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8 수난준비

하사시8권 [556. 바위를 뚫는 물방울의 비유]

Skyblue fiat 2026. 2. 3. 17:42

 

556. 바위를 뚫는 물방울의 비유

1947. 1. 21.

예수께서는 한적한 길을 걸어가고 계신다. 아이들의 친척들이 그분보다 앞장서 가고, 스켐 사람들은 그분과 함께 간다. 그들은 황야 지대에 있다. 어떤 도시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귀들을 타고 가는데, 그 애들의 친척들이 고삐를 잡고 가며 아이들을 지켜본다.

스켐 사람들은 예수 곁에 있으려고 걸어서 가는 편을 택했기 때문에 아무도 태우지 않은 나귀들은 사람들보다 앞서 떼 지어 가며, 새 풀로 덮여 있는 개울가 사이로 쾌청한 날씨에 짐도 싣지 않고 마구간으로 돌아가는 기쁨으로 이따금씩 운다. 그놈들은 가끔씩 새 풀 속으로 주둥이를 박고 한 입씩 뜯어먹고는 즐거운 걸음으로 사람들을 태우고 가고 있는 그놈들의 동무들과 합류한다. 그것을 보고 아이들이 웃는다.

예수께서는 스켐 사람들과 말씀하시거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계신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 것을 눈에 띄게 자랑스러워하며 기쁘다 못해 꿈에 부풀어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북쪽으로 가고 있는 여행자들의 왼편에 있는 높은 산들을 가리키며 예수께 말씀드린다.

“보십시오. 에발 산과 그리짐 산은 평판이 나쁩니다. 그러나 적어도 당신에 관한 한 저 산들은 시온 산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께서 저 산들을 당신의 거처로 선택하심으로써 그것을 원하신다면, 그것들은 완전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시온은 항상 여부스족들의 소굴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이 다윗에게 적대적이었던 것보다 훨씬 더 당신께 적대적입니다. 다윗은 폭력을 써서 그 성채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폭력을 쓰지 않으시니 결코 그곳을 통치하시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 저희 가운데 머무르십시오. 그러면 저희는 당신을 공경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나에게 말하시오. 만일 내가 당신들을 폭력으로 정복하려고 했다면, 당신들은 나를 사랑했겠소?”

“진정으로는… 사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온전히 사랑이시기에 저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럼 내가 당신들의 마음 안에서 다스리는 것은 사랑으로 인해서요?”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그것은 저희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오.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소. 그러나 당신들 모두는 거래에 있어 수완이 좋으니 나에게 말해보시오. 당신들이 팔거나 사거나 이익을 얻기를 원할 때 당신들은 특정 지역들에서 사람들이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심하시오? 아니면 당신들은 당신들이 벌어들인 돈이 당신들에게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나 당신들의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사랑이 결여되어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잘 사고 잘 파는 데만 주의를 기울이며 한결같이 사업을 영위하시오?”

“저희는 오로지 좋은 거래에만 신경 씁니다. 그 거래에 저희와 거래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 해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거래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의 관계는 없습니다. 오로지 이득만 남아 있습니다.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나도 똑같이 합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익들을 돌보기 위하여 왔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만을 돌보아야 합니다. 만일 내가 그것들을 돌보는 곳에서 사랑이나 경멸이나 냉혹함을 만난다 해도, 그것은 나를 흔들지 못합니다. 어떤 상업도시에서도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얻으며 사거나 팔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오로지 한 사람과만 거래하여 이익을 많이 남긴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여행은 무익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다시 가고, 또 다시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최초에 한 사람에게서밖에 얻지 못한 것을 여러분은 두 번째에는 세 사람에게서, 네 번째에는 일곱 사람에게서, 그 후에는 수십 명에게서 얻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도 하늘을 얻는 일에 있어 당신들이 당신들의 사업을 위하여 하는 것처럼 합니다. 나는 집요하고, 끈기 있고, 수적으로 아주 적든, 많든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단 한 사람의 영혼도 큰 것이고, 내 일을 통하여 얻은 큰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딘가에 가서 사람(the Man)의 반응일 수 있는 것을 극복할 때마다, 영혼의 왕으로서 단 한 신민만을 얻을 수 있다 해도 나는 내가 거기 간 것이 무익했다거나, 내가 헛되이 고통당했다거나, 일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업신여김, 모욕들, 비난들이 거룩하고, 사랑스럽고,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만일 내가 화강암 요새들의 장애물들 앞에서 멈춘다면, 나는 훌륭한 정복자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 그들을 이기시려면, 장구한 세월이 필요할 것입니다. 당신은… 사람이시니 그토록 장구한 세월 동안 사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 곳에서 왜 당신의 시간을 낭비하십니까?”

