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145~p154

416. 솔로몬의 마을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1944. 5. 17.에 본 예수와 예리코로 가는 노상에서 만난 거지 이야기 바로 다음에 1944. 7. 17.의 자캐오의 회개의 환상을 삽입해라.”
1946. 4. 13.
예수께서는 적막한 밤에 그곳에 도착하신다. 달이 있는 위치로 보아서 새벽 두시쯤이라고 생각된다. 막 이지러지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달은 맑은 하늘 가운데에서 땅에 평화를 퍼뜨리며 빛나고 있다. 이슬 많은 평화로운 밤이다. 더운 지방의 풍부한 이슬인데, 낮 동안의 뜨거운 햇볕 후에 식물들에게 유익하다.
지금은 여름의 갈수기라 강폭이 더 좁아졌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말라 있는 강변의 자갈밭을 따라온 모양이다. 그들은 갈대숲에서 올라와 강변을 뒤덮고 물 가까이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뿌리가 그물처럼 얽혀 둑을 받치고 있는 숲에 이른다.
“여기서 멈추어 아침을 기다리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선생님… 저는 온 몸이 아픕니다.”
마태오가 말한다.
“저에게는 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강은 여름에는 건강에 좋은 장소가 아닙니다…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요.”
필립보가 한술 더 뜬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일 강에서 유다의 산맥으로 올라갔다면 사정은 더 나빴을 거야. 이것도 다 아는 얘기야.”
열성당원이 말한다. 그는 모든 사도들이 자신들의 두려움과 불평을 쏟아놓는 대상이시지만 그 심정을 아무도 이해해드리지 못하는 예수를 안쓰러워한다.
“시몬아, 마음 쓰지 마라. 이들의 말이 옳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후에 쉬게 된다… 제발 부탁이다. 조금만 더 걸으면 된다… 여기서 잠시 쉬자. 달이 얼마나 서쪽으로 기울었는지 보아라. 잠시 후에 날이 샐 텐데 왜 그 노인과 아마 아직도 앓고 있는지도 모르는 요셉을 깨우겠느냐?…”
“문제는 여기는 어디나 이슬에 젖어 있다는 겁니다. 앉을 만한 자리가 없어요…”
가리옷 사람이 투덜거린다.
“자네는 자네의 옷을 망칠까봐 그러나? 걱정하지 말게. 먼지와 이슬을 뚫고 이런 강행군을 마친 다음이니 이제 더 이상 그런 환경에서 걸어 다닐 일은 없네! 어찌 됐든… 친절한 헬카이는 지금 그대로의 자네의 옷차림을 더 좋아할 걸세. 자네의 그리스 식 번개무늬 말이야… 하! 하! 가장자리와 소매 둘레의 무늬들은 유대광야의 가시덤불 위의 리본들로 걸려 있고, 자네의 목둘레의 무늬는 자네의 땀에 절어서 못쓰게 되었네… 이제 자네는 완전한 유다인일세…”
항상 유쾌한 토마스가 말한다.
“나는 더러움 그 자체야. 나는 이것이 지긋지긋하기 그지없네.”
가리옷 사람이 화내며 대꾸한다.
“유다야, 네가 깨끗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이 중요하다…”
예수께서 조용히 말씀하신다.
“중요하다! 중요하다! 저희는 피로와 굶주림으로 기진맥진합니다… 저희는 건강을 망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건강뿐입니다.”
유다가 불손하게 대답한다.
“나는 네가 머무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남아 있기를 원한 사람은 바로 너다.”
“결국 지금!… 저는 그렇게 하는 편이 좋습니다. 저는…”
“너는 네 입을 근질거리게 하는 말을 해도 된다. ‘너는 산헤드린의 눈에 위험하게 되었다’는 말이지, 그러나 너는 언제나 사과하고… 그들의 신임을 다시 얻을 수 있다…”
“저는 사과하기 싫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으니까요.”
“사실 자네는 그것을 사랑보다는 미움을 나타내는 것처럼 말하는구먼.”
알패오의 유다가 씹어뱉듯이 말한다.
“글쎄… 모든 사람은 자기의 사랑을 표현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거야.”
