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1~p7

473. 세포리스를 향하여 가며
1946. 8. 17.
“일어나라. 가자.”
예수께서 작은 개울 옆에 쌓여 있는 건초 위에서 깊이 자고 있는 사도들에게 명령하신다. 아마 건초라기보다는 골풀인 것 같다. 개울은 그 바닥을 물로 채우기 위해 가을비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잠이 덜 깬 사도들은 말없이 순종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배낭들을 집어 들고, 밤에 이불처럼 덮었던 겉옷들을 걸쳐 입고, 예수와 함께 길을 떠난다.
“우리는 카르멜 산을 거쳐 갈 겁니까?”
알패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아니다, 세포리스를 거쳐 갈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므기또로 가는 길을 따라갈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빠듯하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예. 그리고 무언가의 이유로 어떤 집에서도 우리를 받아주지 않을 때 밭에서 자기에는 너무 습기 차고 추워지는군요.”
마태오가 말한다.
“사람들! 그들은 얼마나 쉽게 잊어버립니까!… 주님? 그렇지만 항상 이와 같을까요?”
안드레아가 묻는다.
“그렇다, 항상.”
“그렇다면! 당신께도 사정이 이러하니 저희가 일할 때는 저희가 등을 돌리자마자 모든 것이 지워지겠군요.”
토마스가 낙담하여 말한다.
“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잊어버리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아주 쉽게 잊어버리니까요. 그러나 그들이 항상 잊어버리지는 않습니다. 저는 우리 사람들은 우리가 받은 것과 준 것들을 기억한다는 것을 압니다. 반면에 당신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에 대한 기억을 애써 지우는 사람들은 항상 같은 사람들입니다.”
베드로가 말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판단하지 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선생님, 저는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네가 근거를 가지고 있어? 자네는 무엇을 발견했나?”
가리옷 사람이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며 묻고, 동시에 다른 사도들도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나 유다는 더 열성이다. 나는 그가 불안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수를 쳐다보고 있던 베드로가 돌아서서 가리옷 사람을 쳐다본다… 그것은 재빠르고 주의 깊은 의심의 눈길인데, 베드로는 한동안 말없이 유다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베드로가 말한다.
“오!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자네가 들어도 된다면, 전부이기도 해. 만일 내가 성공하기 위하여 우리를 지배하는 자들에게 가서 많은 사실들을 밀고할 정도로 가능한 모든 방법들을 쓰는 데 안달이 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누군가가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거라고 확신하네. 그렇지만 나는 그쪽에서 도움을 얻기보다는 차라리 성공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네. 하느님에 관한 일에 있어 나는 그분의 도움만을 받아들이네.
그리고 만일 내가 파충류들을 으스러뜨리기 위하여 그들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면, 나는 하느님의 일들을 모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걸세. 그들 자신이 파충류들이라… 그래서… 나는 그들을 믿지 않네… 그들은 밀고당한 사람들과 밀고자들을 동시에 으스러뜨릴 수 있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스스로 행동하네. 그 뿐이야!”
“그렇지만 자네는 자네가 선생님을 모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나?”
“내가? 왜?”
“선생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시니까 말이야.”
“그분은 그분이셔. 그리고 만일 그분께서 그들에게 다가간다면 그분께서는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하느님께로 데려오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거야.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시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을 쫓아다니지는 않으셔… 자네도 보다시피… 그들의 말마따나 ‘철학자’의 말을 들으려면 그들이 그분께로 와야 하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들이 그렇게 열심을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슬퍼하지는 않네.”
“파스카 때는 자네도 기뻐하는 것 같았는데!”
“그분께서 그렇게 보이셨지. 사람은 어리석을 때가 아주 자주 있어. 그분께서는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 실제로도 그러시지 않고. 내 생각이 옳아.”
