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7권 공생활 셋째 해(하)

하사시7권 [475. 예수와 그분의 어머니께서 마타티아의 숲에서 만나시다]

Skyblue fiat 2026. 1. 31. 07:10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17~p28

475. 예수와 그분의 어머니께서 마타티아의 숲에서 만나시다

1946. 8. 21.

예수께서는 혼자 계신다. 그분께서는 약간 분지 모양으로 된 고원에 혼자 계시는데, 그 고원은 완만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기복을 이루며 갈릴래아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야산들의 비탈들을 따라 올라간다. 나는 그 호수를 오른쪽으로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아름다운 푸른 물은 점점 어두워진다. 해가 지기 시작하여 호수의 넓은 수면에서 밝게 반짝이는 햇살이 물러가기 때문이다.

분지 뒤 북쪽에는 아르벨라 산이 있고, 그 뒤 호수 너머에는 메이론과 지스칼라의 더 높은 산들이 있다. 동북쪽으로는 멀리 어느 쪽에서 보아도 크고 장엄한 대 헤르몬 산이 보인다. 지는 해는 그 산의 최고봉을 변덕스럽게 비추어 그 산의 서쪽은 분홍빛이 감도는 황옥 빛을 띠게 하고 나머지 부분에는 유백색을 띄게 하는데, 이 색깔은 별 특징 없는 희부연 하늘빛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내가 국경 부근에 있는 우리의 알프스 산에서 때때로 본 적이 있다.

북쪽에 보이는 것은 이상과 같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는 쉽게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고, 왼쪽을 바라보면,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는 평야의 조망을 가로막는 더 높은 야산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돌아서서 남쪽을 바라보면, 나자렛을 둘러싸고 있는 완만한 야산들 너머로 타보르 산이 보인다. 저 아래 바닥에는 사람의 왕래가 매우 빈번한 길옆에 작은 읍내 하나가 있고, 그 길에서는 사람들이 야영지에 도착하기 위하여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보시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단지 앉을 곳을 찾으시다가 커다란 갈참나무 밑으로 정하신다. 이 나무의 잎이 무성한 가지들은 땅에서 자라고 있는 풀을 삼복더위로부터 보호해 왔다. 그래서 그 풀은 마치 불볕더위가 그곳을 한 번도 지나가지 않은 것처럼 싱싱하고 빽빽하다.

이렇게 예수 앞에는 호수가 있고, 그분의 옆 나무들 사이에는 그분께서 올라오신 오솔길이 있고, 반대쪽에는 그분께서 계시는 풀밭과 숲으로 덮여 있는 분지의 북쪽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땅의 기복이 있다. 숲은 대부분의 나무들이 가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갈참나무들이어서 완전히 초록빛이다. 단지 군데군데 핏빛 붉은 반점들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새로 돋아나는 잎에 자리를 내주기 위하여 떨어지기 전에 색깔이 변하는 잎들인데, 배아상태의 새 잎들은 말라가는 잎들 바로 옆에서 이미 자라고 있다.

예수께서는 피로에 지쳐 굵은 나무줄기에 기대어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쉬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나무줄기에서 등을 떼시며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이시고, 두 팔꿈치를 양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아래팔들을 앞으로 내미시고,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시어 여느 때의 자세를 취하신다.

그분께서는 숙고하신다. 그분께서는 분명히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그분께서 이따금씩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실 때―밤을 지낼 자리 위에서 티격태격하는 새들, 산비탈로 돌을 떨어뜨리는 풀 속의 짐승, 바람이 한번 불고 지나가서 다른 가지와 부딪치는 나뭇가지로 인한 소리―그분께서는 눈을 들어, 틀림없이 보지는 않으시는 묵상에 잠긴 시선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보신다. 그 소리가 갈참나무들 사이로 올라오는 오솔길 쪽에서 나는지 살피시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다시 고개를 숙이시고 그분 자신에게 집중하신다. 그분께서는 두 번에 걸쳐 이미 어둠에 묻힌 호수를 주의 깊게 바라보시고, 그 다음에는 고개를 돌려 나무가 우거진 야산 뒤로 해가 이미 저문 서쪽을 바라보신다. 두 번째는 그분께서 일어나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는지 보시려고 오솔길에까지 걸어가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그분의 자리로 돌아오신다.