“물론이지!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때려죽이는 사람들도 있어… 나는 그런 식의 사랑은 좋아하지 않아.”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익살로 이 사건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애써보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 다행히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권유하신다.
“가서 저 집의 문턱 위에 앉자. 처마가 넓어서 이슬을 피할 수 있다. 저 작은집의 처마 밑에 들어가 있을 만한 자리가 있다.”
그들은 말없이 순종한다. 그들이 집에 이르자 벽을 따라 한 줄로 앉는다.
그러나 토마스의 간단한 말로 다시 토론이 벌어진다.
“나는 배고파. 밤에 걸으면 배고파.”
“걸어서 배고픈 게 아니야! 우린 며칠 동안이나 거의 굶다시피 했어!”
가리옷 사람이 대답한다.
“우린 니까의 집과 자캐오의 집에서 잘 먹었어. 니까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음식을 주어서 우리는 그것이 상할까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했잖아. 우리에게 빵이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대상의 짐승 몰이꾼도 빵과 버터를 주었어…”
안드레아가 말한다.
그것을 부인할 수 없어 유다는 입을 다문다.
멀리서 수탉 한 마리가 동이 트는 최초의 징후를 보고 인사한다.
“오! 좋아! 이제 곧 새벽이 된다!”
베드로가 기지개를 켜면서 말한다. 그는 거의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침묵하며 날이 새기를 기다린다.
우리 안에서 양우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멀리 맞은 편 간선도로에서 방울 소리가 들린다… 아나니아의 비둘기들이 구구거리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린다. 갈대밭에서 남자의 쉰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밤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오는 어부의 목소리인데, 그는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을 불평한다. 그는 예수를 보고 걸음을 멈춘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말한다.
“제가 이것을 당신께 드린다면, 당신께서는 제가 물고기를 많이 잡을 거라고 저에게 약속하시겠습니까?”
“돈벌이를 위해서요, 아니면 당신의 필요 때문에요?”
“제 필요 때문입니다. 저는 일곱 명의 자녀와 아내와 장모를 부양해야 합니다.”
“당신의 말이 맞소. 자선을 베푸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부족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겠소.”
“그럼 여기 있습니다. 이곳에는 다친 사람도 있는데, 치료해도 회복이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갚아주시고, 당신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는 인사드린 다음에 버드나무 가지에 입을 꿴 물고기들을 남겨두고 간다.
다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갈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몇 마리의 새들의 소리로 깨진다… 그러다가 가까이에서 삐걱거리는 문소리가 들린다. 아나니아가 만든 촌스러운 대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그 작은 노인이 하늘을 살피면서 길에 나타난다. 양 한 마리가 울며 뒤따라온다…
“아나니아, 당신에게 평화!”
“선생님! 그런데… 당신께서는 언제부터 여기 계셨습니까? 당신께서는 왜 저를 불러 문을 열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무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당신께서는 그것을 아십니까?… 그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는 귀에서 고름이 나오고, 두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죽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당신께서 오셨으니, 저는 그가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찜질 약을 만들려고 약초를 구하러 나가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동료들도 여기 있습니까?”
“두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갔고, 솔로몬과 엘리야는 여기 남아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당신을 귀찮게 했습니까?”
“그들은 당신께서 떠나신 직후에는 그랬지만, 그 후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당신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사다에 있는 내 며느리 집으로 가셨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까?”
“아닙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진짜로 거기 가셨습니까?”
노인은 안절부절 못한다.
“예, 저는 거기 갔습니다. 그녀는 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애는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았지요?…”
“예, 그녀는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위하여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 것들을 위해서도요… 그녀가 그 애들을 주님을 위하여 기르도록 말입니다…”
노인이 말한다. 굵은 눈물 두 줄기가 내려와 노인이 마저 하지 못한 말을 해준다. 그가 마지막으로 여쭌다.
“당신께서는 그 애들을 보셨습니까?”
“나는 한 아이는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힐끗 보기만 했고요. 그 애들은 다 잘 있습니다.”
“저는 제 단념과 용서를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애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말해야 하는 것은 몹시 슬픕니다.”