“영적인 일들에 인간적인 이해관계를 섞지 않는 인간으로서는 베드로, 네 말이 옳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빛에서 멀어지는 것을 기뻐하는 사도로서는 네 말이 옳지 않다. 만일 네가 빛으로 데려온 모든 영혼은 네 선생의 영광이라는 것을 숙고한다면, 너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가리옷의 유다는 조소적인 미소를 띠고 베드로를 쳐다본다. 베드로는 그것을 본다… 그러나 그는 자제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도 그것을 보시고 베드로를 상대로, 그러나 마치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는 좋은 목적을 위한 지나친 종교적인 조심성이 인간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무관심으로 모든 것을 간과하는 것보다 더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몇 차례 너희에게 말했는데, 한 행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선한 의지나 악한 의지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비록 그 형식에 있어서는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이익들과 우리가 하느님의 눈에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초자연적인 것들 안으로 가져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착한 뜻이다.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왔기 때문에 베드로의 불관용성은 옳지 않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들에 있어 타산적이거나 실용적인 인간의 도움을 구걸하지 않고, 그분의 초자연적인 도움에만 의지해야 한다는 그의 의견은 완전에 매우 가깝다.”
예수께서는 이 공정한 판단으로 말다툼을 종결시키신다.
그들은 여름의 더위로 인하여 바싹 마른 다른 개울바닥을 발에 물을 적시지 않고 건너 시카미논에서 사마리아로 가는 간선도로에 이르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곳은 내가 전에 본 곳이라고 생각한다.
임박한 명절로 인하여 길이 매우 붐비는데, 그것은 성전 순례가 의무인 시기에 팔레스티나의 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여행자들, 나귀들, 천막과 가구들을 싣고 사람들을 태운 마차들이 있는데, 천막과 가구들은 여행 도중에 쉴 때와 명절 때 계절이 허락하는 한 예루살렘 주위의 야산에서 야영하기가 권장될 정도로 항상 붐비는 예루살렘 자체에서의 숙박을 위한 것이다.
이번 장막절에는 전체가족들의 이동이 더 눈에 띄는데, 파스카나 오순절 때보다 순례자들이 더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날 동안 오두막집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명절 때는 집에 두는 가구를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피가 모든 정맥들에서 심장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사방에서 수도를 향하여 쏟아져 들어오는 민족의 대이동이다.
몹시 끈질기고 치밀한 이스라엘의 완고한 종교를―그들이 운명에 이끌려 어디에서 살든 동교인들이 서로를 도와주고, 그들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든, 국적이 다른 유다인이 자기가 만나는 동교인이 항상 자기의 형제이고 동포라고 느끼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지금이라도 이해하려면, 비록 그들이 흩어지고, 박해당하고, 멸시받고, 외관상으로는 참 조국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들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야훼께서 그들에게 주신 자기들의 조국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가지고 있다. 세계 전역으로부터 그들 존재의 가장 좋은 부분, 즉 그들의 영혼과 마음이 그곳으로 모여든다. 그들이 죄지었는가? 하느님께서 그들을 벌하셨는가? 예언들이 실현되었는가?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빛나는 희망 즉 이스라엘왕국의 재건과…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는… 밝은 명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 문책 받을 일을 하지 않았나하는 두려움으로 떠는 고통 속에서, 그리고 ‘그런데 나자렛의 예수는 참 메시아였는가?’라는 영원한 질문을 하며 그들은 메시아를 가지기 위하여 하나의 국가를 재구성하려고 애쓰고,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자격을 얻고,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기 위하여 그들의 종교 안에서 자신들의 확고한 믿음을 보존하려고 애쓴다.
나는 하찮은 여자라 정치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현재의 유다인들과 그들의 고초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심지어 이미 오셨고,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분을 그들이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비웃기까지 했고, 그들의 눈물을 어쩐지 악어의 눈물처럼 느꼈고, 그들의 행동들은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바라는 희망, 마지막 날에만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할 자격뿐 아니라 흩어져 있는 유다인들을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 재건하는 것마저도 얻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현재의 유다인들의 조상들을 영적으로 보는 지금 나는 그들의 오랜 세월 동안의 비극, 그들의 끈기, 그 끈기의 근원을 이해한다. 그들은 여전히 하느님의 백성들이고, 그분의 뜻에 의하여 그들의 조상들과 성조들에게 언약된 땅을 향하여 모여들고, 오랜 세월 동안 예루살렘을 생각하고 모리아산 위에서 빛나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생각하며 모세의 의식을 행하여 왔다. 그들이 그곳으로 가는 것을 방해받고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들은 그곳으로 간다.
