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227~p237

426. 포도밭과 자유의지의 비유
1946. 5. 4.
“내 벗들아, 너희에게 평화. 주님께서는 선하시다. 그분께서는 형제들 간의 식사를 위하여 우리를 모이게 하셨다. 너희는 어디로 가고 있었느냐?”
예수께서 햇볕을 피하시기 위하여 숲속으로 들어가시며 목자였던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어떤 사람들은 바다로, 어떤 사람들은 산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함께 왔었는데, 길에서 다른 집단들이 줄곧 합류하여 수가 점점 불어났습니다.”
레바논에서 목자로 일했던 다니엘이 말한다.
“예, 저희 두 사람은 저희가 양떼를 치던 대 헤르몬 산에 가서 사람들의 마음에 양식을 주고 싶습니다.”
그의 동료 벤야민이 말한다.
“좋은 생각이다. 나는 얼마 동안 나자렛에 가 있다가 엘룰 달 초까지 카파르나움과 벳사이다에 있겠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필요한 경우에 너희가 나를 만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앉아라, 우리의 음식을 함께 모아 공평하게 나누자.”
그들은 자기들의… 재물 즉 비스킷, 치즈, 절인 물고기, 올리브, 몇 개의 달걀, 맏물 사과 따위를… 천위에 펼쳐놓음으로써 예수의 말씀에 따른다. 예수께서 그것들을 바치시고 강복하신 다음에 그들은 자기들이 기꺼이 음식을 내놓았듯이 기쁘게 그것들을 나눈다.
그들은 예기치 않았던 이 사랑의 잔치를 몹시 기뻐한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는 기쁨으로 인하여 피로와 더위를 잊는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했는지 물으시고, 조언하시거나 그분께서 하셨던 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지금은 무더운 날의 매우 더운 시간이라 졸릴 텐데도 그들은 기쁨에 겨워 아무도 졸지 않는다. 식사가 끝나자 그들은 남은 음식들을 모아 똑같은 분량으로 나누어 배낭에 다시 넣은 다음 야산의 숲속에서 가장 그늘진 곳을 찾아가 나무 그늘에서 예수의 주위에 둘러앉아 삶과 가르침의 실제적 지침으로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비유를 말씀해달라고 청한다.
예수께서는 지금은 밀 수확이 끝나 밭들에는 아무것도 없으나 포도밭과 과수원이 많은 에스드렐론 평야를 바라보고 앉아 마치 그분께서 보시는 것 중에서 주제를 찾고 계시는 듯 정경을 둘러보신 다음 미소 지으신다. 그분께서는 찾아내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일반적인 질문으로 말씀을 시작하신다.
“이 평야의 포도원들이 아름답지?”
“예,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것들은 포도송이들이 이례적으로 많이 달린 채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잘 관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가 많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저 포도나무들은 매우 가치있는 식물들임에 틀림없다…”
예수께서 넌지시 말씀하신 다음 결론을 내리신다.
“이 평야는 부유한 바리사이들의 소유지들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들은 비용을 아끼지 않고 훌륭한 묘목들을 가져다 경작하였다.”
“오! 만일 끊임없이 돌보지 않았다면, 가장 좋은 묘목을 사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제 모든 밭에 포도를 기르고 있기 때문에 이 일에 있어서는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지금 제 아우들이 계속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선생님, 포도를 수확할 때 제가 작년에 드렸던 것과 같은 포도를 올해는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사십 세 가량의 건장한 남자가 말한다. 나는 이미 그 사람을 보았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클레오파, 자네의 말이 맞네. 훌륭한 과일들을 얻는 모든 비결은 자기 땅을 돌보는 것이야.”
다른 사람이 말한다.
