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134 ~p145

415. 자캐오의 회개
1944. 7. 17.
나는 큰 광장을 본다. 그것은 장마당처럼 보이는데, 종려나무들과 그보다 키가 작고 잎이 우거진 다른 나무들로 인하여 그늘져 있다. 종려나무들은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자라고 있는데, 그 꼭대기의 잎들은 사막이나 불그스름한 토양의 미경작지에서 불어오는 것처럼 불그스름한 먼지를 일으키는 뜨거운 미풍으로 흔들린다. 반면 다른 나무들은 광장 가장자리를 따라 그늘진 회랑을 이루고 있어, 상인들과 물건 사는 사람들이 그 아래로 피해 들어가 법석을 떨며 소란을 피운다.
광장 한 구석, 정확히 간선도로가 시작되는 곳에 원시적인 징세사무소가 있다. 저울들과 부피를 계량하는 통들과 의자 하나가 거기 있는데, 그 의자 위에 한 작은 사람이 앉아서 감독하고, 살펴보고, 돈을 받는다. 모든 사람들이 그와 대화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매우 잘 알려진 사람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읍내의 일들에 대하여 묻는데, 그들은 주로 외지인들이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세금을 내기 위하여 묻기 때문에 나는 그가 염세리 자캐오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이들이 그가 근심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사실 그는 방심한 채 생각에 골몰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외마디로 대답하고, 때로는 손짓으로 대답한다. 자캐오가 대체로 말이 많은 것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놀란다. 어떤 이들은 그가 몸이 아픈지, 아니면 그의 부모들이 편찮으신지 묻기까지 하는데, 그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는 단지 두 차례만 날카로운 관심을 보인다. 첫 번째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와서 나자렛 선생님에 대하여, 그분의 기적들과 가르침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질문할 때인데, 그는 많은 질문들을 퍼붓는다.
“그분은 사람들의 말하는 것처럼 정말로 착하시오? 그분의 말씀은 사실과 일치하오? 그분은 자신이 가르치는 자비를 그분이 실제로 실천하시오?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세리들에게도? 그분이 아무도 물리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오?”
그는 귀담아듣고, 생각하고, 한숨을 쉰다.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이 나귀에 가재도구를 싣고 지나가고 있는 턱수염 난 사내를 그에게 가리킬 때이다.
“자캐오, 보게나. 저 사람은 나병환자 즈카르야일세. 저 사람은 10년 동안 무덤 속에서 살았네. 이제 그는 병이 고쳐져서 그와 그의 가족들이 나병환자로 선고받았을 때 율법에 따라 비워두었던 집에 놓으려고 가재도구를 사가고 있네.”
“저 사람을 부르시오.”
즈카르야가 온다.
“당신은 나병환자였소?”
“그렇소. 내 아내와 두 아이도 나병환자였소. 내 아내가 맨 먼저 감염되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즉시 알아차리지 못했소. 아이들은 그 애들의 엄마와 함께 자서 감염되었고, 나는 내 아내를 가까이하여 병들었소. 우리 모두는 나병환자였소! 그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 사람들은 우리를 마을 밖으로 쫓아냈소…
그들은 우리를 우리 집에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있었을 거요. 우리 집은 맨 마지막 집이었으니까요…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을 거요… 나는 우리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느라고 이미 나무 울타리를 아주 높이 자라게 했었소. 그것은 이미 무덤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우리 집이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내쫓았소. 멀리! 멀리! 어떤 마을도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소. 그것은 정당한 일이었소! 우리 고을도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소. 그래서 우리는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빈 무덤에서 살았소.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이 거기 있소.