마침내 발자국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군청색 옷을 입고 계시는 마리아와 배낭들을 맨 요한이다. 요한은 두 번 외친다.

“선생님!”

예수께서 뒤돌아보시자마자 그가 덧붙인다.

“제가 당신의 어머니를 이리로 모시고 왔습니다.”

그는 마리아께서 작은 개천을 건너시고 오솔길에 깔린 큰 돌들 위로 발을 내딛으시는 것을 도와드린다. 그 돌들은 오솔길을 견고하게 해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더 편안하게 해주려는 목적으로 깐 것인데, 그것들은 실제로는 가벼운 샌들을 신고 있는 발에 함정들을 만들어놓은 셈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즉시 일어나 그분의 어머니께로 가 그분께서 무너진 축대의 돌 더미를 올라오시도록 요한과 함께 그분을 도와드리신다. 그 축대는 둔덕을 떠받치려는 것이었지만, 실상 갈참나무들의 뿌리들만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마리아께서는 지금 그분의 아드님의 부축을 받고 계시는데, 그 아드님께서는 그분의 어머니를 보시며 물으신다.

“어머니, 당신께서는 피로하십니까?”

“아니다, 예수야.”
마리아께서는 예수께 미소 지으신다.

“그러나 저는 당신께서 몹시 피로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오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께 갈 수 없었습니다…”

“오! 그건 전혀 상관없다. 좀 덥구나. 하지만 여기는 상쾌하구나… 오히려 네가 몹시 피곤하겠구나. 그리고 가엾은 요한도…”

그러나 요한은 웃으면서 머리를 흔들고, 물건이 가득한 예수의 새 배낭과 자기의 배낭을 갈참나무 아래 풀에 내려놓고 물러가면서 말한다.

“저는 내려가겠습니다. 저는 작은 샘 하나를 보았는데, 그 물로 몸을 좀 식히겠습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 저를 부르시면 그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는 두 분을 남겨두고 떠나간다.
마리아께서는 그분의 겉옷의 끈을 푸시고 베일을 벗어 그분의 이마에 맺혀 있는 땀을 닦으신다. 그분께서는 예수를 보시고 미소 지으시고, 예수께서도 그분의 모친의 손을 어루만지고 애무 받으시기 위하여 자신의 뺨에 가져다대시며 미소 지으시기 때문에 마리아께서는 그 미소를 들이마시듯이 바라보신다. 나는 예수께서 한 번 이상 그렇게 하시는 것을 보았지만, 이 몸짓을 하시는 예수께서는 지극히 ‘아들다우시다!‘

마리아께서는 손을 빼서 예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시고, 그분의 아드님의 머리채에 남아 있는 떡갈나무의 작은 껍질을 떼어내신다. 마리아의 손가락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애무인데, 그분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그렇게 애무하신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예수야, 너는 땀으로 흥건하구나. 네 겉옷의 양어깨 부분이 비라도 맞은 것처럼 젖어 있구나. 그렇지만 지금 너는 다른 겉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겉옷을 도로 가져가겠다. 햇빛과 먼지로 퇴색되었구나. 나는 모든 것을 준비했다.

그리고… 잠깐! 나는 네가 겨우 무언가를 약간 먹을까 말까 했다는 걸 안다. 너는 딱딱한 빵 한 조각과 목구멍이 알알할 정도로 소금에 절인 올리브 한 줌만을 먹었지. 나는 요한에게서 들었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물만 들이키더라.
나는 신선한 빵을 가져왔다. 화덕에서 막 꺼낸 빵이다. 그리고 나는 시몬의 아이들에게 주려고 어제 따온 봉방 하나도 가져왔다. 그러나 그 애들에게 줄 것은 더 있다. 아들아, 이것을 먹어라. 이건 우리 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분께서는 상체를 숙여 배낭을 여신다. 배낭에는 나머지 모든 것들 위에 과일이 들어 있는 작은 버들가지 바구니가 있고, 그 위에 긴 포도 잎들에 싸인 봉방이 있다. 마리아께서는 그 모든 것을 신선하고 바삭바삭한 빵과 함께 아들에게 주신다.

