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7~p17

474. 갈릴래아의 베들레헴의 죄인들인 나병환자들에게 가시다
1946. 8. 19.
지프타엘의 험준한 산이 북쪽의 조망을 막으며 내려다보고 있다. 프톨레마이스에서 세포리스와 나자렛으로 이어지는 대상들의 길 위 거의 수직 절벽들처럼 보이는 이 산악지형의 가파른 비탈들이 시작되는 곳에는, 산에서 돌출하여 심연 위에 걸려 있는 바위 덩어리들 가운데 많은 동굴들이 있는데, 그 바위 덩어리들은 지붕처럼 위치하여 동굴들을 지지해준다.
여느 때처럼 보다 중요한 도로들 근처에는 몇 명의 나병환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떨어져 있지만 동시에 여행자들이 보고 구제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가까이에 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께서 요한과 아벨과 함께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경고와 호소의 외침을 보내는 나병환자들의 작은 무리이다. 아벨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분께서 내가 당신들에게 말한 그분이오. 나는 이분을 당신들이 아는 그 두 사람에게로 모셔가고 있소. 당신들은 다윗의 자손께 청할 것이 아무것도 없소?”
“우리가 누구에게나 청하는 것 즉 여행자들이 지나가는 동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빵과 물을 청하오. 나중에 겨울이 되면, 우리는 굶주리게 될 거요…”
“오늘 나는 음식을 가지고 있지 않소. 그러나 나는 건강(Health)을 모시고 왔소.”
그러나 그 건강에게 호소하라는 암시적인 권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병환자들은 등을 돌리고 비탈을 떠나 산의 돌출부를 돌아 다른 여행자들이 다른 길로 오는지 보러 간다.
“저는 저 사람들이 이방인 선원들이나 우상숭배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들은 얼마 전에 프톨레마이스에서 쫓겨나 이리로 왔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왔습니다.
저는 그들이 어떻게 해서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저 사람들이 건강한 몸으로 자기들의 나라를 떠나 라틴 상인들에게 팔려고 상아를 구입했고, 제가 믿기로는 아마 진주도 얻기 위하여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오랜 여행을 한 다음에 병들어서 이곳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항구의 관리들이 그들을 격리시켰고, 그들의 배마저 불살랐습니다.
그들 중 몇 명은 시로 페니키아의 도로들을 따라갔고, 몇 명은 이리로 왔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거의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로 병이 중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훨씬 더 병들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약간의 믿음을 주입하려고 해보았지만… 그들은 음식만을 청할 뿐입니다…”
“회개시키는 데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1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2년 안이나 그 후에 성공할 수도 있다. 비록 그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바위처럼 보인다 해도, 그들에게 꾸준히 하느님에 대하여 말해주어야 한다.”
“그럼 제가 그들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잘못입니까?… 저는 항상 안식일 전에 그들에게 약간의 음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다인들이 안식일들에는 여행을 하지 않고, 그래서 아무도 저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너는 옳은 일을 했다. 네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저 사람들은 이교도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영혼보다 자기들의 육체를 더 걱정한다. 그들의 굶주림에 대한 네 다정한 보살핌은 자신들을 돌보아주는 낯선 사람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일깨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너를 사랑하게 된다면, 네가 음식이 아닌 것에 대하여 말해도 그들은 네 말을 들을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을 따르고 싶은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어느 날 그들은 너를 따라 영의 길을 걸을 것이다.
육체적인 자비의 일은 영적인 자비의 일들을 위한 길을 참으로 자유롭고 평탄하게 하여, 하느님께서 그분을 만나도록 준비된 사람 안으로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오시게 된다. 그는 자기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데, 그분께서 어디로 들어오시는지 알지 못한다.
어디로! 때로는 한 번의 미소 뒤로, 한 마디의 동정의 말 뒤로, 한 조각의 빵 뒤로 닫혔던 마음이 은총을 향하여 열리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그 마음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의 여정이 시작된다.