“나는 훨씬 짧은 기간 동안 살 것입니다. 아니 나는 곧 더 이상 당신들 가운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시작되는 날들과 끝나는 날들의 이정표들과 같은 새벽들과 일몰들을 보지 못할 것이고, 그것들을 피조세계의 아름다움들로만 관조할 것이고, 그것들을 만드신 창조주시며 내 아버지이신 분을 찬미할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나무들에 꽃이 피는 것과 곡식이 여무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살아 있기 위하여 땅의 열매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나라에 돌아가 사랑을 먹고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사람들의 마음들 안에 닫혀 있는 수많은 요새들을 파괴할 것입니다.

산비탈의 샘 아래 있는 저 위의 저 돌을 보시오. 샘은 물이 매우 적어서 나는 물이 흐르지 않고, 방울방울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방울은 산비탈에 돌출한 저 돌 위에 장구한 세월 동안 떨어지고 있습니다. 저 돌은 매우 단단한 돌입니다. 그것은 부서지기 쉬운 석회암도 아니고, 부드러운 설화석고도 아니고, 매우 단단한 현무암입니다.

그런데도 볼록한 바위의 한가운데에 그 모양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수련의 꽃받침보다 더 넓지도 않지만, 푸른 하늘을 반사하고 새들의 목을 축이는 데는 충분한 작은 수면이 만들어져 있는지 보시오. 혹시 사람이 저 검은 바위 위에 푸른 보석을 올려놓고 새들을 상쾌하게 해줄 물 컵을 팠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은 그 일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물방울이 끊임없이 리드미컬하게 저 바위에 대하여 침식 작용을 하는 수많은 세기들 동안 사람들이 이 바위 앞을 지나갔을 테지만, 아마 우리는 그 중심에 터키석 빛 액체가 들어 있는 이 검은 현무암을 보고, 우리 눈과 이 근처에서 사는 새들에게 갈증을 풀어주기를 원하셨던 영원하신 아버지를 찬미한 최초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나에게 말해보시오. 혹시 저 바위 위의 현무암 돌출바위 아래서 새어나온 최초의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하늘, 태양, 구름들, 별들을 반사하는 컵을 팠을까요? 아니지요. 수백만, 수천만의 물방울들이 하나씩 하나씩 연이어 저 위 갈라진 틈으로부터 새어 나와 반짝이면서 저 바위 위에 떨어져 하프 소리를 내면서 죽어가서, 저 단단한 바위에 잴 수 없을 만큼 미세한 깊이를 만들어놓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래시계처럼 시간을 표시하며, 한 시간에 수많은 방울들, 새벽과 일몰 사이에 수많은 방울들, 밤과 일출 사이에 수많은 방울들, 하루에 수많은 방울들, 안식일에서 다음 안식일까지 수많은 방울들, 새달에서 새달까지 수많은 방울들, 한 니산 달에서 다음 니산 달까지 수많은 방울들, 한 세기에서 다음 세기까지 수많은 방울들이 떨어졌소. 바위는 저항했고, 물방울은 꾸준했소.

