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6권 공생활 셋째 해(2)

하사시6권 [428. 예수, 떨어진 새둥지와 바리사이. 429. 에스드렐론 평야에서의 여행이 계속되다]

Skyblue fiat 2025. 11. 29. 07:59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237~p244

 

428. 예수, 떨어진 새둥지와 바리사이

1944. 6. 16. 나중에, 오전 10:30

나는 흰 튜닉을 입고 암청색 겉옷을 어깨 위로 걸치고 계시는 예수께서 나무가 우거져 있는 작은 길을 따라 걸어가고 계시는 것을 본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길 양쪽에 있는 우거진 길이다.

좁은 오솔길들이 초록 숲 사이로 이리저리 나 있지만, 그들이 자주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 같지는 않다.

이것은 주민들의 농지를 가로질러 서로 가까이 있는 두 마을을 연결하는 길인 것 같다. 들은 평탄하고, 멀리 산들이 보인다.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도들과 말씀하시다가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시며 귀 기울이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숲속의 작은 오솔길로 들어가 키 작은 나무들과 관목들이 넓게 펼쳐져 있는 곳을 향하여 가신다. 그분께서는 몸을 숙여 무언가를 찾으신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분께서는 발견하신다.

풀 속에 새둥지 하나가 있다.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으레 그렇듯이 땅이 축축하고 여전히 나뭇가지들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이 폭풍우로 인하여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손댔다가 한 배의 새 새끼를 들고 가다가 들키지 않으려고 그것을 거기 내버려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모른다. 나는 단지 건초로 짜여 있고, 마른 나뭇잎들과 나무들의 솜털과 양털이 가득 들어 있는 작은 새둥지와, 그 속에서 불그스름하고, 깃이 없고, 크게 벌린 부리들과 툭 튀어나온 눈들로 인하여 꽤나 보기 흉한, 부화된 지 며칠밖에 안 되는 다섯 마리의 새끼 새들이 몸을 흔들며 짹짹거리고 있는 광경만을 볼 뿐이다. 나무 위 높은 곳 위에서 어미 새들이 필사적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조심스럽게 작은 둥지를 집으신다. 그분께서는 둥지를 손바닥의 오목한 부분에 올려놓으시고, 그것이 있었던 곳이나 안전하게 놓아둘 수 있을 곳을 찾으신다. 그분께서는 안전해 보이는 숲속 깊은 곳에서 마치 작은 바구니처럼 보이는 아주 촘촘하게 엉켜 있는 가시덤불을 찾아내신다. 그분께서는 그 둥지를 베드로에게 맡기신 다음에 그분의 양팔이 가시에 긁히는 것에 개의치 않으시고, 길고 넓은 소매를 걷어 올리시고 나서 뒤엉켜 있는 가지들을 더 오목하게 만들어 더 안전하게 만드는 일을 하신다. 나이 지긋하고 땅딸막한 사람이 짧고 투박한 두 손으로 작은 새둥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다 되었다. 그분께서는 새둥지를 다시 받아 그 덤불 위에 올려놓으시고, 매우 가느다란 갈대들처럼 보이는 원통형의 긴 풀잎으로 그것을 고정시키신다. 이제 새둥지는 안전하다.

예수께서는 비켜서시며 미소 지으신다.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배낭을 어깨에서 허리로 비스듬히 메고 있는 한 사도에게 빵조각 하나를 달라고 하여 그것을 부스러뜨려 땅바닥, 돌 위에 뿌리신다. 이제 예수께서는 만족하신다. 그분께서 큰 길로 돌아오시려고 돌아서시자 어미 새들이 기쁨으로 지저귀며 구출된 둥지 위로 날아 내려온다.

소그룹의 사람들이 길옆에 서 있다. 예수께서는 그분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발견하시고, 그들을 바라보신다. 그분께서 새둥지를 주우실 때는 그토록 동정적이었고, 그분께서 그것을 안전하게 자리잡아주셨을 때는 그토록 행복하셨던 그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매우 엄격해져서 침울해 보이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예기치 않은 목격자들을 계속 바라보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은밀한 생각과 함께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시는 것 같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오솔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실 수 없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침묵하신다.

그러나 베드로는 잠자코 있지 않고 말한다.

“선생님께서 지나가시게 해주시오.”

“나자렛 사람이여, 조용히 하시오.”

그중 한 사람이 말한다.

“어떻게 당신의 선생님이 서슴지 않고 내 숲에 들어가고, 안식일에 육체노동을 했단 말이오?”