영혼들! 이것들이야말로 모든 것들 중 가장 다양한 것이다. 땅 위에 참으로 다양한 물질들이 있지만, 어떤 물질도 그 양태들에 있어 영혼의 경향들과 반응들만큼 다양하지는 못하다.
저 무성한 테레빈나무를 보느냐? 저 나무는 종류를 따라 테레빈나무들의 숲 가운데 있다. 그 나무들이 몇 그루나 될까? 수백 그루, 천 그루,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겠다. 이 나무들이 산의 이 가파른 비탈을 뒤덮고 그 시큼하고 몸에 좋은 수지의 향기로 계곡과 산의 다른 모든 냄새를 압도한다.
그러나 보아라. 이 나무들은 천 그루도 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굵기, 수고, 수세, 기울기, 모양이 다른 나무와 똑같은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어떤 나무들은 칼날들처럼 곧고, 어떤 나무들은 제각기 동서남북으로 기울어져 있다. 어떤 나무는 깊은 토양에서 자라났고, 어떤 나무는 돌출부 위에서 자라나서, 그곳이 어떻게 나무를 지탱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은 말라 있지만 우기에는 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갈 저 급류 위에 우뚝 서 있는 맞은편 절벽과의 사이에 거의 다리를 놓을 정도로 어떻게 저렇게 나무가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를 지경이다.
어떤 나무들은 마치 아직 연한 식물이었을 때 잔인한 사람이 못살게 굴기라도 했었던 것처럼 뒤틀려 있고, 어떤 나무들은 흠이 없다. 또한 어떤 나무들은 거의 바닥까지 잎으로 덮여 있고, 어떤 나무들은 겨우 꼭대기에 약간의 잎이 나 있을 뿐이다. 어떤 나무들에는 오른쪽에만 가지들이 있고, 어떤 나무들은 아래쪽에는 잎이 있고 꼭대기들은 벼락에 탔다. 이 나무는 말랐다가 꼭대기로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수액을 빨아들여 거의 뿌리에서 돋아나다시피 한 단 하나의 끈질긴 가지로 생존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처음에 너희에게 가리켰던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이 나무는 굵은 가지나 잔가지나 잎이―저 나무에 있는 수천 개의 잎 중에서 단 하나의 잎이라도―다른 어떤 나무와 같은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그것들은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장 낮은 이 가지를 보아라. 그 가지의 끝을, 끝만을 보아라. 얼마나 많은 잎들이 그 끝에 달려 있느냐? 초록색의 가는 잎이 아마 2백 개는 있겠지. 그러나 보아라. 색깔, 크기, 신선함, 유연성, 자세, 나이에 있어 다른 어떤 것과 같은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없다.
영혼들도 이와 같다. 영혼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그들의 경향들과 반응들의 차이도 그 수만큼 크다. 그래서 그 영혼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다양한 경향들과 반응들에 따라 그들에게 작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영혼들의 훌륭한 선생도, 훌륭한 의사도 아니다.
내 벗들아,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하고, 고정된 교재들을 오랫동안 읽는 것보다 빛을 더 잘 비추어주는 묵상에 익숙해져야 한다. 영혼들의 선생이자 의사인 사람이 연구해야 하는 책은 영혼들 자신이다. 페이지들의 수만큼 많은 영혼들이 있고, 각 페이지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배아기에 있는 수많은 감정들과 격정들이 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지속적이고, 근면하고, 묵상적인 연구와, 끊임없는 참을성, 지구력, 용기를 가지고 가장 부패한 상처들도 치료하는 것이고, 그것들을 치료함에 있어 환자에게 상처를 입히는 혐오감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부패한 환부를 드러냄으로써 누군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썩은 부분으로 인하여 고통당하지 않게 하려고 부패를 제거하지 않음으로써 괴저로 발전하여 온 몸을 썩게 내버려두는 거짓 동정을 가지지 않고 행동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너무 거친 태도로 마음의 상처들을 악화시키거나 죄인들을 다룰 때 자기는 감염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체하며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지 않도록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런데 영혼의 선생이자 의사인 사람에게 필요한 이 모든 성덕들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빛을 어디서 얻고, 무관심과 종종 모욕까지 당하면서도 견뎌낼 수 있는, 때로는 영웅적이기까지 한 참을성을 그들이 어디서 얻으며, 지혜롭게 치료하는 그들의 용기와 병자들과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는 그들의 조심성을 어디서 얻겠느냐? 사랑에서, 언제나 사랑에서 얻는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에 빛을 비추어주고, 지혜와 용기와 조심성을 주는 것이다. 사랑은 사람들이 고쳐진 죄를 다시 지을 수 있는 호기심으로부터 보호해준다.