“훌륭한 열매들과 훌륭한 이득입니다. 만일 땅이 우리가 땅에 들인 만큼만 소출을 낸다면, 그것은 나쁜 투자가 되겠지요. 땅은 우리가 그 땅에 지출한 자본의 과실을 내야 하고, 덧붙여 우리 재산을 불릴 수 있는 이득을 얻게 해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버지는 자기의 재산을 자기 아들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땅이든, 돈이든 한 재산으로 그는 각각의 아들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자기의 자녀들의 수만큼 쪼개어 상속재산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저희의 자녀들을 위하여 저희 재산을 늘리는 것으로 인하여 비난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클레오파가 주장한다.
“네가 정직한 일로, 그리고 정직한 방법으로 그 재산을 얻는다면, 너는 비난받지 않는다. 그럼 너는 심겨진 묘목들의 좋은 품질에도 불구하고 이득을 얻으려면 그것들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최초의 포도송이들을 수확하기 전에요…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 포도를 얻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왜냐하면 농부는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묘목들에 잎들만 달려 있을 때도 일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것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강해졌을 때는 쓸데없는 가지들과 해충들이 없는지, 그리고 기생식물이 토양을 황폐화시키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포도나무의 햇가지들이 관목들의 잎이나 덩굴식물에 의하여 질식되지 않게 해야 하고, 포도나무 주위를 원형으로 파서 이슬이 스며들게 하고, 물이 다른 곳보다 좀 더 오래 고여 있게 하여 포도나무에 수분을 공급해주게 해야 하고, 거름을 뿌려주어야 합니다…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힘들다 해도 그것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마치 포도송이 하나하나가 보석들의 무더기로 보일 정도로 몹시 달콤하고, 몹시 아름다운 포도가 바로 그 검고 악취 나는 거름을 빨아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농부는 잎들을 따주어 햇빛이 포도송이들을 비추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농부는 포도수확이 끝나면 포도나무들을 잡아매고, 가지를 치고, 묶고, 뿌리들을 서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짚과 거름으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겨울 동안에도 그는 바람이나 어떤 부랑자가 지주목들을 뽑지나 않았는지, 날씨로 인하여 가지를 지주에 붙잡아매는 데 사용된 실가지들이 풀어지지나 않았는지 가서 보아야 합니다…
오! 포도나무가 완전히 말라죽기 전까지는 언제나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도 죽은 포도나무를 땅에서 파내고, 새 묘목을 받아들이도록 땅에서 모든 뿌리들을 제거하는 일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포도나무 덩굴과 엉켜 있는 죽은 포도나무 덩굴들을 제거하려면 날렵한 손과 빈틈없이 깨어 있는 눈으로 얼마나 참을성 있게 일해야 하는지 당신께서는 아십니까? 만일 누군가가 어리석게, 그리고 둔한 손으로 일한다면 얼마나 큰 손해가 야기될는지요!
그것을 알려면 그 일을 해봐야 합니다!… 포도나무요? 그것은 어린이들과 비슷합니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 육체와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게 해주려면 우리는 얼마나 힘들게 일해야 합니까!…
그러나 제가 줄곧 말하고 있어 당신께서 말씀하시지 못하게 하고 있군요…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비유 하나를 말씀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요…”
“실상 네가 이미 비유를 말했다. 네 결론을 적용하고, 영혼들이 포도나무들 같다고만 말하면 충분할 것이다…”
“아닙니다, 선생님! 당신께서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저는… 저는 쓸데없는 말만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스스로는 적용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좋다. 들어라.
우리가 우리 어머니의 태 안에 동물인 육체(an animal body)를 가지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미래의 사람을 그분을 비슷하게 만드시려고 영혼을 창조하여 태중에서 형성되고 있는 몸 안으로 주입하셨다. 사람은 그가 태어날 때가 되어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영혼은 철들 나이(the age of reason)에 이르기까지는 그 주인에 의하여 경작되지 않은 채로 남겨진 땅과 같았다. 그러나 그가 철들 나이가 되자, 그는 이치를 따지고 악으로부터 선을 구별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경작해야 할 한 포도밭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포도밭을 책임지는 포도 재배자 즉 자기의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분의 아들인 사람에게 주신 자기 자신을 이끌어갈 자유는 그의 포도밭 즉 그의 영혼을 기름지게 만드는 데 있어 그를 돕도록 하느님께서 그분의 아들인 사람에게 주신 유능한 하인과도 같다.