“당신은 머지않아 당신의 아드님을 보시게 될 것이고, 그와 함께 하늘에서 평화 안에 계실 것입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예, 즉시 부상자에게로 갑시다. 그는 어디 있습니까?”
“제일 나은 침대에 있습니다.”
그들은 잘 가꾸어진 정원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예수께서는 신음하며 자고 있는 병자 위로 몸을 숙이신다. 그분께서는 상체를 숙이시고… 이미 고름에 절어 있는 붕대로 감겨 있는 귀 안으로 입김을 부신다. 그분께서는 일어나 소리 없이 물러가신다.
“당신께서는 그를 깨우지 않으실 작정입니까?”
노인이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예. 그가 자도록 그냥 놔두세요. 그는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으니 쉴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로 갑시다.”
예수께서는 소리 없이 문을 반쯤 닫으신 다음 지난번에 사온 두 침대가 있는 큰방으로 들어가신다. 두 제자는 피로에 지쳐 여전히 자고 있다.
“이 사람들은 아침까지 철야 간호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제가 이 사람을 살피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피곤한 겁니다. 이 사람들은 매우 착합니다.”
그 두 사람은 귀를 쫑긋 연 채로 자고 있는 모양이어서, 즉시 잠에서 깨어나 말한다.
“선생님! 우리 선생님! 당신께서는 때맞추어 오셨습니다! 요셉이…”
“나았다. 나는 이미 그를 돌보았다. 그는 자고 있어 알지 못하지만, 지금 그는 전혀 아프지 않다. 그가 할 일이라고는 고름을 닦아내는 것뿐이다. 그는 그 이전처럼 건강하게 될 것이다.”
“오! 그럼 저희도 깨끗하게 해주십시오. 저희는 죄지었으니까요.”
“어떻게?”
“저희는 요셉을 돌보느라 성전에 가지 못했습니다…”
“사랑은 모든 곳을 성전으로 만든다. 그리고 사랑의 성전 안에는 하느님께서 계신다.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한다면, 온 땅이 하나의 성전이 될 것이다. 염려하지 마라. 오순절이 ‘사랑(Love)’을 뜻하는 날, 사랑(love)의 현현을 뜻하는 날이 올 것이다. 너희는 너희 형제를 사랑했으니 미래의 오순절을 미리 앞당겨 경축한 셈이다.”
다른 방에서 요셉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나니아! 엘리야! 솔로몬! 그런데 나는 나았어요!”
야위고 여전히 창백하지만, 더는 앓고 있지 않는 요셉이 짧은 튜닉만을 입은 채로 나타난다. 그가 예수를 보고 말한다.
“아! 당신이셨군요, 나의 선생님!”
그가 달려가서 그분의 두 발에 입 맞춘다.
“요셉, 하느님께서 너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만일 네가 나 때문에 고통당했다면, 나를 용서해다오.”
“저는 당신을 위하여 제 피를 흘린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 아버지가 피를 흘렸던 것처럼요. 제가 피 흘릴 수 있도록 해주신 것으로 인하여 당신을 찬미합니다!”
이렇게 말할 때 요셉의 소박하고 평범한 얼굴은 기쁨으로 빛나고, 내적인 빛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으로 고상해 보인다.
예수께서 그를 쓰다듬으시며 솔로몬에게 말씀하신다.
“네 집은 많은 선을 행하는 데 쓰이는구나.”
“오! 지금은 이것이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이집이 뱃사공의 편안한 잠에만 이바지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집이 당신과 이 의인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이제 저희는 당신을 모시고 며칠간 좋은 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니다, 내 벗아. 너희는 즉시 떠나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휴식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기간은 진정한 시련의 때일 터인데,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만이 충실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 빵을 쪼갠 다음에 너희는 즉시 떠나 강을 따라가 나보다 한나절을 앞서가거라.”
“예, 선생님. 요셉도요?”