한 사람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는 사랑 외에 다른 갈망이나 다른 지식을 가질 수 없다. 알겠느냐? 의사들은 누군가가 어떤 병으로 죽을 뻔 했다면 그는 그 병에 다시 걸리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피가 그 병에 감염되었다가 이미 그것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개념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틀린 생각도 아니다.
그러나 병이 아니라 건강인 사랑은 의사들이 말하는 것을 하고, 모든 나쁜 격정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다. 하느님과 자기의 형제들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자기의 형제들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비록 그가 병든 영혼들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때까지 사랑이 숨겨 왔던 일들을 알게 된다 해도, 그는 그것들로 인하여 타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에 충실한 채로 남아 있고, 그래서 죄짓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하여 관능을 극복한 사람에게 관능이 무엇일 거라고 너희는 생각하느냐? 하느님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에서 모든 보물들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 재산이 무엇이겠느냐? 하느님만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섬기기 위하여 자기 자신들마저도 바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믿음 안에서 자기들의 모든 선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의 불꽃으로 자극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꾸준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사랑하고―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을 아는 것이다―하느님에 대하여 자기들이 어떤지를 알기 때문에 교만해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 탐욕, 인색, 불신, 나태, 교만이 무엇이겠느냐?
어느 날 너희는 내 교회의 사제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영혼들의 의사들이자 선생들이 될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기억해라. 너희를 사제들, 즉 그리스도의 일꾼들과 영혼들의 선생들과 의사들을 만들어주는 것은 너희가 가질 이름이나, 너희의 복장이나, 너희가 행할 임무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너희를 그런 사람이 되게 만들어주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너희가 그런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줄 것이고, 만일 너희가 사랑으로 영혼들에게 작용할 줄 안다면 영혼들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유사성 즉 아버지와의 유사성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오! 얼마나 아름다운 교훈입니까, 선생님!”
요한이 말한다.
“그렇지만 저희가 그렇게 되는 데 성공할까요?”
아벨이 묻는다.
예수께서는 그 두 사람을 바라보신 다음 두 사람의 목에 팔을 걸어 한 사람은 그분의 오른쪽으로, 다른 한 사람은 그분의 왼쪽으로 끌어당겨 그들의 머리카락에 입 맞추시며 말씀하신다.
“너희는 사랑을 이해했으니, 성공할 것이다.”
그들은 한참 동안 더 걸어간다. 거의 산의 절벽 위를 깎아서 만들어진 길이 험하기 때문에 그들은 점점 더 어렵게 걸어간다. 저 아래 멀리 도로 하나가 있고, 그 위를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선생님, 여기서 멈추십시다. 보십시오, 저기 저 암반에서 그 두 나병환자들이 행인들에게 밧줄로 바구니를 내려 보냅니다. 그들의 동굴은 저 암반 너머에 이 있습니다. 지금 저는 그들을 부르겠습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며 소리를 지른다. 예수와 요한은 뒤에 남아 있는데, 그들은 우거진 관목 숲에 가려져 있다.
잠시 후에 한 얼굴이 나타난다…―그것이 몸 위에 있으니 얼굴이라고 부르자. 그러나 그것은 짐승의 주둥이, 괴물, 악몽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그 얼굴은 나무딸기 덤불 위에서 내려다본다.