예수께서 잡수시는 동안에 마리아께서는 배낭에서 그분께서 겨울 몇 달 동안을 위하여 준비하신 묵직하고, 따뜻하고, 추위와 비를 막을 수 있는 옷들을 꺼내 예수께 보여드리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어머니, 당신께서는 일을 아주 많이 하셨군요! 저는 지난겨울에 입던 옷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남자들은 자기들의 여자들에게서 떠나 있을 때는 모든 옷을 새것으로 가져야 한다. 그래야 아무것도 고치지 않아도 단정한 복장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낭비하지 않았다. 내가 입고 있는 겉옷은 네가 입던 것을 내가 줄이고 다시 염색한 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내가 입을 만하다. 그러나 너는 아니다. 너는 예수다…”

이 문장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너는 예수다.’ 간단한 문장이다. 그러나 어머니, 제자, 언약된 메시아를 기다리는 고대의 히브리 여인들, 예수께서 사셨던 복된 시대의 히브리 여인들의 모든 사랑이 그 몇 마디 말에 들어 있다.

만일 그 어머니께서 그분의 아드님을 하느님으로 경배하며 땅에 엎드렸다면, 그분의 숭배는 제한된 형태를 띤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에는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고, 땅에 이마를 조아리는 격식을 갖춘 흠숭보다 더한 무엇인가가 있다. 여기에 마리아의 전존재, 그녀의 살, 피, 정신, 마음, 영혼, 그리고 하느님이신 사람(the God-Man)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흠숭하는 사랑이 들어 있다.

나는 마리아의 아드님이시고, 마리아께서 항상 자기의 하느님으로 기억하시는 분이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마리아의 이 흠숭보다 더 크고 더 절대적인 어떤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다. 예수에 의하여 병이 고쳐지거나 회개한 다음에 구세주께 경배하는 것을 내가 본 사람들 중 누구도, 가장 열렬한 사람들도, 부지불식간에 자기들의 사랑을 극적으로 나타낸 사람들도 이와 유사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도 전적으로(completely)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완전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한 인간들로서 사랑한다.

나는 감히 마리아께서는 신적으로(devinely)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분께서는 한 사람 이상으로 사랑한다. 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죄 없는 딸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원죄로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하여 생각한다… 나는 사탄이 첫째 부모를 압도함으로써 우리에게서 무엇을 훔쳐갔는지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는 마리아께서 하느님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그분을 사랑하는 능력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갔다… 그는 우리에게서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the power of loving well)을빼앗아갔다.

내가 완전하신 두 분을 바라보며 이 주제들에 대하여 생각하는 동안에 식사를 마치신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발 앞 풀 위에 앉아 마치 자기를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곁에서 안식처를 찾아 들어오는 지치고 슬퍼하는 아이처럼 마리아의 무릎에 머리를 얹으신다.

그러자 마리아께서는 그분의 아드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시고, 매끈한 이마를 가볍게 만지신다. 마리아께서는 자기의 애무로 그분의 아들의 모든 피로와 마음의 고통을 흩어버리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눈을 감으신다. 그러자 마리아께서는 그분의 손을 예수의 머리에 얹으신 채 생각에 잠겨 움직이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신다. 아마 그분께서는 예수께서 잠드셨다고 생각하시는가 보다. 예수께서는 그토록 지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거의 즉시 다시 눈을 뜨시고 날이 저물어가는 것을 보시고, 이 위로의 시간을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신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머리를 다시 드시고 앉으신 그대로 말씀하신다.

“어머니, 당신께서는 제가 어디서 오고 있는지 아십니까?”