아이들은 동굴에서 얼어 죽었소. 병과 추위와 굶주림으로 그들은 곧 죽었어요… 그 애들은 둘 다 아들이었어요. 그 애들은 병들기 전에는 예뻤어요. 그 애들은 튼튼하고 잘 생기고, 8월의 블랙베리처럼 암갈색이고, 곱슬머리이고, 쾌활했었소. 그런 그 애들은 헌데로 뒤덮인 두 해골이 되고 말았소… 그 애들은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눈은 부스럼으로 감겨지고, 수족은 흰 비늘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소. 나는 내 아이들의 몸이 쇠약해져가는 것을 지켜보았소!…
몇 시간 간격으로 그 애들이 한 명씩 죽어갔던 그날 아침… 그 애들은 더 이상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었소… 나는 그 애들의 어미가 울부짖는 동안에 그 애들을 마치 짐승의 시체처럼, 약간의 흙과 많은 돌 밑에 묻었소… 몇 달 후에 내 아내도 죽었고… 나만이 홀로 남았소…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도 나를 묻어줄 구덩이를 파주지 않았을 거요…
나자렛 선생님께서 지나가셨던 어느 날 나는 이미 거의 소경이 되어 있었소. 나는 내 무덤에서 외쳤소.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두려워하지 않고 나에게 빵을 가져다주었던 한 거지가 그렇게 소리 질러 멀었던 자기의 눈을 고침 받게 되었다고 나에게 말해주었었소.
그는 말했어요. ‘그분께서는 나에게 눈만이 아니라 영혼의 시력도 주셨소. 나는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보았고, 지금은 그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보오. 형제여,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피하지 않고, 빵과 믿음을 가져다주는 것이오.
그리스도께로 가시오. 그래서 한 영혼이 더 그분을 찬미할 수 있게 하시오. 나는 갈 수 없었소. 뼈까지 궤양이 침투한 내 두 발로는 걸을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사람들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나는 돌에 맞아죽었을 거요. 나는 그분께서 지나가시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소.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느라고 자주 그곳을 지나가셨소.
어느 날 나는 내 시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길에서 먼지구름과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소. 나는 무덤 동굴들이 있는 언덕 꼭대기로 기어갔소. 그리고 나는 두건을 쓴 다른 머리들 가운데 두건을 쓰지 않은 금발머리가 반짝이는 것이 보이는 것 같기에 목청껏 큰 소리로 외쳤소. 나는 세 번 외쳤는데, 마침내 내 외침이 그분께 이르렀소.
그분께서는 돌아서시더니 걸음을 멈추셨소.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혼자서 나에게 다가오셨소. 그분께서는 내가 있는 곳 바로 아래까지 오셔서 나를 바라보셨소. 미남자이시고, 친절하신 그분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나에게 물으셨소…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오?’
‘저는 깨끗해지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소? 왜요?’ 그분께서 물으셨소.
‘왜냐하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니까요.’
‘당신은 그것을 믿소?’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저는 당신의 머리 위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그분의 영광 안에서 빛나시는 것을 봅니다!’ 나는 대답했소.”
그러자 그분께서는 한 손을 내미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불타고 있었소. 그분의 두 눈은 마치 두 개의 푸른 태양과 같았소.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소. ‘나는 그것을 원한다. 깨끗해져라!’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나에게 강복하셨소!… 아! 그것은 어떤 미소인지! 나는 내 심장을 찾아 달리는 불의 검처럼 내 혈관들을 통하여 달리는 어떤 힘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소. 그토록 병들었던 내 심장이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의 심장처럼 되었고, 얼음처럼 차가운 피가 따뜻해지고, 내 혈관들 안에서 빨리 흘렀소. 고통도 허약함도 씻은 듯 사라지고 기쁨이,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소!…
그분께서는 나를 바라보고 계셨소. 그분께서는 미소로 나를 지복으로 이끄셨소.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소. ‘가서 사제들에게 당신의 몸을 보이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했소.’
그제야 나는 내가 고쳐졌다는 것을 깨닫고, 내 두 손과 두 발을 보았소. 더 이상 헌데가 없었소. 전에는 뼈가 드러나 있던 곳에 싱싱하고 발그레한 살이 있었소. 나는 개울로 달려가 얼굴을 비추어 보았소. 내 얼굴도 깨끗했어요. 나는 온몸이 깨끗했어요! 지긋지긋했던 10년이 지난 다음에 깨끗해지다니!…
오! 그분께서는 왜 그 전에는 지나가지 않으셨을까요? 내 아내와 아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를 고쳐주셨을 텐요. 자, 보이죠? 나는 내 집에 가재도구들을 사고 있소… 그러나 나는 혈혈단신이오!…”
“당신은 그분을 다시 뵙지는 못했소?”
“예, 그러나 나는 그분께서 이 지방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이곳에 왔소. 나는 다시 한 번 그분을 찬미하고 싶고, 내가 고독 가운데서도 힘을 얻도록 강복받기를 바라오.”
자캐오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한다. 그들은 헤어진다.