“요셉도. 만일 그가 또 다시 상처를 입을까봐 염려하지 않는다면…”
“오! 선생님! 제가 당신을 위하여 제 피를 흘리며 죽음에 있어 당신을 앞서가야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들은 이른 햇살로 반짝이는 이슬 맺힌 정원으로 나온다. 아나니아는 햇볕이 잘 드는 가지에서 먼저 익은 무화과들을 따서 경의를 표하고, 비둘기의 두 배의 새끼들이 병자를 위하여 쓰였기 때문에 새끼 비둘기를 드릴 수 없는 것을 사과한다. 하지만 물고기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한다.
예수께서는 엘리야와 요셉 사이에서 걸으시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최근에 겪었던 일과, 자신들은 한 번에 조금씩밖에 걸을 수 없었는데, 밤에 부상자를 등에 업고 수 마일을 거의 단숨에 걸어 온 솔로몬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런데 요셉, 너는 너를 때린 사람을 용서했느냐, 그렇지?”
“저는 그 불행한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용서와 제 고통을 그들의 구속을 위하여 봉헌했습니다.”
“내 착한 제자야,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오글라는 어떠냐?”
“오글라는 티모네오와 함께 갔습니다. 저는 그가 계속 티모네오와 함께 갈지, 아니면 헤르몬 산에서 멈출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항상 자기는 레바논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었습니다.”
“좋다! 하느님께서 그가 가장 좋은 것을 하도록 영감을 주시기를 바란다.”
이제 많은 새들이 나뭇가지들 가운데에서 합창한다. 양들의 울음소리, 어린이들과 여자들의 목소리, 나귀들의 울음소리, 우물에서 도르레가 삐걱거리는 소리들은 마을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정원에서 빵을 떼고, 물고기를 나눠먹은 다음 식사를 마친다. 그 직후 세 제자가 예수에게서 강복 받고 나서 집을 떠나, 강으로 이어지는 길을 속보로 걸어가 시원한 갈대그늘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이제 저녁까지 쉬자. 그 다음에 우리도 그들을 뒤따라가자.”
예수께서 명하신다.
몇 명은 작은 침대들 위에 눕고, 다른 사람들은 아나니아가 짜놓은 그물 무더기 위에 눕는다. 아나니아는 한가롭게 있지 않고 그물을 짜서 자기가 먹을 매일의 양식을 번다고 말한다. 사도들 모두는 피로가 풀기 위하여 잠을 청한다.
그 동안 아나니아는 땀에 젖은 옷들을 주워 소리 없이 방을 나가 방문과 대문을 닫은 다음 강으로 내려가 그 옷들을 세탁한다. 그렇게 하여 저녁까지 그것들을 말리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여기 1944. 10. 22.자의 데카폴리스의 작은 마을에서의 예수와 1944. 9. 29.자의 데카폴리스의 마귀 들린 사람의 환시들을 삽입해라.”
417. 데카폴리스의 작은 마을에서. 조각가의 비유
1944. 10. 2.
내가 보는 것은 이것이다. 소박한 집들 몇 채가 있는 마을 안의 작은 강이다. 이곳은 예수께서 홍수 난 요르단 강을 배로 건너실 때 떠나신 마을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예수를 위하여 길을 준비하도록 가리옷 사람과 토마스를 앞으로 보내셨던 예수를 만나려고 뱃사공과 그의 부모가 오는 것을 나는 보기 때문이다.
뱃사공은 예수께서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걸음을 재촉한다. 그가 그분의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지극히 정중하게 절하며 말한다.
“선생님, 저희의 병자들이 당신을 환영합니다. 그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당신에 대하여 많은 말을 했습니다. 온 마을이 제 입을 통하여 당신께 인사드리며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메시아여, 찬미 받으십시오.’”
“당신과 이 마을에 평화. 나는 당신들을 위하여 여기 왔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희망에 있어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늘이 자비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갑시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뱃사공과 나란히 마을의 중심을 향하여 걸어가신다.
남자들, 여자들, 어린이들이 대문에 나타났다가 작은 행렬이 전진함에 따라 그 행렬을 뒤따라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의 수가 불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는 사람들과 합류하기 때문이다. 몇 명은 인사드리고, 몇 명은 찬미하고, 몇 명은 호소한다.
“선생님, 제 아들이 병들었습니다. 복되신 선생님, 오십시오!”
한 어머니가 외친다.