만일 사람이 부유하게 되기 위하여, 즉 초자연적인 번영이라는 영원한 미래를 스스로 건설하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 노력해야 하지 않고, 그가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서 받게 되어 있었다면, 하느님께서 최초의 부모들에게 무상으로 주셨던 처음의 거룩함을 루치페르가 타락시킨 다음에 자기 자신을 거룩함 안에서 재창조하는 데 있어 그가 무슨 공로를 가지게 되겠느냐?
과오의 상속(inheritance of fault)에 의하여 타락한 인간들이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로 완전하신 창조주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고, 최초의 부모들이 원죄를 짓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면 그 자녀들에게 주셨을, 완전한 사람들의 생태적 본성(the initial nature)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상 받을 만한 가능성을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은 이미 큰 은총이다.
사람은 타락했기에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제 영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이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영혼을 자기의 의지, 자기의 자유의지에 맡기고, 자유의지는 그때까지 좋은 땅이지만 다년생 식물들이 없는 빈 땅으로 남아 있던 포도나무가 없는 포도밭을 가꾸기 시작한다. 그 포도나무는 생존하기 시작한 처음 몇 해 동안에는 단지 연약한 풀들과 피었다가 금방 지는 꽃들이 그 위에서 자랄 뿐이었다. 즉 아직 선과 악을 모르는 천사와 같기 때문에 착한 어린이의 본능적인 착함이 있을 뿐이었다.
너희는 물을 수 있다.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남아 있습니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말한다. 처음 여섯 해 동안이라고. 그러나 사실 조숙한 이성들(precocious reasons)이 있어 여섯 살이 되기 전에 자신들의 행위들에 대한 책임이 있는 어린이들도 있다. 세살이나 네 살에도 자기들의 행위들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어린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를 알고, 선이나 악을 자유롭게 원하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나쁜 행동과 좋은 행동을 분간할 줄 아는 순간부터 그 아이에게 책임이 있다. 그전에는 그에게 책임이 없다.
그러므로 바보는 백 살이 되어도 책임이 없고, 그의 보호자들이 그를 대신하여 책임진다. 그러므로 보호자들은 바보와, 바보나 어리석은 사람이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그의 이웃을 다정하게 보살펴 그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백치나 바보에게는 어떤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시는데,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지성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경작되지 않은 자기의 포도밭을 포도재배자인 자기의 자유의지에게 맡기고, 자유의지는 그 포도밭을 경작하기 시작한다. 영혼 즉 포도밭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그것을 자유의지에게 들려준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영혼들에게 결코 거절하지 않으시는 초자연적인 목소리들, 즉 수호천사(the Guardian)의목소리, 하느님께서 보내신 영들의 목소리, 지혜(Wisdom)의목소리, 사람이 정확하게 자각하지는 못해도 모든 영혼이 기억하는 초자연적인 추억들의 목소리들에게서 자양분을 공급받은 초자연적인 목소리이다.
포도밭은 자유의지에게 친절하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자기를 좋은 식물들로 꾸며달라고 부탁하고, 적극적이고 지혜롭게 되어 자기가 뱀들과 전갈들이 둥지를 틀고, 여우들이 땅을 차지하고, 담비들과 그 밖의 악한 네 발 짐승들이 땅굴을 파는 거칠고, 황폐하고, 독 있는 가시덤불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유의지가 항상 좋은 경작자는 아니다. 그것은 포도밭을 항상 지키지는 않고, 넘어올 수 없는 울타리로, 즉 도둑들, 기생식물들, 모든 해로운 것들, 그리고 착한 결심의 작은 꽃들이 겨우 갈망하기를 시작할 때 그것들을 떨어뜨릴 수 있는 강풍들로부터 영혼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굳고 착한 의지를 가지고 항상 포도밭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오! 악으로부터 마음을 구하려면, 그 주위에 얼마나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쳐야 하겠느냐! 울타리가 부서지지 않도록 방탕함이 들어올 수 있는 큰 구멍들이나, 독사들 즉 칠죄종(七罪宗, seven capital vices)이 기어 들어오는 음험한 작은 구멍들도 그 바닥에 뚫리지 않도록 사람이 얼마나 경계해야 하겠느냐!