“안다. 요한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두 영혼이 하느님께로 돌아온다지. 너와 나에게 기쁨이 되는 일이다.”

“예. 저는 이 기쁨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내려갈 겁니다.”

“우리가 헤어졌던 날 네가 받았던 실망을 보상받으려고.”

“당신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요한이 당신께 말씀드렸습니까? 요한만이 그 일을 아는데요…”

“아니다. 나는 그에게 그것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러나 요한은 ‘어머니, 당신께서는 곧 그분을 보실 텐데 그분께 물어보십시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요한은 T(타우)에 충실합니다.”

잠깐 침묵이 흐른 다음 예수께서 물으신다.
“그럼, 누가 그것에 대하여 당신께 말해드렸습니까?”

“나에게 해준 게 아니다. 몇 사람이… 네 형 요셉의 집에 왔었다. 그리고… 요셉이 나에게 왔었다. 그는 아직 좀… 그렇다. 아들아, 사실을 말하는 것이 항상 더 낫다. 그는 카파르나움에서 너를 만난 다음에, 그리고 특히 그가 유다와 야고보와 이야기한 다음에 약간 화나 있었다.

그들은 네가 없는 동안에 서로 만났었는데, 야고보도, 아니 특히 야고보가 준엄했었다… 매우 준엄했었다… 나는 지나치게 준엄했다고 말하겠다.

그러나 항상 인자하신 영원하신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의견충돌에서 약간의 유익함을 끌어내셨다. 왜냐하면 확실히 그 의견차이는 사랑의 두 가지 근원으로부터 유래하는 차이이기 때문이었다. 서로 다른 근원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사랑이다. 불완전한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만일 그 근원들이 완전했다면, 만일 적어도 한 근원이라도 완전했다면, 일이 분노를 터뜨릴 정도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라는 표현은 아마도 야고보의 기분을 묘사하기에는 너무 강한 단어겠지만, 어쨌든 그는 확실히 아주 준엄했다… 너는 분명히 사랑하라고 그에게 주의를 환기시켜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항상 참을성이 있는 야고보가 왜 그렇게 화내고 있는지 그 까닭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참았다. 우리는 그가 완전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는 사람이다. 그 역시 아직 너무 인간적이다. 오! 야고보가 내 요셉이 의인이었던 것처럼 의인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는… 자제할 줄 알았고… 항상 착했다.

그러나 내 말이 곁길로 나갔구나! 나는 너에 대한 두 사랑의 불완전한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얼핏 보아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요셉도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이 가엾은 여인인 나에 대한 그의 모든 돌봄은 너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같은 사상에 집착하는 옛날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그의 사고방식도 너에 대한 사랑이다. 네가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는 무엇이라도 줄 것이다! 물론… 그의 방식대로…

그러나 주제로 돌아와서, 나는 야고보의 단호한 행동에서 해를 입지 않은 요셉이 날마다 나에게 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너에게 말해야겠다. 너는 그 이유를 알겠니? 그는 나더러 자기에게 성경을 해석해달라고 온다. ‘아주머니와 아주머니의 아들이 이해하는 것처럼’이라고 그는 말했다.

진리에 비추어 성경을 해석하는 것!… 설명을 듣는 사람이 알패오의 요셉 같은 사람일 때, 즉 메시아의 현세적인 왕국, 그의 왕족의 혈통, 그 밖에도 아주 많은 것들을 굳게 믿는 사람일 때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왕족이어야 하고, 다윗의 후손이라야 한다. 그것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그가 왕궁에서 태어나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그에게 받아들이게 하는 데는 그 자신의 자존심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는… 오! 자기가 다윗의 줄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에게 많은 것들을 상냥하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그 사상을 바로잡게 해주었다. 그는 지금은 예언들에 따라 네가 예언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오! 만일 사람들이 그를 찾으려고 두 번이나 오지 않았다면, 나는 네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너를 보편적이고 영원한 왕이 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것인 영혼의 왕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믿게 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첫 번째 사람들은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온 카파르나움 사람들이었는데, 온 집안에 대한 눈부신 영화의 약속들로 그의 마음을 유혹한 다음에 그가 자기들의 제안들에 굴복할 마음이 별로 없는 것을 보고는―그들은 너와 내가 왕관을 받아들이도록 그가 우리에게 강요해주기를 바랐었다―그를 위협하기 시작함으로써 자기들의 본색을 드러냈다.