그러자 예수께서 한 초라한 집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셔서 눈물에 젖은 그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당신의 아들은 어디 있소?”
“여기 있습니다. 선생님, 이리 오십시오.”
그 어머니, 예수, 뱃사공, 베드로, 요셉, 타대오 그리고 몇 명의 주민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은 대문 앞에 운집하여 목을 빼고 쳐다본다.
초라하고 어두운 부엌 한구석에, 불 피우는 곳 가까이에 작은 침대 하나가 있고, 그 위에는 일곱 살쯤 된 어린이의 시체가 있다. 내가 작은 시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아이가 비쩍 마르고, 누르스름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가슴이 숨 가쁘게 헐떡이는 소리만이 들린다. 폐결핵을 앓는 것처럼 보인다.
“보십시오, 선생님. 저는 이 애만이라도 구하려고 전 재산을 다 썼습니다. 저는 과부인데, 다른 두 아들은 이 애의 현재 나이와 같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저는 로마인 의사에게 이 애를 보이려고 카이사리아 항구까지 데리고 갔습니다만, 그 의사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체념하시오. 카리에스가 이 아이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 어머니는 담요를 열어 젖혀 불쌍한 어린 것의 몸을 드러낸다. 붕대가 없는 곳에는 변질된 누르스름한 피부로부터 작은 뼈들이 돌출해 있다. 그러나 몸의 극히 일부분만이 드러나 있다. 나머지 부분은 붕대와 수건으로 덮여 있는데, 어머니가 그것들을 치우자 전형적인 골성 카리에스의 진물이 흘러나오는 구멍들이 보인다. 애처로운 광경이다.
앓고 있는 어린 병자는 너무 쇠약하여 작은 몸짓 하나도 하지 못한다. 그는 마치 이것이 자기의 일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아 보일 지경이다. 아이는 쑥 들어간 얼빠진 듯한 눈을 겨우 뜨고, 무관심한 시선, 아니 귀찮아하는 시선을 사람들에게 던지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예수께서는 그를 어루만지신다. 그분께서 그분의 긴 손을 어린이의 축 늘어진 작은 머리에 얹으시자, 어린이가 다시 눈을 떠 그토록 부드럽게 자기를 만지며 그토록 많은 연민을 가지고 미소 짓고 있는 낯선 남자를 좀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쳐다본다.
“너는 낫기를 원하느냐?”
예수께서는 아이의 창백한 얼굴 위로 몸을 굽히시며 나직한 소리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붕대를 더 감아주려고 하는 그의 어머니에게 말씀하신다.
“부인, 그것은 필요 없어요. 그대로 놔두시오.”
그분께서는 이 말씀에 앞서 작은 몸을 다시 덮어주셨다. 어린 환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왜?”
“제 엄마를 위해서요.”
그 아이는 아주 희미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더 비통하게 운다.
“만일 네가 낫는다면, 너는 항상 착하게 살겠니? 착한 아들로? 훌륭한 시민으로? 훌륭한 신자로?”
그분께서는 어린이에게 질문 하나하나에 대답할 시간을 주시기 위하여 질문들을 분명하게 끊어 물으신다.
“너는 지금 네가 약속하고 있는 것을 항상 기억하겠니?”
약하기는 하지만 깊은 갈망을 나타내는 “예”가 그의 영혼으로부터의 연속적인 한숨들처럼 반복적으로 발해진다.
“얘야, 네 손을 나에게 다오.”
어린 환자가 자기의 성한 왼손을 주려고 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다른 손을 나에게 다오. 나는 너를 아프게 하지 않겠다.”
“주님, 그 손은 하나의 큰 상처일 뿐입니다. 제가 그것을 붕대로 감게 해주십시오. 당신을 위해서요…”
어머니가 말한다.
“부인,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나는 마음들의 불순함만을 혐오합니다. 나에게 네 손을 다오. 그리고 나와 함께 말해라. ‘저는 한 아들로서, 한 남자로서, 참 하느님을 믿는 한 신자로서 항상 착하기를 원합니다.’”