예수께서는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신다. 그것은 미소이기도 하고, 미소가 아니기도 하다. 그것은 미소라 해도 긍정의 미소는 아니다. 베드로가 대답하려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물으신다.

“당신은 누구요?”

“이 땅의 주인 요하난 벤 자카이요.”

“고명한 율법학자시군요. 당신은 무슨 연유로 나를 비난하시오?”

“안식일을 더럽혔다는 거요.”

“요하난 벤 자카이, 당신은 신명기를 아시오?”

“당신이 그것을 나에게 묻고 있소? 이스라엘의 진정한 라삐인 나에게?”

“당신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나는 아오. 나는 율법학자가 아니고, 보잘것없는 갈릴래아 사람이기 때문에, ‘라삐’일 수 없다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당신에게 다시 묻겠소. ‘당신은 신명기를 아시오?’”

“나는 확실히 당신보다 더 잘 알고 있소.”

“문자대로 말이지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원한다면 확실히 그렇소. 그러나 당신은 그 진정한 의미를 아시오?”

“말해진 것은 말해진 것이오. 거기에는 한 가지 의미밖에 없소.”

“사실이오, 거기에는 한 가지 의미밖에 없소. 그것은 사랑의 의미요. 혹여 당신이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것은 자비의 의미요. 혹여 그렇게 부르는 것도 당신에게 거슬린다면, 인정(humanity)의 뜻이라고 부르시오. 신명기는 말하오. ‘만일 네 형제의 양이나 소가 길을 잃은 것을 보면, 그들이 네 가까이에 있지 않더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것들을 그에게 데려다주거나 그가 찾으러 올 때까지 그것들을 붙잡아두어라.’

신명기는 또 말하오. ‘만일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쓰러지는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그를 도와서 나귀나 소를 일으켜라.’ 신명기는 또 말하오. ‘만일 나무 위나 땅에서 새끼들이나 알들을 품고 있는 어미가 있는 새둥지를 만나거든, (어미는 생식을 하게 되어 있어 거룩하니) 어미는 잡지 말고 새끼들만 가져가라.’

나는 땅에 떨어진 새둥지와 그 새둥지 위에서 우는 어미 새를 보았소. 나는 그 새가 어미이기 때문에 불쌍히 여겨 새끼들을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소. 나는 한 어미를 위로함으로써 안식일을 어기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소.

우리는 우리 형제의 양이 길을 잃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지요. 율법은 안식일에 나귀를 일으키는 것이 죄라고 말하지 않소. 율법은 다만 우리는 우리 형제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하느님의 피조물인 나귀에게 인정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오.

나는 하느님께서 생식하도록 그 어미 새를 만드셨고, 어미 새는 하느님의 명을 따랐고, 그래서 그 어미 새가 새끼를 기르는 것을 막는 것은 그 어미 새가 하느님의 계명에 복종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소.

그러나 당신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오.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은 글자는 고려하지만, 영은 고려하지 못하오.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정신의 사소함으로 비하함으로써 하느님의 명령에 끼어들고, 여러분의 이웃을 향한 사랑을 결여함으로써 이중으로, 아니 삼중으로 안식일을 어기오.

당신들은 비난함으로써 모욕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말을 하는 것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그것 역시 유익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은 하나의 일인데, 당신들에게는 그것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 거요.

요하난 벤 자카이,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오늘 당신은 검은머리꾀꼬리 한 마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바리사이적 관행에 따라 그 어미 새를 고통으로 죽게 할 것이고, 그 새끼들을 독사들이나 악한 사람들의 처분에 맡겨 죽게 할 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내일 당신은 한 어머니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녀를 비참한 죽음으로 죽게 할 것이고 그녀의 자식을 죽게 하면서, 당신들의 법에 대한 존중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거요.

하느님의 법이 아니라 당신들의 법 말이오. 당신과 당신의 동류들이 약자들을 압제하고 강자들인 당신들이 승리하기 위하여 만든 법 말이오.

하지만 보시오. 약자들은 항상 구세주를 만나오. 반면 교만한 사람들, 세상의 법률로 보아서 강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 자신의 무거운 법에 깔려 으스러질 것이오.