그것은 그들이 으레 사용하는 반쯤 숨겨진 위협이다. 그것은 무해한 것처럼 보이도록 부드러운 양털로 감싼 예리한 칼들이었다… 그런데 요셉은 반발하며 말했다.

‘내가 형인 것은 맞지만, 그도 성인(成人)이오. 나는 우리 가족 중에 바보들이나 미친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소. 그가 성인이 된 지가 이미 20년이나 되었으니,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소. 그러니 그에게 가서 물어보시오. 만일 그가 거절하면 그를 내버려두시오. 그는 자기의 행위들에 책임지오.’

그러나 그 후 안식일 바로 전날 네 제자들 몇 사람이 왔다. 아들아, 너는 나를 보고 있느냐? 내가 그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기를 허락해다오. 그러나 내가 너에게 그들을 용서해주라고 말하는 것을 하락해다오… 자기의 늙으신 아버지를 향하여 손을 든 아들, 제단을 더럽혀 야훼의 분노를 두려워해야 하는 레위인도 그들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너를 찾기 위하여 호수 길을 따라 카파르나움으로부터 막달라로 갔다가 다시 티베리아스로 갔다.

그러다가 그들은 가말리엘의 집에서 며칠 동안 손님으로 있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던 헤르마와 스테파노를 만났다. 나는 그들이 했던 말을, 그들이 너에게 하고 싶어 하는 말을, 그들이 간절하게 너에게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거짓 도유(塗油)를 통하여 너를 배신하고 싶어 했던 자들과 합류할 정도로 길을 잃었던 제자들의 고통을 훨씬 더 심하게 가중시켰다.

그들이 왔을 때 요셉은 나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좋은 일이었다. 요셉은 아직 빛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미 그의 새벽의 여명기에 있다.
요셉은 계략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우리 요셉이 지금은 너를 많이 사랑한다. 그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감히 그가 옳게 사랑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는 적어도 네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고, 네 안전을 보살피고, 네 원수들을 아는 형으로서는 사랑한다…

아들아, 이렇게 하여 나는 그들이 너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안다. 하나의 고통이고… 한 사람 이상이 네가 누군지를 알아보았기 때문에 하나의 기쁨이기도 하다. 이것은 너와 나의 고통과 기쁨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이다, 그렇지? 나는 내가 용서할 수 있도록 허용된 한도 내에서 뉘우친 사람들을 이미 용서했다.”

“어머니, 당신께서는 저를 대신해서도 그들을 용서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을 보고 이미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입니다… 당신의 말씀은 정확합니다!… 저는 요셉 형이 참 빛의 새벽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을 보는 기쁨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그는 너를 보기를 바라고 있었다. 너도 요셉을 보았어야 하는 건데. 그는 오늘 해질 때까지 집에 없었다. 그는 너를 보지 못하면 섭섭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볼 수 있겠지.”

“아닙니다, 어머니. 저는 사람들이 저를 볼 수 있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저는 성도와 그 인근 마을들을 복음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를 발견하면 즉시 저를 내쫓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선을 행하기만을 원하면서도 악을 행하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실상이 그렇습니다.”

“그럼 너는 요셉을 보지 않겠다는 말이냐? 그는 장막절을 지내러 내일 떠날 예정이니 너희는 함께 여행할 수 있었을 텐데…”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벌써 그토록 사납게 너를 박해하고 있느냐. 아들아?”
그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얼마나 큰 고민이 들어 있는가!