교만하고, 그래서 참을성이 없고, 게으른 사람은 처음 몇 번 망치질한 다음에 나무망치를 집어던지며 ‘이건 팔 수 없다’ 하고 말했을 것이오. 그러나 물방울은 이것을 팠소. 그것은 물방울이 할 일이었소. 그것은 이 일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오. 물방울은 한 방울씩, 한 방울씩 시대들을 통하여 신음했고, 그리하여 바위에 구멍을 내기에 이르렀소. 그러고 나서 그것은 ‘이제 내가 파놓은 컵에 하늘이 이슬들과 비, 서리와 눈으로 물을 채울 것이다’ 하고 말하면서 중단하지 않았소.

물방울은 계속 떨어져 자기 혼자서 무더운 여름의 몇 개월 동안에, 겨울의 엄동설한에 이 작은 컵에 물을 채워놓소. 그 동안 장대비나 가는 비가 수면을 주름지게 하지만, 저것이 이미 가득 차 있고, 유익하고, 아름다우니 저것을 더 아름답게 하거나, 더 넓게 하거나, 더 깊게 할 수 없소.

샘은 그 딸들인 물방울들이 떠나가서 작은 수반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나 그것은 그것들을 붙잡아두지 않소. 오히려 그것은 물방울들을 그들의 희생을 향하도록 독려하고, 홀로 남아 슬퍼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그들 다음에 새로운 자매들을 보내어 죽어가는 물방울들이 외롭지 않고, 자신들이 다른 물방울들을 통하여 영속된다는 것을 보게 하오.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단단해진 마음들의 요새들을 수천 번 치는 최초의 사람이 된 다음에 내가 시간의 끝까지 보낼 내 후계자들 안에서 영속되면서 그 마음들 안으로의 길을 열 것이고, 내 법은 해처럼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들어갈 것이오.

만일 그들이 빛(the Light)을 거절하고, 불굴의 노력으로 열어놓은 길들을 막아버린다면, 내 후계자들과 나는 우리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잘못이 없을 거요. 만일 그 샘이 그 바위의 단단함을 보고 다른 경로를 따라갔다면, 그래서 더 멀리 있는 풀로 덮여 있는 땅에 떨어졌다면, 우리가 저 반짝이는 보석을 가졌을 것인지, 새들이 저 맑은 피로회복제를 얻을 수 있었겠는지 나에게 말해보시오.”

“아닙니다. 저것은 심지어 보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

“기껏해야… 여름에는 좀 더 우거진 풀이 샘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지점을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계속 습기가 차 있으면 뿌리들이 썩으니 다른 곳보다 풀이 덜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흙이 있을 거고요. 다른 어떤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쓸데없는 물방울들이겠지요.”

“당신들의 말이 맞소. 무익하거나 적어도 무가치했을 것이오. 만일 내가 나를 정의로나 동정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들이 있는 곳들만을 선호한다면, 나도 불완전한 일을 성취하게 될 것이오. 왜냐하면 나는 일은 하겠지만, 아무런 수고 없이, 아니 의무와 쾌락 사이에서 남의 말을 따르는 타협으로 내 자아의 큰 만족을 얻기까지 하며 일할 것이기 때문이오.

사랑에 둘러싸이고, 사랑이 영혼들을 일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곳에서 일하는 것은 수고스럽지 않소. 그러나 만일 피로가 없다면 공로도 없고, 이미 의덕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자신을 제한한다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얻어질 것이므로 많은 이익을 얻을 수도 없소. 만일 내가 모든 사람들을 먼저 진리로, 그 다음에는 은총으로 구속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아닐 것이오.”

“그런데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그 일을 성공하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이미 당신의 원수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해 오셨던 것에 더하여 다른 무엇을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만일 심지어 베타니아 사람의 부활도 유다인들로 하여금 당신께서 하느님의 메시아라고 말하도록 이바지하지 못했다면, 당신께서는 무엇을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여전히 해야 할 더 큰 것,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가지고 있소.”

“언제입니까, 주님?”

“니산 달이 만월이 될 때요. 그때 조심하시오.”