괭이질하고, 잡초들을 태우고, 가지치고, 도랑을 파고, 고행으로 거름을 주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겠느냐!
그리고 좋은 것처럼 보였던 포도묘목이 나쁜 것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 두 눈을 밝고 크게 뜨고, 정신은 완전히 깨어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 포도묘목들은 가차 없이 제거되어야 한다. 완전한 나무 한 그루가 수많은 무익하거나 해로운 나무들보다 낫다.
우리는 마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식물들을 쌓아두는 낭비하는 농부에 의하여 새 포도나무가 심기는, 항상 경작되고 있는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 그 농부는 이런저런 일을 하기를 원한다. 그는 전혀 해롭지 않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보살피지 않아서, 그것들이 악해지고, 땅에 떨어지고, 퇴락하고, 죽는다…
얼마나 많은 성덕들이 육욕과 섞이기 때문에, 가꾸어지지 않기 때문에, 즉 자유의지가 사랑에 의하여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죽느냐! 양심이 깨어 있는 대신 잠들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자유의지가 그 힘을 잃고 타락하기 때문에, 사람의 자유의지가 악에게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에, 그래서 비록 자유롭더라도 그것은 악(Evil)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도둑들이 들어와서 훔치고, 사물들을 함부로 바꿔놓고, 뽑아버리느냐!
생각해보아라!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자유롭게 만드셨지만, 그 자유의지는 격정들, 죄, 정욕, 요컨대 악의 노예가 된다. 교만, 분노, 인색, 음란이 처음에는 좋은 식물들에 섞여 있다가 마침내 그것들을 누르고 승리를 구가한다!…
재앙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하느님과의 일치인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영혼에 유익한 즙들의 이슬이 내리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뭄이 식물들을 바싹 말리느냐! 하느님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서리가 뿌리들을 얼리겠느냐! 사람들이 고행과 겸손의 거름주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토양이 얼마나 메마르게 되겠느냐!
해로운 것을 잘라내는 고통을 견딜 용기가 없기 때문에 좋은 가지들과 나쁜 가지들이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심하게 뒤엉키겠느냐! 이것이 그 수호자와 농부가 무질서하고 악으로 기울어진 낭비하는 자유의지인 영혼의 상태이다.
이와 반대로 선에 영웅적으로 충실한 영혼은 그 자유의지가 질서 있게, 따라서 질서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며 그것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사람이 알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율법에 복종하며 살고, 선은 사람을 향상시키고, 그를 하느님과 비슷하게 만드는 반면, 악은 그를 야수와 같도록 만들고, 마귀와 비슷하게 만들기 때문에, 믿음의 맑고 풍부하고 유익한 물로 적셔지고, 희망의 나무들에 의하여 적당히 그늘지고, 사랑의 태양에 의하여 덥혀지고, 의지에 의하여 통제되고, 절제로 성숙하고, 순종으로 결합되고, 힘으로 전지되고, 정의로 인도되고, 지혜와 양심으로 지켜지는 포도밭과 같다.
또한 그토록 많은 도움에 힘입어 은총(Grace)이 증가하고, 성덕이 증가하여 포도밭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 내려오시는 놀라운 동산이 된다. 만일 그 포도밭이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항상 완전한 정원으로 남아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천사들에 의하여 하늘의 크고 영원한 정원으로 인도된 적극적이고 착한 자유의지의 그 작품을 소유하신다.