“아닙니다. 어머니, 아니에요. 전보다 더 심하지는 않습니다. 안심하세요. 반대로… 착한 영혼들은 저에게 옵니다. 착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전에는 이유 없이 해쳤는데, 지금은 멈추고 곰곰 생각합니다. 제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연장자들은 영적 훈련에 있어 진보하고 있고, 사도들은 점점 더 완전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요한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는 항상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저는 요나의 시몬과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시몬은 나날이 사람에서 사도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제 말뜻을 아시지요. 그래서 그는 저에게 아주 많은 기쁨을 줍니다. 그리고 나타나엘과 필립보는 그들의 사상의 속박에서 풀려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마스와… 그런데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예, 제 말을 믿으십시오.

현재 그들 모두는 착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 기쁨입니다. 당신께서는 제가 당신의 아들의 친구들, 위로자들, 지지자들인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아시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께서도 그렇게 잘 보호받으시고 사랑받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 나에게는 마리아, 요셉과 시몬의 아내들, 그들 자신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있다. 나에게는 착한 알패오가 있다. 그리고 나자렛 사람 중 누가 나자렛의 마리아를 사랑하지 않니? 너도 염려하지 마라… 온 마을이 네 어미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불과 몇 사람만을 빼놓고는요. 저는 압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미친 떠돌이의 어머니에게 느끼는 동정의 표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닌 줄을 아시고,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저는 제가 당신과 이별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순종이라고는 말하지는 않겠지만, 아버지께서 저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다정하고 고통스러운 순종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렇다, 아들아! 나도 안다. 나는 아무것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네가 멀리 떠나 있고, 내가 너에 대하여 생각할 때 네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동안에 내 집에 있는 대신 네가 아주 자주 그런 것처럼 너와 함께 진창길들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한데서 자고, 지치고, 집도 없고, 난로도 없고, 빵도 없이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고, 분명히 너와 함께 그렇게 있는 것을 더 낫게 생각한다.

네가 나와 함께 있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 너도 덜 고통당할 것이고, 나도 덜 고통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내 아들이기 때문이고, 내가 너를 항상 품에 안고, 내 사랑으로 내 가슴으로 내 품으로 너를 추위와 딱딱한 돌들과 특히 냉혹한 마음들로부터 너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나는 동굴에서, 이집트로의 여행길에서, 그리고 거기서 돌아올 때, 그리고 계절의 위험이나 사람들의 계략들이 너를 해칠 수 있을 때 항상 너를 내 가슴에 꼭 껴안았었다.

지금은 내가 왜 그렇게 할 수 없겠니? 지금은 네가 어른이어서 혹시 내가 더 이상 네 어머니가 아니란 말이냐? 어미는 자기 아들이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없단 말이냐? 만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면, 그들이 너를 해칠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아니다, 내가 어리석다… 너는 구속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어머니조차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러나 내가 너와 함께 다니게 해다오. 내가 너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보다 모든 것이 나에게는 더 낫다.”

“만일 사람들이 더 친절했다면, 저는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자렛조차도… 상관없습니다. 그들도 저에게로 올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모시고 갈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제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될 때에야 이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저는 유다로 갈 것입니다… 저는 성전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저는 그 지방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사마리아를 거쳐 가겠습니다. 저는 할 일이 더 많은 곳에서 일하겠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저는 이른 봄에 저와 합류하시도록 준비하여 예루살렘 근처에 자리 잡으시도록 당신께 권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만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저는 다시 데카폴리스로 올라갈 터이니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대체로 유다에 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양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진짜로 늙은 양보다 더 고집 세고, 야생 숫염소보다 더 다투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곳에 그 메마른 땅에 지치지 않고 떨어지는 이슬처럼 말씀을 뿌리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일어서서 정지한 채로 자신을 주의 깊게 응시하시는 그분의 어머니를 보신다. 예수께서는 입술을 움직이시고 머리를 흔드시며 말씀하신다.

“제가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전에 더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 만일 요셉 형님이 저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분에게 모레 새벽녘에 나자렛에서 타보르 산을 경유하여 이즈르엘로 가는 길로 오시라고 하십시오. 저는 저 혼자서나 요한과 함께 그리로 가겠습니다.”