“그게 자넨가? 그런데 자네는 장막절을 지내려고 떠나지 않았나?”
“나는 선생님을 만났소. 그래서 나는 되돌아 왔소. 그분께서는 여기 계시오!”
아마 아벨이 ‘야훼께서 당신들 머리 위에 계시오’ 하고 말했다 해도, 두 나병환자의―아벨이 말하는 동안에 다른 한 사람도 왔기 때문에―외침, 몸짓들, 열성이 이보다는 덜 갑작스럽고, 덜 공손했을 것이다. 그들은 바깥에 해가 쨍쨍 내리쬐는 암반 위로 뛰어나와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리며 부르짖는다.
“주님, 저희는 죄지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자비는 저희의 죄보다 더 큽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정말로 거기 계시는지, 아니면 아직 멀리 계시면서 그들에게로 오고 계시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그렇게 부르짖는다. 그들의 믿음은 참으로 커서, 눈꺼풀의 종양으로 인하여, 그리고 그들이 황급히 땅에 엎드렸기 때문에 그들의 눈이 틀림없이 보지 못하였을 것도 그들에게 보게 해준다.
“주님, 저희의 죄는 용서받기에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자비이십니다! 주 예수님, 당신의 이름으로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정의를 이길 수 있는 사랑이십니다.”
그들이 되풀이하여 외치는 동안 예수께서는 앞으로 나아가신다.
“나는 사랑이오. 그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내 위에는 아버지께서 계시오. 그런데 그분께서는 정의시오.”
예수께서 요한과 함께 오솔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시며 엄하게 말씀하신다.
두 사람은 일그러진 얼굴을 들고, 고름과 섞여서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 사이로 예수를 바라본다. 그 얼굴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소름끼치는 일이다. 늙었는가? 젊은가? 누가 하인이고, 누가 아세르인가? 그것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병은 그들을 공포와 혐오의 두 형체를 만들어 똑같게 만들어놓았다.
햇빛을 받아 금발머리를 빛내시며 오솔길 가운데 서 계시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실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예수를 바라보고 나서 얼굴을 가리면서 신음하는 것을 볼 뿐이다.
“야훼! 빛!”
그러고 나서 그들이 다시 부르짖는다.
“아버지께서는 구원하시도록 당신을 보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그분의 사랑받는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저희를 용서하시는 것을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용서요, 건강이오?”
“용섭니다.”
한 사람이 외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건강이오. 제 어머니는 저 때문에 상심하여 죽어갑니다.”
다른 사람이 외친다.
“내가 당신들을 용서한다 해도 사람들의 재판은 여전히 남아 있소. 특히 당신의 경우에는. 그러면 내 용서가 당신의 어머니를 행복하게 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소?”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기 위하여 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말을 하게 하시려고 시험하시며 말씀하신다.
“큰 도움이 됩니다. 제 어머니는 진짜 이스라엘 여인이십니다. 그분은 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죄를 너무 많이 지었기 때문에 천국을 기다리는 장소는 저를 위한 곳이 아닙니다.”
“당신의 말대로 당신은 너무 많은 죄를 지었소. “
“너무 많이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오! 그날 당신의 어머니께서도 거기 계셨습니다… 지금 그분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그분께서는 아벨의 어머니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만일 지금 그분께서 제 말을 들으신다면, 그분께서는 제 어머니를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의 어머니의 이름으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럼 그 다음에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그 다음에요?”
그들은 겁에 질린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의 유죄선고이고, 업신여김이거나 도망, 추방이다. 그들은 회복의 전망 앞에서 마치 구원을 잃는 것처럼 몸을 떤다.
사람들은 얼마나 생명에 집착하는가! 두 사람은 병이 고쳐지고 그 다음에 인간의 법에 의하여 유죄선고를 받느냐, 아니면 나병환자로 사느냐의 딜레마에 빠져 거의 나병환자로 사는 편을 택하다시피 한다.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며 말한다.