어린이는 자기의 목소리에 힘을 주며 반복한다. 오! 그의 영혼 전체가 그의 목소리 안에 들어 있고, 그의 소망과… 분명히 그의 어머니의 소망도 들어 있다.
방안과 길거리에 엄숙한 침묵이 흐른다. 예수께서는 병자의 오른손을 그분의 왼손으로 잡으시고, 그분의 오른손을 드시고, 그분께서 어떤 진리를 선포하시거나, 질병들과 자연력들에 당신의 뜻을 강요하실 때의 몸짓과 함께 엄숙하게 똑바로 서서 힘찬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낫기를 원한다. 아이야, 일어나라. 그리고 주님을 찬미해라.”
그분께서는 말랐지만 최소한의 찰과상도 없는, 지금은 완전히 치유된 작은 손을 놓으신다.
그분께서는 그 어머니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의 아들을 덮고 있는 것을 벗기시오.”
마치 사형선고나 자비의 선고 사이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여인은 주저하며 담요들을 젖힌다… 그녀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기쁨에 겨워, 대단히 말랐지만 건강한 작은 몸 위로 자기의 몸을 던지며 입 맞추고, 껴안는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녀는 예수께서 침대 곁을 떠나 문을 향하여 가시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소년이 보고 말한다.
“주님, 저에게 강복해주시고, 제가 주님을 찬미하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엄마… 엄마는 감사드리지 않을 거예요?”
“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여인이 아이를 품에 안고 예수의 발 앞에 몸을 던진다.
“부인, 나는 이해합니다. 평안히 지내고, 행복하세요. 얘야, 잘 있어라. 착하게 살아라. 모두들 안녕히 계시오.”
그분께서는 밖으로 나가신다.
많은 여자들이 예수의 강복이 미래에 자기 아이들을 악으로부터 보존해주도록 그들을 들어 올린다. 어린이들은 애무를 받으려고 어른들 사이로 기어서 나온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고, 쓰다듬어주시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신다. 그분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안질에 걸린 세 사람과 무도병(舞蹈炳)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떠는 한 사람을 고쳐주신다. 그분은 이제 마을의 중심에 계신다.
“여기 출생 시부터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저의 한 친척이 있습니다. 그는 영리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를 고쳐주십시오, 예수님!”
뱃사공이 말한다.
“나를 그에게 데려다주시오.”
그들은 한 작은 텃밭으로 들어가는데, 그 끝에서 삼십 세가량 된 청년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채소에 물을 주고 있다. 귀머거리인 그는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군중이 지르는 소리가 몹시 커서 비둘기들이 놀라 지붕들로 도망치는데도, 태연히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뱃사공이 그에게로 가서 그의 팔을 붙잡고 그를 예수께로 데려온다.
예수께서는 그 불쌍한 사람과 아주 가까이에서 마주보고 서시는데, 몸과 몸을 밀착시켜 그분의 혀를 입을 벌린 채 서 있는 벙어리의 혀에 닿게 하신다.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그분의 중지 두 개를 귀먹은 벙어리의 두 귀에 넣으시고, 두 눈을 하늘로 향하신 채 잠시 기도하신 다음 말씀하신다.
“열려라!”
그분께서는 손을 떼신 다음 비켜서신다.
“제 혀와 귀들을 풀어주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기적적으로 치료받은 사람이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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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5 ~
예수께서는 한번 손짓하신 다음에 그 집의 뒤에서 나와 길을 계속 가려고 하신다. 그러나 치료받은 사람과 뱃사공이 그분을 붙잡는다. 한 사람이 말한다.
“이분께서는 메시아이신 나자렛의 예수님일세.”
그러자 다른 사람이 외친다.
“오! 잠시 머무르십시오. 제가 경배드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께 항상 충실하시오. 가시오. 무익한 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기적을 인간적인 소일거리로 삼지 마시오. 당신의 혀를 선을 행하는 데 쓰고, 당신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창조주 영의 목소리들을 당신의 귀보다는 당신의 마음으로 들으시오.”
물론 지극히 행복한 사람에게 자기의 행복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는 것은 참으로 무익한 일이다! 치유 받은 사람은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함으로써 그토록 여러 해 동안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것을 벌충한다.