“아들아,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하겠다.”

침묵이 흐른다. 깊은 침묵이다. 황혼이 깊어짐에 따라 새들도 나뭇잎이 무성한 가지들 속에서 다투기를 그쳤고 바람도 잤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말을 어렵게 찾으시며 말씀하신다.

“어머니, 제 휴식은 끝났습니다… 어머니, 저에게 입 맞춰주시고, 저를 축복해주십시오.”

두 분께서는 입을 맞추시고 서로를 축복하신다.
그 다음에 예수께서는 그분의 어머니의 베일을 주우려고 상체를 숙이시며, 마치 그분께서 덜 심각하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요한을 부르신 다음에 말씀하신다.

“어머니, 당신께서 유다로 오실 때 제 가장 좋은 옷을 저에게 가져다주십시오. 중요한 명절 때 입도록 어머니께서 저를 위하여 짜주신 그 옷을요. 저는 예루살렘에서 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리고 더 인간적으로 예민하게 ‘선생’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 닫힌 위선적인 영혼들은 사람의 가르침이라는 내용보다는 그의 복장이라는 형식을 더 보니까요.
그렇게 하면 가리옷의 유다도 기뻐할 것이고… 요셉 형님도 왕의 옷을 입은 저를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오! 그것은 개선(凱旋)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짜주신 옷은 그것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이 말들에 감추어진 가혹한 진실을 완화하기 위하여 미소 지으신다.
그러나 마리아께서는 속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일어나 예수의 팔에 몸을 기대시며 외치신다.

“아들아!”

가슴이 미어지는 그분의 아픔으로 내 마음도 아프다. 예수께서 그분의 어머니를 자신의 가슴에 꼭 껴안으시자, 마리아께서는 아들의 가슴에 안겨 우신다…

“어머니, 이것이 바로 제가 이 조용한 시간에 당신께 말씀드리려고 했던 이유입니다… 저는 당신께 제 비밀을 말씀드리고, 여기 땅 위에서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당신께 맡겨드립니다. 제자들 중 아무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가 다시 이 지방으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께는… 당신께는 비밀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머니, 저는 당신께 약속드렸었지요. 울지 마세요.

우리는 함께 보낼 시간을 아직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께 ‘유다로 오십시오’ 하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 가까이에 당신을 모시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방해하고 있는 저 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가장 어려운 복음전파의 피로를 저에게 보상해줄 것입니다.

갈릴래아의 여자제자들과 함께 오십시오. 당신께서는 저에게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요한이 어머니와 그들을 위한 거처들을 준비할 것입니다. 요한이 오기 전에 지금 함께 기도드리십시다. 그 다음에 당신께서는 마을로 돌아가십시오. 저도 밤사이에 가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함께 기도하신다. 그분들께서 주님의 기도 마지막 단어들에 이르셨을 때 요한이 나타난다. 그가 다가왔을 때 그는 희미한 빛 아래서 마리아의 얼굴의 눈물 자국들을 보고 놀란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말한다.

“저는 새벽에 나자렛 밖의 길 위에 있겠습니다… 어머니, 오십시오. 숲 밖에는 아직 햇빛이 남아 있고, 저 아래 길은 왕래하는 마차들의 등불들로 밝습니다…”

마리아께서는 베일 속에서 우시면서 예수께 다시 입 맞추시고 나서 팔꿈치를 잡아 부축해드리는 요한의 도움을 받으시며 오솔길을 따라 계곡을 향하여 내려가신다.
예수께서는 혼자 남아 기도하시고, 생각하시고, 우신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어머니께서 내려가시는 것을 보시며 우시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방금 전에 계셨던 곳으로 돌아와 방금 전과 동일한 자세를 다시 취하신다. 그 동안에 그분의 주위의 어둠과 적막함은 점점 깊어진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내 어머니 마리아의 이 고통도 잊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내 고통의 예견으로 그분을 고통스럽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과 그분께서 우시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분께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분께서 나에게 모든 것을 주셨으니 나도 그분께 모든 것을 드린다. 그분께서는 모든 고통들을 겪으셨다. 나는 그분께 모든 기쁨을 드린다.