총검들, 대포들, 감옥은 사람을 억누르는 데 이바지하지만, 영혼을 억누를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그 종교를 보존했기 때문에 멸망할 수 없다. 그것이 이론적이고 바리사이적이고, 종교의 참된 생명인 영혼과 물질적인 의식의 일치가 결여되어 있는 의식적(儀式的)인 종교라고?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한 나라였다가 파괴되어 전 지구에 걸쳐 흩어져 있는 무수한 파편들이 된 이 무리의 주위에는 그들의 일치를 유지시키는 예언자들과 라삐들에게서 오는 사상들, 의식들, 오래된 계명들의 유대들이 있고, 세계 어디에서나 보이는 등대와도 같은 한 장소가 빛나고 있으니, 그것은 예루살렘이다. 그 이름은 그들 모두를 결집시키는 외침과도 같고, 그들의 기억을 일깨우는 깃발과도 같으며, 하나의 상징, 하나의 약속이다. 아니다. 어떠한 인간의 힘으로도 이 사람들을 침묵하게 할 수 없다. 이 민족 안에는 인간의 힘 이상의 힘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이 사람들이 성도로 가고 있는 기쁨으로 인하여 고생스러움을 무릅쓰고 불편한 계절에 힘든 길을 따라 가는 것을 보면 이해된다. 그것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아이들이 노인들과 함께 팔레스티나 또는 디아스포라에서 그들의 심장인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것을 보면 이해된다. 그것은 그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들으면 이해된다…
솔직히 말하면 그리스도인인 나는 가톨릭신자인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가톨릭교회의 중심인 로마와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그 안에서 사시는 분인 현재의 베드로에게 내가 지금 지치지도 않고 계속 가는 것을 보고 있는 이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나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기 때문에 완전한 우리의 믿음에 더하여 그들이 가진 것을 우리도 가지기를 바란다.
누군가가 반대할 수 있다. ‘그들은 오류로 가득 차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 우리에게는 결점이 없는가? 은총과 성사들로 강화되어 온 우리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똑같이 완전해야’ 할 우리가 말이다.
내 말은 주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가고 있는 사도들의 걸음을 따라가면서 내 생각이 움직인 것이다…
일단의 제자들이 한 교차로에서 선생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에워싼다. 그들 중에는 베들레헴의 아벨이 있는데, 그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리며 말한다.
“선생님, 저는 제가 당신을 만나게 해주십사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아주 많이 기도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희망을 버렸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당신께 당신의 제자의 청을 들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아벨아,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저기 밭 가장자리로 가자.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그들에게 방해가 되고 있다.”
그들 모두는 무리지어 예수께서 가리키신 지점으로 간다. 거기에서 아벨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를 죽음과 중상에서 구해주셨고, 당신의 제자들 중 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저를 아주 많이 사랑하십니까?”
“네가 어떻게 그것을 나에게 물을 수 있느냐?”
“저는 당신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하여 당신께 여쭙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구해주실 때 당신께서는 무시무시한 징벌로 제 원수들을 처벌하셨습니다. 당신께서 내리신 벌이니 그 벌은 정당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오! 주님! 그 벌은 참으로 소름끼칩니다! 저는 그 세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제 어머니를 뵈러 올 때마다 그들을 제 고장에서 가까운 산들에서, 동굴들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너는 왜 그들을 찾아보았느냐?”
“주님, 그들에게 당신에 대하여 말하려고요. 그들이 당신을 믿고 당신을 불러 용서받고 치유 받게 하려고요. 저는 겨우 여름에야 그들을 찾아냈는데, 그들은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 제 어머니 때문에 저를 미워했었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헤어졌는데, 그들은 저기 지프타엘의 가장 높은 산 쪽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그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를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에 당신께 숙소를 제공했던 베들레헴의 목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행방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자들은 양떼를 데리고 사방으로 아주 많이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목자들은 제가 찾고 있던 두 나병환자들이 아름다운 샘의 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로 갔습니다. 오…”
아직 청소년인 그 젊은이의 얼굴에 공포의 빛이 나타난다.
“계속해라.”