시간이 흐른다. 점점 더워진다. 장터가 한적해진다. 염세리는 한손으로 머리를 떠받친 채 자기의 책상에 앉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나자렛 선생님이다.”
몇몇 어린이들이 간선도로를 가리키며 외친다.
여자들, 남자들, 병자들, 거지들이 앞 다투어 그분을 향하여 간다. 광장은 비어 있다. 몇 마리의 노새들과 낙타들만이 종려나무에 매인 채 그 자리에 남아 있고, 자캐오는 자기의 책상에 그대로 앉아 있다.
그러다가 그는 일어나 자기의 책상 위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꺾어 환호하며 그것들을 흔들고 있고, 예수께서는 병자들 위로 상체를 숙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자 자캐오는 겉옷을 벗고 짧은 튜닉만을 입은 채로 한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는 짧은 팔다리로 어렵게 크고 미끄러운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간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성공하여 홰에 올라앉듯이 두 개의 가지에 걸터앉는다. 그의 두 다리는 일종의 난간과도 같은 그 나뭇가지 아래로 늘어져 있고, 마치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상반신을 가지에 기대고 있다.
군중이 광장에 이른다. 예수께서는 눈을 들어 나뭇가지들 위에 홰를 틀고 있는 외로운 관객에게 미소 지으신다.
“자캐오, 즉시 내려오시오. 오늘 나는 당신의 집에서 머무르겠소.”
예수께서 명하신다.
자캐오는 순간 깜짝 놀란 다음에 감격하여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자루처럼 땅으로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는 몹시 흥분하여 허둥대며 옷을 입는다. 그는 장부를 마감하고 금고를 닫는데, 재빨리 그 일을 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아주 느리게 행동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참을성 있으시다. 그분께서는 기다리시는 동안에 어린이들을 쓰다듬어주신다.
마침내 자캐오가 준비를 마친다. 그는 선생님께 다가와 읍내 한가운데에 있는, 넓은 정원으로 둘러싸인 한 아름다운 집으로 그분을 인도한다. 이곳은 아름다운 도시이다. 면적으로는 예루살렘에 못 미치나 건물들만큼은 그보다 크게 뒤지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집으로 들어가 식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시는 동안에 병자들과 성한 사람들을 돌보신다. 그분만이 가능하실 정도의 인내심을 가지고…
자캐오는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한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는 예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나 그분께서는 여전히 군중으로 둘러싸여 계신다.
마침내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며 그들을 해산하신다.
“석양에 오시오. 지금은 여러분의 집으로 돌아가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정원이 비워지고, 정원으로 면한 아름답고 시원한 큰 방에 식사가 차려진다. 자캐오는 일을 훌륭하게 처리한다.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는 자캐오가 독신이고, 많은 하인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식사가 끝난 다음 제자들이 휴식하기 위하여 나무그늘로 흩어졌을 때, 자캐오는 혼자서 예수와 함께 시원한 홀에 남아 있다. 한동안 그분께서는 혼자 계신다. 자캐오가 그분께서 쉬시게 하려고 물러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와 커튼들의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본다. 그는 예수께서 주무시지 않고, 생각에 잠겨 계시는 것을 본다. 그는 그분께 다가온다. 그는 무거운 금고를 들고 와 그것을 그분 곁의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선생님… 저는 한 동안 당신에 대하여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당신께서는 산기슭에서 많은 진리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박사들은 그 말씀을 능가하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당신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당신께서 착하시고, 죄인들을 물리치지 않으신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죄인입니다. 당신께서는 병자들을 고쳐주신다고 사람들이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병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람들을 속였고, 고리대금업을 했고, 방탕하게 살아 왔고, 도둑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냉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고쳐졌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다가오시자 육욕과 재물의 마귀가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거절하지 않으신다면 말입니다.
제가 당신 안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저는 제가 부당하게 얻은 재물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께 제 재산의 절반을 드립니다. 저는 나머지 절반을 제가 속임수로 빼앗은 것을 네 배로 돌려주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저는 제가 누구를 속였는지를 압니다. 저는 그들 각자에게 그들의 것을 돌려준 다음에 당신께서 허락하신다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나는 참으로 그것을 원하오. 오시오.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들을 빛으로 부르기 위하여 왔소. 오늘 빛과 구원이 당신의 마음의 집에 왔소. 저기 대문 밖에서 내가 당신의 연회석에 앉아 당신을 구속했다는 이유로 불평하고 있는 사람들은 당신도 그들처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과, 내가 잃었던 사람을 구원하고 영혼이 죽었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왔다는 것을 잊고 있소.