요하난 벤 자카이, 안녕히 계시오. 이 시간을 기억하고, 당신이야말로 당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만족감으로 다른 안식일을 어기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예수께서는 분노로 인하여 얼굴이 새빨개진 성마른 늙은이의 얼굴을 무서운 안광으로 아래로 내려다보신다. 율법학자는 키가 작고, 비만하고, 예수께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종려나무처럼 키가 훤칠하시기 때문이다. 율법학자가 길을 비켜주지 않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풀을 밟으며 옆으로 지나가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비록 이것이 복음서들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참된 환시로 네 영혼을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이것은 너를 위한 가르침이다. 나는 둥지 없는 작은 새들에게 크나큰 연민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 이름이 검은머리꾀꼬리가 아니라 마리아나 요한이라 해도 말이다.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그들이 둥지를 잃게 된다면, 나는 그들에게 다시 둥지를 주려고 주의를 기울인다.

이 가르침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율법의 말을 아는 사람은 너무 많다. 모두가 알아야 하기 때문에 별로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말들’만을 안다. 그들은 그것들을 살지 않는다. 그것이 잘못이다.

신명기는 인도적인 법들을 규정했는데, 그 이유는 그때 사람들은 영적 유치함으로 인하여 잔인했고, 반쯤은 야만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짐승 한 마리를 잃은 형제와 넘어진 짐승과 알을 부화시키기 위하여 앉아 있는 새에 대한 연민, 존중, 사랑의 꽃길들을 따라 더 높은 연민, 존중, 사랑으로 올라가도록 가르침 받기 위하여 손을 잡힌 채로 인도되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왔을 때 나는 모세의 규칙들을 완성했고, 더 넓은 지평들을 열어주었다. 문자는 더 이상 ‘모든 것’이 아니었고, 영이 ‘모든 것’이 된 것이다. 한 새둥지와 그 둥지 안에 있는 새끼 새들에 대한 작은 인정어린 행위 너머, 내 몸짓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창조주의 아들인 내가 창조주의 작품 앞에서 몸을 숙였다는 것이다. 그 새끼 새들도 그분의 작품이다.

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볼 줄 알고, 흠숭하는 사랑의 영으로 그분을 섬길 줄 아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리고 뱀들처럼 자신들의 오염 위로 머리를 들 줄 모르고, 자기의 형제들의 일 안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께 찬미가들을 부를 수 없어 그들을 질식시키는 독의 과잉으로 인하여 자기 형제들을 무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더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며 자신들의 사악함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법에 대한 존중으로 인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느님의 법이 아닌 그들의 법 말이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께서 그들의 악행들을 중지시키실 수는 없다 해도 그분의 ‘작은 자들’의 원수를 갚아주실 줄은 아신다.

이 교훈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바란다. 깨어 있는 내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429. 에스드렐론 평야에서의 여행이 계속되다

 
1946. 5. 6.

이 사건 후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걸어간다. 그들이 밭들 가운데 있는 도로 교차점에 이르렀을 때,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다 왔습니다! 이 길로 가면 우리는 미카의 집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리로 갈 겁니까? 분명히 그는 우리를 학대하려고 자기의 소유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농부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야고보의 말이 옳습니다. 그리로 가지 마십시오.”

가리옷 사람이 조언한다.

“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내가 그리로 갈 것이라고 그들에게 전갈을 보냈다. 그들의 마음은 즐거워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위로하러 가고 있는 친구이다.”

“당신께서는 다음에도 가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체념할 겁니다.”

유다가 자기의 양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네가 바라왔던 어떤 것을 빼앗기면, 너는 그리 쉽게 단념하지 않는다.”

“제 일들은 중대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일은…”

“그런데 마음을 완전하게 하고 위로해주는 것보다 더 중대하거나 큰일이 무엇이냐? 모든 것이 그 농부들의 마음을 평화와 희망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애쓴다… 그들에게는 내세라는 한 가지 소망밖에 없고, 거기 가는 데는 내 도움이라는 한 가지 희망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천국에 가는 데 있어 내 도움이라는 한 가지 수단만을 가지고 있다. 나는 돌에 맞아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들을 만나러 가겠다.”

“안 됩니다! 형제, 안 됩니다, 주님!”

알패오의 야고보와 열성당원이 함께 말한다.

“그것은 그 불쌍한 하인들을 벌 받게 하는 데에나 소용될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하셨지만, 요하난은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상황을 참았지만,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 그에게 가거나 그를 받아들이는 하인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하느님께 버림받은 자이고, 마귀다. 나는 내 집안에 부패가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한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그 하인들을 죽여야 한다 해도 그 저주받은 자와의 마귀적 애착에서 그들을 고쳐놓겠소.”