너희는 틀림없이 너희 자신을 위하여 이런 운명을 원한다. 그러니 마귀, 세상(the World), 육신이 너희의 자유의지를 유혹하여 너희 영혼들을 망치지 못하도록 경계해라. 너희 안에 사랑을 없애고, 영혼을 갖가지 육욕들과 무질서의 지배 아래 있게 하는 자존심(self-regard)이 아니라, 사랑이 있도록 주의해라. 끝까지 주의해라.
그러면 폭풍우가 너희를 적실 수는 있어도 해치지는 못할 것이고, 너희는 열매 맺은 채로 영원한 상을 받으러 너희 주님께로 가게 될 것이다.
내 말은 끝났다. 이제 묵상하고 황혼이 될 때까지 쉬어라. 그 동안에 나는 물러가 기도하겠다.”
“아닙니다, 선생님. 우리는 몇 채의 집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려면 지체 없이 출발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말한다.
“왜? 황혼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는데!”
여러 사람들이 말한다.
“나는 황혼이나 안식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 시간 내에 사나운 폭풍우가 불어올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네.
사마리아 산맥에서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저 까만 혀 모양의 먹구름들이 보이나? 그리고 서쪽에서 빨리 다가오고 있는 새하얀 구름들은? 낮은 바람이 먹구름을, 높은 바람이 흰 구름을 밀어 오고 있네. 하지만 저 구름들이 여기 우리 위로 오면, 높은 바람은 시로코에게 굴복하게 되고, 그러면 우박을 품고 있는 먹구름들이 내려와 번개를 품고 있는 흰 구름들과 부딪칠 터인데, 그렇게 된다면 자네들은 음악을 듣게 될 거야!
가세, 서둘러! 나는 어부라서 하늘을 읽을 수 있어.”
예수께서 가장 먼저 그의 말을 따르신다. 그러자 그들 모두가 들판에 있는 농가들을 향하여 빨리 걷기 시작한다.
그들은 다리에서 유다를 만난다. 그가 외친다.
“오! 나의 선생님! 저는 제가 당신과 떨어져 있는 동안에 얼마나 고통당했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당신을 기다린 저의 끈기를 상 주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카이사리아에서의 일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다야, 너에게 평화”
예수께서 짤막하게 대답하신 다음 덧붙이신다.
“집에서 이야기하자. 가자. 폭풍우가 닥쳐오고 있다.”
과연 돌풍이 햇볕으로 뜨거워진 길에 먼지구름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하늘은 온갖 모양과 빛깔의 구름들로 뒤덮이고 공기는 누렇고 끔찍해진다… 크고 뜨뜻한 최초의 빗방울들이 드문드문 떨어지기 시작하고, 최초의 번개가 지금은 거의 어두워진 하늘을 가른다…
그들은 물에 흠뻑 젖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뛰기 시작하여 최초의 집에 이른다. 그때 근처에 벼락이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는 와중에 폭우와 우박이 그 지역에 떨어져, 비에 젖은 땅과 끊임없이 내리치는 번개에서 배어나오는 오존의 강한 냄새를 풍긴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그 집에는 현관들이 있고, 메시아를 믿는 농부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공경하는 태도로 선생님의 동행들과 함께 들어와 쉬시도록 그분을 모셔 들이며 말한다.
“당신의 집에 계시는 것처럼 계십시오. 그러나 저희의 노동을 불쌍히 여기셔서 당신의 손을 들어 우박을 흩어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분의 한 손을 드시고 사방을 축복하시자 물만이 하늘에서 쏟아져 과수원들, 포도밭들, 풀밭들을 적시고, 무거운 대기를 정화한다.
“주님, 당신께서는 찬미 받으십시오!”
가장이 말한다.
“나의 주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계속 비가 퍼붓는 동안에 예수께서는 창고로 쓰이는 매우 넓은 방으로 들어가시어 피로에 지친 몸으로 그분의 사도들에게 둘러싸여 앉으신다.
427. 에스드렐론 평야를 지나가며
1946. 5. 6.