“형벌은 두렵습니다!”
특히 두 살인자 중 한 사람인 아세르가 말한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은 정의요. 당신은 그 형벌을 이 죄 없는 사람에게 전가하려고 했소. 당신은… 음란한 목적으로, 그리고 당신은… 한줌의 동전을 위하여.”
“그것은 사실입니다! 오 나의 하느님! 그러나 그분께서는 저희를 용서해주셨습니다. 당신께서도 저희를 용서해주십시오. 그것은 저희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저희의 영혼들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요엘의 아내는 간통한 여자였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었소. 그녀의 네 아이는 그녀의 천정 어머니와 함께 옹색하게 살고 있소. 왜냐하면 요엘의 형제들이 요엘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하여 그들을 사생아들이라고 쫓아냈기 때문이오. 당신들은 그것을 알았소?”
“아벨이 저희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들의 불행에 대하여 배상할 거요?”
예수의 목소리는 우레 같다. 그것은 참으로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목소리이고, 그래서 그것은 무섭다. 직사광선 아래서 홀로 꼿꼿하게 서 계시는 그분께서는 두려움 그 자체시다. 두 사람은 무서워하며 그분을 바라본다. 해가 그들의 상처들을 악화시키겠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햇볕을 온 몸에 받으시며 움직이지 않으신다. 영혼들의 이 시간에 자연의 힘은 그 능력을 잃는다…
한참 후에 아세르가 말한다.
“만일 아벨이 저를 완전히 사랑할 생각이라면, 그에게 제 어머니를 찾아가게 하시어 그분에게 하느님께서 저를 용서해주셨다고 말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아직 당신을 용서하지 않았소.”
“그러나 당신께서는 제 마음을 보실 수 있으시니 당신께서는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벨로 하여금 제가 제 소유물 전부를 요엘의 자녀들에게 주기를 원한다고 제 어머니에게 말하게 해주십시오. 제가 죽든 살든, 저는 저를 타락하게 만든 재산을 포기합니다.”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신다. 그분께서 미소 지으실 때 그분의 얼굴 모습이 변한다. 그분의 엄한 얼굴은 연민 가득한 얼굴로 바뀌고, 그분께서는 그렇게 변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나는 당신들의 마음을 볼 수 있소. 일어나시오. 그리고 당신들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들어 올려 그분을 찬미하시오. 당신들은 세상에서 격리되어 있으니 당신들이 가도 세상 사람들은 당신들을 알아보지 못할 거요. 세상은 당신들에게 고통당하고 속죄할 가능성을 주기 위하여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소.”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구원해주시는 겁니까?! 당신께서는 저희를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그렇소. 인생은 특히 당신들과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고통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을 살게 할 것이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당신들은 여기서 나올 수 없소. 아벨은 나와 함께 가야 하오. 그는 모든 히브리인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오.
아벨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오. 그가 돌아올 때 당신들의 병이 고쳐질 거요. 그는 당신들을 사제에게 데려갈 것이고, 당신의 어머니에게 알리는 일을 해줄 거요. 나는 아벨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에게 말해주겠소. 내가 당신들을 고쳐주지 않고 가도 당신들은 내 말을 믿을 수 있겠소?”
“예, 주님. 저희는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저희의 영혼을 용서해주신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해주십시오. 그것만은 지금 해주십시오. 그 다음에 당신께서 원하실 때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을 용서하오.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시오. 그리고 다시는 죄짓지 마시오. 당신들이 죄짓지 않는 것 외에도, 하느님의 눈앞에서 당신들의 빚을 완전히 갚게 하는 정의의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들의 빚이 실로 매우 크기 때문에 당신들의 속죄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특히 당신의 빚은 주님의 모든 계명과 관련된 것이오. 주님의 계명들을 생각하시오. 그러면 당신은 어떤 계명도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거요. 당신은 하느님을 잊었고, 당신의 육욕을 당신의 우상으로 만들었소. 당신은 명절들을 환각적인 게으름의 날들로 만들었고, 당신의 어머니의 마음을 상해드렸고, 그분을 불명예스럽게 해드렸소.
