다 더 훌륭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