자캐오, 오시오. 당신은 다만 나를 고발할 거리를 찾기 위하여 나를 따라다니는 많은 사람들보다 내 말을 더 잘 이해했소. 그래서 지금 이후 당신은 나와 함께 있게 될 것이오.”
환시는 여기서 끝난다.
1944. 7. 18.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누룩과 누룩이 있다. 선의 누룩도 있고, 악의 누룩도 있다. 사탄의 독인 악의 누룩은 선의 누룩보다 더 쉽게 익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인 보편적인 의지에 반대되는 이기적인 의지에 의하여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육체의 세 가지 모두가 유혹되어 그것들 안에서 그 발효에 더 잘 맞는 재료를 만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은 결코 개인적인 생각에 제한되지 않고, 온 우주의 선을 고려하기 때문에 보편적이다. 그 어느 것도 어느 면에서도 하느님의 완전성을 증가시킬 수 없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완전하게 그것을 소유해 오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분의 어떤 활동에 영향을 주는 개인적인 이익이라는 생각이 그분 안에는 없다.
우리가 ‘이것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의 이익을 위하여 행해진다’고 말할 때 그 뜻은 하느님의 영광이 그 자체 안에서 커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피조세계 안에서 선의 표지를 가지고 있고, 선을 행하는 사람, 그래서 선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의 표지로 자신을 꾸미고,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것을 영광스럽게 창조하신 영광(Glory)께 그 자체로 영광을 드리게 된다는 뜻이다.
요컨대 그것은 사람들과 사물들이 그들의 행동으로 그들이 유래한 완전한 근원에 대하여 증언함으로써 하느님께 증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명하시거나, 권고하시거나, 그런 행동을 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어주실 때, 그분께서는 어떠한 이기적인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하시지 않고, 너희의 유익을 위한 이타적인 사랑의 생각으로 그렇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느님의 뜻은 결코 이기적이지 않고, 반대로 전적으로 이타주의와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것은 우주 안에서 보편적인 행복을 배려하는 유일하고 참된 힘이다.
반대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배아인 선의 누룩은 많은 반대와 어려움들과 역경들을 통하여 성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누룩, 즉 그 기원상 사랑(Love)일 수밖에 없는 선의 반대명제인 이기심이 배어 있는, 사람의 육체, 마음, 생각에 유리한 반응들을 거슬러야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선의(the will of Good)가 결여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 안에서 선이 열매 맺지 못하고 죽거나, 겨우 살아서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중대한 잘못은 없다. 그러나 최상의 선을 행하려는 노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은 무기력하여 죽지는 않았으나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이다.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지옥을 피하는 데에만 도움이 된다는 것에 유의해라. 즉시 아름다운 천국을 누리려면, 사람은 선을 행해야 한다. 그것은 불가결하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거슬러 가능한 최대한의 선을 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지향하는 사람의 의지의 남용에 반대하여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율법을 옹호하는 전쟁이 필요할 때는 아버지와 그 자녀들, 형제자매들 간에도 평화가 아닌 전쟁을 내가 가져다주려고 왔다고 말한 것이다.
자캐오 안에서는 미량의 선의 누룩이 거대한 규모로 발효했다. 맨 처음에 작은 조각이 그의 마음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내 산상설교를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들은 말을 전달할 때 으레 그렇듯이 내 말의 많은 부분들을 생략하고 아주 불완전하게 이야기했다.
자캐오는 염세리이고 죄인이었지만, 악의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백내장의 막이 안구를 덮고 있어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과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 막이 제거되면 자기는 다시 잘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막이 제거되기를 바란다.