너희가 마리아에 대하여 생각할 때 나는 너희가 33년 동안 지속되었고 십자가 아래서 막을 내린 그분의 그 고통을 묵상하기를 바란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고통당하셨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그분을 미친 사람의 어머니로 여겼던 군중들의 조소로 고통당하셨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친척들과 유력자들의 비난을 견디셨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라는 나의 외관상의 부인의 말을 견뎌내셨다.

누가 내 어머니에게 부과되었던 무서운 하느님의 뜻, 자기의 아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는 것을 그분께서 행하셨던 것보다 더 하느님의 뜻을 행했느냐?

그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여기저기로 나를 찾아오시는 피로를 견디셨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자신의 작은 집을 떠나 군중들과 섞이는 희생으로부터 그분의 작은 고향을 떠나 소란스러운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희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희생들을 치르셨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마음속에 배반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 그와 접촉하셔야 했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내가 마귀 들렸다고, 이단자라고 비난받는 것을 듣는 고통을 당하셨다.

너희는 내가 얼마나 내 어머니를 사랑했는지 알지 못한다. 너희는 마리아의 아들의 마음이 애정들에 얼마나 민감한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너희는 내 고통은 순전히 육체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기껏해야 너희는 그것에 아버지의 최후의 버림(the final abandonment by the Father)이라는 영적 고통을 더할 뿐이다.

아니다. 자녀들아. 나는 인간의 격정들도 체험했다. 나는 내 어머니께서 고통당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을 온순한 새끼 암양처럼 고통으로 이끌어가야 했고, 내가 너에게 보여준 복음전파 전 나자렛에서의 이별, 임박한 내 수난 전의 이별, 유다가 그의 배반으로 나의 수난을 이미 시작했었던 최후의 만찬 전의 이별, 골고타에서의 끔찍한 이별, 이러한 연이은 이별들로 그분을 고통스럽게 해드리도록 강요당함으로써 고통당했다.

나는 나 자신이 조롱당하고, 미움 받고, 중상당하고, 선이 아닌 악으로 발전하는 불건전한 호기심에 둘러싸여 고통당했다. 나는 내가 들어야 했거나 내 곁에서 말해지는 모든 거짓말로 인하여 고통당했다. 나는 내 지성을 믿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덫들을 놓기 위하여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나에게 질문들을 했던 위선적인 바리사이들의 거짓말, 나에게 은혜를 입고도 산헤드린과 총독관저에서 내 고발자들이 된 사람들의 거짓말, 계속 내 제자로 가장하면서 나를 팔아넘기고, 사랑의 표시로 나를 집행자들에게 지목한, 장기간에 걸친 사전에 계획된 교묘한 유다의 거짓말로 인하여 고통당했다. 또한 나는 인간적인 공포에 사로잡힌 베드로의 거짓말로 인하여 고통당했다.

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들이고, 진리 자체인 나에게 얼마나 역겨운 거짓말들이냐! 지금도 나에 관한 거짓말들이 얼마나 많으냐! 너희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너희는 너희 입술에는 내 이름을 올리지만, 마음속으로는 사탄을 경배하고, 내 법과 반대되는 법을 따른다.

나는 하느님의 희생인 내 희생의 무한한 가치에 비하여 너무 소수만이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며 고통당했다. 나는 말한다. 땅의 많은 세기들이 지나는 동안에 영원한 생명보다 죽음을 선호하여 내 희생을 헛되게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내 눈앞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 내 죽음을 향하여 갔다.

작은 요한아, 너는 네 예수와 그의 어머니가 그들의 정신적 자아들 안에서도(in their moral egos) 지독하게 고통당했다는 것을, 그리고 오랫동안 고통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네가 고통당해야만 한다 해도 참아라. ‘제자가 그의 스승보다 나을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내일 나는 영혼의 고통들에 대하여 말해주겠다. 이제는 쉬어라.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