땅이 아주 습하고 길이 질척거리는 것을 보면, 전날 밤낮으로 계속 비가 온 모양이다. 그러나 공기는 모든 수준에서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하여 이것을 보상해준다. 높아진 하늘은 미소 짓고 있고,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마치 봄날이라도 된 듯 상쾌하고 깨끗해 보이며, 땅도 봄날을 상기시키는 고요하고 신선한 새벽에 이슬에 젖어 있고, 신선하고, 깨끗하다.
뒤엉킨 나뭇잎들이나 포도 덩굴손에 매달려 있는 마지막 빗방울들은 햇빛에 금강석들처럼 반짝이고, 폭우에 씻긴 열매들은 나날이 다 익은 과일의 완전한 색채를 띠어가고 있는 그 껍질들의 파스텔 색조를 보여준다. 아직 단단하고 덜 익은 올리브들과 포도송이들만이 초록빛 나뭇잎들과 혼동된다.
그러나 각각의 작은 올리브는 그 끝에 미세한 물방울을 매달고 있고, 촘촘한 포도송이들은 포도들의 줄기들에 매달려 있는 미세한 물방울들의 그물과도 같다.
“오늘은 걷기가 상쾌하군!”
베드로는 먼지도 없고, 뜨겁지도 않고, 미끄럽지도 않은 땅을 즐겁게 밟으며 말한다.
“자네는 깨끗함을 숨 쉬고 있는 것 같네. 그나저나 저 하늘빛을 좀 보게!”
유다 타대오가 그에게 대답한다.
“그리고 저 사과들은? 저 가지에 잔뜩 달려 있는 저 사과들을 보게. 나는 어떻게 저 가지가 저 무게를 견디고, 무성한 잎이 달린 열매 다발에서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네. 빛깔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저 잎에 가려진 것들은 초록색이 노란색으로 바뀌고 있고, 다른 것들은 붉은색으로 바뀌고 있고, 햇빛에 더 노출되어 있는 두 가지들은 햇빛이 비치는 쪽은 완전히 빨갛네. 저것들은 마치 봉랍을 입힌 것처럼 보이네!”
열성당원이 말한다.
그들은 피조세계의 아름다움들을 관조하며 기쁘게 걸어간다. 그러다가 타대오가 하느님의 창조의 영광을 찬미하는 시편을 읊조리기 시작하자 이내 토마스와 다른 이들이 합세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그토록 기쁘게 노래하는 것을 들으시며 미소 지으시고, 그들의 합창에 그분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합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노래를 마치지 못하신다. 다른 사람들이 계속 노래 부르고 있는 동안에 가리옷 사람이 그분께로 다가와 말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저 사람들이 노래하느라 바쁘고, 다른 데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동안에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카이사리아로의 여행은 어땠으며, 당신께서는 거기서 무엇을 하셨는지요? 선생님은 아직 저에게 말씀해주시지 않았는데… 지금이 저희가 단둘이 있는 최초의 순간이어서 당신께서 비로소 그것에 대하여 말씀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동료들, 제자들, 저희를 영접한 농부들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저희 동료들과 제자들이 있었는데, 이제야 제자들은 저희보다 앞서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코 당신께 여쭈어볼 수 없었습니다…”
“너는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그러나 카이사리아에서도 나는 내가 요하난의 소유지에서 할 일 외에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나는 율법과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했다.”
“누구에게요?”
“주민들에게. 시장들 근처에서.”
“아! 로마인들에게가 아니라요? 당신께서는 로마인들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로마인들을 보지 않고 어떻게 총독의 거주지인 카이사리아에 있을 수 있겠느냐?”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제 말씀은… 글쎄요…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내가 다시 말하는데, 너는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아닙니다. 선생님, 단순한 호기심입니다.”
“글쎄. 내가 로마여자들에게 말한 것이 사실이다.”
“클라우디아에게도요? 그녀는 당신께 무어라고 말했습니까?”