자캐오는 그와 같았다. 그는 확신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했다. 그는 진정한 율법을 이미 대체한 바리사이들의 관행을 확신하지도 못했고, 자기의 생활방식에 대하여 행복해하지도 못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빛을, 참 빛을 찾고 있었다. 그는 내 말의 단편에서 빛의 번쩍임을 보았고, 그것을 보물처럼 자기 마음에 간직했다. 그가 그것을 사랑했기 때문에―마리아야, 이것에 주의해라―그 섬광은 점점 더 활발하고 거대하고 맹렬해졌고, 과거에는 사물들로부터 그의 마음으로, 그의 마음으로부터 사물들로 그를 악의적인 노예화의 그물로 사로잡았던 모든 촉수들을 큰마음 먹고 단절하게 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명히 보고, 정확히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그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것이 성공과 실패의 비밀이다. 사람이 사랑할 때 그는 성공한다. 그가 인색하게 사랑한다면, 그는 보잘것없는 성공만을 얻는다. 그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전혀 성공하지 못한다. 매사에 그러하다. 하느님의 일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느님은 육체의 오관에는 보이지 않으시기에, 나는 사람이 사업(enterprise)에 성공하려면 그가 완전에 도달할 수 있는 한 완전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겠다. 이 경우에 그 사업은 성덕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까다롭고 엄격하지만 자신들에게는 그토록 관대한 바리사이들의 관행의 비열함을 혐오했기에 세상과 육체에 대하여 환멸감을 느낀 자캐오는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우연히 그에게 도달한 내 말의 그 작은 보물을 사랑했다. 그는 그것을 그의 사십 평생에 가졌던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서 사랑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그 점에 집중했다.
악에 있어서만 사람의 마음이 그의 보물이 있는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선에 있어서도 그렇다. 혹시 성인들이 그들의 일생 동안에 그들의 보물이 있는 곳 즉 하느님 안에 자신들의 마음을 두지 않았느냐? 그렇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영혼을 땅의 진흙으로 더럽히지 않고 땅 위를 지나갔다.
그날 아침에 내가 거기 나타나지 않았다 해도, 나는 한 회심자를 얻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병환자였던 사람의 이야기가 자캐오의 변모(metamorphosis)를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염세서의 계산대에는 더 이상 사기를 일삼는 악의적인 염세리가 아니라 자기의 과거를 뉘우치고 자기의 생활을 바꾸기로 결심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만일 내가 예리코로 가지 않았다면, 그는 자기의 사무실 문을 닫고, 자기의 돈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더는 진리의 물, 사랑의 빵, 용서의 입맞춤 없이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비난하기 위하여 항상 나를 주시하고 있었던 일상적인 트집쟁이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고, 이해할 수는 더욱더 없었다. 그것이 내가 죄인의 집에서 식사하는 것을 그들이 보고 놀란 이유이다.
오! 나는 너희 자신도 판단할 줄 모르는 가련한 소경들인 너희가 판단하는 일을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절대로 판단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죄인들의 죄에 찬동하기 위하여 죄인들과 사귄 적은 결코 없다. 나는 그들에게서 죄를 없애주기 위하여 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주 죄의 외관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뉘우치는 그들의 영혼들은 속죄하기 위하여 살면서 이미 새 영혼들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죄인과 함께 있었느냐? 아니다. 나는 죽음에서 부활한 영혼이 그 연약함 안에서 서기 위하여 안내를 필요로 하는 구속된 영혼과 함께 있었다.
자캐오의 일화가 너희를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지! 그것은 갈망을 자극하는 올바른 의향의 힘,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선에 관한 점점 더 깊은 지식을 찾도록, 그리고 하느님께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그분을 갈망하도록 자극하는 참된 욕망, 포기의 용기를 주는 진정한 뉘우침을 가르쳐준다.
자캐오는 참된 가르침의 말씀들을 들으려는 올곧은 의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몇 마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올바른 갈망은 더 큰 갈망을 가지도록 그를 자극했고, 그래서 그가 그 가르침에 관한 중단 없는 연구를 하게 만들었다. 참 가르침 안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에 관한 연구는 그를 부와 육욕의 보잘것없는 신들로부터 떼어내어 포기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만일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팔아라. 그리고 나를 따라라.’ 나는 부유한 젊은이에게 말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캐오는 비록 인색함과 육욕에 있어 더 굳어져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주워들은 몇 마디 안 되는 말들을 통하여 나에 의하여 고침 받은 소경 거지와 나병환자처럼 하느님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을 본 어떤 영혼이 땅의 하찮은 것들에서 더 이상 매력을 느낄 수 있겠느냐? 내 어린 신부야, 도대체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1944. 7. 19.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몇 가지 진복들을 말할 때 그것들을 얻는 데 필수적인 요건들과 그 진복자들이 얻을 상급들을 밝혀 말했다. 내가 언급한 범주들은 달랐지만, 너희가 그 상황들을 고찰해본다면 상급은 동일한 것인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것과 똑같은 것을 누린다는 것이다.