뱃사공은 자기의 집으로 들어가 쉬시고 요기하시라고 예수께 간청한다. 그는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경을 자기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는 자기의 권리가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내가 마을의 원로일세.”
위엄 있는 한 노인이 말한다.
“그렇지만 만일 제가 제 배들을 가지고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어르신은 예수님을 뵙지 못하셨을 겁니다.”
뱃사공이 대답한다.
그러자 항상 솔직하고 충동적인 베드로가 말한다.
“사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면, 당신과… 배는…”
다행히 예수께서 개입하셔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만드신다.
“강가로 갑시다. 나는 거기서 음식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음식은 소박하고 검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음식은 육체에 이바지하는 것일 뿐 육체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듣고 싶거나 질문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나와 함께 갑시다.”
나는 마을 전체가 예수를 따라간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자갈밭에 끌어올려져 있는 배에 오르셔서 이 급조된 강단에서 강둑과 나무들 사이 그분의 앞에 반원형으로 둘러앉은 청중에게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한 남자에게서 받은 질문으로부터 말씀을 시작하신다.
“선생님, 우리 율법은 불구로 태어나는 사람을 하느님께 벌 받은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분께서는 그런 사람들이 제단에서 일하는 것을 금하시니 말입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죄가 있을 수 있습니까? 그 불행한 아들들을 낳은 그들의 부모를 죄인으로 보는 편이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어머니들을 말입니다.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들에 대해서 저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들으시오. 한 위대하고 완전한 조각가가 어느 날 조각상을 만들었는데, 어찌나 완벽하게 만들었던지 그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온 땅에 이런 대리석 조각상들이 가득 차게 하고 싶다.’
그러나 그는 그토록 많은 일을 혼자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도와주도록 다른 사람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이것과 똑같이 완전한 상을 천개, 만개 만들어 나에게 주시오. 그러면 내가 그것들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여 그것들의 모습에 표정을 불어넣겠소.’
그러나 그의 조수들은 그렇게 잘 만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술에 있어 자기들의 선생보다 훨씬 열등했을 뿐만 아니라 환각과 우둔함을 일으키는 즙을 가진 과일을 먹어 약간 중독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조각가는 그들에게 거푸집들을 주며 말했습니다. ‘재료를 여기 부어넣어 상의 모양을 만드시오. 그러면 훌륭한 작품이 나올 터인데, 나는 거기 마지막 손질을 가하여 생명을 불어넣겠소.’ 그래서 조수들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각가에게는 큰 원수가 있었습니다. 조각가 자신과 그의 조수들의 원수였습니다. 이 원수는 온갖 방법으로 조각가를 초라해 보이게 하고, 그와 조수들 사이에 불화가 생기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때로 거푸집에 흘려 넣는 재료를 변질시키고, 때로는 불을 약화시키고, 때로는 조수들을 과도하게 찬양하는 등 그의 간계로 그들의 작업을 공격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세상의 통치자는 할 수 있는 대로 작품의 불완전한 복제품들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불완전한 조각상을 본뜬 견본품들에 대한 무거운 제재를 부과했습니다. 그 제재 중 한 가지는 그런 불완전한 복제품들은 하느님의 집에 전시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완전해야 하거나 완전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해야 마땅할 것’이 라고 내가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실은 그것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령 외양들은 좋더라도 실제들은 좋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집에 있는 사람들은 결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눈은 그들에게서 가장 중대한 결점들을 발견하십니다. 마음속에 있는 결점들 말입니다.
오! 마음! 사람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깁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미가를 노래하는 데 있어 깨끗한 눈, 완전한 귀, 듣기 좋은 목소리,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지도 않고, 충분하지도 않습니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향기로운 옷을 입는 것은 필요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습니다.
영이 깨끗하고, 완전하고, 조화롭고, 시각, 청각, 목소리, 영적 형태에 있어 잘 생겨야 하며, 이 모든 것들이 깨끗함으로 장식되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으로 향기롭게 된 아름답고 깨끗한 옷이고,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정수로 밴 기름인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으로서 불행한 사람을 보고, 그를 업신여기고 미워하는 사람의 자세는 어떤 종류의 사랑이겠습니까? 반대로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두 배, 세 배의 사랑이 베풀어져야 합니다. 비참함(wretchedness)은 그것을 참고 견디는 사람과, 관계의 사랑으로 인하여 희생자들이 그 불행을 참고 견디는 것을 보는 고통을 감수하며 아마 그들의 가슴을 치며 ‘내가 내 악습을 통하여 이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공로를 주는 고통입니다.