“아무 말도 안했다. 클라우디아는 오지 않았으니까. 아니 그녀는 자기가 우리와 교류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나에게 알게 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매우 강조하시고, 유다를 유심히 살피신다. 그가 무례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빛이 변하여 약간 붉어졌다가 창백해진다.
그러나 그는 곧 침착해져서 말한다.
“그녀가 원치 않는다고요? 그녀는 더 이상 당신을 존경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미쳤군요.”
“아니다. 그녀는 미치지 않았다. 그녀는 균형 잡힌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로마여인으로서의 자신의 의무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의 의무들을 분간하고 구별할 줄 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진리를 찾는 인간이고, 이교의 오류에 안주하지 않기 때문에 빛과 순결(Light and Purity)을 향하여 옴으로써 자기 자신과 자기 영혼을 위하여 빛과 호흡을 구하는 동시에 비록 이론적으로라도 자기의 조국에 해를 끼치기를 원치 않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로마의 잠재적 경쟁자를 두둔한다고 생각하게 만듦으로서 자기가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그러나… 당신께서는 영혼의 왕이신데요!…”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너희 사도들 자신들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너는 그것을 부인할 수 있느냐?”
유다는 다시 얼굴이 상기되었다가 창백해진다. 그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 말한다.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희의 지나친 사랑입니다…”
“더군다나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 즉 로마는 훨씬 더 나를 경쟁자로 오해할 수도 있다. 클라우디아는 하느님과 자기의 조국에 대하여 의롭게 행동하고 있다. 하느님으로서는 아니라 해도, 영혼의 왕과 선생으로서 나를 존경하고, 자기 조국에는 충실함으로써 말이다.
나는 충실하고, 의롭고, 완고하지 않은 영혼들을 감탄하며 바라본다. 나는 내 사도들이 내가 저 이교도 여인에게 하는 칭찬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으면 좋겠다.”
유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분의 곁을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호기심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호기심 이상이다. 그분께서 얼마나 아시는지를 알아내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래서 그는 묻는다.
“그들이 제 안부를 물었습니까?”
“그들은 네 안부도, 다른 어떤 사도의 안부도 묻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그들과 무슨 말씀을 나누셨습니까?”
“순결한 생활에 대하여. 그들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에 대하여. 너는 그 주제가 베드로, 요한, 또는 다른 누구에게도 흥미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주제가 무슨 흥미가 있겠습니까? 무익한 회화지요…”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순결한 사람은 밝은 지성과 정직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여기도록 만들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이교도 여자들에게 매우 흥미 있는 대화였고… 그들에게만 흥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더 이상 당신을 붙들고 있지 않겠습니다.”
유다는 노래 부르는 것을 끝내고, 뒤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합류하기 위하여 거의 뛰다시피 간다…
예수께서는 보다 천천히 그들과 합류하시며 말씀하신다.
“저 숲속 이 오솔길로 가자. 그러면 거리도 단축될 것이고, 이미 뜨거워지고 있는 햇볕도 피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평화롭게 식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요하난의 땅이 있는 서북쪽으로 향해 가면서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그 바리사이의 농부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듣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1944. 6. 16.의 환상: 예수, 떨어진 새둥지와 바리사이를 여기 삽입하여라.”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 > 6권 공생활 셋째 해(2)'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사시6권 [430. 세포리스 근처에서, 요하난의 농부들과 함께] (0) | 2025.12.01 |
|---|---|
| 하사시6권 [428. 예수, 떨어진 새둥지와 바리사이. 429. 에스드렐론 평야에서의 여행이 계속되다] (0) | 2025.11.29 |
| 하사시6권 [425. 아우레아 갈라] (1) | 2025.11.27 |
| 하사시6권 [424. 해항 카이사리아에서. 로마여인들과 노예 갈라 치프리나] (0) | 2025.11.25 |
| 하사시6권 [423. 해항 카이사리아에서. 자녀들에게 같은 액수의 돈을 준 아버지의 비유] (0) | 2025.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