다른 범주들. 나는 이미 하느님께서 그분의 생각으로 서로 다른 경향들을 가진 영혼들을 창조하셔서 땅이 그 모든 하등의 필요와 고등의 필요들에 있어 올바른 균형을 누릴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을 설명했다. 사람을 올바른 길을 따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항상 거슬러 가고자 하는 사람의 반역이 이 균형을 깨뜨린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잘못이 아니다.
자신들의 처지에 대하여 영원히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본래적인 의미의 권력남용이나 그러한 남용의 시도로써 다른 사람들의 땅을 침략하거나 혼란을 일으킨다. 세계전쟁들과 가문들의 불화, 그리고 직업적인 전쟁은 그러한 적극적인 남용이 아니고 무엇이냐?
사회적 혁명들은 무엇이고, ‘사회적’이라는 이름으로 옷 입었지만 사실은 오만(arrogance)이고, 사랑의 정확한 반대명제에 불과한 주의들(doctrines)은 무엇이냐? 왜냐하면 그것들은 자신들이 설파하는 정의를 원하지도, 실천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것들은 압제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완화해주지 않고, 소수의 거만한 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압제받는 사람의 수를 불리는 폭력의 폭발들로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하느님이 다스리는 곳에서는 그런 변개가 발생하지 않는다. 내 나라 안에서와 참으로 나의 것인 영혼들 안에서는 아무것도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다양한 형태의 거룩함의 몇 가지 측면들이 실천되고, 보상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정의롭고, 깨끗하고 평화롭고, 자비롭고, 덧없는 재물에 대한 탐욕이 없고, 그분의 사랑의 행복 안에서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영혼들은 이 형태를, 다른 영혼들은 저 형태를 지향한다. 그들은 뛰어난 태도를 보인다. 왜냐하면 모든 덕들이 성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성덕이 지배적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 성인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특별히 칭송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성덕들로 인하여 그에게 강복하고 상급을 준다. 왜냐하면 평화로운 사람들과 자비로운 사람들,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불의에 의하여 박해받는 사람들, 순결한 사람들과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과 영혼 안에서 깨끗한 사람들 모두에게 상급은 ‘하느님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 안에서 깨끗한 사람들(the pure in spirit)! 이 정의(定義)는 항상 얼마나 잘못 이해되었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 올바른 의미를 인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말이다. 인간의 피상성과 어리석은 인간의 자가당착과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무식함에 따르면, 영 안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우둔하다’는 것을 뜻한다.
더 나은 부류의 사람들은 영혼이 지성(intelligence)이나 생각(thought)이라고 생각한다. 더 물질적인 사람들은 그것이 교활함(artfulness)과 악의(malice)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영혼은 지성보다 훨씬 우월하다(The spirit is by far superior to intelligence). 그것은 너희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왕이다. 모든 육체적, 정신적 자질들이 그 왕의 신민들이고 종들이다. 그것이 자녀다운 자세로 하느님께 헌신하는 사람이 사물들을 올바른 자리에 놓아둘 줄을 아는 곳의 상황이다.
반대로 사람이 자녀다운 자세로 헌신하지 않는 곳에서는 우상숭배들이 일어나고, 하녀들이 여왕들이 되고, 영혼 왕을 퇴위시킨다. 모든 무정부상태가 그러하듯이 그것은 재앙을 초래하는 무정부상태이다.
영혼 안의 가난은 사람의 즐거움인 모든 것으로부터의 주권적 자유로 이루어져 있다. 그 즐거움을 위하여 사람들은 물질적인 범죄나, 너무 자주 인간의 법을 피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더 적은 희생자를 만들지도 않고 오히려 더 많은 희생을 내기까지 하며, 그 결과는 희생자의 목숨만 앗아갈 뿐 아니라 자주 피해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서 좋은 평판과 호구지책을 빼앗아가기도 하는 도덕적 범죄를 저지르는 정도까지 이른다.