불행은 결코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죄의 원인이 되지 않습니다. 만일 그것이 무정함(anti-charity)이 된다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이웃을 결코 무정하게 대하지 마시오.
그가 불행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그가 큰 고통을 견디고 있으니 그를 사랑하시오. 그가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불행하게 되었습니까? 그의 잘못이 이미 벌이 되었으니 그를 사랑하시오.
그가 불행하게 태어났거나 불행하게 된 사람의 아버지입니까? 자기의 자식을 통하여 타격받은 아버지의 고통보다 더 깊은 고통이 없으니 그를 사랑하시오.
그녀가 괴물을 낳은 어머니입니까? 그 여자는 자신이 가장 비인간적이라고 여기는 그 고통으로 문자 그대로 짓눌려 있으니 그 여자를 사랑하시오.
그러나 영혼이 괴물인 아들의 어머니인 여인의 고통은 훨씬 더 깊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세계, 조국, 가정, 친구들에게 위험한 마귀(demon)를 낳았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오! 잔인하고 비열한 아들, 살인자, 배반자, 도둑, 타락한 인간의 불쌍한 어머니는 감히 자신의 이마를 쳐들지도 못합니다! 글쎄요.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가장 불행한 어머니들, 살인자들과 배반자들의 어머니들로 역사에 전해질 사람들도 사랑하시오.’
땅은 도처에서 자기 자식의 참혹한 죽음으로 인하여 상심한 어머니들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와로부터 줄곧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사람들에 의하여 무참히 죽고, 고문당하고, 순교당한 자신들의 아들들의 시체 앞에서 자신들의 오장육부가 해산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으로 찢어지는 것을 느꼈습니까! 아니 잔인한 손이 그들의 오장육부와 심장을 떼어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까!
그 어머니들은 고통스러운 사랑의 발작적인 광란으로 더 이상 자신들의 말을 들을 수 없고, 자신들의 체온으로 따뜻해질 수 없고, 그들이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말이 들려요’라고 자신들의 입술로 말할 수 없어 하나의 시선, 하나의 몸짓으로라도 말할 수 없는 시체 위에 자신들의 몸을 던져 끔찍한 고통으로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땅은 사람에게 영원히 기억될 모든 여인들 중 가장 거룩하신 여인과 가장 불행한 여인, 즉 살해당한 구세주의 어머니와 구세주를 배반할 사람의 어머니의 부르짖음을 아직 듣지 못했고, 그들의 눈물을 거두지도 못했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의 순교자들인 두 어머니들은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애곡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고, 죄 없고 거룩한 어머니, 가장 죄 없는 어머니, 죄 없는 자의 죄 없는 어머니(the Innocent Mother of the Innocent)가 땅 위의 무엇보다 더 잔인한 아들의 순교자인 멀리 떨어져 있는 그녀의 자매에게 말할 것입니다. ‘자매님,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여러분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사랑할 그 여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사랑하시오.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투박한 강단에서 내려와 반소매 샤쓰만 입고 강바닥의 자갈밭 위의 풀에서 뒹구는 어린이를 쓰다듬어주시려고 몸을 숙이신다. 선생님에게서 그토록 숭고한 말씀을 많이 들은 다음에, 보통 사람처럼 어린이에게 관심을 보이시고, 그 다음에 빵을 쪼개 그것을 바치고, 그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고, 분명히 그분의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분의 어머니의 비통한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분의 곁에 있는 유다를 보시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잡수시는 선생님을 이렇게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그분의 감정에 대한 이러한 자제력은 몹시 충동적인 나에게 다른 많은 것보다 더 인상적이다. 이것은 나에 대한 반복적인 교훈이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실로 매료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다정한 사랑의 선생님을 존경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 채 말없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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