당신은 살인에 협력했고, 살인하기를 원했소. 당신은 생명을 훔쳤고, 한 어머니에서 그녀의 아들을 빼앗으려 했고, 네 아이에게 그들의 부모를 잃게 했소. 당신은 음란했고, 거짓 증언을 했고, 죽은 자기의 남편에게 충실한 여인을 음란하게 탐냈고, 아벨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하여 그를 없애기를 원할 정도로 그의 재산을 탐냈소.”
아세르는 모든 선고마다 신음한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당신들도 보다시피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처벌을 통하시지 않고도 당신들을 잿더미가 되게 하실 수 있었소. 그런데 그분께서는 내가 다른 한 사람을 더 구원할 수 있도록 당신들을 살려주셨소. 그러나 하느님의 눈은 당신들을 지켜보시고, 그분의 지성은 기억하고 계시오. 가시오.”
그분께서는 돌아서서 산비탈의 나무그늘 아래로 피해 들어간 아벨과 요한 곁의 숲으로 돌아오신다.
그리고 아직 일그러진 얼굴의 두 사람은 아마 미소 지으며―그러나 나병환자가 언제 웃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예수께서 위험한 오솔길로 산을 내려오시는 동안 나병환자들의 독특한 날카롭고 금속성이고 단속적인 목소리로 갑자기 음조를 바꾸어 가며 시편 114편을 노래한다.
“저 사람들은 행복하군요!”
요한이 말한다.
“저도 행복합니다.”
아벨이 말한다.
“저는 당신께서 저 사람들을 즉시 고쳐주실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요한이 다시 말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당신께서는 늘 그렇게 하시니까요.”
“그들은 큰 죄인들이었다. 이것은 그렇게도 많은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기다림이다. 이제는 들어라, 아나니아야…”
“주님, 제 이름은 아벨입니다”
놀란 젊은이가 마치 ‘그분께서는 왜 틀리셨을까?’ 하고 자문하듯이 예수를 쳐다본다.
예수께서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나에게 아나니아다. 왜냐하면 너는 정말 주님의 인자하심에서 태어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점점 더 아나니아가 되어라. 그리고 들어라. 장막절에서 돌아오는 길로 네 고장으로 가서 아세르의 어머니에게 그분의 아들이 결정한 것을 가능한 한 빨리 하시라고, 10분의 1만 남겨놓고 속죄하기 위하여 나머지 모두를 주라고 말해라. 이 10분의 1도 그 노모에 대한 동정으로 남겨주는 것이다.
그 노모는 너와 함께 갈릴래아의 베들레헴을 떠나 프톨레마이스로 가서 자기의 아들을 기다려야 하며, 그 아들은 너와 그의 동료와 함께 그의 노모와 합류해야 할 것이다. 너는 그 여인을 읍내에 있는 한 여자제자의 집에 계시게 한 다음에 가서 나병환자들의 정결의식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구하고,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그들을 떠나지 마라. 그리고 사제는 그들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어서는 안 되고, 다른 곳 출신의 사제라야 한다.”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 너는 네 집으로 돌아가거나 제자들과 합류해라. 그리고 병이 고쳐진 저 두 사람은 속죄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나는 필요불가결한 것만 말하고, 그 다음에는 사람이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들은 험한 길과 작열하는 햇볕에도 불구하고 지칠 줄 모르고 오랫동안 말없이 줄곧 내려온다…
그러다가 아벨이 침묵을 깨뜨리고 말한다.
“주님, 제가 당신께 은혜 하나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냐?”