예수께서는 고개를 숙이시고 곰곰 생각하시고… 괴로워하신다. 그분의 고통은 분명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슬퍼한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토마스의 실용적인 침착성이 이 상황을 해결한다.

“이렇게 합시다. 우리는 안식일을 어기지 않도록 해질 때까지 여기 머무릅시다. 그 동안에 우리 중 한 사람이 그 집들로 잠입하여 말합니다. ‘한밤중에 세포리스 밖 샘으로 오시오.’ 그리고 우리는 해진 다음에 그리로 가서 세포리스가 있는 산 아래의 작은 숲에서 그들을 기다립니다.

당신께서는 그 불행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위로해주시고, 동틀 녘에 그들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야산을 넘어 나자렛으로 가고요.”

“토마스의 말이 옳다. 브라보, 토마스!”

여러 사람이 말한다.

그러나 필립보가 자기 의견을 말한다.

“그런데 누가 가서 그들에게 알리나? 그는 우리 모두를 알고 있고, 그가 우리를 볼지도 모르는데…”

“시몬의 유다가 갈 수 있을 거야. 유다는 바리사이들을 잘 아니까…”
안드레아가 악의 없이 말한다.

“자네는 무엇을 암시하려고 애쓰고 있나?”

유다가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나? 아무것도. 자네가 아주 오랫동안 성전에 있었고 거기에 절친한 친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네가 그들을 안다고 나는 말하고 있네. 자네는 그것을 늘 자랑하지. 그들은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야…”

온유한 안드레아가 말한다.

“그것을 전혀 믿지 마. 아무도 그걸 믿으면 안 돼. 만일 우리가 여전히 클라우디아에게 보호받고 있다면, 혹시… 내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왜냐하면 지금은 간단히 말해서, 그 여자는 발을 뺐어, 맞지요, 선생님?”

“클라우디아는 계속 현인(the Wise Man)을우러러보고 있다. 그 여자는 다른 것이나 그 이상의 것을 한 적이 없다. 그 여자는 이 감탄으로부터 참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건너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만 흥분한 정신만이 그 여자가 나에게 다른 감정들을 품었다고 믿을 수 있었다. 설령 그 여자가 그런 감정을 품었다 해도, 나는 그것들을 원치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교를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그리스도교적 믿음으로 바꾸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 편에서 우상숭배가 될 것, 즉 보잘것없는 인간의 옥좌 위의 보잘것없는 우상인 인간에 대한 숭배는 받아들일 수 없다.”

예수께서는 마치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강의하시듯이 아주 조용하게 이 말씀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말투는 참으로 결연하여 그분의 사도들 중에서 그 방향으로의 모든 가능한 일탈을 억제하시려는 그분의 의향과 결심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도 남겨놓지 않으신다.

따라서 아무도 인간적인 왕권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묻는다.

“그럼 저희는 농부들에게 어떻게 할까요?”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제안했으니, 만일 당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설마 바리사이들이 저를 잡아먹기야 하겠습니까…”

토마스가 말한다.

“가거라. 네 사랑이 축복받기를.”

“오! 선생님, 이건 사소한 것입니다!”

“토마스야, 이것은 아주 위대한 일이다. 너는 네 형제들 즉 예수와 농부들의 갈망들을 이해한다. 그리고 너는 그들에 대하여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육체 안의 네 형제(your Brother in the flesh)가 저들을 대신해서도 너를 축복한다.”

예수께서 그분 앞에 숙인 토마스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러자 토마스는 깊이 감격하여 속삭인다.

“제가… 당신의… 형제라고요?! 주님, 그것은 너무 큰 영광입니다. 저는 당신의 종이고, 당신께서는 제 하느님이신데… 그건 좋습니다… 가겠습니다.”

“자네 혼자 가겠다고? 나도 가겠네!”

타대오와 베드로가 말한다.

“아니야, 자네들은 너무 성급해. 나는 모든 것을 웃음으로 바꿔놓을 수 있어… 어떤 성격의… 사람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최선의 방법이지. 자네들은 즉시 분노하지… 나 혼자 가겠어.”

“나도 가겠네.”
요한과 안드레아가 말한다.

“오! 그래! 자네 둘 중의 한 사람은 좋아. 그리고 열성당원 시몬이나 알패오의 야고보와 같은 사람도.”

“아니야. 나는 결코 발끈하지 않아. 나는 조용하게 행동해.”
안드레아가 고집한다.

“가세.”

그들이 한 방향으로 떠나고, 예수와, 그분과 함께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른 방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