“하늘에 표징이 있을까요? 당신께서 태어나셨을 때 하늘이 빛들, 노래들, 특이한 별들로 그것을 알게 했다고 사람들은 말하는데요.”

“그것은 사실이오. 사람들에게 빛(the Light)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소. 그때 니산 달에는 하늘과 땅에 표징들이 있을 것이고, 어둠과 흔들림과 하늘에서의 천둥의 포효와 땅의 열린 배속의 지진들로 인하여 그것은 세상의 끝처럼 보일 거요.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닐 것이오. 반대로 그것은 시작일 것이오.

전에 내가 왔을 때 하늘은 사람들을 위하여 구세주를 낳았소. 그런데 그것은 하느님의 행위였기 때문에, 평화가 그 사건의 동반자였소. 그런데 니산 달에는 땅(the Earth)이 자기의 자유의지로 자기 자신을 위하여 구속자를 낳을 터인데, 그것은 사람들의 행위일 것이므로 평화가 그것에 동반하지 않을 것이오. 오히려 소름끼치는 경련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세기와 지옥의 시간의 공포 중에 땅은 하느님의 진노의 불타는 화살들 아래에서 그 가슴을 찢을 것이며, 그것의 뜻을 부르짖을 터인데, 너무 취하여 그것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너무 강하게 사탄에게 붙잡혀 그것을 멈추지 못할 것이오.

땅은 해산하는 미친 여자처럼 저주받았다고 믿은 열매를 자기가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통과 덫들이 그 열매를 미치지 못할 곳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오. 그때 나무, 새 나무가 영원히 온 땅 위에 가지들을 뻗을 것이고, 당신들에게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으로 혹은 증오로 하느님의 참된 아들과 주님의 메시아로 인정받을 것이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에게로 돌이키지도 않은 채 나를 알아보게 될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오.”

“그 일이 어디에서 일어나겠습니까, 주님?”

“예루살렘에서요. 그것은 주님의 도시요.”

“그럼 저희는 그곳에 가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니산 달에 저희는 파스카를 위하여 여기 있어야 하니까요. 저희는 저희의 성전에 충실합니다.”

“만일 당신들이 모리아 산 위에도, 그리짐 산 위에도 있지 않는 살아 있는 성전, 신성하고 보편적인 성전에 충실하다면, 그편이 더 나을 거요. 그러나 나는 당신들의 시간을, 즉 당신들이 하느님과 그분의 메시아를 영과 진리 안에서 사랑할 시간을 기다릴 줄 아오.”

“저희는 당신께서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과거를 떠나 내 현재의 시간으로 들어오는 것이오. 당신들은 아직 나를 완전히 사랑하지 않소.”

사마리아인들은 말없이 서로를 은밀하게 쳐다본다. 그러다가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한다.

“당신을 위하여, 당신께 가기 위하여 저희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령 저희가 원한다 해도, 저희는 유다인들이 있는 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도 그것을 아십니다. 그들은 저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신들도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소. 그러나 안심하시오. 머지않아 더 이상 두 지방, 두 성전, 두 가지 반대되는 생각들이 없어지고, 유일한 백성, 유일한 성전, 진리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믿음이 있게 될 것이오.

그러나 지금 나는 당신들을 떠나야겠소. 지금 아이들은 위로받았고, 그 애들의 주의는 분산되었으며, 어두워지기 전에 에프라임에 도착하려고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나의 길은 멀어졌소.

흥분하지 마시오. 당신들의 행동이 어린것들의 주의를 끌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편이 더 낫소. 계속 가시오. 나는 여기서 멈추겠소. 주님께서 땅의 오솔길들과 그분의 길의 오솔길들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시기를 바라오. 가시오.”

예수께서는 산 가까이로 비켜서서 그들이 떠나가게 하신다. 스켐으로 돌아가는 무리로부터 마지막으로 들리는 것은 조용한 산길을 따라 퍼지는 한 어린이의 명랑한 웃음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