“저를 제 고장으로 가게 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떠나는 것은 섭섭합니다만, 그 어머니는…”
“가거라. 그러나 지체하지 마라. 너는 늦지 않게 예루살렘에 도착해야 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가서 그 가엾고 늙은 영혼만을 만나겠습니다. 그분은 아세르가 죄지은 이래 모든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웃음을 되찾을 것입니다.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그분에게 무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그분의 눈물과 기도들이 은혜를 얻었고, 하느님께서 점점 더 희망을 가지라고 그분에게 격려하시며 강복하신다고 말씀드려라. 그러나 헤어지기 전에 한 시간만 쉬자. 그 이상은 말고. 지금은 쉴 때가 아니다. 그 다음에 너는 네 길을 가고, 요한과 나는 지름길을 통하여 우리 갈 데로 가기로 하자.
그리고 요한아, 너는 나보다 앞서서 내 어머니께 가거라. 너는 이 아마포 옷이 든 배낭을 가지고 가서 모직 옷들을 가지고 오너라. 내가 어머니를 뵙고 싶어 한다고 그분께 말씀드리고, 내가 마타티아의 숲 즉 그의 아내의 소유의 숲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말씀드려라. 너는 그 숲을 알지. 내 어머니께만 말씀드리고 즉시 돌아오너라.”
“저는 그 숲이 어디 있는지 압니다. 그러면 당신께서는? 당신께서는 혼자 남아 계실 겁니까?”
“나는 내 아버지와 함께 남아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께서 한 손을 들어 그분 곁에 풀에 앉아 있는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의 머리에 얹으신 다음에 그에게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우리는 저녁때까지는 그 숲에 가 있어야 한다…”
“선생님,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때 저는 피로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도 그것을 아시지요. 그리고 어머니께 가는 것은!… 저는 마치 천사들이 저를 운반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리고 그렇게 멀지도 않은 걸요.”
“기쁘게 갈 때는 결코 멀지 않다… 그러나 너는 밤에는 나자렛에서 자거라.”
“그럼 당신께서는요?”
“나는… 나는 내 어머니와 짧은 시간 동안 함께 있다가 내 아버지와 함께 있겠다. 그 다음에 나는 새벽에 길을 떠나 나자렛에 들어가지 않고 타보르 산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겠다. 내가 모레 새벽에 이즈르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너도 알지.”
“선생님, 당신께서는 매우 피곤하실 겁니다. 당신께서는 이미 피로하십니다.”
“겨울 동안에 우리는 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염려하지 마라. 그리고 너희가 여기서 평화롭게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언제나 평화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지 마라. 우리는 많은 지연들을 경험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생각에 잠겨 머리를 숙이시고 허기를 채우시기보다는 두 제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려고 그분 몫의 빵 조각을 조금씩 갉아 드신다. 젊은 두 사람은 선생님 곁에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며 맛있게 먹는다. 예수께서 빵을 드시는 것을 멈추시고 깊은 침묵에 잠기시자, 두 사람은 그것을 존중하느라 굵은 나무줄기들 아래 돋아나 있는 시원한 풀에서 맨발로 산바람을 즐기며, 그늘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그들은 졸기까지 하는데, 예수께서 머리를 드시고 말씀하신다.
“가자. 네거리에서 헤어지자.”
그들은 샌들 끈을 고쳐 맨 다음 출발한다. 숲의 그늘과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비록 한여름의 몇 달 동안처럼 무덥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더운 이 시간의 무더위를 견디도록 도와준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 > 7권 공생활 셋째 해(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사시7권 [479. 예수와 요한의 엔간님 도착] (0) | 2026.02.05 |
|---|---|
| 하사시7권 [477. 이즈르엘의 탑 근처에서 요하난의 농부들을 기다리며. 478. 엔간님을 향하여 다시 길을 가며] (0) | 2026.02.04 |
| 하사시7권 [476. 알패오의 요셉과 대화하시다] (0) | 2026.02.02 |
| 하사시7권 [475. 예수와 그분의 어머니께서 마타티아의 숲에서 만나시다] (1) | 2026.01.31 |
| 하사시7권 [473. 세포리스를 향하여 가며] (1) | 2026.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