영혼 안에서 가난한 사람은 더 이상 재물의 노예가 아니다. 비록 그가 재산을 버리고 모든 안락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입회함으로써 재물을 물질적으로 포기하는 정도까지 가지는 않는다 해도, 그는 자기를 위해서는 그 물질을 절약하여 쓸 줄을 아는데, 그것은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끼지 않고 베풀기 위한 것이므로 이중의 희생이 되는 것이다. 그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라’는 내 말을 이해했다.
그는 음란, 탐욕, 매정함으로 자신의 영혼을 이끌어감으로써 자신의 영혼의 원수가 될 수도 있는 자기의 돈으로 영혼 안에서 가난한 사람인 부자인 자기를 위하여 하늘에 이르는 길을 평탄케 하여, 자신을 자기의 고행과 동료 인간들의 불행을 돕기 위한 자선행위들로 완전히 덮인 길로 만드는 하인으로 만든다.
영혼 안에서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불의들을 고치고 치료하느냐! 자캐오와 같이 인색하고 냉혹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의 자기 자신의 불의들, 살아 있거나 죽은 자기의 이웃들의 불의들, 사회적인 불의들을 말이다.
너희는 거만했다는 이유로만 위대했던 사람들에게 기념비들을 세워준다. 너희는 왜 빈곤한 인류, 가난한 노동계층의 숨은 은인들, 자기 자신들의 삶을 끝없는 향연을 베푸는 데 재산을 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신체적 기능들이 손상된 사람들, 무지가 자기들의 가증스러운 목적들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압제자들에 의하여 무지 속에 방치된 사람들의 생활을 더 빛나고, 더 낫고, 더 고양되게 하기 위하여 재산을 쓴 사람들에게는 기념비들을 세워주지 않느냐?
부유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보다 별로 낫지도 않은 사람들 중에도, 자기들이 가진 빛(the Light)을―그들의 행동방식을 보면 그들이 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가지지 못한 채로 살기 때문에 자기들의 곤궁보다 더 큰 곤궁을 덜어주기 위하여 자기들이 가진 ‘동전 두 닢’까지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많든 적든 자기들의 재물을 잃으면서도 하느님이든, 사람이든 누구도 저주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평화와 희망을 보존할 줄 아는 사람들은 영혼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이다.
내가 맨 먼저 말한 ‘영혼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넓은 범주는―왜냐하면 나는 인생의 모든 즐거움들로부터의 영혼의 자유 없이는 지복을 가져다주는 다른 성덕들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많은 형태로 분화되고, 다시 세분된다.
자만으로 부풀지 않고, 스스로를 초지성(super-thought)이라고 선언하지 않고, 하느님의 선물의 기원(Origin)을 인정하고, 그것을 선을 위하여 오로지 선만을 그 선물을 활용하는 생각의 겸손.
애정들에 있어서의 너그러움. 사람은 이 너그러움으로 인하여 하느님을 따르기 위하여 애정들과 목숨까지 버릴 줄 안다. 동물인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가장 실제적인 재산인 생명까지도 말이다. 나의 모든 순교자들은 그런 방식으로 너그러웠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이 유일한 영원한 재물인 하느님으로 ‘부유하게’ 되기 위하여 가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물건들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의 올바름. 그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신 섭리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것에 대하여 전에 구술할 때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하느님이나 그분의 뜻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 만일 누군가가 그것들을 너희에게서 빼앗아간다 해도, 너희는 하느님을 저주할 정도로 그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되풀이해 말하거니와, 돈의 예속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것들이 정의로 말미암아 하늘을 소유하게 할 것이라고 내가 말했던 그 영적 가난의 서로 다른 형태들이다. 영원한 부를 소유하기 위하여 인생의 모든 덧없는 재물을 너희의 두 발로 짓밟아라. 땅과, 거죽은 달고 속은 쓴 그 기만적인 열매를 가장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하늘을 쟁취하기 위하여 일하며 살아라.
오! 하늘에 거짓 풍미를 가진 과일은 없다. 거기에는 하느님을 누린다는 형언할 수 없는 과일이 있다.
자캐오는 이것을 이해했다. 그 문장은 그의 마음을 빛과 사랑으로 연 화살이었다. 그 말은 내가 그에게 ‘오너라’ 하고 말하려고 다가가자 나에게 그의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내가 그를 부르러 그에게 다가갔을 때 그는 이미 ‘영혼 안에서 가난’했다. 그래서 그는 하늘을 소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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