“그들은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저는 그 두 괴물들을 제 동향인들로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불렀고… 마치 제가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에게 간청했습니다. 특히 하인은 그의 진실한 뉘우침으로 인하여 저에게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주님, 그는 당신의 용서만을 원합니다… 아세르는 병도 고쳐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그에게는 노모가, 읍내에서 상심하여 죽어가는 노모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그는 왜 떠났느냐?”
“그는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장 죄가 큰 사람이고, 이미 간통자였다가 살인자가 되었고, 아세르를 부추겼고, 약간 어리석고 쉽게 남의 말에 설득되는 요엘의 하인을 매수했고, 계속 마귀 노릇을 합니다. 그의 입에서는 증오와 저주가 나오고, 그의 마음에서는 증오와 잔인함이 나옵니다.
저는 그 사람도 보았습니다… 저는 그가 착해지도록 그를 설득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독수리처럼 저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제가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빨리 달려 멀리 도망칠 수 있어 저는 겨우 위험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구원할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또 갈 것입니다… 저는 구호물자와 사랑을 가지고 한 번, 두 번, 여러 번 가서 저를 사랑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는 제가 자기의 파멸을 비웃으러 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난 저는 그 파멸을 재건하려고 갑니다. 만일 그가 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는 제 말을 귀담아들을 것이고, 그가 제 말을 귀담아듣는다면, 그는 마침내 당신을 믿고야 말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오! 다른 사람들은 쉬웠습니다. 그들은 묵상했고, 스스로 이해했으니까요. 그런데다가 하인은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용서받겠다는 큰 갈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박한 선생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주님, 가십시다! 저는 제가 어디서든 당신을 만난다면, 당신을 모시고 가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아벨아, 그들의 죄는 중대한 것이었다. 하나의 죄 안에 여러 죄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속죄했을 뿐이다…”
“그들의 고통은 컸고, 그들의 뉘우침도 컸습니다. 부디 가주십시오.”
“아벨아, 그들은 네 죽음을 원했었다.”
“주님,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생명을 주기를 원합니다.”
“어떤 생명을?”
“당신께서 주시는 생명, 영혼의 생명, 용서, 구속을 주기를 원합니다.”
“아벨아, 그들은 네 카인이었고, 더할 나위 없이 너를 미워했었다. 그들은 너에게서 모든 것, 네 생명, 명예, 네 어머니를 빼앗아가려고 했었다…”
“그들은 저의 은인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로 인하여 제가 당신을 모시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그들이 저에게 준 이 선물로 인하여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있는 곳에, 당신의 추종자들 중에 그들도 있게 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저는 제 구원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구원도 원합니다. 그들의 죄가 더 크니 제 구원보다 그들의 구원을 더 원합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신다면, 그들의 구원에 대한 대가로 너는 그분께 무엇을 바치겠느냐?”
아벨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 있게 말한다.
“저 자신을요. 제 목숨도요. 저는 하늘을 소유하기 위하여 한 줌의 쓰레기를 잃을 것입니다. 행복한 손실입니다. 그리고 크고 무한한 이익 즉 하느님과 하늘을 얻고, 두 죄인이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제가 당신께 데려와서 바치기를 바라는 양떼의 맏이들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공공연하게는 한 번도 하셨던 적이 없는 몸짓을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벨보다 키가 훨씬 더 크시기 때문에 고개를 숙여 그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으시고 그의 입에 입 맞추시며 말씀하신다.
“그렇게 되기를.”
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라나 타’가 적어도 이런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분께서는 덧붙이신다.
“네 감정으로 인하여 네가 청하는 대로 되기를 바란다. 나와 함께 가자. 네가 나를 인도해라. 요한아, 나와 함께 가자. 그리고 너희 모두는 므기또를 거쳐 엔간님으로 가는 길로 먼저 가거라. 그전에 너희가 나를 만나지 못하면, 거기서 기다려라.”
“그럼 저희는 당신과 당신의 가르침을 전하겠습니다.”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아니다. 그저 의롭고 보잘것없는 순례자들처럼 처신하면서 나를 기다리기만 해라.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서로 형제들인 것처럼. 그리고 가는 길에 요하난의 농부들에게 들러서 너희가 가진 것을 주고, 가능하다면 선생님께서 모레 새벽에 이즈르엘을 거쳐 갈 것이라고 말해라. 가거라.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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